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면접의 허상

이 세상을 세상답게 돌아가게 하는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과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교류하면서 이 세상은 돌아가고, 더 좋은 세상으로 발전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만 선택하면, 그건 당연히 사람이다. 대표이사는 시간의 50%는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나머지 50%는 있는 사람들이 퇴사하지 않도록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내가 채용하는 사람이 우리 회사 그 자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면접에 많은 공을 들인다. 면접의 방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면접의 횟수와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외국계 대기업의 시니어 매니저 레벨의 직책에 지원했는데, 6개월 동안 12번의 면접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판에 떨어졌다. 면접의 종류도 코딩하기, 케이스 풀기부터 술 마시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세분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회사에 가장 적합한 인재 채용을 위한 면접 매뉴얼을 개발하기 위해 수억 원의 돈을 쓰면서 외부 컨설팅까지 받는다.

그래서 우린 이런 고도화 된 면접 방법을 통해서 정말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봤을 땐, 아닌 것 같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보면,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무는 정말 못 했던 적도 있고, 혼자서는 일을 잘 하는데 팀원들과 같이 했을 땐 팀워크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 주변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면접하고 채용하는 매니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면접을 20번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일을 잘하는진 알 수 없고, 실제로 일을 잘해도, 우리 회사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진 알 수가 없다.

이게 면접의 현실이다. 면접은 단기간 안에 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고 – 입시 학원처럼, 면접 학원도 있다 – 일은 못 해도 말발만 살아 있으면, 면접에선 100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채용해야 할까? 내가 아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일단 내가 잘 아는 사람만 채용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친구, 대학교 룸메이트, 동아리 선후배, 직장 동료나 선후배가 좋은 사례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낸 분들이 공동 창업가나 동료로 일하는 곳들이 큰 불협화음 없이 잘하는 걸 자주 경험한다. 하지만, 사람의 네트워크라는 게 한계가 있고, 회사가 성장하면 잘 아는 사람의 인재풀은 바닥나기 때문에 이 방법은 회사 규모가 작을 때만 작동한다.

두 번째는,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갖고, 이후에 정식 채용을 결정하는 것이다. 면접을 아무리 잘해도 이분이 실제 일을 잘하는진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2개월 정도의 수습은 약간 애매하다. 2개월 정도는 일을 잘하는 척 연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6개월을 연기하긴 어렵다. 6개월 같이 일해보면, 이분이 정말 일을 잘하는 분인지 충분히 파악된다. 또한, 일을 잘하는 분도 본인이 회사와 케미가 맞는지 판단해 봐야 하므로 6개월 정도의 수습 기간을 권장한다. 이런 제안에 격하게 반대하는 후보라면, 그리고 그 이유로 자존심과 모욕감 등을 언급하면 이건 적신호다.

마지막 방법은, 채용보단 보상에 대한 방법이다. 내가 전에 이 글에서 이야기했는데, 면접을 기반으로 직책과 연봉을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고 위험한 방법이기 때문에, 입사 시 ‘one 직책 one 연봉’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컴공과를 막 졸업한 25살 엔지니어든, 15년 개발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때 직책이 둘 다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이 두 분의 입사 연봉은 무조건 동일하게 가는 전략이다. 같은 직책이라도 과거의 경험이 많으면 연봉이 더 높고, 특히나 면접 때 말을 잘하면 연봉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게 현대 사회의 채용 전략인데, 나는 이건 완전히 틀렸다고 본다. 경력이 많다고 그 일을 잘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정말 많이 했다 – 면접 때 말발에서 이기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입사할 땐 모두 다 연봉을 동일하게 가져가지만, 일 년 후 업무 평가에서 실제로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연봉을 드라마틱하게 인상해 주는 방법이 좋은 사람을 계속 회사에 남게 하고, 아닌 사람은 퇴사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아니지만, 위 3개의 방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피곤한 면접 횟수는 줄일 수 있고, 더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실은, 어쩌면 한국은 사람을 해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내보낼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을 더 중시하고, 더 신중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직된 해고 정책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면접하고, 다양한 채용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좋은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좋은 사람이란 일을 잘하는 사람인데,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또 채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더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악플을 쓰시려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특히 주의 바랍니다. 내가 악플은 세상 누구도 읽을 수도 있지만, 쓰시는 분은 반드시 읽습니다. 악플은 남을 향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향합니다.

2월에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이라는 글을 썼다. 솔직히 나는 그냥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을 그냥 포스팅했는데, 시장에서 꽤 많은 반응이 있었다. 한 달 만에 댓글이 약 250개 넘게 달렸는데, 주말에 전부 다 읽었다. 좋은 내용도 있지만, 공간 낭비하는 내용도 많아서, 좋은 내용 중 내가 바로 답변 할 수 있는 건 답변을 했고, 생각이 조금 더 필요한 건 나중에 답변하고 싶은데, 그동안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서, 언제 다 답변할지 고민 중이다. 어떤 분이 답변하기 곤란한 댓글은 내가 무시한다고 했는데(“지 대답하기 곤란한 건 댓글 안 남기네 ㅋ”), 그건 아니고, 이 댓글처럼 답변할 가치가 없는 댓글은 댓글 안 남기는 게 맞지만, 댓글 중 대답하기에 곤란하지만, 좋은 내용도 많다. 이 댓글들은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답변을 언젠간 남길 계획이다.

다른 분들의 댓글을 보면 일단 항상 같은 생각을 하는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나도 이 사업을 하면서, 최대한 머리와 가슴을 활짝 열고 그 어떤 것도 내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달아준 코멘트를 읽으면서 아직도 나는 내 생각이 꽤 강하다는 걸 느꼈는데, 그렇다고 이걸 또 크게 반성하진 않았다.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의견과 믿음이 있지만,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상식을 크게 밑도는 의견을 주신 분들도 많았다. 그분들은 내 생각이 틀리고, 본인들의 생각이 맞는다고 주장하겠지만, 나 또한 그분들의 의견들보단 내 생각이 상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근거 없고 감정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또 반대로, 좋은 자료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논리적이고 생산적으로 비판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도 미국같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면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 중,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면 본인들도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도 있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히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에서 우린 돈을 받고 그만큼 우리의 시간을 남에게 빌려주는 거라서, 받는 만큼 일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감정적으로, 그리고 익명으로 남긴 분들 중 몇 명이나 본인 연봉의 절반 값이라도 할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본인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회사에서 그만큼 대우를 안 해준다고 생각할 텐데, 오히려 회사에서는 이런 분들에게 지금 주는 월급도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아주 오래된 논쟁이긴 한데, 정말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분들인데 회사에서 그만큼 보상을 못 받는다고 느낀다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된다. 왜 현재 직장에서는 이분의 능력만큼 대우를 안 해줄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어쩌면 그 회사에서는 이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능력도 없고 일도 잘 못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냥 받는 만큼만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더 대우가 좋은 곳으로 이직할 능력은 없으니 그냥 계속 그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만 회사에 있다면, 그 회사는 발전할 수가 없고, 제발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직원 중 이런 분들은 한 명도 없길 바란다.

실리콘밸리 회사들같이 억대 연봉을 주고, 스톡옵션을 주면, 본인들도 한국에서 개 같이 일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음,,,이 의견들도 나는 동의하기가 어렵긴 했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5억 원 연봉을 받는다고 해보자. 절반 세금 내면, 세후 월급이 2,100만 원 정도인데, 가족이 있다면, 그리고 월세를 내고 있다면, 1,000만 원 이상이 월세로 나갈 수 있다. 애들이 있다면 엄마, 아빠가 각각 차가 있어야 하는데, 자동차 할부값 내고, 생활비 내고 하면, 솔직히 거의 저축을 못 할 수도 있다. 이 동네 물가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아는 분들은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실리콘밸리의 높은 연봉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고, 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 동네 스타트업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 회사는 스톡옵션도 안 주고, 회사 잘 되면 대표만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그건 그 회사의 문제지 한국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회사에 다니면 그냥 스톡옵션 주는 회사로 옮기면 된다. 아니면, 본인이 일을 못 해서 주식 보상을 못 받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부류의 댓글에 대해서는,

“너 같은 인간들이 있으니까 벤처 캐피탈 운운하는 인간들이 흡혈귀 취급을 받지.”
“VC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생각이 남다르시네요”
“글 쓴 분은 벤처캐피탈 대표니까 이런 발상이 되죠 ㅋㅋ”

이 글은 내가 쓴 것이지 VC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나 나는 주 3일 근무하고, 주중에 골프 치고, 밤에 술 먹고, 일도 안 하면서, 투자한 회사 대표들 족치면서 개 같이 일하라고 닦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완벽한 오산이다. 내가 장담하건대, 나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창업가분들만큼 열심히 일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짜증이 났던 이런 댓글이 있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총,균,쇠 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정복하는 문명과 정복당하는 문명의 차이는 사람들이 근면하고 게으르고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였다.. 라는 내용이 주제입니다.
사실 한국은 이미 망했습니다.
이미 망했으나 아직 망함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 와서 좀 더 열심히 일해 봤자 돌이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애 낳을 시간도 없었던 거 같네요.”

그 환경은 그럼 누가 만들까? 그냥 처음부터 환경이라는 게 만들어져 있었을까? 우리 개개인이 이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지금 한국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정복하는 문명이 정복당하는 문명이 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그리고 이분이 어떤 분인지 참 궁금하다. 그리고 왜 그럼 아직 한국에 살고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돈이 없거나, 온갖 핑계를 대면서 외국에 못 나간다고 하겠지. 그럼 더 열심히 해서 한국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진 않을까?

잘 사는 나라가 더 잘 살기 위해선, 국민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한국도 이젠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끼기 시작했는데, 모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은.

내 제품의 첫번째 고객은 나

이 블로그에서 ‘개밥 먹기’에 대해서는 지난 18년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썼는데, 그만큼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에겐 본인이 만든 제품을 1부터 100까지 직접 다 사용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만든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내가 하나씩 사용해 보고, 혹시 이상한 건 없는지, 치명적인 버그는 없는지, 이런 점들을 남이 발견하기 전에 먼저 발견하고, 매일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는 작업은 창업가들이 절대로 소홀히 하면 안 되는 필수 작업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특히, 요새 같이 어려운 시기엔 회사에 피 같은 자금이 고갈되지 않게 대표이사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서 직원들 월급이 밀리지 않게 해야 하고,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여러 가지 동기 부여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돌아버릴 지경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이 절대로 하루도 멈추면 안 되는 게 우리 제품 사용하기, 즉, 우리 개밥 먹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가 고객을 위해서 만들고 있는 제품을 매일 실행하고, 매일 사용해야 한다. 혹시나 기능이 잘 못 되지 않았을까, 숨은 버그가 있지 않을까, 서버가 다운되지 않았을까 등, 하루 종일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 개밥 먹기는 너무나 당연한 스타트업의 첫 번째 법칙인데, 또 이만큼 잘 안 지켜지는 원칙도 없는 것 같다. 실은, 스트롱의 포트폴리오들도 이 비난을 피해 가기가 어렵다. 얼마나 본인들이 만드는 제품을 안 쓰면, 아주 심각한 에러가 발생한 것도 모르다가 나 같은 투자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한참 후에 발견한 오류를 제보해 주면, 그제야 “아, 그런가요?” 하면서 원인 파악을 시작해 본다. 새로운 기능이 출시됐다고 언론에 PR까지 때리면서, 막상 대표에게 그 기능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면 본인도 잘 사용 안 해봤다면서 PM과 나를 연결해 준 경우도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밥 먹기’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다녔던 짧은 기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오피스 제품을 담당하는 글로벌 부사장이 오피스 제품의 기능을 하나씩 데모하면서 청중의 질문에 모두 답변했던 기억이다. 그만큼 이분은 본인이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구석구석 다 사용하면서 개밥을 열심히 먹었다는 의미다. 실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샅샅이 다 핥아먹었는데, 그때 정말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대표와 그 회사의 모든 직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 어떤 작가라도, 본인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작가 그 자신이다. 작가가 쓴 책을 스스로 읽었는데 본인이 그 책이 맘에 안 든다면, 다른 독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은 이 제품을 만드는 우리 회사의 임직원들이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우리도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이걸 어떻게 자랑스럽게 고객에게 보여주고 심지어 돈을 받고 판매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만든 제품을 구석구석 꼼꼼히 사용해 보면, 분명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고, 수많은 버그를 발견할 것이다. 내가 만든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인 내가 수많은 버그를 발견한다면, 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인 우리 회사 사람들도 우리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조차 우리 제품을 사랑할 수가 없다.

이런 개 허접한 제품을 우린 어떻게 시장에 출시하고,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사라고 강요하겠는가? 절대로 이렇게 해선 안 되는데, 실은 너무나 많은 스타트업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매일 한다. 너무 많은 스타트업이 본인들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 않은 거지 같은 제품을 출시한다. 그러면서 모두 다 대박 나는 유니콘을 꿈꾼다. 모두 다 꿈 깨시길.

에어비앤비의 공동창업가 Brian Chesky 대표가 요샌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2022년까지 집 없이, 에어비앤비에서 여기저기 숙소를 예약하면서 1년 내내 살았다. 이 세상 모든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그에겐 있지만, 사장은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눈감고도 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그가 항상 농담처럼 하던 말이 “저는 말 그대로 아직도 우리 사이트에서 살고 있습니다(I still live on the site).” 였는데, 에어비앤비 사장이 집이 없고 회사 웹사이트에서 살고 있다는 건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훨씬 더 작은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은 눈 감고도 본인들의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UI와 UX를 거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줄줄 외워야 한다.

내가 만든 개밥의 첫 번째 고객은 나 자신이다. 내가 만든 개밥을 내가 맛없어서 못 먹는다면, 그 누구도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기본기

올해도 첫 번째 그랜드슬램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이 잘 끝났다. 마지막에 노장 노박 조코비치가 컨디션 난조로 기권하면서 내가 응원하는 선수들은 모두 탈락했지만, 좋은 젊은 선수들의 경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등장했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들이 발굴됐는데, 당분간은 남자 테니스도 계속 물갈이를 반복하며 운이 좋은 선수와 실력이 있는 선수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반짝 떴던 선수들이 올해는 초반에 많이 탈락했는데, 이들은 겉으론 화려하고, 본인들이 스스로 PR을 매우 잘해서 항상 이슈 메이킹을 하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단단하지가 않고 뭔가 항상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 다 젊고, 포핸드이든 백핸드이든 강력한 무기는 하나씩 갖고 있는데, 왜 항상 불안한 플레이를 하는지 조금 자세히 보면, 이들의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잘하는 선수한테 절대로 못 이기는데, 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떴고, 어떤 이들은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 물론, 딱 한 번이다. 그 이상은 힘들다. –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 진짜 잘하는 상위 랭커들이 어쩌다 초반에 탈락해서 이들과 대진표에서 만나지 않았거나, 붙었는데 컨디션 난조 때문에 진 걸 운 좋은 선수들이 실력으로 이겼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반 렌들, 피트 샘프라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 이들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근대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들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완벽한 기본기 위에 자기만의 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테니스의 기본기에 대해서 말하면 항상 생각나는 인터뷰가 있다. 라파엘 나달의 인터뷰인데 아마도 이 인터뷰도 오래전 호주 오픈에서 치열한 5세트 접전까지 가서 우승한 후에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경기를 했고, 멋지게 이겼는지 사회자가 물어보자, 나달은 이렇게 짧게 대답했다. “I ran very fast and I hit very hard.”

그 인터뷰를 봤을 때, 뭐 저런 초등학생 같은 이야기를,,,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오한 이야기고, 테니스나 다른 운동이나, 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탄탄한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빨리 뛰고, 세게 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테니스의 기본이지만, 이 기본기가 완벽한 프로 테니스 선수들이 몇 명 안 된다. 그 몇 안 되는 선수들이 지금 상위 랭커들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 인생의 기본기가 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자기만의 철학, 생각, 근면, 성실, 루틴, 규율 등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업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의 기본은 주로 제품, 고객, 매출 등이다. 이런 기본기를 제대로 만들지도 않고 겉만 화려한 창업가나 사업은 운 좋게 한두 번은 반짝 뜰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순 없다. PR을 얼마나 잘하는지, 투자를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어떤 유명한 VC에게 투자받았는지, 대표이사의 팔로워 수가 몇 명인지 등은 사업의 기본기와 지속가능성과는 큰 상관은 없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내는 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이에 따라서 매출을 만드는 게 사업의 기본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업의 기본기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본기를 잊어버리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경기의 95%는 이길 것이다. 나머지 5%까지 이기고 싶다면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과 실수를 하면서 자기만의 무기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경기의 95%는 질 것이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주 52시간 근무제의 열렬한 옹호자이거나, 워라밸을 맹신하는 분들은 이 글의 내용이 매우 불편할 겁니다. 악플을 쓰시려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얼마 전에 포스팅한 과 같이 올해는 걱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글로벌 매크로 경기도 안 좋지만,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은 특히 많은 한국 스타트업과 우리 같이 한국에 투자하는 VC들의 발목과 손목을 꽉 잡을 것이다. 실은,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어차피 5년 이후를 보고 지금 대폭 할인된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계속 긍정적으로 투자는 하지만,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이 벤처 시장에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게 있는데, 이건 바로 한국 직장인들의 근면, 성실함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외국 투자자들에게 우리가 한국의 장점으로 항상 강조하는 건 바로 한국인들이 그 어떤 민족보다 똑똑하고, 여기에다가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는 거였는데, 아직도 이 말은 대부분 맞지만, 한국인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외국인들에게 강조할 때 점점 더 나 자신이 자랑스럽지가 않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대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삼성이나 LG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 말을 들어보면, 어차피 이 회사들은 소수의 사람들이 일을 다 하니까, 나머지는 그냥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마인드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회사가 돌아가니까 대기업들이 현상 유지는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발전이 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가장 큰 걱정은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은 스타트업의 임직원분들이 일을 너무 안 한다는 것이다. 요샌 평일 오후 6시 이후에 불이 켜진 스타트업 사무실이 거의 없고, 주말은 당연히 아무도 안 나온다. 내가 공개적으로 자주 말하는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보다도 요새 스타트업 사람들은 일을 안 하는 것 같다. 이건 정말 문제가 많다.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나는 1년 365일 일한다. 주말에도 일하고, 오전, 오후, 밤늦게까지 일한다. 투자자도 이렇게 일하는데,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은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스타트업도 나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창업가들은 오래, 열심히 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반박하고, 정말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5시간만 일해도 할 일은 다 한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이 말을 믿었지만, 이젠 안 믿는다. 일단, 이런 말을 하는 창업가들의 회사의 실적이 이런 나의 믿음을 증명한다. 대부분 형편없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내가 강조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질 수밖에 없는 경기를 하므로, 효율적으로 일하는 건 기본이고, 여기에다가 무조건 오래 일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회사에 오래 있어야 하고,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95%의 스타트업은 경기에서 지고 망한다.

어디서부터 한국의 이런 근면성실함이 망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악성 코드이자 버그다. 주 52시간 꼬박 지키고, 워라밸 다 챙기면 우린 국가적으로 계속 후퇴할 것이다. 그동안 쌓아놓은 체력이 있어서 그나마 한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지만, 덜 일 하고, 더 많이 노는 문화와 태도가 아예 정착되면 한국은 유럽이 가고 있는 길을 그대로 가게 될 것이다. 꽤 강대국이었던 유럽 대부분 국가는 아주 빠르게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데,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유럽인들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더 안 하고 정부에 요구하는 건 더 많아지면서, 이들은 여름휴가를 한 달 이상 가고, 세 시간 점심시간에 와인 한 병씩 먹으면서 삶의 질이 좋다고 하지만, 이건 오래 가지 못한다. 나라가 망하면 삶 자체가 없어지는데, 이걸 모르는지 아니면 그냥 될 대로 돼라 마인드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실리콘 밸리는 워라밸의 천국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분들 중 그 누구도 실리콘 밸리의 제대로 된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다. 그냥 ~카더라 소문만 듣거나, 실리콘 밸리에서 3개월 연수 다녀온 사람들이다. 실리콘 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곳이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나라다. 겉으로 보면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사람들이 설렁설렁 일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정말 치열하게 일한다. 그렇게 안 하면 한국과 다르게 바로 해고당하기 때문이다. 원래 최고의 강대국인데, 이렇게 모두 다 열심히 일하니까 미국은 더욱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잘 사는 나라가 더 잘 살기 위해선, 국민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한국도 이젠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끼기 시작했는데, 모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