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우리 내부 미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우리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 충분한 데이터의 부족, 확신의 부족 등 –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그다음 주 미팅에서 결론을 내리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나는 그냥 당장 결정하고 끝내자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게 맞는 결정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뭔가 결정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틀리든, 맞든.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 과정이고, 특히나 창업가들은 일반인보다 곱절이나 더 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결정에 의해서 직접 영향을 받는다. 결정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데 최대한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론적으론 맞지만, 현실적으론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즉각적인 결정’인데, 아마도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가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의 대부분이 그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5%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도, 5%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 조사나 공부에 시간을 더 쓰면, 그나마 없는 옵션들이 모두 다 없어진다. 그래서 창업가에겐 결정의 질보단 결정의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빨리 결정하고, 만약에 그 결정이 틀리면, 다시 결정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 하지만, 줄에서 가급적이면 떨어지지 않는 – 해야 한다.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이 결정을 빨리했다면, 그다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너무 느린 결정을 했고, 이게 틀렸다면, 해야 할 그다음 결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MBA 과정 중 Decision Analysis(DA)라는, 결정을 과학적,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는데 나도 이 수업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다. 하지만,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대표에겐 비추하는 수업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는 의사 결정 분석을 하기 위한 인풋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또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한 번 더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맞는 결정이란 어차피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즉각적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맞는 결정이 되게 운과 실력을 모두 다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즉각적인 결정을 잘 못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을 하는 게 불편하고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고 뭉개는 경우를 나는 너무 많이 봤는데, 이렇게 결정을 미루다가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험을 나는 몇 번 해봤기 때문에, 혹시 우리 투자사 대표님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라고 계속 압박하는 편이다. 불편함과 거북함을 무릅쓰고 지금 당장 결정해서 회사를 살리겠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은 조금 더 편하겠지만 회사가 망하는 걸 선택하겠냐고 말하면서. 솔직히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잠시나마 조금 마음은 편하지만, 이로 인해서 회사가 망하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일주일만 더 두고 보자”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그렇게 오래 고민해야 하는 결정은 이 세상에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정은 5분 안에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제프베조스가 주주서한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one way door(되돌릴수없는 결정), two way door(되돌릴수 있는결정) 로 나눠 설명한 개념이 있는데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대부분은 two way door 유형이 많고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2016 아마존 주주서한
First, never use a one-size-fits-all decision-making process. Many decisions are reversible, two-way doors. Those decisions can use a light-weight process. For those, so what if you’re wrong? I wrote about this in more detail in last year’s letter.
Second, most decisions should probably be made with somewhere around 70% of the information you wish you had. If you wait for 90%, in most cases, you’re probably being slow. Plus, either way, you need to be good at quickly recognizing and correcting bad decisions. If you’re good at course correcting, being wrong may be less costly than you think, whereas being slow is going to be expensive for sure.
Third, use the phrase “disagree and commit.” This phrase will save a lot of time. If you have conviction on a particular direction even though there’s no consensus, it’s helpful to say, “Look, I know we disagree on this but will you gamble with me on it? Disagree and commit?” By the time you’re at this point, no one can know the answer for sure, and you’ll probably get a quick yes.
Exactly. 딱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two way door와 one way door, 매우 적절한 비유네요.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음 스타트업 대표로써 다른 견해를 조금 말씀드리자면,
스타트업 대표는 기본적으로 비전 Driven 성향이 강하고, 추진력과 실행력이 있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중요한 결정은 하루 이틀 뒤로 미루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에 때로는 충동적인 결정을 할 수가 있고, 계획에 맞아보이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리스크가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결정은 심사숙고해서 진행하고, 결정 후 실행은 추진력 있게 하자는 방향성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제가 결정하면 저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모두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다보니, 의사결정은 신중하고 꼼꼼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좋은 경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 이틀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첫 느낌/생각과 크게 달라지지가 않더라구요. 일주, 이주가 아니라 하루 이틀 정도면 충분히 빠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불확실성과 정보 부족 속에서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이론적으로도 가장 현실적인 합리성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틀려도 다시 결정하면 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실행 가능성과 반복 가능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창업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자질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제한된 합리성’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오늘 또 새로운 단어를 배웁니다. 좋은 의경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시니어PM을 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의 큰 의사결정도 그렇겠지만, 스쿼드의 업무에 있어서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주변의 약간의 응원이나 코멘트를 통해 묘한 불편감을 미루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빨리 빨리 결정하고 앞으로 넘겨야 하는 것들을 조금씩 미루다가 1~2일 늦춰지면, 그게 쌓여서 복리처럼 되었어요.
글쓰기 연습좀 하셔야 될거같아요
중요한 결정을 천천히 하기로 하고, 생각을 더 안하는게 문제인거같은데, 그 해답이 빠르게 결정하는건가요..? 논리가 좀 이상하네요.
마치 제가 요즘 회사생활 하면서 느낀 바를 AI가 풀어서 적어준 것 같은 공감을 하며 읽어내려갔습니다. 15년 정도 회사를 다니며 ‘더 고민해보고 다음주에 의사결정하자’라고 진행된 미팅에서 한 주 사이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인사이트나 관점을 찾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결정의 불편함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적이 99%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참여자 모두가 결정을 해야된다는 마음으로 미팅을 참석하는 것과 연기될 수도 있다는 문화에서 참석하는 미팅의 질과 집중도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지더군요. 따라서, 모든 미팅이 의사결정을 위한 미팅이고 의사결정은 이 미팅에서 이루러진다는 마음가짐과 문화가 조직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랑 너무 같은 경험, 같은 생각을 하셔서 놀랐습니다 🙂 좋은 경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합니다.
중견기업이 아닌 이상..
결정의사를 미루다 보면 시장 선점도 늦어지고
해야 되는 이유 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결정을 내려야 다음 스탭을 가겠죠.
그 결정이 옳던 옳지 않던 기록될 것이고
학습될겁니다.
부족했던 정보로 인한 반복된 결정들은
통찰로 보답하겠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