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on

교육의 재정의

최근 알리바바의 마윈이 곧 사업에서 은퇴하고, 교육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과연 그가 알리바바를 무에서 만든 것처럼 교육 사업도 잘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충분히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경험, 의지, 그리고 자본이 마윈에겐 있기 때문에 전 세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마윈 그 자신도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에 영어 선생님 이었으니, 학교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마윈의 이런 결심에 큰 영향을 준 건 빌과 멜린다 게이츠가 재단을 통해서 하는 다양한 시도인데, 한국에도 사업을 통해 부를 창출한 선배 창업가들이 한국의 고장 난 교육 시스템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다 긍정적인 신호다.

빌 게이츠와 마윈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은 Fred Wilson은 ‘Reinventing Education‘이라는 글에서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단, 값싸고 질 좋은 교육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또 하나는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교육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나는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통해 더 질 좋고, 더 싸고, 더 접근성이 좋은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이고, 부자든 가난하든,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두 번째 이슈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같이 출신 학교와 학벌 자체를 교육 수준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명문대 나온 사람들이 비명문대나 지방대 나온 사람보다 모든 분야에서 특혜를 받는다. 또는, 채용에서는 대졸이 고졸보다 조건 없는 우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수십 년 동안 적용하던 전통적인 기준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대졸, 또는 명문대 졸업이 아니면, 아예 채용 대상에서 제외돼서 면접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점점 학벌-교육-지식-업무능력의 상관관계가 매우 약하다는 걸 인지하면서, 대기업도 서서히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걸 느끼고 있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롱 투자사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명문대 출신은 별로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고졸도 있다. 우린 투자할 때 창업가의 학벌을 절대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의 출신 학교도 잘 모르고, 미팅할 때, “학교 어디 나왔어요?” 물어보지도 않고,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출신 학교와 비즈니스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항상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똑같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벌이 아니라 업무능력, 지식, 그리고 호기심이다.

하지만, 나는 ‘교육’ 자체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교육은 꼭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님한테 뭔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좋은 교육은 오히려 학교 밖에서 습득하는 게 훨씬 쉽다. 책, 구글, 유튜브, 수많은 인터넷 무료 콘텐츠, 사업현장, 길거리 등, 본인이 맘만 먹고 의지와 호기심만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훌륭한 지식으로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다.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으면 구글에서 검색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도 탈 수 있다는 농담까지 하겠는가. 우리 투자사 대표나 CTO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냥 스스로 코딩을 배운 분들이 훨씬 많고, 어떤 분들은 대학도 안 가고 그냥 중학교 때부터 책 보고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모두가 원하는 만큼 빠르진 않지만, 교육의 재발명과 재정의는 현재 진행 중이다.

아웃라이어 VC, 아웃라이어 창업가

얼마 전에 Crunchbase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다. 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가야 하고, 변호사가 되려면 로스쿨을 가야 하는데, VC가 되고 싶으면 어떤 전공을 공부해야 할지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해서 미국과 캐나다의 투자자 4,500명의 학력을 분석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하버드, 스탠포드, 유펜, MIT 등의 소위 말하는 ‘탑스쿨’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VC들이 많고, 학사 학위만 있는 VC보다 석사와 박사 출신 VC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사 – 28%; 석사 – 57%; 박사 – 16%).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 있는 VC들만 봐도 대부분 MBA가 있는 석사 출신이 많은 걸 보면, 맞는 분석인 거 같다. 그리고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면, 57% 석사 학위 중 80%가 MBA라고 한다. MBA 학위가 VC가 되기 위한, 소위 말하는 ‘골든 티켓’인 셈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일반 학교 MBA보다는 하버드, 스탠포드나 워튼같은 탑 MBA 학위의 VC가 많은 걸 봐서는, 한국이랑 비슷하게 미국도 뭘 공부했냐 보다는, 어디서 공부했냐가 더 중요한 거 같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VC 분야에서는. 내가 보기에는 VC의 절대다수를 상징하는, 이렇게 적당히 많이 공부한 VC들은 비슷한 성향과 시각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성향과 시각을 가진 VC들이 투자하는 회사들도 정규분포곡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 같다. 투자 실적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다.

그냥 이렇게 결론이 나면 좀 재미없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주위를 둘러보면, 실은 다른 패턴들이 보인다. 간혹 만루홈런을 치는 VC들이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회사에 투자해서 수천, 또는 수만 퍼센트의 exit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VC들은 위에서 언급한 평균적인 VC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고, 학교도 아이비리그나 서울대 나오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MBA도 없다. 아웃라이어 VC라고 할 수 있다. 창업가를 봐도 비슷한 패턴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잘 하는 창업가들을 보면, 평균적으로 좋은 학교 나왔고, 좋은 직장 경험이 있다. 좋은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유니콘 스타트업이 되진 않는다. 그냥 적당히 좋은 회사가 된다.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창업가를 보면, 좋은 학교 출신이 아니거나, 아예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많다. 아웃라이어 창업가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의견인데, 좋은 학벌이나 좋은 직장 경험과 같은 골든 티켓이 없으면, 스스로 더 노력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남들이 5천 시간 일 할 때, 이들은 1만 시간 일한다. 물론, 이들 모두 기본적으로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이고, 자신이 하는 업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지만, 더 열심히 하므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오른쪽으로 갈 때, 이들은 왼쪽으로 갈 수 있는 소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험

직업을 대하는 태도의 경우,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많이 다른 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실은, 나도 어떻게 하다가 VC를 하고 있는지 신기한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마다 큰 모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즐기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2008년 1월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워튼스쿨에서 MBA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실은 생각보다 수업도 어려웠고, 프로그램도 학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한테는 큰 도움이나 영감을 주지 못 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뮤직쉐이크의 미국 일을 도와주면서 뭔가 내 인생의 기회가 왔고, 이걸 이번에 잡지 못하면 나는 평생 후회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후 2008년 2월에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LA로 와서, 미래가 불확실했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과 불확실함을 남이 아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2009년 자금줄이 마르면서, 1년을 무급으로 일했다. 다시 학교로 갈 수 있는 옵션도 있었고, 실은 당장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난 내가 시작한 걸 한번 마무리 지어 보고 싶었다. 큰 모험이었지만, 내가 잘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못 하면 결과는 나쁠 것이기 때문에, 실은 이건 무모한 모험이라기보단 계산된 모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까지 뮤직쉐이크를 운영했는데, 이후에 몇 가지 커리어 옵션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이들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도와줄 수 있는 작은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펀드를 만드는 건 내가 예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시작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후 규모가 조금 더 큰 두 번째 펀드도 결성했고, 앞으로 또 어떤 게 될진 모르겠지만, 우린 계속 모험을 하면서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감행한 큰 모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당시 이런 모험이 없었다면, 솔직히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와 팀도 나와 같은 이야기가 최소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안전한 길을 가고 있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들은 모험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실은 이렇게 하면서 주위의 격려나 부러움보다는 질타와 손가락질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고,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질문을 매일 받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모험을 한 다는 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어깨 위에 스스로 더 많은 짐을 실으면서,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로 자신의 몸을 과부하 시키는 거다. 실은 조금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들은 살면서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 지식, 인맥, 그리고 운이 잘 합쳐지면 언젠가는 더 큰 보상을 맛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큰 비전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한다. 물론, 이런 시도는 대부분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 확률이 더 높지만, 이런 모험을 할 때야 말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과만 봐서는 실패와 성공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는 좋지 않은 결과고, 성공은 좋은 결과다. 하지만, 모험이 우리에게 주는 설렘, 흥분, 그리고 가능성은 실패와 성공을 초월한 그 이상의 정신상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외국 VC 에게 투자받기

우리가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 펀드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미국 VC한테 투자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실은 이 질문 자체가 뜬금없고 광범위해서,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래도 워낙 많이 받는 질문이고,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많은 창업가가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이렇게 하면 외국 VC한테 투자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혹시 기대한다면, 더 읽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품이 후졌으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투자는 절대로 못 받는다. 특히 미국 VC들은 한국보다 유니콘 기업과 초고성장에 익숙하다. 웬만한 수치로는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수치는 필수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대표이사나 공동창업자 또는 회사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아는 직원 중 영어를 모국어 같이 유창하게 하는 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실은 외국 VC에 투자를 받으려면 영어를 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긴데, 우리 투자사를 포함, 많은 팀이 이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국에서만 정규교육을 받았다면, 영어를 잘 할 수가 없다. 많은 분이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다면 스피킹은 잘 못 하지만, 라이팅이라 리딩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걸 주장한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건, 한국 정규 교육 과정에서 15년 이상 영어를 배우지만 대부분 스피킹, 라이팅, 리딩 모두 형편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영어를 잘 하는 인력’은 우리 회사의 복잡한 비즈니스의 모든 디테일을 투자자한테 아주 완벽하게 전달이 가능한 사람이다.

우리 투자사 중 한국계 파트너가 없는 외국 VC에 투자를 유치한 한국 회사는 코빗, 텀블벅, 미소와 숨고가 있다. 코빗의 유영석 대표는 우리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 텀블벅의 염재승 대표는 영어를 모국어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회사의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엔지니어 동료 중 영어를 완벽하게 하면서도 비즈니스 감각이 훌륭한 팀원이 있었고, 이 분이 DCM과의 투자협의를 리딩했다. 미소의 대표 Victor Ching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창업가이다. 숨고의 Robin Kim 대표 또한 한글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 물론, 모두 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좋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만약에 영어를 유창하게 못 했다면 매끄러운 투자유치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통역사를 고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투자유치라는 게 한번 만나서 성사되는 게 아니다. 길게는 6개월 이상 지속해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이때마다 통역사를 고용할 수는 없고, 매번 똑같은 사람이 배정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통역하는 분은 말 그대로 한국어 영어만 담당하는 분이라서,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대부분 빵인 분이다. 실은 VC가 관심 있어 하는 건 회사, 제품, 그리고 팀에 대한 아주 자세한 내용인데, 우리 비즈니스를 전혀 모르는 통역사를 중간에 끼고 대화를 하면, 투자자가 영어 질문 하나 할 때마다, 통역사는 다시 대표이사한테 이 질문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물어보고, 답을 한글로 받으면, 이걸 또 영어로 통역해서 투자자한테 전달한다. 이렇게 하면 중간에 뻘쭘해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대화의 맥 자체가 끊기기 때문에, 이런 미팅을 나도 몇 번 해봤는데 결과는 좋지 않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너무 답답하고 회사와 팀이 unprofessional 해 보일 확률이 높다. 이게 상상이 안 되면, 한국 투자자가 아프리카 스타트업 대표와 미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중간에 한국어 아프리카어 통역사를 끼고 회사의 매출이나 DAU/MAU 같은 수치를 물어봤을 때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 갈 것이다.

위에서 나는 “회사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아는 직원 중 영어를 아주 모국어 같이 유창하게 하는 팀원”이라고 했다. 이제 갓 회사에 합류한 직원은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투자자가 알고 싶어하는 회사와 제품의 내용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이사 또는 공동 창업가가 영어를 잘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실은 스트롱 투자사 중에도 미국 VC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 만한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들이 있고, 대표들이 나한테 외국 VC 소개를 부탁한다. 그런데 이 ‘영어’ 문제 때문에 웬만하면 나는 소개를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소개는 내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이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그림이 안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들한테 가능하면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져서 외국에서 투자유치를 하고 싶다면, 이걸 할 수 있는 적당한 인력을 잘 뽑으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외국 투자자와 연결되고 대화를 할 때도 영어가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딜이 만들어져 간다면, term sheet과 계약서 초안이 공유될텐데, 이 또한 모두 영어로 되어 있다. 실은, 투자 규모가 크다면, 전문 변호사와 함께 일하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고 변호사한테 모든 걸 위임하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먼저 계약서를 일차적으로 검토하고, 그 이후에 변호사가 투입되면 비용 또한 절감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게 전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 VC한테 한국 스타트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소개 원하냐고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Do they speak English? I mean, REAL English?” 인 거 같다.

착한 사람

6월 30일 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에서 메가스터디의 창업자 손주은 회장님이 키노트 연설을 하셨다. 실은 당연히 파워포인트나 PDF 자료 기반으로 발표하실 줄 알았는데, 본인은 자료 같은 거 사용하지 않고 그냥 화이트보드에 직접 쓰신다고 해서, 내부적으로는 좀 당황하긴 했다. 그리고 행사당일, 800명 이상이 모인 큰 장소의 무대 위에 아주 작은 보드에 마커로 이것저것 쓰시면서 시작할 때만 해도 난 솔직히 좀 불안했다. 또한, 손 회장님이 과거 어떤 행사에서 30분이 배당됐는데, 한 시간 이상 이야기하셨다는 소문이 청중에서 나오자 더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반대로, 손주은 회장님의 연설은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들었던 그 어떤 키노트보다 더 값지고 찰졌다. 그리고, 사람의 냄새가 폴폴 날 정도로 매우 인간적이었다. 시간은 조금 오버하셨지만,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중이 경청해서 들었다. 실은 나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맨손으로 상장 회사를 만드신 패기와 그 비즈니스를 계속 잘 운영하시는 스킬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본받고 싶었던 건 이 분의 소명의식과 사회에 많은 걸 환원하고 싶어하는 책임감이었다. 나도 돈 많이 벌면, 저렇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인데(이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냐 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키노트를 마쳤다. 이 ‘착한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의견이 계속 바뀐다. 실은, 착한 사람은 그냥 착하지, 비즈니스는 잘못 한다는 게 일반론인 거 같다. 일을 하다 보면, 힘든 결정을 해야 하고, 사람도 해고해야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나쁜 놈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거 같다.

우리도 착한 CEO한테 투자해봤고, 내가 봐도 아주 싸가지 없는 못 된 CEO한테 투자도 해봤다. 아직 판단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천성이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대세가 기울어지는 거 같다. 단기적으로는 차갑고, 남들한테 욕 많이 먹는 사장들이 비즈니스를 잘하지만, 장사 수준을 벗어나서, 실제 비즈니스를 만들고, 더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요소인 회사의 ‘문화’를 만드는 건 착한 사람들인 거 같다.

실은, 나는 착한 사람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을 안 하다가, 데모데이 이후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하게 됐고, 이제 창업자들 만나면,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꼭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