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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MAU

당근마켓 10M

이미지 출처: 당근마켓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MAU(Monthly Active Users: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는 unique한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 보도됐다. 회사의 상황을 남들보다는 더 깊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1천만이라는 수치는 당연한 산출물이지만, 막상 이 숫자를 돌파 했을 때는 조금 먹먹해졌다. 한국 인구 5,200만 명, 스마트폰 인구 5,000만 명인데, 이 중 20%인 1,000만 명이 당근마켓을 매달 사용한다는 건 이제 갓 5년 된 앱이 만든 대단한 실적이다. 작년 7월 MAU가 300만, 이후 9개월 만에 2배가 넘는 700만, 그리고 다시 4개월 만에 1,000만 MAU 고지를 점령했다. 우리가 첫 투자를 했고, 분명히 잘할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항상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가뿐히 넘어주는 당근마켓 팀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 1,000만이라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기반으로 동네 주민의 문화, 생각, 태도를 확실히 바꾸고 있고, 이게 실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에 당근마켓 거래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 싶다. 오래된 계산기를 18,000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는데, 잠원동 분이 아파트 정문으로 오겠다고 했다. 배터리가 오래 돼서 액정이 깜박거렸는데, 그냥 배터리는 알아서 교체하라고 설명에 적었다. 아주 발랄한 여대생 분이 따릉이를 타고 왔고, 개강해서 회계용 계산기가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면서 물건을 받아 갔다. 나는 계산기 배터리가 수명이 다 돼서 교체해야하는데(3V 배터리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계산기 특성상 배터리 교체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걱정이 됐다. 혹시 배터리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기가 너무 낡아서 액정이 문제면? 저렇게 밝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숙제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이런 걱정은 솔직히 중고거래 판매자가 하는 그런 일반적인 걱정은 아니다. 그냥 팔면 장땡이고, 문제가 있어도 난 몰라하는 마인드가 일반적인데 우리 동네 사람이고, 돈 없는 학생이고, 내 매너온도가 걸려있는 문제이고, 등등 이런 것들이 다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를 힘들게 교체했는데도 액정이 깜박거린다고 다음날 당근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고민 한번 하지 않고, 계산기값 18,000원에 배터리값 3,000원까지 해서 21,000원을 환불해드렸다. 솔직히 나는 막 착한 사람도 아니고, 손해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을 봤을 때, 확실히 당근마켓은 독특한 동네, 로컬, 중고거래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이게 net negative가 아니라 net positive한 좋은 문화라는 점이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1,000만 MAU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손에 흙 묻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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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크리에이티브열정 / 크라우드픽

투자 받을 때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보라고 나는 항상 조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많은 VC를 만날수록 다양한 시장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마다 회사와 시장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VC를 만날수록 창업가의 피칭 실력이 향상한다. 어떤 질문을 할지, 그리고 특정 질문을 하면, 어떤식으로 답변을 해야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감이 생기고, 이걸 더 할수록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처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투자 받는 것도 결국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투자자를 많이 만날수록 투자받을 확률 또한 높아진다.

내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를 만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많은 VC를 만나본 창업가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자마서 뭔가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왠지 우리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것 같고, 대화하면서 편한 느낌을 받는 그런 투자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주로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VC는 사상, 철학, 가치 등이 창업가와 비슷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봤거나, 아니면 서비스를 사용하는 친구 또는 가족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떤 VC는 이미 우리 서비스의 열렬한 팬인 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분들과는 매우 매끄럽고 질 좋은 미팅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유리한 상황이다.

영어에는 “get your hands dirty”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직접 팔/소매 걷어붙이고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의미 정도가 될 듯싶다. 즉, 본인이 직접 자기 손을 더럽혀가면서 뭔가를 실제 해본다는 의미인데, 투자를 받을 때는 이런 손에 흙을 묻히면서 우리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본 VC와 대화할 때, 확률이 높아진다. 나도 내가 사용하고, 애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과 이야기 할 때 훨씬 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투자할 확률이 높고, 우리 투자사도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이들의 제품을 알거나, 사용해봤거나, 또는 열렬한 애용자인 VC한테 투자받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에 우리가 처음 투자하기 전에 이미 우리 집은 세탁특공대의 고객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제품에는 미흡한 점들이 많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편리하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름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에 투자결정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레인지엑스라는 골프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할 때도 내가 골프를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남들이 잘 보지 못 했던 부분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코너마켓이라는 유아동복 리세일 플랫폼에는 많은 여성 VC 분들이 관심을 갖는데, 본인들이 엄마로서 직접 이 서비스를 사용해봤기 때문이다. 플랩풋볼은 풋살(=미니축구)을 중개해주는 소셜 스포츠 플랫폼인데, 실제로 플랩풋볼을 통해서 현재 풋살을 하는 젊은 VC들이 투자에 관심이 훨씬 더 높다. 한 달에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뭐, 이런 이야기는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창업가들은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 VC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 서비스를 잘 사용하고 있는 투자자와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분한테 투자받을 수 있는 확률이 꽤 높다는 점을 잘 기억하면 좋겠다.

덕업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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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夢䀄몽몽스튜디오 / 크라우드픽

미국의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면, 몇 회 정도 하다가 종영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처음부터 몇 회짜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이 시리즈를 다 만들기보단, 일단 4개 정도만 기획하고, 방송 나간 후 시장의 반응을 봐가면서 계속할지 또는 종영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는걸 알게 됐다. 특히 요새는 소셜미디어만 잘 주목해도 특정 프로그램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 바로 판단할 수 있어서, 이런 실험을 방송국에서도 자주 하는 거 같다. 한국 방송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요새 보이는데, MBC에서 딱 2회만 하고 방송 종영된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런 케이스다.

실은 나는 이 예능 프로가 좋아서 계속 방영하지 않겠냐는 기대를 했지만, 더는 안 하는걸 보니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좋진 않았나 보다. “아무튼 출근!”은 요즘 젊은이들의 다양한 밥벌이와 그들의 직장 생활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엿보는 ‘남의 일터 엿보기’ 프로그램이다. 시장의 반응은 별로인 거 같지만, 나는 계속 밀레니얼의 생각, 생활, 그리고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재미있게 봤다. 아마도 우리가 요새 투자하는 회사의 창업가들이 대부분 이 분들과 나이 또래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더 몰입해서 봤던 거 같다. 한 회에 3~4명의 직장인이 소개됐는데, 내가 기억하는 건 공무원, 대기업(아모레퍼시픽), 작가, 해녀, 미용사, 자동차 사진작가 등이다.

이 중 내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분들이 작가, 해녀, 그리고 자동차 사진작가이다. 특히 29살의 최연소 거제도 해녀분의 일상은 정말 재미있었다. 원래는 병원에서 일했는데,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자기 시간이 전혀 없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 사용도 자유로운 편이고,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물과 관련된 직업이라서 해녀를 새로운 직업으로 택했다고 하는데 나이 많으신 분들만 하는, 아주 올드하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알고 있던 해녀라는 직업을 젊은 분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니까 상당히 흥미로웠다. 파주에 사는 작가분의 일상도 신선했다. 배운 건 글 쓰는 거 밖에 없고, 글 쓰는 걸 너무 좋아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하면 항상 배가 고픈 작가의 삶을 탈피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이 만만치 않은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스트롱 창업가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살 백건우라는 대학생 자동차 사진작가의 일상 또한 상당히 좋았다. 차와 사진을 워낙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자동차 모형을 직접 만들어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린 게 계기가 되어 실제 슈퍼카들의 사진작업을 의뢰받고 있는, 요새 잘 나가는 신세대 자동차 사진작가이다.

물론, TV에 나온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어쩌면 사실이 왜곡되어 있고, 수많은 편집을 통해서 이들의 멋있고 좋은 면만 어느 정도 연출됐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연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리얼했던 건, 이 젊은 친구들이 일을 할 때 볼 수 있었던 즐거움과 진지함이다. 이 즐거움과 진지함이 얼굴 표정 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발산되는걸 TV 화면으로도 내가 느낄 수 있었다면 이건 찐 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그리고 그냥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 하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한 일이기에, 힘들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고, 이러다 보니 돈도 잘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이런 덕업일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는걸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 분들을 보면서 나도 많은 에너지를 받았고, 가끔 요새 젊은 친구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내 태도를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고정관념으로 보면, 이 프로에 나온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런 젊은 세대를 나는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다.

전화 주문

call-center-1015274_1280거의 4개월 동안 집에서 운동하고, 아파트 계단만 오르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헬스클럽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지만, 눈으로는 여기저기 배치된 TV 스크린으로 뉴스도 보고 스포츠도 보면서 주로 운동을 하는데, 오전 시간에 케이블 TV에 자주 보이는 광고 중 하나가 배칠수 씨가 광고하는 배칠수 플라워다. 촌스러운 광고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냥 끝까지 보내되고, 다양한 꽃을 1588-39000번을 통해서 전화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다(확인해보면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전에 내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폰으로 다양한 업무와 일들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화도 꽤 많이 한다. 그런데 요새 어린 친구들은 전화를 통화기기로 사용하기 보단, 그냥 작은 컴퓨터로 사용하는 거 같다. 친한 친구들이랑 가족과 전화 통화도 하지만, 거의 다 카톡이나 문자나 영상으로 소통하고, 실제 전화 통화 하는 건 우리 세대보단 상당히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과거 글에서 설명했듯이, 밀레니얼들은 잘 모르는 사람과 전화 통화하는 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더 심하게 말하면 통화 포비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거에 대해서는 큰 공포감이나 불안감은 없지만, 이런 나도 가급적이면 전화 통화는 용건만 간단하게 하고, 더 자세한 건 문자나 이메일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그냥 전화기 건너편 사람과 너무 오래 통화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고, 왠지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항상 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현상이 정말로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냥 누군가와 통화 하는 거 자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스마트폰의 작은 자판으로 거의 말하는 속도만큼 빨리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대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실시간 통화를 하지 않는걸 선호하는 것 같다. 실은 어떤 경우에는 뭔가 복잡한 걸 설명하려면 그냥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빨리 해결되지만, 밀레니얼은 이걸 잘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배칠수 1588-39000 꽃 광고를 볼 때마다 저 회사는 젊은 세대를 위한 꽃 배달 서비스보단, 우리 부모님과 같이 인터넷이나 앱으로 뭔가를 주문하는 게 힘든 분들이 주 고객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전화를 최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생각하는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뭔가를 팔려고 하는 회사가 전화 주문을 광고에서 강조한다는건 조금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서비스가 잘 안될 것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바일/인터넷 세대가 아닌 많은 시니어 분들은 오히려 이렇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에게 제품, 주소, 결제 정보를 말로 알려주는걸 더 편하게 생각하고, 한국과 같이 노령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이 전략이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 주문을 통해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려면 비즈니스가 커질수록 전화를 받고 주문을 처리해야 할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냥 작게 사업을 유지하면 상관없지만, 이런 전화주문 꽃 배달 서비스로 전국에서 1등이 되려면 굉장히 잘 훈련된 고객 응대 인력과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모든 걸 내재화하면 비용이 매출과 비슷한 속도로 늘어나고, 전문 CS 업체에 외주하면 우리 인력만큼 잘하지 못 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아마도 전화 주문이 비즈니스의 메인이고,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고객 응대 팀과 시스템을 운영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꽤 있을 텐데, 이런걸 다들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도전받는 자, 도전하는 자

얼마 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세탁소 사장님을 만났다. 양손 한가득 고객 세탁물을 수거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봉지나 가방도 없이 그냥 맨손, 가슴, 그리고 턱으로 빨랫감을 받치고 있었고, 빨래가 시야를 가려 1층 눌러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더라.
“사장님 이러다가 빨래 길거리에 흘리면 큰일 나겠어요. 지금도 양말 떨어질려고해요”
“에이 안 흘려요. 이걸 20년 넘게 했는데요”
“…..”

세탁특공대랑 런드리고의 미래가 너무 밝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세탁소를 이 자리에서 20년 넘게 하고 계신 사장님과 사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신다. 아파트 모든 동호수를 매일 돌면서 세탁물을 배달하고, 또 수거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어디에 누가 살고, 그 집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 그것도 이 모든 게 어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는 게 아니라, 두 분 머리에 그대로 입력되어 있다. 그동안 비즈니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거의 독점하다시피 이 동네의 모든 세탁을 담당했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그리고 위의 엘리베이터 에피소드를 봤을 때, 이 동네 세탁소의 비즈니스도 앞으로 서서히 줄어들 것이고, 언젠가는 대체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꼭 세탁이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의 반복은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고, 비즈니스 역사를 보면, 항상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올 초에 고인이 된 클레이튼 크레스텐슨 교수의 이노베이터스 딜레마와 파괴적 혁신 책 내용도 요약해보면, 시장의 1등 강자들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항상 하던대로 비즈니스를 하다가, 아주 작고 하찮은 경쟁사의 출현을 못 보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결국엔 이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어느 곳에서나 그 시장의 일인자가 있다. 이 일인자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시장을 지배한, 역사가 100년이 넘는 대기업일 수도 있고, 이런 대기업을 1등에서 끌어내린 혁신적인 스타트업일 수도 있다. 어쨌든, 큰 시장에는 항상 도전받는 자가(=현재 1등) 있고, 도전하는 자가(=1등 외)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순위가 계속 바뀐다는건데, 어떤 시장은 이 주기가 굉장히 길고, 어떤 시장은 짧다. 세탁소는 주기가 꽤 긴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세탁소는 거의 20년 동안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했다. 그동안 단골은 늘어났고, 이 분야의 혁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만 비즈니스를 해도 – 어쩔때는 과거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해도 – 고객은 계속 여기에 세탁물을 맡겼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세탁시장의 규모는 3조 원~5조 원이다. 이런 큰 시장에서, 혁신과 발전이 없다는 걸 똑똑한 창업가들이 놓칠 리 없다. 1990년대 말에 세탁소의 프랜차이즈화를 통해서 세탁품질, 비용, 그리고 유통의 혁신을 추구하자는 비전하에 ‘크린토피아’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현재 크린토피아는 대한민국 세탁 시장의 1등이 됐다. 당시에는 동네 세탁소가 도전받는 1등이었고, 크린토피아가 도전하는 자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에 크린토피아가 도전받는 1등이 됐다.

그런데 이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세탁특공대, 워시온, 리화이트, 런드리고 등의 모바일 세탁소 앱들이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네세탁소와 크린토피아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로 등장한 모바일 세탁앱 중 하나가 시장의 1등을 먹을 것이고, 도전하는 자 – 도전받는 자의 구도는 또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반볼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상을 보면 볼수록, 수많은 업체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 1등 자리를 지킨다는건 정말 힘든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을 보면, 비슷한 플레이를 과거에 시도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 거대한 회사들을 이기기 위해서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의 1등을 지킨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언제나 이 구도는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원한 도전자도 없고, 영원히 도전받는 자도 이 시장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재미있고, 우리 같이 ‘도전하는 자’들에 투자하는 이 업 또한 매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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