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나는 아직 못 봤다. 아니, 안 봤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아마도 앞으로도 안 볼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던 예능이고, 전 세계적으로 좋아하는 두 가지 감성에 집중해서 나름 성공했던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파생적 창의력을 기반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서바이벌 개념을 요리 쪽에 적용한 점과 요리 분야에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개념을 적용해서 이 또한 누구나 다 공감하는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이 참신했다. 참고로,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모두 이런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큰 글로벌 인기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요리사가 발굴됐다. 이미 유명한 백요리사도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흑요리사들도 많이 발굴됐고, 이들의 식당은 이후에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이 됐다. 나는 그 어떤 식당도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흑백요리사에 나온 쉐프의 식당은 안 가봤지만, 많은 곳이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근데 이들이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일까? 정말 맛 있을까? 워낙 주관적인 판단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방송을 통한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요리사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다. 방송 출연할 시간에 메뉴를 하나라도 더 연구하고, 지금 팔고 있는 메뉴를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고 더 맛있게 고객들에게 팔 수 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한 접시라도 더 팔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건 나도 건너 들은 이야기라서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흑백요리사 출연을 거절한 쉐프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기보단,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미디어를 타기 전에 일단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리사의 기본은 음식의 맛인데, 이건 미디어에 나온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 이들은 그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해준 고객들을 서빙하고, 매출을 만들고, 본업인 요리를 하고 있다. 이것 만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실은 이 말은 내가 창업가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소셜 미디어나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손에 지문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다. 방송을 타거나, 스타트업 경진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Forbes 30 Under 30에 선정되거나, 뭐, 이런 게 중요한게 아니다. 실은, 방송을 심하게 타거나, 국내외 모든 경진대회에 참가하거나, 유명한 미디어의 20 Under 20/30 Under 30/40 Under 40등의 리스트에 올라가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모든 창업가들은 솔직히 본인의 사업은 잘 못 한다.(그리고 이건 스트롱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내가 아는 창업가들이 본인의 유명세를 자랑하면 나는 속으로 사업이나 똑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진짜로 사업하는 분들은 이런 방송에도 안 나가고 경진대회에도 안 나간다. 왜? 그냥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데, 언제 딴짓할 시간이 있을까? 진짜배기 창업가들은 그럴 시간에 제품이나 제대로 만들고, 고객이나 한 명 더 만나고, 매출이나 100만 원 더 만들고 있다. 이런 패턴은 스타트업 행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거의 안 가지만, 흔하디흔한 스타트업 행사들 가보면,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해야 할 일들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 모든 게 결국엔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정말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사업을 좀 먹고,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떨어뜨리고, – “우리 대표는 대회랑 방송만 나가면서 스타트업 대표 놀이만 하네” – 투자자들에게 누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업가라고 생각한다면, 창업가같이 행동해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 고객을 만들고, 돈을 벌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