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침묵은 금

얼마 전에 이발을 했다. 내가 다니는 이발소는 shop in shop 개념으로, 원래 가게는 미용실인데, 이 미용실의 3칸 중 한 칸을 젊은 친구가 개조해서 이발소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2 칸은 여자 미용사 고객들이고, 한 칸은 나 같은 이 젊은 바버의 고객들이 사용한다. 나는 원래 이발사나 이런 서비스 해주시는 분들과 크게 말을 섞지 않고 인사 정도만 하고 그냥 가만히 머리만 하는데, 많은 분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공간이 미용실이기도 하다.

바로 옆이다 보니 실은 귀를 닫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옆 사람이 하는 말이 다 들리는데, 이 날 이후 나는 절대로 이런 공공장소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 또는 내 친구들 이야기, 또는 내가 하는 일이나 회사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옆에 어떤 젊은 남자분이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분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계속 본인 개인사와 회사 이야기를 너무 세세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이 분의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람이 외국 어떤 지역의 학교 출신인지 알게 됐고, 외국이 본사인데 최근에 여의도에 한국 지사를 만든 작은 투자사에서 일 하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리고 원래 다른 미용실에서 6만 원짜리 컷을 하는데, 미용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번에 우리 동네 미용실로 바꾼 사실까지 알게 됐다. 내가 이 사람의 보스였다면, 공공장소에서,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한테 회사의 준기밀 내용까지 다 발설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동네 미용실에서 하고 다니는 것이다.

실은, 이런 경험이 과거에도 몇 번 있긴 하다. 목욕탕 안의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 받고 있는데, 옆 칸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당시에 다니고 있던 회사와 경쟁 입찰이 붙은 경쟁사의 영업 담당자였던 적도 있고, 신사동 고깃집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내 MBA 동기에 대해서 험담하는 그룹에 한마디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다 종합해보면, 결국엔 모든 게 자기 과시와 자랑을 하기 위한 이빨까기다. 원래 이런 곳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하지만, 이 경험 이후에는 그냥 무조건 입 닥치고 있고, 사적인 내용을 물어봐도 그냥 대답을 안 하고 있다.

웅변이 은이라면, 침묵은 금이다. 말을 많이 해서 패가망신 한 사람은 여러 명 있지만, 입 닥치고 있어서 손해 본 사람은 역사상 한 명도 없다.

월성장 vs. 누적성장

이 차트는 어떤 회사의 2019년도 월 누적 매출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1월에 10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이후 그래프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냥 대충 보면 아름다운 그래프이고 성장하는 회사처럼 보인다.

cumulative sales

이젠 이 그래프를 한번 보자. 이 그래프는 같은 회사의 2019년도 월매출 성장을 보여준다. 같은 회사, 같은 매출이지만, 누적이 아닌 1월부터 12월까지의 개별 월매출인데, 성장은 없고 오히려 회사는 퇴보하고 있다.

monthly sales

보시다시피, 같은 회사의 수치지만,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서 누적 수치는 회사가 정말로 건강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가끔 회사 자료들을 보면, 월 수치는 없고, 이런 누적 수치로 도배된 장표만 보이는데, 대표가 잘 모르고 누적 수치만 강조한 거면 가급적이면 월 수치로 수정하길 권장한다. 만약 알면서도 회사에 불리하니까 월 수치를 일부러 제거한 거라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다.

재충전

지난주 부터 한 일주일 동안 여수의 시골 어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웬만하면 월, 목 글을 포스팅하는 걸 빼먹지 않고, 이번 휴가 동안에도 글을 쓰려고 했지만, 쉬다 보니 몇 번 건너뛰게 됐다. 30대였을때만해도 나는 휴가나 재충전이라는걸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약한 사람들을 위한 거고,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항상 일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개똥철학이었던 거 같다.

이제 나는 쉬는 거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옹호자가 됐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시간을 내서라도 일에서 손을 좀 떼고 쉬는걸 주장하는, 휴가에 대해서는 유러피안 마인드를 고집하고 있다. 나도 짧게는 3개월에 한 번씩, 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짧게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데, 올 해는 한 번도 이런 시간을 갖지 못 해서 몸과 마음이 조금 지치긴 했다. 올 해는 예상치 못 했던 큰 변수가 코비드19 이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바뀔 때마다 재택 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일 년이 거의 다 갔고, 이제 이렇게 스위칭 하는 게 익숙해졌으니,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놓을 순 없다. 여기에서도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이메일 확인하고, 중요한 일들은 처리하고 있는데, 딱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다 보니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다 미루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여러 가지가 8년 전에 존이랑 나만 사업을 할 때 보단 복잡해졌다. 그래서 스트롱 인원도 충원했지만, doing more with less 전략을 취하다 보니, 항상 일이 넘친다. 그래도 내 파트너 존, 그리고 조지윤 책임과 허연정 매니저와 같은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큰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 하고 있다.

잠깐 쉬면서 재충전하는 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이 말을 나는 요새 굳게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서 십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모두 너무 바쁘다 보니 쉴 시간도 없고 휴가 갈 시간도 없고, 며칠 자리를 비우면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아무 문제 없이 모든 게 잘 돌아가더라. 그래서 일부러라도 자주 채충전의 시간을 갖는걸 권장한다.

이 사진은 지금 에어비앤비로 머무는 숙소의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콜하고 있는 거 같은데, 사진 제목은 ‘노인 VC와 바다’ 이다.

사진 2020. 10. 13. 오후 5 59 30

노인 VC와 바다

숫자 싸움

투자받는 순서에 따라서 우린 펀딩 라운드를 시리즈 A, B, C, D 등의 알파벳으로 표시한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말 그대로 순서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다. 스트롱은 주로 시리즈 A 이전에 투자하는 초기 투자자인데, 이때는 대부분의 사업이 완성된 제품도 없고, 제품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없고, 고객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팀을 보고 투자하고, 팀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창업가의 스토리, 성품, 실행력,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 등을 그 어떤 특징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시리즈 A부턴 투자자들이 숫자를 따진다. 미국의 경우 100억 원 이상을 주로 시리즈 A라고 하는데, 한국은 이보다 조금 작은 거 같고, 내가 봤던 한국의 시리즈 A는 30억 원 이상인 것 같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받으려면, VC도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하고, 회사도 이 규모의 투자를 받기 위한 그릇이 돼야 하는데, 이 그릇은 대부분 숫자다. 전에 내가 미국의 Shark Tank 프로에 나왔던 창업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회사의 성장이 좋고 숫자가 좋으면 모든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새 Y Combinator가 약간 맛이 간 거 같지만, 그래도 다른 악셀러레이터 출신 회사보단 아직 YC 출신 회사들이 훨씬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YC 데모데이는 한국의 데모데이랑은 조금은 다른데, 일단 발표 시간부터 2분 30초로, 주로 5분 발표를 하는 다른 데모데이보다 짧다. 이 2분 30초 동안, 대부분의 창업가는 정성적인 이야기보단 정량적인 숫자 이야기를 한다. 즉, “우린 창업 후 15개월 동안 매달 20% 성장했습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시간도 거의 숫자로만 도배된 슬라이드로 발표를 한다. 발표 자료에 숫자가 없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다.

스타트업은 종합 예술이다. 비전도 중요하고, 장기적인 전략도 중요하고,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스토리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업 초기에 시드 투자 받을 때는 이런 정성적인 내용을 투자자들이 많이 참고하게 된다. 하지만, 규모가 더 큰 투자를 받으려면 점점 더 이런 정성적인 부분의 중요도는 떨어지고, 숫자가 왕이 되기 때문에, 정량적인 수치가 중요하다는걸 모든 대표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에도 숫자를 유독 잘 보면서 관리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기본적인 회사의 매출이나 MAU 조차도 잘 못 외워서 물어볼 때마다 다시 엑셀을 열어봐야 하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지표를 머리 속에 담가 다니면서, 누가 물어보면 기계적으로 줄줄 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대부분 사업을 정말 잘한다. 외우기 위해서 이런 숫자를 외운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수치를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뇌에 박히는 것이다.

어떤 투자사들은 아예 실시간으로 비즈니스의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내부용뿐 아니라 투자자들과도 공유한다. 이걸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KPI들이 보이고, 작은 회사지만 이런 깊이 있는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렇다고 이런 수치만 계속 보고, 실시간으로 트래킹한다고 모두 다 사업을 잘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표 중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받은, 사업을 정말 잘하는 분 중 본인들 비즈니스의 숫자를 잘 모르는 분 들은 단 한 분도 없다. 내 사업의 KPI를 모두 다 줄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딘가 계속 기록하면서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고 있어야 하며, 결국 이런 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고 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도 결국 외우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숫자를 잘 관리해야 하고, 결국 사업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절박 속의 혁신

얼마 전에 월스트리트저널이 ‘How South Korea Successfully Managed Coronavirus‘라는 기사를 통해서 한국이 기술력과 정책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제어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나도 특히 조심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한국만큼 안전한 국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기사의 많은 부분에 동의했다. 특히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의 암호를 풀었다면서 칭찬할 정도로 한국의 이미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상승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같이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들한테는 너무 좋은 현상이다.

K 방역은 자랑스럽고 수출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제는 중-장기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표는 나쁘지 않지만, 경제 활동의 척추가 될 20대~30대를 많이 만나는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이들의 장래가 썩 밝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요새 정말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요새 한국 젊은이들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빚투(빚을 내 투자)’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게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진 않고, 오히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 같다. 물론, 모든 20대와 30대가 다 이런 건 아니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젊은 창업가들은 영끌과 빚투와는 오히려 거리가 멀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신에서 보는 한국 또는 단순 외형적인 숫자로 보는 한국이 아닌, 실제로 2020년도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한국에서 일하고, 여기에서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20대와 30대가 보는 한국은 정말 암울하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취업해서 평생 죽어라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고,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도 하기 힘들고, 결혼해도 애 낳기가 두려운 게 이들이 몸으로 느끼는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그 와중에 가장 왕성한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이 사회와 경제에서 소외되고 있다. 즉, 한국에서 이들을 위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끌로 집을 마련하고, 빚투해서 크게 한 방 노리는 거다. 몇 년 후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정부와 은행의 대출은 이런 “어차피 미래가 없는데, 인생 한 방이지”라는 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지만,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내가 발견하고 있는 아주 밝은 부분도 있다. 이런 절박한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더많은 좋은 창업가들이 한국에서 혁신을 만들고 있다. 미래가 어둡고, 그것도 남의 미래가 아닌,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절박함이 간절하기 때문에, 뭔가 바꿔보려고 하고, 뭔가 혁신하려고 하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걸 하기 위해 가장 쉽고 가장 임팩트가 큰 게 바로 창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경제는 암울하고, 코비드19은 계속 갈 것 같고, 모든 게 불확실한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우리 같은 투자자는 더욱더 기발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하는 창업가를 더 많이 만나고 있다.

이런걸 보면서 혁신에 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주로 혁신은 몸과 마음이 편하고 느긋할 때,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가속화된다고 한다. (아직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구글이 일주일에 특정 시간은 직원들이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또는 많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종교와도 같이 믿고 있는 혁신적인 사고를 위한 사무실 공간 재배치 프로젝트 등이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을 촉진하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편한 상황에서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만, 혁신적인 유니콘 아이디어는 오히려 절박하고 불편할 때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역사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공황 시대에 창업한 회사가 수십 년 동안 잘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됐는데, 아마도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편안함 속의 혁신 보단, 절박함 속의 혁신이 더 혁신적이다.

뭐, 그렇다고 이게 매우 바람직해서, 이런 절박한 상황이 평생 지속되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 창업한 회사도 결국엔 대부분 망할 것이고, 솔직히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역사에는 항상 up과 down이 있었고, 이런 현상은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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