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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vs.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1594372376716먹거리 관련 이커머스 하는 창업가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거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하면 우린 그냥 망하는 거 아닌가요?”이다. 당연히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할 수 있고, 돈도 더 많고 사람도 더 많기 때문에 이 두 회사가 맘먹고 뭔가 시작하면 상당히 무서운 상대가 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이 전문가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vertical marketplace)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숨고와 같은 앱에도 이 동일한 카테고리가 있는데, 후발주자로서 경쟁할 수 있겠어요?”이고, 특정 분야에서 중고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은, “당근마켓같이 폭풍성장하고 있는 중고거래 서비스가 있는데, 이게 되겠어요? 당근마켓 들어가 보면 비슷한 게 이미 있는데요.”이다.

실은, 다 너무 당연한 질문이고,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미 product market fit을 찾았고, 이 fit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투자도 많이 받았고, 좋은 인재도 많이 채용한 쿠팡, 숨고, 당근마켓과 같은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거와 못 하는 거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무리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의 강자가 있어도, 이들보다 더 잘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숨고당근마켓은 전형적인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숨고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급자와 이들의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웬만한 분야의 서비스를 모두 다 제공한다. 지금 숨고에 들어가 보면 각종 레슨, 홈/리빙, 이벤트, 비즈니스, 디자인/개발, 건강/미용, 알바 등과 같은 카테고리가 있는데, 결국 모든 분야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지역기반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사고팔 수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제품을 공급자와 수요자가 중고거래할 수 있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두 플랫폼 모두 수평적으로 모든 걸 다루기 때문에, 커버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이렇게 광범위 하므로, 겹치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면 이 글 초반에 언급했던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는 것이다.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는 모든 분야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볼륨의 싸움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약점 또한 많은데, 대표적인 약점이 전문성의 부재이다. 즉, 너무 많은 분야에 있는, 너무 많은 사용자를 수용하다 보니, 각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기보단, 한 번에 모든 산업/시장/공급자/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보편적인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즉,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에 존재하는 모든 수직마켓에 하나의 통일된 공식을 적용하는 게 이들의 비즈니스이다. (내가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예를들면, 숨고에서 반려견 산책해 줄 사람을 구하면, 숨고의 일반 프로세스를 따라서, 펫시터들이 견적을 보내고, 내가 견적을 수용하면 둘이 날짜와 시간 등의 세부사항을 채팅으로 조율한 후에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숨고의 다른 카테고리를 사용해도 공급과 수요를 매칭하는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그런데, 펫시터만을 매칭해주는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있다. 도그메이트를 사용해보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프로세스가 훨씬 더 정교하고 전문적이라는걸 알 수 있다. 개가 몇 살인지, 어떤 종인지, 대형견인지 소형견인지,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 다른 개들과 잘 어울리는지 등등 기본적으로 나한테 가족 같은 반려견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때 최대한 사고가 안 나고, 서로의 경험이 유쾌할 수 있도록, 상당히 전문적으로 매칭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또한, 펫시터들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돌봐주면서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반려일지까지 공유하게 하는 아주 세심한 프로세스가 플랫폼에 녹아 있다. 반려견돌봄이라는 특정 버티컬에서 요구되는 이런 중요한 전문성이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숨고와 같이 큰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존재해도, 도그메이트와 같은 전문적인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당근마켓을 보면 중고명품을 사고파는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수천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사고파는 프로세스가, 1,000원 짜리 잡화 사고파는 프로세스랑 동일하다. 위의 숨고와 같이 모든 분야에 하나의 통일된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 많이 생기고 있는 중고명품 앱들을 보면, 고가의 명품을 안심하고 사고팔 수 있게 최적의 프로세스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면, 직접 명품을 수거하거나, 진품 여부를 검증해주거나, 또는 위탁 판매해주거나 하는, 모든 걸 다 거래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절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수직적 마켓만을 위한 플랫폼 경험을 제공한다.

시장 규모가 작은 수직적 마켓도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한 반려동물 돌봄 또는 중고명품과 같은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그래서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와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 그리고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수평적으로 더 확장할수록 이 균열은 커지고, 균열이 클수록 기회는 커진다 – 잘 활용하면 좁지만 아주 깊은 시장에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완전공시: 숨고, 당근마켓, 도그메이트는 스트롱 투자사입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1등 마케팅

마케팅에 대한 내 생각을 여러 번 공유하고,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샌 나도 적당하고 적절한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하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내 철학은, “가장 완벽한 제품 그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돈을 따로 쓰지 않아도 저절로 마케팅되고, 고객들이 저절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생각인데, 이 기본적인 프레임은 지금도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생각에 대해서는 모두 다 의견이 다르다. 제품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려면 마케팅에 돈을 엄청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전략을 써서 성장한 사업도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초반에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마케팅하고, 성장해서 투자를 더 받으면, 요샌 TV나 지하철과 같은 전통 미디어에서까지 광고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고, 듣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아서 그런지, 이 마케팅이라는 거에 대해서 항상 자주, 그리고 많이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임홍택 씨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 스타벅스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스타벅스는 국내의 매출 1위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2017년 스타벅스의 한국 매출이 1.3조 원이었다. 재미있는 건, 국내 2위~6위의 5개 커피 회사 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커피의 매출 총합이 8,200억 원이니, 1위 스타벅스 한 곳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점이다. 뭐, 워낙 큰 글로벌 기업이고, 이 분야에서는 자리매김을 확실히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주 쇼킹한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이렇게 국내 1위의 커피전문점으로 성장했지만, 스타벅스의 광고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이걸 보면서 생각해보니, 스타벅스 광고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스타벅스는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마케팅 예산의 대부분을 제품 광고와 프로모션에 쓰지만, 스타벅스는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문화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실은 브랜딩이라는 거 자체는 상당히 모호하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또한 마케팅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되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그래도 스타벅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1등 회사들이 그 업계에서 아주 확고한 1등 자리에 오르려면 어떤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마케팅을 단순히 자본의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핵심 무기인 자본이 떨어지면 바로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 할인, 광고 등…그 이상의 가치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어야지만 부동의 업계 1위가 될 수 있다.

팬데믹과 얼리어답터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Alistair Croll의 을 얼마 전에 읽었는데, 느낀 점이 많았다. 코로나바이러스랑 포스트 팬데믹 세상에 대한 글을 너무 많이 읽어서 조금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글의 내용은 꽤 참신했고, 내 생각을 더 해서 여기서 몇 자 적어 본다.

얼리어답터라는 말을 우린 자주 한다. 특히 내가 일하는 이 테크 분야에는 얼리어답터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 모든 사람이 특정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회사는 대박 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검토를 하는데, 실제로 보면 아주 극소수의 얼리어답터들만 사용하고 있다. 단지,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많아서 이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화상미팅할때 사용하는 Zoom도 실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에는 얼리어답터들이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내 주변에는 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지만 – 다른 나라와 비즈니스를 하는 VC와 창업가 – 실은 그래봤자 화상미팅을 하는 사람 수도 많지 않았고, 특히 대부분 한국의 직장인에게 대면 미팅이 아닌 화상 미팅은 현실과는 괴리감이 상당히 있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줌을 모르는 직장인이 없을 정도로 화상미팅과 비대면 미팅에 대한 괴리감이 줄어들었다. 아니,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이 괴리감 자체가 증발해버렸다. 전에도 내가 말했지만, 5살 꼬마부터 75살 할아버지까지 줌을 사용하고 있는 동안, Zoom은 “얼리어답터 기업인”에서 “메인스트림 일반인”으로 루비콘의 강을 건너버렸다.

얼리어답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Technology Adoption Curve를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이 그림은 많은 분이 봤을 것이다.

Technology Adoption Lifecycle

Technology Adoption Lifecycle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면, 기술 자체를 사랑하는 소수의 얼리어답터가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신기술은 초기 얼리어답터 사이에서만 회자되다가 없어지는데, 그 이후에 존재하는 메인스트림 시장으로의 진입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초기 시장과 메인스트림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캐즘(Chasm)’이라고들 하고, 이 캐즘 이론에 대한 책만 수십 권 나와 있다. 실은 지금까지의 많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하면 이 캐즘을 잘 건너서 그냥 소수의 얼리어답터만 즐기는 놀이를 다수의 얼리머조리티가 사용하는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얼리어답터가 됐다. 위에서 언급한 Zoom이 좋은 사례인데, 갑자기 너도나도 화상/비대면 미팅을 강압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Technology Adoption Curve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화상미팅이라는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단숨에 진입했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큰 변화속에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래를 남들보다 더 빨리 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Alistair는 이 글에서 주장한다. 과거를 계속 그리워하고, 옛날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이 마음을 미래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대체해야지만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망한 블록버스터는 실은 넷플릭스보다 더 일찍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돈이 너무 잘 벌리는 비디오 렌탈 사업(=과거)을 최대한 오랫동안 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트리밍(=미래)에 대한 욕구를 계속 자제하고 미뤘다. 넷플릭스는 이와 반대로 스트리밍이라는 미래를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원했었다. 아마도 넷플릭스가 스트리밍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했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얼리어답터가 되면서 서비스 초창기부터 대박 났을 것이다.

미래를 더 빨리 원하는 이 마음가짐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리고, 대신 앞으로 올 미래를 더 빨리 원하는 욕망을 키우자.

<이미지 출처 = B2U>

불확실성의 계곡

death-valley-1417250_1280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대기업 분들과도 꽤 많이, 그리고 자주 만난다. 우리 펀드에 출자한 대기업도 있지만,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도 대기업이 많이 하고, 협업 기회가 이미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문분야에 있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상의하기 위해서 대기업의 담당자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다.

특히 대기업의 투자 담당하시는 분들이 나한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초기 투자 관련 질문들인데, 어떻게 스트롱은 제대로 된 제품도 없고, 매출도 없는 스타트업에 자신 있게 투자하는지 항상 물어본다. 이런 회사에 투자할 때는 대체 뭘 봐야하는지 본인들은 전혀 모르겠고, 회사 내부 투심위원회를 설득하고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데이터를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항상 궁금해한다. 이 질문은 다른 VC도 나한테 자주 하는데, 특히 전통적으로 시리즈 B와 같은 단계에만 투자하던 큰 VC가 이제 초기 투자를 하기 위해서 밑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들이 많이 물어본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물론, 정답은 아니고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점이다. 투자자가 원하는 모든 지표와 수치를 확보한 후에 투자를 집행하면 우리같이 초기에는 절대로 투자를 못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투자하는 단계에는 이런 수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품 자체도 없고, 그냥 뜬구름같은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도 있다(그런데 점점 더 이런 팀에는 투자를 잘 안 한다. 워낙 탄탄하고 잘 하는 팀이 요새 많아서 굳이 아무것도 없는 팀에 투자할 이유가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결국 초기투자를 하려면, 이런걸 다 감수하고 ‘불확실성’에 투자를 해야만 하는데, 이게 대기업에서 하기엔 정말 쉽지 않고, 재무제표와 수치를 보고, 시장의 성장을 예측해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한 후에 투자하는 시리즈 B VC도 이런 투자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스타트업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성장을 하면 할수록 이 불확실성이 조금씩 제거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정도 수치가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큰 VC나 대기업의 경우, 분명히 이런 불확실성을 최소화한 후에 투자하고싶어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불확실성의 계곡’을 지난 후에 투자하고싶어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재면서, 이런저런 데이터를 요청하면서, 계속 검토를 하고, 또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막상 이 불확실성의 계곡을 무사히 넘긴 후에는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상당히 비싸진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그 어떤 투자자가 보더라도 이 비즈니스는 앞으로 잘 될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VC 관심이 높아지고, 이 과열된 관심은 회사의 가치를 어마어마하게 상승시킨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모두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고, 너무 비싸서 투자를 못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투자할 기회는 영영 없어진다. 이게 내가 자주 보고 느끼는 불확실성의 계곡 주기이다.

다시 최초의 질문인, 어떻게 하면 초기 회사에 투자하는가로 돌아가 보면, 불확실성의 계곡에 잔뜩 존재하는 이 불확실성에 투자를 해야지만 초기 투자를 할 수가 있다. 그래야지만 초기투자를 통한 큰 upside를 누릴 수 있다. 이 계곡을 건너갈수록 불확실성은 제거되고, 그때 투자할수록 나중에 돌아오는 upside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막상 우리한테 좋은 실적을 가져다준 코빗, 또는 앞으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당근마켓이나 클래스101 같은 회사에 투자할 때도 이 불확실성에 우린 투자를 했고, 이제 어느 정도 이 계곡을 벗어나고 있는 당근마켓이나 클래스101에 초창기에 투자할 수 있었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투자하지 않은 VC는, 이젠 이 회사들이 너무 비싸져서 투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모든 VC가 해야 하거나, 또는 모든 초기 VC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내가 아는 주변의 많은 ‘초기’ VC도 불확실성의 계곡을 지난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트롱같은 VC는 홈런을 치기 위한 투자를 한다. 우리는 홈런을 쳐야지만 소수의 성공적인 투자사들의 upside가 다수의 망하는 투자사로 인한 손실을 메꿀 수 있기 때문이다. 3배~5배의 수익에 만족하는 VC라면 이렇게 투자할 필요도 없고, 우리같이 불확실성에 투자할 수도 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차별화된 경험

1589795230991영화 Trolls의 후속편 Trolls World Tour가 개봉 3주 만에 1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한다. 3주 동안 발생한 매출이 전편인 Troll의 5개월 매출보다 많다고 하니, 이는 상당히 놀라운 실적이긴 하다. 그 이유를 자세히 보니, 주로 신작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하고, 한 8주 후에 넷플릭스나 다른 VOD 서비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가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부분의 극장이 문을 닫은 관계로, 이번 후속편은 바로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 출시했는데, 이 전략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실은 대부분의 영화제작사 관계자한테 물어보면, 신작을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동시에 개봉하고 싶지만, 전통적으로 이 시장에서 극장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눈치 보느라 항상 극장 먼저 개봉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만 개봉을 먼저 했는데, 이게 아주 결과가 좋았던 것이다. Trolls World Tour의 제작사인 NBCUniversal은 이걸 계기로 앞으로 모든 영화는 극장과 스트리밍에서 동시에 개봉하겠다고 선언까지 한 상황이고, 아마도 많은 제작사가 비슷한 전략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극장 상영의 경우, 영화제작사가 수익의 50%를 가져가지만, 디지털 스트리밍의 경우 제작사가 80%를 가져가니, 수익구조면으로만 봐도 스트리밍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을 내가 전에 페이스북에 올리니까, 페친들로부터 재미있는 반응이 있었고,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댓글이 달렸다.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개봉날 스트리밍 해 봤거든요. 네플릭스가 리드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으로 앞으로 극장들이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 지더라고요. 학생들과 AMC 에 대해서 잠시 토론해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팝콘 냄새 가득한 극장이 좋다는 밀레니얼들이 아직은 대부분인 것 같긴 합니다.”

“영화관 비즈니스모델은, 영화는 미끼 상품이고 이익의 대부분은 컨세션 즉 팝콘, 음료 등의 매출에서 나오는데… 이번 “실험”을 계기로 영화사 입장에서는 영화관이 없어도 별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도 이 분들 말에 100% 동의한다. “It’s the popcorn, not the movie, stupid.”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장의 비즈니스모델은 영화가 아니라 팝콘과 음료에서 나온다고 하고, 이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겨야한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에도 과연 인구밀도가 높은 극장으로 사람들이 전과 같이 갈까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있다.

실은, 영화관 산업은 이미 수 년 전부터 내림세긴 했다. 집에 아무리 큰 TV가 있어도, 대형화면과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영화관 비즈니스는 항상 잘 될 거라는 이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믿음과 예측과는 달리, 밀레니얼은 더는 집 밖에서 뭔가를 하는걸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거창한 것보단 실용적인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대이고, 이는 인터넷 쇼핑, 유튜브 시청, 음식배달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시청에도 적용된다. 그냥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해서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더 비싼 돈을 내고 그 복잡한 극장에 가서 영화 보는걸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이며, 앞으로 이런 트렌드는 더욱더 두드러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CGV나 메가박스와 같은 영화관은 망할 것인가? 큰 변화와 시도를 하지 않으면, 망하겠지만 그렇다고 극장의 장래가 어둡기만 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극장이 살아남기 위한 포인트는 바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절대로 제공해주지 못 하는 차별화 되고 고급진 경험을 제공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플레이를 잘 하고 있는 곳이 CGV 청담씨네시티라고 생각한다. 여긴 다른 극장보다 조금 더 일찌감치 고급화 전략을 구사했는데, 다른 극장에서는 한 두 관 정도만 있는 특별관과 프리미엄관을 모든 상영관에 적용했다. 극장의 좌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간격을 극대화했고, 다른 극장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설계를 했고,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푹신한 대형 가죽 소파가 설치된 상영관도 있다. 극장에 자주 가 본 분들이라면, 이 푹신한 가죽 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영관마다 테마를 조금씩 차별화해서, 사운드에 따라서 의자가 움직이고 반응하는 음향 시스템을 적용한 관도 있고, 소규모 파티를 위한 프라이빗 극장 대관 또한 가능한 상영관도 있다. 나도 웬만하면 집에서 온디맨드로 영화를 보긴 하는데, 그래도 신작 또는 대작을 보기 위해서는 극장을 선호하고 무조건 이 곳과 같은 high end 극장을 찾게 된다.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를 최대한 편안하게, 오감을 다 살리면서 볼 수 있는 그 경험을 위해서 찾게 된다. 기아가동차나 BMW와 같은 고급 브랜드의 협찬을 받아서 상영관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도는 꽤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좀 비싸다. 일반 극장보단 한 3,000원 정도 비싸고, 4D 상영관은 2만 원이 넘긴 하지만, 관람객은 집에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기꺼이 이 돈을 낸다. 극장의 입장에서도 인당 매출이 더 높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성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이런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다면,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온디맨드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극장만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프라인 상권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른 소매업들도 어떻게 하면 온라인이 제공하지 못하는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고, 고급화 되고 있는 극장을 참고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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