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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의 중요성

요새 한국의 주식 시장은 정말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나도 한국과 미국 주식을 약간 보유하고 있지만, 큰 연구나 분석 없이 내가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기 때문에 한국의 public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조만간 코스피가 1만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샌 한다. 연일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주식 분석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본인들의 이론과 전략을 공개하면서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하는데, 이걸 보면서 맨 먼저 들었던 내 생각은 과연 저 수많은 주식 분석가 중 실제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이다.

내 주변에도 유명한 주식 분석가가 있다. 언론에도 나오고, 여의도에서는 꽤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다. 나도 이 분이 방송에 출연해서 특정 회사와 분야에 대해 본인이 아는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걸 들었는데, 대학교 교수님보다 더 유식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이 분은 주식 투자로 돈을 크게 벌진 못했다. 투자를 안 해서 못 번 건 아니고, 투자하는데, 막상 본인이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수익을 만들진 못했다. 그 회사의 임직원보다 본인이 분석하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꿰뚫고 있고,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어떻게 주식 투자로 돈을 못 벌 수가 있을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대학원을 6개월 동안 매우 짧게 다녔고, 이때 경제학에 대해 조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은 꽤 재미있는 학문이긴 하지만, 경제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법칙과 원리를 담는 학문이라는 이론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워튼 경영대학원에서 그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수업을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아는 상식은 실물경제에 거의 적용할 수가 없는 죽은 지식이라는 걸 매번 느꼈다. 이론가들이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 이론 뒤에는 수많은 비현실적인 모델링과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의 실생활에는 적용할 수가 없는데, 많은 경제학자는 이런 이론이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물경제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본인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한다. 왜 그럴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은 투자의 세계도 비슷하다. 투자를 책으로 배우고, 이론적으로만 아는 가짜 VC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 투자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벤처투자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다. 이 기술은 이래서 좋고, 저 기술은 저래서 미래가 없고, 이 회사는 이러므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들의 말은 하나씩 따져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이분들에게 본인의 포트폴리오 중 성공한 회사에 관해 물어보면, 말에 비해 실제 투자는 거의 안 했거나, 투자는 좀 했지만, 성공한 회사는 하나도 없다. 벤처 투자 세계도 실전으로 움직이지, 이론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 수치, 그리고 데이터를 맹신하진 않는다.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업은 하면 안 되고, 이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했을 때 우리의 경쟁사가 우리보다 말도 안 되게 경쟁우위를 갖는 시장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또는 이와 반대로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무조건 해야 하는 사업은 해야 하고, 우리가 경쟁사를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시장에는 들어가야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결정이라서, 일단 해보고 부딪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너무 많은 분이 이론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데,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결과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창업가들이 좋다. 이들은 이론도 참고하지만, 결국 모든 건 실전에서 결정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 절대로 승산이 없는 분야에서 조 단위 사업을 만들고,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달걀로 바위를 쳐서 정말 바위에 금을 내는 분들을 나는 봤고, 몇 명에겐 우리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실전이다. 이론 뒤에 숨지 말고, 일단 해보는 걸 권장한다.

배려해주는 사람들

나는 2007년 여름에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운 좋게 워튼 MBA에 합격해서 2년 MBA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처음 가는 도시여서 와이프랑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당시 필라델피아는 범죄율도 너무 높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 brotherly love의 도시에서 우린 6개월 정도 살다가 내가 휴학자퇴하면서 따뜻한 LA로 이사했지만, 그래도 필라델피아가 좋았던 점도 몇 개 있었다. 일단 맛있고 좋은 식당이 많았는데, 같은 음식도 뉴욕과 비교했을 때 약 30% 정도 저렴했다. 그리고 맛있는 동네 커피숍도 많았는데 그 중 내가 좋아하던 곳이 La Colombe이라는 곳이었다.

필라델피아가 라콜롬의 본사인데 내 기억으론 당시에 매장이 딱 한 개였던 동네 specialty 커피숍이었다. 그리고 서부로 떠나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뉴욕의 멋진 라콜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고, 공교롭게도 며칠 후에 이 회사의 창업 스토리 관련 인터뷰를 듣게 됐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회사가 2023년도에 그릭 요거트 업계의 대장 쵸바니에 1조 원 이상에 인수됐다는 점이었다. 가격이 높았다는 점도 놀랐지만, 1994년도에 창업된, 오래된 회사라는 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거의 13년이 걸릴 정도로 하나의 매장에서 완벽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 그리고 엑싯하기까지 29년이 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두 코파운더의 우정과 서로를 배려하는 – 요샌 정말 찾기 힘든 – 아름답고 따뜻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인간애였다. 코파운더 중 한 명이 어릴 적부터 심한 양극성 장애가 있어서 힘든 사업을 하는 와중 3개월에서 6개월마다 한 번씩 회사와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쉬거나 사라졌는데, 다른 창업가가 수십 년 동안 매번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줬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꽤 큰 울림을 줬다.

실은 가끔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부분이 결혼, 육아, 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서 창업 초반만큼 업무에 시간을 투입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코파운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인데, 나는 라콜롬 창업가의 행동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었다. 즉, 업무에 더 이상 올인할 수 없는 코파운더는 회사에 쓸모가 없으니까 그냥 잘 이야기해서 나가라고 하거나, 지분이 많다면 대부분 다시 매수 또는 회수하고 이 지분을 앞으로 회사에 더 전념할 수 있는 분들에게 배분하라는 식의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좋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이젠 조금 다른 조언을 주고 있다. 같이 회사를 만들고, 몇 년 동안 생사를 같이한 전우와도 같은 코파운더들에 대해서 최대한 배려해 주라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육아를 위해서 전에는 하루에 20시간 일했지만 10시간밖에 일을 못 하거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인해 몇 달 휴식을 취해야 한다면, 최대한 감싸주고, 배려해 주고, 포용해 주고, 회사에 남은 다른 코파운더 분들이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한다. 지분도 당분간 그대로 놔두라고 조언한다.

실은 우리는 일인 창업팀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로운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코파운더가 있으면 혼자 사업하는 것보단 의사결정도 더디고, 충돌도 잦고, 사람으로 인한 다양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단점도 있지만,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 이 고통을 분담하고 서로 토닥거려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동료는 말 그대로 ‘life-saver’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공동창업가가 있는 팀을 항상 선호한다. 라콜롬 스토리를 들으면서 왜 우리가 코파운더가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하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상기할 수 있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업은 빨리 가는 것보단, 멀리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하다. 코파운더가 있다면, 오늘은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서로 칭찬해 주고 더 배려해 주는 하루가 되길.

배움의 네트워크

나는 지금까지 대기업에서 일 한 적이 한 번 있는데, 2년 반 정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영업, 마케팅 업무를 했다. 좋은 분들 많이 만났고, 많은 걸 배웠던 값진 시간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한 2년 정도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더 이상의 배움은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새로움과 배움이 익숙함과 반복으로 바뀌면서 일 자체에 대한 흥미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엔 이미 2년 동안 하고 있는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편하게 일하고, 어떻게 하면 회사생활을 더 편하게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이 지루하거나,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회사 가는 것 자체는 항상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매일 매일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긴장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회사 사람들을 만나서 이들과 어울리고 즐기는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오는 게 더 컸다.

나보다 직장 생활을 더 오래 한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이미 이런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원래 직장 생활이 그렇다면서 혼자 까칠하게 굴지 말고 그냥 회사 잘 다니라는 충고가 대부분이었다. “회사 생활은 즐기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우는 것도 없다. 그냥 다니는 거다.”라는 말을 대부분의 친구들이 해줬다. 실은 틀린 말은 아니다. 2년 정도 일하면 업무는 익숙해지고, 전 세계 샐러리맨들이 그 이후에는 그냥 회사에 다니는데, 이게 직장 생활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실은 나도 전적으로 이런 이유로 퇴사한 건 아니다. 결혼도 하고, 바로 MBA 하러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년 반 일하고 퇴사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갈수록 줄어드는 배움의 기회 또한 퇴사에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벤처투자는 1년 365일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 너무 고맙게도 – 우리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우리가 창업가들이 굉장한 일을 하는 걸 옆에서 가까이 보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새로운 사업, 시장, 산업,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항상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투자금은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배움을 경험하기 위한 수업료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걸 배운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의 입장에서는 투자자에게 많은 걸 배우고, 이런 스타트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창업가에게 많은 걸 배운다.

그래서 나는 스타트업과 투자업은 배움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면서, 이 배움을 확산시켜서 큰 learning network 효과를 지속해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

회사들을 만나다 보면, 1년 이상 펀딩을 하고 있는데, 투자를 못 받는 회사도 자주 본다. 내가 보기엔 대표나 팀은 괜찮은데, 하려고 하는 사업이나 아이디어가 시장이 너무 작거나, 일반적으로 봤을 때 안 될 것 같은 아이템이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도가 많이 떨어져서 투자를 못 받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본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어떤 대표랑 조금 더 친해져서, 이야기해보니, “아무도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1년 넘게 했는데, 자신감도 떨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포기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실은, 이분들의 마음과 고충을 나는 정말 잘 이해한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할 때 비슷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이라고 생각해서, MBA도 그만뒀는데, 막상 투자받으러 다녀보니,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하지만,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은,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가 아니고 내가 잘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당시 절박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포기하고 싶어 하는 대표들에게 그래도 나는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현재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그 어떤 VC도 투자하지 않을 게 확실하지만,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팀이 우리 팀인지 한 번 스스로 물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게 확실하다면, 그냥 계속해보라고 응원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으면 웬만한 다른 좋은 창업가(=경쟁사)도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같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도 투자받기 위해서 VC를 만나면, 결국 그 어떤 VC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경쟁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남들이 같은 아이디어로 창업해도 투자를 못 받기 때문에 돈이 없다. 나랑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창업가라면, 만약에 성공하면 내가 무조건 이기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투자하지 않을 것 같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좌절하고 포기하기 전에 스스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인가?”. 이게 맞는다면 그냥 시작하고 버텨라.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같이 성장하는 기쁨

2012년도에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 왜 투자를 시작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면 여러 가지 대답을 했겠지만, 그중 하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였다. 당시에는 VC는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운 좋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나에게는 꽤 쉬워 보이는 그런 직업이었고, 왠지 돈을 모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고,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가설과 환상은 이미 박살 난 지 꽤 오래됐다.

그래도 나는 이 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실은 지금도 이 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하고, 운이 좀 따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이 따르는 직업이고, 다른 모든 창업가나 직장인처럼 나도 가끔은 이 일이 너무 힘들고, 내 힘과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고, keep going 하는 이유는 너무나 큰 보람과 만족감을 꽤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보람 중 하나는 나만 혼자 성장하는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즐거움이다.

주로, 우리가 투자한 분들이 초보 창업가에서 근사한 기업인/리더로 성장하는 걸 옆에서 볼 때 이런 보람을 많이 느낀다. 생각해보면, 처음 스트롱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나이만 먹은 건 아니고, 투자자로서 훨씬 더 많이 성장하고 스마트해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단편적으로 모든 걸 봤다면, 이젠 조금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특정 상황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경험과 인내심이 생겼는데, 이는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생 때 창업했거나, 직장 경험 없이 졸업 후 바로 창업한 대표들은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밸류에이션이 뭔지도 몰랐을 때 우리가 투자했는데, 이젠 10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조직을 리드하고 있는 어엿한 비즈니스맨이 됐고, 회사의 문화와 리더십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걸 보면, 이렇게 초짜 VC와 초짜 창업가가 만나서 좌충우돌하면서 같이 성장한 보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한테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주는, LP라고 하는 펀드 출자자분들과 같이 성장하는 보람도 자주 느낄 수 있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한 번 만나서 투자가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도 수년 동안 알던 창업가분들한테 투자하는 걸 선호하는데, LP들도 비슷하다. 우리 LP들을 보면, 우리한테 바로 돈을 준 분들이 거의 없다. 스트롱이라는 회사와 나랑 존이라는 파트너를 최소 1년 이상 옆에서 지켜본 후에, 믿을 만한 투자자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 비로소 투자했고, 어떤 LP들은 우리를 5년 이상 지켜보다가 투자했다. 그중 어떤 분들은 나랑 5년 전에 대화를 시작했을 때는 그 조직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회사에서 입지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힘이 없었고, 스트롱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부장이나 팀장님한테 자신 있게 큰 소리를 내지 못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승진했고, 그동안 우리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우리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고, 본인이 힘이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자신 있게 우리한테 투자 한 경우도 있다. 우리도 펀드레이징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이런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큰 보람을 선사한다. 이분들이 만약 계속 회사에 남는다면, 그 조직의 리더가 되고 사장이 될 텐데, 스트롱과 같이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특별한 개인적인 사례 하나를 여기서 공유하고 싶다. 내가 2008년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DCM Ventures라는 꽤 유명한 VC에게 피칭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 담당자가 Osuke Honda 라는 일본계 심사역이었다. 당시 이 분은 DCM에 조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심사역이었고, 본인도 회사에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DCM 파트너쉽 단에서 투자는 결렬됐지만, 오스케는 우리를 엄청 많이 도와줬고, 내부에서 셀링해줬고, 이 딜을 잘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우린 투자는 못 받았지만, 이 주니어 심사역에게 엄청 고마운 마음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가끔 소식을 전하곤 했다. 이제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스케는 DCM의 메인 파트너가 됐다. 스트롱은 훨씬 규모가 작지만, 어쨌든 나도 작은 펀드를 운용하는 파트너가 됐고, 우리는 아직도 가끔 연락하면서 딜을 공유하고 웃으면서 당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일본에 가면 만나고, 오스케가 한국에 와도 만나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던 초짜 창업가와 심사역이었는데, 이렇게 둘이 같이 성장한걸 보면 상당히 뿌듯하다.

혼자 잘나가도 좋고, 혼자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성장하면 그 기쁨은 두 배 이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