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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가르칠 수 없는 것

일주일 전에 내가 10년째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26기 데모데이가 있었다. 나는 프라이머 데모데이는 항상 흥행 수표라고 농담하는데, 이날도 1,000명이 넘는 분들이 와서 한국의 창업 열기는 아직도 뜨겁고, 이제 시작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가졌다. 프라이머 데모데이의 주인은 창업가들이고,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Ask Me Anything) 세션이다. 몇 년 전부터 이 AMA 세션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고, 우리도 편안하게 좋은 분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어서 이번에도 진행했고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서울대학교 학생이 본인도 창업에 관심이 많은데 학생 때는 뭘 하면 창업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지 물어봤고, 나는 이분에게 졸업하고 창업할 생각이면 학생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 알려줬다.

일단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스타트업과 테크 관련 기사와 뉴스레터를 읽으라고 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현재 어떤 창업가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에 대해서 잘 공부하고 있으면, 큰 기술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는 아니겠지만, 대략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기사와 뉴스레터 읽는 건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대학 4년 동안 스스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습관화될 것이다.
두 번째는,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라고 했다. 뛰어난 창업가들은 모두 에디슨같이 많은 질문을 한다. 이들은 계속 “왜?”라고 질문하고,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하면 본인들이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창업하는데, 이게 일반인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이건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 물어볼 순 있는데, “그건 원래 그래요.”라는 답을 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질문을 멈춘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왜 원래 그런가요? 원래 그런 게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남들이 잘 못 보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 시작한다. 실은 이런 질문하는 것도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대학 4년 동안 스스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어느 정도 습관화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술 좀 작작 먹고 그 시간에 기사 읽고,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라고 했다. 이 또한 4년 동안 반복하면 금주가 습관화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친구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는데, 괜히 공개적으로 실망하게 하기 싫어서 AMA 세션에서는 더 이상 입을 벌리지 않았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어떤 좋은 학교라도 창업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샌 웬만한 대학교에 창업 관련 수업도 있고,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심지어 어떤 대학에는 창업학과도 있는 걸 봤다. 내가 봤을 땐 다 예산 낭비, 시간 낭비고, 이런 수업을 듣는 건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과 이야기하고, 투자를 받고, 직원을 채용하고, 그리고 수많은 우울감, 공황, 그리고 저점을 경험하면서 바퀴벌레같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건 그 어떤 교수도 가르칠 수 없고, 그 어떤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창업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준비가 되면 창업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창업하고,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으면 창업하고, 돈을 모으면 창업하고,,,등등 수많은 준비를 하고 창업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다 창업 안 한다. 이들은 안 하는 사람들이다.

창업하고 싶다면 이론을 만들지 말고,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해라. 하는 사람이 돼라. 그리고 학교에서 창업을 배우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못 가르쳐준다.

한 박자 쉬기

스타트업은 행동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는 것이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이론을 만들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일단 행동한다. 일단 행동하고, 그 이후에 고민하는데,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 창업가들에겐 이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나도 이런 분들과 매일 같이 일하면서 보고 배운 게 있어서 그런지, 일단 먼저 빠르게 행동하고 고민하는 편이긴 하다. 특히 여러 사람이 같이하는 일이라면, 너무 오래 고민한 후에 내리는 완벽한 결정보단 – 그런데 오래 고민한다고 그 결정의 질이 높아지진 않는다 – 일단 내가 할 일을 빨리하고 그다음 사람이 결정할 수 있도록 일을 넘겨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리가 하는 일 중 많은 게 이렇다.

그런데 가끔은 당장 행동하지 않고, 한 몇 시간, 또는 하루 정도 후에 결정하면 서로에게 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요새 내가 이런 경험을 꽤 많이 하고 있다.

최근에 두 가지 완전히 반대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뒷골이 확 당기는, 아주 화가 나는 내용을 읽었다. 나는 웬만한 이메일이나 문자는 항상 확인하자마자 바로 답변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런 내 스타일대로 그때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에 이입해서 바로 답했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그리고 약간은 감정적으로 쓴 답변이 상대방을 더 자극했고, 더 자극적인 답변이 오면서 실제로는 점잖은 두 어른이 이메일로 싸움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욱’하는 이메일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내가 가장 먼저 답변한 내 이메일 내용을 다시 봤고, 이걸 읽자마자 “아, 이렇게 내가 답변을 하면 안 됐었구나.”라는 생각을 즉시 했다. 그리고 좀 후회했고, 바로 상대방에게 전화해서 사과하면서 잘 풀긴 했다.

또 다른 경험의 시작도 위와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역시 뒷골이 확 당기는, 아주 화가 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오전 8시에 미팅이 있어서,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하는 바람에 이메일에 바로 답변을 못 했다. 그리고 한 4시간 후에 조금 여유가 있을 때 다시 내용을 읽어보니, 뭐, 그렇게 내가 화를 내거나 흥분할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주 어른스럽고 점잖게 답변을 해서 서로 만족할 만한 선에서 원만하게 일을 처리했다. 만약에 내가 오전에 운동하지 않고 바로 요 이메일에 답변을 했다면 위에서 공유했던 다른 경우와 비슷하게 자극적이고 감정적으로 답변했을 테고, 그러면 또 서로 피곤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화가 나는 내용의 이메일이나 문자를 받거나, 아니면 전화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속에서 ‘욱’하는 게 올라오면, 절대로 당장 답변을 하지 않는다. 한 2시간 정도만 가만히 있다가 답변하거나, 화가 아주 많이 났다면 하루 정도 자고 생각해 본다. 영어로는 “let me sleep on it”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렇게 어느 정도 시간을 갖다 보면 놀랄 정도로 같은 내용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한다.

이 분야에 있으면 대부분 항상 즉각적인 행동을 강조하긴 하지만, 가끔은 한 박자 쉬고 행동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욕심과 능력의 조율

관련해서 내가 여러 번 포스팅했고,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을 포함, 나를 만나본 분들은 나한테 자주 듣는 말인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관련 내용이다. 작든 크든, 회사를 운영할 때 대표이사는 스스로에게 매우 냉정하게 물어보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본인과 팀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구분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회사의 스킬과 능력이다. 예를 들어, 팀이 그동안 해왔던 게 개발이라면, 이 팀이 잘하는 건 개발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말 그대로 회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 팀이 하고 싶은 일이다. 즉, 욕심이다. 잘하는 건 개발일 수도 있지만, 대표이사가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열심히 취미 생활을 했던 건 케이팝 공연 기획일 수도 있다. 이 회사는 개발을 해야할까 케이팝 공연을 기획해야 할까?

이렇게 회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르면, 사업의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질 확률이 높다. 이 경우에 너무 많은 창업가가 본인과 팀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시하고 과소평가하고, 하고 싶은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여기에 집중한다. 최악의 경우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너무나 하고 싶은 일에 계속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이 구조에 따라서 사업을 멀리서 바라보면 – 너무 가까이서 보면 내가 지금 잘하는 걸 하는지, 아니면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지, 이게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두 원이 일치하는 완벽한 교집합에서 사업을 하면 성공의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론적으론 이게 맞지만, 이 완벽한 교집합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서 나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에게 이 두 원이 조금이라도 겹치는 접점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하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은 지금 당장 내가 상대적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일 테고, 그 교집합의 면적이 작아서 일단 작게 시작해 보면, 작지만,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작지만, 그 작은 목표 또한 상대적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와 자신감이 생기면, 이를 기반으로 실력을 더 강화한 후 이 두 원의 교집합의 면적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 결론은 무조건 내가 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게 모든 결정의 시작이 돼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기반으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를 판단해 보고, 아니라면 하지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이라도 내가 잘하는 것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기반으로, 이게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인지를 – 즉, 시장이 존재하는지 –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항상 강조하지만,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분야에서 창업한다면, 그만큼 성공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어느 정도 일치해도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일치되면, 나머지 하나의 원과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운 좋으면 이 과정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접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객 서비스는 왜 좋아질 수 없을까?

얼마 전에 열흘 정도 미국에 다녀왔다. 나는 미국 출장을 가면 동부로 들어가서 서부로 나오거나, 반대로 서부로 들어가서 동부로 나오는데,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서 이동하는 게 참 어렵다. 이번에도 미국 내에서만 방문한 곳이 꽤 많고, 땅덩어리가 커서 직행 비행기 노선이 없는 곳도 많아서 미국 내에서만 비행기를 8번 탔다. 이전에는 다양한 항공사를 이용했지만, 대한항공과 제휴되기도 하고 그나마 서비스가 나은 것 같아서 요샌 미국 내에서는 델타만 이용하는데, 이번에 좀 크게 짜증 나는 경험을 했다.

동부에서 출발해서 중부 테네시주 내쉬빌에 오후 1시에 착륙했다. 나는 오후 4시에 여기서 미팅이 있었고, 저녁 8시 비행기로 다시 바로 서부 LA로 가는 일정이었다. 큰 짐이 있어서 이걸 들고 이동하는 게 좀 귀찮았지만, 저녁 8시 비행기에 짐을 체크인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델타에 물어보니 8시 비행기지만 2시에 짐을 체크인해도 된다고 해서 일단 가방은 체크인하고 내쉬빌 시내에서 미팅하고 6시쯤 다시 공항에 왔다. 이때부터 30분 단위로 출발이 계속 지연되면서 결국엔 밤 10시 정도에 LA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됐다. 뭐, 미국 국내 항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취소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이것까진 괜찮았다. 기상 문제로 인해서 취소돼서 자동으로 그다음 날 LA로 가는 항공편 예약이 됐는데,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도 미팅에 늦을 예정이라서, 일단 LA 미팅도 다 취소하고, 내쉬빌에서 예정에 없던 1박을 하게 됐다.

다시 짐을 찾기 위해서 수화물 칸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들 짐은 모두 다 빙글빙글 돌면서 나왔는데, 유독 내 짐만 안 보여서 확인해 보니, 이미 내 가방은 LA 공항에 도착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내쉬빌 공항 델타 수화물 사무소 직원분에게 LA 공항 수화물 사무소에 연락해서 내일 이 가방을 다시 내쉬빌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맨몸으로 호텔에 체크인했다. 델타 직원분은 다음 날 오전 11시 정도에 가방이 다시 올 것이고, 도착하면 나에게 전화하라는 메모를 시스템 안에 남겨 놨다. 그런데 그다음 날 델타 앱을 통해서 확인해 보니 내 짐은 아직도 LA 공항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델타 내쉬빌 수화물 사무소에도 전화를 해봤고, 델타 고객 서비스 번호로도 전화해 봤지만, 그 누구 와도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고객 서비스 번호는 최소 대기 시간이 90분이었는데, 거의 70분을 기다렸는데 전화가 끊겼다.

너무 답답해서 다시 내쉬빌 공항 수화물 사무소로 갔다. 일단 여기서도 30분 대기 후에 어제와는 다른 직원에게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잘 설명한 후 – 예상은 했었지만, 내부 시스템에 내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음 – 내 가방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본인도 어깨를 쓱 하면서 “LA에 있네요. 이게 왜 내쉬빌로 오는 비행기에 안 실렸을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델타 직원들이 내부 번호로 LA 공항 수화물 사무소에도 계속 전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안 받고, 본인들도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듯했다. 어쨌든, 다음 비행기에 가방을 실어서 꼭 보내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원치 않은 일박을 내쉬빌에서 더했다.

그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다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 가방은 LA에 그대로 있었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이 병신 같은 항공사를 믿지 말고 그냥 내가 LA로 직접 날아가서 내 가방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쉬빌 공항으로 왔고, 수화물 서비스로 가서 역시나 새 담당자에게 내 상황을 다시 설명하고 내 가방을 내쉬빌로 보내지 말고, LA에 그대로 보관하라는 내부 긴급 지시를 해 달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했다. LA에 갔는데 가방은 내쉬빌로 출발했으면 정말 델타 직원 싸대기를 때려야 할 판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델타 직원한테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이 불행한 상황이 종료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LA로 가는 직항을 못 타고 미네소타를 경유해서 미네소타에서 LA로 날아가는 동안 하늘에서 와이파이 접속을 한 후에 델타 앱을 확인해 봤다. 앱을 누르면서도 왠지 불안했는데, 앱을 리프레시 하자마자 뭔가 상태가 바뀌었고, 내 가방이 LA에서 내쉬빌로 가는 비행기에 priority booking이 되어 있다는 업데이트가 떴다. 와,,,왜 이런 일이 나한테…항공법상 하늘에서 통화는 금지되어 있어서, 온갖 델타 관련 사이트를 다 뒤지다가 결국엔 델타의 페이스북 페이지 메신저와 연결됐다. 그리고 내가 가장 처음 물어봤던 질문은, “Are you a bot?” 이었다. 다행히도 사람이었고, 다시 한번 내 상황을 최대한 짧게 설명했고, 이 가방 절대로 비행기에 탑승하면 안 되니까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가방이 이미 비행기에 들어갔으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두 번이나 받은 후, 나는 그냥 비행기 안에서 초조하게 아름다운 구름만 보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LA에 도착하자마자 수화물 서비스 지역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도 꿈에 그리던 내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가방을 찾자마자 다시 델타 고객 서비스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시 내 상황을 설명하면서 LA까지의 항공비, 그리고 이 상황 때문에 내가 취소했던 미팅에 대해 보상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본인들은 창구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9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고객서비스로 전화해서 시도해 보라는 아주 성의 없는 답변만 받았다. 성질 같아서는 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여기서 지랄하면 경찰을 부를 것이라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알기 때문에 그냥 화를 꾹 참고 그다음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내 가방이 내가 타는 비행기에 실린다는 걸 확인한 후에.

이런 더러운 고객 경험은 항공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너무 자주 경험하는 흔한 일상이다. 고객 서비스는 정말 좋아질 수 없을까? 힘들게 번 돈을 이렇게 날렸는데,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상식적인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니,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지금보단 훨씬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 안 좋아지는 이유는 그냥 델타의 경영진에서 고객 서비스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회사의 경영진들은 내가 항상 강조하는 자기 회사의 개밥 먹기를 안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같은 일반 고객의 비행 경험을 직접 안 하므로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고객서비스 직원들이 얼마나 고객들을 무시하고 거지 같은 불친절을 제공하는지 모를 것이다. 알면 이런 고객 서비스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거지 같은 서비스에 쓰는 비용도 아깝다고 많은 미국 회사가 요새 AI를 활용해서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나는 이것도 정말 맘에 안 든다. 사람도 제대로 제공할 수 없는 고객 서비스를 과연 기계가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최근에 경험했던 이 상황에서 AI 봇이 나를 얼마큼 도와줄 수 있었을까?

이런 경험을 하고 – 그리고 델타 뿐만 아니라, 미국 Chase 은행에서도 아주 거지 같은 고객 서비스 경험을 많이 했다 – 한국에 돌아오니,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공사라는 생각을 했고, 하나은행도 너무 좋은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2 퍼센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환경에서의 행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에스컬레이터 옆에 계단이 있을 때, 100명 중 2명만 계단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건 그 어떤 나라에서 연구해도 거의 비슷하게 2%라는 수치가 나오는데, 이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게으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 말엔 동의한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현상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우리는 불편한 것보단 편한 것을 항상 선택하는 DNA를 보유하고 있고, 인류의 모든 발전은 – 특히, 기술적인 발전은 – 우리가 더 편하게 살고 일하기 위한 방향으로 최적화 되어있다.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하게 살 필욘 없지 않으냐.

맞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 편하게 할 수 있는걸, 굳이 왜 불편하게 하려고 하는가?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98%를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욕할 순 없다. 오히려 계단을 선택하는 2%의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행동 연구에서 더 재미있는 건, 계단으로 올라가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든, 100명 모두 다 계단을 이용하는 게 에스컬레이터보단 본인들에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건강, 노화, 시력 등을 위해 장기적으론 여러 가지 면에서 몸과 정신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단기적인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선, 난 이 98%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럼, 계단을 선택한 2%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좋아하는 변태들인가?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혜택을 위해서 단기적인 편안함을 잠시 접은, 하기 싫은 일을 일부러 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잘 아는, 오히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보단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98%가 편안한 방법을 택할 때 이들은 불편함을 택했는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큰 보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이 경험을 계속 기억하면서 불편함을 택하는 2%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편안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불편하게 사는 건 좀 그렇지만, 하루에 하나 정도는 일부러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건 할만하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로 못 하는데 이 큰 불편함을 무릅쓰고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택했고, 나는 이보단 약소하지만, 침대에서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지 않는 불편함을 택했다. 장기적으론 나에게 좋다는 걸 잘 아니까.

실은 창업가들은 이미 이 2% 안에 들어왔다. 편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불편함을 택했으니까.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는 이 경험이 장기적으로 아주 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편안함보단 불편함을 선택하는 걸 권장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