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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의 허상

이 세상을 세상답게 돌아가게 하는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과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교류하면서 이 세상은 돌아가고, 더 좋은 세상으로 발전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만 선택하면, 그건 당연히 사람이다. 대표이사는 시간의 50%는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나머지 50%는 있는 사람들이 퇴사하지 않도록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내가 채용하는 사람이 우리 회사 그 자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면접에 많은 공을 들인다. 면접의 방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면접의 횟수와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외국계 대기업의 시니어 매니저 레벨의 직책에 지원했는데, 6개월 동안 12번의 면접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판에 떨어졌다. 면접의 종류도 코딩하기, 케이스 풀기부터 술 마시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세분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회사에 가장 적합한 인재 채용을 위한 면접 매뉴얼을 개발하기 위해 수억 원의 돈을 쓰면서 외부 컨설팅까지 받는다.

그래서 우린 이런 고도화 된 면접 방법을 통해서 정말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봤을 땐, 아닌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보면,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무는 정말 못 했던 적도 있고, 혼자서는 일을 잘 하는데 팀원들과 같이 했을 땐 팀워크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 주변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면접하고 채용하는 매니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면접을 20번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일을 잘하는진 알 수 없고, 실제로 일을 잘해도, 우리 회사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진 알 수가 없다.

이게 면접의 현실이다. 면접은 단기간 안에 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고 – 입시 학원처럼, 면접 학원도 있다 – 일은 못 해도 말발만 살아 있으면, 면접에선 100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채용해야 할까? 내가 아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일단 내가 잘 아는 사람만 채용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친구, 대학교 룸메이트, 동아리 선후배, 직장 동료나 선후배가 좋은 사례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낸 분들이 공동 창업가나 동료로 일하는 곳들이 큰 불협화음 없이 잘하는 걸 자주 경험한다. 하지만, 사람의 네트워크라는 게 한계가 있고, 회사가 성장하면 잘 아는 사람의 인재풀은 바닥나기 때문에 이 방법은 회사 규모가 작을 때만 작동한다.

두 번째는,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갖고, 이후에 정식 채용을 결정하는 것이다.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제 일을 잘하는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2개월 정도의 수습은 약간 애매하다. 2개월 정도는 일을 잘하는 척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6개월을 연기하긴 어렵다. 6개월 같이 일해보면, 이분이 정말 일을 잘하는 분인지 충분히 파악된다. 또한, 일을 잘하는 분도 본인이 회사와 케미가 맞는지 판단해 봐야 하므로 6개월 정도의 수습 기간을 권장한다. 이런 제안에 격하게 반대하는 후보라면, 그리고 그 이유로 자존심과 모욕감 등을 언급하면 이건 적신호다.

마지막 방법은, 채용보단 보상에 대한 방법이다. 내가 전에 이 글에서 이야기했는데, 면접을 기반으로 직책과 연봉을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고 위험한 방법이기 때문에, 입사 시 ‘one 직책 one 연봉’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컴공과를 막 졸업한 25살 엔지니어든, 15년 개발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때 직책이 둘 다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이 두 분의 입사 연봉은 무조건 동일하게 가는 전략이다. 같은 직책이라도 과거의 경험이 많으면 연봉이 더 높고, 특히나 면접 때 말을 잘하면 연봉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게 현대 사회의 채용 전략인데, 나는 이건 완전히 틀렸다고 본다. 경력이 많다고 그 일을 잘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정말 많이 했다 – 면접 때 말발에서 이기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입사할 땐 모두 다 연봉을 동일하게 가져가지만, 일 년 후 업무 평가에서 실제로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연봉을 드라마틱하게 인상해 주는 방법이 좋은 사람을 계속 회사에 남게 하고, 아닌 사람은 퇴사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아니지만, 위 3개의 방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피곤한 면접 횟수는 줄일 수 있고, 더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실은, 어쩌면 한국은 사람을 해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내보낼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을 더 중시하고, 더 신중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직된 해고 정책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면접하고, 다양한 채용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좋은 사람이란 일을 잘하는 사람인데,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또 채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우린 어쩔 땐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회사 자료를 검토한다. 관심이 가는 사업은 조금 더 자세히 보고, 그렇지 않은 사업의 자료는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보는 부분 – 예를 들면, 창업팀의 이력이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있는 페이지 – 외엔 빠르게 스캔하고 스크리닝하는 편이다. 모든 회사는 다르고, 모든 비즈니스는 다르므로, 자료의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웬만한 자료는 공통으로 3년 또는 5년 치 매출 추정이 들어간 페이지가 한두 개 있다.

솔직히 우린 이 예상 매출 슬라이드는 잘 안 본다. 어떤 대표들은 이 슬라이드의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측치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상당히 복잡한 엑셀을 돌리거나, 아주 무거운 number crunching을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초기 스타트업의 미래의 매출 수치는 거의 90% 정도 디스카운트 하거나, 아예 무시해도 된다. 솔직히 다음 달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사업인데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억지이고, 아무리 정교하게 모델링을 해도 대부분의 수치는 목표와 말도 안 되게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대부분 첫 2년은 큰 성장이 없고 손실이 많이 발생하다가 갑자기 3년 차부터 매출이 20배씩 뛰면서 흑자가 발생하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대표들도 이런 그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들은 속으로 민망한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시간 낭비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아직 1,000만 원의 매출도 못 하는 회사가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건 실용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숫자를 시뮬레이션해 봤다는 건, 대표가 회사의 전략, 비즈니스모델, 고객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는 의미라서 이 사실 자체는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주긴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계산해 본 숫자를 투자자들이 믿는가에 대해선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도 투자자지만, 3개년 프로젝션 등의 수치가 보이는 슬라이드를 아예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미래의 목표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할 때, 이 목표가 투자금이 있어야지 달성 가능한지, 아니면 투자금 없이 현재 자원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펀딩을 돌 때, 그 투자금을 받았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자료에 기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올해는 30억을 하겠다는 약간 비현실적인 추정치를 제시하는 대표들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펀딩하고 있는 10억 원의 투자를 받으면 사람도 채용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도 더 하고 해서 목표 30억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말이다.

이분들에게 그럼 이번에 10억 원보다 적은 5억 원만 투자받거나, 아니면 아예 투자를 못 받으면 매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생각해 봤다면 훨씬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목표 매출의 절반도 못 하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때부턴 이 창업가와 회사를 약간의 의심과 디스카운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모든 VC를 대변해서 말할 순 없지만, 회사 자료에 3년~5년 매출 추정치를 넣으려면, 기본적으로 외부 투자 없이 현재의 인력과 돈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또는, 아주 명확하게, 얼마의 투자를 받으면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수치와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확실히 구분해 주면 좋겠다.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고, 투자 없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을 계산했는데, 이게 너무 초라해 보인다면, 그냥 우린 현재로서는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형편없고 초라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VC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서, 뭘 어떻게 표시하더라도 결국엔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할 것이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번 강조했듯이, 올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현재 우리가 가진 돈, 인력, 캐파를 150% 돌렸을 때 달성 가능한,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투자를 받았을 때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목표도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돈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은 후에 매출이 역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미 내가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회사 상황이 안 좋아서 대규모 감원을 한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 두 배 성장한 경우도 있다.

우리 투자사에 내가 항상 조언하는 건, 투자자들에게 약속하는 목표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산정하고, 이 보수적인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사업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underpromise; overdeliver들의 대가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잘할까? 이 세상은 허세와 뻥카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더 강해 보이고, 어려운 상황을 얼렁뚱땅 넘어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overpromise 하는데, 결국 이들은 모두 다 underdeliver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들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만 더. 책 읽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 좋아하는 대표들이 사랑하는 전사 OKR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사 목표를 정할 땐, 최소 90%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너무 많은 회사들이 1년 내내 60% 도 달성 못 하는 비현실적으로 빡센 목표를 설정한다. 이렇게 overpromise; underdeliver 하려면 뭐 하러 전사 워크숍을 가고, 바쁜 임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가?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사업이든, 인생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세상의 모든 큰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한인이 창업했고, 창업 5년 만에 한화로 거의 1조 원에 인수된 화장품 회사 Hero Cosmetics(Hero)의 팟캐스트를 얼마 전에 흥미롭게 들었다. 창업가들의 이야기는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항상 배울 점들이 많아서 재미있고, 한국에 사는 분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여드름 패치 하나로 시작해서 1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Church and Dwight에 매각한 이야기도 웬만한 케이드라마보다 더 흥미로웠다.

이 팟캐스트를 며칠에 걸쳐 아침에 운동하면서 계속 들었는데, 그 기간 우리 투자사 대표와 미팅하면서, 이분이 하는 사업은 화장품 분야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Hero가 고민하고 거쳐 온 과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고민의 공통점들을 찾고 해답도 같이 찾는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Hero는 Mighty Patch라는 여드름 패치 제품 하나로 시작했고, 한국에서 만든 이 제품을 온, 오프라인 상점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지나서 이 카테고리에서는 거의 1등 제품이 됐다. 1등 제품이긴 했지만, 없던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 시장 자체가 작았고, 투자도 받고 사람도 더 고용하기 위해서 회사는 계속 성장을 해야 했다. 여기서 Hero의 창업가들은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 여드름 패치보다 훨씬 큰 시장인 일반 화장품 분야로 확장하는 고민을 했다. 어차피 큰 카테고리로 보면 모두 다 화장품과 뷰티 분야였고, 다른 화장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제조사 소싱도 용이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일반 화장품/뷰티 쪽으로 확장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성장 공식이라서 여드름 패치 판매 시작 1년 후에 이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일단 여드름 패치 분야에만 당분간 집중하는 것이었다. 여드름 패치 분야에서 더 많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판매해서 아예 다른 경쟁사들이 넘보지도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1등이 되고, 미국에서 말하는 소위 category dominator가 된 후에 다른 화장품 분야로 확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같은 여드름 패치를 다양한 색상, 다양한 용도, 그리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서 SKU를 다각화했고, 판매 채널 또한 온, 오프라인 모든 곳으로 확장했다. 이렇게 한 결과, 여드름 패치로만 연 매출 수백억 원대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 정도의 매출을 하니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1등이 됐고, 이 category dominator 해자(垓字)를 구축한 후에 다른 화장품 분야로 조금은 더 수월하고 편하게 진출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아마도 꽤 많은 창업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아주 힘들게 한 분야를 열심히 팠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반을 닦아 놓으니, 이 분야에서 돈을 내는 고객도 생기고, 아주 빠르진 않지만, 고객에게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순간 이 분야에서 꽤 알아주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된 경우를 우린 자주 본다. 그런데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시장보다 훨씬 더 큰 수천억 원 ~ 수조 원짜리 시장에서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서, 완전히 다른 시장, 또는 같은 시장에서 다른 카테고리를 계속 기웃거리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이분들에게 내가 주로 하는 조언은 항상 비슷하다. Hero의 전략으로 가라고 한다. 즉, 내가 시작한 분야가 아무리 작아도, 고객이 존재하고, 우리가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아는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면, 일단 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서 category leader를 넘어선 category dominator가 되라고 조언한다. 그 이후에 다른 곳으로 확장하라고 한다.

예를 들며, 내가 지금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반을 잘 닦아 놓은 시장의 전체 크기가 100억 원이라면, 일단 이 시장에서 최소 30억 원의 매출을 해서 시장의 30%를 장악하라는 뜻이다. 한 시장의 30%를 장악하면 그 시장의 확실한 category dominator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꽤 재미있는 건, 이런 고민을 하는 대표들이 대부분 그 100억 원짜리 시장은 항상 너무 작다고 하면서도, 막상 본인들은 이 작은 시장에서 매출 1억 원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들에게 일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서 작은 것부터 야금야금 먹자고 한다. 시장에서 압도적인 1등이 된 후에 다른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훨씬 더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Hero와 같이 현재 시장에서, 현재 제품을 조금 더 다각화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 보라는 조언을 한다. 전에도 한 번 내가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일단 따기 쉬운 과일을 먼저 따먹는 전략이다.

이런 조언을 열심히 해도, 두 마리의 토끼를 쫓거나, 아니면 우리 토끼보다 더 큰 다른 토끼를 쫓는 창업가들이 더 많다. 누가 맞고 틀렸다는 문제는 아니라서, 더 큰 카테고리로 지금 당장 진출하고 싶은 분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했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칠 수도 있고, 더 큰 토끼를 쫓아서 힘들게 잡았는데 막상 보면 엉덩이면 커서 뒤에서만 봤을 때 큰 토끼일 가능성도 있고, 실은 내가 지금 잡고 있는 토끼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질 수 있는데 다른 토끼를 쫓다가 내 토끼를 다른 회사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무모한 전략을 계속 고집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더 짧은 기간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고 한다. 이분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다시 해주는 조언은 세상의 모든 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00만 원 매출이 1,000만 원이 되고, 1,000만 원이 1억이 되고, 이런 느린 사이클을 타면서 언젠간 1조 원 매출이 된다. 한 번에 1,000억씩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혹시 있다면 나한테 DM 부탁한다. 그땐 내가 VC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하방 보호

미국 VC들이 누구나 자주 말하지만, 행동은 이렇게 대부분 말대로 못 하는 말이 있다.

“You can only lose 1x your money on an investment, but you can lose 1,000x on an investment you miss.”

무슨 뜻이냐 하면, 투자금이 100원이든 100억 원이든, 금액과는 상관없이 그 어떤 투자라도 손실이 발생하면, 잃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투자한 원금(1x)뿐이지만, 손실이 두려워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투자하지 않은 회사의 가치가 1,000배(1,000x) 오른다면, 1,000배의 잠재적인 수익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투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 의미를 잘 알 것이고, 누구나 다 이 말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 결정을 할 때 하방 보호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놓쳐서 엄청나게 후회할 수 있는 상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50배 이상의 수익을 만들고 싶다면, 실은 이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원금 손실에 대해선 덜 신경 쓰고, 이 투자가 10년 후에 성공한다면 몇 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을지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정말로 모험자본을 용감하게 투자하는 벤처 투자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VC는 하방 보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손실이 안 나서 최소 원금은 보존할지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고, 투자자의 개인 성향일 수도 있고, 투자자가 소속된 회사의 전략일 수도 있다. 경기가 좋아도 현실적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관성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데, 지금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땐,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하방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걸 거의 매일 느끼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금을 안 까먹을진 모르지만, 정말로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창업가들에게 투자되는 자금이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고, 우리가 항상 외치는 혁신은 시장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솔직히 올해도 굉장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고, 어쩌면 2023년, 2024년보다 시장에 유동성은 더 없고, 투자자들은 투자를 더 안 해서, 웬만한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는 12개월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지금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 많은 VC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보수적인 투자를 할 것 같다. 투자해도 하방 보호와 손실 방지를 항상 최우선시할 텐데, 이런 척박한 분위기에서 어떤 한 해가 될지 매우 궁금하다.

솔직히 우린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스트롱은 지난 13년 동안 한 번도 하방 보호를 생각하고 투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철학은 항상, “투자하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냥 투자 원금을 날리는 것이고, 이건 그 어떤 투자를 해도 항상 동반되는 리스크라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창업가들을 과감하게 밀어준다면, 7년 ~ 10년 후에 50배~100배의 수익을 벌 수 있기 때문에 – 실제로, 이런 경험을 했고 – 투자할 땐 항상 업사이만 본다.

우린 항상 그래왔듯이, 올해도, 이 전략을 그대로 구사할 것이다. 하방 보호는 신경 쓰지 않고, 큰 업사이드만 보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VC들이 시간이 지나면 winner가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뚝심

나도 몇 번 포스팅 한 적이 있고, 요새도 아주 가끔 읽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는 2008년 10월 31일 발행됐고, 비트코인 자체는 2009년에 이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0원이었다. 최초의 비트코인 랠리는 2010년 10월, 가격이 $0.10에서 $0.20으로 두 배 올라가면서 시작했고, 그 이후로 엄청난 up/down을 거쳤다.

<이미지 출처: Perplexity 검색 결과>

위의 차트는 비트코인 탄생 이후부터 지난주까지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데, 시간을 압축해서 15년을 하나의 차트로 보면 지속적인 우상향 그래프가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차트를 쪼개서 보면 그래프가 미친 듯이 위아래로 요동을 친다. 나는 2013년도부터 비트코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됐고, 이때 코빗에 우리가 투자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비트코인과 다른 디지털자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소량의 비트코인을 꾸준히 사고 있다.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가 워낙 시간, 복리, 그리고 인내심의 함수라서 그런지, 그리고 내 성향 자체가 뭔가를 그냥 꾸준히 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나는 주식 투자도 사는 전략만 구사하지, 파는 전략을 실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상장 회사 주식도 몇 종류가 안 되는데, 이 주식 중 정말 오래 보유하고 있는 건, 24년째 보유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주식은 중간에 한 번도 팔지 않고, 24년째 계속 사고만 있다.

비트코인도 나는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long and hold 전략을 구사할 것 같다. 내가 비트코인을 보유했던 지난 11년 동안 수천만 명 ~ 수억 명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은 망할 거라고 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때마다 팔았고, 다시 반등하면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샀다. 그럴 때마다 가격은 출렁거렸고, 정말 그때 순간순간을 생각해 보면 나도 인내심과 뚝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팔았을 것이다. 실은 당시엔 이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원칙이라고 하기엔 좀 개똥이지만, 내가 그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세운 두 가지 원칙 때문에 계속 보유했고,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좋은 자산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샀다.

첫 번째 원칙은, 비트코인 자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샀고, 그 이후엔 계속 가격이 올라가니까 욕심 때문에 추가 구매했다. 그 기간 나는 공부도 많이 했고, 관련 회사도 많이 만났고, 투자도 하면서 이 신기한 신기루 같은 코드로 만든 인터넷 돈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이 생겼다. 그래서 가격이 폭락하고 남들이 다 팔고, 이제 비트코인은 망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때 오히려 더 샀다. 워렌버핏의 “남이 욕심부릴 때 두려워하고, 남이 두려워할 때 욕심부려라.”라는 말을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일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내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여기엔 인내심, 시간, 복리, 꾸준함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현재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팔지 않았기 때문에, 이익도 없고 손실도 없는 상태이다.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고민, 욕심, 두려움, 인내심이 지난 11년 동안 소위 말하는 뚝심이 됐고, 이 뚝심은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내 인생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다.

Tech 시장만 봐도 매번 이런 열풍이 불 때마다 우린 과한 버블을 목격한다. 비트코인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이후에 왔던 ICO, NFT, 메타버스 등, 모두 다 the next big thing을 꿈꾸면서 여기저기 옮겨 가기에 바쁘다. 그리고 이렇게 옮길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은 “이건 좀 다르다. 이번엔 확실하다.”인데, 솔직히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그 분야에 2년 이상 있는 사람을 못 봤다. 유행이 지나고,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가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분위기가 다른 곳으로 가면, 다시 또 그 새로운 분야에서 얄팍한 지식을 쌓은 후에 마치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이게 next big thing이고, 이 분야에서 뼈를 묻을 것처럼 행동한다.

AI 시장에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요새 ‘AI’라는 단어가 안 들어간 자료를 본 적이 없다. 다들 AI First 전략을 구사하고, 마치 반복적인 일을 하는 직업은 모두 다 바로 사라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말들을 한다. 과거에 반짝했다가 크게 안 된 메타버스나 NFT와는 좀 다르다고.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그냥 대부분 “이게 새로운 미래입니다.”라는 영혼 없는 답변들을 한다. 하지만, 역시 대중은 잘 속고, 인류 자체가 건망증의 연속인 것 같다. 모든 관심도 돈은 AI에 몰리고 있다. 나도 AI가 대단하고 이렇게 빨리 바뀌는 기술이 과거에 있었겠느냐는 경외심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것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과 사업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유행 쫓기의 일인자들은 VC들이다. 뭔가 유행할 때마다, 이 분야의 전문가 행사를 하고, 이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우리다. 이러다 보니 창업가들도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창업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이 분야랑 엮으려고 한다. 여기에 또 속아 넘어가는 투자자들이 있고, 어쨌든 이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지금 AI를 종교같이 믿고 있는 많은 분들 중 5년, 10년 뒤에도 이 믿음을 가진 분들이 몇 명이나 될까? 과연 이 세상에 뚝심이라는 건 존재할까?

그래도 아직 존재하는 것 같다. 결국엔 이런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나는 이제 목격하고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모든 좋은 건 오래 걸린다. Things Tak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