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그리고 바로 해고

2021년도에도 투자받고, 또 최근에 투자받은 대표들은 두 시점에서의 전반적인 업계 분위기와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021년도는 나의 짧은 VC 경력 중 가장 흥미로운? 한 해였고, 돈이 완전히 메마를 것 같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시장에 풀렸던 시기였다.

이때 투자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회사의 실적이나 수치 대비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훨씬 더 많은 투자금을 받았고, 당시 투자자들 분위기는 투자금을 최대한 빨리 소진해서 더 높은 밸류에 또 투자받자는 게 지배적이었다. 회사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로 건강한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최대한 많이 채용하고, 최대한 마케팅 많이 태우고, 최대한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 투자받은 돈을 최대한 빨리 쓰고, 내실보단 더 커진 외형으로 이전 가치보다 5배 이상의 밸류로 또 투자 받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당시에 신기했던 게, 좋은 창업가들이지만, 매출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창업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회사들이 기업 가치 200억 원 이상에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투자하는 VC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이 VC들에게 뭘 보고 이렇게 비싸게 투자했냐고 물어보면, “몇 달 뒤에 더 높은 가치에 투자받으면 되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만났던 이런 회사들은 대부분 지금은 문을 닫았거나,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시에 투자받았던 200억 원 이상의 밸류보다 훨씬 낮은 50억 원대 밸류로 다운 라운드를 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비즈니스 자체도 피봇팅을 하기도 했다.

요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VC들은 검토하는 회사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 그리고 기업가치가 합리적인지, 여러 가지를 매우 꼼꼼하게 챙긴다. 투자금의 용도가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유료 마케팅을 하는 거라면, 3년 전만 해도 이 전략에 손뼉 치던 투자자들은 이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 전략을 바라본다. 그래서 2021년 도에도 투자받고, 최근에 또 투자를 받았던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온탕에 있다가 갑자기 냉탕에 들어온 기분이고, 같은 투자자 지면 그동안 분위기와 투자 전략이 어쩜 이렇게 달라졌는지 상당히 놀란다.

우린 2021년도에도 열심히 투자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미친 밸류에이션에 투자는 가급적 자제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들이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밸류가 아니면 웬만하면 안 들어갔다. 실은, 이렇게 하고도 그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투자도 잘 받으면, 우리가 실수했는가 후회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한 것 같다.

요새 우리가 신규 투자를 하거나, 기투자사들에 후속 투자를 할 때,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투자하면서 대표들에게 이번 라운드의 목적은 이 투자금을 안 쓰는 것이라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키려면 당연히 돈을 써야 하지만, 그만큼 돈을 소중하게 쓰고,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면서, 가능하면 이번 투자금으로 흑자를 만들어 보라는 경고이자 부탁이다.

둘째는, 투자받아서 사람을 더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완전히 그 반대 전략을 구사하라고 한다. 즉, 이번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에 기여를 못 하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라고 한다. 투자를 받는 회사들은 나름 잘하는 회사지만,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고, 이걸 가능케 하는 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얼마 전에 채용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채용하지 말고, 100% 기여를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보내라고 한다. AI도 좋아져서, 사람이 하는 low level 작업은 충분히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가지 경고이자 부탁이자 조언은 물론,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가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투자를 크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해라.
투자를 적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대량 해고해라.
투자를 못 받았다면? 돈을 더 아끼고, 사람 절대 채용하지 말고, 있는 적은 인력도 더 줄여라.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로 온 것을 환영한다.

VC는 끝나지 않았다

요새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VC의 종말에 대한 포스팅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제 이 낙후된 VC의 투자 모델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AI의 시대에 아직도 사람에게 집중하는 VC 모델은 더 이상 옛날처럼 작동할 수 없다는 주장들을 강하게 한다.

실은 나도 몇 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VC가 끝났다는 말은 아니라, VC의 비즈니스 모델이 너무 오래돼서, 이제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돈을 버는 방식도 조금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런데, 2017년도에 쓴 글인데, VC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도 2/20 수수료 모델 그대로이긴 하다.

VC가 죽었다고 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가지 공통된 부분이 있고, 솔직히 이 내용들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서 나도 동의한다. 2021년 대비 시장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이 절반 이상이 줄었다는 점, 엑싯 또한 신통치 않아서 수익률이 예전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점, VC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들 또한 과거 대비 VC 펀드 출자를 상당히 줄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벤처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돈 버는 게 어려워졌다. 엑싯이 안 되면, 회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회수가 안 되면 VC에 자금을 제공하는 LP들에게 돈이 배분되지 않고, 이렇게 되면 시장에 돈이 안 돌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시기임은 맞다.

이런 거시적인 시장 상황 외에도 AI의 발달로 인해서 똑똑한 창업가들은 큰 투자 없이 큰 사업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이상 VC 투자가 이들에겐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 개나 소나 펀드를 만들어서 창업가 대비 VC의 비율이 점점 더 VC에게 불리해지는 상황, 그리고 이제 과거와 같은 큰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는 이론 등으로 인해서 VC라는 산업 자체가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특히, AI가 좋아지면서 조만간 사람이 하는 VC 투자를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의견과 시장 상황은 틀리지 않았다. 나 같은 VC도 매일매일 몸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VC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완전히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창업가들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VC 산업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고, 이들이 투자한 좋은 회사들이 큰 엑싯을 하면서 그들이 투자하는 지역의 경제를 가장 크게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그 어떤 산업에서나 볼 수 있는 보정 과정이다. 코로나 기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빨리 시장에 풀려서 VC라는 게임이 살짝 고장 나긴 했지만, 이 또한 고쳐지고 치유될 것이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고,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전략으로 투자했던 건강한 VC들만 살아남을 것이고, 살아남는 VC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 어떤 시장이라도 너무 커지고, 돈이 너무 많이 집중되면, 이상한 사람들과 회사가 항상 생길 수밖에 없는데, 건강한 시장이라면, 결국 이런건 스스로 정화된다.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2020년과 2021년, 전 세계에 너무 많은 신생 VC가 생겼고 – 한국도 심할 정도로 많이 생겼다 – 이미 투자하고 있던 VC들도 펀드 규모를 엄청나게 불렸고, 그 큰 펀드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더 큰, 더 말도 안 되는 투자를 상당히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우리가 모두 지금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건재하면서 잘하는 VC들도 많다. 이들은 시장이 어떻든 그냥 본인들이 잘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고, 본인들이 해야 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투자하는 방법, 규모, 전략 등은 변하고 보정되고 미세조정 될 수 있지만, VC라는 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VC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VC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분들의 프로필을 대략 보면, 한 번도 제대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과 VC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투자는 거의 안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분들의 말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AI가 아니라 사업이다

나는 1999년도에 스탠포드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실리콘밸리에 처음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지만, 이 동네는 한국과는 아주 다르고, 심지어 미국의 다른 지역과도 많이 다르다는 걸 당시에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창업가나 VC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지만, 벤처 관련 수업을 몇 개 들으면서, 스타트업과 entrepreneurship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고, 팀을 만들어 사업계획서도 만들어 보고, 이 동네의 네트워킹 행사에도 다니면서 다양한 사업계획서를 봤고, 이보다 더 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우습지만, 그땐 10명 중 9명의 창업가가 어떤 사업을 하냐고 물어보면, “인터넷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답변했다. 사업 계획서 10개 중 9개의 표지에는 “인터넷 기반의 혁신적 xxx”라는 설명이 있었고, 더 재미있는 건, 이런 피칭을 듣거나, 사업계획서를 보면 대부분 투자자들이 “와, 인터넷 기반이라고? 대박인데”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업인지 보단, 인터넷 기반이라는 점이 이들에겐 훨씬 더 중요했다.

블록체인이 한창 유행할 때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블록체인 기반의” 혁신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린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건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이죠.”라는 MSG를 항상 너무 많이 쳤고, 이들을 대하는 투자자들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에 홀린 듯이 반응했다.

블록체인은 반짝하다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지만, 인터넷 기반의 사업은 이제 사업의 기본이 됐다. 모든 사업은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제 그 누구도 “인터넷 기반의”라는 말을 안 한다. 그냥 모든 게 인터넷 기반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기반의 혁신적 사업”에 투자했던 VC 중,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투자자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인터넷 기반”이라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그 인터넷 기반의 “사업”에 집중했던 사람들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사업이고,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돈을 정말 벌 수 있는 사업인지를 판단하고, 그 사업 모델이 인터넷을 만나면 얼마큼 더 커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인터넷 기반이라는 말에 현혹돼서 어떤 사업인진 제대로 파악도 안 하고 그냥 투자한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망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아직 살아있거나, 잘되고 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한 곳들이다. 블록체인 기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업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고, “블록체인 기반”보단 “사업”을 보고 투자한 VC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다.

요새 나는 이 현상이 AI와 함께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AI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회사 소개는 “우린 AI 기반의 xxx입니다. 이게 곧 미래이고, 우린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 많은 VC들이 어떤 사업인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그리고 이게 말이 되는 사업인지를 파악하기보단, “AI” 그 자체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다. 앞으로 2년 후면, 도입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업은 AI를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사업을 설명할 때 “AI 기반의 xxx”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기반, AI 기반은 그냥 기본이 될 것이다.

세월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 기반의 사업,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 AI 기반의 사업, 모두 인터넷, 블록체인, AI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업”이 중요한 거다. 유행어에 현혹되지 말고, 사업의 본질에 집중하자. 이건 창업가, 투자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요즘 아이들의 뷰티 제품 선호도

우리도 소비재에 많이 투자하고, 한국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재라서 나는 이 시장 관련 기사나 보고서는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중 좋아하는 리포트 중 하나가 The New Consumer에서 정기적으로 만드는 건데, 최근에 발행한 Beauty 2025 Special Report를 흥미롭게 읽었다. 화장품도 뷰티 시장에서 중요한 카테고리이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분야 중 하나라서 그런지, 한국 화장품도 몇 번 언급된다. 이 보고서에 요즘 아이들인 MZ 세대가 뷰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은, 나는 MZ 세대는 X 세대와는 뭔가 매우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뷰티를 바라보는 시각과 거의 비슷하다.

1/ 대부분의 미국 MZ는 본인들의 외모에 신경을 쓴다.(“나는 남들이 내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신경을 쓴다.”)
2/ 대부분의 MZ는 한 달에 한 번 뷰티 제품을 구매하는데, 특히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제품을 가장 많이, 자주 구매한다.
3/ 미국의 경우 TikTok Shop에서 뷰티 제품이 많이 팔린다. 이미 TikTok Shop은 Sephora보다 더 많은 양의 뷰티 제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처음 구매하는 건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한다.
4/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뷰티 제품은 향수(fragrance)와 한국 화장품이다.
5/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뷰티 관련 단어 중 하나는 “glass skin(도자기 피부)”이다.
6/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뷰티 제품 구매에서 ‘성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분보다 더 중요한 건 브랜드이다. 아직도 샤넬이나 디올과 같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7/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Z 세대 고객은 뷰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은근히 높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뷰티 제품에 대해선, 요즘 아이들은 소셜미디어를 맹신하고, 한 번 구매한 제품이 마음에 들면, 계속 이 제품을 구매할 만큼 충성도가 높다. 하지만, Z 세대들에게 뷰티 제품 구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가 좋아야 한다. 제품이 좋은 건 기본이고,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꾸준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시장과 커뮤니티에 이 좋은 제품을 홍보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뷰티 제품 영업, 마케팅, 판매가 이젠 정말 더럽게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스토커와 같이 집착해라

공식 라이선스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Fanatics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이라면 Fanatics 사이트 또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뭐라도 한 번은 사 봤을 것이다. 미국 모든 대학교의 공식 라이선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NBA, NFL, MLB 등 프로 스포츠 공식 라이선스 제품도 다 판매하는, 기업가치 약 40조 원의 거대한 이커머스 회사이다.

나도 여기서 돈을 꽤 많이 썼는데, 운동용품과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Fanatics.com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체류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사이트도 잘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루빈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다른 모든 창업가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분의 인터뷰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감명 깊게 들었던 건 이 창업가의 집착이었는데, 뭐를 하던지 고객과 제품에 대한 거의 스토킹 수준의 집착으로 남보다 더 빠른 학습 커브를 만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시장에 어떤 신발을 판매하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뭘 신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발만 보니 시장에 대한 감이 생기고, 어떤 발/다리 모양이 어떤 신발을 많이 착용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짓을 수개월 동안 해서 목디스크가 생겼다는 웃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일화는 내가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몇 달 전에 ‘고객에게 미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하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런 창업가들이 점점 희귀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한다. 요새 내가 만나는 창업가들은 과거 대비 학벌도 더 좋고, 영어도 더 잘하고, 개발도 더 잘하고, 펀딩도 더 잘해서 확실히 high quality 창업가들이긴 하지만, Fanatics 창업가와 같은 스토커 수준의 집착은 오히려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서운 상대방과 불공평한 경기를 해야 한다. 이 우승 확률이 낮은 경기에서 그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 제품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 사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운동장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현재의 일등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압축해서 해야 한다. 결론은 매사에 열심히 해야 하고, 매사에 집착해야 한다. Fanatics 대표가 하루 종일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사람들의 신발만 봤던 그 자세로 스토커같이 집착해야 한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생각하는가? 우리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집착하고 있나?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는 더 가팔라지는데,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우리 제품, 고객, 직원,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매번 지는 경기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