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유통채널의 진화

우리가 투자한 많은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가까이서 보면서 배운게 하나 있다면, 온라인으로 뭔가를 파는 게 쉬워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쉬워 보이는 이유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까페24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코딩을 못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고, 여기에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등록해서 판매하면 매출이 발생하니까, 겉으로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빨리 셋업해서 매출을 빨리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쉽게 셋업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건 맞다. 그리고 거의 설립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아마도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부업으로 쇼핑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직접 해 본 분들이라면, 실은 굉장히 어려워서 대부분 얼마 안 가서 포기한다.

만약 이 단계를 지나서 어느 정도의 제품력을 기반으로 약간의 브랜딩이 만들어졌다면,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시도한다. 실은 모든 이커머스 업체들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다른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내가 우리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과의 접점이 생기고, 이들에 대한 데이터도 많이 확보하면서, 계속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신제품이 나와도 성장하고 확장하는 게 수월하다. 그런데 계속 우리가 직접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의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면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사도 계속 출현하고, 이들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다. 가끔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구언효과와 바이럴로만 시장을 다 먹어버리는 회사들이 나오는데, 요샌 이런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다른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입점한다. 식품을 판매하면 마켓 컬리, 화장품이면 올리브영, 그리고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쿠팡 같은 곳들이 이런 대형 플랫폼/마켓플레이스다. 미국이라면 아마존에 대부분 입점할 것이다. 이런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면 노출과 트래픽은 극대화되지만,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이 잘 안 생기고, 우리 브랜드를 고객이 잘 기억 못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예를 들면, 나도 마켓컬리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제품 이름은 잘 안 보고 그냥 마켓컬리에서 구매한 제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더 좋지 않은 건 남의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통행료(=수수료)를 내야하고, 이 수수료 또한 상황에 따라 매우 늦게 받는 경우가 있다. 노출이 잘 되고, 판매가 어느 정도 되지만, 결국엔 돈은 못 벌고, 이 돈 또한 늦게 받는 경우가 있어서 회사의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누가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왔다면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하는 비즈니스가 됐을 것이고, 이런 성장을 이해하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이후에는 계속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 외부 플랫폼과 유통채널을 통해서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 비즈니스의 특성상 주문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초기 제조 비용이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수금은 늦어지기 때문에, 수익성과 현금흐름의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성장을 멈출 순 없기 때문에, 그동안 온라인 위주의 판매를 하다가 결국엔 오프라인 채널로도 확장하는 걸 우린 많이 봤다. 오프라인 채널은 또 다른 어려운 사업이지만, 편의점과 같은 궁극의 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면 외형적인 매출 규모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오프라인 채널은 수익성의 면에서는 주로 최악인 경우가 많다. 수수료가 높고, 원치 않는 프로모션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오프라인은 돈을 버는 목적보단, 브랜드와 제품의 노출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노출이 되면서 브랜딩이 확고해진 제품이 실제로 많이 있고, 이를 통해서 크게 성장하고 투자를 받은 곳도 있지만, 반대로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어떤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발생해서 오프라인 채널에서 완전히 발을 뺀 곳도 있다.

실은 여기까지 와서,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고민하고 있다면, 그래도 월 매출이 수 억 ~ 수십억 원 단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한 제품보단 더 큰 브랜드와 사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오프라인에서 발자취를 계속 넓혀가면서, 여기서 발생한 규모로 원가를 계속 낮추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곳도 있고, 온라인을 오히려 더 강화하면서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어서 계속 이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어떤 D2C 스타트업은 결국 유통채널단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체 공장을 만들어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한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한가지의 정답은 없다.

그래도 내가 봤을 때, D2C 스타트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은 온라인 판매이다. 최고의 제품과 가장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면서 D2C 왕국을 만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곤 있지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평균 실종과 초버티칼화 현상

김난도 교수가 요새 “평균 실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단순한 개념은 아니지만, 그냥 단순하게 설명해보면 이젠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다르고 세분화 돼서 평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점점 빛바래지고 있다는 뜻이다. 평균, 기준, 그리고 통상적인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 평균 실종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인데, 이런 현상은 우리가 만나는 창업가들과 검토하는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런 것도 사업이 돼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작아 보이는 틈새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검토하면서, 이 시장과 제품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시장이 은근히 커서 한번 놀라고, 은근히 크지만 그렇게까지 크진 않은데, 나름대로 충성 고객들이 있어서 의미 있는 규모의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데 두 번 놀란다.

실은 VC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규모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평균이 더욱더 빠르게 실종될 것이고, 이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의 규모는 덜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조 단위의 유니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선 시장의 규모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유니콘이 될 필요는 없고, 모든 VC가 유니콘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다.(물론, 그렇게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는 VC의 투자 전략에 따라서 상이할 수도 있는데,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면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 단계에 투자하면 향 후 유니콘 엑싯이 아니고 적당한 가치에 엑싯을 하더라도 펀드가 달성하고자 하는 수익은 실현할 수 있다. 시장이 세분화되고 초버티칼화 되면서 과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했던 비즈니스들이 의미 있는 규모로 성장해서 앞으로는 1,000억 원 대의 좋은 비즈니스들이 더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개개인의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하나의 큰 버티칼이 여러 개의 작은 초버티칼로 쪼개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큰 버티칼이 거대한 평균인데, 이 거대한 평균이 작아지면서 실종된 부분들이 과거에는 규모가 나오지 않던 작은 버티칼로 가고 있다. 존재하는 건 알았지만, 너무 니치하고 극단적이었던 덕후 시장이 이젠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준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반영해준다.

우리 투자사 중 게코 도마뱀을 키우는 유저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곳이 있는데, 내가 몰랐지만, 생각보다 큰 이 시장 또한 이런 취향의 세분화와 초버티칼화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전에는 개만 생각했는데, 이게 고양이로 세분화되고, 이젠 도마뱀, 앵무새, 뱀 등으로 계속 세분화 되고 있다. 과거에는 누군가 “저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요”라고 하면 그냥 당연히 개를 키우는 거로 생각했는데, 이젠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이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평균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버티칼이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어떤 건 엄청나게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우린 자주 목격한다. 대부분의 컬렉티블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투자자나 창업가는 이런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시장에 대해서 알아볼 때, 지금은 너무 니치한 시장이라서 이 서비스를 사용할 유저가 한정되어 있지만, 과연 앞으로도 작은 초버티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규모가 점점 커져서 꽤 의미 있는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평균이 실종되고 있는 현상을 곱씹어 보면, 어쩌면 이 니치한 시장이 그렇게 니치한 시장이 아닐 수도 있고, 이 초버티칼이 계속 성장하면 역으로 평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나오는 버티칼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초버티칼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초버티칼이 버티칼이 될 수 있고, 이 버티칼이 수평적(=horizontal)으로 확장해서 거대한 평균의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제,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

작년 12월에 산업은행의 KDB넥스트라운드 클로징 행사에 다녀왔다. 이날의 주제는 핀테크였는데 우리가 초기에 투자한 핀다의 이혜민 대표님이 키노트 스피치를 해서 나도 뿌듯했다. 키노트 스피치 끝나고 곧바로 핀테크 관련 패널 토론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나도 패널리스트로 초청해주셨고, 패널을 진행하신 KDB 팀장님이 나한테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핀다는 규제가 엄격한 핀테크 분야의 회사인데, 스트롱은 왜 초기에 투자했는가?” 였다.

내 생각을 나름 정리해서 답은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2분 정도밖에 안 돼서 아주 짤막하게 했는데, 그날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내 생각을 여기서 조금 더 길게 글로 한 번 설명해본다.

핀다를 비롯해서 규제가 엄격한 분야의 극초기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런 분야는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보수적으로 시장을 보고,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실사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부분 투자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 큰 시장을 공략해도 절대로 법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과는 소수의 투자자만 이런 회사에 투자하는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투자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에 투자할 수가 있다. 즉, 좋은 밸류에이션에 투자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회사들이 잘 되면, 더 높은 지분율은 더 높은 수익을 만든다.

그런데 규제가 심한 분야에서는 – 특히 핀테크나 모빌리티 같이 규제가 빡센 분야 –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많은 분들이 갖는다. 나는 이건 절반만 맞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은 5% 미만이다. 규제가 심한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이 규제가 없는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의 20%라고 보면, 성공 확률이 1%인데, 솔직히 이 영역 안에서는 1%나 5%나 비슷하다. 둘 다 낮은 확률이고, 그냥 스타트업은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런 회사들이 성공한다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박 성공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아주 심한 규제가 존재하는 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경쟁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핀테크나 모빌리티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핀테크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우리가 잘 아는 대형 은행들이다. 은행들이 과연 경쟁력이 있냐고 하면, 나는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기술적인 경쟁력은 정말 약하기 때문에 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택시회사들이다. 택시야말로 경쟁력이 전혀 없는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타다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점, 그리고 카카오택시를 출시하자마자 대한민국 택시 산업을 카카오가 접수한 것만 봐도 기술적인 면이나 서비스적인 면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산업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규제 그 자체이다. 규제라는 경쟁력 때문에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규제 때문에 새로운 경쟁사들의 진입이 거의 원천 봉쇄됐기 때문에, 시장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이런 규제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거나, 없어진다면, 경쟁력 없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수조 원 ~ 수십조 원짜리 시장을 다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유니콘이 탄생한다.

이런 이유로 우린 굉장히 힘들고, 어쩌면 불가능하지만, 규제가 강력한 시장의 스타트업을 응원하고 계속 투자한다. 이렇게 투자한 회사들이 망하면, 그냥 일반적으로 망하는 스타트업과 똑같이 손실이 발생하지만, 잘 되면 그냥 잘되는 게 아니라 만루홈런 스타트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규제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과 모빌리티와 같이 돈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산업에는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규제는 현실을 반영해서 이제 은퇴 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2023년도에 살고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자율주행하고 있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말과 마차가 주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규제는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건데, 용감한 스타트업과 용감한 투자자들이 이 변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짧은 기회의 창

창업가들이 투자자와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받는 단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네이버가 이거 하면 어떻게 되나요?” , “카카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요?” , “구글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면 우린 그냥 망하는 게 아닌가요?”와 같은 대형 경쟁사들과 관련된 질문이다. 실은, 당연히 누구나 다 물어볼 수 있는 뻔한 질문이고,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실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뭔가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그래도 대기업이나 경쟁사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는지, 대형 경쟁사에 대해서 어떤 논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런 걸 물어볼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요새 내가 느끼는, 창업가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경쟁은, 대기업에서 우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나 큰 스타트업에서 일을 잘하는 분들이 나와서 우리와 비슷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다. 당근마켓, 쿠팡, 배민, 마켓컬리 같은 회사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고, 본인들이 직접 그 성장에 기여를 했고,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퇴사해서 우리랑 경쟁하는 제품을 만들면, 그땐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참고로,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 초기 멤버들은 카카오에서 로컬/동네 관련 서비스를 만들었던 분들이고, 우리 투자사 세탁특공대의 경쟁사인 런드리고의 초기 멤버분들도 배달의민족 출신이라서 비대면 이커머스와 물류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이렇게 이미 엄청난 경험을 했고, 그리고 이미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철저히 벤치마킹한 후에,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좋은 경쟁 제품을 이분들이 만드는 게, 그냥 일반 대기업이 우리 제품을 카피하는 것 보단 훨씬 더 무서운 상황과 결과를 야기한다.

나는 우리 투자사가 기존 플레이어를 카피해서 창업한 공격적인 사례도 경험해봤고, 반대로 다른 경쟁사들이 우리 투자사를 카피해서 창업한 방어적인 사례도 경험해봤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일단, 위에서 말한 대로 빨리 성장한 스타트업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무기로, 시장은 크지만, 아직 시장의 그렇다 할 선두 주자가 없거나, 또는 선두 주자가 있지만, 본인들이 봤을 때 잘 못 하고 있을 때, 이들이 경쟁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기존 플레이어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기존 플레이어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경험을 많이 해서,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상당히 무서운 진입장벽을 이미 만들었기 때문이다(다만, 직접 해보기 전까진 잘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회사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다고 해서 창업하고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은, 내가 경험한 건 항상 그 반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갖는 큰 장점은, 이런 성장 경험은 주로 VC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더 좋은 조건에 더 큰 펀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펀딩을 잘 받아서 돈이 많으면,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고,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계속 실험하다 보면, 결국엔 더 좋은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여기에다 선발 주자가 이미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후발 주자의 특권이 적용되면, 엄청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펀딩 -> 채용 -> 삽질 -> 또 삽질 -> 펀딩 -> 채용 -> 더 많은 삽질 x 10 -> 엄청난 제품의 탄생, 이런 주기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데, 이 시간이 선발주자의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후발주자가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선발 주자는 이 기회의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미친 듯이 제품을 잘 만들고, 미친 듯이 성장하고, 미친 듯이 전진해야 한다.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경쟁사들이 더 많은 펀딩을 받고,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걸 넋을 놓고 보고만 있다가는, 이런 기회의 창이 닫히면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의 창을 잘 활용하면서 경쟁할 수 있다면, 시장 자체를 같이 키울 수 있고, 결국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엄청난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나는 많이 봤다.

비즈니스 모델

오늘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본다.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결국엔 우리 회사가 돈을 어떻게 벌지에 대한 주제이자, 생존에 대한 주제이다. 초기 스타트업이 안 망하고 계속 사업을 할 수 있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가 외부 투자를 받는 인위적인 방법이고, 또 하나는 내가 직접 돈을 벌어서 회사에 자금을 조달하는 유기적인 방법이다. 당연히 후자의 방법이 가장 좋지만, 무에서 시작하는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외부에서 자금을 투자 받아야 하는데, 되도록 외부 자금을 사용하는 기간을 최소화하면서 내부에서 돈을 버는 시점을 앞당기면 좋다. 물론, 돈 보다는 성장이 중요한 특정 산업이나 서비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분석도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너무나 다양하게 할 수 있는데, 오늘은 B2B랑 B2C의 측면에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단 대부분의 B2B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간단한데, 이 간담 명료함이 B2B 사업의 매력이다. B2B 스타트업은 핵심 제품을 기업고객에게 판매하고, 오롯이 이 제품을 사용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매우 간단하고 정직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물론, 여기서 여러 가지 다른 돈 버는 모델이 나올 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서 파생되는 모델이다. 유지보수, 특정 기능 추가, 특정 프로세스를 반영하는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도입하기 위한 컨설팅 매출 등이 그런 파생 비즈니스 모델이다. 기업 고객을 위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고, 만든 후에도 영업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한 번 팔기 시작하면 꾸준한 매출이 발생하고, 이 시점부턴 우리가 만든 제품으로 돈을 벌어서 회사에 자금을 조달할 수가 있다.

B2C 사업도 B2B와 같이 스타트업이 만드는 핵심 제품을 일반 사용자에게 판매하고, 이 제품을 사용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모델이 있다. 사진 필터 앱, 캘린더 앱, 명상 앱 등 너무나 많은 앱들이 주로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공짜이지만, 더 많은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B2C 앱은 일반 소비자에게 과금을 하므로, 많은 사용료를 받진 못한다. $0.99, $1.99, 많아 봤자 $14.99 정도를 과금하고 있는데, 이런 비즈니스 모델로는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지 않으면 스타트업에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의 매출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B2C 스타트업이 핵심 제품으로 돈을 벌기보단, 이를 통해서 얻은 트래픽, 그리고 트래픽을 통해서 얻은 고객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본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우리가 매일 수십, 수백 번씩 사용하는 카카오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카카오의 첫 번째자, 아직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본 제품은 메신저인 카카오톡인데, 카카오톡은 유료 서비스가 아니다. 누구나 다 무료로 카카오톡을 통해서 친구, 동료, 그리고 지인과 대화할 수 있다. 카카오는 핵심 제품인 카카오톡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카톡을 통해서 얻은 트래픽과 고객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다양한 수익원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엄청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네이버도 비슷하다. 네이버의 핵심 제품은 검색엔진인데, 검색엔진은 무료다. 네이버는 메인 제품을 통해서 얻은 트래픽과 데이터를 활용해서 검색광고라는 엄청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그럼 B2B 사업같이 핵심 제품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게 더 바람직할까, 아니면 많은 B2C 사업같이 핵심 제품 자체가 아닌, 이를 활용한 다양한 부수적인 제품이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게 바람직한 건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하지만, 핵심 제품 기반이든 부수적인 제품 기반이든, 언젠가는 외부 자본의 유입 없이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서 회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는 건 모든 스타트업이 풀어야 하는 지상과제이다. 결국엔, 이게 안 되면 계속 힘들게 외부 투자만 받다가 그냥 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