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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search-1756278_640나는 전화 통화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특히 남이 나한테 전화하는 게 정말 싫다. 그리고 나도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문자나 이메일보다 전화하는 걸 가장 선호하는 상황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뭔가를 사용하다가 잘 안 되거나 문제가 발생해서, 급하게 당장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궁금한 게 있거나, 아니면 뭐가 잘 작동하지 않더라도,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 수 있는 고객 응대용 전화번호가 아예 제공되지 않거나 찾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냥 바로 전화를 거는 습관이 생겼다. 웬만한 서비스는 고객 응대 전화번호를 제공하고, 회사 웹사이트 하단에 보면 고객이 전화할 수 있는 번호가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전화통화하는게 싫어도, 내가 아쉽고 답답하고,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문의하면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그냥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곤 한다. 어떤 회사는 기계 ARS를 몇 단계 거쳐야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실제 사람과 연결이 돼서 불만을 토론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편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이게 악몽이다. 한두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면 상관없지만, 하루에 수천 명, 수 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라면,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 올 수도 있고,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회사의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직접 당해보거나, 아니면 직접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런 고객서비스 관련 통화는 서로에게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고객서비스를 하는 인력의 이탈과 교체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작은 스타트업은 대표이사부터 디자이너까지, 고객의 – 또는, 고객이 아닌 사람들 – 전화응대를 하는 데 업무시간의 절반을 쓰는데, 정말 힘들어한다.

그냥 CS 전화번호를 제공하지 말고, 미국 회사들처럼 이메일로만 문의하게 하거나, 아니면 굉장히 자세하고 잘 만들어진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 자주묻는질문)를 제공해보라고 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대표님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전화번호 없으면 엄청 화내요.” , “한국 사람들은 이메일을 안 해요.” , 뭐 이런 말들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로 근거 없는 말들이고, 회사에 오히려 해가 되는 고정관념인 거 같다. 한국 사람들만 급한 게 아니고, 화가 많이 나서 당장 뭔가 필요한 고객은 누구나 다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이건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회사에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이들에게 제공해주면 회사 차원에서는 – 특히, 자원이 부족한 작은 스타트업 –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서 반대편에 있는 실제 사람과 통화를 해서 본인이 원하는 걸 즉각적으로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한번 익숙해지면, 이보다 더 불편한 카톡이나 이메일이나 FAQ를 통한 문제해결 방법을 대안으로 제안받으면 당연히 싫어하고 욕할 것이다.

미국 스타트업은 아주 잘 만든 FAQ를 제공해주고, 사용자들도 이 방법에 꽤 익숙해져 있는데, 정말 잘 만든 FAQ는 전화를 걸어서 누구랑 통화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워낙 많은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내가 최근에 FAQ를 가장 잘 사용했던 제품/서비스는 미국의 Coinbase이다. 돈과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라서 실은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궁금한 점도 정말 많지만, 코인베이스는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고객의 질문을 잘 취합해서 상당히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FAQ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해결책을 즉각 즉각 구할 수 있었다. FAQ에 내가 원하는 답이 없으면 support 이메일을 통해서 문의하면, 주로 48시간 내로 답이 온다. 한국 사람은 급해서 48시간 못 기다린다고 많은 대표들이 나한테 말을 하지만, 정말로 급하다면, 48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이건 고객을 우리가 어떻게 처음부터 훈련하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서비스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처음부터 고객이 회사에 직접 전화할 수 있는 채널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대신에 아주 포괄적이고 잘 정리된 FAQ를 제공하라고 나는 조언한다. 카톡을 통한 문의도 가급적이면 업무에 방해가 되니까 초반에는 아예 제공하지 않는 게 좋다. FAQ와 고객지원 이메일 정도만 제공하는 게 가장 좋다. 이미 070 번호나 1688 번호를 통해서 고객이 회사와 직접 통화할 방법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서서히 또는 즉각 이 번호를 없애고 FAQ를 잘 만들어서 제공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처음에는 고객 불만이 발생하겠지만, 금방 잊히고 고객들도 익숙해진다. 실제로 우리 투자사 중 이렇게 아예 고객 응대 전화번호를 없앤 회사들이 있는데, 회사의 실적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실은, 더 좋아진다. 대신, FAQ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으면,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허접한 FAQ를 제공할 바에는 그냥 전화번호를 제공해서 몸으로 때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다.

물론, 나중에 회사가 엄청나게 커지면 별도의 CS 조직을 내부 또는 외부에 두면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성장과 배움의 기울기

board-1044088_640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그 KPI를 매주 5%씩 성장할 수 있다면, 매달 20% 성장할 수 있고, 1년 동안 9배 성장할 수 있고, 이걸 해마다 반복할 수 있다면 투자자들이 제발 투자하게 해달라고 애걸할 것이라고.

많은 유니콘 회사들이 이렇게 성장한다. 이렇게 창업 초기 3년~5년 안에 말도 안 되는 미친 성장을 하는 회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조금은 걱정되기도 한다. 너무 높이 날면, 언젠가는 내려올 수밖에 없고, 요새 이 동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위워크와 같은 유니콘들의 기업가치가 인정사정없이 깎이는걸 보면 –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 꼭 미친 성장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 자체는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이자, 투자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나도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우리 투자사 중 다른 회사들보다 비즈니스를 잘하는 대표들을 보면, 그 방법이나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기울기가 일정한 의도된 성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3개월 동안 300% 성장하기보단, 이걸 의도적으로 12개월 동안 300% 성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일단 무조건 성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걱정하자가 대부분 창업가가 가진 태도이고, 굳이 3개월에 300% 성장할 수 있는 걸, 왜 일부로 제한을 하느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일차원적으로 보면, 이게 맞다. 나도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할 때 성장을 의도적으로 컨트롤 하자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무조건 성장할 수 있을 때 성장하자는 전략이었다(그래도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걸 자주 경험했다. 일단 단기간 내에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창업자도 왜 회사가 그렇게 많이 성장했는지 원인 파악을 하기가 힘들다. 그럴 시간도 없고, 원인 파악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성장을 하니까,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위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행복한 고민이긴 한데, 나중에 성장이 멈춘 후에, 과거의 성장을 반복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성장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런 성장 사이클을 반복하지 못하는걸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적절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적절한 인력이 보강되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너무 빨리, 그리고 신중하지 못하게 사람을 뽑는데, 이게 항상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걸 봤다. 어떤 성장을 할 때,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지만, 미래에도 계속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데, 이걸 생각할 시간도 없고, 고민할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성장의 기울기와 배움의 기울기가 일치해야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회사 내부에 만들 수 있다. 성장의 기울기가 너무 가파르면, 배움이 그 기울기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배움의 기울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만큼만 성장의 기울기를 조정해보라고 권장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또 하나 나오는 게 성장의 공식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회사의 성장을 공식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성장을 제한하거나, 또는 더 가속할 수 있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또는 주위에 내가 아는 회사 중, 정말 비즈니스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은 모두 이런 성장의 공식을 어느 정도 내재화하고 있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보다 성장이 더디면, 이 중 몇 개의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촉진한다. 이와 반대로, 회사 내부 배움의 기울기보다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 싶으면, 또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늦춘다. 나는 이런 걸 실제로 봤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창업가에게 이런 성장의 공식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물론, 이런 성장과 배움의 기울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내가 아는 많은 VC는 초기에는 무조건 미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달 업다운이 심하더라도 일단은 성장할 수 있는 만큼 무조건 성장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니콘 회사는 없다고 한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투자자 돈으로 유니콘 되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지는 그 이후에 고민해보자는 식의 생각과 태도는 요새 참 위험천만하다고 매일 느끼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플랫폼 의존도

mobile-phone-1917737_1280전에 어느 기관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보니까, 전 세계 VC 투자금의 40%가 페이스북과 구글에 그대로 흘러 들어간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VC들이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서비스나 모바일앱을 마케팅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이나 구글에서 광고하는데, 이렇게 투자금이 고스란히 페이스북과 구글에 마케팅 예산으로 집행된다는 내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맞는 말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대부분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한국 회사는 네이버에서 마케팅하는데, 여기에 돈이 상당히 많이 집행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페이스북과 구글이 정말로 엄청난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우리도 이런 회사에 언젠가는 투자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다. 반면에, 스타트업이 목숨을 걸고 만들고 있는 제품을 시장에 마케팅하기 위해서 소수의 대형 플랫폼에 전면 의지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걱정도 했다.

실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수만, 수십만, 또는 수백만의 잠재 고객에게 아주 빠르고 쉽게 마케팅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회사는 – 어떤 걸 하든 상관없다. 모든 회사가. – 마케팅의 기본으로 페이스북 기업 페이지를 만들고, 여기서부터 마케팅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에서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고객한테 우리 회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상당히 돈을 많이 써야 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소셜 미디어는 회사와 잠재 고객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복잡한 알고리즘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 밑에는 간단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고, 돈을 쓰지 않으면 공급 자체를 제한해버린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오가닉 도달(organic reach)은 우리 회사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라이크하고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능력인데, 페이스북은 이 오가닉리치를 평균 5% 이하로 제한한다. 즉, 우리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5,000명 이고, 24시간 한정 특별 할인 이벤트를 포스팅하면, 이 할인 이벤트 내용은 팔로워 250명의 타임라인에만 노출된다는 의미다. 이 이상의 팔로워에게 노출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너무 많은 회사가 비슷한 고객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경쟁하니까, 광고 단가가 계속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정말 작은 예산으로 마케팅을 하는데, 이런 회사에는 페이스북이 어쩌면 그렇게 좋은 마케팅 플랫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이 나쁜 마케팅 플랫폼이라는 말은 아니다. 비싸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글로벌 잠재 고객들을 정교하게 타게팅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은 페이스북만 한 게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100%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의존하고 있다면, 마케팅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검색, 소셜미디어, 블로그, 이메일, 찌라시, 전화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케팅 채널을 분산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최고의 마케팅은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제품 자체가 마케팅 전략이 될 것이고, 여기에다가 조금만 돈을 쓰면,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기존투자자가 주는 총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당장 매출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몇 가지 예외 케이스를 제외하면,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안 받거나, 못 받는 경우도 너무 많지만, 받기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투자를 여러 번 받아야 할 것이다. 요새 내가 자주 경험하는 초보 창업가들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저지르는 실수는 기존 투자자들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투자를 받은 회사고, 이미 주주명부에 투자자들이 있다면,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본격적인 펀드레이징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상의하고, 가장 먼저 돈 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신규 투자자가 아니라 기존 투자자라는 말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친하지 않은 VC한테, “스트롱 투자사 A사 요새 라운드 돌고 있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쪽팔리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대표한테 연락하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본인들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스트롱이나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당연히 관심 없고 투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사는 원하는 금액을 추가 투자받지 못했다. 실적도 좋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펀드레이징 접근 방법이 좀 틀렸던 거 같다. 관심 있는 VC도 있었다고 들었고, 내가 이분들과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이미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있는데, 왜 이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주들은 추가 투자를 하지 않을까? 대표 말대로 그렇게 회사가 좋으면, 기존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커밋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 있으면, 그리고 펀드레이징 시점과 조건과 같은 기본적인 계획이 만들어지면, 기존 투자자들과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만약에 10억 원의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라면, 많든 적든, 어느 정도는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미리 확보해서, ‘총알을 어느 정도 장전’하고 전쟁터에 나가서 새로운 VC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전략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 투자자들이 원하는 금액을 모두 투자해서 굳이 새로운 투자자들 만나서 시간 낭비하는 걸 대폭 줄여주는 경우도 있다(전문 용어로는 inside round 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 한 전체 10억 원을 기존 투자자들이 하진 않더라도, 한 절반인 5억 원 정도만 기존 투자자들이 재투자해 준다고 하면, 이 창업가의 펀드레이징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이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존투자자들이 재투자한다는 의미는, 금액과는 상관없이 이 회사를 잘 모르는 신규 투자자들한테 큰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투자자한테도 믿음을 줄 수 있지만, 기존 투자자들이 일부 보태준 총알로 총을 장전해서 나가면 싸우는 사람한테도 자신감이 많이 생긴다.

간혹, 기존 투자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분들한테 재투자를 아예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대부분 투자자는 우선매수권과 pro-rata 권리 등이 있어서, 어쨌든 무조건 먼저 물어보는 게 맞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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