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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SaaS의 해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22기 선발이 현재 진행 중이다. 매 기수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지원하지만, 올해는 더욱더 많은 회사가 지원했고, 창업가나 스타트업의 quality 또한 상당히 높았다. 경기는 더욱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위대한 회사들이 불경기 때 창업됐던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요새 직접 실감하고 있다.

프라이머에 지원하는 스타트업을 검토하다 보면,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기술이 커질 것이고, 어떤 서비스가 시장에서 나올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 투자라는 게 뭔가를 콕 집어서 찾기보단, 어떤 매크로한 패턴을 찾는 일이라서 이런 예측이 항상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시장에 닥칠 거대한 트렌드에 대한 맥을 짚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굵직한 패턴이 몇 개 보였다.

깊게 들어가진 않겠지만, 한가지 트렌드는 바로 여성창업가의 증가이다. 이건 실은 프라이머 기수 선발뿐만이 아니라, 스트롱에서도 매일 느끼는 현상인데, 과거 대비 여성 창업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좋은 학벌, 좋은 경력, 좋은 에너지, 그리고 좋은 태도를 가진 여성 창업가들이 이번에도 꽤 많았는데,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창업할 것이고,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남성과 여성 창업가의 비율이 일대일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겠다.

다른 트렌드는 바로 B2B SaaS 창업이다. 이번 프라이머 22기에는 눈에 띌 정도로 B2B SaaS 스타트업이 많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B2B 유니콘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스트롱에서도 상당히 많은 B2B 회사에 투자할 정도로 우린 이 한국에서도 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2023년은 B2B SaaS의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까지 한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불경기가 그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당장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야지만 내실을 다질 수 있고, 펀딩을 받을 수 있다는 현 시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거대한 트래픽을 통해서 광고 매출을 만드는 B2C 사업보단, 꾸준하고 질 좋은 매출을 만들 수 있는 B2B SaaS 창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막상 이 분야를 파고 들어가보니, 이제 한국에서 B2B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을 선점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창업가들이 생기고 있다.

B2B SaaS를 돈 내고 사용해야하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고,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좋은 B2B 툴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외산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는 중소기업에겐 너무 비싸고, 업무 시스템에 통합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스타트업의 SaaS 제품을 찾게 된다. 이렇게 스타트업과 고객사 서로의 니즈가 일치하면서 시장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현재 일본의 거대한 B2B SaaS 시장의 형성에도 과거 일본의 이러한 경제 상황이 한몫한 거로 알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여러 개의 B2B 유니콘 기업들이 나오길 바란다. 그 전환점이 2023년이 됐으면 좋겠다.

유니스트 방문

2주 전에 정말 오랜만에 울산의 UNIST를 방문했다. 이젠 유니스트에서 더 이상 교편을 잡고 있지 않은 강광욱 교수님덕분에 나는 유니스트와 2014년도에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우린 학생 창업팀도 좋아하고,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고,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팬데믹 이전에는 유니스트에 정기적으로 가서 학생 창업가와 미래의 창업가와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유니스트 출신 창업팀 3개에 투자했다. 이젠 꽤 큰 회사가 된 클래스101 또한 유니스트 학생팀이고, 울산에서 시작한 회사이다.

이 학교의 창업생태계 형성에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신 강교수님도 다른 대학으로 옮기셨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는 거의 3년 동안 유니스트에 못 갔지만, 역시 좋은 기업의 실마리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나와는 학업적으론 상관없는 유니스트에 학생창업가를 만나러 공식적으로 3년 만에 방문했을 땐 마치 모교를 찾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캠퍼스는 새로 생긴 건물들로 더 꽉 차 보였고, 학생들의 에너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대로 충만했다. 이번엔 학생 창업센터에서 몇 팀과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창업, 사업, 학업, 인생 이야기를 골고루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트롱은 계속 유니스트 출신 팀과 만나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이 친구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학생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유도 큰데, 나는 대학생/대학원생일 때 내가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고, 생각을 했어도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아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팀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걸 보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고, 아직도 속으로는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팀이나 제품이나 시장은 차치하고, 그냥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술 먹고 놀러 다녔던 저 나이에 회사를 만들었다면, 분명히 이런 생각과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학생창업을 존경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학생팀에 투자하면서 좋은 점만 보고 느낀 건 아니고, 학생 창업의 부작용 또한 많이 경험했다. 전에도 내가 쓴 적이 있지만, 학생들에겐 미래의 좋은 옵션이 너무 많다. 창업해서 안 되면 대학원 진학할 수도 있고, 창업했던 경험을 이력서에 잘 포장해서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학생팀은 그냥 취업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서 창업하는 게 너무 뻔히 보이고, 옵션이 너무 많아서인지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 자주 봤다. 그리고 한국의 남자 학생들에겐 군 복무라는 큰 걸림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학생팀을 만나면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건 정말로 이 사업을 하고 싶어서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고 멋있는 스타트업 대표놀이를 하기 위해서인지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학생 창업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한국의 미래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요새 젊은 애들이 싸가지가 없든, 있든, 이 나라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고, 앞으로 이 학생들 중에 미래의 쿠팡, 토스, 배민, 당근마켓, 마켓컬리를 만드는 창업가가 나올 것이다. 우린 이런 가능성을 찾아서 여기에 작은 불씨만 만들어주면 이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활활 태울 것이다. 좋은 울산 출장이었다.

You Only Die Once

코로나가 시작했던 202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에서도 워낙 많이 쓰는 말이라서,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 의미 자체는 살짝 왜곡된 것 같긴하다. 원래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살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잡고 최선을 다하자는 긍정적인 의미인데, 요샌 그냥 “인생 뭐 있겠냐”라는 의미의, 어쩌면 그냥 뒷감당은 생각 안 하고 대책없이 막 나가자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걸 많이 본다.

특히나 재정적으로 부담하기 힘든 비싼 차, 명품 등의 물건을 구입하고 자신을 정당화할 때 너도나도 너무 많이 “욜로!”를 외치는 걸 봤고 – 실제로 나는 백화점 명품 가게 앞에서 욜로를 외치고 카드를 긁는 젊은 커플을 본 적이 있다 – 없는 돈을 나중에 어디서 구할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일시적이나마 잊기 위해서 “욜로!”를 외치는 걸 봤다. 다행히 내 주변 친한 분 중 이런 욜로족은 없지만, 능력이 안 되는 30대 욜로족이 한국에 굉장히 많다는 소식은 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듣는다.

그때 당시엔 기분이 좋고, 무리해서 구매한걸 볼 때마다 본인이 너무 잘났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우쭐할 수 있을진 몰라도, 이걸 나중에 수습하는 과정은 지옥 같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은 욜로가 아니라 요도(YODO=You Only Die Once)라는걸 깨달을 것이다.

인생 한 번만 사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인생은 매일, 매 순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는 인생인데 매 순간이 괴로우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대신, 죽는 건 딱 한 번 죽는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살아야 하는 인생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딱 한 번만 죽는 인생이니 죽을 때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정신 좀 차리면 좋겠다.

아름다운 사람들

스트롱 웹사이트에 가보면 우리 로고랑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들 리스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 로고를 보면 밑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Together, We are All Strong”

실은, 이 말은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어려운 영어도 아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쉬운 이 문장에는 스트롱의 미션과 비전이 잘 내포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려고 하는 많은 일을 이 한 문장이 매우 잘 설명해주기 때문에, 2년 전 워크숍에서 고안한 이 mission statement를 나는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특히 “All”이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이 벤처 생태계에는 스트롱 같은 VC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자금을 투자해주는 우리의 출자자인 LP분들이 있고, 이 자금이 투입되는 아주 좋은 창업가분들이 있다. 즉, 스트롱벤처스는 우리의 출자자와 창업가와 함께 모두를 위한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다 매우 스트롱해질 수 있다(Strong Ventures partners with its investors and entrepreneurs to create a better future for all. Together, We are All Strong.) All은 Strong Ventures, Strong LPs, 그리고 Strong Founders 모두를 지칭한다.

이 멋진 말을 나는 요새 더 멋있게 Together, We are ALL beautifully Strong이라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일하는 분들은 너무 아름답고 멋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일에 대한 철학,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주는 LP 분들도 너무 멋있고 아름답다. 위험투성이고,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스트롱을 믿어주시는 분들의 사고방식과 이들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나로 묶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하는 스트롱 또한 아름다운 팀이다.

이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분들을 어떤 단어로 설명하는 게 가장 좋을지 항상 생각하는데, “아름답다 / beautiful”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Together, We are ALL beautifully Strong.

부자가 되고 싶은 창업가들

투자자들이 창업가들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창업 동기이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창업가 분들이 좋은 교육을 받았고, 좋은 회사에서 일 한 경험이 있어서, 굳이 창업같이 어려운 길 말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길을 갈 수도 있는데 굳이 이 어려운 창업을 택한 이유와 동기는 항상 궁금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해도 이 질문을 하면 대다수의 창업가들이 듣기 좋은 고결한 답변을 했다. 어떤 분들은 어릴 적부터 느꼈던 사회의 부조리를 고치기 위해서 창업했고, 어떤 분들은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창업했고,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창업했고, 어떤 분들은 어릴 적부터의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창업했다고 한다. 굉장히 좋은 답변이고, 어떤 경우에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사업을 막상 보면 세상의 변화나 소명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후에 다시 물어보면, “그렇게 이야기 하면 투자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돈이 동기인데, 그렇게 이야기 할 순 없잖아요”, “떼돈을 벌기 위해서 창업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라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자주 듣는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창업의 목적이 돈이고, 돈 외에는 다른 동기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창업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라고 느낄 정도로 무겁고, 고통스럽고, 공황장애스럽기 때문에, 이 길을 꼭 가야겠다는 아주 굳은 동기와 목적이 없으면 견디는 게 어렵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든, 돈에 대한 개인적 욕심이든, 힘들지만 계속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거짓으로 거창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렸을 때 너무 없이 자라서,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그냥 돈벼락 맞고 싶어서 창업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나도 실은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한다. 기업 대상 강연은 잘 안 하지만, 학생들 대상으로 세미나나 강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데, 유니콘 기업과 1조 원 – 지금 환율로는 1.4조 원 – 이라는 큰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이 숫자에 대한 감을 전혀 못 잡는데, 주로 이렇게 추가 설명을 한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 중 한 명인 삼성전자 사장 연봉이 120억 원 ~ 150억 원인데, 이 연봉을 66년 동안 단 한 푼도 안 쓰고 100% 저금해야지 1조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즉, 남한테 월급 받아서는 절대로 큰돈을 못 번다는 뜻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세요? 그러면 무조건 창업해야 합니다.”

이런 강연이 끝나면, 학생들이 찾아와서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본인도 돈을 벌고 싶은데 창업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물론, 이 중 실제로 창업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돈이 동기와 목적이 돼서 창업을 한 분들이 정말로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서 부자가 되면, 이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인생관이 바뀐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생기면서, 이 분들의 동기와 목적이 돈에서 조금 덜 물질적인 것으로 바뀌고, 많은 분들이 궁극적으로는 창업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