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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창업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 창업가를 좋아하고, 이들이 창업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응원한다. 우리가 학생 창업가에게만 전문적으로 투자하거나 이들에게만 투자하는 펀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스트롱은 지금까지 꾸준히 대학생 창업팀에 투자하고 있고 이들이 하는 몇 개의 이벤트를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린 모두 다 바빠서 외부 강연이나 발표는 거의 안, 못 하고 있는데, 학생들 대상의 강연이나 발표, 또는 해커톤 심사는 웬만하면 시간을 만들어서 참석하고 있다. 창업가들의 나이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지향하는 첫 번째 기관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는 학생들에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학생들은 스트롱의 미래의 고객이기 때문에 우리가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은 잠재 고객에 대한 영업/마케팅 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지금 또는 나중에 창업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VC가 스트롱벤처스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내가 스트롱을 시작한 2012년만 해도 학생들은 창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창업이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이들에게 투자해 주는 VC도 없었다. 창업은 취업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옵션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시에 만났던 학생 창업가들은 준비도 안 됐고, 실력도 없었다. 실은,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은 취업을 선호하긴 하지만, 요샌 창업을 1순위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요새도 우린 더 많은 학생 창업가를 만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학생분들 중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제안해 주시면 좋겠다.

이미 창업했거나, 창업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몇 가지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꼭 이렇게 하라는 건 아니지만, 창업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하는 주제들이고, 몇 개는 나중에 회사가 켜졌을 때 이 회사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가장 첫 번째 조언은, 사업은 학교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학생 창업가는 실은 학생 창업가가 아니라 그냥 창업 과제를 하는 학생이다. 이들은 사업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그냥 학업 외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멀리서 다른 창업가를 보니까 본인들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법인설립하고 대표이사 명함 만들고, 코파운더 명함 만들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분은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 대표이사 놀이에 빠져있고,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적인데, 이력서에 “ABC 창업 경험” 한 줄 달기 위해서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당연히 사업을 풀타임으로 안 한다. 학업을 하면서 사업을 병행하는데, 이렇게 대충대충, 건성건성 해서 제대로 된 사업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14년 동안 투자한 290개의 회사는 모두 다 유니콘이 돼야 했다.

그래서 내가 학생 창업가에게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조언은, 정말로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일단 그 마음가짐부터 제대로 가지고,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면 학업을 휴학하거나, 아니면 자퇴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제대로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이진법적인 생각 같지만, 창업은 all in or nothing이다.

두 번째 조언은, 교수님의 말을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창업하는 회사의 주주명부에서 교수님은 빼거나, 아니면 이들의 지분을 2% 이하로 낮추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 창업 스타트업은, 그리고 특히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원생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창업팀에는 지도교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게 왜 틀렸는지는 내가 전에 이 글에서 대략 설명했는데, 다시 한번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스타트업의 코파운더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이 사업 생각만 해야 하고, 이 사업에 그 무엇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교수들은 이게 구조적으로 안 된다. 왜냐하면 학교가 이들의 직장이라서 항상 학교가 이들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가 잘 되면 가장 고생하고 기여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분이 이걸 결정한다. 회사가 안 되면 역시 지분이 가장 많은 분들이 모든 책임과 비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에 all in 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파트타임으로 조언과 훈수를 하는 교수들이 지분을 이렇게 많이 보유하는 건 확실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수들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본인이 창업한 회사가 있고, 지도하는 학생들이 창업한 3~4개 회사의 높은 지분을 보유한 C 레벨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로 회사가 나중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잘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 교수는 창업팀에서 빼라. 꼭 이들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스톡옵션을 0.5% 이하로 주고 고문으로 모시는 걸 권장한다. 전에 어떤 학생 대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굉장히 곤란해하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본인도 졸업해야 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승인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하므로 이런 껄끄러운 대화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내가 위에서 말한 대로 진짜로 사업을 하려면 그냥 학업을 중단하는 게 이런 졸업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니면, 교수님과 이 힘든 대화를 해서 쇼부를 봐야 한다. 사업하면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훨씬 더 힘든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힌다면 사업 못 한다.

마지막 조언은, 스타트업은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곳이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인이 현재 개발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 이건 정말 대단하고 축하할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세계 최고의 사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노벨상 받은 모든 이론과 기술이 유니콘 사업이 돼야 한다. 기술은 그냥 단지 기술일 뿐이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돈을 버는 사업으로 진화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연구보다 사업이 더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 같은 VC는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 기술로 만드는 돈을 버는 사업에 투자한다. 이걸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나는 젊고, 똑똑하고, 에너지 넘치는 학생 창업가를 정말 좋아한다. 이들이 맘먹고 사고 치면 유니콘이 아니라 데카콘 몇 마리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더 많은 학생이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위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 본 학생 창업가들이라면 언제든지 스트롱에 연락해 주시길.

배움의 압축

우리는 2012년도부터 평균적으로 매달 한두 개의 신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투자하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해마다 1,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작년의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2025년에도 1,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검토한 것 같다. 1,500개 회사를 모두 다 대면 미팅하는 건 아니다. 어떤 회사는 그냥 자료만 보고 패스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스트롱은 대면 미팅을 국내 그 어떤 VC보다 더 많이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투자팀에는 6명의 심사역이 있는데 – 내 공식 직책은 대표 또는 파트너지만 회사를 만나서 검토할 땐 나도 그냥 심사역이다 – 우리는 매일 평균 5개~8개 정도의 미팅을 소화하지 않을까 싶다.

작년 12월은 이런 미팅을 하느라 참 바빴다. 하루는 내가 5개의 미팅을 했는데, 이 5개 모두 매우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 미팅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전에 자료는 충분히 숙지하고, 되도록 사전 질문도 다 적어서 미팅에 임해야 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매일 미팅이 너무 많은 시기에는 사업 자료만 대충 보고 참석한다. 실은 이날은 5개 스타트업의 자료도 꽤 깊게 보고 미팅에 참여했고, 미팅 시간에도 초집중했는데, 복잡한 사업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해도 사업 내용과 비즈니스 모델을 100% 다 이해하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초집중해서 공부하고 미팅하느라 잘 안 돌아가는 뇌를 많이 써서 그런지, 그날 집에 오니까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한 것처럼 에너지가 방전됐다. 힘든 12월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5개의 미팅을 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나름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생겼는데, 이렇게 단시간 안에 배움을 압축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매우 뿌듯했다. VC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분야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미팅을 통해서 5년 이상 이 분야에서 습득한 경험, 지식, 노하우, 그리고 영업비밀을 다른 창업가들을 통해서 1시간 반 만에 가만히 앉아서 배울 수 있는 이런 배움의 압축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게 고마웠다. 그것도 이런 배움의 압축을 나는 1년 365일 매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직업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상기시킬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신기하고 모든 창업가와의 미팅이 보람찬 건 아니다. 어떤 미팅은 아주 좋고, 어떤 미팅은 아주 별로이고, 어떤 미팅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만, 대부분의 미팅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업가들과의 만남 중 완전히 쓸모없는 미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모든 미팅은 배울 게 있고, 완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창업가와의 미팅도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시는 이런 분들과 대면 미팅하면 안 되겠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미팅이다.

VC가 아니더라도 항상 배울 수 있는 직업은 이 세상에 매우 많다. 뭐를 하든 학습하는 자세만 있다면 배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배움을 단시간 안에 압축해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이 VC라는 직업에 대해 자주 강조하는 점은, 이 일은 끝없이 듣고, 끝없이 생각하고, 끝없이 질문하는 건데, 이건 마치 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는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얻는 배움보다 훨씬 더 압축됐고, 모든 지식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대부분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배움이라서 VC는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압축된 배움을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가장 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도 하고, 질문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지만, 결국엔 시간 내서 우리를 찾아오는 창업가라는 현장의 선생님에게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꽤 편리한 직업이다.

나는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정도 읽는데, 독서도 작가의 50년 경험과 노하우를 4시간 만에 습득할 수 있는 압축적 배움의 대명사이다. 창업가와의 미팅과 독서를 병행하면, 정말 많은 걸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학교가 가르칠 수 없는 것

일주일 전에 내가 10년째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26기 데모데이가 있었다. 나는 프라이머 데모데이는 항상 흥행 수표라고 농담하는데, 이날도 1,000명이 넘는 분들이 와서 한국의 창업 열기는 아직도 뜨겁고, 이제 시작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가졌다. 프라이머 데모데이의 주인은 창업가들이고,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Ask Me Anything) 세션이다. 몇 년 전부터 이 AMA 세션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고, 우리도 편안하게 좋은 분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어서 이번에도 진행했고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서울대학교 학생이 본인도 창업에 관심이 많은데 학생 때는 뭘 하면 창업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지 물어봤고, 나는 이분에게 졸업하고 창업할 생각이면 학생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 알려줬다.

일단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스타트업과 테크 관련 기사와 뉴스레터를 읽으라고 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현재 어떤 창업가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에 대해서 잘 공부하고 있으면, 큰 기술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는 아니겠지만, 대략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기사와 뉴스레터 읽는 건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대학 4년 동안 스스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습관화될 것이다.
두 번째는,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라고 했다. 뛰어난 창업가들은 모두 에디슨같이 많은 질문을 한다. 이들은 계속 “왜?”라고 질문하고,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하면 본인들이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창업하는데, 이게 일반인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이건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 물어볼 순 있는데, “그건 원래 그래요.”라는 답을 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질문을 멈춘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왜 원래 그런가요? 원래 그런 게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남들이 잘 못 보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 시작한다. 실은 이런 질문하는 것도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대학 4년 동안 스스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어느 정도 습관화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술 좀 작작 먹고 그 시간에 기사 읽고,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라고 했다. 이 또한 4년 동안 반복하면 금주가 습관화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친구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는데, 괜히 공개적으로 실망하게 하기 싫어서 AMA 세션에서는 더 이상 입을 벌리지 않았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어떤 좋은 학교라도 창업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샌 웬만한 대학교에 창업 관련 수업도 있고,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심지어 어떤 대학에는 창업학과도 있는 걸 봤다. 내가 봤을 땐 다 예산 낭비, 시간 낭비고, 이런 수업을 듣는 건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과 이야기하고, 투자를 받고, 직원을 채용하고, 그리고 수많은 우울감, 공황, 그리고 저점을 경험하면서 바퀴벌레같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건 그 어떤 교수도 가르칠 수 없고, 그 어떤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창업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준비가 되면 창업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창업하고,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으면 창업하고, 돈을 모으면 창업하고,,,등등 수많은 준비를 하고 창업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다 창업 안 한다. 이들은 안 하는 사람들이다.

창업하고 싶다면 이론을 만들지 말고,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해라. 하는 사람이 돼라. 그리고 학교에서 창업을 배우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못 가르쳐준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

2012년도에 스트롱을 시작했으니까, 이제 12년 동안 한국이라는 시장과 컨셉에 투자한 셈이다. 정말, 시간은 남이 뭘 하든지 상관없이 알아서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동안의 우리 성적표를 보면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한국에서 가장 투자를 잘하는 VC는 아니다. 우리보다 더 수익률이 좋은 투자자도 많고, 우리보다 더 많은 유니콘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도 많고, 우리보다 더 투자를 잘하는 투자자도 많다.

그런데 그나마 다른 투자자들보다 스트롱이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하는 걸 딱 하나만 뽑자면, 아마도 한국에 투자하는 VC 중, 우리가 가장 많은 창업가와 회사를 검토한다는 점일 것 같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검토한 회사가 1,300개 정도였고, 해마다 우리 투자팀의 5명은 – 나 포함 – 1,000개 이상의 회사를 서류나 대면 미팅을 통해서 검토한다. 우린 워낙 초기 회사에 투자하기 때문에, 일단 많이 검토하고, 많이 만나고, 많이 이야기해야지만 우리가 창업가에게 찾는 다양한 정성적, 비정형적 자질들을 파악할 수 있다. 창업가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하는 VC들도 있지만, 우리 모델은 이렇게 하는 것보다 무조건 발로 많이 뛰면서 최대한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만나야지 잘 작동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배우면서 느끼고 있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회사와 미팅하면서 내가 느끼고 배운 점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어떤 미팅은 아주 좋고, 어떤 미팅은 별로이고, 어떤 미팅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만, 대부분의 미팅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업가들과의 만남 중 쓸모없는 미팅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별로였던 미팅조차도, 다시는 이런 스타일의 창업가와는 미팅하면 안 되겠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미팅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고 배움은 좋다는 관점에서 보면, VC만큼 보람차고 배움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같이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 투자하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 기발한 사업 모델,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정말 독특하고 특이한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로켓 만드는 회사에서 햄버거 프랜차이즈 회사까지, 1년 내내 재미있고 신기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다. 나만 원한다면, 그리고 시간을 할애할 수만 있다면, 내가 만날 수 있는 창업가들은 무제한이고, 이들로부터 뭔가를 배울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정말 좋은 점은, 내가 찾아가도 되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 사무실로 기꺼이 와서, 본인들이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많게는 10년 넘게 배웠던 살아 있는 지식을 가감 없이 우리와 공유해 준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배움을 가로막는 유일한 한계는 바로 내겐 하루에 24시간 밖에 없고, 창업가들을 만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들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VC를 한다는 건 끝없이 듣고, 끝없이 생각하고, 끝없이 질문하는 건데, 이건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게 죽은 지식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고,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지식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VC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원래는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월급을 받으면서, 아주 편하게 우리 사무실에서 앉아서, 나보다 더 훨씬 더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선생님인 창업가들이, 본인들이 피똥 싸고 개고생하면서 습득한 지식을 전부 다 공유하는데, 이게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이런 맥락에서 투자를 접근하다보면, 우리가 제공하는 초기 자본이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기 위한 투자금이라기보단, 아주 똑똑한 분들이 사업 하는 걸 가까이서 보고 많은 걸 배우기 위해서 내는 수업료나 등록금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우리가 창업가분들로부터 이렇게 많은 걸 배우는데, 창업가분들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뭔가를 배울 수 있길 바란다.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수업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세미나와 강연 요청을 받는다. 바쁘기도 하고, 내가 전문적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대부분 다 사양하고 거절하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기꺼이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나 세미나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미래의 창업가들이고, 이들이 스트롱의 미래 고객이기 때문에, 잠재 고객을 만나서 이들에게 스트롱벤처스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업무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데, 바로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큰 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내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내가 뭘 배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학생들 대부분 아직 경험이 없는데,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편견이 없고, 편견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상상과 질문들을 많이 한다. 바로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생각도 많이 하고 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냥 왠지 나도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얻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기홍님은 지금 생각해 봤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 일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수업은 어떤 거였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Public Speaking(말하기)’과 ‘Writing(쓰기)’ 수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땐 이런 수업이 존재하지 않아서, 나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요샌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이 제공되는 거로 알고 있다.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들에게 이 두 수업을 되도록 졸업하기 전에, 시간 날 때마다 수강하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위한 글쓰기나 취미를 위한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고, 나름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 생각을 남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서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매일 쓰면 글쓰기 실력은 누구나 향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잘 쓰고 싶으면 쓰는 동시에 많이 읽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매년 50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글쓰기는 이렇게 평생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쓰기 수업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 번 들었다. 이 수업의 핵심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그리고 자주 써야 하고, 이만큼 많이, 그리고 자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는 내가 항상 자신이 없었던 분야였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니까 나보다 실력도 없고 멍청한 학생들이 남들 앞에서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면서 내 밥그릇과 기회를 빼앗아 가는 걸 직접 경험하면서, 나도 말을 좀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학원에서 ‘Public Speaking’이라는 수업을 2학기나 들었다. 이 수업은 3학점짜리 수업이니까 총 6학점을 들은 것이다. 실은, 나와 1대 1로 연습/훈련을 했던 코치는 학부생이었는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탠포드 교수보다 나에겐 훨씬 더 뛰어나고 인상 깊었던 선생님이었다. 수업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각자 3~5분 동안 발표를 하고, 이걸 동영상으로 촬영한 후 코치와 함께 자세하게 분석해서 발표 실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첫 학기에 B-를 받았지만 – 참고로 B 이하는 매우 형편없는 점수이다 – 그 다음 학기는 B+를 받았다. 성적은 조금 향상했지만 내 발표 실력과 청중 앞에 섰을 때의 자신감은 10배 정도 상승했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상당히 자주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오래 한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을 남들에게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걸 보면, 초등학생 수준으로도 미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분들에겐 더욱더 강력하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추천한다. 직장인들이라면, 이분들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