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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의 중요성

뮤직쉐이크는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손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이었다.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다양한 음악 모듈을 사전에 수만 개를 만들었고, 그때그때 마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제공해줬는데, 내가 당시에 뮤직쉐이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비유가 “음악 블록을 레고 블록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였다. 이렇게 해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뮤직쉐이크랑 비슷한 개념의 음악 앱들이 시장에 꽤 많이 출시되고 있다. UI나 기능은 조금씩 다르지만, 제품 설명을 보면 공통 요소가 있는데 바로 “AI 기반의 음악 생성 앱”이라는 설명이다. AI라는 용어가 빠지지 않는데, 솔직히 이 제품들이 정말로 AI를 활용하는지, 그리고 활용해도 어느 정도인진 잘 모르겠다. 실은 뮤직쉐이크도 당시 기준으로는 다양한 음악 블록을 조합할 수 있는 AI 음악 생성 엔진이라고 해도 틀린 설명이 아닌데, 2010년은 아직은 AI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AI와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일상 대화 속에서 하지만, 당시에는 감히 입에 담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오늘은 타이밍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이 있어도 시장에서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으면 크게 성장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기술이 타이밍을 못 맞추고, 시장에 너무 일찍 출시되는 바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비슷한 제품이 출시되고, 과거와는 달리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투자받고, 많은 유저가 사용하는 제품으로 성장하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보면, 일단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이 틈새가 아닌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게 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의 존재 여부는 꽤 중요하다. 없기 때문에 내가 기술 자체를 만들고, 인프라도 만들어야 한다면 이 사업은 지금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우버와 같은 비즈니스가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시장에 나왔다면, 대중적인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망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손에 갖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를 애플이 만들었기 때문에, 모바일 기술과 인프라가 전 세계에 빠른 시간 안에 깔렸고, 이 훌륭한 기술과 인프라 위에서 우버라는 사업은 빠른 시간 안에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확장했다. 실은 대부분의 온디맨드 사업이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는데, 아이폰 이전에 창업된 웹 기반의 온디맨드 사업은 대부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이건 창업가의 비전이나 의지보단 타이밍의 문제이다.

VR 또한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오큘러스가 시장에 소개됐는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VR을 뒷받침하기엔 너무 뒤떨어졌고, 모두를 위한 VR의 세계가 구현되기엔 인프라가 너무 미비했다.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큰 회사들이 거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술은 상당히 발전했고, 인프라 또한 현재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VR이나 메타버스가 대중화되기엔 타이밍이 이르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인프라는 타이밍에 매우 중요한데, 동시에 또 중요한 건 대중의 인식이다. 틈새 컨셉이 메인스트림 비즈니스가 되려면, 극소수가 아닌 누구나 다 이 컨셉을 알아야 한다. 대중의 인식이 “저건 나랑 상관없는 거야” 에서 “나도 저거 해야겠다”로 바뀔 때가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누구나 다 VR, 비트코인, 메타버스나 NFT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 기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공부하게 된다. 안 하면 왠지 혼자만 도태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누구나 다 이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고, 전문가까진 아니지만, 뭔지 알게 되면서 갑자기 이전엔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모르던 게 메인스트림이 된다.

대중의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팬데믹은 이 시간을 2년으로 압축했다. 전염병이라는 외부 요소가 기술, 인프라, 그리고 대중의 인식에 강한 압박을 가해서 타이밍 자체를 인위적으로 빨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코비드19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몰랐을 Zoom을 전 세계인이 사용하게 됐고, 굼벵이같이 느린 기업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압박을 통해서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2022년과 2023년이 뭔가 새로운 걸 창업하기엔 매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회사들이 많이 창업되길 바란다.

메인 화면을 위한 전쟁

작은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치곤, 내 아이폰에는 앱이 그렇게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폴더도 몇 개 있고, 여기에 여러 개의 앱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설치하고 사용하는 앱들은 화면 1.5개 정도에 다 들어간다. 투자 검토 할 때는 다양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해보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바로 지워버리고, 내 성격상, 나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정기적으로 삭제한다. 지금 내 메인 화면을 보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필수 앱들만 설치되어 있는데, 이 순서나 배치는 수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너무 많은 제품을 검토하고 사용하다 보니, 앱 피로도가 많이 쌓여서, 요샌 웬만하면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회원가입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즉, 새로운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나 같은 사용자에게 그 제품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높은 CAC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그 앱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면 더욱더 힘들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상황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되도록 새로운 제품을 설치하지 않고, 이미 수년 동안 같은 화면 위치에 있는 항상 사용하는 익숙한 제품만 사용할 것이다.

시장에서 인기 있고, 자주 사용하는 앱들의 특징은 모두 다 작은 스마트폰의 첫 번째 화면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지금같이 앱스토어에 앱이 많지 않았던 스마트폰 초기 시절에 설치했기 때문에 첫 화면에 깔려 있고, 첫 화면에 있기 때문에 자주 보고 자주 손가락으로 누르기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앱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이런 앱들이 많다. 하지만, 내 첫 화면에 설치된 대부분의 앱은 그 영광의 자리를 그냥 얻은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 스스로 좋은 앱이고, 자주 사용하는 앱이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앱들을 두 번째 화면으로 밀어버리고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서 첫 화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정말로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가치를 주는 앱들만 첫 번째 화면에 설치되고 배치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제품을 마케팅하고, 활성사용자 수를 늘리고, 리텐션을 올리는 게 요샌 정말 어렵고, 고객획득비용 등이 포함된 마케팅 비용 또한 과거 대비 훨씬 비싸졌다. 아무리 돈을 써서 마케팅해도 앱에 질린 사용자들이 거의 반응을 안 하고, 반응해서 설치해도 회원 가입을 안 한다. 이 어려운 장벽을 넘어서 회원가입까지 했지만 몇 번 해보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 화면이 아닌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특히, 5번째 화면의 어떤 폴더 안에 묻혀 있다면 영원히 사용되지 않다가 언젠가는 그냥 삭제된다.

우리에겐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중 잠자는 8시간을 빼면 16시간이 남고, 일하는 8시간을 또 빼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8시간이 남는다. 이 8시간 동안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등등. 이 시간에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제품은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되려면, 첫 번째 메인 화면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매일 봐야지만 클릭하고, 사용하고, 가끔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을 만드는 창업가라면 이 첫 번째 화면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마법의 순간

얼마 전에 도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축구…플랩…”이라는 말이 들려서 집중해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봤다. 앞뒤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분이 축구(=풋살: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플랩으로 축구를 했다는 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부분이다. 팀이 없어도, 혼자 가도 선수를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소셜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법의 순간을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꽤 대중적이고 생활밀착형인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나는 위에서 말 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봤다. 당근마켓이 지금은 국민 앱이 됐지만,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트래픽이 별로 없었고, 초반에는 성장도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가면서 입소문으로 앱이 바이럴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당근마켓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밀리고 치여서 짜증이 살살 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귀에 익은 깜찍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당근~” 소리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도 몰랐던,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측 못 했던 – 물론, 당시엔 지금 당근마켓의 성장은 상상도 못 했다 – 회사에 우리가 초기 투자를 하고, 그 서비스를 만원 퇴근 버스 안의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그 순간은 정말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세탁특공대도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투자자라서 초반부터 열심히 세특을 애용했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또는 클린토피아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빨리 모든 사람이 세탁특공대를 사용해야할텐데…언제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너무나 낯익은 세탁특공대 유니폼을 입은 요원을 우리 아파트 정문에서 만났고, 혹시 몇 동 몇 호에 가시냐고 물어봤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청담도서관에서 어느 날 플라이북의 키오스크를 발견한 순간도 마법과도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정말로 대중이 사랑하고 내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와서 플라이북 키오스크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느꼈으면 좋겠다.

마케팅 회사

며칠 전에 내가 Stripe 관련 을 쓰면서 완벽한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완벽한 제품과 관련해서 그동안 내가 계속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조금 더 자세히 써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되도록 새로운 앱을 깔지도 않고, 가입도 잘 안 하고 있다(우리 투자사 앱은 제외). 앱스토어가 처음 나왔을 땐 너무나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앱을 깔고, 지우고, 또 깔고, 사용하고, 회원 가입하는걸 반복했는데, 이제 소위 말 하는 app fatigue가 너무 심하게 왔다.

한국도 회원가입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지만, 과거에 한국 서비스 회원 가입하려면 이것저것 요청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회원 가입하다가 지친 경험도 많았고, 이런 불편함이 쌓이다 보니, 그냥 요샌 새로운 앱 설치를 잘 안 한다. 얼마 전에 내 폰에 설치된 앱 숫자를 세어보니, 아이폰 기본 앱을 제외하고 147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분들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이게 그렇게 많은 게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겐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앱이었고, 이후에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앱은 다 지웠다. 하나씩 지우면서 생각해보면, 처음엔 호기심에 설치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제품의 완성도가 별로인 앱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이 제품들의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 보통 이상으로 개발되긴 했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아주 높은 수준의 완벽을 추구하는 그런 제품들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이런 보통 수준의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의 공통점은, 창업 이후 몇 년 동안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고, 좋은 제품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제품 관련 인력과 개발 인력 고용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제품을 깊게 사용해보지 않으면, 꽤 완벽해 보이는 껍데기까진 만든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90% 완성도의 제품은 만든다. 실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90% 완성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진짜 사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정도 수준의 제품을 출시하면,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들이 서서히 등장한다. 하지만, 입소문을 더 바이럴하게 퍼트리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를 우리 제품이 없으면 안 되는 유저로 만들고, 그리고 결국엔 이들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90% 완성도를 95%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97%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100%까지 올리기 위한 노력을 부단하게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제품력에서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회사가 마케팅에서 이 노력을 한다.

회사가 커지고, 브랜드가 소문나고, 제품이 좋아질수록, 더욱더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스타트업은 대부분의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 회사로 변해버린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돈을 쓰기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고, 돈을 태우는 마케팅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바이럴 효과가 마치 우리 제품이 본질적으로 좋아져서 생기는 바이럴 효과로 착각한다. 이렇게 착각하는 순간, 회사는 downward spiral(하강 나선)을 시작하고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현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돈을 쓰는 것 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는 게 훨씬 더 편리하고,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누이 강조하고, 당부하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마케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분야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지만,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편리함에 대해

우리 누님이 미국에 사시는데, 조만간 한국을 잠깐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 파는 마일로 사료를 부탁하기 위해서 아마존 앱을 열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걸 집에서 한 게 아니라, 영동대로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대기를 하는 도중에 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결제했다. 한 3분 만에 모든 걸 처리한 셈인데, 실제로 아마존 앱을 통해서 구매하고 결제 완료한 건 1분도 안 걸렸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항상 내가 하는 거라서 별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후에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들었다. 전에는 – 스마트폰 이전 시절 –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고 싶으면, 일단 저녁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쇼핑몰에 접속해서,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고, 집 주소를 입력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구매 프로세스를 완료했다. 이게 당시에는 시간도 좀 걸렸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기술이 점점 더 좋아졌고, 세상도 좋아졌다. PC와 노트북이 작은 핸드폰으로 대체됐고, 랩탑 화면도 이미 작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서 작동되는 모바일 앱은 낮은 가독성 때문에 앱 자체가 훨씬 더 심플하고 사용성이 좋아졌다. 그리고 결제 관련 기술과 API 또한 좋아져서 그냥 원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들도 많아졌다. 이 모든 개선 사항을 종합한 결과물이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가 다 기술의 발전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많은 이커머스 서비스를 사용해봤는데, 이 중 아마존이 가장 돈을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UI와 UX를 만들었고, 아마도 아마존의 이 프로세스는 점점 더 완벽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쿠팡도 만만치 않게 편리한 모바일 제품을 만들었다. 가끔은 돈을 써서 물건을 사는 과정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느냐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용자에게 친숙한 UI와 UX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제품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더 편리한 경험을 한 사용자들은 절대로 그 전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특성인데, 바쁜 도시의 대로를 건너면서 작은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 사료를 1분 만에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의 이런 경험은 전형적인 비가역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구매 경험이 불편한 서비스를 나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같이 삐삐, 일반 핸드폰, 스마트폰, 그리고 PC, 노트북, 모바일을 모두 다 경험한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접했고, 첫 인터넷 구매와 결제를 쿠팡이나 아마존을 통해서 경험한 세대에겐 이 내용이 그렇게 새롭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의 편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실은, 불편한 서비스가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비가역적인 편리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긴 쉽지 않다. 한 번 편리한 경험을 한 고객은 절대로 불편한 경험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고, 불편한 제품에 대한 시장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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