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좋은 VC가 되는 방법

요새 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을 만나면 이들이 VC라는 업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나의 20대, 또는 30대 초반을 기억해 보면 당시엔 투자가 뭔지도 잘 몰랐고 VC라는 업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요즘 젊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가끔은 VC 업에 종사하는 나보다 이 직종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본인들의 커리어와 미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다는 좋은 인상을 받는다.

이들이 VC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현업 VC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아서인지 나를 만나면 그동안 직업으로서의 VC에 대해 갖고 있던 질문을 많이 한다. 역시 이 질문들의 수준이 높아서 매번 놀란다. VC라는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어떻게 하면 본인들도 VC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은데, 이미 이 질문의 단계를 넘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VC가 되고 싶은 분들이 많이 하지만, 이미 투자하고 있는 현업 VC 초년생분들도 나에게 자주 한다. VC를 2년 정도 해서 이 업무 자체가 뭘 하는 건지, 이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투자는 어떤 프로세스로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정량적인 지식과 경험은 어느 정도 습득했지만, 이 업계에서 정말 잘하고 존경받는 – 어떤 분들에겐 남에게 존경받는 게 중요한 듯 –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일단 이런 분들에게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VC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투자자 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준다는 건 그래도 내가 나쁜 VC는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것 같다.

VC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 그리고 사회 초년 VC 분들에게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드리는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으면 그냥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VC가 되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은데, 많은 분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걸 보면 조금만 노력하면 눈에 띄는 좋은 VC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VC가 되고 싶으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 특히 창업가 – 나랑 똑같은 한 명의 성숙한 인격체로 대해줘라. 나는 돈이 있으니까 ‘갑’이고 이들은 내 돈을 받아야 하는 ‘을’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몸과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 돈도 아니고, 우린 어차피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 때문에 내가 투자할 수 있고, 내가 관리하는 남의 돈 때문에 나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어떻게 보면 큰 거품 속에 VC들은 살고 있다.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내가 만나는 창업가를 인간으로 대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라.

그리고 언행일치를 해라.
미팅 일정을 정했으면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나타나면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생각보다 많은 투자자들이 아무런 사전 통지 없이 약속을 어긴다.
약속을 지켜라. 언제까지 의사결정을 하고 더 이상 투자검토를 진행할지 안 할지에 대한 의견을 주겠다고 했으면, 그냥 약속한 그 날짜에 연락해 줘라. 만약에 검토가 늦어진다면 왜 늦어지는지, 변경된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꼭 알려줘라.
투자하겠다고 했으면, 투자해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수 타거나 연락 안 되는 VC가 너무나 많다. 혹시나 사정이 생겨서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면, 쪽팔리고 불편하겠지만 솔직한 이유를 말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냈다면, 그 말을 지켜라.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만약에 못 지킬 말이라면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

마지막으로,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투자해라. 너무나 많은 투자자가 무늬만 화려한 VC다. 온갖 미사여구로 본인 자랑을 하고, 과거에 어떤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자랑은 실컷 하는데, 막상 자세히 물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단 한 건의 투자도 집행하지 않은, 돈도 없는 VC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이건 실은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VC라고 하고 싶다면 좋은 투자든, 나쁜 투자든, 일단 투자해라. 이건 기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나열한 내용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정상적인 직장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고, 말과 행동을 일치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는데, 이걸 또 많은 투자자가 잘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거꾸로 해석하면, 좋은 VC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냥 정상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겐 근무의 자유를

7월 미국 출장 기간 중 WSJ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는데, 마침 그때 이와 비슷한 주제로 우리 투자사 몇 군데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관련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일단 이 기사는 유럽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인 독일이 소매업체가 일요일에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을 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 물품으로,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독일 경기가 계속 악화되면서 이 오래된 법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1949년 개정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일요일과 공휴일은 노동으로부터 몸과 영혼이 쉬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색이 짙다. 기사를 읽어보면 이 법이 생긴 배경,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나는 독일의 경제가 심각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는 이 마당에 왜 이 법을 당장 안 고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냥 일요일에 가게 문 닫고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은 그냥 일요일에도 장사를 하게 하면 될 텐데 이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이런 법은 계속 놔두면서 독일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위기설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경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독일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을 보면 좀 한심하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지 않는 독일의 기사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걱정을 다시 한번 했다. 나는 최근에 한국이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있고, 일을 점점 더 안 하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 이런 의견에 대해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욕도 상당히 많이 먹고 있고, 나의 일차원적인 생각을 보강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제공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도 내 결론은 한국이 더 강대국이 되고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다면 무조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생긴 이유와 그 백그라운드는 나도 알고 있다. 이런 법까지 만들게 한 비상식적인 회사들, 그 회사의 사장들, 그리고 주주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산업, 경영진, 그리고 근로자를 불문하고 이 52시간 제도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한국도 위에서 말한 독일과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그런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AI 시대엔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기보단 일을 더 잘 해야 한다고 모두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의 회사는 AI 시대이든 아니든 일단 기본적으로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 몸을 갈아 넣어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는 건 기본이고, 이런 기본이 만들어진 후에 더 똑똑하고 잘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9-9-6으로 일하는 중국, 그리고 심지어 중국보다 더 많이 일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정부의 지원도 더 빵빵하다. 그리고 이들의 인재는 한국의 인재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우리가 이런 나라, 그리고 이런 회사와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부터 지는 게임을 해야 하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건 기본으로 깔고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보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별로 똑똑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공부도 안 하고 서울대 가길 희망하는 것과 같다.

다행히 어떤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반도체, 스타트업 및 첨단 산업 전반에서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52시간제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이익을 충분히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정은 과도하다는 태도다.

근로시간 제도의 조정을 떠나 그냥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고, 2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근무의 자유를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만약 현 정부가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는 52시간 제도를 끝까지 고수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해라. 하지만, 그러면 대통령을 비롯한 그 어떤 정치인도 공개적으로 한국이 AI나 로보틱스와 같은 최첨단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주일에 52시간만 일 할 수 있는 한국이, 원하면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보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모든 자원이 풍부한 중국과 미국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다가 어쩌면 우린 유럽에 뒤질지도 모른다.

옵티마이저들

요새 투자 분위기는 아직도 AI, 로보틱스, 국방, 피지컬 AI와 같은 딥테크와 하드테크에 집중됐지만, 우린 좋은 창업가들이 좋은 사업을 하고 있으면 분야와 기술관 상관없이 검토하고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는 어려운 기술보단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어울리는 분야라는 점을 우린 매번 강조하고 스스로 상기시키면서 이 분야의 회사와 창업가를 많이 만나고 검토하고 있다.(그렇다고 우리가 딥테크와 하드테크를 안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분야도 적극적으로 보고 있다.)

Consumer 분야의 트렌드를 관찰하다 보면 요새 ‘Optimizer’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최적화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재미도 있지만 의미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면서 추구하는 세대를 옵티마이저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더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수도승처럼 금욕적인 삶보단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어 하는, 현명한 지름길을 통해서 더 건강한 선택을 하고 똑똑한 방법으로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할 수 있다.

MZ 세대의 40% 이상이 자신은 옵티마이저라고 하는데 이들은 먹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특히 비슷한 카테고리의 음식이라면 더 비싼 고급 제품을 선호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하고, 섬유질을 더 많이 섭취하고, 가공음식을 덜 먹지만, 또 재미있는 사실은 맛집이라면 – 그리고 그 맛집이 초가공식품인 소금빵 가게라도 – 30분 이상 기다려서 꼭 먹고 마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실과는 달리 이들은 술도 남들보다 더 많이 먹지만, 되도록 더 비싼 술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와인도 일반 와인보다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

옵티마이저는 오래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주일에 4번 이상 운동하고 장수와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사우나도 자주 한다. 대부분 애플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서 비만이라고 생각하면 GLP-1을 거리낌없이 맞거나 복용하고, 보톡스와 필러도 더 많이 맞는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건강, 장수, 체중감소를 위해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펩타이드 주사도 상당히 많이 자가주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GLP-1을 통해서 자가주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집에서 펩타이드 주사를 편안하게 맞는 것 같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력도 남다른데, 자연스럽게 AI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사용한다. 36%가 매일 AI 챗봇과 대화하고 절반 이상이 AI가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단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옵티마이저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쯧쯧쯧”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런 인생 최적화 철학이 가진 큰 장점이 있다. 옵티마이저는 인생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이 강박에 의해서 행동도 인생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조정되는데, 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몸에 배면서 이들은 이미 스스로가 인생에서 이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정말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아직도 인기 있는진 모르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자는 YOLO와 모두가 한 번 죽는 인생 의미 있게 살자는 YODO가 큰 인기몰이를 했었는데, 옵티마이저들은 YOLO와 YODO를 적절하게 혼합한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MZ 세대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창업가는 계속해서 바뀌는 이런 큰 트렌드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요샌 취향과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사업 환경은 더욱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Good luck.

쓰기와 읽기의 중요성

며칠 전에 쓴 글에서 공유했듯이 우린 상당히 많은 인바운드 콜드 이메일을 받는다. 스트롱에게 뭔가를 제안하는 업체가 연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99%는 우리에게 피칭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이메일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떤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스트롱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피칭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써놨기 때문에, 우리는 소개 없이 오는 이런 콜드 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는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연락이 오는 창업가를 나는 되도록 30분~45분 정도 직접 만나서 어떤 분인지 파악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콜드이메일이 오면 보낸 분과 두세 번 정도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한 후에 이분을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을 하고, 이렇게 했을 때 전환율은 20% 미만으로 그렇게 높진 않다.

왜 나는 10개의 콜드 이메일이 오면 왜 이 중 2명의 창업가만 대면 미팅하고, 나머지 8명은 안 만날까? 결론은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강조하는 “쓰기와 읽기”와 연관됐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보고 싶다.

나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 분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IQ와 EQ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분이 쓴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니라서 작품을 만들진 않지만, 일을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메일을 작성한다. 나에겐 이런 일과 관련해서 작성하는 이메일이 이들이 쓰는 글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업무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이메일로 하는 처지에선 이메일 = 태도, 인격, 사고방식, 논리, IQ, EQ일 정도로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이 쓴 이메일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에 정말 많은 게 담겨있어서, 콜드 이메일이 오면 나에겐 1/ 바로 지우기, 2/ 질문하기, 3/ 바로 만나기, 이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일단 나는 이메일 제목을 본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본인이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전달할지 모르는 창업가는 제목부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라면 여기서 바로 삭제다. 제목을 넘어가면 본문을 읽어본다. 역시 개념이 없는 창업가의 이메일 내용은 상당히 거추장스럽고 핵심이 없다. 부사가 많고, 느낌표가 많고, 이 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이해가 안 간다. 두 번 읽었는데 핵심 파악이 안 되면 여기서 삭제다.

그다음으론 첨부한 사업계획서를 확인해 본다. 이제 나는 pitch deck을 하도 많이 봐서 내용을 깊게 읽지 않고, 전반적인 흐름만 봐도 이 자료를 만든 사람이 생각하면서 만든 건지, 그냥 여기저기의 내용을 짜깁기 한 건지, 아니면 아예 AI로만 만든 건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자료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다. 자료만 번지르르하게 만들고 실제 사업은 개판으로 하는 창업가를 하도 많이 알고, 사업은 손가락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과 손발로 하는 것이라는 걸 더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투자자에게 콜드로 연락할 땐, 이 두 명을 잇는 얇은 끈은 이메일과 자료라서 여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그리고 창업가가 쓴 글, 흐름, 내용이 맘에 들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미팅 요청을 한다.

자료까지 읽었고, 전반적으로 괜찮지만 당장 만나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면 이메일로 추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메일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내 나름의 human intelligence를 기반으로 이 창업가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을 투자해서 만나볼 만한 분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묻는 질문에 투명하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장황하고 논지에 어긋나게 제공하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 이메일 커뮤니케이션만 봐도 이 분이 앞으로 직원, 투자자, 고객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이메일에 내용은 없는데 부사, 느낌표, 볼드체, 밑줄, 다양한 컬러의 텍스트만 과하면 이 분은 프로페셔널한 소통이 힘든 분일 확률이 높다.
이메일 답변이 오는 시간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답변 오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면, 이 분은 전반적으로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분일 확률이 높다. 투자를 꼭 받아야 하는 이 간절한 시점에도 이렇게 느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실제 투자받은 후엔 얼마나 더 느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ply all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소양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답변을 할 때 우리 동료분들을 모두 cc 하면, 이후의 소통은 항상 같이하는 게 기본인데, 나에게만 답변이 오고, 내가 다시 답변하면서 우리 팀을 cc 하면, 또 나에게만 답변을 한다. 결국 “항상 reply all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드리는데, 이후에도 이걸 잘 안 하는 분도 많다. 이건 지능에 약간 문제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 경험이 별로면, 몇 번 소통하다가 결국엔 pass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콜드 이메일을 스크린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력을 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내용이 있는 자료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뭐든지 많이 써보는 것이다. 일기를 매일 쓰던, 블로그를 쓰던, 하여튼 writing을 무조건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잡지, 신문 등 텍스트를 많이 읽으면 잘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100% 모두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도 잘 쓴다.

책임 회피하기

오지큐 신철호 대표님과 이 회사의 투자자들 간의 갈등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요새 큰 이슈가 됐다. 나는 신철호 대표님을 과거에 뵌 적은 있지만,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이고, 오지큐 회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실은 이런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과 갈등은 정확한 사정을 모르면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대부분 he said, she said, I said 상황으로 간다. 그래서 신대표님의 포스팅이 페이스북 피드에 떴을 땐, 내 경험으로 이 사건도 진실은 이 분의 주장과 투자자의 주장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신대표님의 이야기를 계속 읽어보니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 분이 억지 주장을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에 진실이 이 분의 말에 더 가깝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2026년도에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이고, 전세계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잘 성장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놀랍긴 하다.

어쨌든, 나는 정확한 사실을 모르니 판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해져서 오지큐 관련 내용을 조금 더 읽다 보니, 내가 몇 년 동안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서 이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 싶었다. 책임 회피와 전가에 대한 이야기다.

VC와 창업가 사이에 이런 갈등이 발생하면,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법적 분쟁을 시작하진 않는다. 대부분 만나서 대화로 시작하는데, 나는 매우 많은 VC가 이런 상황에서 창업가들과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한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어떤 분들은 아예 처음부터 대화할 마음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창업가들이 투자자들과 어려운 대화를 할 때 자주 듣는 답변이, “저희 LP가 이건 허락하지 않습니다.” , “저희 LP와의 계약에 따르면 이건 저희가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또는, 이와 비슷한 문맥의 답변일 것이다.

GP가(GP=General Partner=VC. 문맥상 앞으로는 GP라고 하겠다.) 창업가에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본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가 못 하게 하면, 이건 못 한다는 의미라서 창업가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우린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최후통첩이다. 나도 다른 VC들에게 들었던 말이고, 우리 투자사들도 자주 들었던 말인데 솔직히 나에겐 이런 말은 대부분 전형적인 변명, 그리고 투자자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다른 GP들과 그들의 LP의 계약서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구들과 내용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계약서는 말 그대로 상식선에서 작성된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한 내용을 GP가 창업가나 투자사에 요구하는 걸 LP가 계약서로 강요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GP들이 “우리 LP가 못 하게 해서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땐 이건 그냥 본인들이 그렇게 하기 싫다는 걸 직접 말하기 거북하니까 LP 핑계를 대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냥 본인은 나쁜 사람이 되기 싫고, 곤란하고 귀찮은 일 처리하기도 싫고, 그냥 창업가가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리고 알 확률이 거의 없는 애매한 LP 탓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GP와 LP의 계약서에 실제로 이런 내용이 있다고 쳐도, GP가 판단 했을 때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한 상황이라면,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LP와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우리도 이런 경우가 몇 번 있고, 충분히 잘 설명한다면 예외 사항이 허락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GP는 이런 노력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이 담당하는 회사에서 이런 이슈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어쩌면 관리나 처신을 잘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서 본인이 욕을 먹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LP들에겐 이런 이야기를 꺼낼 의향도 없고 의지도 없다. LP 탓하는 한마디만 하면 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본인이 책임지고 어려운 일을 하드캐리 하겠는가?

GP가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LP를 탓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이런 행동은 이제 이 생태계에서 없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대로, 설사 LP와의 계약 내용이 문제라면 최소한 최대한 상식적인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길 바란다. 그냥 귀찮고 책임지기 싫으니까 남 탓하지 말고. 이런 분들에겐 나는 제발 man up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여성 GP 분들에겐 미안한데, 아직 대부분 남성이라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직접 책임을 지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남에게 책임 전가하지 말고 내가 직접 그 폭탄을 맞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