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에 대해

우리 누님이 미국에 사시는데, 조만간 한국을 잠깐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 파는 마일로 사료를 부탁하기 위해서 아마존 앱을 열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걸 집에서 한 게 아니라, 영동대로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대기를 하는 도중에 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결제했다. 한 3분 만에 모든 걸 처리한 셈인데, 실제로 아마존 앱을 통해서 구매하고 결제 완료한 건 1분도 안 걸렸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항상 내가 하는 거라서 별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후에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들었다. 전에는 – 스마트폰 이전 시절 –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고 싶으면, 일단 저녁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쇼핑몰에 접속해서,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고, 집 주소를 입력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구매 프로세스를 완료했다. 이게 당시에는 시간도 좀 걸렸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기술이 점점 더 좋아졌고, 세상도 좋아졌다. PC와 노트북이 작은 핸드폰으로 대체됐고, 랩탑 화면도 이미 작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서 작동되는 모바일 앱은 낮은 가독성 때문에 앱 자체가 훨씬 더 심플하고 사용성이 좋아졌다. 그리고 결제 관련 기술과 API 또한 좋아져서 그냥 원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들도 많아졌다. 이 모든 개선 사항을 종합한 결과물이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가 다 기술의 발전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많은 이커머스 서비스를 사용해봤는데, 이 중 아마존이 가장 돈을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UI와 UX를 만들었고, 아마도 아마존의 이 프로세스는 점점 더 완벽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쿠팡도 만만치 않게 편리한 모바일 제품을 만들었다. 가끔은 돈을 써서 물건을 사는 과정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느냐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용자에게 친숙한 UI와 UX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제품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더 편리한 경험을 한 사용자들은 절대로 그 전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특성인데, 바쁜 도시의 대로를 건너면서 작은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 사료를 1분 만에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의 이런 경험은 전형적인 비가역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구매 경험이 불편한 서비스를 나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같이 삐삐, 일반 핸드폰, 스마트폰, 그리고 PC, 노트북, 모바일을 모두 다 경험한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접했고, 첫 인터넷 구매와 결제를 쿠팡이나 아마존을 통해서 경험한 세대에겐 이 내용이 그렇게 새롭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의 편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실은, 불편한 서비스가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비가역적인 편리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긴 쉽지 않다. 한 번 편리한 경험을 한 고객은 절대로 불편한 경험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고, 불편한 제품에 대한 시장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 차이

온라인 결제를 위한 API를 제공하는 Stripe는 전 세계에서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유니콘 회사 중 하나이다. 어떤 리스트를 보냐에 따라 다르지만, 기업가치는 $100B 정도이고, 유니콘 랭킹 탑 5위 안에 든다. 이 회사를 창업한 친구들은 아일랜드 출신의 용감한 형제 Patrick Collison과 그의 동생 John Collison 이다.

나도 Stripe API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던 건 2011년도였던 것 같다. 그때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티엘이 이 회사에 투자하면서 TechCrunch에 기사가 나서 관심을 갖고 봤는데, 솔직히 당시에 결제 API의 절대강자는 페이팔이었고, 페이팔보다 개발하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API를 제공하는 걸 차별점으로 강조하던 스트라이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개발자가 아니었고, 결제 시스템을 직접 구축한 경험도 없고, 그리고 그만큼 디테일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단순히 페이팔이랑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라고 생각했고, 조만간 경쟁에서 져서 망하거나 아니면 적당한 규모의 핀테크 B2B API 회사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10년 만에 이 회사는 세상에서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비상장 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면서, 온라인 결제와 돈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의미 있는 혁신을 만들고 있다. 더 놀라운 건, 현재 기업가치 100조가 넘은 스타트업인데, 앞으로 이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결제와 관련된 핀테크 시장은 크다.

가장 유명한 페이팔, 그리고 수많은 결제 API가 존재하는데, 스트라이프는 어떻게 이렇게 독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최근에 콜리슨 형제들의 인터뷰와 기사 여러 개를 듣고, 읽었고,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으면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결국엔 제품의 디테일에 있었다. 페이팔과 같은 기존의 결제 솔루션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항상 제품을 생각하고, 소비자들의 구매 경험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집중을 했다. 그런데 막상 콜리슨 형제들이 시장을 자세히 보니, 가장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은 물건을 사는 소비자 보단, 물건을 파는 판매자였다고 한다. 판매자들이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받기 위해서는 인터넷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개발하는 코드도 어려웠지만, 이후에 보이지 않는 뒷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프로세스와 이해관계자들까지 신경 써야 했고, 이건 일인 판매자나 작은 스타트업엔 거의 악몽과도 같았다.

스트라이프는 여기에 초점을 두면서 개발자들이 사용하기 가장 쉬운 결제 API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뒷단의 많은 프로세스도 자동화하는데 집중했는데, 이게 시장에서 잘 먹혔다. 물론, 이후에 카피캣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럴수록 마케팅에 집중하지 않고,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자원을 투자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단순히 적당히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쓸 때, 스트라이프는 위대하고,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돈과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품을 자세히 보고, 고객을 자세히 분석하고, 결제와 관련된 세세한 디테일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다 보니, 그 누구도 쉽게 카피할 수 없는, 겉으로 보면 미묘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디테일로 무장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눈으로 그냥 봤을 땐 대부분의 사람이 눈치도 못 채고, 그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보면,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그런 큰 차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가 97%와 100%의 차인데, 대부분의 창업가가 90% 완성도의 제품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 수 있고, 이 중 소수만이 97% 완성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97% 완성도의 제품은 엄청난 제품이다. 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건 마지막 3%이다.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마지막 3%를 완성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온갖 시도를 다 해봐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시간을 사용/낭비하고, 현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 마지막 3%를 완성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이 중 극소수의 회사는 그 3%를 완성해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스트라이프가 그 길을 현재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3%를 완성하는 건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이다. 종이 한 장 차이의, 눈에도 잘 안 보이는 간격을 어떻게 메꾸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한 눈 팔기와 집요함

이전 포스팅에서 집중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다. 창업가들이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지만, 웬만한 일은 전부 다 쳐내서 하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집중의 의미이고, 아마도 내가 스트롱 대표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그냥 하나만 제대로 합시다.” , “작은 칼을 아주 뾰족하게 가는 게 최고의 전략입니다.” , 인 것 같다. 내가 전에 뮤직쉐이크 할 때도,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못 했던 게 이 집중이라서 그런지, 모든 창업가들에게 집중의 중요성을 마치 종교같이 주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고백했듯이, 이런 내 경험과 믿음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큰 스케일에서 보면 일론 머스크와 같이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와 같은 두 개의 큰 기업을 동시에 잘 운영하는 기업가, 또는 한때 트위터와 스퀘어를 동시에 운영하던 잭 도시와 같이 한 가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에 집중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고, 더 작은 스케일에서 보면 여러 가지 작은 사업을 동시에 하는 유능한 창업가도 가끔 본다.

하지만, 이런 케이스를 일반화하면 안된다. 오히려 이런 분들은 아웃라이어라서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하나에만 집중해도 잘할까 말까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틀리겠지만,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걸 종교와도 같이 굳게 믿고 있고, 여러 가지 하는 창업가나 한눈을 너무 많이 파는 분들에게는 투자를 주저한다.

스타트업으로 기존 산업을 변화하거나, 이미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를 이기는 건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미친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그 순간부터 창업가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위로 공을 차고, 다시 우리 골대로 내려오는 공을 차고, 계속 이런 이길 수 없는 경기를 하게 될 것이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그나마 이 낮은 승률의 경기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영어에서 말하는 “inch wide, mile deep” 하게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굉장히 좁은 면적의 땅을 선택하고, 이곳을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하면, 지구의 핵에 도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깊게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쩌면 이길 수 있다. 나는 이런 전략을 주로 날카로운 칼에 비유하곤 한다. 크지만 무딘 칼 보단, 작지만 날카로운 칼로 아주 깊게 베어서 들어가야지만 애초에 불공평한 게임에서 그나마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

현실은, 너무 많은 창업가가 한눈팔기를 하고 있다. 창업가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넘치는 분들이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주 생긴다. 물론, 정말로 동시에 여러 가지 사업을 해서 모든 사업을 일등으로 키울 수 있는 자신감 때문에 한눈을 파는 건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신통치 않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한눈을 팔고 있는 건지 판단하는 건 참 어렵긴 하다. 오직 본인들만이 정확한 이유와 마음을 알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한눈팔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이렇게 해서 스타트업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선택하고, 이 한 가지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집요하게 집중하지 않고, 한눈을 팔면, 잘 안되는 사업을 절대로 잘 되게 할 수 없고, 잘 되는 사업도 한순간에 망하게 할 수 있다.

무공식

나도 과거에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이젠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항상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겉으로 보면 모두 같은 벤처 투자지만, 매번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스타트업은 수학과 같이 명확한 공식이 있고, 이 공식에 의한 명확한 답이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은 input이 동일해도, output은 항상 다르다. 같은 산업에서,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같은 사업을 하는 두 회사의 예를 들어보겠다. 두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고, 펀딩도 비슷한 수준으로 받았는데, 1년 후의 결과를 보면 한 회사는 압도적인 1등이 되어 있고, 다른 회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실은 이런 현상을 대부분 산업에서 볼 수가 있는데, 투자하면서 이런 게 참 신기하긴 했다. 워낙 경쟁이 심해서, 우리 투자사는 대부분 같은 분야에서 겉으로 보면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경쟁사가 많으면 5개 이상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스타트업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많이 다르다. 어떤 회사는 시장의 압도적인 1등이 되어 있고, 어떤 회사는 1등이 이렇게 잘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사업을 너무 못한다.

정확한 이유는 공식화할 순 없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는, 무엇을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하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output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이렇게 수학같이 명확한 공식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 스타트업 시장의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비슷한 생각을 다시 한 적이 있었는데, 집중과 관련된 이야기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강조하고,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건, 잘 하는 거 한 가지만 하라는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집중이고,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하는 대표님들에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한다.

하지만, 창업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건데,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다 하고, 여러 가지를 모두 잘 하는 걸 나는 최근에 목격했다. 실은, 교과서적인 ‘집중’의 개념과는 완전히 반대여서 그동안 집중에 대한 나의 믿음이 완전히 박살 났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를 하면 실패하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만 성공한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았는데, 이렇듯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유독 공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성공 스토리와 실패 스토리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무공식이 판을 치는 이유는, 무엇을 하냐 보단, 누가 하냐가 중요하고, 이렇기 때문에 input이 같아도 항상 다른 output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남이 해주는 숙제

남이 내 숙제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말을 우린 어릴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어릴 적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몰랐다. 초등학교 때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이 숙제를 대신해 주고 있는걸 내가 알고, 어떤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이 숙제를 대신해 줬는데, 선생님은 왜 남이 내 숙제를 대신 못 한다고 말하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됐고, 스타트업과 가까이 일하면서 이제 나는 내 초등학교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이 말을 우리 대표님들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말하고, 나는 손가락이 아프고, 대표님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이메일로 많이 이야기한다.

최근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발단이 된 건 마케팅 대행사 때문이다. 내부에 마케팅을 잘하는 인력이 없어서 외부 마케팅 에이전시 또는 여기저기 마케팅을 봐주는 어드바이저 분들에게 내가 보기엔 과할 정도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마케팅을 외주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대행사를 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돈도 많이 낭비했지만, 가장 중요한 대표이사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날아갔다. 물론, 마케팅은 잘만 활용하면 회사의 큰 무기가 될 수 있고, 회사 내부에 마케팅 능력이 없어서 처음에는 나도 좋은 대행사를 활용하는 전략에 동의했지만,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의 숙제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대표에게 그냥 그럴 시간에 본인이 마케팅을 공부하는 게 더 좋고, 대행사에 줄 돈을 본인이 집행하면서, 날려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마케팅 수업료로 사용하면서 직접 본인이 만들고 있는 제품을, 본인이 고객들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보라고 했다. 절대로 남이 내 숙제를 대신해주지 않고, 대신해주더라도 성적의 결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외주업체라서 제대로 안 해주기 때문이다.

개발력이 내부에 없어서 외주 개발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걸 나는 자주 봤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렇게 남한테 내 숙제를 맡긴다. 외주 개발사는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고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되고, 이 제품이 잘 되든, 잘 안 되든, 그 결과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냥 돈 받고 스펙에 맞춰서 개발만 해주면 된다. 이런 분들이 내 숙제를 제대로 해줄까? 오히려 그럴 돈과 시간이 있다면, 개발 인력을 직접 뽑아서 내재화하거나, 내부 인력이 개발을 배워서 내 숙제를 내가 직접 하는 게 훨씬 좋은 전략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이제 매우 유명해진 테라노스라는 회사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사기’라는게 너무 뻔한데, 왜 그렇게 유명한 투자자들이 이 회사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을까? 이 회사에 투자한 어떤 투자자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본인은 바이오 전문가가 아니라서 테라노스 투자 검토를 할 때 이 분야를 잘 아는 외부 전문가에게 많은 조언과 자문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투자해서 잘 안 되면 투자자인 본인이 손해를 보지, 이 외부 전문가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서, 외부 전문가는 이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하거나 연구를 분명히 안 했을 것 같다고 한다. 즉, 내 숙제를 남에게 맡겨서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시원시원하고 남의 눈치를 잘 안 보는, 내가 꽤 좋아하는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과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필요 없고, 이 결과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들의 충고는 듣지 말아라”

남이 절대로 내 숙제를 해주지 않는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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