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이 공간에서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지 않는데, 가끔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을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오늘도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다. 2주 전에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었다. 들기름 막국수의 원조이자,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이 된 용인 고기리막국수의 김윤정 대표가 쓴 책이다.

나는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는 적은 거의 없고, 새로운 식당도 거의 안 간다. 아무리 맛있어도 굳이 멀리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먹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인생철학이 있고, 새로운 곳을 가는 대신 그냥 가던 식당을 더 가서 단골이 되자는 전략으로 산다. 하지만, 사업의 관점에서는 식당과 이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스트롱에서도 우린 먹고 마시는 사업에 투자를 꽤 했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다 해도, 우린 계속 먹고 마셔야 하므로 투자 관점에서도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단순 재미를 넘어, 감명 깊게 읽었다. 실은 그동안 내가 수많은 식당을 다니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나는 혹시 나중에 식당을 창업하면 절대로 여기같이 하지 말고, 꼭 이렇게 해야지”라고 느꼈던 모든 좋은 점들을 고기리막국수는 이미 12년째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손님뿐만 아니라, 식당 종업원들까지 모두 생각하는 작은 디테일에 대한 두 부부 창업가의 – 남편분이 쉐프 – 집착이 12년 동안 변하지 않고 전국의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내가 아는 좋은 스타트업 창업가분들이 사업을 하는 비슷한 태도와 생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고기리막국수 식당 자체를 하나의 중견 비즈니스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책에 대한 모든 내용을 쓰진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길 권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좋은 책, 좋은 식당, 진심으로 가득 찬 경영인을 직접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더 뿌듯했던 건 투자자로서의 내 초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과연 몇 개의 막국수 식당이 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순 없지만, 수백 개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중 이미 유명한 곳도 많고, 돈을 잘 버는 곳도 많은데, 또 새로운 막국수 식당이 생겼을 때 과연 이 식당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연 매출 30억 원 이상 하는 대형 플레이어로 성장할지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이미 막국수를 잘하는 식당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기리막국수는 이걸 너무나 잘하고 있다. 아무리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면 충분히 성공하는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엔 어떤 걸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제일 중요하다.

누구나 다 뭔가를 시작할 땐 초심이라는 게 매우 강하게 작용하지만, 같은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경험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이게 점점 없어진다. 나도 꾸준함과 반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투자를 계속하고 그동안 수천 명의 창업가들을 만나보니 초기 투자자의 초심이 많이 닳아 없어졌다. 그래서 요새 창업가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과거에 안 된 사업과 비슷한 사업을 검토하면 이것도 안 될 거라는 편견을 갖게 되고, 이 창업가가 5년 후에 어떤 사업을 할 사람이 될지 시각화하지 않고, 현재 하는 사업을 기반으로 이 창업가를 판단하고, 이미 잘하는 경쟁사가 많은 분야에 뛰어든 창업가를 보면 후발주자이고,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대형 플레이어를 못 이길 거라는 편견이 어느새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고기리막국수라는 작은 가게에서 나는 초심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절대로 안 됐던 비즈니스라도 누군가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고, 아무리 대형 기업들이 이미 진출한 분야라도 누군가 여기서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안 될 이유 백만 가지 보단, 될 이유 하나로 소신 있게 투자하던 내 초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래도 나는 고기리막국수 식당에 직접 가진 않을 것 같다. 멀리까지 가서 웨이팅을 감수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내 철학 또한 지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