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세상이 더 험악해지면서 한국에서도 이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끔찍한 살인사건, 엽기적인 범죄행위 등, 과거에는 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이젠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문제냐, 아니면 이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냐 이다. 즉,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내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각각의 생각을 물어보면, 대략 10명 중 8명은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을 탓하는 것 같다. 자주 듣는 이야기는 사람은 사회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서 개인적인 성향보단 시스템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하는 기준이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보단 사회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의해서 형성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이런 범죄자들을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 것 같다.

맞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시스템이 문제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개개인의 사람이다. 사람이 시스템의 구성원이라서 시스템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그 전에 사람이 모여서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결국엔 사람 개개인의 행동, 생각, 관점과 성향이 전체 시스템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도 개선돼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 변해야 한다. 사람도 변하고, 시스템도 동시에 변하면 bottom-up과 top-down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서 더 빠른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보다 개인의 능력과 추진력이 뛰어난 국가라서 시스템보단 사람 개개인의 책임, 권한과 역량이 다른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일부 한국의 학자들도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작년에 일 년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와 사회의 리더가 없었는데 솔직히 그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든 개인이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큰 문제 없이 잘 운영됐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개판이었지만 개개인이 잘 행동해서 개판인 시스템을 잘 돌아가게 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와 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잘 맞물려 움직여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결국엔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변화해야 한다.

시스템보단 사람이 문제이고, 시스템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관점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개념을 부정하고 한 나라나 사회의 문제를 무조건 시스템 탓을 하는 데 익숙해지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면 일단 개인이 바뀌어야 하고, 개인의 변화는 나와 너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좋게 바뀐다.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망가진다. 시스템을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보자.

주인의식

이 블로그 구독자를 한 번도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와 회사의 대표이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와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꽤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대표이사마다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도 다르고, 고민하는 점도 다를텐데, 모든 대표이사가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임직원들의 주인의식일 것이다. 나같이 작은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도 이 고민을 항상 하는데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더 힘들어지고, 더욱더 많이 고민하는 대표의 숙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분들이 이 회사를 본인의 회사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단순히 월급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세계 모든 리더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전에 내가 Red Bull 북미 본사를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강렬함에 대해 공유한 적이 있다. 그 리셉셔니스트는 어떻게 보면 기업 피라미드의 가장 말단에 있는 직원분이고,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정직원이 아닌 대형 인력파견 에이전시 소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레드불에 대한 깊은 애사심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나눴던 매우 짧은 대화를 통해 이 분이 회사에 대해 가졌던 주인의식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레드불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레드불 창업 가족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하여튼 본인이 몸담고 있고,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월급을 받고 있던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오너나 임직원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그 뛰어난 주인의식은 나 같은 회사의 방문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왜냐하면 전에는 나는 레드불은 설탕 덩어리 탄산 카페인 음료를 판매하는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는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가득 찬 강력한 브랜드파워 회사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아직도 이 회사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읽었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서도 이런 강력한 주인의식에 대한 일화가 묘사되어 있다.

이 분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디즈니월드에 놀러 갔는데,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놀이공원 안의 가게에서 도자기로 만든 소금통과 후추통을 샀다. 10달러였다. 그런데 가게를 나오자마자 도자기를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해서 다시 가게로 돌아가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더니, 가게 직원은 아무 말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면서 오히려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탓을 했다.

이 직원분의 태도는 작가와 그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그들은 20년 넘게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면서 10만 달러 이상의 돈을 썼다고 한다. 10달러짜리 도자기 세트를 바꿔준 디즈니랜드 가게 직원의 태도가 디즈니 재무제표에 10만 달러의 매출을 더 해 준 셈이다. 실은, 10달러짜리 제품을 공짜로 하나 더 주면, 장부에는 그냥 10달러의 손실로 기록되지만, 이 행동으로 한 가족이 디즈니라는 기업을 평생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는 건 그 어떤 마케팅으로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도 주인의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날 그 직원이 디즈니의 주주였을까? 어쩌면.
10달러짜리 제품을 바꿔준다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게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오히려 점장에게 더 욕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직원은 – 어쩌면 알바하시는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 본인이 단순히 기념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디즈니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앞의 10달러보다 울고 있는 열두살짜리 아이가 디즈니를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기억하길 바랐을 것이다.

이런 주인의식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어떻게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주입할 수 있을지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물론, 대표이사나 오너가 강요하고 설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본인이 오히려 매일, 매 순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스트롱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한다. 결국, 주인의식은 입으로 나불거리는 게 아니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모든 임직원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도, 권한, 그리고 책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더와 직원분들 모두 다 계속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글에 “월급이나 많이 주면서 주인의식을 강요해라”라는 댓글이 분명히 달릴 것 같은데,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반박부터 먼저 하는 분들은 주인의식과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좋은 VC가 되는 방법

요새 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을 만나면 이들이 VC라는 업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나의 20대, 또는 30대 초반을 기억해 보면 당시엔 투자가 뭔지도 잘 몰랐고 VC라는 업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요즘 젊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가끔은 VC 업에 종사하는 나보다 이 직종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본인들의 커리어와 미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다는 좋은 인상을 받는다.

이들이 VC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현업 VC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아서인지 나를 만나면 그동안 직업으로서의 VC에 대해 갖고 있던 질문을 많이 한다. 역시 이 질문들의 수준이 높아서 매번 놀란다. VC라는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어떻게 하면 본인들도 VC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은데, 이미 이 질문의 단계를 넘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VC가 되고 싶은 분들이 많이 하지만, 이미 투자하고 있는 현업 VC 초년생분들도 나에게 자주 한다. VC를 2년 정도 해서 이 업무 자체가 뭘 하는 건지, 이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투자는 어떤 프로세스로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정량적인 지식과 경험은 어느 정도 습득했지만, 이 업계에서 정말 잘하고 존경받는 – 어떤 분들에겐 남에게 존경받는 게 중요한 듯 –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일단 이런 분들에게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VC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투자자 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준다는 건 그래도 내가 나쁜 VC는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것 같다.

VC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 그리고 사회 초년 VC 분들에게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드리는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으면 그냥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VC가 되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은데, 많은 분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걸 보면 조금만 노력하면 눈에 띄는 좋은 VC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VC가 되고 싶으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 특히 창업가 – 나랑 똑같은 한 명의 성숙한 인격체로 대해줘라. 나는 돈이 있으니까 ‘갑’이고 이들은 내 돈을 받아야 하는 ‘을’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몸과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 돈도 아니고, 우린 어차피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 때문에 내가 투자할 수 있고, 내가 관리하는 남의 돈 때문에 나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어떻게 보면 큰 거품 속에 VC들은 살고 있다.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내가 만나는 창업가를 인간으로 대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라.

그리고 언행일치를 해라.
미팅 일정을 정했으면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나타나면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생각보다 많은 투자자들이 아무런 사전 통지 없이 약속을 어긴다.
약속을 지켜라. 언제까지 의사결정을 하고 더 이상 투자검토를 진행할지 안 할지에 대한 의견을 주겠다고 했으면, 그냥 약속한 그 날짜에 연락해 줘라. 만약에 검토가 늦어진다면 왜 늦어지는지, 변경된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꼭 알려줘라.
투자하겠다고 했으면, 투자해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수 타거나 연락 안 되는 VC가 너무나 많다. 혹시나 사정이 생겨서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면, 쪽팔리고 불편하겠지만 솔직한 이유를 말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냈다면, 그 말을 지켜라.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만약에 못 지킬 말이라면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

마지막으로,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투자해라. 너무나 많은 투자자가 무늬만 화려한 VC다. 온갖 미사여구로 본인 자랑을 하고, 과거에 어떤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자랑은 실컷 하는데, 막상 자세히 물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단 한 건의 투자도 집행하지 않은, 돈도 없는 VC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이건 실은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VC라고 하고 싶다면 좋은 투자든, 나쁜 투자든, 일단 투자해라. 이건 기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나열한 내용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정상적인 직장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고, 말과 행동을 일치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는데, 이걸 또 많은 투자자가 잘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거꾸로 해석하면, 좋은 VC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냥 정상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겐 근무의 자유를

7월 미국 출장 기간 중 WSJ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는데, 마침 그때 이와 비슷한 주제로 우리 투자사 몇 군데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관련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일단 이 기사는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인 독일이 소매업체가 일요일에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을 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 물품으로,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독일 경기가 계속 악화되면서 이 오래된 법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1949년 개정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일요일과 공휴일은 노동으로부터 몸과 영혼이 쉬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색이 짙다. 기사를 읽어보면 이 법이 생긴 배경,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나는 독일의 경제가 심각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는 이 마당에 왜 이 법을 당장 안 고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냥 일요일에 가게 문 닫고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은 그냥 일요일에도 장사를 하게 하면 될 텐데 이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이런 법은 계속 놔두면서 독일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위기설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경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독일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을 보면 좀 한심하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지 않는 독일의 기사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걱정을 다시 한번 했다. 나는 최근에 한국이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있고, 일을 점점 더 안 하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욕도 상당히 많이 먹고 있고, 나의 일차원적인 생각을 보강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제공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도 내 결론은 한국이 더 강대국이 되고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다면 무조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생긴 이유와 그 백그라운드는 나도 알고 있다. 이런 법까지 만들게 한 비상식적인 회사들, 그 회사의 사장들, 그리고 주주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산업, 경영진, 그리고 근로자를 불문하고 이 52시간 제도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한국도 위에서 말한 독일과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그런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AI 시대엔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기보단 일을 더 잘 해야 한다고 모두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의 회사는 AI 시대이든 아니든 일단 기본적으로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 몸을 갈아 넣어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는 건 기본이고, 이런 기본이 만들어진 후에 더 똑똑하고 잘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9-9-6으로 일하는 중국, 그리고 심지어 중국보다 더 많이 일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정부의 지원도 더 빵빵하다. 그리고 이들의 인재는 한국의 인재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우리가 이런 나라, 그리고 이런 회사와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부터 지는 게임을 해야 하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건 기본으로 깔고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보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별로 똑똑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공부도 안 하고 서울대 가길 희망하는 것과 같다.

다행히 어떤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반도체, 스타트업 및 첨단 산업 전반에서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52시간제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이익을 충분히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정은 과도하다는 태도다.

근로시간 제도의 조정을 떠나 그냥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고, 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만약 현 정부가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는 52시간 제도를 끝까지 고수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해라. 하지만, 그러면 대통령을 비롯한 그 어떤 정치인도 공개적으로 한국이 AI나 로보틱스와 같은 최첨단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주일에 52시간만 일 할 수 있는 한국이, 원하면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모든 자원이 풍부한 중국과 미국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다가 어쩌면 우린 유럽에 뒤질지도 모른다.

옵티마이저들

요새 투자 분위기는 아직도 AI, 로보틱스, 국방, 피지컬 AI와 같은 딥테크와 하드테크에 집중됐지만, 우린 좋은 창업가들이 좋은 사업을 하고 있으면 분야와 기술관 상관없이 검토하고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는 어려운 기술보단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어울리는 분야라는 점을 우린 매번 강조하고 스스로 상기시키면서 이 분야의 회사와 창업가를 많이 만나고 검토하고 있다.(그렇다고 우리가 딥테크와 하드테크를 안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분야도 적극적으로 보고 있다.)

Consumer 분야의 트렌드를 관찰하다 보면 요새 ‘Optimizer’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최적화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재미도 있지만 의미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면서 추구하는 세대를 옵티마이저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더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수도승처럼 금욕적인 삶보단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어 하는, 현명한 지름길을 통해서 더 건강한 선택을 하고 똑똑한 방법으로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할 수 있다.

MZ 세대의 40% 이상이 자신은 옵티마이저라고 하는데 이들은 먹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특히 비슷한 카테고리의 음식이라면 더 비싼 고급 제품을 선호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하고, 섬유질을 더 많이 섭취하고, 가공음식을 덜 먹지만, 또 재미있는 사실은 맛집이라면 – 그리고 그 맛집이 초가공식품인 소금빵 가게라도 – 30분 이상 기다려서 꼭 먹고 마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실과는 달리 이들은 술도 남들보다 더 많이 먹지만, 되도록 더 비싼 술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와인도 일반 와인보다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

옵티마이저는 오래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주일에 4번 이상 운동하고 장수와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사우나도 자주 한다. 대부분 애플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서 비만이라고 생각하면 GLP-1을 거리낌없이 맞거나 복용하고, 보톡스와 필러도 더 많이 맞는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건강, 장수, 체중감소를 위해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펩타이드 주사도 상당히 많이 자가주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GLP-1을 통해서 자가주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집에서 펩타이드 주사를 편안하게 맞는 것 같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력도 남다른데, 자연스럽게 AI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사용한다. 36%가 매일 AI 챗봇과 대화하고 절반 이상이 AI가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단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옵티마이저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쯧쯧쯧”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런 인생 최적화 철학이 가진 큰 장점이 있다. 옵티마이저는 인생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이 강박에 의해서 행동도 인생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조정되는데, 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몸에 배면서 이들은 이미 스스로가 인생에서 이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정말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아직도 인기 있는진 모르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자는 YOLO와 모두가 한 번 죽는 인생 의미 있게 살자는 YODO가 큰 인기몰이를 했었는데, 옵티마이저들은 YOLO와 YODO를 적절하게 혼합한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MZ 세대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창업가는 계속해서 바뀌는 이런 큰 트렌드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요샌 취향과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사업 환경은 더욱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