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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화면을 위한 전쟁

작은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치곤, 내 아이폰에는 앱이 그렇게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폴더도 몇 개 있고, 여기에 여러 개의 앱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설치하고 사용하는 앱들은 화면 1.5개 정도에 다 들어간다. 투자 검토 할 때는 다양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해보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바로 지워버리고, 내 성격상, 나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정기적으로 삭제한다. 지금 내 메인 화면을 보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필수 앱들만 설치되어 있는데, 이 순서나 배치는 수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너무 많은 제품을 검토하고 사용하다 보니, 앱 피로도가 많이 쌓여서, 요샌 웬만하면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회원가입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즉, 새로운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나 같은 사용자에게 그 제품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높은 CAC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그 앱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면 더욱더 힘들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상황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되도록 새로운 제품을 설치하지 않고, 이미 수년 동안 같은 화면 위치에 있는 항상 사용하는 익숙한 제품만 사용할 것이다.

시장에서 인기 있고, 자주 사용하는 앱들의 특징은 모두 다 작은 스마트폰의 첫 번째 화면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지금같이 앱스토어에 앱이 많지 않았던 스마트폰 초기 시절에 설치했기 때문에 첫 화면에 깔려 있고, 첫 화면에 있기 때문에 자주 보고 자주 손가락으로 누르기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앱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이런 앱들이 많다. 하지만, 내 첫 화면에 설치된 대부분의 앱은 그 영광의 자리를 그냥 얻은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 스스로 좋은 앱이고, 자주 사용하는 앱이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앱들을 두 번째 화면으로 밀어버리고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서 첫 화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정말로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가치를 주는 앱들만 첫 번째 화면에 설치되고 배치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제품을 마케팅하고, 활성사용자 수를 늘리고, 리텐션을 올리는 게 요샌 정말 어렵고, 고객획득비용 등이 포함된 마케팅 비용 또한 과거 대비 훨씬 비싸졌다. 아무리 돈을 써서 마케팅해도 앱에 질린 사용자들이 거의 반응을 안 하고, 반응해서 설치해도 회원 가입을 안 한다. 이 어려운 장벽을 넘어서 회원가입까지 했지만 몇 번 해보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 화면이 아닌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특히, 5번째 화면의 어떤 폴더 안에 묻혀 있다면 영원히 사용되지 않다가 언젠가는 그냥 삭제된다.

우리에겐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중 잠자는 8시간을 빼면 16시간이 남고, 일하는 8시간을 또 빼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8시간이 남는다. 이 8시간 동안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등등. 이 시간에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제품은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되려면, 첫 번째 메인 화면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매일 봐야지만 클릭하고, 사용하고, 가끔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을 만드는 창업가라면 이 첫 번째 화면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마법의 순간

얼마 전에 도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축구…플랩…”이라는 말이 들려서 집중해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봤다. 앞뒤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분이 축구(=풋살: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플랩으로 축구를 했다는 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부분이다. 팀이 없어도, 혼자 가도 선수를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소셜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법의 순간을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꽤 대중적이고 생활밀착형인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나는 위에서 말 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봤다. 당근마켓이 지금은 국민 앱이 됐지만,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트래픽이 별로 없었고, 초반에는 성장도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가면서 입소문으로 앱이 바이럴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당근마켓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밀리고 치여서 짜증이 살살 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귀에 익은 깜찍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당근~” 소리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도 몰랐던,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측 못 했던 – 물론, 당시엔 지금 당근마켓의 성장은 상상도 못 했다 – 회사에 우리가 초기 투자를 하고, 그 서비스를 만원 퇴근 버스 안의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그 순간은 정말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세탁특공대도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투자자라서 초반부터 열심히 세특을 애용했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또는 클린토피아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빨리 모든 사람이 세탁특공대를 사용해야할텐데…언제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너무나 낯익은 세탁특공대 유니폼을 입은 요원을 우리 아파트 정문에서 만났고, 혹시 몇 동 몇 호에 가시냐고 물어봤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청담도서관에서 어느 날 플라이북의 키오스크를 발견한 순간도 마법과도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정말로 대중이 사랑하고 내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와서 플라이북 키오스크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느꼈으면 좋겠다.

마케팅 회사

며칠 전에 내가 Stripe 관련 을 쓰면서 완벽한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완벽한 제품과 관련해서 그동안 내가 계속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조금 더 자세히 써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되도록 새로운 앱을 깔지도 않고, 가입도 잘 안 하고 있다(우리 투자사 앱은 제외). 앱스토어가 처음 나왔을 땐 너무나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앱을 깔고, 지우고, 또 깔고, 사용하고, 회원 가입하는걸 반복했는데, 이제 소위 말 하는 app fatigue가 너무 심하게 왔다.

한국도 회원가입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지만, 과거에 한국 서비스 회원 가입하려면 이것저것 요청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회원 가입하다가 지친 경험도 많았고, 이런 불편함이 쌓이다 보니, 그냥 요샌 새로운 앱 설치를 잘 안 한다. 얼마 전에 내 폰에 설치된 앱 숫자를 세어보니, 아이폰 기본 앱을 제외하고 147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분들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이게 그렇게 많은 게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겐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앱이었고, 이후에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앱은 다 지웠다. 하나씩 지우면서 생각해보면, 처음엔 호기심에 설치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제품의 완성도가 별로인 앱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이 제품들의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 보통 이상으로 개발되긴 했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아주 높은 수준의 완벽을 추구하는 그런 제품들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이런 보통 수준의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의 공통점은, 창업 이후 몇 년 동안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고, 좋은 제품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제품 관련 인력과 개발 인력 고용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제품을 깊게 사용해보지 않으면, 꽤 완벽해 보이는 껍데기까진 만든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90% 완성도의 제품은 만든다. 실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90% 완성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진짜 사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정도 수준의 제품을 출시하면,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들이 서서히 등장한다. 하지만, 입소문을 더 바이럴하게 퍼트리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를 우리 제품이 없으면 안 되는 유저로 만들고, 그리고 결국엔 이들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90% 완성도를 95%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97%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100%까지 올리기 위한 노력을 부단하게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제품력에서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회사가 마케팅에서 이 노력을 한다.

회사가 커지고, 브랜드가 소문나고, 제품이 좋아질수록, 더욱더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스타트업은 대부분의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 회사로 변해버린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돈을 쓰기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고, 돈을 태우는 마케팅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바이럴 효과가 마치 우리 제품이 본질적으로 좋아져서 생기는 바이럴 효과로 착각한다. 이렇게 착각하는 순간, 회사는 downward spiral(하강 나선)을 시작하고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현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돈을 쓰는 것 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는 게 훨씬 더 편리하고,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누이 강조하고, 당부하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마케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분야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지만,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편리함에 대해

우리 누님이 미국에 사시는데, 조만간 한국을 잠깐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 파는 마일로 사료를 부탁하기 위해서 아마존 앱을 열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걸 집에서 한 게 아니라, 영동대로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대기를 하는 도중에 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결제했다. 한 3분 만에 모든 걸 처리한 셈인데, 실제로 아마존 앱을 통해서 구매하고 결제 완료한 건 1분도 안 걸렸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항상 내가 하는 거라서 별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후에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들었다. 전에는 – 스마트폰 이전 시절 –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고 싶으면, 일단 저녁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쇼핑몰에 접속해서,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고, 집 주소를 입력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구매 프로세스를 완료했다. 이게 당시에는 시간도 좀 걸렸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기술이 점점 더 좋아졌고, 세상도 좋아졌다. PC와 노트북이 작은 핸드폰으로 대체됐고, 랩탑 화면도 이미 작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서 작동되는 모바일 앱은 낮은 가독성 때문에 앱 자체가 훨씬 더 심플하고 사용성이 좋아졌다. 그리고 결제 관련 기술과 API 또한 좋아져서 그냥 원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들도 많아졌다. 이 모든 개선 사항을 종합한 결과물이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가 다 기술의 발전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많은 이커머스 서비스를 사용해봤는데, 이 중 아마존이 가장 돈을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UI와 UX를 만들었고, 아마도 아마존의 이 프로세스는 점점 더 완벽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쿠팡도 만만치 않게 편리한 모바일 제품을 만들었다. 가끔은 돈을 써서 물건을 사는 과정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느냐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용자에게 친숙한 UI와 UX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제품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더 편리한 경험을 한 사용자들은 절대로 그 전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특성인데, 바쁜 도시의 대로를 건너면서 작은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 사료를 1분 만에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의 이런 경험은 전형적인 비가역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구매 경험이 불편한 서비스를 나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같이 삐삐, 일반 핸드폰, 스마트폰, 그리고 PC, 노트북, 모바일을 모두 다 경험한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접했고, 첫 인터넷 구매와 결제를 쿠팡이나 아마존을 통해서 경험한 세대에겐 이 내용이 그렇게 새롭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의 편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실은, 불편한 서비스가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비가역적인 편리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긴 쉽지 않다. 한 번 편리한 경험을 한 고객은 절대로 불편한 경험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고, 불편한 제품에 대한 시장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와 팔로워

우리는 주로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에 투자하고, 이 회사들이 성장하는 걸 옆에서 꽤 가깝게,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본다. 더 많은 회사에 투자할수록, 더 많은 회사가 망하고, 더 많은 회사가 힘들게 사업을 하는데, 그래도 운 좋게 잘 되는 회사들이 간혹 몇 개씩 나온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이 작은 회사들이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누구나 다 아는 회사가 되려면 여러 가지 실력과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인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고, 비슷한 시장에서 사업하고,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여러 개의 회사가 있는데, 어떤 회사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됐고, 어떤 회사는 누구도 모르게 망했다. 이 회사들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바로 사람, 그것도 창업 후에 어떤 C급 인력을 채용하냐에 달린 것 같다.

채용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우리 대표님들에게 매일 매일 해도 충분치 않다. 우리도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 투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웃긴 게, 이땐 존이나 나나 투자 경험이 없어서, 남들이 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사람을 보고 투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나름의 판단 기준이 생겼고, 제품의 완성도나 시장의 크기를 위주로 회사를 검토한 적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이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투자 기준이 됐던 적도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회사에 투자하면서, 우리도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고, 역시 사람에 투자하는 게 벤처 투자의 핵심이라는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 기준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투자사들이 C급 인재를 채용한 후, 급성장한 회사도 있고, 오히려 더 잘 안 된 케이스도 있다. 잘 안 된 이유는 너무 많아서 여기서 다루진 않겠지만, 잘 된 이유는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잘 된 회사가 채용한 인재들을 보면, 실력도 있지만 리더십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둘 중 굳이 하나를 뽑자면, 나는 실력보단 리더십이 뛰어난 C급 인재들이 회사를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leading by doing 스타일이라서, 본인이 C급 레벨이라고 남들에게 일을 무조건 시키지 않는다. 실은 시킬 수도 없는 게, 이런 분들을 채용하기 시작한 회사는 대부분 내부 프로세스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리더들이 스스로 프로세스를 직접 만들고, 팀원과 동료들에게 – 그리고, 이런 분들은 절대로 팀원들을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지칭하지도 않는다 – 모든걸 가르쳐야 한다. 회사에 오자마자 일을 시키고, 본인이 더 큰 조직에서 더 큰 일을 했다는 걸 보여주고 강조하는 대기업형 인재는 절대로 작은 스타트업에서 리더가 될 수 없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건, 높은 자리일수록 그 자리에 걸맞은 존경과 인정을 스스로 얻어야 하는데, 이건 본인보단 남들이 인정을 해줘야 한다.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좋은 C급 인재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더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석과도 같은 리더십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 투자사에 최근에 새로운 CTO가 왔다. 그런데 그동안 워낙 좋은 커리어를 쌓았고, 가는 곳마다 위에서 말한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좋은 평판이 생겼고,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분과 한 번쯤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분이 새로운 회사의 CTO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뛰어난 개발자들이 스스로 이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문의가 왔다. 내가 아는 많은 좋은 C급 인재들은 본인의 영역에서 이런 채용 파워와 리더십을 가진 분들이다.

리더는 팔로워와 정말 다르다. 실은 우리 투자사 중 좋은 회사도 많지만, 이런 C급 인재분들이 가기엔 내가 봐도 너무 초라한 회사도 많은데, 그중 한 분에게 왜 훨씬 더 좋은 회사들 오퍼를 거절하고 우리 투자사에 왔는지 물어봤다. 이분의 답변과 태도가 굉장히 맘에 들었는데, “솔직히 제품과 기술을 뜯어봤을 때, 생각했던 것 보다 개판이라서 좀 놀라긴 했어요. 하지만, 첫째, 이렇게 개판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둘째, 이렇게 개판인데도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을 한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런 분들은 이미 누군가 잘 만들어 놓은 틀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그 틀에 적응하기보단, 누구도 못 만들었던 틀을 본인이 직접 만드는 걸 더 선호한다. 그래서 리더의 마인드를 가진 분들을 뽑아야 한다. 왜냐하면 리더를 잘 뽑으면, 팔로워들은 그냥 따라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