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내가 안 하는 것들

얼마 전에 끝난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10위 안에는 못 들었지만, 총 10개의 메달을 따면서 나름 선방했다. 으레 그렇듯이, 선수들이 귀국한 후에 메달리스트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결승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운동은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지 등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하는 걸 몇 번 봤다.

내가 모든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본 건 아니지만, 메달리스트들에게 물어보는 공통된 질문들이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뭔가요?” ,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습관 같은 게 있나요?” , “바빠도 매일 꼭 챙겨 먹는 게 있나요?” 등과 같이 매일 하는 것, 또는 항상 챙기는 것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은 사회자나 스태프가 선수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이 분은 뭘 먹고, 뭘 입고, 어떤 운동을 하고, 누굴 만나고, 자기 전에 하는 어떤 습관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챔피언의 하루’를 촬영한다.

실은, 이런 포맷의 인터뷰와 프로그램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워낙 흔한 거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보는데, 나는 오히려 위대한 챔피언들을 챔피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이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보다,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운동선수들에게 “당신이 절대로 하지 않는 건 뭔가요?” , “당신이 절대로 먹지 않는 게 있나요?” ,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절대로 만들지 않았던 습관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데 난 오히려 이런 것들을 공개 방송에서 물어봤으면 한다.

실제로 위대한 운동선수, 사업가, 군인 등과 같이 한 분야에서 남들보다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분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면, 이들이 강조하는, 현재 본인들의 위치에 오르는 데 가장 중요했던 건, 반드시 지키고 했던 루틴보다 반드시 하지 않았던 루틴과 습관이라고 하는 걸 나는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엔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소식과 운동으로 건강을 지킨다는 공통적인 대답을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건 그 대답의 이면에 있는 과식하지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 같다. 즉, 뭘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 한가지씩만 비결을 댓글로 공유해 주면 좋겠다.

네트워킹의 조모(JOMO)

외부 투자를 아예 안 받고 revenue funding으로 본인의 교육 스타트업을 성장시킨 후 좋은 회사에 엑싯한 존경하는 창업가이자 오래된 내 친구 블레인이 얼마 전에 이런 링크드인 포스팅을 했다. 내용이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과 창업가들에게 하는 조언과 거의 비슷해서 짧게 몇 자 더 적어 보고 싶다.

일단 이 포스팅에서 하는 말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는 네트워킹이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고, 네트워킹 행사에 가면 대부분 참석자는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행사에 안 온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는 네트워킹 행사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창업가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웬만하면 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조금 극단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실제로 창업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오는 네트워킹 행사는 드물고, 이런 행사는 상당히 비싸다. 그리고 이런 행사는 참석자들을 선별하기 때문에 도움을 얻으려고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는 창업가들은 초대받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왜 우린 네트워킹 행사에 목숨을 걸까?

다른 분들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과거 경험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나도 2010년 전후로 LA에서 뮤직쉐이크에 있을 때 한 1년 동안 네트워킹에 목숨을 건 시기가 있었다. 내가 살던 LA는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의 수도였고, 1시간 15분 정도 비행기 타고 북쪽으로 가면 테크와 VC의 수도인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가 있었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세계 경제가 복귀하면서 이 두 도시에서는 투자자와 창업가를 연결해 준다는 네트워킹 행사와 파티가 날마다 열렸고 나는 정말 열심히 행사에 참여했다. 오전에 샌프란시스코 행사에 참여했다가 비행기 타고 LA로 복귀해서 저녁에 산타모니카 행사로 직행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 시기가 지난 후에 내가 과연 몇 개의 행사에 참석했는지 세어 본 적이 있는데, 1년에 한 110번 정도였던 것 같다. 모두 다 “네트워킹”이라는 명목하에. 모두 다 “사업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1년 동안 미친 듯이 행사에 참석한 후에 나는 아예 행사 다니는 걸 멈췄다. 그다음 해에는 5개 미만의 행사에 참석했던 것 같고, 그 이후에는 그 숫자가 0으로 줄었다.

일단, 그렇게 행사에 참석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과 ‘네트워킹’을 시도했지만, 결국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큰 회사(예: 페이스북, 구글, 음악 레이블 회사 등) 사람들도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결국 이 사람들은 이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나는 전혀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행사에 오는 사람들이 전부 다 낯익은 얼굴이 됐다. 똑같이 뻔한 사람들만 계속 네트워킹 행사에 오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도 나처럼 본인들은 상대방에게 줄 게 전혀 없고, 상대방에게 도움만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행사에서 항상 마주치던 창업가들을 보고 – 이들이 나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 나는 “저 사람들은 이렇게 행사만 찾아다니면, 도대체 일은 언제 할까? 제품은 언제 만들고, 고객은 언제 만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분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잘 안되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해졌다. 대표이사가 일은 안 하고 이런 행사에서 시간 낭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사업을 잘하고 있는 창업가들은 도대체 내가 이렇게 네트워킹 행사에서 시간 때울 때 이들은 뭐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행사에서 기웃거리면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 잘하는 창업가들은 제대로 된 제품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building and shipping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본인이 만든 제품을 고객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치밀하게 관찰하고 고객과 시장과 소통하면서 사업의 본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도 대부분 스타트업은 망한다는 걸 깨달았고, 대표가 네트워킹 행사만 참석하면 그나마 이런 승산도 없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많은 창업가가 이런 네트워킹 행사에 안 가면 본인들만 뭔가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인 FOMO(Fear of Missing Out)에 불안해하지만, 나는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놓치는 즐거움인 JOMO(Joy of Missing Out)를 실천하고 즐기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네트워킹 행사에 안 가면서 FOMO가 아닌 JOMO를 즐기는데, 훨씬 더 생산적이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에 갈 시간에,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고객을 만들고, 좋은 매출을 만들고, 나만의 내공을 쌓아서 네트워킹 행사에서 남들이 꼭 이야기해 보고 싶고,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 직접 돼라. 결국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다.

네임드롭핑

네임드롭핑(namedropping)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꽤 자주 했는데, 최근에 이런 분들을 갑자기 몇 명 만나서 또 해보려고 한다.

Namedropping은 말 그대로 “이름을 내뱉다”라는 의미인데, 쓸데없이 아는 사람의 이름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본인들이 직접 이런 경험이 있거나, 주변에 네임드롭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과거에 가끔 네임드롭핑을 했던 시기가 있고, 아직도 내 주변에는 본인이 아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쉬지 않고 줄줄 내뱉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렇게 하면 본인들이 돋보이는 줄 아는데, 실은 결과는 완전히 그 반대다.

얼마전에 만났던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내 인생 두번째 네임드롭퍼였다.(내 인생 일등의 네임드롭퍼는 세계 최강). 이 분과 35분 미팅했는데, 그 35분 동안 본인이 아는 투자자, 연예인, 정치인, 사업가의 이름 거의 20개를 나에게 배설했다. 실은 이 중 내가 아는 분들도 있었고, 꽤 친한 분들도 있었는데, 나는 다른 사람 아는체 하는걸 별로 안 좋아하고, 특히나 정말 친하지 않으면 절대로 친하다는 말을 안 하는 편이다. 이 분이 잘 안다고 하는 분들과 정말로 “형, 동생, 누님” 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친한진 모르겠지만, 내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까지 하자 조금 직설적으로 이 미팅은 끝났으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누굴 아는지 관심도 없고,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렇게 당신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면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라는 말을 처음 보는 사람 면상에서 하자니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안 그랬으면 내가 나중에 시간 낭비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가 날 것 같았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이 포스팅의 내용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는 내가 미팅하는 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이 분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이 분이 누굴 알고, 누구랑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아는 그 분이 얼마나 돈이 많고, 얼마짜리 차를 몰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 없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같이 사회적인 체면이 중요하고, 내가 뭘 아는가 보다, 누굴 아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곳에서는 네임드롭핑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어쨌든 나랑 만날 땐 제발 이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임드롭핑을 꼭 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칭찬해라. 험담은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그리고 듣는 자, 이렇게 세 명을 그 자리에서 죽인다.

참 어려운 상장 시장

우리는 쿠팡의 매우 작은 주주이다. 스트롱이 쿠팡에 직접 투자하진 않았지만, 스트로의 포트폴리오였던 Recomio라는 회사가 쿠팡에 주식교환으로 인수되면서 쿠팡의 주주가 됐고, 상장 주식을 대부분 팔았지만 아직 소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의 포트폴리오인데 이미 이 펀드의 나이는 14살이 되어 간다. 청산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의 LP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물어봤던 질문이 남은 쿠팡 주식 처분 시점이다.

이분들에게 나의 한결같은 답변은 “한국에 살면 직접 체감할 수 있는데, 쿠팡은 한국의 이커머스를 완전히 다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현재 쿠팡 주가는(당시 $30 ~ $35 정도)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르면 팔 건데 그게 최소 $50 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였다. 실은 매우 확신에 찬 자신 있는 답변이었다. 솔직히 겉으로는 $50라고 했지만, 내 마음속엔 쿠팡은 $100까지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만 해도 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쿠팡이 보여준 태도와 중요한 순간에 했던 결정들의 질이 상당히 실망스러웠고, 그 결과 때문에 현재 쿠팡 주식은 $20를 하회하고 있다. 역시 어떤 LP 분들은 나에게 과연 쿠팡 주식이 앞으로 $50 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사가 상장하면, 스트롱은 어떤 기준으로 상장 주식을 처리할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몇 주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내 결론은 상장 시장은 참 어려운 시장이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겐 – 특히나 우리 같이 극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 제3외국어와 같이 이해하고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 사업 자체의 펀더멘탈이 무너져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볼 순 없다. 쿠팡의 펀더멘탈은 실은 매우 강하다. 이 정도로 물류 인프라를 잘 운영하고, 이 정도로 세상 온갖 제품을 잘 판매하는 회사는 한국에 없고, 전 세계에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사업은 잘 한다. 물론, 그 물류와 이커머스 사업의 인프라를 비인간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업 자체만 봤을 땐 굉장히 탄탄한 회사다. 주가가 폭락하는 이유는 시장의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고, 흔히 이 바닥에서 말하는 FUDGE(Fear, Uncertainty, Doubt, Greed, Emotion)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에서 만난 어떤 투자자는 중국의 VC에 오래전에 투자했는데, 이 VC가 초기 투자했던 중국 회사가 상장하면서 당시의 시총에 의하면 거의 2,000배의 돈을 (서류상으로)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VC는 마치 내가 쿠팡에 대해서 확신했듯이, 그 회사의 펀더멘탈이 강하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몇 년 후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상장 주식을 안 팔고 계속 보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4년을 더 보유했는데, 그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 가격은 4년 전과 똑같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돈을 크게 잃진 않았지만, 이 VC에 투자한 LP들은 4년 동안 실제 배분받은 건 한 푼도 없었고,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실은 이 회사는 그동안 매출은 많이 증가했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와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상장 시장은 비상장 시장과 많이 다르다. 남들은 비상장 시장이 비이성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상장 시장이 더 비이성적인 것 같다. 논리보단 감정, 두려움과 욕심이 주가를 움직이는 시장인데, 솔직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비이성적이라서 이게 고스란히 상장 시장에 전체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쿠팡 사태로 내가 배운 점은 – 그리고 아직도 이 배움은 계속 되고 있다 –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파는 게 어쩌면 VC들에겐 더 맞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속 보유하면서 상장 시장을 공부하고 예측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상장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건 우리 같은 초기 VC들이 잘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다.

정치적 사업

미국 출장 중에 어떤 미국 VC가 혹시 스트롱이 이런 회사에 투자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이 분은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어떤 시장에, 어떤 조건으로 투자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딜을 공유해 준 것 같다. 희토류 관련 사업을 하는 미국 회사인데 현재 약 3조 원 밸류로 여러 VC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투자하기엔 너무나 비싼 회사였고, 분야도 좀 그렇고, 시장도 한국이 아니라서 듣자마자 바로 패스이긴 했는데, 그냥 희토류 시장 자체가 좀 궁금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15분 정도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의 90%가 중국에 있어서 우리가 이야기하던 이 3조 원 밸류의 회사는 남은 10%의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실제 매출은 전혀 없고, 예약된 매출만 있다는 것이었다. 예약된 매출이란 중국과 미국의 마찰 때문에 미국 정부가 희토류 확보를 위해서 이 회사를 엄청나게 밀어주고 있어서 미국 정부로부터 부킹?된 매출이다. 나는 이 사업이 과연 잘 될지, 그리고 매출 0원인 회사의 기업가치가 3조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는지, 도대체 이 회사에 이미 커밋한 투자자들은 누구이고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짜 궁금하긴 했다.

미래에 예약된(=부킹된) 매출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사업하는 우리 투자사들도 있는데, 이 부킹이 된 매출 중 실제 매출로 전환되는 금액은 대부분 0이거나 매우 작다. 아마도 위에서 이야기한 희토류 회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부킹된 매출이라서 전환율은 조금 더 높을 것 같지만, 현재 미국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이 또한 불확실성 투성이다.

이런 사업을 우리는 정치적인 사업(political business)이라고 한다. 상업적인 사업(commercial business)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업이고,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제대로 된 사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과의 마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밀어주는 분야라서 갑자기 떴고, 주목받는 사업이라서 이런 회사에 3조 원 밸류에이션에 돈을 쏘는 투자자도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미중 관계가 좋아지거나, 또는 미국 정부의 희토류에 대한 기조가 바뀐다면 하루 만에 망할 수도 있는 그런 사업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이런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을 만난다. 자생할 수 있는 기술, 제품, 서비스는 없고 정부의 기조 때문에 운 좋게 큰 계약을 하거나 큰 매출을 만드는 정치적인 사업이 실은 한국에도 꽤 많다. 워낙 한국 정부가 과감한 드라이브를 많이 걸고, 특정 분야가 뜬다고 하면 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온갖 정부 과제와 보조금이 갑자기 생기기 때문이다.

창업자나 투자자도 본인들이 하는 사업과 투자 검토하는 사업이 정치적인 사업인지 시장의 논리로 돌아가는 상업적인 사업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관건은 이 사업에서 정치적인 부분이 없어져도 자생할 수 있는 제품, 매출, 그리고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인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