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코파운더가 정말 필요한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창업가들이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 세션이다. 몇 년 전에 실험적으로 이 AMA 세션을 시작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꽤 좋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에게도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서 이젠 거의 공식적인 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진행했고 다른 파트너분들과 함께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분이 1인 창업에 대해 질문했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이 각자 본인의 의견과 답변을 공유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어떤 분이 인스타에 올렸다. 이걸 보고 몇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왔는데, 어떤 분은 동의하고 어떤 분은 반대하지만, 대부분 솔직한 생각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1인 창업, 즉 sole founder 팀을 싫어한다. 그런데 위의 인스타 릴스를 보면 내가 왜 1인 창업팀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기서 충분히 설명해 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개발능력이 없는 똑똑한 분들이 일인 창업하면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회사에 없고, 외주를 통해서 개발하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품질에 문제가 생겨서 개발이 가능한 코파운더가 필수였는데 이젠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꽤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는 AI만 잘 활용하면 ‘능력없는 창업가’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능력 좋은 분이 혼자서 창업하는 게 왜 나는 별로일까?

나는 일인 창업가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이라서 무조건 코파운더 또는 코파운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장 동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은 창업가에겐 매우 심각한 문제다. 모든 창업가가 나에게 하는 말은 창업이 너무 외롭다고 한다. 이 외로움이 쌓이다 보면, 여기에도 복리가 작용하고, 복리로 쌓이는 외로움은 결국엔 사람을 망친다. 외로움,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과 – 사업이 주로 잘 안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싸우다 보면 아무리 몸과 마음이 튼튼한 분이라도 몸과 마음이 매일 산산조각 난다. 나는 이런 걸 매일 본다.

사람마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격렬한 운동, 술, 음식, 명상, 독서 등이 내 주변의 창업가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일부이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과 싸우는 건, 마치 자기만의 전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창업가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어떤 창업가는 동네 싸움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크기를 떠나서 이를 직접 겪고 있는 분에게는 본인의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하지만 힘들고 외롭다.

이 조용한 싸움을 할 때, 옆에서 나와 함께 이 외로움을 분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코파운더다. 대부분의 코파운더는 사업이나 돈으로 서로 엮이기 전인 순순했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단순히 사업을 함께 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제품을 같이 만들고, 펀딩을 같이 하고, 채용을 같이 하고, 영업을 같이 하고, 고객을 같이 만나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더러운 똥 밭에서 구르면서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게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려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스타트업은 빨리 가면 지친다. 멀리 가야하고 멀리 가려면 동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sole founder에게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것이다. 똑똑한 분이 혼자 창업해서 AI 에이전트 100개를 만들어서 모든 걸 돌리면 결정도 더 빨리하고, 돈도 더 잘 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서 사업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AI가 모든 걸 만들고, 창작하고, 심지어 의사결정까지 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변한다. 시장도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회사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거절하는 VC를 대하는 방법

나는 올해로 11년째 국내 최고의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에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가 잘 끝났는데, 그다음 날 창업가분들을 대상으로 투자 관련 AMA 세션을 진행했다. 몇 년 전부터 데모데이 다음날 항상 진행하는 세션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첫 번째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 창업가의 입장에서 – 프라이머 투자는 이미 받았지만, 프라이머 배치에 선발되고 투자받는 것과 실제로 많은 VC에게 피칭하고 펀드레이징을 하는 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 막막하고, 궁금한 점도 많아서 이분들이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서 나도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변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자리다.

이날도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나도 다양한 조언을 드렸는데, 투자 유치 관련해서 내가 가장 강조했던 내용은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가장 많은 투자자를 만나는 전략, 하지만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수록 결국 거절당할 확률과 횟수가 압도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피칭 횟수가 증가할수록 거절의 횟수에는 가속도가 붙고, 거절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창업가의 자존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일단 거절을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절대로.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나에게 투자 못 하겠다고 하는 투자자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뭐, 내가 정말 이상한 짓을 했다면 개인적인 감정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창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VC라는 직업이 Yes라고 하는 것보다 No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므로 그냥 우리에게 No라고 하는 건 실제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VC가 나에게 No라고 할 때마다 기분 언짢아하고 자존감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는다면, 사업을 할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사업을 할 계획이라면, 투자자에게 거절당하는 건 앞으로 내가 경험할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VC에게 거절당하는 걸 못 참고 못 견뎌 한다면 창업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자, 그럼 투자자에게 거절당한 창업가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일단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건 그 투자자에게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사업이 부족한 것이고, 투자자가 봤을 때 우리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니, 괜히 확대해석하지 말자. 그냥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 사업을 더 잘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나면 된다. 즉, 우리와 궁합이 맞는 투자자를 만나야 하는데, 이런 투자자를 찾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투자받는 과정과 피칭 과정은 절대로 scalable 하지 않다. 이건 AI로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냥 창업가가 발품 팔면서 한 명씩 직접 만나야 한다.

거절당한 창업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이 몇가지 있다.

첫째. 이번에는 투자하지 못하겠다는 거절의 의사를 받으면, 얼굴을 붉히지마라. 위에서 말한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No이지만, 어쨌든 거절의사를 확실히 밝혀줘서 우리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라.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시간 내주고 대화해줘서 고맙다고 해라. 전화로 해도 되고, 이메일로 해도 되고, 문자로 해도 된다. 참고로 나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이런 행동이 같은 인간으로서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이 투자자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지는 게 좋다. 우리도 거절을 훨씬 더 많이 하는데 – 참고로 올해 우리는 거의 1,800개 이상의 회사를 검토했다 – 이렇게 했을 때 창업가가 감정적으로 나오거나 아예 대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고 다시 연락오면 아예 안 만날 확률이 높다.

둘째.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해라. 여러 번 만났던 투자자가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면, 분명히 거기에는 (나름)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를 거절한 건 상관없지만,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투자자한테 건설적인 피드백을 요청하는 게 좋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확장성이 문제라면, 다른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우려를 할 것이다. 또는 내가 대표이사로서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투자자한테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내가 부족했던 점들과 사업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라. 다음 투자자 미팅 전에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Yes의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냉혹하다. 냉혹하다기보단 내가 봤을 때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1/ 일단 명확한 거절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니고, 그냥 오랫동안 밍기적거리거나 아예 연락이 안 되면서 잠수 타는 VC들도 너무 많다. 솔직히 왜 그러는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VC에 대한 전반적인 평판과 이미지를 엄청나게 깎아 먹어서 좀 짜증나긴 한다.
2/ 거절의 의사를 전달한 투자자들 대부분 명확한 피드백을 안 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 , “우리의 투자 전략과 맞지 않다”와 같은 그 어떤 사업이나 창업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별로 도움 안 되는 피드백을 준다. 이게 피드백인지 개소리인진 잘 모르겠지만.

셋째.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봐라. 세상에 VC는 많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창업가의 네트워크로 이런 투자자들을 다 만나는 건 힘들다. 어떤 투자자가 거절했다면 이 분이 아는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봐라. 왜냐하면 창업가보단 VC가 다른 VC를 훨씬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 번에 한 명씩 다른 투자자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은 많이 다르다. 대부분 VC가 다른 투자자 소개를 해주진 않을 것이다. 실은, 이건 우리한테도 좀 애매한 부탁이긴 하다. 내가 투자하지 않는 창업가를 내가 아는 다른 투자자에게 소개해주면. “스트롱은 투자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에게 소개해주나요?”라고 반박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가가 정말 좋은데 특정 VC가 투자하기에 너무 초기거나,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충분히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소개받기 위해서는 창업가가 이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했고, 그렇게 하려면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넷째. 나를 거절한 투자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어봐라. 이번에 투자 안 했다고 평생 우리에게 투자 안 하는 건 아니다. 당시 그 VC의 상황, 펀드의 상황, 시장 분위기, 회사의 파트너나 대표이사의 기분 때문에 우리에게 투자 안 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과 분위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심지어 심사역은 우리를 무척 좋아했지만, 회사에서 승인을 못 받아서 투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심사역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우리를 다시 검토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투자가 성사된 경우를 나는 꽤 많이 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창업가가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우리를 거절했지만, 분기 또는 반기마다 연락해서 간략하게 회사 업데이트를 해주면 “이 분은 우리가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연락을 주시고 회사 상황을 업데이트해 주시는데, 우리가 투자하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소통하실까?”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를 좋게 볼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안 된다면?

낙심하지 말고, 자존감 낮아지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 마라. 원래 투자는 어렵고, 대부분 스타트업은 투자유치에 성공하지 못한다. 어차피 오랫동안 사업할 의지가 있다면 투자를 받든 안 받든, 그냥 자기 사업 열심히 하면 된다. 투자받으려고 사업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세상이 더 험악해지면서 한국에서도 이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세히 쓰진 않겠지만, 끔찍한 살인사건, 엽기적인 범죄행위 등, 과거에는 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이젠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문제냐, 아니면 이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냐 이다. 즉,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내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각각의 생각을 물어보면, 대략 10명 중 8명은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을 탓하는 것 같다. 자주 듣는 이야기는 사람은 사회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서 개인적인 성향보단 시스템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하는 기준이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보단 사회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의해서 형성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이런 범죄자들을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 것 같다.

맞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시스템이 문제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개개인의 사람이다. 사람이 시스템의 구성원이라서 시스템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그 전에 사람이 모여서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결국엔 사람 개개인의 행동, 생각, 관점과 성향이 전체 시스템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도 개선돼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 변해야 한다. 사람도 변하고, 시스템도 동시에 변하면 bottom-up과 top-down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서 더 빠른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보다 개인의 능력과 추진력이 뛰어난 국가라서 시스템보단 사람 개개인의 책임, 권한과 역량이 다른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일부 한국의 학자들도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작년에 일 년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와 사회의 리더가 없었는데 솔직히 그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든 개인이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큰 문제 없이 잘 운영됐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개판이었지만 개개인이 잘 행동해서 개판인 시스템을 잘 돌아가게 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와 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잘 맞물려 움직여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결국엔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변화해야 한다.

시스템보단 사람이 문제이고, 시스템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관점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개념을 부정하고 한 나라나 사회의 문제를 무조건 시스템 탓을 하는 데 익숙해지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면 일단 개인이 바뀌어야 하고, 개인의 변화는 나와 너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좋게 바뀐다.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면 시스템이 망가진다. 시스템을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보자.

주인의식

이 블로그 구독자를 한 번도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와 회사의 대표이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와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꽤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대표이사마다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도 다르고, 고민하는 점도 다를텐데, 모든 대표이사가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임직원들의 주인의식일 것이다. 나같이 작은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도 이 고민을 항상 하는데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더 힘들어지고, 더욱더 많이 고민하는 대표의 숙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분들이 이 회사를 본인의 회사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단순히 월급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세계 모든 리더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전에 내가 Red Bull 북미 본사를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강렬함에 대해 공유한 적이 있다. 그 리셉셔니스트는 어떻게 보면 기업 피라미드의 가장 말단에 있는 직원분이고,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정직원이 아닌 대형 인력파견 에이전시 소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레드불에 대한 깊은 애사심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나눴던 매우 짧은 대화를 통해 이 분이 회사에 대해 가졌던 주인의식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레드불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레드불 창업 가족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하여튼 본인이 몸담고 있고,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월급을 받고 있던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오너나 임직원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그 뛰어난 주인의식은 나 같은 회사의 방문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왜냐하면 전에는 나는 레드불은 설탕 덩어리 탄산 카페인 음료를 판매하는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는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가득 찬 강력한 브랜드파워 회사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아직도 이 회사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읽었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서도 이런 강력한 주인의식에 대한 일화가 묘사되어 있다.

이 분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디즈니월드에 놀러 갔는데,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놀이공원 안의 가게에서 도자기로 만든 소금통과 후추통을 샀다. 10달러였다. 그런데 가게를 나오자마자 도자기를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해서 다시 가게로 돌아가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더니, 가게 직원은 아무 말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면서 오히려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탓을 했다.

이 직원분의 태도는 작가와 그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그들은 20년 넘게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면서 10만 달러 이상의 돈을 썼다고 한다. 10달러짜리 도자기 세트를 바꿔준 디즈니랜드 가게 직원의 태도가 디즈니 재무제표에 10만 달러의 매출을 더 해 준 셈이다. 실은, 10달러짜리 제품을 공짜로 하나 더 주면, 장부에는 그냥 10달러의 손실로 기록되지만, 이 행동으로 한 가족이 디즈니라는 기업을 평생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는 건 그 어떤 마케팅으로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도 주인의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날 그 직원이 디즈니의 주주였을까? 어쩌면.
10달러짜리 제품을 바꿔준다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게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 오히려 점장에게 더 욕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직원은 – 어쩌면 알바하시는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 본인이 단순히 기념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디즈니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앞의 10달러보다 울고 있는 열두살짜리 아이가 디즈니를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기억하길 바랐을 것이다.

이런 주인의식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어떻게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주입할 수 있을지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물론, 대표이사나 오너가 강요하고 설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본인이 오히려 매일, 매 순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스트롱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한다. 결국, 주인의식은 입으로 나불거리는 게 아니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모든 임직원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도, 권한, 그리고 책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더와 직원분들 모두 다 계속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글에 “월급이나 많이 주면서 주인의식을 강요해라”라는 댓글이 분명히 달릴 것 같은데,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반박부터 먼저 하는 분들은 주인의식과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직책 없는 회사

우리는 10월 1일부로 작은 실험을 한다.

바로 회사에서 직책을 없애는 것이다. 앞으로 나를 아는 분들은 “배기홍 대표”나 “배기홍 파트너”가 아니라 “배기홍님” 또는 “기홍님”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이게 좀 어색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계속 나를 대표나 파트너로 부른다고 내가 싸대기를 때리진 않겠지만 되도록 그냥 직책 없이 “님” 호칭만으로 불러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스트롱 모든 분을.

실은 몇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하는 덴 시간이 좀 걸렸다. 한국의 직장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데 이제 우린 스트롱이 extraordinary VC가 되는 데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굵직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일단 우리나라의 직책과 호칭은 복잡하고 어렵다. 어떤 회사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이렇게 올라가지만 우리 같은 VC는 주로 심사역, 선임심사역, 책임심사역,,,뭐 이런 방식으로 올라간다. 이 외에도 내가 지금까지 본 직책은 파트장님, 지점장님, 부지점장님, 부부장님 등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한국만 이렇게 복잡한가? 그건 아니다. 미국도 복잡하고 유럽도 이상한 직책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한국이 더욱더 어려운 건 일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부를 땐 그냥 외국같이 이름을 부르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과 직책을 모두 같이 불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정말 어렵다. “배기홍 대표님”은 비교적 간단한데 “배기홍 책임심사역님”은 너무 길고 어렵고 입에 잘 붙지도 않는다. 1대1 미팅이면 그나마 괜찮지만, 이런 시스템에서 여러 사람과 미팅하면 그 사람들 이름과 직책 부르다가 에너지가 다 고갈되고 시간이 허비된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면 이 사람이 그동안 승진해서 직책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다른 팀으로 갔는지, 이런 걸 파악하는 데 불필요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직책/호칭 시스템이 이렇다 보니 내가 승진했는데 상대방이 그 이전 직책으로 나를 부르면 은근히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문화는 불필요한 걸 없애고 일을 잘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인데 우리의 호칭과 직책 문화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내가 봤을 땐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스트롱은 그냥 직책을 없애기로 했다.

내 명함에 “대표”라는 직책이 찍혀 있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불편한 일도 있다. 우리 팀을 전혀 모르는 창업가와 미팅하면 일단 이 분은 미팅에 참석한 스트롱 멤버들의 명함을 다 받은 후에 누가 누군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명함상의 직책이 더 높은 사람들에게 더 집중한다. 특히 내가 대표라서 나를 더 자주 보면서 이야기하고, 나와 눈을 더 많이 맞추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회사는 대표이사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미팅이 끝난 후에도 어떤 분들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내는데, 이렇게 하면 스트롱의 모든 업무가 나에게 몰려서 내가 상당히 피곤해진다.

우리는 한국의 전형적인 회사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투자사에 대한 의사결정은 각 담당자가 전적으로 하는 구조이다. 권한도 많지만, 담당 회사에 대한 책임도 담당자가 가져가야 한다.(물론, 큰 문제가 발생하면 최종 책임은 내 몫이다) 그리고 우리는 담당자의 나이가 많든 적든, 투자 경험이 있든 없든, 담당자와 모든 이야기를 하면 되고 이들을 통해서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는 회사의 정책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런 우리의 정책이 단지 명함의 직책 때문에 전달이 잘 안되고 있다는 걸 자주 느꼈다. 스트롱의 모든 멤버는 각각 스트롱을 대표하고, 스트롱을 대변하고, 스트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미 우리 동료분과 이야기하고 있는 창업가가 있다면 그분과 계속 이야기하면 된다. 모든 의사결정은 그분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분에게서 끝난다. 그분의 결정이 스트롱의 결정이다. 우리의 의사결정 구조는 심사역에서 시작해서 결국엔 대표가 결정하는 그런 전통적인 구조가 아니다.

직책을 없앤 건 각 멤버의 마음가짐과도 관련이 있다.

회사를 대표해서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해야하면 주로 주최측에서는 대표이사 또는 임원의 참석을 항상 요청한다. 만약에 이런 자리에 기존 직책 시스템의 심사역이 참석해서 스트롱을 대표한다고 하면 주최측에서는 난처해하면서 심사역은 자격이 안 돼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 회사는 모두 다 full stack VC라서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다고 해서 스트롱을 대표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아닌데 이런 일이 명함의 직책 때문에 발생하는 걸 종종 봤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 심사역은 “나는 힘없는 심사역인데 내가 어떻게 외부에서 회사를 대표하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게 고정관념으로 굳어버린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또는, 회사를 대표해서 중요한 일을 해야하는데 이걸 심사역에게 부탁하면.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저는 그냥 심사역인데요.”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나는 종종 봤다. 공식적인 직책을 없애는 건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를 없애고, 모두 다 회사를 같은 무게로 대표하는 투자팀의 멤버라는 새로운 마인드로 리셋한다는 의도가 있다.

위에서 나열한 이유 외에 우리가 직책을 완전히 없애는 배경엔 여러가지 생각과 철학이 있는데, 궁극적으론 스트롱을 철저하게 실력과 성과로만 평가받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투자경험도 아닌, 나이도 아닌, 직책도 아닌, 오로지 실력과 성과로 평가받는 full meritocracy로 가는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스트롱을 만나면 그냥 모두를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나는 배기홍 대표가 아니라 배기홍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