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유연함

작은 초기 스타트업들과 같이 일 하다 보면, 많은 걸 매일 배우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유연함이다. 초기 스타트업은 항상 목 마르고, 배고파서, 항상 아쉬운 점들이 많다. 돈이 부족해서 자금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다. 많은 일을 하고 싶지만, 사람이 부족해서 멀티태스킹 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하루가 48시간 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이렇게 항상 자원이 부족하지만, 이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게 작은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유연함이라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중 단기간에 목표 금액을 투자받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 투자를 유치하는 데 3개월은 걸린다. 물론, 이보다 더 오래 걸리는 회사도 많은데, 6개월에서 심지어는 1년 동안 펀드레이징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작년 한 해 코비드19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았던 회사들은 성장 모멘텀을 일시적으로 잃었기 때문에 투자 받는 게 더욱 어렵다.

어떤 회사는 투자 유치 목표 금액이 50억 원이 넘었고, 우리랑 전략도 잘 만들고, 많은 고민을 한 후에 VC들과 미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했던거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고, 거의 6개월 넘게 이 지루하고 우울한 싸움을 하면서 모두 많이 지쳐버렸다. 실은 이 투자가 성사되지 않으면, 2021년도 목표 매출 달성이 힘들고, 여러 가지 내부 계획 실행도 힘들어지게 된다. 특히 채용을 못 하므로, 회사는 굉장히 어려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이 순간에 이 회사와 경영진의 유연함이 잘 작동하기 시작했다. 굳이 안 되는걸 계속하기 보단, 창업팀은 올 해 외부 투자를 못 받는다는 가정을 하고, 추가 자금 없이 버티고, 심지어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게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50억 원을 한 번에 투자 받는게 아니라, 아주 작게 5억 원 또는 10억 원 단위로 점진적으로 받는 펀드레이징 전략을 다시 수립했고, 여기에 맞춰 사업 KPI도 초단기적으로 잘게 썰어서 전면 수정했다. 수년 동안 해오던 운영 방식과 사업 모델을 이렇게 단시간 안에 바꾸는 건, 유연하지 못하면 정말 할 수 없고, 특히 대기업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유연함이 정말 좋다.

유연함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나 자신을 언제든지 맞출 수 있는 준비된 자세이다. 자존심 강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찬 창업가들에게 이게 생각만큼 쉽진 않다. 오랫동안 계획한 일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우선순위를 과감하게 조정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러면 회사의 모든 자원을 재배치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과 생각지도 못 했던 일들을 해야 한다. 그래도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연해야 하는데, 이건 아마도 스타트업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예측과 밸류에이션

2012년 런던에서 창업한 핀테크 스타트업 Checkout.com의 $450M(약 5,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 소식을 얼마 전에 접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이 회사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우리도 비슷한 분야의 한국 회사 페이플에 투자해서 그런지,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이번 라운드로 체크아웃닷컴은 창업 8년 만에 $15B의 데카콘이 됐는데, 이 회사의 초기 성장은 매우 더뎠다. 회사 대표에 의하면 창업 후 회사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성장하면서 매출이 조금씩 발생할 때마다 무리하지 않고 한 명씩 추가로 채용을 했다고 한다. 한 명 채용할 수 있는 수익이 나면, 한 명만 채용했고, 두 명 채용할 수 있는 수익이 나면 두 명을 채용할 정도로, 돈을 버는 대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다 썼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하지만 예측 가능할 정도로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창업 7년 만인 2019년도에 처음으로 외부 기관 투자자에게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는데, 유럽 스타트업의 투자 규모로서는 역대 최고였던 $230M(약 2,500억 원)을 $2B 밸류에이션에 받았다. 이번 시리즈 C 투자로 체크아웃닷컴은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기업가치가 큰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워낙 조심스럽게 성장을 한 회사라서 그런지, 이미 회사는 돈을 벌고 있고, 이익이 발생하고 있어서, 연명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에 큰 투자를 받은 이유는, 좋은 사람을 더 많이 채용하고, 해외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규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금 쿠션을 확보하고, 그리고 Insight, DST, Coatue, Tiger Global Management 와 같은 최고의 투자사들이 참여하면서 더 큰 고객사들과 대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이렇게 대단한 투자사들이 돈이 굳이 필요 없는 회사에 계속 높은 밸류에이션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한 이유였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체크아웃닷컴의 비즈니스는 워낙 안정적인 B2B SaaS 모델이라서, 현재 영업하고 있는 잠재고객사 리스트를 기반으로 아주 정확한 미래의 매출을 예측할 수 있고, 이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해석해보면, 내년 비즈니스가 어떨지, 매출은 어떨지, 비용은 어떨지 등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인데, Pousaz 대표에 의하면 현재 체크아웃닷컴의 잠재 고객 수 만을 기반으로 이 회사가 2021년도에는 최소 80% 성장할 것이 매우 확실하다고 한다.

실은 스타트업이 이렇게 정확하게 실적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과거의 데이터가 많아야지만 이런 예측이 가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표들은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한다. 2020년 매출이 1억 원이었던 회사가 2021년도에는 100억 원 매출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어떻게 나오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열심히 하면 달성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이 회사는 투자 받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체크아웃닷컴과 같은 B2B 비즈니스는 매출 발동이 걸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계속 고객이 생길 것이고, 기업 고객의 경우 예측이 조금은 더 수월할 수가 있다. B2C 비즈니스는 한 번 발동 걸리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예측이 조금은 더 어렵긴 하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비즈니스를 공식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서 해야 하며, 데이터를 계속 보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예측력이 비즈니스에 내재화되고, 이게 가능해지면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투자 받는 게 더 수월해진다.

사업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밸류에이션 또한 꽤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Animoto 근황

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

B2C와 B2B

우린 작년부터 B2B 회사에도 꽤 활발하게 투자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투자는 B2C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했다. 꼭 어느 쪽이 더 좋은 비즈니스라고 하긴 어려운데, B2C 회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바이럴성이 더 강해서 B2B 회사보단 폭발적인 성장이 더 잘 일어나긴 한다. 하지만,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금이 희생되어야 하고, 엄청난 마케팅 싸움 또한 동반되야한다. 이렇게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더 큰 경쟁사가 더 많은 돈을 갖고 나타나면,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제품에게는 스피드가 매우 중요하다. B2B 회사는 바이럴을 타는 건 쉽지 않지만, 한번 고객을 확보해놓으면 꾸준히 매출을 발생하는 장기적인 기업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B2C 회사로 돌아오면, 어차피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업고객한테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표들이 B2C와 B2B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건을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개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비즈니스를 B2C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B2B 사업도 동시에 같이 하는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 중에도 꽤 있는데, 이런 비즈니스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배움은, 일단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판매하더라도, B2C와 B2B는 결국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회사가 웬만큼 커져서 인력과 돈이 많이 없으면, 되도록 이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더 잘 성장하고, 결국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태생이 B2C인 비즈니스가, 같은 제품으로 B2B를 하게 되면 우리의 실질적인 고객은 – 즉, 우리한테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 – 우리 제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C(Consumer)가 아니라 B(Business)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업이 완전히 달라진다. D2C 비즈니스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면, 최종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된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을 할 것이다. 또는,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에서 SEO 등과 같은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하고, 이 잠재 고객이 우리 플랫폼을 방문하면, 이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앞으로 계속 우리 물건을 더 많이 사고, 더 자주 살 수 있도록 모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한테 우리 물건을 마케팅하고 이들이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게 B2C 비즈니스의 목표다.

B2B로 전환을 하면 달라진다. 그냥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사입할 수 있는 기업에 우린 팔면 된다. 그 다음에 이 기업이 최종 소비자한테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 기업에 돈을 받고, 이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B2C 비즈니스보단 더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일단 영업이라는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하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그런 고전적인 영업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서 우리 회사와 제품 설명을 해야 하고, 계속 판매를 하기 위한 영업 활동을 해야 한다. 실은 이렇게 해서 B2B 고객이 많이 생기면 회사 매출에는 도움이 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 B2B 고객들이 실제로 우리 물건을 판매하는 최종 소비자들에 대한 그 어떤 데이터도 우리가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새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있는데, 우리의 최종 소비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이메일, 전화 등), 얼마나 자주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신용카드 정보 등과 같은 고객의 정보는 앞으로 우리가 이 분들한테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른 기업에 물건만 팔면 되는 경우에는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힘들다.

요샌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현금 흐름 면에서도 B2C 비즈니스가 B2B를 하다 보면 불리한 점이 가끔 있다. 제품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항상 같거나 거의 비슷해야 하는데, 우리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모델과는 달리 B2B로 판매를 하면, 우리 고객이 되는 기업이 중간에 가져가야 하는 마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떨어지는 매출은 많게는 50% 이상 줄어들 수가 있다. D2C 비즈니스의 경우, 백화점에 입점하는 B2B 시도를 할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백화점은 수수료의 명목으로 상당히 높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사몰에서 물건을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면, 판매가 완료된 후에 바로 우리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기업들과 거래를 하다 보면, 심한 경우 90일 후에 결제해주는 곳도 있어서 장부상 매출은 잡히지만 실제 현금은 3개월 후에 들어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나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B2B 비즈니스가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약점도 있지만, 큰 기업이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는건 우리한테는 상당히 좋은 브랜딩이 될 수도 있고, 그래도 한 번에 대량의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일시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B2C와 B2B를 모두 잡아야하는게 맞다. 결국, 이렇게 시장을 선점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초반부터, 태생 자체는 B2C 비즈니스인데 B2B도 같이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모가 더 커질수록, consumer와 business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패턴을 가진 다른 고객이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초반에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스트롱 협업

코비드19 이후에 비대면과 언택트가 키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우리 투자사 플링크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를 활용해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하는 회사가 부쩍 늘어났다. 바로 전 포스팅이 플링크와 오누이의 스트롱한 협업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우리 투자사들간의 자발적인 파트너십을 볼 때마다 우리가 정말 좋은 회사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가 있다.

오누이 팀이 설탭을 출시 했을 때 회사의 규모는 5명 미만이었다. 개발인력이 있긴 했지만, 여러 명의 과외선생과 학생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끊김없는 과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large scale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플링크 팀과 이야기를 시작했고, 대규모 스케일을 감당할 수 있는 페이지콜 API를 활용해서 설탭을 짧은 기간안에 출시하고, 지금까지 문제없이 동시접속자들을 핸들링하면서 잘 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개발력, 돈, 그리고 시간이 투입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만들 수야 있겠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매우 중요하다. 본인들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남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잘 반영된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는 이벤트 플랫폼 이벤터스와 플링크의 협업이다. 누구나 이벤트를 만들고, 참석자들을 초청할 수 있는 서비스 이벤터스도 코비드19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 중 하나다. 행사의 거의 100%가 오프라인 모임과 이벤트였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서 3월부턴 월 이벤트 수가 99% 이상 감소하면서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벤터스 경영진들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웨비나(웹+세미나)를 테스트해보기로 했고, 이 또한 플링크의 페이지콜 API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미국은 온라인 세미나에 익숙하지만, 이 개념이 아직은 생소한 한국에서도 웨비나가 잘 되겠냐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워낙 심각한 위기상황이라서 일단은 만들어 놓고 테스팅하자는 생각으로 아주 빠르게 웨비나 플랫폼을 구축하고 바로 테스팅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았고, 이젠 상당히 큰 규모의 웨비나도 거뜬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이 또한 이벤터스에서 자체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돈과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투입됐을 것인데, 아주 좋은 협업 사례였던 것 같다.

플링크한테도 이런 협업은 매출 외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좋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를 잘 만들었지만, 실제로 서비스에 도입됐을 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대규모 확장성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추가로 어떤 기능이 개발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본인들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잘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오누이와 이벤터스와 같은 사용도가 높은 서비스의 척추 역할을 하면서 페이지콜 API도 상당히 많이 개선됐다. 특히 한 번에 300명 이상 접속하는 웨비나의 트래픽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버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최적화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실제로 돌아가는 라이브 서비스에 적용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다.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면서, 이런 스트롱 회사들간의 협업이 더 자주 일어나면서 서로의 서비스가 더욱더 견고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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