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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주자의 저력

전 세계가 그렇지만, 한국도 AI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계획대로 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라서 미국이나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도 전 세계에서 AI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그리고 이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확보할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국가적으로 이렇게 큰 투자를 하는 방향 자체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투자가 제대로 집행되는 건 또 다른 문제라서 앞으로 이 일을 하는 적절한 분들이 국민의 세금을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

모든 현상에는 음과 양이 있고, 역시 정부의 이 계획에도 찬반의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나같이 어느 정도의 회의감이 – 이건 방향이 아니라 실제 집행을 잘할지에 대한 의문이다 – 있지만 방향은 맞다고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그룹이 있고, 한국은 이미 늦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커녕 인도와 같은 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반대하는 그룹도 있다.

결사반대하는 사람의 의견도 공감하고 이해한다. AI는 first mover가 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라서 이미 우리는 늦었다는 회의감, 왜 한국은 먼저 시작하지 못하고 항상 후발주자인지에 대한 불만, 그리고 솔직히 테크와 AI와는 큰 상관 없는, 그냥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등의 이슈가 혼합된 의견인 것 같다.

우리는 AI의 후발주자이다. 이건 맞다. 어쩌면 남들은 이미 100m 경주에서 50m 선에 도달했는데, 이제 한국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미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산업에서 항상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후발주자로 시작해서 결국엔 이긴 경험이 우리에겐 너무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이 자동차를 처음 만들지 않았다. 미국, 독일, 그리고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시작했고, 시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포드로부터 외주 생산을 맡으면서 우리는 매우 늦게 시작했지만, 이젠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드는 나라가 됐다.
배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섰지만, 결국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배를 만드는 나라가 됐다.
음악 하면 케이팝이 떠오르지만, 한국은 클래식 음악도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음악에 있어서는 한국은 정말 후발주자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나라에서 무슨 엔터테인먼트를 하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제 한국은 전 세계의 대중음악가와 고전음악가가 필수적으로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는 나라가 됐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미국, 일본, 핀란드 등이 한국보다 훨씬 더 먼저 시작했고, 시장을 장악했지만, 이 시장을 우리는 야금야금 먹으면서 이제 전 세계 1등이 됐다.
케이뷰티 또한 마찬가지다. 못 사는 나라에서 무슨 외모에 신경을 쓰냐는 회의감도 컸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화장품을 가장 잘 만들고, 외모 관련 산업에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압도적인 1등 국가가 됐다. 뷰티 분야는 프랑스와 일본이 20년 전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고 있었다.

이 외에도 한국이 후발주자였지만 이제 1등인 분야가 너무 많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배웠고, 더 빠르게 따라잡았고, 결국 많은 분야에서 선두반열에 들어왔다. 나는 이게 한국이 가진 후발주자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후발주자의 저력이 AI에서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아니, 먹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정말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론,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있다. 남들이 모두 사용하는 플레이북이 아닌 우리만의 성공방식이 필요하고, 한국은 열심히 일하지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다.

코파운더가 정말 필요한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창업가들이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 세션이다. 몇 년 전에 실험적으로 이 AMA 세션을 시작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꽤 좋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에게도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서 이젠 거의 공식적인 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진행했고 다른 파트너분들과 함께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분이 1인 창업에 대해 질문했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이 각자 본인의 의견과 답변을 공유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어떤 분이 인스타에 올렸다. 이걸 보고 몇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왔는데, 어떤 분은 동의하고 어떤 분은 반대하지만, 대부분 솔직한 생각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1인 창업, 즉 sole founder 팀을 싫어한다. 그런데 위의 인스타 릴스를 보면 내가 왜 1인 창업팀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기서 충분히 설명해 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개발능력이 없는 똑똑한 분들이 일인 창업하면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회사에 없고, 외주를 통해서 개발하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품질에 문제가 생겨서 개발이 가능한 코파운더가 필수였는데 이젠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꽤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는 AI만 잘 활용하면 ‘능력없는 창업가’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능력 좋은 분이 혼자서 창업하는 게 왜 나는 별로일까?

나는 일인 창업가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이라서 무조건 코파운더 또는 코파운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장 동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은 창업가에겐 매우 심각한 문제다. 모든 창업가가 나에게 하는 말은 창업이 너무 외롭다고 한다. 이 외로움이 쌓이다 보면, 여기에도 복리가 작용하고, 복리로 쌓이는 외로움은 결국엔 사람을 망친다. 외로움,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과 – 사업이 주로 잘 안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싸우다 보면 아무리 몸과 마음이 튼튼한 분이라도 몸과 마음이 매일 산산조각 난다. 나는 이런 걸 매일 본다.

사람마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격렬한 운동, 술, 음식, 명상, 독서 등이 내 주변의 창업가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일부이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과 싸우는 건, 마치 자기만의 전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창업가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어떤 창업가는 동네 싸움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크기를 떠나서 이를 직접 겪고 있는 분에게는 본인의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하지만 힘들고 외롭다.

이 조용한 싸움을 할 때, 옆에서 나와 함께 이 외로움을 분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코파운더다. 대부분의 코파운더는 사업이나 돈으로 서로 엮이기 전인 순순했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단순히 사업을 함께 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제품을 같이 만들고, 펀딩을 같이 하고, 채용을 같이 하고, 영업을 같이 하고, 고객을 같이 만나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더러운 똥 밭에서 구르면서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게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려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스타트업은 빨리 가면 지친다. 멀리 가야하고 멀리 가려면 동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sole founder에게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것이다. 똑똑한 분이 혼자 창업해서 AI 에이전트 100개를 만들어서 모든 걸 돌리면 결정도 더 빨리하고, 돈도 더 잘 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서 사업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AI가 모든 걸 만들고, 창작하고, 심지어 의사결정까지 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변한다. 시장도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회사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세상이 더 험악해지면서 한국에서도 이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끔찍한 살인사건, 엽기적인 범죄행위 등, 과거에는 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이젠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문제냐, 아니면 이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냐 이다. 즉,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내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각각의 생각을 물어보면, 대략 10명 중 8명은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을 탓하는 것 같다. 자주 듣는 이야기는 사람은 사회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서 개인적인 성향보단 시스템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하는 기준이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보단 사회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의해서 형성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이런 범죄자들을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 것 같다.

맞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시스템이 문제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개개인의 사람이다. 사람이 시스템의 구성원이라서 시스템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그 전에 사람이 모여서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결국엔 사람 개개인의 행동, 생각, 관점과 성향이 전체 시스템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도 개선돼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 변해야 한다. 사람도 변하고, 시스템도 동시에 변하면 bottom-up과 top-down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서 더 빠른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보다 개인의 능력과 추진력이 뛰어난 국가라서 시스템보단 사람 개개인의 책임, 권한과 역량이 다른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일부 한국의 학자들도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작년에 일 년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와 사회의 리더가 없었는데 솔직히 그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든 개인이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큰 문제 없이 잘 운영됐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개판이었지만 개개인이 잘 행동해서 개판인 시스템을 잘 돌아가게 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와 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잘 맞물려 움직여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결국엔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변화해야 한다.

시스템보단 사람이 문제이고, 시스템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관점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개념을 부정하고 한 나라나 사회의 문제를 무조건 시스템 탓을 하는 데 익숙해지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면 일단 개인이 바뀌어야 하고, 개인의 변화는 나와 너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좋게 바뀐다.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망가진다. 시스템을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보자.

주인의식

이 블로그 구독자를 한 번도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와 회사의 대표이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와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꽤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대표이사마다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도 다르고, 고민하는 점도 다를텐데, 모든 대표이사가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임직원들의 주인의식일 것이다. 나같이 작은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도 이 고민을 항상 하는데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더 힘들어지고, 더욱더 많이 고민하는 대표의 숙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분들이 이 회사를 본인의 회사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단순히 월급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세계 모든 리더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전에 내가 Red Bull 북미 본사를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강렬함에 대해 공유한 적이 있다. 그 리셉셔니스트는 어떻게 보면 기업 피라미드의 가장 말단에 있는 직원분이고,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정직원이 아닌 대형 인력파견 에이전시 소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레드불에 대한 깊은 애사심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나눴던 매우 짧은 대화를 통해 이 분이 회사에 대해 가졌던 주인의식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레드불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레드불 창업 가족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하여튼 본인이 몸담고 있고,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월급을 받고 있던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오너나 임직원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그 뛰어난 주인의식은 나 같은 회사의 방문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왜냐하면 전에는 나는 레드불은 설탕 덩어리 탄산 카페인 음료를 판매하는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는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가득 찬 강력한 브랜드파워 회사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아직도 이 회사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읽었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서도 이런 강력한 주인의식에 대한 일화가 묘사되어 있다.

이 분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디즈니월드에 놀러 갔는데,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놀이공원 안의 가게에서 도자기로 만든 소금통과 후추통을 샀다. 10달러였다. 그런데 가게를 나오자마자 도자기를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해서 다시 가게로 돌아가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더니, 가게 직원은 아무 말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면서 오히려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탓을 했다.

이 직원분의 태도는 작가와 그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그들은 20년 넘게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면서 10만 달러 이상의 돈을 썼다고 한다. 10달러짜리 도자기 세트를 바꿔준 디즈니랜드 가게 직원의 태도가 디즈니 재무제표에 10만 달러의 매출을 더 해 준 셈이다. 실은, 10달러짜리 제품을 공짜로 하나 더 주면, 장부에는 그냥 10달러의 손실로 기록되지만, 이 행동으로 한 가족이 디즈니라는 기업을 평생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는 건 그 어떤 마케팅으로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도 주인의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날 그 직원이 디즈니의 주주였을까? 어쩌면.
10달러짜리 제품을 바꿔준다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게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오히려 점장에게 더 욕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직원은 – 어쩌면 알바하시는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 본인이 단순히 기념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디즈니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앞의 10달러보다 울고 있는 열두살짜리 아이가 디즈니를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기억하길 바랐을 것이다.

이런 주인의식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어떻게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주입할 수 있을지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물론, 대표이사나 오너가 강요하고 설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본인이 오히려 매일, 매 순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스트롱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한다. 결국, 주인의식은 입으로 나불거리는 게 아니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모든 임직원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도, 권한, 그리고 책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더와 직원분들 모두 다 계속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글에 “월급이나 많이 주면서 주인의식을 강요해라”라는 댓글이 분명히 달릴 것 같은데,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반박부터 먼저 하는 분들은 주인의식과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Second Bet Club

VC 업계에는 Second Bet Club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두 번 베팅하는 의미인데, 같은 창업가에게 두 번 투자하는 걸 의미한다. 한 창업가에게 투자했고, 이 분이 재창업했을 때 다시 투자하는 VC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업인데 왜 이런 사례가 더 많지 않을까 항상 궁금했지만, 최근에 우리도 두 번 베팅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일단 같은 창업가에게 두 번 투자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창업하고 엑싯하거나 회사를 폐업하는데 최소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데, 이후에 또 창업이라는 어려운 일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이전 사업을 마무리한 후 몇 달 또는 몇 년의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걸 감안하면 VC의 역사가 최소 7년 돼야 같은 창업가에게 두 번 투자할 수 있는데, 아직 7년 이상 된 VC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서 이 사이클을 못 탔기 때문이다. 물론, 창업하고 1년 만에 폐업하거나 엑싯한 창업가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이런 분들이 재창업하면 다시 투자할만한 분인지 충분히 판단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한 창업가에 다시 투자하기 위한 일반적인 전제조건은 이 분의 전 사업의 성공적인 엑싯이기 때문이다. 좋은 IPO나, 높은 가격에 인수돼서 이 회사에 투자한 VC가 돈을 벌어야지만 이 분이 하는 그다음 사업에도 투자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가 생기는데, 창업가나 투자자나 모두 잘 알듯이 성공적인 엑싯은 확률이 상당히 낮다. 특히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투자하는 대부분의 회사가 성공적으로 엑싯하긴커녕, 창업 수년 후에 문을 닫는 걸 보면, 대부분 VC의 포트폴리오에서 두 번 투자할만큼 성공적인 창업가가 잘 안 나와서 second betting을 못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VC는 망한 창업가에겐 재투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 창업가에게 두 번 베팅하는 건 흔하지 않지만, 우린 올해 이런 사례가 세 번이나 있었다. 과거에 투자했던 창업가 세 분이 모두 재창업을 했는데, 이 세 분의 새로운 스타트업에 각각 또 투자했다.

위에서 나열했던 내용과 하나씩 비교해보자.
스트롱은 이제 15년 됐다. 우리도 이렇게 나이를 먹다보니 오래전에 투자한 창업가들이 재창업하는 사례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됐다.
스트롱은 그동안 거의 300개의 회사에 투자했다. 이렇게 많이 투자하다보니, 소수의 회사는 좋은 엑싯을 했다. 이 창업가들은 1~2년 쉰 후에 다시 창업했고, 다행히도 우리의 돈을 다시 받아줬다.
하지만, 우리에겐 성공적으로 엑싯한 회사들보다, 망한 회사들이 훨씬 더 많다. 망한 회사들의 창업가들도 1~2년 쉰 후에 다시 창업했고, 다행히 이들도 우리의 돈을 다시 받아줬다.

Saywise는 14년 전에 Tapas Media를 창업한 김창원님의 새로운 스타트업이다. 구직자를 위한 AI 에이전트 플랫폼인데, 솔직히 우리는 이 제품이나 시장보단 사람을 보고 두번째 베팅을 했다. 스트롱은 타파스미디어의 첫번째 투자자였는데, 그 당시에도 우리는 김창원 대표님을 보고 투자했다. 창업한지 9년 만에 타파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면서 우리에겐 아주 좋은 엑싯이라는 훈장을 안겨줬지만, 그 9년 간의 여정은 똥밭이었다.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그 힘든 과정을 못 견뎠겠지만 우린 이 분이 9년 동안 어떻게 버티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고, 투자자로서 이 분과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을 매순간 즐겼다. 새로운 스타트업도 분명히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SUPERBAND는 한국에서 만든 습윤밴드를 미국에서 판매하는 D2C/브랜드 사업이다. 이 회사는 우리가 약 12년 전에 투자했던 Giblib의 코파운더였던 신지혜 대표님의 새로운 스타트업이다. Giblib이라는 회사는 안타깝게도 잘 되지 않았지만, 신대표님은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다시 창업에 도전했고, 우리는 이분에게 다시 한번 투자했다. 망한 회사의 코파운더에게 왜 다시 투자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사업의 성공은 실력과 운이 결정하는데 초기 스타트업은 실력보단 운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이 분은 똑똑하고 실력도 있는데 첫번째 사업에서 운이 별로 없었다. 두번째 사업은 실패한 첫번째 사업에서 배운점을 잘 적용하면 분명히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전 사업을 할 때 우리와의 관계와 소통이 매우 좋아서 다시 투자하는 건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의 돈을 두 번이나 받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참고로 이 회사에 투자하기 전에는 우리도 몰랐던 사실인데 한국은 전세계에서 반창고, 특히 습윤 반창고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이다.

PreventiveMD는 개인화된 GLP-1과 펩타이드 치료 요법을 제공하는 미국의 원격의료 플랫폼이다. 재미있는 건 이 회사의 Brian 대표는 위에서 말한 SUPERBAND의 신지혜 대표님과 Giblib이라는 이전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Brian과 신지혜님이 공동창업한 Giblib에 12년 전에 투자했고, 이 사업은 망했지만, 두 분은 각자의 스타트업을 다시 했고 우린 이 두개의 스타트업에 다시 또 투자했다. 왜 한 번 망한 파운더에게 다시 투자했는지 물어본다면 똑같은 대답을 해줄 수 있다. 첫번째 사업은 운이 안 따라줬지만, 두번째 사업은 더 잘할 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겐 회사가 좋은 엑싯을 했는지 아니면 망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창업가가 어떤 사람이고, 우리와의 관계와 경험이 어땠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엔 이건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어가고 서로 교류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long 게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업을 얼마나 오래 할지 잘 모르겠지만, Second Bet Club에 이어 Third Bet Club도 나올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