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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자와 뺏는 자

얼마 전에 끝난 올해 US Open 테니스 대회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제 남자나 여자 테니스 세계에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고, 이 현상은 US 오픈 최초의 10대 결승전이 벌어진 여자 테니스에서 극명하게 보였다. 시차도 있고, 한국에서는 선별적으로 경기를 보여줘서 나는 그렇게 많은 경기를 보진 못 했지만, 테니스 경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에 대해 여기서 몇 자 적어본다.

남자 테니스는 5세트 중 3세트를 이기는 사람이 시합을 이긴다. 테니스는 육체적인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정신력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2세트를 먼저 이기면, 마지막 3번째 세트도 가져가서 시합을 이긴다. 그런데 마지막 3세트를 이기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떤 선수는 2세트를 가져간 후에도 소위 말하는 ‘닥공’ 전략으로 계속 공격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진 상대방으로부터 마지막 세트를 이겨서 시합을 이긴다. 반면에, 어떤 선수는 2세트를 가져간 후에는, 지금까지 잘 한 시합을 지키고, 더 이상 점수를 까먹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이 무너지는걸 유도하는 방어적인 전략을 취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테니스는 멘탈 게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2세트를 뺏기면, 마지막 세트도 뺏기기 때문에 이렇게 시합을 지키기 위한 플레이를 해도 주로 이기긴 한다.

하지만, 이번엔 아쉽게 남자 결승에서 패한 테니스 기계 노박 조코비치 같은 선수는 2세트를 뒤지고 있어도, 체력과 정신력이 워낙 강해서 충분히 컴백해서 오히려 3-2로 시합을 이길 수 있고, 이런 경우를 정말 많이 보긴 했다. 그래서 나는 점수와는 상관없이 테니스든 다른 운동이든, 시합이 끝날 때까진 무조건 공격하고, 지키기 위한 플레이가 아니라 뺏기 위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업에서도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다. 나는 일 때문에 대기업 경영진과 오너들을 가끔 만나는데, 이분들의 성향도 다양하다. 어떤 분들은 이미 할아버지 대 부터 이루어놓은 눈부신 성과가 있기 때문에, 이걸 지키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신중하고 – 내가 보기엔 가끔 너무 신중하기도 하다 – 회사가 원래 하던 사업영역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분들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더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남이 이루어 놓은걸 빼앗기 위한 공격을 하면 더 성장하고 발전할 텐데,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걸 지키려는 방어만 하는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런 지키기 위한 전략은 먹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쫓아오고, 뺏으려는 경쟁사들이 워낙 무섭게 달려들기 때문에, 잃을게 많은 기업의 지키는 전략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걸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전략은 바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뺏는 전략이다.

이와 반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고,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고, 더 좋고 더 큰 비즈니스가 보이면 이를 뺏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욕심 많은 경영진과 오너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본인들이 이루어 놓은 건, 한 순간에 빼앗길 수 있다는걸 잘 알고, 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가지면서 사업을 한다. 그리고 이걸 지키려고 사업을 하는 건 100% 지는 전략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공격한다. 뺏는 자들보단 지키는 자들이 잃을게 더 많은데, 잃을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항상 지는 게 경쟁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닥공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1인자들이 가진 걸 계속 빼앗으려 한다. 나는 지키는 것 보다 뺏는 전략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하는걸 훨씬 더 선호한다.

나는 운이 좋다. 우리가 투자하고 같이 일 하는 분들 모두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다. 솔직히, 이들은 지킬게 없기 때문에, 100% 빼앗기 위해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다.

안 할 이유 vs. 해야 할 이유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 더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뭘 더 안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라는 말을 나는 자주 강조한다. 세월이 바뀌었고, 기술도 좋아졌고, 창업가들도 더 똑똑해져서, 여러 가지를 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고,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대충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고, 한 가지만 남들보다 정말 정말 잘해야지만 그나마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즉, 땅콩버터를 얇게 바르는 스타일의 사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오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만나는 많은 팀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한다. 회사 자료를 보거나, 미팅을 하면, 뭔가 내용은 엄청 많은데 결국 이 회사가 하는 게 뭔지 잘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예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이커머스를 전부 다 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있고, B2C, B2B, B2G를 다 하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회사가 있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차피 다 동일한 거고, 포장만 바꾸면 된다는 내용을 항상 강조하고, 두 번째로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걸 우리가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안 할 이유가 없으면, 무조건 하자라는 태도로 사업을 해서 잘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안 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면, 없는 자원을 자꾸 쪼개려고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면,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을 또 분산해야 하는데, 이러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확률 또한 분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걸 하려는 생각 뒤에는 본인도 정확히 뭘 해야 할지 확실치 않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하다가 하나만 걸리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 무의식중에 있다.

사업의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다면, 안 할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여러 번 물어야 한다. “이걸 지금 하는 게 우리에게 맞는 건가?” , “우리가 이걸 지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면, 그땐 이걸 하는 게 맞다.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면 자원을 최적화하고, 최적화한 자원을 집중한다. 이게 초기 스타트업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 이하일 때 적용된다. 규모가 커지고, 사람도 많아지만, 위에서 말 한 안 할 이유가 할 이유가 되고, 이 시점이 오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자원이 있기 때문에 다 해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다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안 할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가 중요하다.

유연성과 준비성

7월, 8월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난 1년 반 동안 거리 두기 단계가 강화됐다가 완화되는 걸 몇 번 경험했고, 이제 위기 대응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누구나 다 힘들고 결국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우리 투자사들도 다시 한번 명암이 갈리는 걸 나도 목격하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오히려 더 잘되는 곳들이 많다. 기업용 B2B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잘 된다. 많은 기업이 다시 재택근무 체제로 돌아가면서, 원격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이런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대면이 사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즈니스는 아무리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도, 이렇게 4단계가 발표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냥 매출이나 실적이 줄어드는 걸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우린 현재 어려운 상황의 투자사 대표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이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작년 3월 코비드 19가 시작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나도 그동안 여러 가지를 경험했고, 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나는 상황을 가장 보수적으로 보고, 경비는 즉시 절감하라고 우리 투자사에 조언했다. 불필요한 경비는 당연히 절감해야겠지만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필요한 경비조차 절감하라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의 비용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매출과 직접 연관이 없는 분들은 해고하는 게 이 불확실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당시에 내가 쓴 글을 보면 이런 내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내 말을 듣고 한 귀로 흘린 대표들도 있고 – 실은, 지금 와서 보면, 이분들이 가장 올바른 결정을 했다 –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긴 분들도 있다.
어떤 분들은 즉시 인력을 해고하고 비용을 줄였다. 어떤 팀은 참 힘들게 사람을 채용했는데, 이분들을 다시 해고했고, 어떤 팀은 인력의 80%를 해고하기도 했다. 비용은 많이 줄여서 runway는 꽤 늘어났지만, 더 이상의 개발이나 마케팅은 못 하고 그냥 오래 버티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사람은 해고하지 않았지만, 비즈니스를 잠시 피보팅 했고, 이 새로운 걸 하는데 기존 인력을 재배치했다. 예를 들면, 주 비즈니스 모델이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뭔가를 해야 하는 거였다면, 어차피 이걸 못 하니까, 이 모델과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는 B2B 비즈니스를 하다가 B2C로 피보팅을 하기도 했다. 인력이 그대로여서 비용구조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그래도 뭔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걸 해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둘 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이렇게 버티면 불확실성의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최소 2년은 전 세계가 shut down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상황이 빨리 종료됐다. 그동안 새로운 변이도 나오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도 좋아졌다 심해지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사람들도 이 패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비즈니스 세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우리뿐만이 아니라, 많은 투자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될 때마다 투자사들이 매출 기록을 경신했을 것이다.

그러자 사람을 해고했던 회사는 다시 사람을 채용하기 시작했지만, 해고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다른 사업으로 피보팅 했던 회사도 원래 비즈니스로 급하게 유턴을 했지만,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준비하고 감을 잡는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소위 말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그 시장의 1등 또는 2등이던 회사가, 사람을 해고하거나 다른 비즈니스로 피보팅을 하는 동안에 비슷한 사업을 시작한 신규 스타트업이 나왔다. 시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원래 사용하던 서비스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회사가 다른데 집중했기 때문에 서비스가 더는 맘에 들지 않자, 다른 대안을 찾던 고객들이 새로운 서비스로 갈아탔다. 그러면서 시장의 판도가 금세 바뀌는 걸 우린 보기도 했다.

다시 4단계이다. 이번에는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위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그냥 돈 아끼면서 버틸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사람을 해고하거나 다른 사업을 할지, 심각하게 생각해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조처를 했는데, 상황이 너무 빨리 회복되면 다시 사람 채용하는 것도 힘들고, 본업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에는 그냥 조금만 참고 버텨보라고 한다. 하지만, 항상 유연하게, 그리고 준비된 자세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라고 한다. 이게 맞을지 틀릴지는, 시간이 흐르면 또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브랜드 vs. 양적 플랫폼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에 투자를 꽤 많이 하고 있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한데, 에너지바, 자동차 바디킷, 화장품, 서핑 웻수트 등의 자체 제품과 브랜드를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고, 쿠팡과 같이 남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플랫폼 플레이를 하는 이커머스 회사도 있다.

겉으로 보면, 이 두 부류의 회사가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고객에게 바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회사이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생기면서 성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점이 올 것이고, 그 순간이 오면, 조금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해야 한다.

일단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회사의 장점은 말 그대로 자체 브랜드가 있다는 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플레이를 잘해서 고객의 머리에 남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굉장히 파워풀한 사업을 만들 수 있다. 사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이때 강력한 브랜드는 핵폭탄급 무기가 될 수 있다. 고객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를 만들어 놓으면, 이후에 만드는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게 상당히 수월해지고, 마케팅 비용은 내려가고 효율은 올라간다. 그리고 이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가면, 웬만한 경쟁사가 등장해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체 브랜드로만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규모의 성장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니,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운 좋게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단일 제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계속 다양한 SKU를 만들어야 하고, 자기 이름으로 된 브랜드이기 때문에 모든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제조해야한다. 예를 들면, 자기 브랜드로 화장품을 만드는 이커머스 회사면,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을 지속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고, 사업 초반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는 될만한 소수의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견고한 브랜드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조금씩 브랜딩은 되지만, 외형적인 매출 성장은 더디고, 여기서 많은 창업가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투자를 계속 받아야하는데, 이 정도 성장으로는 좋은 조건에 투자를 못 받기 때문이다.

남의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회사들은 약간 다른 고민을 한다. 똑같은 화장품을 예를 들어보면, 시장에는 수백만 가지의 화장품 SKU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제품들을 모두 플랫폼 안으로 입점시키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외형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수수료이기 때문에, 1,000억 원의 거래가 발생해도 회사에 떨어지는 실제 매출은 5% 미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의 제품을 가지고 하는 플랫폼 사업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나보다 더 돈이 많으면, 더 많은 남의 제품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태워서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플랫폼은 명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힘들다. 종합 상사같이 워낙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머리에 남을만한 확고한 브랜딩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이게 맞고, 저게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비즈니스에는 정답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내부, 외부 상황에 맞춰서 유연한 전략을 기반으로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자체 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폭발적인 양적 확장을 해야 하는데, 계속 자기만의 강력한 브랜드로 이 성장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계속 자체 브랜드를 고집할 것인지, 플랫폼 전략도 고려할 것인지, 많이들 고민한다. 반대로, 플랫폼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양적 확장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걸 깨달을 것이다. 마진율도 높고,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나만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 이 또한 많이들 고민한다.

물론, 잘 버티면서 이 순간에 좋은 결정을 한다면, 자체 브랜드만으로 엄청난 성장을 만들 수 있고, 플랫폼 자체가 너무 견고해져서, 이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가 있다.

내실과 외실

우린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 있는 정말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아무리 같은 분야에 있는 회사라도,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완전히 다른 회사이고, 창업가마다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정말 모든 창업가와 회사는 one of a kind이다.

이렇게 다양한 창업가들을 다양한 방법과 각도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 성장과 관련해서 회사의 방향을 정하는 면에서 보면, 내실을 중요시하는 창업가와 외실을 중요시하는 창업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내실에 집중하는 파운더는 사업을 하면서 가장 우선시 하는 건, 매출이 발생하고, 손실이 나지 않는 것이다. 돈 버는 거에 집착한다고 느낄 만큼, 절대로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는 분들이다. 스타트업 분야에 팽배해있고, 실은 우리 같은 투자자는 너무 익숙한, 일단 손실을 보더라도,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을 획득하고, unit economics는 잘 안 맞지만, 좋은 경험을 제공해서 플랫폼에 고객을 락인하는 사업 방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이분들에게 사업은, 시작부터 돈을 벌어야 하고, 마이너스만은 절대로 나면 안 되고, CAC와 LTV는 그냥 말장난이다. 회사에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을 가져다줄 LTV가 크다고 해서,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CAC를 부담하는 건, 사업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런 스타일의 대표님들을 나도 많이 알고 있다.

항상 그렇지 않지만, 이 스타일의 대표들은 과거에 사업을 했는데, 잘 안 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다. 잘 안 된 이유를 보면, 돈을 너무 막 썼고, 예산 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이 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다시 사업을 할 때는 돈 관리만은 철저히 하고, 아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분들이다.

외실에 집중하는 파운더는 이와는 반대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초반에는 돈을 써서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적 성장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성장과 규모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손실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LTV가 충분히 크다고 판단되면, 단기적으로 높은 CAC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돈을 까먹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데, 어떻게 계속 자금을 마련하는가? 이 단계에서는 투자금이다. 돈을 벌진 못 하고, 엄청난 마이너스가 나도, 성장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면, 이 비즈니스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시장에 충분히 있다. 성장을 최우선시하는 이런 스타트업의 성장은 자연적인 성장이라기보단, 투자자들의 스폰서를 받는 성장이다. 이렇게 돈을 써서 고객을 확보하고 락인시키고, 이들에게 계속 재방문하고 재구매할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결국엔 경쟁을 이기고 시장을 선점하는 꿈을 꾸면서 비즈니스를 한다.

이 글을 읽어보면, 내실을 중요시하는 비즈니스는 성공하고, 외실을 중요시하는 비즈니스는 망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 한국의 유니콘 회사들은 오히려 내실보단 외실을 강조하는 창업가들이 만들었고, 오랜 시간 동안 성장에 집착한 결과로 결국엔 엄청난 해자(垓字)를 만든 좋은 사례들이 많다.

재미있는 건, 이 스타일의 대표들 또한 과거에 사업을 했는데, 잘 안 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그리고 이들의 잘 안됐던 이유는 내실을 중요시한 대표의 망한 이유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돈을 너무 안 썼고, 외적 성장보단 내적 성장만을 과거에 너무 중요시했고, 그 결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못 만들었기 때문에 경쟁사에 완전히 시장을 내줬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다시 사업을 할 때는 돈 버는 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일단 돈을 많이 써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분들이다.

내실을 중요시하는 파운더를 약간 비하하면 장사꾼이고, 외실을 중요시하는 파운더를 약간 미화하면 사업가이다. 나는 두 부류의 파운더를 너무 많이, 자주 본다. 그런데 이 비즈니스 세계에는 공식과 법칙은 없어서, 어떤 파운더가 더 성공하는가는 그때마다 다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성장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성장만큼 중요한건 없지만, 그렇다고 다 쓰면 또 투자받으면 될 거라는 대책 없는 태도로 돈을 펑펑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외적 성장에 대한 갈망, 하지만, 그러면서 돈을 어느 정도 벌어야겠다는 내적 탄탄함의 의지가 잘 혼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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