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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갈까?

두 달 전에 바이럴 하게 공유됐던 Citrini Research의 섭스택 보고서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때문에 당시에 전 세계 주식시장과 테크 세계가 발칵 뒤집혔었다. 꽤 긴 내용이라서 실은 내 주변에 이 보고서를 완독한 분들은 거의 없고, 아마도 대부분 AI를 돌려서 요약된 내용만 봤을 것 같은데, 대략 어떤 내용이냐 하면, 매우 가까운 미래에 AI가 너무 발달해서 인간의 지능 자체가 commodity가 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인간의 생산 활동은 대폭 감소하지만, 오히려 AI 생산은 늘어나면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소득분배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지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가상 시나리오라곤 하지만, 모두가 다 우려했던 미래를 꽤 논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해서 그런지 주식시장,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가 박살 났었다.

이후 시장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AI 툴들이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의 주가는 – 특히 B2B – 계속 타격 받고 있다. 과거에는 개발 능력이 없는 회사에서 기꺼이 돈을 내고 다른 회사의 B2B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지만, 이젠 바이브 코딩을 통해 누구나 다 본인이 필요한 정확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고, 바이브 코딩 툴이 더 발전할수록 이젠 많은 회사들이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B2B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제 회사는 사람이 예전만큼 필요 없고, 특히나 low level의 반복 업무를 하는 신입 사원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반복 업무야말로 사람보단 기계가 더 정확하고 불평불만 없이 하루 24시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AI가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온 후부터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던 질문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기술이 일자리를 없앨까?”

요새 거의 매일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지만, 실은 아직도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똑똑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칠 순 없지만, 현재로서 내 대답은 “Yes, but no”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많은 업무가 AI로 인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고, 실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나같이 코딩을 전혀 못 하는 사람도 내가 필요한 몇 가지 기능을 혼자서 만드는 시대에 – 그 전에는 돈 주고 외부에 맡기거나, 우리 회사에서 나름 tech를 잘 아는 동료분에게 부탁했다 – 단순히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수작업과 반복 업무는 이젠 사람이 하기엔 너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직종은 앞으로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우리 같은 VC 회사에서도 주니어 심사역이 주로 하는 일이 시장과 회사를 분석하는 일인데,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 소화, 이해하는 건 사람보단 기계가 더 잘하는 업무라서, 나는 아직도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업계 분들이 ‘AI 심사역 에이전트’가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워라벨 따지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심사역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말도 공개적으로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는 건 맞다. 하지만, 모든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앤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 의해서 거의 완벽하게 대체되는 건 확실하지만, 일머리가 있고, 일을 잘하고,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에겐 아마도 다른, 더 전략적이고 고차원적인 일감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마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고, 오히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주어진 일만 하고, 일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은 “AI가 당신의 일을 대체해서 우린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통보를 회사로부터 듣고 해고될 것이다. 실은 어떤 사장님들은 AI가 오히려 그동안 일 못하고, 조직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던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새 내 건강 관련 모든 데이터를 AI에 입력해서 다양한 건강 전략과 전술을 만들고 상황에 따라 계속 수정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모든 걸 기계에 물어본다. 더 먼 미래에는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의사가 없어질까? Maybe. 하지만, 무능한 의사만 사라질 것이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고,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고, 뭘 물어봐도 짜증 내고, 최신 의학 트렌드에 관한 공부는 전혀 안 하는 의사는 확실히 AI로 인해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매일 실천하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기술을 활용해서 이미 일을 잘하는 본인들의 위치를 더욱더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요새 AI 때문에 전 국민이 거의 변호사 뺨칠 정도로 법학 지식이 충만하다. 내 주변 친구 변호사들도 AI가 본인들의 직업을 뺏어갈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친구들은 무능한 변호사들이다. 그리고 무능한 변호사는 AI가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을 호구로 보고, 불필요한 법률 조언을 제공하면서 돈 벌 궁리만 하는 그런 변호사들인데, 이미 이들은 AI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좋은 변호사는 오히려 기술을 활용해서 원래 잘하던 일을 더 잘할 것이고, 더 많은 일감을 처리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오히려 AI가 이미 대체되고 없어져야 할 무능한 인력을 시장에서 한번 깨끗하게 청소해 줄 수 있는 촉매라고 생각한다. 항상 공부하고, 항상 호기심 있고, 항상 열심히 일하고, 항상 일 잘하는 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배려해주는 사람들

나는 2007년 여름에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운 좋게 워튼 MBA에 합격해서 2년 MBA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처음 가는 도시여서 와이프랑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당시 필라델피아는 범죄율도 너무 높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 brotherly love의 도시에서 우린 6개월 정도 살다가 내가 휴학자퇴하면서 따뜻한 LA로 이사했지만, 그래도 필라델피아가 좋았던 점도 몇 개 있었다. 일단 맛있고 좋은 식당이 많았는데, 같은 음식도 뉴욕과 비교했을 때 약 30% 정도 저렴했다. 그리고 맛있는 동네 커피숍도 많았는데 그 중 내가 좋아하던 곳이 La Colombe이라는 곳이었다.

필라델피아가 라콜롬의 본사인데 내 기억으론 당시에 매장이 딱 한 개였던 동네 specialty 커피숍이었다. 그리고 서부로 떠나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뉴욕의 멋진 라콜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고, 공교롭게도 며칠 후에 이 회사의 창업 스토리 관련 인터뷰를 듣게 됐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회사가 2023년도에 그릭 요거트 업계의 대장 쵸바니에 1조 원 이상에 인수됐다는 점이었다. 가격이 높았다는 점도 놀랐지만, 1994년도에 창업된, 오래된 회사라는 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거의 13년이 걸릴 정도로 하나의 매장에서 완벽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 그리고 엑싯하기까지 29년이 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두 코파운더의 우정과 서로를 배려하는 – 요샌 정말 찾기 힘든 – 아름답고 따뜻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인간애였다. 코파운더 중 한 명이 어릴 적부터 심한 양극성 장애가 있어서 힘든 사업을 하는 와중 3개월에서 6개월마다 한 번씩 회사와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쉬거나 사라졌는데, 다른 창업가가 수십 년 동안 매번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줬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꽤 큰 울림을 줬다.

실은 가끔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부분이 결혼, 육아, 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서 창업 초반만큼 업무에 시간을 투입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코파운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인데, 나는 라콜롬 창업가의 행동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었다. 즉, 업무에 더 이상 올인할 수 없는 코파운더는 회사에 쓸모가 없으니까 그냥 잘 이야기해서 나가라고 하거나, 지분이 많다면 대부분 다시 매수 또는 회수하고 이 지분을 앞으로 회사에 더 전념할 수 있는 분들에게 배분하라는 식의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좋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이젠 조금 다른 조언을 주고 있다. 같이 회사를 만들고, 몇 년 동안 생사를 같이한 전우와도 같은 코파운더들에 대해서 최대한 배려해 주라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육아를 위해서 전에는 하루에 20시간 일했지만 10시간밖에 일을 못 하거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인해 몇 달 휴식을 취해야 한다면, 최대한 감싸주고, 배려해 주고, 포용해 주고, 회사에 남은 다른 코파운더 분들이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한다. 지분도 당분간 그대로 놔두라고 조언한다.

실은 우리는 일인 창업팀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로운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코파운더가 있으면 혼자 사업하는 것보단 의사결정도 더디고, 충돌도 잦고, 사람으로 인한 다양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단점도 있지만,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 이 고통을 분담하고 서로 토닥거려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동료는 말 그대로 ‘life-saver’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공동창업가가 있는 팀을 항상 선호한다. 라콜롬 스토리를 들으면서 왜 우리가 코파운더가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하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상기할 수 있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업은 빨리 가는 것보단, 멀리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하다. 코파운더가 있다면, 오늘은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서로 칭찬해 주고 더 배려해 주는 하루가 되길.

할 놈은 한다

한 달 전에 미국에서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고 있는 신생 VC 파트너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전에 꽤 큰 VC에서 심사역을 몇 년 하다가 독립해서 이제 본인의 펀드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요새 대부분의 VC와 비슷하게 “AI first, AI only”를 외치면서 열심히 AI 회사들만 검토하고 있었다.

스트롱은 왜 AI에만 올인하지 않고 큰돈 안 되는 다른 분야에도 투자하는지 물어봐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 철학, 그리고 전략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특정 분야를 선택한 후,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가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down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냥 좋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bottom-up 방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AI에만 투자하진 않는다는 점을 잘 설명했다. 그리고 AI가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더 빨리 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AI가 아닌 사업이 나쁜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해왔듯이 모든 분야를 보면서 좋은 창업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보낸다고 했다.

이 분이 이전 회사에서는 소비재와 B2C에도 활발하게 투자한 걸 알기 때문에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화장품, 먹는 것과 같은 소비재 스타트업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Kihong. 소비재 회사는 이제 끝났어. 과거에는 잘 됐고, 돈을 벌었는데 이제 이런 회사들에 투자하는 건 stupid 한 전략이야.” 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시장 자체가 너무 포화돼서 이 무한 경쟁에서 이기고 크게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몇 년 전과 같이 소비재 회사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설득력 제로인 의견이고, 이 분도 아마도 여기저기서 듣거나 읽은, 남의 의견을 나에게 앵무새같이 따라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논리는 AI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오히려 AI 시장이 더 포화된 것 같은데?”라고 내가 반박하니 AI가 미래이고, 완전히 다르다는, 역시 설득력 제로인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실은, 이 분이 이야기한 것 중 틀린 내용은 없다. 소비재 시장은 정말로 포화됐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 대부분 제품을 보면 차별점도 안 보이고, 뭘 구매해야 할지 선택 장애가 오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소비재이다.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 매일 먹는 음식, 매일 입는 옷과 신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10년 전만 해도 VC 자금이 넘쳐흐르던 소비재 분야에서 요새 투자금이 거의 메말랐다는 이 분의 말도 사실이다.

그럼 왜 스트롱은 병신같이 계속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 세련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답은 바로 아무리 시장이 작고, 아무리 시장이 포화되고, 아무리 시장에 돈이 없어도, 할 놈은 항상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렇게 브랜드가 많고, 매일 크고 작은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장이 정말 포화됐고, 껍데기만 다른 대부분의 제품은 차별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박 터지는 시장에서도 해마다 1,000억 원의 매출을 하는 여러 개의 새로운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먹을게 이렇게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서 아직도 대박 터트리는 좋은 회사들이 계속 새롭게 생기고 있다. 시장과는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는 계속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고, 이 중 극소수는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회사만 살아남고 성공하는 논리는 소비재나 B2C 분야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할 놈은 하기 때문이다. 이건 시장과도 상관없고, 돈과도 상관없다. 할 놈은 그냥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다. 이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고, 이 분야의 창업가를 계속 만나고,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성공하는 투자를 하고 있진 않지만.

할 놈은 항상 하고, 못 할 놈은 항상 못 하고, 안 할 놈은 항상 안 한다. 할 놈이 되자.

네임드롭핑

네임드롭핑(namedropping)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꽤 자주 했는데, 최근에 이런 분들을 갑자기 몇 명 만나서 또 해보려고 한다.

Namedropping은 말 그대로 “이름을 내뱉다”라는 의미인데, 쓸데없이 아는 사람의 이름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본인들이 직접 이런 경험이 있거나, 주변에 네임드롭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과거에 가끔 네임드롭핑을 했던 시기가 있고, 아직도 내 주변에는 본인이 아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쉬지 않고 줄줄 내뱉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렇게 하면 본인들이 돋보이는 줄 아는데, 실은 결과는 완전히 그 반대다.

얼마전에 만났던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내 인생 두번째 네임드롭퍼였다.(내 인생 일등의 네임드롭퍼는 세계 최강). 이 분과 35분 미팅했는데, 그 35분 동안 본인이 아는 투자자, 연예인, 정치인, 사업가의 이름 거의 20개를 나에게 배설했다. 실은 이 중 내가 아는 분들도 있었고, 꽤 친한 분들도 있었는데, 나는 다른 사람 아는체 하는걸 별로 안 좋아하고, 특히나 정말 친하지 않으면 절대로 친하다는 말을 안 하는 편이다. 이 분이 잘 안다고 하는 분들과 정말로 “형, 동생, 누님” 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친한진 모르겠지만, 내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까지 하자 조금 직설적으로 이 미팅은 끝났으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누굴 아는지 관심도 없고,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렇게 당신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면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라는 말을 처음 보는 사람 면상에서 하자니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안 그랬으면 내가 나중에 시간 낭비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가 날 것 같았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이 포스팅의 내용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는 내가 미팅하는 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이 분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이 분이 누굴 알고, 누구랑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아는 그 분이 얼마나 돈이 많고, 얼마짜리 차를 몰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 없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같이 사회적인 체면이 중요하고, 내가 뭘 아는가 보다, 누굴 아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곳에서는 네임드롭핑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어쨌든 나랑 만날 땐 제발 이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임드롭핑을 꼭 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칭찬해라. 험담은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그리고 듣는 자, 이렇게 세 명을 그 자리에서 죽인다.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올해는 여러 가지 거시적인 수치나 분위기를 봤을 때 작년보다는 벤처 시장이 좋아지지 않을지 나는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아직 호황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지금 창업하는 분들은 지난 3년 동안 창업했던 분들보단 덜 쪼들리면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워낙 포트폴리오가 많아서 항상 잘 되는 회사보단 힘든 회사가 더 많은데, 특히나 지난 3년 동안 어둡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회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며칠 전에 아주 오래된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과 정말 힘든 대화를 나눴던 미팅을 했다. 둘 다 바빠서 오후 6시에 우리 사무실 구글캠퍼스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배달시켜서, 먹으면서 working dinner를 했는데, 이날의 느낌이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서 – 마치 트라우마처럼 – 이 상처를 떨치기 위해 글로 한 번 적어본다.

아주 오랫동안 사업을 한 회사인데 그동안 성장은 없었고, 돈은 다 까먹었고,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많은 직원도 회사를 떠났다. 돈이 없다 보니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대출받아서 회사에 가수금을 너무 많이 집어넣었고, 지인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돈을 빌렸고, 부모님과 처가댁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그럼에도 회사는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이젠 세금과 4대 보험이 밀리는 상황까지 왔다. 협력업체에 지급할 비용도 밀렸고,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도 다 까먹었다. 나는 이 창업자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조금만 더하면 잘될 거다”라는 비현실적인 희망 고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년 동안 이 회사를 옆에서 봤던 터라 이날 나는 이분에게 여기서 그냥 접는 게 맞지 않냐고 강하게 말했다.

실은, 과거에 사업 그만하라는 내 조언을 반대하고 계속 사업을 해서 잘 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꽤 조심스럽긴 했지만, 우리 투자금 손실은 이미 확실한 이 시점에서 이 분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게 안타까웠다. 사업하면서 온갖 고생 다 했고, 온갖 정신병을 다 얻었는데, 그냥 이제 조금은 더 편안하게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앞에 있는 이 창업가는 아직도 조금만 더 하면 잘될 거라고 믿고 있어서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아서, 정신 좀 차리라고 조금 세게 말했다.

그러자 이 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실은 너무너무 불안하고, 너무너무 힘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울었다. 그 순간부터 나도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내가 밥을 다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8시가 돼서 미팅은 끝났고, 이 분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조금 전까지 우리가 이야기했던 미팅룸으로 다시 돌아와서 앉았다. 앉자마자 눈물이 찔끔 났다.

인생을 걸고 모든 것을 바친 창업가들에게 내가 뭔데 사업을 그만하라고 해서 이들을 울게 만드는 걸까? 이분들은 편안하게 인생을 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무엇이 이 창업가들을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였을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등,,,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 잘 안 운다. 그런데 이 추운 날 밤만큼은 모두 다 퇴근한 썰렁한 구글캠퍼스에서 울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모든 창업가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들을 가끔은 몰아붙여야 하는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