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밸류에이션 과부하

2020년과 2021년 사이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기간에 벤처 시장이 변한 걸 생각해보면 한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아주 큰 변화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초기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VC들에게 물어보면, 요새 스타트업이 너무 비싸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활동하는 초기 투자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는 시드, 또는 프리 시리즈 A 단계는 아이디어를 기본적인 제품으로 만들었고, 많은 유저는 아니지만 소수의 초기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해봤고, 좋든 나쁘든, 어느 정도의 피드백이 생기고 있는,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 중, 잘 해서 PMF(Product Market Fit)를 찾는 팀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투자금으로 PMF를 찾아가는 팀도 있는데, 어쨌든 대략 이런 단계가 시드나 프리 시리즈 A 라고 생각한다.

한 2년 전만 해도 이 단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은 20억 원 – 50억 원 사이였다. 이런 스타트업이 50억 원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으면 꽤 잘 받은 거였는데, 짧은 시간 동안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 만난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거의 2배가 된 것 같다. 제품은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수치가 없는데, 기본적으로 밸류에이션은 50억 원 이고, 이 단계에서 조금 더 발전했으면 100억 원이 넘는다. 내 기억으론 월 매출이나 거래액이 3억 원 이상 되는 회사들이 기업가치 100억 원에 투자받으면, 꽤 잘 받았었는데, 이젠 초기 제품과 시장의 긍정적인 초기 반응만 있으면, 100억 원에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세월이 됐다.

과거에 이런 회사와 미팅을 하면, 팀과 사업은 무척 맘에 들지만, 밸류에이션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엔,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높은 밸류에 당장 투자가 진행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기업가치가 낮아지고, 이때 투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한 밸류에이션에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샌 이 밸류에이션이 별로 안 비싸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가 비싸서 망설이고 있는 동안, 투자를 받는 회사가 많아졌다. 비싸다는건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이 스타트업들이 엄청나게 크게 성장하면, 초기 밸류에이션 100억 원이 그렇게 비싼 게 아니지만, 이건 시간이 지나야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초기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갑자기 비싸진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모든 게 비싸지고 있어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도 비싸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장에 돈이 너무 많아서 이 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인해서 비싸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고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이 오르기 시작하면, 모두에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진 잘 모르겠다.

요샌 정말 20억 원 밸류에이션 스타트업이 그립다. 이런 회사들 찾기가 워낙 어려워서, 나에겐 기업가치 20억 원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이다.

벤처 정신

11월 말까지 프라이머 20기 선발 인터뷰/미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수에는 서류지원 이후 50개 이상의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중 10개 정도의 회사를 3주 동안 선발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건, 굉장히 힘들다는 점이다. 다 좋은 창업가이고, 다 좋은 비즈니스인데, 이 중 20%만 선발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단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분들과 만나야 하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나도 바빠서 주 중에는 주로 밤 9시 이후에 미팅하고 있고, 주말은 가급적이면 쉬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말에도 미팅하고 있는데, 나도 쉽지 않지만, 미팅하는 창업가들도 힘들 것이다. 다시 한번 밤늦게, 그리고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매번 힘들지만, 매번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강행군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기수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라서 “또 이런 사업이야?”라고 갸우뚱하면서 만났지만, 막상 이야기해보면 너무 잘하는 분들이 많았다. 엘리트 길만을 걸어온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유학파 창업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스텔스’ 창업가, 어릴 적부터 사업을 해왔던 분들, 집안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창업을 선택한 분들 등, 너무나 다양했다. 이 중 대부분이 떨어지겠지만, 프라이머 선발되고 투자 받는 게 사업의 목표가 아니기에, 모두 다 마음속으로는 응원한다.

스트롱도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1년에 두 번씩 여러 명의 창업가를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떤 사업이 커질지 계속 스스로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재료를 프라이머 인터뷰는 나에게 제공해준다.

각 회사와 45분 정도의 짧은 미팅을 하는데, 마지막에 내가 항상 물어보는 게 프라이머 지원 동기이다.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창업가 분들이 프라이머의 코칭때문에 지원했다고 한다. 내가 이 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건, 우리는 그냥 옆에서 응원하고 보조를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 사업의 길을 보여줄 순 없다고 한다. 그동안 수 많은 사업과 창업가를 봤기 때문에, 각자 파트너의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순 있지만, 프라이머 선발되면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잘 되는 걸 바라면 완전히 틀리게 알고 있다는 조언을 여러 번 해 준 적이 있다.

악셀러레이터 선발, 또는 굉장히 유명한 VC로부터의 투자 유치, 이런 건 모두 사업에 있어서 부수적인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업의 본질은 시장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조언, 코칭, 투자는 이걸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재료이지, 본질이 될 순 없다. 결국 메인은 창업가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이건 아무리 경험 많은 투자자나 멘토도 대신 해 줄 수 없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 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어제도 밤 11시에 줌 미팅을 끝내면서, 아직 한국의 벤처 정신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교두보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난리가 났다. 개봉하기 전에 서울 여기저기서 택시와 버스에 오징어 게임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이상했고 익숙한 내용이라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이게 이런 글로벌 히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드라마 딱 9편만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가 될 기세이다. 실은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못 봤지만, 관련 기사는 엄청나게 많이 읽었고, 이런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넷플릭스도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황감독이 오징어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한 건 10년 전인데, 그동안 한국의 투자자와 배우들은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뻔해서, 흥행 못 할 거라고 하면서 모두 투자와 출연을 거부했는데, 이걸 넷플릭스가 픽업해서 투자하고 훌륭하게 배급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요새 워낙 OTT 전성시대라서 넷플릭스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준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한다. 실은, 이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고 있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국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고 예측가능한 콘텐츠만 생성한다는 오래된 기억과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의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분들이 놓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트렌드를 넷플릭스는 2010년 초반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8,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했는데, 이 금액은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더 크다고 알려진 인도시장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넷플릭스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었으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인의 디바이스와 화면을 통해서 알려졌을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선견지명,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 그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의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지만 글로벌 시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글로벌 유통파워가 그 누구보다 좋은 플랫폼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아주 기발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과 성공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스트롱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도 9년 전부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펀드로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꽤 많은 회사에,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몇 개는 해외로부터 큰 투자도 받으면서 상당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런 교두보 역할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고, 외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 영화관에서는 이제 외국 영화의 더빙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는 외국 배우들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글을 읽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자막처리를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읽으면서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인은 글을 읽는 교육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영화를 자막처리하면 내용 자체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오히려 더빙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넷플릭스 사용자들의 취향을 이미 데이터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자막과 더빙을 알아서 추천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미국 성공에는 크게 기여한, 현지 시장을 잘 모르면 하기 어려운 그런 디테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는 VC도 이러한 이유로 양쪽 시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제 한국이 정말로 글로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찰나의 순간

요새 워낙 좋은 창업가와 회사가 많아져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투자 기준 자체가 높아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제품도 없고, 과거 창업 경험이 전혀 없는 똑똑하고 패기 있는 팀에 자신있게 투자를 하곤 했다. 요새도 안 하고 있진 않지만, 과거만큼 많이, 그리고 빨리하진 못 한다. 우리도 투자할 수 있는 총알은 한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좋은 팀들이 시장에 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투자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VC들이 하는 게 rejection일 것이다. 많은 회사를 만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는 투자를 못 한다. 우리도 숫자를 보니, 2020년도에 약 1,000개 정도의 초기기업을 검토하고 만났는데, 실제로 투자로 이어진 회사는 50개 정도이니, 5%에만 투자를 한 셈이다. 이 숫자는 VC마다 다르겠지만, 투자하는 회사보단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더 많은 건 공통사항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은 회사를 만나고, 더 많은 회사에 투자할수록, 더 많은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투자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반대의 현상을 요새 자주 경험한다. 투자사가 몇 개 안 될 땐, 어떻게 투자하면 좋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강했는데, 오히려 이 회사들이 잘 안되고, 내가 한 판단이 대부분 틀렸다는걸 숫자로 본 후부턴,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래서 완전 초기 회사를 만나면, 미팅 후 우리 스트롱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요샌 정말 많이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정말 이 팀이 하고 싶은걸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땐,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이분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투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단은 패스하고 고민해본다. 이후에 이분들이 다양한걸 시도하면서 제품이 다듬어지고, 시장에서 반응이 생기고, 뭔가 찾은 것 같으면, 그때 주로 투자한다. 처음 만났을 때보단 기업가치는 조금 높아져서 아쉽긴 하지만, 이때 투자하지 않고 더 지켜보면, 이 회사가 이 단계를 지나서 제품이 더 좋아지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그땐 훨씬 더 비싸지고, 최악의 경우 투자자 경쟁에서 밀려서 투자를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완전 초기 단계와 시장에서 인지도가 생기는 단계의 중간 지점에서 투자하는 게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의 홈런율이 가장 높아지는데, 그럼 그 미묘한 찰나의 타이밍과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요새 시장이 워낙 과열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고, 이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지 투자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이미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한다.

이런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하려면, 일단 이분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이분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롱이라는 VC의 첫인상이 창업가들에게 매우 좋아야지만, 이분들이 편안하게 우리에게 자주 연락한다. 그래서 모든 미팅이 중요하고, 매사에 진지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이분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보내주면, 항상 진지하게 읽고, 좋은 피드백과 의견을 공유해줘야 한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굉장히 좋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너무 많은 회사를 만나기 때문에, 우리가 이 회사들에게 매번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 “펀딩은 어떻게 진행되나요?”를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로 창업가들이 우리에게 계속 정기적으로 연락해서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구도를 이렇게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후엔,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그 업데이트를 잘 읽고, 분석하고, 생각하다가, 투자할 찰나의 기회가 보이면, 그땐 투자하면 된다. 이 시점에는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됐기 때문에, 서로가 만족하는 조건에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과정이 없어서, 나중에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창업가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VC 였는데, 이후에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 이 VC가 미디어를 통해서 회사가 엄청난 투자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면, “아, 나 저 분 법인 만들기 전에 만났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엄청난걸 만들었네. 근데 왜 나한테는 다시 연락을 안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한다.

8대 불가사의

오늘은 우리가 투자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실은, 내가 쓰는 글 대부분이 많든 적든 사람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요새 특히 자주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consumer internet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지만, 아주 전문적인 날카로운 분야의 회사에도 투자한다. 최근에 이런 부류의 회사에 투자했다. 우리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숙제를 했고, 팀이 좋아서 투자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여전히 우리에겐 부족하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던 대기업 분들과 이야기해 보니, 이미 이분들이 아는 회사이고, 본인들도 전에 한 번 검토를 했었지만, 투자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여기까지면 좋았을 텐데, 왜 그 회사에 스트롱은 투자했는지 엄청나게 궁금해하셨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우리 투자사의 제품과 시장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땐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은데, 우리가 이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잘 못 투자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실은 이분들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린 광범위한 분야에 투자하는 VC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다. 반면에, 이분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는 거의 50년 이상 특정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서 축적한 전문지식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 스타트업을 단순히 제품, 서비스, 또는 시장으로만 본다면, 그리고 정확히 그릴 수 없는 미래가 아닌 현재만을 본다면, 우리가 반쪽짜리도 안 되는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투자한 게 맞고, 이게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틀린 한 수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한 전문가들이 자주 간과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뭘 하는것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다. 안 될 사업도 되게 만드는 창업가들을 너무 많이 봤고, 반대로, 될 사업도 안 되게 만드는 창업가들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사람의 힘을 항상 믿고 있다. 우리 상상보다 인간은 많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업가라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중 요새 미디어에 많이 비치고 있는 당근마켓이나 클래스101 같은 회사도 모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던 사업이다. 서비스와 시장만 봤을 땐 안 될 사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분들이 간과한 건 그 사업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이었다. 안 될 사업을 사람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기 투자는 사람을 연구하는 업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한 가지만 더해본다면, 사람이야말로 바로 8대 불가사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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