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같이 창업 scene이 재미있고 짜릿했을 때가 없을 정도로 좋은 기술과 좋은 창업가들이 이 생태계에서 많이 보인다. 일어나서 다시 잘 때까지, 이 짧은 시간 동안 매일매일 뭔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시장에 홍수같이 쏟아져서 남들보다 앞서가긴커녕, 남들과 페이스를 맞추고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벅차고, 가끔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하지만, 일상이 항상 똑같아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다른 직장인들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고민이다.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매우 정신없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와중에 요새 내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돈지랄을 하는 창업가들이다. 원래 개인적으로 돈이 많거나, 아니면 엑싯을 해서 돈을 번 창업가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돈 많다고 자랑하고, 본인이 직접 열심히 번 돈을 어떻게 쓰든, 그건 전혀 상관없는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돈지랄 하는 창업가들은 남의 돈을 마치 자기 돈으로 착각하고, 뭐 여기까진 봐줄 만하지만, 자기 돈같이 생각하는 걸 넘어서 자기 돈같이 쓰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일단 시작은 쓸데없이 비싼 음식점에서의 회식, 그리고 안 가도 되는 술집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모두 다 접대와 영업이라는 명목하에 진행되는데, 결국 돈은 개인 지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전부 법카로 처리한다. 법카 비용은 누구 돈으로 정산되는가? 투자받은 돈이다. 큰 계약을 하기 위해서, 좋은 인재 채용을 위해서, 경영진의 리더십 워크샵 때문에,,,뭐 갖다 붙이면 그럴싸한데, 회사에 돈 없으면 못 하는, 회사에 돈 있어도 안 해도 되는 돈지랄이다. 이런 거 안 해도 회사 잘 굴러간다. 나는 오히려 본인들이 회삿돈으로 골프 치고 싶어서 법인 골프 회원권 샀고, 그냥 맛있는 음식 먹고 싶어서 호텔 양식집에서 법카 긁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덜 밉다.
분수에 넘치는 법인 차량이 그다음인 것 같다. 영업해야 하면 법인 차량을 마련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돈도 못 버는 회사가 비싼 외제 차를 법인 차량으로 구매해서 고객을 만나러 가는 영업이 아니라 임원들 출퇴근과 주말에 놀러 다니는 용도로 제공하면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이 외에 어이가 없었던 건, 아직 한국에서도 헐떡거리고 있는데 해외 지사를 동시에 여러 개 설립하고, 그 지사에 채용할 인재들을 말도 안 되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면서 영입하는 행동들, 그러면서 글로벌 회사가 되려면 이에 걸맞은 글로벌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는 단순한 1차원적인 논리를 갖다 붙이면서 이들에게 정말 과한 혜택을 주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도 몇 번 봤다. 회사는 아직도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아서 계속 마이너스가 발생하고, 제대로 사업하라는 의미로 투자한 돈을 이렇게 개념 없이 펑펑 쓰는 걸 보면 이 분들에게 – 우리 포트폴리오든 아니든 –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된다. 이렇게 기본적인 비용 관리의 개념도 없는 분들이 사업을 도대체 어떻게 하고, 이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지 정말 걱정된다.
이런 창업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마치 이 돈이 본인이 사업을 잘해서 번 돈으로 착각하고, 남들이 보고 듣는 자리에서 그 자랑을 한다. 그리고 투자받은 돈을 자기 돈처럼 펑펑 쓴다. 도덕성이 없는 건지, 기본 개념이 없는 건지, 아마도 이 두 가지의 어느 중간 지점에서 모두 왔다 갔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마이너스의 구간을 지나서 회사가 돈을 벌고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이익이 발생하면 비즈니스 모델을 잡았다는 의미이고, 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돈을 써야 한다면, 내가 봤을 땐 정확히 어디에 돈을 쓰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경우엔 돈 쓰는 걸 그렇게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정도의 사업을 만든 분들이면, 기본적인 비용 개념은 확실히 잡힌 창업가일 확률이 높고, 위에서 말한 이상한 돈지랄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창업가들은 남의 돈과 내 돈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그냥 기본 상식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걸 잘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