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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우린 매주 화요일 오전에 전체 주간 미팅을 하고, 이때 현재 투자 검토하고 있는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미팅도 같이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회사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투자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모든 사업이 다르고, 비슷한 사업이라도 창업자가 다르기 때문에, 결정의 결과는 항상 다르다.

내가 얼마 전에 어떤 회사에 대해서, “비즈니스모델은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창업가의 분위기가 좀 별로였다.”라는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발언을 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이 말에 동의하는 분이 몇 명 있었다. 어쨌든, 꼬집어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할 순 없었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던 그런 미팅이었다. 결국 우린 이 회사를 더 이상 검토하지 않았는데, 이 전에도 우린 분위기가 이상하거나, 이보다 더 애매모호하게 “느낌이 쎄해서” 그냥 겉으로 보면 괜찮은 사업 같은데 한 번의 미팅 이후에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은 곳들이 꽤 있었다.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어떤 사람은 이게 인상에서 어느 정도 보이고, 어떤 사람은 말투에서 이분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대략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 더 미팅하면서 더 다양한 말을 섞어보면, 옷차림, 인상, 눈빛, 몸짓, 목소리, 단어 하나하나 등을 통해서 이 사람의 에너지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린 온갖 종류의 창업가들을 매일 다양하게 많이 만나는데,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이분들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정확도가 향상되진 않는다. 이렇게 되면 너무 좋겠지만, 사람은 정말 복잡한 생명체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판단이 틀리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사람의 분위기가 좋은지 안 좋은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창업가들과 10분 정도만 이야기해 봐도 이분들이 정말로 본인이 하는 사업에 확신이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반대해도 계속 이 사업을 할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투자를 받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위에서 내가 말 한 그런 다양한 외부의 시그널이 이 창업가의 내면의 의지를 꽤 정확하게 반영하는데, 이런 걸 통틀어서 종합한 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분위기이다. 내가 전에 우린 창업가들의 거창한 것보단, 매우 작은 것들을 관찰한다고 했는데, 이 작은 것들도 분위기랑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도 투자자들을 만날 땐, 평소보다 이 내면의 에너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가 창업가들과 10분만 이야기해도,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듯이,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나랑 10분만 이야기해 보면,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바이브를 형성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파악 가능할 것이고, 실은 거기서 우리에게 돈을 줄지 안 줄지 바로 결정이 나는 것이다. 참고로 에너지 레벨이 높다는 게, 동작이 과격하고 목소리가 큰 게 아니다. 조용하고 차분해도 긍정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중요한 일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아야 하고, 내 내면의 분위기가 긍정적이어야 하고, 내 에너지 레벨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이다. 잘 자고, 잘 운동하고, 잘 먹어야 한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내가 약 5개월 전에 쓴 글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공유가 많이 된 것 같다. 뭐,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라서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댓글로 남겨줬다.

댓글, 댓글의 대댓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주인장의 댓글을 모두 합치면 50개가 넘는 코멘트가 있다. 이 중, 그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의 댓글에는 내가 최대한 진정성 있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그냥 개싸움이 될 것 같은 분위기의 댓글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런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아주 간략하게 내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다.

일단, 이 글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해주신 걸 보니, 한국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성공에 목마른 개발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지 스타트업도 잘 되고,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사과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건, 내가 개발자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전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획자이든 마케터이든 개발자이든, 모든 직원은 회사의 조직원인데 굳이 개발자를 꼭 집어서 글을 썼던 이유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조직에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돈을 버는 핵심 업무를 하는 그룹 군에서 돈을 버는 기능에 가장 관심이 적은 조직이 개발 조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점이다.

몇 개의 댓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잘 돼 봤자 사장만 돈 버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나 회사의 지분도 없는데. 이런 분들은 내 블로그에서 불평하지 말고, 소속된 회사의 사장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권장한다. 회사에 돈을 벌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또는,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 사장이라면 굳이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닐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만약 본인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실력이 없어서 보상받을 수준이 안되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그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본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개발자로서 기술적 모험이 제한된다면 굳이 스타트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분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두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본인이 기술적 모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 모험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크게 상관없다면(=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면) 이걸 허락하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거와 상관없는 기술적 모험을 허락하는 내가 아는 곳들은 학교 아니면 연구소다. 회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술적인 모험을 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남의 돈으로 빨리 돈을 벌어서 압축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회사는 돈 받고 그냥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분명히 회사라는 집단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지만,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발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한다. 나도 이건 동의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무조건 회사의 목표가 먼저이고, 이게 어느 정도 된 후에 회사의 목표를 같이 만드는 개인의 발전에 신경 써줄 수 있다. 회사의 목표는 무조건 돈 버는 게 돼야 하고, 여기에 먼저 동참할 수 없다면 개발자든 마케터든 회사에겐 부채가 되고, 부채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댓글을 보고 나는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가 어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 회사 동료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 글 밑에 분명히 멋진 댓글도 많이 달릴 거지만, 거지 같은 댓글도 많이 올라올 것이다. 그 수준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하면 또 한 번 내 의견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키보드 뒤에서 인신공격적인 코멘트를 달거나, 너무 멍청한 코멘트를 다는 분들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을 밝혀주시면 오히려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인공” 지능

우리는 요새도 한 달에 한두 개의 신규 투자를 꾸준히 하고 있다. 스트롱은 특별히 한 분야에만 관심을 두고 투자하는 전략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우린 제품이나 시장에 투자하기보단,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그냥 뭘 하든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라면, 가급적 다양한 분야에 투자한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의 시장 규모는 수백조 원인 경우도 있고, 수백억 원인 경우도 있다. 또한, 매우 흔한 분야인 경우도 있고,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분야인 경우도 있다. 우린 이런 건 특별히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고, 창업가가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이 뭘 하든 아주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운이 있는지를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우리 같은 전략으로 투자하는 VC들도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는 전문적인 투자자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때 유행에 따라서 투자할 분야를 정하고, 이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한다. 요새 거품론이 계속 대두되고 있지만, AI는 가장 핫한 분야이고 이건 그동안 반짝하고 사라졌던 단순 유행은 아닌 게 확실한 것 같다. 물론, 너무 과열되거나, 반대로 너무 식을 순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AI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 우리가 본 회사 자료에서 AI라는 말이 안 쓰이는 자료는 거의 못 본 것 같고, 미팅에서 AI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는 창업가들은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이런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AI에만 투자하는 펀드가 만들어지고 있고, 몇몇 VC는 AI가 아닌 분야에는 거의 투자를 안 하는 곳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도 AI 관련 회사들을 엄청 많이 만나고 있다. 전에 내가 ‘AI 창업가 현황’이라는 글에서 몇 자 적었듯이, 대부분 이 글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회사들인데 아무래도 한국이 항상 가장 잘하는 분야가 애플리케이션 레이어라서 그런지, 이 부분의 창업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우린 조금 더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 관련 회사들을 많이 만나고 공부도 하고 있지만, 실제로 AI 분야의 회사에는 많이 투자하진 않았다.

내 생각도 계속 바뀌고 있고, 실은 스트롱 내부에서도 AI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아주 다른데, 개인적으론 AI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해서 사람을 쓸모없게 만들 확률은 0%라는 쪽으로 점점 더 수렴하고 있다. AI는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고, ‘인공’이라는 딱지를 절대로 떼지 못할 것 같다. 이 생각을 조금 더 설명해 보면, 어쩌면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97%는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위대한 창의성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남은 마지막 3% 영역에 속하고, 이 3%가 인간지능을 인공지능과 99.99% 다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마지막 3%는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내가 하드코어 인공지능 과학자들과 이런 내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은 동의했지만, 대부분 내가 아직 AI 기술을 잘 몰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하면서 정말로 앞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We will see about that.

우리가 AI에 투자하는 이유는 기계가 별로 창의적이지 못하고 반복적인 일을 인간 대신 해주면, 인간이 더욱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인데, 인공지능이 많은 반복적인 일을 처리해 주면, 이 한정된 24시간을 인간이 극대화해서 더욱더 창의적이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요새 미국에서 많은 VC들이 관심을 두는 수명 연장 분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인간지능은 더 위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헛똑똑이들

스트롱 내부 미팅을 할 때 내가 요새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투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투자할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나를 포함해서 투자 인력이 5명으로 커졌는데,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지금까지의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창업가나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내가 아주 투자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초부정적 피드백을 줄 때도 있고, 반대로 다른 분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창업가에 대해서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그 반대의 의견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실은,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많은 걸 배우고, VC로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데, 이렇게 서로의 논리와 주장을 남들과 공유하고 설득할 때 한가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나도 자주 빠지는 함정이고,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 또는 경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는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바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이를 합리화하고 또 정당화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은, 모든 스타트업은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수백 가지이고, 투자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이건 모든 VC들이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서 투자해야 하는 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 조사, 데이터, 본인의 경험 등을 기반으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멋진 논리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 사업은 이미 다른 회사들이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고, 저 사업은 시장을 다 먹어도 100억이 안되고, 저 창업가는 본인이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고, 등등, 실은 구구절절 모두 맞는 말이다. 원래 뭔가를 반박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큼 논리적이고 완벽한 게 없긴 하다.

나는 이런 걸 헛똑똑이 증후군이라고 한다. 똑똑한 투자자이고, 더 똑똑한 부정적인 의견이긴 한데, 결국엔 이렇게 해서 투자하지 않는 회사 중에 엄청나게 잘하는 곳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VC들이- 나를 포함 – 투자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 헛똑똑이 증후군에 빠지는데, 이건 좋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마인드셋이다.

실은 헛똑똑이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창업가보다 똑똑하다는 걸 자꾸 증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치와 논리를 기반으로 특정 창업가와 사업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만드는데, 이런 분들은 투자하지 말고 그냥 직접 창업하는 걸 권장한다. 우리가 하는 이 투자라는 업은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잘 찾아서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창업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이렇게 힘들게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다.

작은 시장, 작은 사람들, 큰 결과

5월 말에 테크크런치에 한 M&A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Hg라는 투자사가 AuditBoard라는 스타트업을 한화로 4조 원($3B)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다는 내용인데, 업계 분들도 이 기사를 보고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인수자인 Hg도 낯선 이름이었고, 이 투자사가 인수한 AuditBoard라는 회사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 금액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딜이었다. 관련 기사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기사를 읽어보면 대부분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회사의 가장 큰 인수 소식”과 비슷한 부류의 내용이다.

AuditBoard는 LA 주변 오렌지카운티의 두 한인 중학교 친구인 Daniel Kim과 Jay Lee가 2014년도에 창업한 회계/감사/리스크 관리 관련 B2B SaaS 스타트업이다. 다니엘이 중견 기업의 CFO 였는데, 본인이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회계 관리 업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창업했고, 시작은 미국 회계/감사 관련 법인 Sarbanes-Oxley 법 준수를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그래서 창업할 때 회사 이름도 SOXHub이었는데, 회사는 점점 더 그 시장과 제품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 회사가 그동안 계속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공동창업자가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그런 전형적인 유니콘 창업자들이 아니다. 둘 다 회사를 창업했을 때 나이도 있었고, 그 전에 스타트업 경험이 전혀 없었고, 소프트웨어로 뭔가를 해본 사람들도 아니고, 어쨌든 투자자들이 만났을 때 “이 친구들한테 당장 투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팀은 아니었다. 또한, AuditBoard의 본사는 Cerritos라는 오렌지카운티의 도시였는데, 내가 알기론, 이 도시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특히나 유니콘 회사를 만들기엔 약간 뜬금없는 지역이긴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풀고자 했던 포천 1,000 기업의 회계/감사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고, 알아도 일반적으로 이 시장은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틈새시장 정도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투자자라면 창업가들에게 수십번도 말했을 전형적인 “너무 작은, 스케일이 불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되는 틈새에서 이들은 창업했는데, 이런 회사는 투자받는 게 정말 힘들다.

세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AuditBoard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첫해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고, 투자도 거의 안/못 받았기 때문에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고, 정말로 이런 회사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혔다. 또한, 너무 틈새시장으로 알려진 분야라서, 경쟁사도 거의 없었고, 이렇다 보니 이 분야는 더욱더 안 알려졌고, 이 회사 또한 더욱더 안 알려졌다.

창업 후 거의 10년 만에 인수되는 AuditBoard의 수치는 굉장히 놀랍다. 일단 연반복매출(ARR)이 한화로 거의 3,000억 원이다. 시장이 가장 좋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ARR의 20배 정도였는데,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데도 거의 15배 기업가치로 인수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까지 받은 총투자금이 한화로 600억 원밖에 안 된다. 600억 원의 투자를 받아서 3,000억 원의 연 매출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고 – 참고로, 창업 2년 차부터 흑자 전환했다 – 4조 원에 인수됐는데, 투자 금액 대비 매출 창출 능력이나 엑싯 비율이 이렇게 좋은 스타트업은 드물다. 말 그대로 진짜 유니콘이다.

마지막으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이 회사의 인수가, 올해 북미 시장에서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엑싯 중 가장 큰 메가 엑싯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몰랐던 회사의 엑싯이 올해 북미 시장에서 가장 큰 엑싯이라니,,,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Daniel과 Jay를 2014년도에 처음 만났고, 2015년도에 투자했다. Mucker라는 LA의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후, 스트롱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투자자였다. 실은,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도 그땐 세리토스라는 창업불모지에서,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너무 먼 두 명의 한인교포 창업가들이, 내가 아예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시장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야에서, 돈 벌기가 그렇게 어려운 B2B SaaS 사업을 하는 이 회사를 만났을 때 전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끈질기게 찾아와서 설득했고, 반은 설득당했지만, 반은 그냥 “이거 투자할 테니까, 더 이상 나를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제발 이거 먹고 떨어지세요)”라는 생각으로 투자했다.

그 누구도 – 나도, 스트롱도, 이 회사의 시리즈 B를 리드한 Battery Ventures도, 그리고 심지어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들도 – AuditBoard가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결과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2014년도의 Daniel과 Jay의 모습과 2024년도의 $3B 엑싯이 계속 머릿속에서 겹치는데, 뭔가 계속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을까. 왜 우린 남들같이 투자를 못 받을까. 왜 우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왜 우린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니치한 사업을 하고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오늘도 하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AuditBoard 이야기를 꼭 공유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느끼는 점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더 많은 고민거리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희망해본다.

내가 하는 일을 굳게 믿고,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결과로 폭발할 수 있는 복리를 믿고, 투자에 의존하지 말고 자생하는 법을 배워라. 이런 마인드로 최소 10년 정도 한 우물만 파면, 어쩌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위대한 것들은 TTT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TTT = Things Tak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