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강연 요청이 꽤 들어온다. 다양한 행사와 대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발표나 강연에 대한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데, 99% 다 거절한다. 이런 대중 앞에서 발표와 강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에 우리 집안 살림(=스트롱)에 신경 써야 하고, 내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하고, 간혹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행사나 강연이 있는데, 미래 창업가인 학생들이 청중일 때, 그리고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행사일 때이다.

얼마 전에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소규모 행사에 참여했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 행사였는데, 피곤했지만 집에 올 때 매우 뿌듯했다. 이 행사에서 스타트업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팅할 때 좋은 창업가들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만이 가진 시그널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상당히 좋은 질문이고, 좋은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바로 이분에게 답을 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최근에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에 바로 공유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과 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린 엄청나게 많은 창업가들을 만난다. 스트롱에선 일 년에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만나는데, 이 중 20~30개에 투자하니까, 우린 웬만하면 잘 투자하지 않는 VC이고, 대부분의 VC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투자자들이 특정 회사에 왜 투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선 모두 도사가 된다. 그 시장은 작아서 안 된다. 그 사업은 이미 과거에 많은 창업가들이 시도해 봤는데 안 됐다. 그 분야에는 이미 경쟁사가 많다. 내가 듣기론 네이버가 똑같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창업가는 학벌이 안 좋다. 그 창업가는 과거에 실패의 경험이 너무 크다. 특정 회사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러한 이유는 백만 가지 정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은 모두 논리적이고 똑똑해 보인다.

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들인 쿠팡, 배민, 토스, 당근마켓도 위에서 말한 이유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초기에 투자하지 않았다. 나도 여러 가지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들이 엄청나게 큰 기업이 되는 걸 자주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안 될 만한 백만 가지 이유를 찾지 말고, 될만한 이유 한 가지만 찾아서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창업가들을 찾고 싶으면, 여러 가지 잡음을 무시하고, 딱 한 가지의 확실한 시그널을 찾으면 됩니다.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가 아니라는 백만 가지의 시그널(=잡음)이 보일 텐데요,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라는 딱 한 개의 시그널입니다. 이게 있다면, 여기에 베팅하는 게 우리 전략인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투자하지 않기 위한 이유는 백만 가지가 있다. 그리고 백만 가지 모든 이유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똑똑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꼭 해야 하는 딱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면, 우린 여기에 베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