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

우리는 비상장 초기 회사에 투자하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딜들을 접하게 된다. 간혹, 상장 바로 전의 회사의 pre-IPO 주식 투자 기회도 시장에서 돌다가 우리한테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그동안 회사에 도움을 줬던 분들한테 보답?의 차원에서 실제 상장 예상되는 가격보다 조금 싸게 투자 기회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다. 또는, 상장하기 전에 갑자기 회사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IPO 예상 가격보다 조금 싸게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실은, 전에 이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다면, 고민을 좀 했을 거 같다. 우리는 이런 큰 딜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만, 앞으로 우리도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펀드에 조금이라도 실적이 일찍 생기면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앞으로 6개월 후에 IPO 예정인 회사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한다면, 대박은 아니겠지만, IPO 이후에는 가치가 몇 배 오를 것이고, 그리고 public 시장에서 팔면, 펀드의 LP들한테 조금이라도 수익을 만들어서 돈을 돌려줄 수 있고, 이렇게 하면 꽤 빠른 시간안에 펀드에 약간의 실적이 생긴다(투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실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샌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가 좀 헷갈린다. 최근에 IPO 한 유니콘들의 기업가치가 꼬꾸라지고, IPO 자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걸 보면서,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IPO가 회사의 목적이 돼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자금 조달의 측면에서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며, 그 외에 뭔가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또한, 기존 투자자들이 exit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에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 투자자들이 IPO를 하라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 많은 기업이 IPO를 회사의 큰 마일스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IPO 한 회사들의 실적을 보면, 명암이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비상장 시장의 투자자와 상장 시장의 투자자들이 회사의 가치를 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매우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새삼 깨닫고 있다. 일단, 잘 알지만, 비상장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매출, 이익, unit economics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기반하기보단, 창업가의 비전과 회사의 잠재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부여하는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같은 대형펀드가 등장하면서, 투자자 간에 경쟁이 더해지면, 이 기업가치는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손실이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탄탄한 매출과 이익이 나는 중견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자랑하는 비상장 회사들이 너무나도 많다. 유니콘들이 대표적이라고 생각된다. 뭐, 이게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이 중 정말 미래에 세상을 바꿀 회사가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비상장 시장의 기업가치 산정 방법이 맞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상장 시장의 경우, 투자자들이 기업을 보는 관점은 매우 다르다. 가능성도 당연히 보지만, 이들한테 당장 중요한 건, 아주 명확한 숫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더 빠른 시점에 조금 더 저렴한 밸류에이션에 투자하길 선호하는 우리 같은 VC와는 달리, 더 비싸게 투자해도 상관없으니, 본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출과 이익이 모두 좋게 나올 때까지, 그리고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이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IPO 이후에 주식가격이 급등해도, 동요하지 않고 가격이 정상화되길 기다리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회사의 비즈니스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모든 회사에 비슷한 기준과 배수를 적용하는 실수를 범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우버와 같은 택시라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온라인 기술을 적용한 온디맨드(=O2O) 회사의 외형적인 수치는 클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손실도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워낙 unit economics를 맞추기 어려우니까. 이와는 반대로 Zoom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SaaS 비즈니스는 우버보단 외형이 작을 수밖에 없지만, 100% 소프트웨어 기반의 비즈니스라서 마진은 O2O 비즈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VC는 Zoom보다는 우버의 기업가치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상장 시장의 투자자는 회사들이 높은 배수를 원한다면, 그만큼 높은 마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버와 같은 회사는 현재 상장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그나마 줌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상장 시장의 투자자들이 이런 객관적이고, 감정에 덜 치우치는 기준으로 투자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동안 너무 높은 단위의 투자금과 난무하는 유니콘 때문에 잠시 이런 사실을 잊어버린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긴 하다. 너무 많은 스타트업이 너무 많은 투자를 받았는데, 손실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외형적 성장에만 너무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고, 실은 우리 같은 VC도 여기에 큰 일조를 했기 때문에 나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긴 하다.

얼마 전에 이런 농담을 들었다. 실리콘밸리에 호프집이 새로 생겼는데, 개업하는 날 6,000명의 고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 중 실제로 술은 아무도 사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엄청나게 성공적인 술집이라고 주위에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젠 그래도 술을 좀 팔아야 하고, 술의 원가보다는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지만 성공적인 술집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시장에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B2B SaaS 비즈니스 지표

전에 내가 B2B SaaS 비즈니스에 대해서 썼듯이, 나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좋은 B2B 스타트업이 생길 것이고, 이 회사들이 성공하면, 더욱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B2B SaaS 스타트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요새 B2B 분야에 투자를 더 많이 하려고 하고, 나도 계속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 테크크런치에서 B2B SaaS 회사에 대한 좋은 내용을 읽었는데, 미국에서 상장한 B2B SaaS 회사 중 현재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들을 분석해서, B2B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를 파악해본 것이다. 솔직히 아직 우리나라와는 조금 요원한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빨리 이 시장이 한국에서도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이 어떤 지표를 목표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간접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B2B 대표들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테크크런치에서 사용한 상장회사 리스트는 확보할 수 없었지만, 전체 리스트에서 현재 기업가치(시가총액)가 2019년도 예상 반복 매출(run rate revenue)의 20배 이상 되는 회사들만 선별했고, 이 회사들의 다양한 숫자를 기반으로 몇 가지 의미 있는 지표를 계산한 후, 전체 평균값을 내봤다. 다음과 같다:

–2019년도 반복매출 대비 기업가치(시가총액): 26.3배
–2020년도 반복매출 대비 기업가치: 20.3배
–최근 12개월 FCF(Free Cash Flow: 잉여현금흐름) 마진율: 19%
–반복매출 연성장률: 48%
–효율(Efficiency): 66%
–매출총이익률: 73%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효율(Efficiency)은, 회사의 FCF(Free Cash Flow) 마진율에 성장률을 더한 값인데, 상장 이후에 효율이 40% 이상이면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라고 판단한다고 한다. 즉, 미국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B2B SaaS 상장회사의 FCF 마진율은 약 20%이고, 해마다 매출이 50% 정도 성장한다. 그리고 효율도 매우 높다.

이제 시작하는 한국의 B2B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지표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참고하면서 사업을 하면 좋을 거 같다. 아무래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B2B 소프트웨어 시장이고, 그만큼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가 많기 때문이다.

B2B SaaS

1560931788984한국에서 회사 다니는 분 중 명함관리 서비스 리멤버를 모르는 분들이 점점 더 없어지는 거 같다. 그만큼 국민명함 앱으로 자리를 잘 잡아가는 것 같다. 일본에도 리멤버와 비슷한 Sansan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얼마 전에 일본 시장에서 IPO를 했다. 나는 작년에 일본에서 Sansan의 대표 Chika Terada를 만난적이 있는데,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일본 창업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을 없앨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최근에 한국이 눈부신 발전을 하긴 했지만, 아직도 경제 규모나 인구로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강국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하는 분야가 하나 있다면, 나는 아주 자신 있게 ‘창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만 있으면, 요새 한국의 젊은 친구들 너무 자신감이 없고, 연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많이 하지만, 일본의 젊은 층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주 양호하다는 이야기를 한국과 일본에서 자주 듣는 편이다. 내가 일본을 잘 모르지만, 일본은 아직도 취업할 수 있는 회사와 포지션이 많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창업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먹고 사는 게 충분히 가능한 사회라고 들었다. 그리고 한국도 실패를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지만, 일본은 이게 한국보다 더 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걸 잘 시도하지 않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창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타트업 숫자도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창업을 잘 안 해서, 한국보다 VC 생태계가 약한다는 걸 나도 갈 때마다 느끼고 있다. 또한, 창업하더라도, 일본 내수 시장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한국 창업가들처럼 굳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를 잘 못 느낀다고 한다.

이는 그나마 한 나라의 스타트업 생태계의 수준을 비교,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 중 하나인 유니콘 기업의 수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CB Insights에 의하면, 한국은 8개의 유니콘 기업을 자랑하는 전 세계 6위의 유니콘 강국이지만, 일본은 유니콘 기업이 1개 밖에 없다. 그리고 자존심 강한 일본 VC와 이야기를 해도, 이들이 아주 흔쾌히 인정하는 부분이 바로 한국 젊은이들이 훨씬 더 진취적이고 리스크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더 좋은 스타트업이 한국에 많고, 일본 스타트업이 한국 스타트업한테 배울 수 있는 점이 훨씬 많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 창업가의 이미지는 패기도 없고, 야망도 없었는데, 위에서 말했던 산산의 대표는 그 어떤 실리콘밸리나 한국의 창업가보다 시야가 넓고, 인성도 좋고, 비전이 명확한 창업가였다. 그리고 일본의 창업 생태계가 한국보다는 전반적으로 뒤처져있긴 하지만, 뭔가 만들어서 기업에 판매하는 B2B SaaS 시장은 단연하건대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잘하고, 더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B2C 시장이 B2B보다 기형적으로 더 발달되어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B2B 유니콘이 나오지 않았고, 많은 분이 이 시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한국은 대기업이 모든 걸 다 직접 하기 때문에 작은 스타트업이 기업에 돈을 제대로 받고 판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인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B2B 시장이 아직 크지 않고, 한국은 B2B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 이 분야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있고, 많은 창업가들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창업을 하면 B2B 보단 B2C 쪽에서 시작한다. 이런 구조로 가니까, B2B 소프트웨어 자체가 별로 안 만들어지고 있고, 안 만들어지니까, 다양한 실험도 없고, 시행착오도 없어서, 더욱더 이 분야에 발전이 없다. 이런 구조는 B2B 소프트웨어의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나는 이 악순환 고리가 언젠가는 깨질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업무의 효율화를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용할 수밖에 없고, 모든 걸 내부에서 만들고 처리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기 때문에, B2B SaaS 시장이 커질 거라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이런 맥락에서, 한 5년 전부터 우리도 한국과 미국의 B2B SaaS 비즈니스에 투자를 좀 했는데, 최근 들어 한국의 B2B 서비스 투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우린 아이디어웨어라는 B2B 회사에 투자했는데, 모바일앱과 리테일을 분석해주는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아마도 이 회사를 모르는 분은 많지만, 와이즈앱에서 분석한 데이터가 활용된 이런 부류의 보고서는 많이들 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B2B 유니콘이 하나 나오길 기대한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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