이전 글에서 우리가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단기적인 변화를 과대평가하고, 기술이 가져올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봤다.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또 한 가지 있다. 특히 나 같은 VC들 사이에서 자주 경험하는데, 바로 기술, 제품, 숫자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는 점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내 경험상, 말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돈을 집행할 땐, 사람보다 기술, 제품, 그리고 수치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결국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한 후에 투자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이들이 만든 기술, 제품, 그리고 매출과 같은 지표를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숫자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할 때 투자자로서 범할 수 있는 큰 실수는, ‘지금’이라는 순간에만 매몰되어, 회사의 미래를 이 회사 현재의 매출,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 현재의 전략, 그리고 창업가의 현재 생각만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이다.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별로이고, 매출 성장이 약하고, 전략도 스케일을 만들기 어렵고, 창업가와 이야기해 봤을 때 엄청난 비전도 없는 것 같다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회사에는 분명히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투자하지 않은 회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pass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잘 안되지만, 몇몇 창업가들은 투자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회사를 만든다. 우리도 절대로 안 될 거라고 판단했던 스타트업이 불과 5년 만에 엄청난 사업을 만드는 걸 몇 번 목격했는데, 이건 정말로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어차피 회사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고, 잘 되는 회사와 잘 안되는 회사를 흑과 백으로 구분하는 건 어렵고, 스타트업의 성공은 실력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히 당시의 비즈니스모델, 수치, 전략, 창업가의 비전만으로 판단하면 잘 안될 것 같았는데, 이런 회사가 왜 크게 됐는지, 그리고 왜 우린 이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엔 사람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 특히 초기 스타트업은 –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시간이 가면서 모든 게 바뀌는데, 그 변화는 창업가들이 만들어 간다. 좋은 창업가라면 절대로 안 될 사업도 되게 만들고, 나쁜 창업가라면 무조건 될 사업도 안 되게 만든다. 투자자들이 회사를 만났을 때 비즈니스 모델이 아예 없거나, 또는 별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비즈니스 모델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의 수치가 별볼일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별볼일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략도 마찬가지고, 창업가의 비전도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에는 대단한 비전이 없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창업가가 항상 이렇게 비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좋은 창업가라면 이 모든 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사람의 힘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경우, 우린 현재에만 집착해서 당장의 수치를 과대평가하고, 실제 사업의 핵심인 사람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글로는 이렇게 표현했지만, 솔직히 나도 수치를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실은, 이 포스팅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남기면 앞으로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몇 자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