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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에 대해서 – part 2

이전 글 part 1에서 못 담았던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우리가 시작했던 LA 시장에서도 이런 창업가와 VC들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했던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Snap(구 Snapchat)의 IPO였다.

스냅챗은 아주 LA스러운 창업가 Evan Spiegel에 LA의 Venice Beach에서 창업했고, 2017년 3월 2일에 IPO를 했다. 최근 시가총액은 20조 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IPO 당시 시총보단 한참 작지만, 높을 땐 40조 원이 넘는, 디즈니와 Amgen에 이어 LA 지역에서 세 번째로 시총이 높은 회사였다. 스냅의 IPO가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는데, 가장 큰 건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강조한 ‘자신감’이다. 당시에 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생태계 중 하나였고, 그동안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창업되고 엑싯도 잘했다. 그런데 이 엑싯들을 보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대의 M&A였고, 아주 가끔은 조 단위의 엑싯도 LA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스냅 IPO 이전에는 대부분의 LA 창업가들은 적당히 회사를 키운 후에 수백억 ~ 수천억 원 규모에 더 큰 회사에 파는 엑싯 전략을 기반으로 사업을 했고,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자신감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창업가 Evan이 스냅챗을 수십조 원짜리 회사로 상장시켰을 때, LA 지역의 창업가들은 이 IPO로 인해 굉장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LA에서 수천억 원 ~ 수조 원의 엑싯은 심심찮게 나왔지만, 수십조 원의 IPO도 가능하다는 걸 스냅이 입증해 줬기 때문에, 더 많은 창업가가 “나도 굳이 실리콘밸리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따뜻한 LA에서 잘만 하면 수십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상장시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냅의 IPO 이후엔 더 많은 LA의 창업가가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이왕 시작한 회사를 가능하면 대형 IPO가 가능한 규모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이게 엄청난 긍정적 자신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스냅의 성공적인 IPO로 인해서 다양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몇 가지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일단 LA의 북동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의 창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텍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MIT나 스탠포드 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smart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geeky하고 nerdy 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창업보다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석사/박사 과정까지 하고, 이후에는 교수, 또는 NASA나 JPL(제트추진연구소)에 취직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커리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스냅 IPO 이후에는 칼텍 학생들도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렇게 좋은 창업가들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LA의 창업 생태계에는 엄청난 긍정적인 변화와 자신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또한, 스냅의 IPO로 인해, 굉장히 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스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 IPO로 번 돈은 엄청났고, 이들은 LA 생태계에 계속 돈을 투입하면 더 많은 성공적인 회사들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 들도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신념이 생기면서 계속 대규모 자본이 LA 스타트업에 투입되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스냅의 많은 직원들도 이 IPO로 인해서 백만장자가 됐다. 이들은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었고, 돈도 벌면서 새로운 레벨의 자신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거나, 후배 양성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나 VC 펀드를 설립해서 본인이 사업하면서 남들한테 받았던 도움을 다시 pay it forward 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면서 LA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두터운 창업가와 투자자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자신감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스냅의 IPO로 큰돈을 못 번 직원들도 작은 회사가 초고속 성장해서 IPO까지 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 배움, 그리고 자신감을 다른 스타트업으로 그대로 가져가서 스냅과 같은 성공 케이스를 계속 만들기 시작하면서, LA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신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토스의 IPO가 초대박이 나길 바라고 있고 마켓컬리 같은 회사도 아주 잘 되길 바란다. 참고로, 우린 토스나 마켓컬리 투자자는 아니다.

전력 증강자

미국 사업가들이 자주 하는 말과 비즈니스 관련 글을 보면 가끔 등장하는 어휘 중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군대에서 유래된 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의 정확한 어휘는 ‘전력 증강자’ 또는 ‘전력 승수’이고, 사전적인 의미는 전투 부대에 추가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부대의 전투력을 두드러지게 증가시키고 나아가서 부대의 임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량 혹은 능력이다. 이런 전력 증강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특수부대, GPS와 같은 기술, 또는 육해공군의 연합 등이다.

이 단어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꽤 다양한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2주 전에 미국에서 어떤 창업가와 이야기하다가 이 force multiplier라는 말을 내가 오랜만에 언급됐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절대로 말을 안 한다. 특히나 비행기에서는 조용히 가는 걸 선호해서 옆 사람이랑 눈도 되도록 맞추지 않고, 누가 말을 걸어도 두 번째 질문은 못 하게 아주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편이다. 이날은 어떤 젊은 백인 여성분이 내 옆에 앉았고, 3시간 반 비행을 같이 하게 됐다. 비행 내내 둘 다 각자의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는데 불규칙한 키보드 타격 소리와 속도로 봤을 때 아마도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행 내내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생각이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는지 혼자 계속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실은 나도 뭔가를 쓸 때,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면 이런 행동을 하므로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이분은 이런 행동과 동작이 좀 과격했다.

그래서 이분에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뭐 쓰고 있어요? 잘 안되나 보죠?”라고 물어봤고 그때부터 한 15분 정도 우린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은 시카고 외곽 동네에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서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인데, 그동안 오프라인 가게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다가 이제 미국의 다른 도시나 주에서 구매 문의가 와서 Shopify로 만든 사이트로 최근에 이커머스를 시작한 초보 창업가라고 소개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직원 고용은 아직 생각도 못 하고 있고, 혼자서 제품을 직접 만들고, 혼자서 사이트도 운영하고, 혼자서 포장과 배송도 직접 하고 있는데, 어쨌든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라고 자랑했다. 온라인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공짜이면서 동시에 효율이 좋다고 하는 블로그와 뉴스레터 기반의 콘텐츠 마케팅을 이제 3개월째 하고 있는데, 막상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고, 이렇게 투자하는 에너지와 시간 대비 눈에 띄는 결과가 전혀 안 보여서, 이런 콘텐츠 마케팅이 정말 될까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 이 비행기에서도 다음 주에 발송할 뉴스레터에 실을 내용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격주로 포스팅하는 블로그에 올릴 소재가 이미 다 떨어져서 계속 한숨만 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VC라는 말은 안 했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줬다. 내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를 2007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17년째 쓰고 있는데, 이게 확실히 개인적이든 사업적이든 force multiplier가 될 수 있다는 건 내가 경험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해줬다. 그런데 이게 진정한 전력 승수가 되려면, 최소 2년은 꾸준히 해야 하고,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건 블로그의 첫 2년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force multiplier가 아니라 그 반대인 force divider라는 점도 알려줬다.

전력 승수를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한 첫 2년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무도 이런 콘텐츠가 있다는 걸 모르고, 아무리 좋은 포스팅이라도 이런 블로그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이 기간 동안엔 블로그나 뉴스레터를 활용하는 콘텐츠 마케팅은 전형적인 force divider가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국 복리의 마법은 항상 작동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남들과 계속 공유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동안 꾸준히 만들었던 양질의 콘텐츠는 엄청난 전력 증강자가 될 것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옆 좌석 분과 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했고, 아직은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compounding과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를 무조건 기억하라고 했다.

누구나 다 인생에서, 또는 직장에서 이런 전력 증강자를 원할 것이다. 실은,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누구나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약간의 노력과 꾸준함이 필요할 뿐이다.

당근 생태계

날씨가 더워져서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을 청소하기로 했고, 얼마 전에 에어컨 청소 기사를 찾기 위해 내가 평소 사용하는 우리 투자사 숨고 앱을 열었다. 그동안 에어컨 청소를 몇 번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 에어컨을 오랫동안 고치고 청소했던 동네 업체를 사용했다. 워낙 이 아파트를 잘 아셔서 전화 한 통으로 예약했고, 동호수만 알려주니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하셨다. 이런 점은 편리했지만, 막상 작업을 해보니, 시간도 잘 안 지키고, 작업도 대충 하고, 마무리도 엉성하게 했고, 견적도 불투명한 게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아마도 이렇게 대충 해도, 사람의 관성 때문인지, 계속 이 아파트 일감은 끊기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이후엔 숨고를 통해서 에어컨 청소를 했고, 평점과 후기 위주로 일을 맡겼는데 만족도는 훨씬 높았다.

이번에는 숨고말고 우리 다른 투자사 당근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중고 거래로 시작한 당근이 이젠 full 지역/동네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고, 아직 당근을 통해선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내근처’ 탭으로 들어가 보니 마침 에어컨 청소가 가장 상단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 동네에서 평점과 리뷰가 가장 좋은 기사님에게 연락했다. 각 방에 있는 에어컨 사진을 찍고, 집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는 건 약간 귀찮긴 했지만, 당근 고유의 쉬운 UI/UX 때문에 금방 했고, 몇 시간 후에 견적을 받았다. 동네 업체나 숨고와 견적은 거의 비슷해서 바로 승인했고, 당근 챗을 통해서 날짜와 시간을 예약했다. 작업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대만족이었다. 아주 프로페셔널한 분이었고, 작업 예상 시간을 정확히 지켰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하고 가셨다.

끝날 때 기사님에게 당근 통해서 예약이 많이 들어오냐 물어봤는데, 꽤 놀랍게도 이분의 답변은 “당근 없으면 저 못 살아요.”였다. 원래 여러 플랫폼에도 입점했었고, 네이버를 통한 키워드 광고도 했었는데, 이젠 다른 건 다 안 하고 당근에서만 100% 예약받고 에어컨 청소/수리만 한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작업 요청이 너무 많아서 다 처리를 못 해서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강남 지역에서만 광고할 수 있고, 이 지역에서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이동할 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도 당근의 장점이라고 했다.

이 분과 이야기 하면서 당근의 지역 앱으로서의 확장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약간 뿌듯했던 건, 스트롱이 당근앱을 만든 건 아니지만, 당근이 만든 이 훌륭한 생태계가 형성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다는 점이다. 에어컨 기사님도 가족이 있을 것 같았는데,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지역 기반의 생태계를 우리가 초기 투자했던 당근이 조성하고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확장에 대한 상반된 견해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사람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내용의 을 전에 썼다. 반면에 시장의 크기, 현재 사업의 수치, 기술의 난이도를 과대평가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번 포스팅은 비슷한 내용이면서도 반대 내용의 글이다.

우리 같은 초기 VC와 시리즈 B 이후의 투자를 하는 late stage VC가 회사를 검토할 때 보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한쪽은 미래를 더 많이 보고, 한쪽은 현실을 더 많이 본다는 점일 것이다.

초기 투자자는 오늘의 창업자와 이분이 하는 사업이 5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고, 어떤 분야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을지 열심히 상상해 보고, 그려보고, 그런 큰 그림을 창업팀이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투자를 집행한다. 우리가 하는 투자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은 10대 여성만을 위한 아이템이지만, 결국엔 한국의 모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확장할 것이고, 그 이후엔 글로벌 시장으로도 진출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로 투자한다.

반면에,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하고 매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 이 회사를 검토하는 투자자는 너무 먼 미래를 상상하기보단, 현재 이 회사의 상황과 수치를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한다. 같은 예를 들어보면, 지금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이 한국의 10대, 20대 여성을 위한 아이템이라면, 그냥 현재의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이 회사를 평가하고 투자 기준에 부합하면 투자를 진행한다. 물론, 모든 투자자들은 미래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고 투자하지만, 투자 단계에 따라서 미래의 가능성이 투자 결정의 기준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우 다르다.

최근에 스트롱 내부 워크숍에서 했던 대화인데, 이렇게 초기 스타트업의 확장 가능성만을 보고 투자하는 전략의 타율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한 과거 데이터를 깊이 있게 분석하진 못했고, 실은 이런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우리가 13년 동안 투자하면서 봤던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우리의 투자사는 아니지만, 만났고, 계속 모니터링 했던 스타트업을 통한 간접 경험만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5년 후엔 훨씬 더 큰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다. 이미 미국의 글로벌 벤치마크 회사는 그렇게 크게 확장했다.”라는 생각과 기대를 갖고 투자한 회사는 대부분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

“시장이 너무 작은데,,,그리고 아무리 그 시장을 50% 이상 먹어도 역시 큰 규모가 되긴 힘들어.”라고 판단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는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분야로 확장해서 엄청나게 큰 회사가 됐다.

왜 어떤 회사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는데 확장하지 못하고, 왜 어떤 회사는 이론적으론 더 커질 수 없는데 확장했을까? 결국엔, 이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사람’이 핵심인 것 같다.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한 경우, 이 사람이 확장이 불가능한 시장을 확장했다. 반면에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한 경우, 이 사람이 확장이 확실한 시장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실수를 아예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량적인 분석보단 정성적인 판단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겠다. 결국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과 초기 창업가들을 더욱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연구하면 할수록 과학과 수치 보단, 느낌, 감, 그리고 강한 확신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매일 매일 느끼고 있다.

큰 팔로잉, 큰 책임

Humane이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Humane AI Pin이라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올해 CES에서 꽤 주목받은 제품이다. 애플에서 아이폰 작업에 참여했던 부부 엔지니어가 공동창업했고, 꽤 유명한 투자자들에게 약 3,30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은 미래가 기대되는 스타트업이다.이었다. 나도 이 회사의 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신기했고, 이들이 그리는 화면이 필요 없는 AI 시대가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우리 팀 슬랙에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정도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Humane AI Pin에 대한 사용 후기를 한 유튜버가 올렸다. 그냥 유튜버가 아니라 1,800만 팔로워가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자제품 리뷰어 MKBHD(Marques Brownlee)의 제품 후기였는데, 이 제품에 대한 한 줄 평은 “the worst product I’ve ever reviewed(지금까지 사용해 본 제품 중 최악)”였다.

1,800만 명이 팔로잉하는 유튜버가 이런 리뷰를 올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진 대략 짐작은 했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일단 MKBHD에게 이 제품을 리뷰해달라고 한 Humane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이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해고됐고, 3,3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25분짜리 영상 때문에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고, 어쩌면 정말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관련 내용이 트위터와 레딧을 도배하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한 그룹은 원래 제품 리뷰라는 건 이렇게 객관적으로 하는 게 맞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사용해 봤던 제품 중 가장 좋으면, 그렇게 후기를 올리는 게 맞고, 최악이면 최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반대 그룹은 아무리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팔로워가 많은 유튜버가 이렇게 좋지 않은 후기를 남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뻔히 알면서도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의견이다.

양쪽의 반응을 자세히 들어보고 읽어보면, 솔직히 둘 다 일리가 있다. 만약 나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본다면 나는 솔직한 리뷰는 항상 진리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이런 악평의 리뷰를 당하는 회사의 대표였다면 이 친구를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라는 점이다.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권위 있는 가전제품 매체도 아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욕하는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공학 박사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취미로 방송을 시작한 한 20대 유튜버의 25분짜리 영상 하나가 한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우리 과거 세대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세상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서는, 큰 팔로잉은 곧 권력이고 큰 팔로잉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팔로워들이나 이들이 팔로우하는 크리에이터나 모두 이 점을 명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