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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뭐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을 하는 대표면 당연히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어야 하고, 이 분야에 다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즉, 경쟁사는 누가 있고 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놀랄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생각과 전략, 그리고 우리 회사의 방향과 전략보다, 경쟁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고,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고객에 집중하기 보단 우리 경쟁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나랑 이야기 해 본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잘 알 텐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미팅을, 이 중요한 시간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솔직히 우리 사업과는 전혀거의 상관없는 다른 회사 이야기로 채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언젠가 갑자기 시장에 출현한, 그래서 더 주목받고, 펀딩도 더 잘 받은 어떤 경쟁사를 우리 투자사 대표가 너무나 의식해서, 지금 자기 사업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계속 경쟁사에만 집중하고, 경쟁사와의 따라잡기 게임만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이런 줏대 없는 창업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원하고 응원한 게 쪽팔려서, 이분에게 그냥 그 경쟁사로 가서 취직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분은 계속 남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회사 이야기를 삼십 분 넘게 했고, 이분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 낭비한 삼십 분이었고, 내 소중한 삼십 분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다.

경쟁에 대해선 나는 비교적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봤을 때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경쟁사가 하는 일에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 동향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사의 재무제표는 거의 줄줄 외우고, 이들이 지금까지 뭐 했고, 앞으로 뭘 할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하는 사업의 unit economics도 잘 모르고, 올해 지금까지의 매출과 비용도 정확하게 외우지 못해서, 그때그때 마다 노트북에서 숫자를 확인하면서 나랑 대화했다. 당연히 이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 세계 비즈니스의 역사를 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들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오히려 경쟁에만 너무 집중해서 본인들이 어떤 회사인지 망각하고, 본인들의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연예인으로 홍보하면 우린 더 유명한 연예인으로 광고하고,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면, 우리도 똑같은 기능을 만들고, 이런 경쟁사에만 집중하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 자체가 희석된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건 회사가 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미팅에서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우리 경쟁사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회사가 어떤 밸류에이션에 얼마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창업가와 다른 회사에 관심 있었다면, 나는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가끔 이사회나 주주간담회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경쟁사 이야기만 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주로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가 뭐 하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고, 다른 투자자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미 월간 리포트에 다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냐. 그 회사는 최근에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데, 우리도 다시 펀딩해야하는게 아니냐. 이런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주주명부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들이 그렇게 관심 두는 경쟁사에 투자하라고 해라.

창업가들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 다른 회사, 다른 경쟁사에 대해 신경 좀 끄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제2의 한류

얼마 전에 컴팩트하게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3개국을 갔다 왔는데,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미팅 하나씩하고 다시 귀국했다. 우리는 한국이랑 미국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 유럽에 포트폴리오 회사가 하나 있긴 하지만 –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투자자들도 유럽에는 거의 없어서, 일 때문에 유럽 갈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유럽 땅을 밟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유럽에 온 게 2000년도였으니까, 이번에 24년 만에 유럽에 왔다. 특히 어릴 적 살았던 스페인에는 이번에 무려 35년 만에 갔는데, 솔직히 너무 짧은 출장이라서 뭘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한 나라에 하루도 안 있었지만, 오랜만에 유럽에 와서 나흘 동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한국과 관련된 점들이고, 대부분 너무 좋은 느낌과 발견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일부와 중학교를 유럽에서 다녔다. 이게 언제였냐면,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이었는데, 모든 걸 사진같이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정말 못 사는 나라였다. 그 못 사는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 참고로, 당시엔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하는 시기였다 – 유럽에 오니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도 유럽은 너무나 잘 사는 선진국이었다. 멋진 사회적 인프라, 온갖 맛있는 음식, 비싼 자동차, 옷도 잘 입는 멋쟁이들,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선진국 사람들,,,뭐 이런 느낌이었고, 실은 이런 유럽의 선진국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며칠 전 출장 전 까진.

그런데 이번에 출장 와서 내가 보고 느낀 점들은 당시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 유럽이 이렇게 후졌었나? 내 기억으론 정말 잘 사는 나라였는데, 별거 아니네.” 심지어는 런던 호텔에서 우연히 대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이분도 나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홍아, 영국이 원래 이렇게 후진 나라였니? 나는 한국이 훨씬 더 좋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좋았다. 한국이 인프라도 잘 되어 있고, 솔직히 말해서 음식도 한국이 더 맛있었다.(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이탈리아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한국에서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좋은 자동차는 서울에 훨씬 더 많고, 심지어는 유럽의 멋쟁이들보다 강남과 성수의 한국인들의 패션이 더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이렇게 느꼈던 건, 유럽이 못 살거나, 후져서가 아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주 잘 사는 선진국인데, 한국이 그동안 너무 발전을 많이 했고, 한국이 너무 좋은 나라가 됐기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은 아주 잘 사는 강한 나라가 됐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심지어 굉장히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유럽 가는 곳마다 투자자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 진짜 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너넨 잘될 거야.”였는데, 내가 봐도 한국인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솔직히 나만 봐도 진짜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앞으로 유럽 사람들이 계속 지금같이 일하고, 한국 사람들도 지금같이 일하면,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게 확실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린 이미 한류(Korean Wave)라는 말을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했는데, 내가 요새 느끼는 건, 이제 제2의 한류(2nd Korean Wave)가 시작되는 것 같다. 제1의 한류 기반이 제조업을 잘하고,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한국이었다면, 제2의 한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게 포함되어 있다. 이제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은 이미 하드웨어를 잘하는 나라인데, 소프트웨어도 잘하고, 특히나 consumer 제품을 굉장히 잘 만드는 나라가 됐다. 실은 여기서 멈춘다면, 제2의 한류는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는 그냥 tech인데, tech 자체로만 다른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순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tech를 넘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게 시사하는 바는 정말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음악도 잘 만들고, 영화도 잘 만들고, 무형의 자산인 콘텐츠 강국이 됐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다른 무형의 자산인 음식에서도 한국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음식이 이젠 정말로 메인스트림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스포츠도 잘한다. 많은 한국 프로 선수들이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너무나 잘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다 합쳐지면서 한국은 이제 외국인들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나라가 됐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대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회사, 또는 우리 같은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는 걸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런 내 생각과 의견에 100%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미래는 어둡고, 더 이상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한국 VC도 내 주변에 많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는 많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한국은 선진국에서 강대국으로 다시 한번 더 점프할 수 있는 내, 외부 기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배고픔의 축복

최근 2년 동안 워낙 경기도 안 좋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진 않아서, 대부분의 VC들은 활발하게 투자하기보단, 계속 보수적으로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을 시작하는 날부터 마이너스가 발생하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필요한 투자를 못 받고, 이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서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와 좋은 사업에 투자했더라도, 어느 순간까진 투자금으로 버텨야 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시에 필요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못 받으면 폐업 말곤 별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 투자사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투자했더라도, 매크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초기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우리 투자사들도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나와서 펀딩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투자를 못 받거나, 받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이 아닌, 투자자들의 조건으로 투자를 받고 있다.

돈이 꼭 필요한데 투자유치에 실패한 회사의 미래는 암울하다. 펀딩을 포기한 순간부턴 이젠 생존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이자 옵션이 되는데, 생존을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다. 그냥 무조건 버티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유일한 가이드라인이다. 대부분 스타트업 비용의 절반 이상이 직원들 월급이라서 일단 무조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전에 내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을 쓴 적이 있는데, 실은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기보단, 그냥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2년 동안 매일매일 이런 위기 상황을 견디고 있는 우리 투자사들이 꽤 많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중간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또 놀라운 건 이 비용절감 모드로 나름 잘 버티고 있는 회사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버티면서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회사들은 이제 더 이상 대규모의 마이너스가 발생하지 않고, 어떤 회사들은 흑자까지 경험하고 있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만, 이 회사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2년 전에 투자를 받지 못했을 때, 그땐 너무 속상하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겐 축복이었다고 한다.

그때 투자를 못 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했고,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진짜 창업가의 마인드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모두 말한다. 그 과정 자체는 너무 힘들었고, 다시 반복하라고 하면 싫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투자를 받지 못해서 경험했던 배고픔이 회사에겐 오히려 더 단단하고 강하게 체질 개선을 할 수 있게 된 축복이라고 한다.

이 회사 중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엄청 뾰족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곳도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아서 헤매는 곳들도 많다. 이런 회사들이 유동성이 풍부할 때, 대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나는 요새 가끔 상상해 본다. 아마도 돈만 낭비하고, 사람만 쓸데없이 채용하고, 불필요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크게 망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샌, 오히려 투자를 못 받아서 아주 배고프게 사업을 하는 건, 어쩌면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이 배고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진 않았으면 한다.

분위기

우린 매주 화요일 오전에 전체 주간 미팅을 하고, 이때 현재 투자 검토하고 있는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미팅도 같이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회사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투자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모든 사업이 다르고, 비슷한 사업이라도 창업자가 다르기 때문에, 결정의 결과는 항상 다르다.

내가 얼마 전에 어떤 회사에 대해서, “비즈니스모델은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창업가의 분위기가 좀 별로였다.”라는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발언을 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이 말에 동의하는 분이 몇 명 있었다. 어쨌든, 꼬집어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말할 순 없었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던 그런 미팅이었다. 결국 우린 이 회사를 더 이상 검토하지 않았는데, 이 전에도 우린 분위기가 이상하거나, 이보다 더 애매모호하게 “느낌이 쎄해서” 그냥 겉으로 보면 괜찮은 사업 같은데 한 번의 미팅 이후에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은 곳들이 꽤 있었다.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어떤 사람은 이게 인상에서 어느 정도 보이고, 어떤 사람은 말투에서 이분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대략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 더 미팅하면서 더 다양한 말을 섞어보면, 옷차림, 인상, 눈빛, 몸짓, 목소리, 단어 하나하나 등을 통해서 이 사람의 에너지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린 온갖 종류의 창업가들을 매일 다양하게 많이 만나는데,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이분들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정확도가 향상되진 않는다. 이렇게 되면 너무 좋겠지만, 사람은 정말 복잡한 생명체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판단이 틀리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사람의 분위기가 좋은지 안 좋은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창업가들과 10분 정도만 이야기해 봐도 이분들이 정말로 본인이 하는 사업에 확신이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반대해도 계속 이 사업을 할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투자를 받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위에서 내가 말 한 그런 다양한 외부의 시그널이 이 창업가의 내면의 의지를 꽤 정확하게 반영하는데, 이런 걸 통틀어서 종합한 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분위기이다. 내가 전에 우린 창업가들의 거창한 것보단, 매우 작은 것들을 관찰한다고 했는데, 이 작은 것들도 분위기랑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도 투자자들을 만날 땐, 평소보다 이 내면의 에너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가 창업가들과 10분만 이야기해도,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듯이,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나랑 10분만 이야기해 보면,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바이브를 형성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파악 가능할 것이고, 실은 거기서 우리에게 돈을 줄지 안 줄지 바로 결정이 나는 것이다. 참고로 에너지 레벨이 높다는 게, 동작이 과격하고 목소리가 큰 게 아니다. 조용하고 차분해도 긍정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중요한 일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아야 하고, 내 내면의 분위기가 긍정적이어야 하고, 내 에너지 레벨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이다. 잘 자고, 잘 운동하고, 잘 먹어야 한다.

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