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성장과 수익의 저글링

지난주에 불경기가 왜 어떤 스타트업에겐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인지에 대해서 몇 마디 썼다. 내 블로그를 계속 읽는 분들에겐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오늘은 왜 이게 어쩌면 기회가 아니고 자멸로 가는 길일 수도 있는지에 대한 약간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땐 – 이건 팬데믹 기간뿐만 아니라 실은 지난 12년 동안이었다 – 모든 스타트업의 전략은 수익성보단 성장성에 기울어졌었다. 기형적으로 많은 돈과 자원이 돈을 벌어서 흑자 나는 회사를 만드는 방향보단, 손실이 발생해도 무조건 외형을 성장시키는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성장하는 전략을 나도 좋아하진 않지만, 이게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 전에, 경기가 좋을 때 당시 시장의 분위기도 감안을 해봐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땐 정말로 유동성이 풍부했다. 정규 교육을 받았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서 2년 이상의 직장 경험이 있는 창업팀이라면 웬만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다. 워낙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생겼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수많은 VC들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성 보단 성장이 중요했다. 그래서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다 적자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고효율의 그로쓰 마케팅에만 집중했다. 돈을 못 벌어도 일단은 고객을 획득해서 락인하면,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 지금은 이 사상을 모두 다 정말 싫어하지만 – 전략을 모두 다 진심으로 믿었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마케팅에 돈을 너무 많이 썼고,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을 뽑으면서, 투자금은 금방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또 나가서 펀딩하면 됐고, 나쁘지 않은 조건에 후속 투자를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품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상태에서 잘 받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돈을 쓰면서 외형만 성장시키는 게 진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그 분야에서 일단 1등을 먹으면,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해도 된다는 것도 모두 굳게 믿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냥 돈이 워낙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그냥 앞뒤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막 쓰고, 투자를 막 해도 크게 이상한 시절이 아니었다.

불경기가 찾아오고 유동성이 떨어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장하자는 분위기가 수단과 방법을 잘 가려서 돈을 벌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래액이나 매출과 같은 외형을 키우기보단, 크게 성장하지 못해도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요새 대부분 스타트업의 전략일 것이다. 우리 또한 스트롱 창업가분들에게 마이너스 나는 성장은 멈추고, 손익분기를 맞추고, 수익성에 집중하라고 한다. 성장 못 하는 걸 은근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수치가 줄어들어도 일단은 수익성을 맞추라고 강력하게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만 개선하고 성장을 못 하는 비즈니스는 크게 되기 힘들다. 성장이 없는 손익분기는 스타트업의 주 전략일 순 없고, 결국 작은 스타트업이 큰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성장이라는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언제는 무조건 성장하라고 하고, 언제는 성장 하지 않아도 되니 돈을 벌라고 하고, 이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라고 하네.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좀 미안하지만, 이게 변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환경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이 감수해야 하는 숙명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에 유동성이 없을 땐,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렇다고 성장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꺼버리면 안 된다. 상황이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성장에 초점을 맞출 준비는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성장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의 공을 항상 저글링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하나의 공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주워서 다시 저글링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벤처 혹한기의 장점

얼마 전에 스트롱의 주주총회(AGM: Annual General Meeting)가 있었다. 글로벌 벤처 시장에 대한 슬라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2021년부터 지금까지 벤처기업에 투입된 글로벌 투자금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돈이 넘쳐흘렀던 2021년에 전 세계 벤처기업에 투입된 자금은 자그마치 $646B 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단위의 돈을 취급하지만, 이 금액은 나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다음 해인 2022년은 이 수치가 $421B로 35%나 감소했다. 그리고 올해는 또다시 40% 정도 감소한 $260B 정도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가 아직도 반등의 시그널은 안 보이고, 금리 인상과 세상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은 경기 회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내년에는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개인적으로 생각했지만, 이건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되니, 우리에게 돈을 주는 LP들도 VC들에게 시원하게 돈을 투자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우리 같은 VC들도 매우 위축되어 있다. 자금의 가뭄 상태가 당분간 계속 지속될 것이고, 결국 이 먹이사슬의 가장 끝단에 있는 스타트업들은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벤처 혹한기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수치가 좋아지면서 팀의 자신감이 많이 올라 온 우리 투자사 대표와 미팅을 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투자 유치를 열심히 했다. 우리도 피드백을 많이 제공한 자료에도 많은 공을 들였고, 이 회사의 업을 이해할 만한 투자자들을 전략적으로 나열해서 아주 체계적으로 펀딩을 시도했는데, 결국엔 잘 안돼서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후에 펀딩을 중단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장에 돈이 없다는 걸 거의 기정사실로 하면서, 외부 자금의 투입 없이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다시 만들면서 회사의 제품과 방향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줬다. 예상치 못 했던 이 전략 수정의 결과는 현재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 회사의 대표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작년에 만약에 투자받았다면, 지금쯤 망했을 거예요. 당시의 회사 방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돈을 못 버는 전략인데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투자받았으면, 계속 흥청망청 돈을 쓰고, 사람을 채용했을 테고, 지금쯤 엄청나게 헤매고 있을 거예요. 오히려 그때 투자 못 받은 게 회사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 투자받지 못 한 창피함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현재 이 회사의 수치와 팀원의 자신감을 봤을 땐, 정말로 그때 투자를 못 받은 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 불경기가 어떤 회사들에겐 더 좋은 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돈이 없어서 너무 춥고 배고픈 벤처 혹한기다. 많은 창업가들이 어쩔 수 없이 돈을 아끼고, 그동안의 전략을 전면 재수정하고, 현실에 눈을 뜨면서 정신을 바짝 차린다. 이런 분들은 이 불경기를 잘 살아남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사업의 질 자체가 확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오히려 이 불경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B2B API 사업을 하는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 블로그의 ‘창업일지’ 시리즈를 추석 연휴 동안 재미있게 읽었다. 9편이지만, 짧기도 하고 그냥 쉽게 잘 읽혀서, 집중하면 한 25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다. 내가 페이지콜 최필준 대표님을 처음 만난 게 2017년이고, 프라이머 투자 이후 스트롱도 투자하면서 나름대로 서비스 창업 초기부터 봤기 때문에 이 팀과 회사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페이지콜에 투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7년만큼 긴 시간 동안, 이분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 개고생을 이미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은,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적힌 기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뭔가 더 짠하기도 했다.

이 블로그의 내용은 최근에 내가 읽은 창업가들의 글 중 가장 스타트업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스타트업한다는 것이 드라마 ‘스타트업’과 조금은 유사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다. 물론, 이분들은 본인들이 직접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지 않은 분들인데, 인구의 대부분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스타트업 드라마의 시각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 해도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이 시각은 그냥 틀린 게 아니라, 너무나도 왜곡됐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OST도, 낭만도, 감동도,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냥 주구장창 개고생밖에 없고, 정말로 대단한 체력, 정신력과 각오가 없으면 일반 사람들은 2년을 버틸 수가 없다.

후반부에 스트롱과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등장하는데, 나를 만난 이후 페이지콜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만나기 전의 이 회사와 창업팀의 여정에 대해서 읽어보니, 스스로가 겸허해질 정도였다. 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지금도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제정신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최필준 대표님과 페이지콜 팀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다 힘든 자신만의 전쟁을 지금, 이 순간에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게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력과 체력이 약한 분들에겐 정말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모든 해피 엔딩은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재난과 같은 엔딩으로 참혹하게 끝난다. 단지,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스타트업도 지나온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해피’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스타트업은 인간의 최선을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최악을 보게 된다. 이게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린 창업가들의 최악과 최선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결국 이 모든 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오늘도 선과 악의 싸움에서 이기는 하루가 되길. 모두 파이팅.

슈퍼앱의 위험

스타트업 경기가 요새 상당히 안 좋지만, 오히려 우린 질 좋은 창업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스트롱에겐 호경기라고 생각한다. 투자받는 게 힘들고, 스타트업하기엔 어쩌면 최악의 타이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회사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은 굳은 의지와 자신감으로 중무장하여 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들이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지만, 그 두려움보다 뭔가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자신감이 더 크기 때문에 창업하는 건데, 이런 사람들이 대단한 사업을 만드는 걸 몇 번 봤기 때문에 우린 요새 오히려 기분 좋은 미팅을 많이 하고 있다.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비전도 강하고, 꿈도 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들 중 많은 분들이 그 어려운 대형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하고, 궁극적으론 본인들이 사업하고 있는 버티컬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슈퍼앱’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슈퍼앱은 너무 좋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특정 버티컬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이런 제품,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버티컬로 확장해서 vertical – horizontal 시장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슈퍼앱은 잘만 실행하면 유니콘이 되는 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모든 투자자들이 이런 회사와 제품에 투자를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잘 만들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는 서비스의 공통점은 바로 잘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도 지난 11년 동안 250개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궁극적인 목표가 슈퍼앱인 회사들이 엄청 많다. 실상은, 대부분 슈퍼앱을 만들다가 망했거나, 슈퍼앱을 만들기 위해서 수년째 고생하고 있다. 그래서 요샌 아직 제대로 된 product market fit도 찾지 못 한 창업가들이 계속 슈퍼앱을 만들겠다고 하면, 약간의 색안경을 쓰고 보고, 듣게 되고, 결국 이분들과 미팅을 하고 나면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겠다고 억지를 쓴다는 느낌만 받는다.

이런 분들에게 내가 항상 조언드리는 건, 모든 걸 하겠다는 슈퍼앱을 목표로 하지 말고, 그냥 아주 작은 기능 하나로 시작하고, 이 작은 기능을 그 어떤 시장의 대체제보다 뾰족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라고 한다. 머릿속에서는 엄청나게 큰 비전이 꿈틀거리고, 세상을 씹어먹어 버릴 수 있는 슈퍼울트라앱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겠지만, 잠시 이런 허상을 접어두고,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기능에서 뾰족한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게 슈퍼앱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렇게 작은 기능을 그 누구보다 잘 만들다 보면, 조금 더 큰 기능을 그 누구보다 잘 만들 것이고, 이 큰 기능들이 합쳐지면 특정 버티컬에서 가장 product market fit을 잘 충족시키는 버티컬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절차를 밟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버티컬로 확장하면서 슈퍼앱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슈퍼앱을 만들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모든 걸 여기에 구겨 넣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고, 실제로 우린 이런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슈퍼앱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앱을 만들겠다는 목표보단, 검색과 메신저라는 기능을 그 누구보다 뾰족하게 만든 후에, 그리고 다른 분야로 확장하더라도 원래 본인들의 기반이 되는 이 검색과 메신저 기능을 다른 경쟁사가 절대로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그제야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 슈퍼앱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슈퍼앱의 가장 큰 위험은 첫 문장도 완성하지 않았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대작가가 되겠다는,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플랫폼이 되겠다는 창업가들의 허무맹랑한 비전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 한 삽

사업이 잘 안될 때, 언제까지 해야지, 이제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하자는 결정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시점에 나한테 이 질문을 하는 우리 창업가분들이 요새 부쩍 많아졌고, 스타트업에서 정답이란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답이 없는 질문 중 하나라서 나도 답답하고, 미안하고, 항상 고민하는, 그런 질문이다.

이 질문은 내가 11년 동안 VC로서 활동하면서 꾸준하게 받았던 질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사업을 몇 년 동안 했는데, 만족할 만한 성과는 항상 안 나오지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느낌과 희망을 가진 창업가 – 실은 이건 모든 창업가에게 해당할 것이다 – 라면 누구나 다 이 질문을 한다. 이런 분들은 딱 3개월만 더 해보면, 그동안 찾지 못했던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서 우리 제품이 대박 날 것 같고, 딱 2달만 더 펀딩을 시도해 보면 우리 사업을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날 것 같고, 피봇팅을 한 번만 더 하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분들의 생각, 고민, 스트레스, 그리고 마음을 나는 아주 정확하게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스트롱 전에 몸담았던 뮤직쉐이크라는 스타트업에서 5년 동안 내가 이런 생각과 고민을 거의 매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엔 어느 순간 멈췄다. 5년 동안 열심히 삽으로 땅을 팠다. 열심히 파면 분명히 저 땅 밑 어딘가에는 금광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금광을 찾을 때까지 계속 땅을 파겠다는 의지가 초반에는 너무 강했다. 그런데 계속 깊게 파고 들어갔는데, 금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하고 그 옆을 파고 들어갔고, 또 그 옆을 팠고, 금광이 없으면 계속 다른 곳을 파고 들어갔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는데, 그래도 한 삽만 더 뜨면 분명히 금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엔 나는 삽질을 멈췄다. 삽질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내 속에서는 “야, 배기홍. 다 왔는데 여기서 멈추면 어떻게. 한 삽만 더 파면 네가 5년 동안 한순간도 못 잊었던 금광이 있다니까. 한 삽만 더 파봐.”라는 생각이 계속 멤돌았다. 하지만, 나는 지쳐있었다. 너무 지쳐서 한 삽만 더 파면 정말로 금광이 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고집과 집착에 몸과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금광이 있다는 환상을 믿었던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후자일 거라고 스스로를 힘들게 설득하고 멈췄다. 그리고 다시 내가 판 땅굴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맞는 결정을 한 것일까? 원래 금광이 없었는데, 혼자서 최면을 걸면서 개고생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딱 한 삽만 더 팠으면 노다지를 발견했을 텐데 그걸 못 견디고 포기한 걸까? 아마도 진실은 무엇인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실은 지금도 삽을 들고 다시 땅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최근에 어떤 대표이사를 만났다. 7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본인 돈 25억 원을 회사에 투입하면서 계속 사업을 연명하고 계신 분이다. 몇천만 원, 또는 많아도 5억 원 정도를 대표이사가 회사에 투입한 사례는 봤지만 본인 돈 25억 원은 내가 아는 액수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까, 딱 이 말을 했다. “한 삽만 더 파면 분명히 금광이 있을 거예요. 지금 포기하면 너무 아깝잖아요.”

다행히도 이분은 개인적으로 돈이 좀 있는 분이라서 나중에 개인 파산하는 상황까진 안 갈 것이지만, 과연 저 밑에 금이 있는데 더 깊게 안 들어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집착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이분에게 그만하라는 충고도 못 했고, 계속 열심히 삽질하라는 충고도 못 했다. 그냥 “열심히 하세요” 하고 헤어졌다. 뭘 열심히 하라고 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정말로 한 삽만 더 파니까 금이 있어서 대박 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고, 한 삽이 열 삽이 됐고, 열 삽이 백 삽이 됐지만 금은 못 찾아서 폐인이 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기 때문이다. 내가 충고해 줄 영역은 아니라서 그냥 입 닥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삽의 진실. 이 질문은 나에겐 영원한 스타트업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