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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같이 좋은 팀워크에 대해서

기술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고, 산업이 바뀌어도, 내가 굳게 믿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결국엔 사람이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투자를 좀 해 본 분들은 전반적으로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실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나쁜 팀이 하면 잘 안되고, 아무리 나쁜 아이템이라도 좋은 팀이 하면 잘 되는 걸 나는 정말 많이 봤다. 그리고 같은 시장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도 어떤 회사는 잘 되고, 어떤 회사는 망하는데, 이 둘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결국, 이걸 하는 사람이라는 게 내가 매번 내리는 결론이자, 매번 맞게 판명되는 결론이다.

그래서 우린 일인 창업가보단 팀에 열광한다. 요새 맥미니로 코파운더와 직원을 대체하는 AI 창업가들이 정말 많아졌지만, 나는 결국엔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고차원적이고 미묘한 예술이라서 혼자 하면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일인 창업가가 AI 에이전트와 할 수 있지만, 결국엔 사람을 모아서 팀을 만들어야지 좋은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우린 그냥 팀보단 좋은 팀에 열광한다. 똑똑하고, 에너지 넘치고, 경쟁심에 불타고,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 할 수 있는 팀을 만나면 나도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같이 일할 수만 있다면 VC로서 그 어떤 위험, 귀찮음,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만드는 그런 팀을 만나고, 이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건 VC의 가장 큰 특권이다. 내가 존경하는 VC 중 하나인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가 공개적으로 항상 이야기하는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팀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라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럼 어떤 팀을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팀이 좋은 팀인가?

우리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건 이런 팀을 만드는 창업가를 만나는 것이다. VC마다 생각하는 좋은 팀의 기준과 이미지는 다를 텐데, 나는 좋은 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이들의 관계이다. 관계의 정의도 광범위한데, 이 중에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들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리고 얼마 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는지이다. 이건 그냥 단순한 예시인데 –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단순화하긴 어렵다 –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교에서 몇 년간 룸메이트를 했고, 이후 같이 창업했거나 같은 직장에서 수년 동안 동료로 근무한 팀은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팀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 다 똑똑하고, 일 잘하고, 에너지 넘치는 건 기본이다.

이런 분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고, 서로에 대해 최고의 면과 최악의 면을 모두 봤고 경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또 같이 창업해서 지지고 볶기를 10년 이상 하길 선택했다면, 이 팀워크는 잘 안 깨지고 오래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팀을 선호한다.

아니, “선호했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요샌 내 기준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같이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던 팀은 기본적으론 좋은 팀이라서 적극적으로 만나고 검토하는 내 기준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이 팀이 이전에 같이 했던 사업 성공의 여부가 내 기준에 새로 추가됐다. 조 단위의 회사를 만들었든, IPO를 했든, 아주 작은 엑싯을 했든, 그 성공의 크기보단, 실제로 이 팀이 같이 개고생하면서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서 팔아봤고, 그 결과로 매출을 만들었는지가 내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다. 만약에 이런 경험이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창업과 사업을 통해서 그 성공의 경험이 증폭되고, 돈을 벌겠다는 독사 같은 의지가 점점 더 강해지는 팀이라면 나는 이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는 팀이라면, 이젠 나는 이런 팀은 좋은 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런 분들이 계속 뭔가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 내 생각은, 이런 분들은 계속 같이 뭔가를 할 확률은 높지만, 여전히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건 힘들 것이라는 방향으로 굳어가고 있다.

이런 팀은 인간적인 팀워크는 매우 좋다. 정말로 가족 같은 팀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꽝일 확률이 높다.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고, 너무 오랫동안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팀원들이 즐기는 건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같이 풀어가는 과정보단 그냥 서로 함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면서 같이 일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정말로 가족 같은 팀워크를 자랑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족은 돈을 벌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팀원분들이 서로 친한 건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서로 편해서 같이 일하는 것을 즐기는 것보단, 서로 좀 불편해도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그냥 팀원들과 함께하는 게 좋아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지만, 의미 있는 매출이나 사업을 한 번도 못 만들어 봤다면, 이건 내가 원하는 투자할 만한 좋은 팀, 또는 투자할 만한 좋은 팀워크가 아니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매출의 압박이 없는 연구소를 같이 차리든지, 아니면 아예 가족이 되는 걸 권장한다.

새로운 세상인가, 새로운 거품인가?

CB Insights의 State of Venture는 아마도 전 세계 VC와 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가장 필수적으로 읽는 보고서일 것이다. 나도 분기마다 이 보고서를 읽고 지난 분기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하고, 우리가 투자하는 한국 시장 관련 내용이 있으면 찾아서 읽어본다. 한 분기를 정리하는 보고서라서 내용이 다양하지만,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어디로 투입되는지 잘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2026년 Q1 보고서의 수치를 보고 내가 느낀 건 기대감과 두려움 모두인데, 두려움에 조금 더 가까운 감정이다. Q1에 전 세계 시장에 투입된 벤처투자금은 자그마치 $285.5B이다. 바로 이전 분기인 2025년 Q4의 펀딩 $142.3B과 비교해보면 2배 높은 금액이고, 작년 전체 투입된 금액이 $470.2B인데, 앞으로 남은 분기도 Q1과 비슷하다고 가정해보면, 올해 전체 펀딩은 $1.1T로 마무리될 것이다. 작년 대비 2배 이상이며, 엄청난 숫자이다.

이렇게 겉만 보면 정말 화려한 성장이고 몇 년 동안 침체됐던 벤처투자 시장이 가파른 곡선으로 반등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숫자의 함정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다.

가장 먼저 내 눈길을 끈 숫자는 $122B인데, 전체 투자금 $285.5B 중 $122B가 OpenAI라는 한 기업에 투자됐다. 올해 Q1 전 세계 벤처 투자금 중 절반이 약간 못 되는 43%가 한 회사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놀랐던 두 번째 수치는, OpenAI, Anthropic, Waymo 그리고 xAI, 총 4개의 회사가 $175.5B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Q1 전체 투자금의 절반이 넘는 61%를 이 4개의 회사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는데, Q1 전체 투자건수가 6,598건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더 놀랍다. 투자받은 회사 중 단 0.06%가 돈의 61%를 가져간 것이다.

물론, 투자 시장에도 파레토의 법칙은 항상 존재해왔다. 소수의 빅 딜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현상은 그렇게 놀랍지 않지만, 이번 분기에 내가 더욱더 놀랐던 이유는 그 차이가 너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적 간극도 더 벌어지고 있다. 돈의 싸움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미국의 AI 회사들이 전 세계 그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다. Q1 투자금의 83%를 미국 회사들이 가져갔는데, 투자건수로 따져보면 미국 회사들은 투자받은 전체 회사의 40% 정도밖에 안 된다. 평균투자금을 봐도 미국이 한참 앞서가는데, 이건 이미 이야기한 거대 기업들의 거대 펀딩이 평균을 왜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평균 투자금은 $84M, 글로벌 평균은 $43M, 아시아 평균은 $12M, 그리고 한국 평균은 $5.3M인데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보면 16배의 차이가 난다. 마침,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GDP의 차이도 15배 정도다.

또 한 가지 놀랐던 수치는 유니콘 기업의 밸류에이션인데, 2025년 Q4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이 $2.2T이었다. SpaceX, OpenAI, 바이트댄스와 같은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 $2.2T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약간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그런데 3개월 후인 2026년 Q1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은 $3.5T로 60%나 더 커졌다.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이 한국 GDP의 거의 두 배가 된 셈인데, 나는 솔직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기술이 중요하고, 이 회사들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지만, 그게 아니라 이게 거품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

이렇게 소수의 AI 관련 회사들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추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작을 뿐이다. 한국도 2026년 Q1 수치를 보면 20개의 회사가 거의 1조 원의 투자금을 흡수했는데, 이는 투자 받은 전체 회사의 6.6%가 전체 펀딩의 40%를 가져간 셈이다. 미국만큼 양극화되진 않았지만, 당분간 한국에서도 이런 미국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히 한국 수치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작은 투자금이 많은 회사에 투자되는 추세가 지난 몇 년 동안 유지되다가 2026년 Q1부터 미국같이 큰 투자금이 소수의 회사에 집중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는 역시 AI와 관련된 방향 전환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도 큰 회사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한국 투자자들은 그냥 미국을 따라가고, 투자 전략은 없고 시장에 FOMO만 가득 찼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6월 중순에 SpaceX가 $1.5T ~ $2T에 IPO를 한다고 한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작년에 거의 8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기업의 가치가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아직 나의 작은 뇌는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에 OpenAI와 앤쓰로픽이 각각 $1T에 IPO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나의 작은 뇌가 프로세싱 못 하고 있다. 미국의 상장 시장이 아무리 커도 이 거대한 IPO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비슷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더 작은 시총으로 IPO 하는 회사들을 위한 시장의 관심과 식욕이 이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IPO들이 모두 성공해서 이 회사들의 가치가 증명된다면, 우리 앞에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 모두 한 단계 올라가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것인데, 이건 생각만 해도 기대되고 흥분된다. 하지만, 만약에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우리 모두의 앞에는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의 벤처 겨울이 따뜻했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이 벤처 생태계에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이 올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까, 아니면 재앙이 올까?

잘 모르겠지만, 찬란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길 바란다. 정말로. 간절히.

어쨌든 우린 그냥 우리만의 철학과 전략으로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또는 지루함)

꼰대 같은 내용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현재 세대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요즘 사람들은…” 하면서 불만족을 표현하는 건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행위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 세대랑 비교했을 때 요즘 세대가 부족한 걸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하면 나는 “인내심”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인내심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인내심은 기다림의 미학, 또는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언제 이 말을 대학생에게 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외계인처럼 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앞에 “바로”가 붙고, 오늘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로켓” 서비스가 기본이고, 글자 하나씩 읽으면 느려서 책도 잘 안 보고, 영상도 몇 배속해서 보는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의(=instant gratification) 시대에는 인내심이라는 말 자체가 촌스럽고 고인물들의 전유물이 된 것 같아서 많이 아쉽긴 하다.

반면에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하는 벤처 투자,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분들은 대부분 인내심의 미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보단 장기적인 만족과 보상을 위해 – “장기적”이 5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이 될 수도 있지만 – 불안, 초조, 공황을 참고 오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으면서 본인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분들과 항상 어울리다 보면, 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게 되고, 인내심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복리의 위력을 배우게 된다.

조만간 하와이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만약에 주말을 끼고 가게 되면 오랜만에 서핑해 볼까 해서, 호놀룰루에서 좋은 서핑 장소, 파도, 서퍼 등과 관련된 기사와 영상을 보면서 여기저기를 웹서핑하면서 생각났던 게 바로 서퍼들이야말로 인내심의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서핑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구릿빛 서퍼만큼 멋진 사람들이 없는데, 이 멋짐을 만드는 건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느 정도 잔챙이 파도와 씨름해서 서핑의 기본을 잘 다지면, 누구나 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좋은 파도’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파도를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어서,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보드 위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떨 때는 몇시간 동안 여러 번의 좋은 파도를 신나게 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 허탕 치고 귀가하는 서퍼들도 많다. 내가 LA에 살 때 서핑을 배웠던 강사는 3일 동안 매일 5시간 기다렸지만, 맘에 드는 파도를 못 찾아서 그냥 집에 왔다가, 4일째 엄청난 파도를 만나서 인생 최고의 서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분은 강습 시간 내내 서핑 기술보단 기다림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해 줬는데,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해했다.

스타트업도 이렇게 보면 서핑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장 성공을 맛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정말 큰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시장을 잘 파악한 후 나만의 믿음과 시각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이 잘 안 가는 길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자리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마치, 서퍼들이 남들보다 더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 지금은 잔잔하지만, 앞으로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올 만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보드 위에서 주변 상황과 여러 지표에 주목하면서, 파도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바람과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 다시 자리를 예측해서 옮겨야 한다. 그리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실은,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사업하면서 기다려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파도 한 번 못 타고 그냥 집에 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그다음 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운과 실력 사이 어느 지점에서 큰 파도를 만난다면, 그리고 인내심의 미학이 철저한 준비로 이어졌다면, 이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고, 그동안 쌓인 인내심과 기다림이 복리 폭발해서(=compounding explosion) 그 어떤 창업가들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스타트업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갖고 있는 짧은 경험도 성공한 경험은 아니다. 서핑으로 따지면 그냥 잔챙이 파도와 씨름만 하다가 집으로 간 경험밖에 없지만, 좋은 파도를 타는 것만큼 신나고 짜릿한 느낌이 없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고, 항상 연습해야 한다. 실은,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아무도 없는 뜨거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는 건 매우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안하고, 짜증 나고, 초조한 경험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내심의 미학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물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고 해서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 못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다면 성공할 수 있는 그 작은 확률조차 없어서 인내심은 모든 창업가의 기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또 막상 생각해 보면, 인내심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에게 부족한 자질인 것 같다. 우리 윗세대, 그 윗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를 봐도 인내심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화난 요즘 세대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

계속 “왜?”를 질문해라

몇 달 전에 꽤 공감이 가는 내용을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최근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팟캐스트를 들어서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 적어본다. “The Three Whys 원칙”이라는 질문에 관한 내용인데,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최소 세 번 반복해서 던짐으로써, 일차원적이고 표면적인 답변을 넘어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론에 대한 글과 인터뷰였다.

이 원칙은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어 진짜 문제의 파악 및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예시가 언급됐는데, 여기에 세 번의 “왜?”를 질문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타이타닉호는 왜 침몰했나요?
>> 빙산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2/ 빙산과 왜 충돌했나요?
>> 선장이 빙산을 못 피했기 때문입니다.
3/ 선장은 왜 빙산을 못 피했나요?
>> 과속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위의 타이타닉호 침몰에 대해 첫 번째 질문에서 멈춘다면,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서 침몰했기 때문에 앞으로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기 위해서는 빙산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거나 빙산을 부숴서 작은 얼음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레이저 장비나 무기를 모든 배에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세 번 해서 알아낸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진짜 원인은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바로 선장이 빙산을 발견했지만, 배의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해 방향을 못 틀어서 빙산에 박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 그리고 세 번의 질문으로 얻은,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과속 금지와 정속 주행이다.

이후에 나도 많은 현상에 대해서 한 번만 “왜?”라고 질문하지 않고, “왜?” , “왜?” , “왜?” 이렇게 세 번씩 질문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전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방식에 꽤 큰 도움이 되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왜?”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고,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잘 찾는다. 그런데 석학들만큼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분들이 바로 창업가들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많은 필수 제품과 앱들이 창업가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이들은 일반인처럼 불편함을 그냥 묵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왜?”를 계속 질문하는 습관은 결과적으로 사고를 더 깊게 만들고,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명확하게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원인을 계속 묻다 보면, 실제 해야 하는 행동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타이나틱호의 예를 다시 사용해 보면, 빙산을 분해하는 기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과속하지 않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계속 질문하고 “왜?”라고 묻는 걸 습관화해서 우리 모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하다 보면 더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감을 믿어야 할 때

2010년 초반에 LA를 대표했던 B2C 회사 중 남성 면도기를 정기구독으로 배송했던 Dollar Shave Club(DSC)이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나는 이 회사의 고객이기도 했고,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을 직접 여러 번 봤는데, 참 재미없고 평범한 제품인 남성 면도기를 창의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재미있는 사업으로 만든 인상적인 회사였다. 유니레버가 2016년도에 이 회사를 $1B에 인수했다. 그 가격표도 엄청났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이 회사의 면도기는 한국의 도루코에서 OEM 제조했고, 도루코도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엑싯이 마무리됐을 때 도루코가 번 돈은 재무제표에서 눈에 확 띌 정도로 도루코의 수익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DSC의 사업도 예전만큼 잘 되진 않아서 유니레버도 몇 년 전에 이 사업을 다른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얼마 전에 DSC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의 인터뷰를 참 재미있게 들었는데, 15년 전에 내가 LA에서 이분에게 직접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와 일화들이 서로 겹치면서 “아 맞다. 그때도 이 친구가 이런 내용을 강조했었지!”라는 아하 모멘트가 있어서 여기에 몇 자 남겨본다.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마이클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같이 창의적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지루한 산업에서 창업할 생각을 했나요? 다른 더 재미있는 사업은 생각 안 해봤었나요?”

이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마이클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데이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는데,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고 심사숙고한 후에 내린 결정은 100%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일수록 직감에 의존해 심플하게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섹시하지 않은 남성 면도기 구독 이커머스 사업을 이 친구는 본인의 직감을 십분 활용해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섹시한 사업으로 만들었는데, 이 회사의 마케팅이 당시 얼마나 재미있고 파격적이었나 하면, 이 유투브 광고 영상을 보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지금 봐도 상당히 잘 만든 광고 영상인데, 창업가의 직감이 여간 좋지 않으면 이런 콘텐츠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DSC의 시작도 직감에 의한 창업 결정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wet 면도를 매일 해야 하는데, 질레트와 쉬크는 너무 비싸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사용하면 항상 상처가 나서, 가성비가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은 없을까 계속 스스로 질문했다고 한다. 또한, 남성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라서 정기구독 서비스가 시장에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UI/UX가 깔끔하고 사용성이 좋은 서비스가 없었고, 무엇보다 실제 제품을 받아보니 면도기의 성능이 모두 다 별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가지 고민점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분명히 매일 면도하는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른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그 누구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정기적으로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사업은 대박이었는데, 왜 이런 간단한 아이템을 그 누구도 제대로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둘째는, 이 사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변에 물어보니, 대부분 반응이 별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면도기 정기구독 서비스뿐만 아니라, 웬만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서는 큰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첫 번째 고민이 문제였다. 세상의 절반이 남성이고, 면도기는 너무 많은 남성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면도는 이들이 매일 하는 행위인데,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고,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집으로 정기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문을 그는 계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냥 직감에 의존하기로 했다. 직감으로 그가 내린 결정은 모든 남성이 이런 문제가 있고, 이건 아주 큰 불편함이지만, 이 세상 대부분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본인을 적응시키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그냥 불편하게 살고 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위에서 말하는 “이성적인”에 대한 정의는 조지 버나드 쇼의 설명을 인용해보겠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킨다. 고로 모든 변화와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의 직감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DSC는 당시 미국 남성 대부분이 아는 브랜드로 초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마이클은 사업하는 과정에서 힘든 결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데이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존하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고, 이런 그의 직감에 의한 결정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