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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포인트

이미지 출처: 프리이미지 / 크라우드픽

스트롱을 막 시작했던, 9년 전인 2012년 7월에 내가 한국 여자 골프와 박세리 선수에 대한 을 쓴 적이 있다. 당시 24살의 최나연 선수가 US Women’s Open을 우승했는데, 최프로도 완전 first class급 경기를 했지만, 옆에서 도와준 캐디와 다른 선수들의 공도 크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최나연 선수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의 어린 여자 선수들이 골프에 입문하고 세계 무대 재패의 꿈을 꾸게 만든 원동력과 영감인 오리지널 한국 LPGA 인플루언서 박세리 선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은 25년 전만 해도 골프 불모지였는데, 1998년 박세리 선수의 ‘양말투혼’ US Women’s Open 우승을 기점으로, 대단한 골프 열풍이 불었고, 이 순간이 한국 여성 골프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됐다고 많은 분이 이야기한다. 당시 한국의 모든 골프 꿈나무들이 박세리 선수의 우승을 보면서 미래의 세계 챔피언 꿈을 키웠고, 정말로 이게 현실화됐다. 1년 중 골프를 칠 수 있는 날이 8개월 정도 밖에 안되는 이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많은 세계 최고 수준의 탑 여성 골퍼들이 배출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여성 골프 강대국이 됐다.

그리고 한국 스타트업계에서도 박세리 같은 선수가 나와서 글로벌 벤치마크를 만들어야지만, 더욱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좋은 글로벌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이게 9년 전 생각이었는데, 쿠팡이 앞으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박세리 선수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쿠팡은 사업의 규모, 속도, 밸류에이션 등, 모든 면에서 그동안 너무 작게 생각하고, 너무 소극적으로 실행했던 한국 스타트업에게 큰 깨달음과 자극을 주고 있는 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단, 상장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던 많은 회사가 한국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 IPO를 꿈꾸거나, 아니면 준비하고 있다. 내가 아는 회사만 해도 요새 몇 개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 회사들 대부분 미국에서 상장 못 하거나, 해도 잘 안 될 것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사고의 스케일 자체가 커진 건 회사와 직원, 그리고 투자자들 모두에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바뀌어야지만, 행동이 바뀌는데, 일단 그중 한 단계는 클리어한 셈이다.

쿠팡의 또 다른 박세리 효과는, 쿠팡에서 많은 긍정적인 경험을 한 분들이 언젠가는 퇴사해서 모두 다시 창업할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회사를 급성장시킨 경험, 빠르게 성장하면서 각 단계에서 적절한 사람을 채용하고 투입한 경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쌓인 노하우, 국민 앱으로 성장한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 이 모든 경험은 성공적인 창업을 위한 값진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모두다 쿠팡 같은 회사가 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이미 성공 경험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창업가들은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이 회사들이 성장하고 또 성공하면, 앞에서 설명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어쩌면 페이팔 마피아처럼, 쿠팡 마피아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미 이 티핑 포인트는 티핑된 것 같다.

익숙함과 편리함

우린 익숙한 걸 좋아한다. 밥을 먹을 때도 자주 가는 익숙한 식당을 선호하고, 사람을 만나도 익숙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뭐든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보단, 과거에 경험해봤거나, 아니면 경험한 것과 비슷한, 그래서 뭔가를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익숙함을 좋아한다. 많은 학자들이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 이는 인간의 DNA와도 연관되어 있다. 어쨌든 사람은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리고 우린 편리한 걸 좋아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편한 것보단,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편안하고 편리한걸 누구나 다 선호한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수백만 개의 앱과 서비스 중 우리가 필요한걸 매일 매일 선택해야 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익숙함과 편리함은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나도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투자사가 만든 앱 외의 다른 앱을 요샌 웬만하면 설치하지 않는데, 오래전부터 소위 말하는 app fatigue가 왔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앱을 깔고, 회원 가입하고, 사용법을 익히다 보면 어떤 날은 토가 나올 것 같은데,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새로운 앱을 만들거나 출시할 때는 이 글에서 내가 말한 익숙함과 편리함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야 한다.

어떤 창업가는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엄청난 신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이걸 못 알아봐 준다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고, 그렇게 혁신적인 제품도 아니라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데, 정말 어떤 분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단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는 데 성공한다. 이론적으로는 기존 기술과 제품보다 훨씬 더 좋고, 편리한데 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미 존재하는 제품들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도, 그 편리함이 기존 제품의 조금은 더 불편하지만, 훨씬 더 큰 익숙함을 뛰어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많은 사람이 익숙한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잘 벤치마킹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의 반응이 별로라면, 아마도 기존 제품보다 정말 더 편리한지, 그리고 그 편리함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편리함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실은, 요샌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별로 없다. 대부분 점진적인 혁신을 통해서 기존 제품보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든다. 이런 제품은 익숙함과 편리함 모두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 즉, 기존 제품과 비슷하지만, 왠지 기존 제품이 더 익숙하고, 기존 제품보다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편리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익숙함과 편리함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을 것이다.

이미 말한 대로, 우린 앱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앱들이 출시되는데, 그 와중에도 계속 성공하는 제품들이 나온다. 이 제품들을 조금 살펴보면,
1/ 완전히 신개념이라서 전혀 익숙하진 않지만, 너무 편리하다.
2/ 편리하긴 한데, 다른 제품에 비해서 약간 더 편리하다. 그런데도 너무나 익숙한 컨셉을 도입했다.
3/ 너무 편리하고, 거기에다가 너무 익숙하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우리도 위 3가지 중 하나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악은, 익숙하지도 않은 컨셉의 제품을 만들었는데, 사용 방법도 너무 불편한 제품이다. 이런 건 100% 망한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제품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디지털 디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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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지회장 / 크라우드픽

얼마 전에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이 기사를 읽고, 굉장히 많이 공감했다. 나는 요새 웬만하면 다 배달 시켜 먹지만, 기다리기 싫고 음식이 식는 게 싫으면, 가끔 집 근처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직접 가서 음식을 사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카운터에서 주문이 안되고,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이 도입됐고, 이걸 직접 해보니까 햄버거 세트 하나 주문하는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브레인파워를 집중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익숙지 않아서 그렇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방문해서 여러 번 주문 키오스크를 사용해보고 느낀 점은, 매번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위의 기사의 어머님은 나보다는 고령자이신 것 같고, 나같이 첨단 기술이나 서비스를 매일 접하는 업무를 하는 분도 아닌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키오스크 사용법이 어렵고, 나도 빅맥세트 하나 주문하는데 가끔 몇 분이 걸릴 정도로 어렵다고 느끼는데, 나보다 나이 드시고 이런 시스템에 전혀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키오스크 앞에서 20분 동안 헤매다가 먹고 싶은 햄버거도 주문 못하고, 그냥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신 이 분의 이야기는 실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우리 부모님도 얼마 전에 세상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냐는 말씀을 하시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늙으면 그냥 다 죽어야 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참 나한테 슬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의 미래를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도 지현이랑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활이 편해지는 건 맞다. 이건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한국같이 소득수준이 높고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에서 모바일 기술의 발달은 삶의 질을 혁명 수준으로 올려놨다. 손가락으로 뭐든지 주문할 수 있고, 수 십 분내로 집 앞으로 누군가 이 모든 걸 배달해주는 시스템이 이젠 너무 익숙하지만,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이런 편리함은 없었다. 한국 시장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도 쿠팡 주식을 구매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마존도 하지 못 하는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그 다음날 새벽에 배송’하는 이런 매력적인 인프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말 그대로 한국은 손가락 끝에 모든 게 있는, 기술적으로 진보한 편리한 나라로 발전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후배 한 명이 그동안 한국은 완전히 앱의 나라가 된 것 같다고 했는데, 완전 동의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디바이드, 즉 정보격차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정보격차의 의미는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지식과 소득 자체가 증가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발전하지 못해, 원래 존재하던 격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의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기술 환경에 노출된 중산층 이상의 가정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가정 사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 환경에 충분히 노출된 사람들 간에도 계속 심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는 사회이고, 점진적 변화보단 급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디지털 변화도 급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만 이런 최신 트렌드에 관심을 덜 갖거나 소홀히 하면, 격차가 너무 커져서 영영 따라잡지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고학력자이고 경제적 수준도 평균 이상이지만, 쿠팡도 힘들게 사용하시고, 인터넷 뱅킹도 못 하시고, 그리고 맥도날드에서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나도 힘들어하는데, 과연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키오스크 주문을 못 하는 건, 꼰대라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많은 정치인이 전국의 식당에 이런 최첨단 비대면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전국의 언택트화를 통해서 효율성을 제고하고, 소상공인들의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공략을 발표하고 있다. 다 좋은데,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이고,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 그리고 과연 이들은 이런 키오스크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봤는지, 그래서 정말로 이게 그렇게 쉽고 편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는지도 궁금하다.

나도 더 나이를 먹으면,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햄버거 하나 시키는데 20분 동안 남들 눈치 보면서 끙끙거리다가 주문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욕적인 경험을 하고 싶진 않다. 누구를 위한 디지털 혁신이고, 누구를 위한 인터넷 강국인지, 우리 모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프로와 아마추어

이 블로그 독자들도 게임스톱 주식을 구매한 분들이 있을 텐데, 2월의 게임스톱(GME) 주식 사태는 참으로 희한했다. 그리고 희한한 만큼 많은 분들에게 던지는 여러 가지 메시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중 나도 동의하는 몇 가지 이론은 부자/기관/월가들에 대한 경멸(=개미들의 반란), 코비드19로 인한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해소하기 위한 놀이로서의 투자, 그리고 미국의 Robinhood와 같이 누구나 쉽고 공짜로 주식투자를 가능케 하는 앱의 출현 등이 그 중 몇 가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중 세 번째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은 주식 투자 관련 광고를 TV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할 수 있고, 이 광고를 보면 국내, 해외 주식 투자를 이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아직도 주식 투자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주식 계정을 만드는 것부터,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 도대체 공매도와 같은 용어는 어떤 의미인지, 모든 게 어려워서 중도포기하는 분들도 많다. 그리고 주식을 살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 또한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의 로빈후드나 Public과 같이 주식 투자를 게임과 같이 재미있고 쉽게 만들었고, 수수료 또한 과금하지 않는, 그리고 모든 걸 손바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바일 앱들의 출현으로 인해서 그동안 주식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 특히 이제 사회생활과 투자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MZ 세대 – 주식에 대해서 배우면서 본인들이 좋아하는 회사와 종목을 구매하고 있다. 이렇게 정보가 투명해지고 주식 투자가 대중화되면서, 과거에는 이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서 지식, 정보, 그리고 네트워크가 풍부했던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만 할 수 있었던 걸, 이젠 일반 개미 투자자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더 잘 할 수도 있다. 이 현상이 이번 게임스톱 사태에서 매우 극명하게, 그리고 레딧과 같은 소셜 미디어까지 가세하면서, 실은 너무 과하게, 보였던 것 같다.

게임스톱 사건이 사회에 유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래가 밝지 않고, 가치가 없는 회사의 주가는 결국엔 원래 가격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모두 배운 계기였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들보단 잃은 분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개미가 기관을 응징한 사건이라고 미디어는 포장하지만, 솔직히 기관들이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큰 돈을 잃거나 망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정보의 대칭성으로 인해 이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소수의 프로들만이 접근 가능했던 한정된 정보를 기반으로, 이들은 수수료를 받으면서 돈을 벌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제 이런 고급 정보가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접근 가능한 무료 정보가 됐고, 이런 현상은 주식 시장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전 세계 컴퓨터가 연결되면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인류는 끊임없이 했고, 지금도 이 고민은 진행 중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서 돈도 벌 수 있을지 매일매일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분들이 바로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대칭성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공부를 많이 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경험을 많이 한 분들이, 소수만이 보유하고 있던 지식을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거래 사이에서 중간 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중간 상인들한테는 좋은 구조였지만, 전체적인 거래 구조를 보면 비대칭적이었고 매우 비효율적이었는데, 이제 이 중간 벽들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게임스톱 사태를 보면서 확실하게 느꼈던 점이, 이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벽이 점차 무너지고 있고, 많은 아마추어들은 이미 프로의 지식이나 능력을 능가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는 쓰레기 같은 정보도 넘쳐흐르지만, 잘 골라서 보면, 웬만한 대학교수보다 지식이 많고 말도 잘 하는 일반인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우리 투자사 클래스101에는 아마추어지만 프로보다 더 뛰어난 선생님들이 많이 존재한다.

앞으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벽은 더욱더 빠르게 허물어질 것이다.

변화의 소리

세상은 계속 빠르게 바뀌고 있고, 우리같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의 낌새를 빠르게 포착해야하며, 현재에 투자하기보단 미래에 투자해야지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 행동은 아직 과거의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고, 우리 팀원은 모두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는데, 가끔 나만 구시대적인 발상과 편견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 내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유연한 태도로 모든 걸 접근하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게 생각같이 잘 안 돼서 정말 힘들긴 하다.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중, 얼마 전에 스포츠 구단,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그리고 OTT 관련 포드캐스트를 듣다가 변화와 관련된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OTT 플랫폼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전통적인 TV는 이제 덜 보고, 인터넷으로 모든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때문에, 이제 드라마나 방송프로를 본방 사수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본방 사수를 못 하면, TV 재방송을 해주면 재방송 시간에 다시 보거나, 비디오로 녹화를 해놨다가 봤지만, 이젠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에서 얼마든지 거의 무료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꼭 생방송이 의미가 있는걸 꼽자면 바로 스포츠다. 다른 건 모두 다 녹화방송으로 봐도 되지만, 운동경기는 반드시 생방송으로 봐야 하고,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스포츠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은 더욱더 맞는 말이 됐다. 이런 배경을 잘 이용하여, 스포츠 리그나 협회는 생방송 중계 라이센스를 말도 안 되게 비싸게 팔았고, 그래도 방송국들은 앞다퉈서 라이센스를 비싸게 구매했는데, 비싸지만 이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MZ 세대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좋아하는 팀이 경기하면, 운동경기를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하지만, 10대들의 성향은 아주 다르다. 이들이 운동경기를 보는 방법은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한 경기를 생방송으로 다 보지 않고, 여러 경기의 주요 하이라이트만 보는데, 그렇게 해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손흥민 선수 경기를 다 안 보고, 그냥 골 넣는 하이라이트만 봐도 친구들과 “야 너 소니가 5명 재끼고 골 넣는 거 봤지? 대박!”이라는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이 친구들에게는 이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하이라이트는 유튜브나 트위터에 널려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생방송을 보지 않고도 시청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 쪽에서는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스포츠 리그와 방송국은 이걸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했다기 보단, 그냥 보기를 거부했다고 하는 게 맞을것 같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런 움직임이 있었고, 주위의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스포츠 중계 라이센스도 가격을 낮추던지, 무료화하는 방법을 찾자고 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TV에서 NFL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 경기 시작하고 종료하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 4시간 동안 실제로 볼이 플레이되는 시간은 15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3시간 45분은 광고, 작전, 타임아웃 등이다. 우리 같은 구세대는 상관없지만, 젊은 친구들은 이런 걸 다 볼 시간도 없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시간에 다른 거 하고, 경기 끝나면 하이라이트 2분만 보면 친구들과 이 NFL 경기에 관한 대화를 실컷 할 수가 있다.

어떤 e스포츠 종사자가 MLB 임원과 토론하는 걸 전에 봤다. 야구 쪽 분이 e스포츠는 아직 장난이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면서 공격하자, e스포츠 종사자는 여러말 하지 않고, “MLB의 팬은 이제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e스포츠 팬은 이제 태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죠”라는 말로 받아쳤는데, 이 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변화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시대가 바뀌는 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우렁차므로 들으려고 하면 들린다. 실은, 이건 독자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따끔한 경고이자 충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