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실전의 중요성

요새 한국의 주식 시장은 정말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나도 한국과 미국 주식을 약간 보유하고 있지만, 큰 연구나 분석 없이 내가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기 때문에 한국의 public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조만간 코스피가 1만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샌 한다. 연일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주식 분석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본인들의 이론과 전략을 공개하면서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하는데, 이걸 보면서 맨 먼저 들었던 내 생각은 과연 저 수많은 주식 분석가 중 실제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이다.

내 주변에도 유명한 주식 분석가가 있다. 언론에도 나오고, 여의도에서는 꽤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다. 나도 이 분이 방송에 출연해서 특정 회사와 분야에 대해 본인이 아는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걸 들었는데, 대학교 교수님보다 더 유식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이 분은 주식 투자로 돈을 크게 벌진 못했다. 투자를 안 해서 못 번 건 아니고, 투자하는데, 막상 본인이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수익을 만들진 못했다. 그 회사의 임직원보다 본인이 분석하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꿰뚫고 있고,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어떻게 주식 투자로 돈을 못 벌 수가 있을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대학원을 6개월 동안 매우 짧게 다녔고, 이때 경제학에 대해 조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은 꽤 재미있는 학문이긴 하지만, 경제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법칙과 원리를 담는 학문이라는 이론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워튼 경영대학원에서 그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수업을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아는 상식은 실물경제에 거의 적용할 수가 없는 죽은 지식이라는 걸 매번 느꼈다. 이론가들이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 이론 뒤에는 수많은 비현실적인 모델링과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의 실생활에는 적용할 수가 없는데, 많은 경제학자는 이런 이론이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물경제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본인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한다. 왜 그럴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은 투자의 세계도 비슷하다. 투자를 책으로 배우고, 이론적으로만 아는 가짜 VC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 투자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벤처투자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다. 이 기술은 이래서 좋고, 저 기술은 저래서 미래가 없고, 이 회사는 이러므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들의 말은 하나씩 따져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이분들에게 본인의 포트폴리오 중 성공한 회사에 관해 물어보면, 말에 비해 실제 투자는 거의 안 했거나, 투자는 좀 했지만, 성공한 회사는 하나도 없다. 벤처 투자 세계도 실전으로 움직이지, 이론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 수치, 그리고 데이터를 맹신하진 않는다.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업은 하면 안 되고, 이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했을 때 우리의 경쟁사가 우리보다 말도 안 되게 경쟁우위를 갖는 시장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또는 이와 반대로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무조건 해야 하는 사업은 해야 하고, 우리가 경쟁사를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시장에는 들어가야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결정이라서, 일단 해보고 부딪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너무 많은 분이 이론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데,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결과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창업가들이 좋다. 이들은 이론도 참고하지만, 결국 모든 건 실전에서 결정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 절대로 승산이 없는 분야에서 조 단위 사업을 만들고,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달걀로 바위를 쳐서 정말 바위에 금을 내는 분들을 나는 봤고, 몇 명에겐 우리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실전이다. 이론 뒤에 숨지 말고, 일단 해보는 걸 권장한다.

1원 1표

민주주의에서는 그 구성원의 위치, 능력, 재력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즉 1인 1표 원칙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고 이게 적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재력이 가장 중요하고, 돈이 표이기 때문에 1원 1표 원칙이다. 한국과 미국 회사에 동시에 투자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한국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게 몇 개 있는데, 그중 가장 바꾸고 싶은 건 한국 표준 투자 계약서의 투자자 동의 내용과 방식이다.

투자는 자본주의 시장의 꽃 중 하나인데, 현재 한국 표준 투자 계약서의 투자자 동의 사항 내용만큼은 자본주의보단 민주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 같다. 쉽게 말하면, 회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웬만한 사항에 대해서는 모든 주주의 전원 동의를 받아야 하는 1인 1표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회사에 15억 원을 투자해서 지분 15%를 보유하는 투자자나 1.5억 원을 투자해서 1.5%를 보유하는 투자자나 회사에 대한 주주의 권리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게 항상 불만이고, 내 주위의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면서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한 VC들도 불만이다. 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면, 지분이 작은 다른 주주보다 회사에 대한 입김이나 결정권이 더 세야 하는 게 당연해서 현재 시스템의 1주주 1표 원칙은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0년 넘게 한국에 투자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걸 지금 이야기하는지 물어본다면, 벤처 시장 상황이 좋아서 돈도 넘치고, 회사들도 (겉으로는) 성장할 땐, 주주들이 회사가 하려는 걸 크게 반대하는 상황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회사 대표가 스톡옵션을 부여하거나, 사업 방향을 바꾸거나,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자산을 매입하거나, 영업에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을 사용하면 그냥 웬만하면 따지지 않고 전원 동의를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작은 사항 하나에 대해서도 어떤 주주들은 동의하고, 어떤 주주들은 동의하지 않아서 회사가 힘들어하는 걸 너무 많이 보면서 1인 1표 계약서에 대해 매우 큰 회의감이 들고 있다.

더 많은 투자금을 더 많은 주주로부터 받으면서, 사소한 결정에 대해 모든 주주의 동의를 받기 위해서 사업할 시간도 없는 대표이사가 거의 한 달 동안 시간을 낭비하는 걸 보면서 요새 이런 회의감이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주로 투자사의 지분 10% 내외를 확보하는데, 나는 10%를 가진 스트롱과 1%를 가진 다른 투자자의 의견이 달라서 스톡옵션 발행하는데 투자 계약서상 필요한 동의를 받기 위해 두 달이 걸린 경우도 봤다. 투자자의 90% 이상이 동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주주의 권리를 한 번 정리하는 주주간계약서를 작성하게 되고,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로 가장 최신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투자자의 주도하에 진행되는데, 주로 각각의 투자자가 가진 다른 종류의 주식의 권리를 통일하고, 회사 의사 결정 과정을 더 단순하게 정리하는 게 이 계약서의 목적이다. 미국의 경우 주로 이사회 위주의 경영과 결정, 그리고 웬만한 동의 사항도 이사회에서 결정하거나 지분 과반수 찬성/반대로 주주간 관계를 정리하는 걸 자주 봤다.

한국은 이 주주간계약서를 통일하는 것도 힘들다. 이전에는 1인 1표 체제라서 작은 주주나 큰 주주나 가진 권리가 거의 동일했는데 주주간계약서를 체결한 후에는 작은 주주의 권리는 거의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주주가 주주간계약서 내용에 합의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고, 어떤 주주는 주주간계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경우도 봤다. 이 회사의 경우, 우리가 최대 주주 중 하나였는데, 결국 최종 주주간계약서 내용을 봤을 때 처음에 머릿속에 그렸던 아주 깔끔한 주주간 교통정리가 잘 안돼서 아쉽긴 했다. 후속 투자를 더 받을 때마다 주주간 교통정리를 하다 보면 점점 더 이사회 중심 경영과 1원 1표의 의사결정 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미국에서는 우리의 권리를 포기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새로운 라운드가 진행되면 기존 우선주 주주들은 본인들의 지분이 희석된 만큼 주식을 더 구매할 수 있는 pro rata 권리가 있는데 가장 최근 라운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서 최대 주주가 된 새로운 VC가 이번 라운드는 본인만 투자하고 기존 주주들은 빠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후속 투자를 못 한 적도 있다. 어쨌든 지분이 더 많은 투자자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는 게 자본주의의 규칙이고, 계약서상의 우리 후속투자 권리를 계속 주장하면 본인들이 투자하지 않겠다고 협박? 했기 때문이다.

가끔, 같은 라운드에 투자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투입하는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에 비해서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information rights’라는 회사의 재무나 운영 정보를 투자자가 정기적으로 받고, 필요시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계약서상 이 권리가 없으면, 회사 대표에게 그 어떤 사업 관련 내용을 달라고 할 수 없고, 달라고 해도 회사는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여기에도 1원 1표의 냄새가 매우 강하게 난다.

한국의 경우, 한국벤처투자의 표준계약서 이슈도 있고, 상법도 미국과는 다르지만, 자본가라면 본인에게 불리하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한 다른 주주가 더 막강한 권리를 갖는 1원 1표 원칙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 중심주의

약 한 달 전에 유럽에 짧게 출장을 다녀왔다. 4일 동안 3개국을 방문했던 빡센 일정이었고, 왜 스트롱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기관이 나에게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은 미국 펀드인데 한국에 투자하고 있죠? 그럼, 대부분의 팀이 미국에 있나요 한국에 있나요?” 였다.

우린 미국 펀드이지만 한국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이 한국에 있다고 했고,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지 물어보니 최근에 이들이 만난 유럽의 VC 이야기를 해줬다. 이들의 전략은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건데, 의사결정 하는 파트너들은 서로 유럽 다른 나라에 뿔뿔이 거주하고 있어서 이 VC에 출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VC에겐 결국 창업가와 경영진이 제일 중요한데, 어떻게 피투자사 본사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는 설명도 해줬다.

아무리 미국에서의 네트워크가 좋아도 물리적으로 거기 없으면 시장과 창업가들과의 미세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생성되지 않아서, 위에서 말한 미국에 투자하지만, 핵심 투자팀이 유럽에 있는 VC의 경우 이들에게 미국의 “좋은” 딜이 넘어왔을 시점엔, 이미 미국 현지 수십 명의 VC가 그 딜을 봤고, 어쩌면 수십 명이 패스했을지도 모르는 “나쁜” 딜일 확률이 높은데, 이 딜이 나쁘다는 걸 그 유럽 VC만 모르고 투자할 위험이 크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하지만, 현장에 없으면 절대로 모르는 작은 지식과 통찰력을 간과하면 좋은 투자가 힘들다는 본인들의 믿음을 강조했다.

나는 이렇게 흑백논리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투자팀은 모두 한국에 있지만, 동남아나 미국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고, 팀은 모두 미국에 있지만, 아시아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하는 말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극초기 VC는 투자팀이 그들이 투자하는 시장에 물리적으로, 그리고 full-time으로 상주해야지만 성공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VC라는 업 자체는 껍데기만 보면 상당히 글로벌한 업 같지만,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면 글로벌한 업이 아니라 실제로는 로컬한 업이고, 본질을 현미경으로 보면 로컬 하다못해 하이퍼로컬한 업이다.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극초기 VC에겐 투자라는 업은 완전히 하이퍼로컬 한 사업이다.

한 지역의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 지역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그곳의 창업가/투자자/기업 커뮤니티와 깊숙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장을 잘 알 수 있다. 본인이 투자하는 그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숨 쉬고, 사귀고, 어울리고, 투자해야 한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유럽의 투자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현장 중심주의는 우리가 하는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참 어려운 상장 시장

우리는 쿠팡의 매우 작은 주주이다. 스트롱이 쿠팡에 직접 투자하진 않았지만, 스트로의 포트폴리오였던 Recomio라는 회사가 쿠팡에 주식교환으로 인수되면서 쿠팡의 주주가 됐고, 상장 주식을 대부분 팔았지만 아직 소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의 포트폴리오인데 이미 이 펀드의 나이는 14살이 되어 간다. 청산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의 LP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물어봤던 질문이 남은 쿠팡 주식 처분 시점이다.

이분들에게 나의 한결같은 답변은 “한국에 살면 직접 체감할 수 있는데, 쿠팡은 한국의 이커머스를 완전히 다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현재 쿠팡 주가는(당시 $30 ~ $35 정도)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르면 팔 건데 그게 최소 $50 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였다. 실은 매우 확신에 찬 자신 있는 답변이었다. 솔직히 겉으로는 $50라고 했지만, 내 마음속엔 쿠팡은 $100까지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만 해도 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쿠팡이 보여준 태도와 중요한 순간에 했던 결정들의 질이 상당히 실망스러웠고, 그 결과 때문에 현재 쿠팡 주식은 $20를 하회하고 있다. 역시 어떤 LP 분들은 나에게 과연 쿠팡 주식이 앞으로 $50 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사가 상장하면, 스트롱은 어떤 기준으로 상장 주식을 처리할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몇 주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내 결론은 상장 시장은 참 어려운 시장이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겐 – 특히나 우리 같이 극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 제3외국어와 같이 이해하고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 사업 자체의 펀더멘탈이 무너져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볼 순 없다. 쿠팡의 펀더멘탈은 실은 매우 강하다. 이 정도로 물류 인프라를 잘 운영하고, 이 정도로 세상 온갖 제품을 잘 판매하는 회사는 한국에 없고, 전 세계에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사업은 잘 한다. 물론, 그 물류와 이커머스 사업의 인프라를 비인간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업 자체만 봤을 땐 굉장히 탄탄한 회사다. 주가가 폭락하는 이유는 시장의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고, 흔히 이 바닥에서 말하는 FUDGE(Fear, Uncertainty, Doubt, Greed, Emotion)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에서 만난 어떤 투자자는 중국의 VC에 오래전에 투자했는데, 이 VC가 초기 투자했던 중국 회사가 상장하면서 당시의 시총에 의하면 거의 2,000배의 돈을 (서류상으로)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VC는 마치 내가 쿠팡에 대해서 확신했듯이, 그 회사의 펀더멘탈이 강하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몇 년 후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상장 주식을 안 팔고 계속 보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4년을 더 보유했는데, 그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 가격은 4년 전과 똑같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돈을 크게 잃진 않았지만, 이 VC에 투자한 LP들은 4년 동안 실제 배분받은 건 한 푼도 없었고,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실은 이 회사는 그동안 매출은 많이 증가했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와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상장 시장은 비상장 시장과 많이 다르다. 남들은 비상장 시장이 비이성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상장 시장이 더 비이성적인 것 같다. 논리보단 감정, 두려움과 욕심이 주가를 움직이는 시장인데, 솔직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비이성적이라서 이게 고스란히 상장 시장에 전체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쿠팡 사태로 내가 배운 점은 – 그리고 아직도 이 배움은 계속 되고 있다 –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파는 게 어쩌면 VC들에겐 더 맞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속 보유하면서 상장 시장을 공부하고 예측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상장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건 우리 같은 초기 VC들이 잘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침몰하는 일본 경제에 대한 비판을 소신 있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의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을 작년말에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한때 전 세계 최강국이었던 일본이 어떤 내, 외적 요소 때문에 침몰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의 정치인과 기업인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하면서 이 실수가 차곡차곡 쌓여서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했는지에 대한 다소 주관적이지만, 나는 어느 정도 공감했던, 그런 분석이 주된 내용이다.

흥미롭게 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바짝 긴장하면서 읽었다. 왜냐하면, 일본이 갔던 이 내리막길을 한국이 그대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은 후 내 개인적인 생각을 좀 공유하자면, 한국은 일본같이 쉽게 선진국에서 탈락하진 않을 것 같다.(물론, 한국이 현재 선진국인가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리지만). 하지만, 우리는 일본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같기도 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다르고, 정치인들도 병신도 많지만, 꽤 괜찮은 사람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일본인과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 물론, 한국인이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 오히려 한국의 장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인 노구치씨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모두 다 한국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내용이었고, 평소의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떻게 일본을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따라잡았으며, 일단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면 – 책이 써진 시점에는 아직 안 올랐지만, 지금은 이미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 왜 일본같이 쉽게 탈락하지 않을지에 대한 노구치씨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분은 한국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사건으로 1990년대 말 아시아통화 위기를 손꼽는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IMF 사건이다. 1997년도에 태국의 바트가 폭락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통화도 폭락했는데, 이때 한국의 재벌 기업이 줄지어 도산하고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우리나라는 거의 망할뻔했다. 어쩔 수 없이 IMF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 대가로 IMF의 깐깐한 관리 체제하에 놓이게 됐다.

일본도 이때 큰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한국과는 판이했다. 노구치씨의 의견에 의하면 이때 한국은 뼈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는 동시에 탄탄한 기초체력을 만든 반면, 일본은 눈앞에 보이는 위기에만 대처하느라 선진국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IMF 관리를 계기로 경제인과 정치인뿐만 아니라 전 국민 사이에 강한 위기의식이 생겼다. IMF 관리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은 돈을 벌어서 수익성과 생산성을 개선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은 빠른 글로벌화를 해야지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위기 극복의 열쇠는 한국인 전원의 인적 능력 향상이라는 점에도 동의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좋은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교의 교육, 연구 능력과 학생 전원의 영어 실력을 갈고닦는데 한국 정부, 기업, 학교는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이 모든 것을 한국인 특유의 앞만 보고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했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글로벌화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고, 졸업하기 어렵다는 IMF의 관리에서 조기졸업 하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이런 위기의식과 애국심 때문에 온 국민이 나라 살리기 운동의 하나로 그 유명한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한국이기에 할 수 있었고,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도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노구치씨는 글로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어에 대해서도 한국을 칭송한다. 이 분과 비슷한 세대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TOEFL 점수를 보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10위 안인데, 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홍콩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시험 점수가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구사하는 실력은 홍콩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일본은 아시아 29개국 중 27위로 거의 꼴찌인데 일본 정부, 기업 또는 국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일본은 글로벌화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거나 포기했다는 게 이 분의 주장이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 봤는데, 실은 한때 미국보다 더 잘 살던 세계 최강국 일본과 우리가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는데 이젠 전 세계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global cultural power가 됐다. 이 작은 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들고, 가장 좋은 가전제품을 만들고, 가장 좋은 배를 만들고, 가장 좋은 핸드폰을 만들고, 가장 좋은 반도체를 만들고, 가장 좋은 화장품을 만들고, 가장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이게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나다.

우리는 여기서 과연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까?

많은 분이 한국은 이제 끝났고, 일본과 같이 선진국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다. 나는 한국은 이제 막 시작했고, 훨씬 더 높이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앞에는 도전적이고 복잡한 장애물과 과제가 놓여 있고, 하나라도 잘못되면 우린 한 방에 다시 최빈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다면, 우린 이미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 어려움으로부터 배움을 얻는 과정을 너무 많이 겪어서, 점진적 개선에 최적화된 민족이다. 내 이전 세대가 열심히 일했듯이, 우리 세대도 열심히 일하고 있고, 우리 다음 세대도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그 누구도 한국이 일본처럼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걸 보고 싶지도 않고, 경험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고, 여기에서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면 더욱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또 여러 가지 부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릴 건데 나는 상관없다. 열심히 일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그건 본인의 자유다. 대신, 주변에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욕하지 말고, 이들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