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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된 시장은 없다

수년 동안 Guy Raz의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HIBT)’를 운동할 때, 그리고 이동할 때 듣고 있다. 전에 내가 이런 포스팅을 했는데, 이분 같이 팟캐스트 진행을 잘하는 사람을 나는 못 만났다. 얼마나 잘하냐 하면, 내가 Guy의 톤, 그리고 질문 유형을 외워서, 누군가를 인터뷰하거나, 우리 포트폴리오 미팅에서 fireside chat을 할 때마다 비슷하게 또는 그대로 적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Liquid Death의 창업자 Mike Cessario의 HIBT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역시 명 팟캐스트였다. 마케팅, 컨슈머 제품, D2C, 포화된 시장 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Liquid Death는 세상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고, 포화됐고, 공룡과 같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7년 전에 창업해서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 하는 스타트업인데, 바로 물을 파는 회사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물처럼 플라스틱이나 유리병이 아닌 캔에 담아서 팔고,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마치 술이나 에너지 드링크와 같은 디자인과 패키징을 사용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냐 하면, 이 창업자가 어느 날 야외 음악 축제에 갔었는데, 이 축제를 스폰서하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 Monster Energy가 현란하고 화려한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 캔에 물을 넣어서 제공하는 걸 보고 번뜩이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물이지만, 맥주나 에너지음료와 같은 캔에 넣어서 판매하면, 이걸 마시는 사람들은 마치 술을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주 재미없고 심심한 물도 재미있고 쿨 해 질 수있다는 걸 그 축제에서 보고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Liquid Death는 창업 첫날부터 본인들은 물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아주 기발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건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라고 포지셔닝을 했는데, 이 전략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물이 아니라서 물이 알프스 산맥에서 떠왔던, 미국의 호수에서 떠왔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이크 사장에게 중요한 건 브랜드였고, Liquid Death라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캔을 따서 이 물을 마실 때 어떤 느낌을 소비자들이 받을지가 이들이 스타트업으로써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우리도 D2C와 소비재 스타트업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다. 요샌 이 분야를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피하지만, 우린 꾸준하게 검토하고 투자하고 있다. 이 시장을 단순히 대규모 자본이 없으면 마케팅도 못하고,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해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못한다. 이미 웬만한 소비재 시장은 돈이 너무나 많은 대기업들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재치 있고 창의적인 브랜딩이 이기는 시장이라고 보면 나는 스타트업이 충분히 대기업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Liquid Death도 물의 성분, 생산, 보틀링, 공급망 등으로 대기업과 겨루는 건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의 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코카콜라가 150년 걸려서 만든 거대한 시장을 아주 재치 있고 튀는 브랜딩으로 5년 만에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5년 만에 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 팟캐스트의 핵심 주제는 포화된 시장이다. 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포화된 시장 중 하나가 바로 물 시장인데, 이 시장에서 Liquid Death는 엄청난 브랜드를 만들면서 성장했다.

포화된 시장이라는 건 없다. 단지 포화된 우리의 편견, 의심, 그리고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자본의 해자(垓字)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플래쉬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슈퍼 파워는 뭔지 물어보자 “돈이 많다”라고 답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브루스 웨인의 차별점, 즉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해자(垓字)는, 바로 돈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을 때, 자본 자체를 가장 큰 차별화 전략으로 만들면서 자본의 해자화를 추구했던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돈을 써서 고객을 획득하고, 이들을 락인(lock-in)한 후에 돈을 벌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들은 특별한 기술적 또는 비즈니스적인 차별점 보단, 돈 자체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플랫폼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은데 당근이나 숨고와 같은 회사들이 좋은 조건에 펀딩을 잘 받고 초기에는 자본을 무기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창업 후 몇 년 동안은 매출이나 수익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온보딩시키는데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고, 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사용자들이 확보되어야 했고, 단기간 내에 수많은 경쟁사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다. 퍼포먼스 마케팅, 그로쓰 마케팅과 같은 방법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실은 그냥 돈을 엄청나게 많이 써서 사용자들을 구매한 것이다.

잠재고객이 수천 만명 존재하는 소비자 플랫폼엔 이런 자본을 앞세운 대량 고객 획득 전략은 잘만 실행하면 단기간에 많은 유저를 온보딩 시켜서 수요와 공급의 바퀴를 돌릴 수 있고, 바퀴의 마찰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효율적으로 돈을 쓰면, 결국 모든 경쟁사를 따돌리고, 가만히 놔둬도 마찰 없이 영구적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플랫폼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되면 웬만하면 다른 경쟁사가 넘볼 수도 없는 거대한 매출을 만드는 사업이 완성된다. 나는 이 단계까지 온 대표적인 기업이 쿠팡이라고 생각한다. 토스도 이 단계에 꽤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은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유효하지 못 한 전략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돈으로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계속 투자받아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유동성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도 전에 이렇게 돈을 써서 몸집을 키우는 기형적인 전략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말로 플랫폼 경험이 많은 창업팀이 정말로 매력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라면, 투자를 받는 게 매우 힘들어졌다.

대신, 많은 창업가들이 이젠 몸집을 키우기 전에 돈부터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일단 사용자들을 모으면, 그다음에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서, 일단 돈부터 벌고, 남는 돈으로 사용자를 더 모으자는 관점에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요샌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바뀐 생각과 관점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방법이나 전략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 기업은 돈을 벌고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경기가 너무 좋고 필요하면 돈이 항상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성장에 눈이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자본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아주 적절하고 조심스럽게 구사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과거와같이 묻지마 마케팅 전략은 지양하는게 맞지만, 결국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기름은 사용자이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해서 이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지 못하게 락인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작업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도 규모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읽으면 역시 또 혼란스러울 것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동시에 돈도 태워서 사용자를 계속 확보하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조언을 구한다면, 지금같이 돈이 메마른 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게 맞지만, 플랫폼을 운영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고, 불경기 동안 큰 자본이 없어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건 바람직하지만, 결국 다시 크게 성장하기 위해선 자본이 무기가 되는 전략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다.

작은 가게에서 초심을 배우다

웬만하면 이 공간에서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지 않는데, 가끔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을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오늘도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다. 2주 전에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었다. 들기름 막국수의 원조이자,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이 된 용인 고기리막국수의 김윤정 대표가 쓴 책이다.

나는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는 적은 거의 없고, 새로운 식당도 거의 안 간다. 아무리 맛있어도 굳이 멀리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먹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인생철학이 있고, 새로운 곳을 가는 대신 그냥 가던 식당을 더 가서 단골이 되자는 전략으로 산다. 하지만, 사업의 관점에서는 식당과 이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스트롱에서도 우린 먹고 마시는 사업에 투자를 꽤 했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다 해도, 우린 계속 먹고 마셔야 하므로 투자 관점에서도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단순 재미를 넘어, 감명 깊게 읽었다. 실은 그동안 내가 수많은 식당을 다니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나는 혹시 나중에 식당을 창업하면 절대로 여기같이 하지 말고, 꼭 이렇게 해야지”라고 느꼈던 모든 좋은 점들을 고기리막국수는 이미 12년째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손님뿐만 아니라, 식당 종업원들까지 모두 생각하는 작은 디테일에 대한 두 부부 창업가의 – 남편분이 쉐프 – 집착이 12년 동안 변하지 않고 전국의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내가 아는 좋은 스타트업 창업가분들이 사업을 하는 비슷한 태도와 생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고기리막국수 식당 자체를 하나의 중견 비즈니스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책에 대한 모든 내용을 쓰진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길 권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좋은 책, 좋은 식당, 진심으로 가득 찬 경영인을 직접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더 뿌듯했던 건 투자자로서의 내 초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과연 몇 개의 막국수 식당이 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순 없지만, 수백 개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중 이미 유명한 곳도 많고, 돈을 잘 버는 곳도 많은데, 또 새로운 막국수 식당이 생겼을 때 과연 이 식당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연 매출 30억 원 이상 하는 대형 플레이어로 성장할지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이미 막국수를 잘하는 식당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기리막국수는 이걸 너무나 잘하고 있다. 아무리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면 충분히 성공하는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엔 어떤 걸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제일 중요하다.

누구나 다 뭔가를 시작할 땐 초심이라는 게 매우 강하게 작용하지만, 같은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경험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이게 점점 없어진다. 나도 꾸준함과 반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투자를 계속하고 그동안 수천 명의 창업가들을 만나보니 초기 투자자의 초심이 많이 닳아 없어졌다. 그래서 요새 창업가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과거에 안 된 사업과 비슷한 사업을 검토하면 이것도 안 될 거라는 편견을 갖게 되고, 이 창업가가 5년 후에 어떤 사업을 할 사람이 될지 시각화하지 않고, 현재 하는 사업을 기반으로 이 창업가를 판단하고, 이미 잘하는 경쟁사가 많은 분야에 뛰어든 창업가를 보면 후발주자이고,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대형 플레이어를 못 이길 거라는 편견이 어느새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고기리막국수라는 작은 가게에서 나는 초심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절대로 안 됐던 비즈니스라도 누군가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고, 아무리 대형 기업들이 이미 진출한 분야라도 누군가 여기서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안 될 이유 백만 가지 보단, 될 이유 하나로 소신 있게 투자하던 내 초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래도 나는 고기리막국수 식당에 직접 가진 않을 것 같다. 멀리까지 가서 웨이팅을 감수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내 철학 또한 지킬 것이다. 🙂

B2B SaaS 영업의 시스템화

요샌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서 B2B와 B2B SaaS 창업가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시장이 바뀌고 있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전에 한 번 공유한 적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이렇게 한국의 B2B SaaS 시장도 커지면서 성숙해질 것이고, 이건 단지 시작일뿐이다. 우리도 5년 내로 B2B SaaS 시장이 상당히 커질 것이고, 이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도 탄생할 것이고, 아마도 일본의 SaaS 시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B2C 시장과 B2B 시장은 같으면서도 다른데,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제품을 팔기 위한 영업 방법이 아닐까 싶다.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B2C 제품은 최종 사용자를 대상으로 따로 영업할 필요는 없고, 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매스마케팅을 해서 확률적으로 고객을 획득한다. 공략할 고객군을 정의하고, 여기에 전달할 마케팅 메시지나 캠페인을 만들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마케팅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퍼포먼스를 측정하면서, 여기서 배운 점들을 지속적으로 체계화하고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제품을 사용할만한 고객군이 워낙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홍보할 수가 없고, 고객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전통적으로 고객 한 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매출이 작기 때문에, 이렇게 시스템을 활용한 GTM(Go To Market)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B2B 제품은 모든 게 이와 반대이다. 기업에서 사용할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을 사용할만한 고객이 한정되어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홍보할 수 있고, 이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알 수 있고, 고객 한 명이 발생시킬 수 있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시스템을 활용한 전략 보단, 직접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가장 좋은 마케팅이자 판매 수단이다. 특히나, 시장에서 새로 출시된 제품이라면,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입증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잠재 고객을 찾아다니면서 제품을 영업하면서 홍보해야 한다.

B2B 제품의 영업은 어렵다. 기업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결재도 법인에서 이뤄지지만, 판매자와 구매자 최초의 접점은 사람이고, 마지막 접점도 사람과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 길면 1년이 훌쩍 넘게 걸릴 수 있는 이 영업 과정이 아마도 B2C와 B2B 사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영업 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많은 B2B SaaS 제품이 기업의 핵심 프로세스를 건드리고,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의사결정 체제를 180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많은 내부 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정말 힘들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어떤 제품은 top-down 영업 방식으로 사장만 설득하면 된다. 이 경우엔 주로 위에서 강압적으로 B2B SaaS 제품을 사용하라고 실무진을 압박한다. 하지만, 기업이 점점 더 수평적인 조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장이 오너가 아닌 이상 이런 방식은 요샌 잘 안 통한다. 대부분의 영업은 top-down과 bottom-up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지급에 대해 결정을 하는 사장과 경영진은 당연히 설득해야 하고, 이 제품을 실제로 사용할 현업도 설득해야 한다. 이런 영업이 실은 가장 전략적이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나도 과거에 제조업을 대상으로 B2B 소프트웨어 영업을 했었는데, 1년이 넘게 걸린 경우도 있었다.

ERP와 같이 전사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SaaS 제품은 당장 live로 적용하지 않고, PoC(Proof of Concept)라는 테스트 과정을 선호하는 고객사도 있는데, 이것만 영업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PoC를 한다고 실제로 도입하는 경우도 절반밖에 안 된다.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 때문에, 우린 B2B 영업은 시스템화해서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 가구 회사에 B2B SaaS 제품을 잘 판매했다고 해서, 동일한 영업 방식으로 다른 가구 회사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고,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영업해야 한다. 그래서 B2B 영업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B2B 회사들이 J 커브를 그리면서 성장하는 게 참 힘들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영업 프로세스를 체계화해서 계속 다른 잠재 고객사에 반복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도입과 동시에 바로 subscription 모델을 시작할 수 있다면, B2B SaaS 분야에서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균 실종과 초버티칼화 현상

김난도 교수가 요새 “평균 실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단순한 개념은 아니지만, 그냥 단순하게 설명해보면 이젠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다르고 세분화 돼서 평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점점 빛바래지고 있다는 뜻이다. 평균, 기준, 그리고 통상적인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 평균 실종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인데, 이런 현상은 우리가 만나는 창업가들과 검토하는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런 것도 사업이 돼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작아 보이는 틈새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검토하면서, 이 시장과 제품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시장이 은근히 커서 한번 놀라고, 은근히 크지만 그렇게까지 크진 않은데, 나름대로 충성 고객들이 있어서 의미 있는 규모의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데 두 번 놀란다.

실은 VC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규모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평균이 더욱더 빠르게 실종될 것이고, 이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의 규모는 덜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조 단위의 유니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선 시장의 규모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유니콘이 될 필요는 없고, 모든 VC가 유니콘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다.(물론, 그렇게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는 VC의 투자 전략에 따라서 상이할 수도 있는데,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면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 단계에 투자하면 향 후 유니콘 엑싯이 아니고 적당한 가치에 엑싯을 하더라도 펀드가 달성하고자 하는 수익은 실현할 수 있다. 시장이 세분화되고 초버티칼화 되면서 과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했던 비즈니스들이 의미 있는 규모로 성장해서 앞으로는 1,000억 원 대의 좋은 비즈니스들이 더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개개인의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하나의 큰 버티칼이 여러 개의 작은 초버티칼로 쪼개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큰 버티칼이 거대한 평균인데, 이 거대한 평균이 작아지면서 실종된 부분들이 과거에는 규모가 나오지 않던 작은 버티칼로 가고 있다. 존재하는 건 알았지만, 너무 니치하고 극단적이었던 덕후 시장이 이젠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준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반영해준다.

우리 투자사 중 게코 도마뱀을 키우는 유저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곳이 있는데, 내가 몰랐지만, 생각보다 큰 이 시장 또한 이런 취향의 세분화와 초버티칼화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전에는 개만 생각했는데, 이게 고양이로 세분화되고, 이젠 도마뱀, 앵무새, 뱀 등으로 계속 세분화 되고 있다. 과거에는 누군가 “저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요”라고 하면 그냥 당연히 개를 키우는 거로 생각했는데, 이젠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이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평균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버티칼이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어떤 건 엄청나게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우린 자주 목격한다. 대부분의 컬렉티블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투자자나 창업가는 이런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시장에 대해서 알아볼 때, 지금은 너무 니치한 시장이라서 이 서비스를 사용할 유저가 한정되어 있지만, 과연 앞으로도 작은 초버티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규모가 점점 커져서 꽤 의미 있는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평균이 실종되고 있는 현상을 곱씹어 보면, 어쩌면 이 니치한 시장이 그렇게 니치한 시장이 아닐 수도 있고, 이 초버티칼이 계속 성장하면 역으로 평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나오는 버티칼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초버티칼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초버티칼이 버티칼이 될 수 있고, 이 버티칼이 수평적(=horizontal)으로 확장해서 거대한 평균의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