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탔는데, 다음 미팅으로 가는 도중 급하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야 해서 차 안에서 핫스폿을 키고 일을 좀 했다. 정신없이 이메일 쓰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급하게 짐을 챙기고 내렸는데 아뿔싸,,,옆에 잠깐 빼놨던 전화기를 차 안에 놓고 내린 것이다. 사람이 운전하는 우버라면 그냥 다시 문 좀 열어달라고 할 텐데, 웨이모는 한 번 잠기면 그다음 승객이 탈 때까진 문이 안 열린다. 내가 놓고 내린 전화기가 창문으로 보이는데 문은 안 열리고, 야속한 웨이모는 뒷좌석에 내 전화를 실은 채 그다음 승객에게 달려갔다.(나중에 와이프랑 통화하니, 그냥 발로 차든지 해서 차에 흠집을 내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추고 경찰이 왔을 테고, 그러면 전화를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다음엔 그렇게 해야겠다).

웨이모가 간 후,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과는 다른, 뭔가 다른 차원의 공황 상태를 경험하면서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졌다. 정신 차리고 웨이모에도 연락하고 아이폰도 리모트로 잠가서 전화기 안의 정보 도난 관련 걱정은 사라졌는데 – 아이폰의 보안 기능은 정말 대단하게 잘 만든 것 같다. 실은 너무 과하게 잘 만들어서 나같이 분실한 경우가 아니라 실수로 애플 계정이 날아가거나 하면 좀 짜증 날 정도다 – 내 인생 자체가 전화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이 당황스러웠다.

제일 힘든 건 우버였는데 다행히 노트북으로 우버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서 우버를 부르면 차를 내가 찾을 수 있지만, 워낙 차가 많은 공항은 너무 힘들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에서 우버를 부르는 건 문제없지만, 특히 LA 공항은 워낙 개판이라서 우버 기사와 문자와 통화를 하면서 서로를 찾아야 하는데, 공항 밖으로만 나오면 와이파이가 끊겨서 기사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지고, 밖에서 차를 못 찾아서 다시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우버를 확인해 보면 이미 기사는 갔거나 공항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노트북으로 우버를 공항에서 처음 부르고 차에 타기까지 거의 40분이 걸렸다.

이후에 내가 찾은 방법은 우버 기사에게 “제가 전화가 없어서 저를 찾아야 합니다. 173cm 아시아 남자, 블루 재킷을 입고 있고, 하얀 노트북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거였는데, 이렇게 하면 100% 다 나를 잘 찾았다.

그다음으로 힘든 건, 뱅킹이었다. 투자하기 위해서는 송금 승인을 해야 하는데, 2FA 장치가 모두 분실한 한국 전화의 번호 또는 거기 깔린 인증 앱과 연동되어 있어 납입하는 데 큰 지장이 있었다.

그다음 날, 그리고 다다음 날은 아침 일찍 비행해야 해서 내가 다시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을 새로 산 건 전화를 분실하고 3일 이후였다. 3일을 전화 없이 살 수 있다니! 그리고 그동안 계속 웨이모와 확인해 봤지만, 내가 탔던 차에서 전화기를 찾지 못했다는 답변을 받았고, Find My로 확인해 보니 내 아이폰의 상태는 계속 오프라인이었다.

최신 아이폰을 새로 산 후, SK텔레콤에 전화해서 – 정말 몇 년만에 호텔 전화로 국제 전화를 했다 – 상황을 설명하고 비대면으로 다시 한국 번호로 eSIM을 받아서 설치하면 상황 정리될 줄 알았는데, 웬걸,,,이건 내가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야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아이폰을 새로 샀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더 답답한 상황이 됐다.

결국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미국에서 eSIM을 발급받고, 이 번호로 애플 계정을 완전히 새로 만들고 필요한 앱을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이메일이 이미 과거에 애플 계정을 만드는 데 사용됐었거나, 현재 계정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이메일이 고갈됐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메일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것도 여러 인증 과정을 거치면서 쉽진 않았지만, 결국 전화기 분실 5일 만에 우버와 은행 앱들을 설치하고 업무에 필요한 일들을 제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로밍하던 한국 전화기를 외국에서 잃어버린 이 상황, 그리고 외국에서 전화기 없이 업무를 처리한 5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솔직히 할 만했던 것 같다. 첫날은 너무 불안해서 힘들었지만, 둘째 날부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고, 몇 가지 급한 업무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남은 열흘을 전화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과거에 전화 없이도 잘 살았고, 전화가 없으니까 전화하는 사람도 없고, 카톡도 안 오고, 문자도 안 오고, 불필요하게 페이스북이라 링크드인을 계속 열어보지도 않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하지도 않고, 뭔가 궁금할 때 구글이나 AI에 물어보지도 않고,,,이렇게 살아보니, 기계가 아닌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했고, 이동하면서 내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었던, 정말 인간답게 살았던 짧지만 길었던 5일이었다.

비록 강제적이었지만, 미국에서의 5일 동안의 모바일 디톡스는 내 52년 인생이 들어있던 작은 기계로부터 내 인생을 다시 내가 되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도 나는 핸드폰이 있는 인생이 더 좋은 것필요한 것 같아서, 귀국 후 옛날 번호를 되찾고 다시 이 작은 기계의 노예가 기꺼이 됐지만, 전화기 없던 기간은 나름 행복했고, 혹시나 또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당황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배웠던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