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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하자. 제대로.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주장한 주제가 “하나만 하자”인 것 같다. 지금까지 아마도 이 주제로 대략 20개가 넘는 글을 썼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미국의 치킨 체인점 Raising Cane’s 창업가 Todd Graves의 인터뷰를 흥미롭게 들었는데, 이 회사는 치킨 핑거만 판매하면서 초기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하는데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자연스럽게 일반 후라이드 치킨 및 다른 치킨 메뉴로 확장하자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나왔고, 외부에서도 계속 수평적 확장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가는 치킨 핑거 시장만 잡아도 엄청난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까지도 닭으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메뉴로 확장하지 않고 오롯이 치킨 핑거 기반의 메뉴만 계속 파고 들어가고 있다.

결과는, 현재까진 매우 성공적이다. 작년에 거의 7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 쪽으로도 진출했다. 치킨 핑거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치킨 핑거 하면 Raising Cane’s이지”라는 브랜딩을 제대로 만들었고, 이후엔 매장당 매출과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거대한 치킨 핑거 왕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모든 스타트업이 그 분야에서 – 분야가 아무리 좁더라도 – 최고가 되기 전까진 웬만하면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과 같이 풍부하고 낭비해도 되는 자원이 – 즉, 돈과 사람 –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모가 만들어지는 버티컬을 선택한 후에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가서 남들보다 훨씬 더 뾰족한 사업을 만드는 게 작은 회사엔 매우 중요하다. 이 작은 버티컬을 장악해서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1위가 되고, 이후에 다른 버티컬로 확장해서 같은 전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Raising Cane’s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닭요리라는 시장에서 치킨 핑거 패스트푸드라는 버티컬을 선택했고, 20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이 버티컬에서 가장 뾰족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경쟁사가 이 분야에 등장하더라도 이 뾰족한 사업을 이기는 건 매우 힘들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하는 이 컨셉을 복싱이라는 운동에 적용해 보자. 솔직히 이 비유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적절한 것 같다.
두 명의 복서가 있는데 한 선수는 복싱의 모든 기술을 전반적으로 다 배우고, 매일 모든 기술을 다 골고루 연마한다. 잽, 훅, 어퍼컷 등 모든 펀치 기술을 연습하고 이 기본 기술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격 조합도 만들고, 이 또한 골고루 연습한다. 공격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수비 기술도 배워서 열심히 연습한다. 모든 기술을 연마하니, 이 선수가 연습하는 걸 보면 굉장히 화려하고 멋있다. 토탈 복싱이다. 그리고 이 선수는 이미 복싱을 꽤 오래 했고 우승 경험도 있는 노련한 복서다.
다른 선수는 첫 번째 선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습한다. 이분은 딱 한 가지만 연습한다. 왼손잡이라서 레프트 잽 하나만 정말 죽어라 열심히 반복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연습을 시작해서 하루에 20시간씩 다른 건 안 하고 레프트 잽만 연습한다. 수비 기술은 아예 안 배우고, 공격만 연마하고, 공격 중에서도 잽만 연습한다. 이 선수가 연습하는 걸 보면 정말 단순하고 재미없다. 이 선수는 복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상대 선수보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다.

이 두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며 어떻게 될까? 아마도 10번 싸우면 9번 이상은 경험 있는 토탈 복서인 첫 번째 선수가 쉽게 이길 것이다. 레프트 잽만 할 줄 아는 선수는 아마도 상대방 몸 근처에도 못 갈 것이고, 금방 KO 패 당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집요하게 기회를 노리다 보면 10번 중 1번은 어쩌면 상대방의 얼굴과 몸에 왼손으로 잽을 날릴 수 있을 것이고, 상대 선수의 가드가 한 번 풀리면 집중적으로 연타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 시간 동안 연습한 잽은 제대로만 들어간다면 상대방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라서 어쩌면 10번 중 1번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인 선수가 노련한 선수를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연습량을 절대적으로 늘리는 것과 하나의 기술만 뾰족하게 연마하는 것이다.

물론, 위의 예시는 그냥 내가 마음대로 극화시킨 상황이다. 레프트 잽 하나만으로 시합에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려는 진 대부분 이해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 한 노련한 토탈 복서는 이미 시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업을 잘하고 있는 대기업과 같은 기존 플레이어다. 이들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그동안 쌓아 놓은 내공과 업력이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특별히 뾰족한 무기라고 할만한 건 없고, 그냥 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으로만 사업을 하고 있다.

잽만 죽어라 연습하는 복서는 이제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이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없고 돈도 없지만, 한 가지 기술만 무한 연습해서 레프트 잽에 있어서는 이 세상 그 어떤 복서보다 더 빠르고, 날카롭고, 많이 상대방을 때릴 수 있다. 이 엉성한 복서에게 노련한 복서가 질 확률은 낮지만,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잽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 이길 확률이 매우 낮지만, 반대로 그나마 그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만 열심히 하는 것이다.

Raising Cane’s도 치킨핑거 분야에서 유명해지고 성공한 후에 다른 분야로 확장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까진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하나의 제품을 더 연구하고 있고, 더 많은 나라로 지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

B급 사업 10개 하는 것보다 A+급 사업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게 스타트업에겐 가장 좋은 전략이다.

즉각적인 결정

몇 달 전에 우리 내부 미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우리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 충분한 데이터의 부족, 확신의 부족 등 –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그다음 주 미팅에서 결론을 내리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나는 그냥 당장 결정하고 끝내자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게 맞는 결정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뭔가 결정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틀리든, 맞든.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 과정이고, 특히나 창업가들은 일반인보다 곱절이나 더 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결정에 의해서 직접 영향을 받는다. 결정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데 최대한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론적으론 맞지만, 현실적으론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즉각적인 결정’인데, 아마도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가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의 대부분이 그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5%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도, 5%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 조사나 공부에 시간을 더 쓰면, 그나마 없는 옵션들이 모두 다 없어진다. 그래서 창업가에겐 결정의 질보단 결정의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빨리 결정하고, 만약에 그 결정이 틀리면, 다시 결정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 하지만, 줄에서 가급적이면 떨어지지 않는 – 해야 한다.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이 결정을 빨리했다면, 그다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너무 느린 결정을 했고, 이게 틀렸다면, 해야 할 그다음 결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MBA 과정 중 Decision Analysis(DA)라는, 결정을 과학적,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는데 나도 이 수업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다. 하지만,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대표에겐 비추하는 수업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는 의사 결정 분석을 하기 위한 인풋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또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한 번 더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맞는 결정이란 어차피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즉각적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맞는 결정이 되게 운과 실력을 모두 다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즉각적인 결정을 잘 못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을 하는 게 불편하고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고 뭉개는 경우를 나는 너무 많이 봤는데, 이렇게 결정을 미루다가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험을 나는 몇 번 해봤기 때문에, 혹시 우리 투자사 대표님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라고 계속 압박하는 편이다. 불편함과 거북함을 무릅쓰고 지금 당장 결정해서 회사를 살리겠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은 조금 더 편하겠지만 회사가 망하는 걸 선택하겠냐고 말하면서. 솔직히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잠시나마 조금 마음은 편하지만, 이로 인해서 회사가 망하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일주일만 더 두고 보자”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그렇게 오래 고민해야 하는 결정은 이 세상에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정은 5분 안에 할 수 있다.

면접의 허상

이 세상을 세상답게 돌아가게 하는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과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교류하면서 이 세상은 돌아가고, 더 좋은 세상으로 발전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만 선택하면, 그건 당연히 사람이다. 대표이사는 시간의 50%는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나머지 50%는 있는 사람들이 퇴사하지 않도록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내가 채용하는 사람이 우리 회사 그 자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면접에 많은 공을 들인다. 면접의 방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면접의 횟수와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외국계 대기업의 시니어 매니저 레벨의 직책에 지원했는데, 6개월 동안 12번의 면접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판에 떨어졌다. 면접의 종류도 코딩하기, 케이스 풀기부터 술 마시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세분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회사에 가장 적합한 인재 채용을 위한 면접 매뉴얼을 개발하기 위해 수억 원의 돈을 쓰면서 외부 컨설팅까지 받는다.

그래서 우린 이런 고도화 된 면접 방법을 통해서 정말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봤을 땐, 아닌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보면,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무는 정말 못 했던 적도 있고, 혼자서는 일을 잘 하는데 팀원들과 같이 했을 땐 팀워크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 주변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면접하고 채용하는 매니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면접을 20번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일을 잘하는진 알 수 없고, 실제로 일을 잘해도, 우리 회사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진 알 수가 없다.

이게 면접의 현실이다. 면접은 단기간 안에 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고 – 입시 학원처럼, 면접 학원도 있다 – 일은 못 해도 말발만 살아 있으면, 면접에선 100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채용해야 할까? 내가 아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일단 내가 잘 아는 사람만 채용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친구, 대학교 룸메이트, 동아리 선후배, 직장 동료나 선후배가 좋은 사례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낸 분들이 공동 창업가나 동료로 일하는 곳들이 큰 불협화음 없이 잘하는 걸 자주 경험한다. 하지만, 사람의 네트워크라는 게 한계가 있고, 회사가 성장하면 잘 아는 사람의 인재풀은 바닥나기 때문에 이 방법은 회사 규모가 작을 때만 작동한다.

두 번째는,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갖고, 이후에 정식 채용을 결정하는 것이다.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제 일을 잘하는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2개월 정도의 수습은 약간 애매하다. 2개월 정도는 일을 잘하는 척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6개월을 연기하긴 어렵다. 6개월 같이 일해보면, 이분이 정말 일을 잘하는 분인지 충분히 파악된다. 또한, 일을 잘하는 분도 본인이 회사와 케미가 맞는지 판단해 봐야 하므로 6개월 정도의 수습 기간을 권장한다. 이런 제안에 격하게 반대하는 후보라면, 그리고 그 이유로 자존심과 모욕감 등을 언급하면 이건 적신호다.

마지막 방법은, 채용보단 보상에 대한 방법이다. 내가 전에 이 글에서 이야기했는데, 면접을 기반으로 직책과 연봉을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고 위험한 방법이기 때문에, 입사 시 ‘one 직책 one 연봉’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컴공과를 막 졸업한 25살 엔지니어든, 15년 개발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때 직책이 둘 다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이 두 분의 입사 연봉은 무조건 동일하게 가는 전략이다. 같은 직책이라도 과거의 경험이 많으면 연봉이 더 높고, 특히나 면접 때 말을 잘하면 연봉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게 현대 사회의 채용 전략인데, 나는 이건 완전히 틀렸다고 본다. 경력이 많다고 그 일을 잘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정말 많이 했다 – 면접 때 말발에서 이기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입사할 땐 모두 다 연봉을 동일하게 가져가지만, 일 년 후 업무 평가에서 실제로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연봉을 드라마틱하게 인상해 주는 방법이 좋은 사람을 계속 회사에 남게 하고, 아닌 사람은 퇴사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아니지만, 위 3개의 방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피곤한 면접 횟수는 줄일 수 있고, 더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실은, 어쩌면 한국은 사람을 해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내보낼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을 더 중시하고, 더 신중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직된 해고 정책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면접하고, 다양한 채용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좋은 사람이란 일을 잘하는 사람인데,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또 채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우린 어쩔 땐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회사 자료를 검토한다. 관심이 가는 사업은 조금 더 자세히 보고, 그렇지 않은 사업의 자료는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보는 부분 – 예를 들면, 창업팀의 이력이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있는 페이지 – 외엔 빠르게 스캔하고 스크리닝하는 편이다. 모든 회사는 다르고, 모든 비즈니스는 다르므로, 자료의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웬만한 자료는 공통으로 3년 또는 5년 치 매출 추정이 들어간 페이지가 한두 개 있다.

솔직히 우린 이 예상 매출 슬라이드는 잘 안 본다. 어떤 대표들은 이 슬라이드의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측치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상당히 복잡한 엑셀을 돌리거나, 아주 무거운 number crunching을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초기 스타트업의 미래의 매출 수치는 거의 90% 정도 디스카운트 하거나, 아예 무시해도 된다. 솔직히 다음 달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사업인데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억지이고, 아무리 정교하게 모델링을 해도 대부분의 수치는 목표와 말도 안 되게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대부분 첫 2년은 큰 성장이 없고 손실이 많이 발생하다가 갑자기 3년 차부터 매출이 20배씩 뛰면서 흑자가 발생하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대표들도 이런 그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들은 속으로 민망한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시간 낭비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아직 1,000만 원의 매출도 못 하는 회사가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건 실용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숫자를 시뮬레이션해 봤다는 건, 대표가 회사의 전략, 비즈니스모델, 고객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는 의미라서 이 사실 자체는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주긴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계산해 본 숫자를 투자자들이 믿는가에 대해선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도 투자자지만, 3개년 프로젝션 등의 수치가 보이는 슬라이드를 아예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미래의 목표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할 때, 이 목표가 투자금이 있어야지 달성 가능한지, 아니면 투자금 없이 현재 자원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펀딩을 돌 때, 그 투자금을 받았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자료에 기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올해는 30억을 하겠다는 약간 비현실적인 추정치를 제시하는 대표들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펀딩하고 있는 10억 원의 투자를 받으면 사람도 채용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도 더 하고 해서 목표 30억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말이다.

이분들에게 그럼 이번에 10억 원보다 적은 5억 원만 투자받거나, 아니면 아예 투자를 못 받으면 매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생각해 봤다면 훨씬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목표 매출의 절반도 못 하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때부턴 이 창업가와 회사를 약간의 의심과 디스카운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모든 VC를 대변해서 말할 순 없지만, 회사 자료에 3년~5년 매출 추정치를 넣으려면, 기본적으로 외부 투자 없이 현재의 인력과 돈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또는, 아주 명확하게, 얼마의 투자를 받으면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수치와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확실히 구분해 주면 좋겠다.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고, 투자 없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을 계산했는데, 이게 너무 초라해 보인다면, 그냥 우린 현재로서는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형편없고 초라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VC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서, 뭘 어떻게 표시하더라도 결국엔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할 것이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번 강조했듯이, 올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현재 우리가 가진 돈, 인력, 캐파를 150% 돌렸을 때 달성 가능한,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투자를 받았을 때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목표도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돈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은 후에 매출이 역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미 내가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회사 상황이 안 좋아서 대규모 감원을 한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 두 배 성장한 경우도 있다.

우리 투자사에 내가 항상 조언하는 건, 투자자들에게 약속하는 목표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산정하고, 이 보수적인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사업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underpromise; overdeliver들의 대가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잘할까? 이 세상은 허세와 뻥카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더 강해 보이고, 어려운 상황을 얼렁뚱땅 넘어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overpromise 하는데, 결국 이들은 모두 다 underdeliver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들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만 더. 책 읽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 좋아하는 대표들이 사랑하는 전사 OKR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사 목표를 정할 땐, 최소 90%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너무 많은 회사들이 1년 내내 60% 도 달성 못 하는 비현실적으로 빡센 목표를 설정한다. 이렇게 overpromise; underdeliver 하려면 뭐 하러 전사 워크숍을 가고, 바쁜 임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가?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사업이든, 인생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세상의 모든 큰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한인이 창업했고, 창업 5년 만에 한화로 거의 1조 원에 인수된 화장품 회사 Hero Cosmetics(Hero)의 팟캐스트를 얼마 전에 흥미롭게 들었다. 창업가들의 이야기는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항상 배울 점들이 많아서 재미있고, 한국에 사는 분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여드름 패치 하나로 시작해서 1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Church and Dwight에 매각한 이야기도 웬만한 케이드라마보다 더 흥미로웠다.

이 팟캐스트를 며칠에 걸쳐 아침에 운동하면서 계속 들었는데, 그 기간 우리 투자사 대표와 미팅하면서, 이분이 하는 사업은 화장품 분야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Hero가 고민하고 거쳐 온 과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고민의 공통점들을 찾고 해답도 같이 찾는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Hero는 Mighty Patch라는 여드름 패치 제품 하나로 시작했고, 한국에서 만든 이 제품을 온, 오프라인 상점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지나서 이 카테고리에서는 거의 1등 제품이 됐다. 1등 제품이긴 했지만, 없던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 시장 자체가 작았고, 투자도 받고 사람도 더 고용하기 위해서 회사는 계속 성장을 해야 했다. 여기서 Hero의 창업가들은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 여드름 패치보다 훨씬 큰 시장인 일반 화장품 분야로 확장하는 고민을 했다. 어차피 큰 카테고리로 보면 모두 다 화장품과 뷰티 분야였고, 다른 화장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제조사 소싱도 용이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일반 화장품/뷰티 쪽으로 확장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성장 공식이라서 여드름 패치 판매 시작 1년 후에 이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일단 여드름 패치 분야에만 당분간 집중하는 것이었다. 여드름 패치 분야에서 더 많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판매해서 아예 다른 경쟁사들이 넘보지도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1등이 되고, 미국에서 말하는 소위 category dominator가 된 후에 다른 화장품 분야로 확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같은 여드름 패치를 다양한 색상, 다양한 용도, 그리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서 SKU를 다각화했고, 판매 채널 또한 온, 오프라인 모든 곳으로 확장했다. 이렇게 한 결과, 여드름 패치로만 연 매출 수백억 원대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 정도의 매출을 하니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1등이 됐고, 이 category dominator 해자(垓字)를 구축한 후에 다른 화장품 분야로 조금은 더 수월하고 편하게 진출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아마도 꽤 많은 창업가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아주 힘들게 한 분야를 열심히 팠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반을 닦아 놓으니, 이 분야에서 돈을 내는 고객도 생기고, 아주 빠르진 않지만, 고객에게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순간 이 분야에서 꽤 알아주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된 경우를 우린 자주 본다. 그런데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시장보다 훨씬 더 큰 수천억 원 ~ 수조 원짜리 시장에서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서, 완전히 다른 시장, 또는 같은 시장에서 다른 카테고리를 계속 기웃거리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이분들에게 내가 주로 하는 조언은 항상 비슷하다. Hero의 전략으로 가라고 한다. 즉, 내가 시작한 분야가 아무리 작아도, 고객이 존재하고, 우리가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아는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면, 일단 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서 category leader를 넘어선 category dominator가 되라고 조언한다. 그 이후에 다른 곳으로 확장하라고 한다.

예를 들며, 내가 지금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반을 잘 닦아 놓은 시장의 전체 크기가 100억 원이라면, 일단 이 시장에서 최소 30억 원의 매출을 해서 시장의 30%를 장악하라는 뜻이다. 한 시장의 30%를 장악하면 그 시장의 확실한 category dominator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꽤 재미있는 건, 이런 고민을 하는 대표들이 대부분 그 100억 원짜리 시장은 항상 너무 작다고 하면서도, 막상 본인들은 이 작은 시장에서 매출 1억 원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들에게 일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서 작은 것부터 야금야금 먹자고 한다. 시장에서 압도적인 1등이 된 후에 다른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훨씬 더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Hero와 같이 현재 시장에서, 현재 제품을 조금 더 다각화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 보라는 조언을 한다. 전에도 한 번 내가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일단 따기 쉬운 과일을 먼저 따먹는 전략이다.

이런 조언을 열심히 해도, 두 마리의 토끼를 쫓거나, 아니면 우리 토끼보다 더 큰 다른 토끼를 쫓는 창업가들이 더 많다. 누가 맞고 틀렸다는 문제는 아니라서, 더 큰 카테고리로 지금 당장 진출하고 싶은 분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했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칠 수도 있고, 더 큰 토끼를 쫓아서 힘들게 잡았는데 막상 보면 엉덩이면 커서 뒤에서만 봤을 때 큰 토끼일 가능성도 있고, 실은 내가 지금 잡고 있는 토끼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질 수 있는데 다른 토끼를 쫓다가 내 토끼를 다른 회사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무모한 전략을 계속 고집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더 짧은 기간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고 한다. 이분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다시 해주는 조언은 세상의 모든 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00만 원 매출이 1,000만 원이 되고, 1,000만 원이 1억이 되고, 이런 느린 사이클을 타면서 언젠간 1조 원 매출이 된다. 한 번에 1,000억씩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혹시 있다면 나한테 DM 부탁한다. 그땐 내가 VC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