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레이저 집중

요새도 초등학교에서 이걸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해가 떠 있으면, 돋보기를 이용해서 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는 실험을 했다. 빛 에너지, 빛의 굴절, 빛의 집중 등과 관련된 과학의 원리를 이런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서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우주에 흩어져 있는 햇빛을 이렇게 한곳에 모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걸 배우고 어린 마음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새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집중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항상 예시로 드는 게 이 돋보기로 종이 태우기 이야기다.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떤 분들이 보면 “라떼는 말이야…” 하는 꼰대 같을 수도 있지만, 사업에서의 집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 이야기를 한다.

한 가지에만 초집중하는 걸 미국인들은 laser focus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돈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도 모두 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손발로 실행은 항상 잘못 하는 게 이 laser focus이기도 하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왜 항상 창업가들은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할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자신을 너무 믿어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면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경우가 있고, 이와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서, 어디서 매출이 나오고, 어떤 제품이 잘 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하는 경우가 있다.

B2C, B2B, B2G,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등…가끔 이 모든 걸 다 하는 인원 10명 이하의 스타트업을 만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이런 회사가 실은 꽤 많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잘 안되는 게 사업인데, 이렇게 많은 일을 굳이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겉으로 보면,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다 똑같기 때문에 그렇게 회사의 자원을 많이 활용하는 게 아니라는 답을 많이 한다. 또는, 다른 일이긴 하지만, 회사의 핵심은 이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그냥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핵심이 아닌 5가지 일에는 대표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할애한다는 내용과 비슷한 답변을 많이 듣는다.

어떤 사업이 잘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은 걸 하는 창업가의 딜레마는, 이렇게 사업을 하면 사업이 망할 때까지도 어떤 사업이 잘될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타이밍이나 트렌드에 따라서 이 중 한 가지가 잘 되는 시점이 오는데, 그러면 그 사업에 집중하고, 또 이게 잘 안되고 다른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으면, 또 그쪽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계속 근근이 먹고 사는 걸 반복하는 사이클에 빠진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분야에서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뾰족함을 절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되지 못해서, 계속 이것저것 벌리기만 하고, 절대로 회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손과 발로 실행을 잘 못 하는 게 레이저 집중이다. 스타트업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단, 덜 해야지만 성공의 확률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집중의 돋보기가 혼란의 렌즈가 되지 않도록 모두 명심하길 바란다.

브랜드 vs. 양적 플랫폼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에 투자를 꽤 많이 하고 있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한데, 에너지바, 자동차 바디킷, 화장품, 서핑 웻수트 등의 자체 제품과 브랜드를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고, 쿠팡과 같이 남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플랫폼 플레이를 하는 이커머스 회사도 있다.

겉으로 보면, 이 두 부류의 회사가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고객에게 바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회사이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생기면서 성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점이 올 것이고, 그 순간이 오면, 조금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해야 한다.

일단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회사의 장점은 말 그대로 자체 브랜드가 있다는 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플레이를 잘해서 고객의 머리에 남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굉장히 파워풀한 사업을 만들 수 있다. 사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이때 강력한 브랜드는 핵폭탄급 무기가 될 수 있다. 고객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를 만들어 놓으면, 이후에 만드는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게 상당히 수월해지고, 마케팅 비용은 내려가고 효율은 올라간다. 그리고 이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가면, 웬만한 경쟁사가 등장해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체 브랜드로만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규모의 성장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니,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운 좋게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단일 제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계속 다양한 SKU를 만들어야 하고, 자기 이름으로 된 브랜드이기 때문에 모든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제조해야한다. 예를 들면, 자기 브랜드로 화장품을 만드는 이커머스 회사면,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을 지속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고, 사업 초반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는 될만한 소수의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견고한 브랜드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조금씩 브랜딩은 되지만, 외형적인 매출 성장은 더디고, 여기서 많은 창업가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투자를 계속 받아야하는데, 이 정도 성장으로는 좋은 조건에 투자를 못 받기 때문이다.

남의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회사들은 약간 다른 고민을 한다. 똑같은 화장품을 예를 들어보면, 시장에는 수백만 가지의 화장품 SKU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제품들을 모두 플랫폼 안으로 입점시키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외형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수수료이기 때문에, 1,000억 원의 거래가 발생해도 회사에 떨어지는 실제 매출은 5% 미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의 제품을 가지고 하는 플랫폼 사업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나보다 더 돈이 많으면, 더 많은 남의 제품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태워서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플랫폼은 명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힘들다. 종합 상사같이 워낙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머리에 남을만한 확고한 브랜딩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이게 맞고, 저게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비즈니스에는 정답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내부, 외부 상황에 맞춰서 유연한 전략을 기반으로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자체 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폭발적인 양적 확장을 해야 하는데, 계속 자기만의 강력한 브랜드로 이 성장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계속 자체 브랜드를 고집할 것인지, 플랫폼 전략도 고려할 것인지, 많이들 고민한다. 반대로, 플랫폼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양적 확장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걸 깨달을 것이다. 마진율도 높고,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나만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 이 또한 많이들 고민한다.

물론, 잘 버티면서 이 순간에 좋은 결정을 한다면, 자체 브랜드만으로 엄청난 성장을 만들 수 있고, 플랫폼 자체가 너무 견고해져서, 이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