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인생 쏟아내기

시간 참 빨리 간다. 올해도 삼분의 이가 벌써 지나갔고, 정신 좀 차리면 2024년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올해는 내가 정말로 열심히 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치 8개월이 8년같이 느껴지는 8월이다.

“내가 허비하고 있는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 “매일이 인생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뭐, 이런 종류의 말을 우린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할 정도이다. 나도 아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지만, 그렇다고 내일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과하게 살진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에 내 인생을 다 쏟아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특별히 야근을 많이 하거나, 저녁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술을 먹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근무 시간을 계산해 보면 길어봤자 하루에 12시간을 넘기진 않는다. 그런데 인생을 다 쏟아낸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미팅하고, 투자하고, 모든 걸 하다 보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떨 땐 몸살이 날 것 같이 목이 쉬고 피곤하다.

이렇게 인생을 다 쏟아내고 녹초가 돼서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그래도 매우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항상 만나고, 이야기하고, 응원하고, 존경하고, 투자하는 창업가들이야말로 날마다 이렇게 살면서 모든 걸 다 쏟아내는데, 우리도 이렇게 하는 건 이들을 응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생을 다시 채워넣기 위해서는 일단 인생을 다 쏟아내야 하는데, 매일 쏟아내고 채우기를 반복하면 훨씬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복리효과

며칠 전에 프라이머 23기 워크숍에 잠깐 참석했다. 마지막 날엔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Q&A 세션이 항상 있는데, 이번에도 다른 프라이머 파트너분들과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내용을 진심을 다해서, 이 힘든 시기에 창업해서 험난한 여정을 떠나는 창업가분들과 공유했다.

이 세션의 마무리 부분에선 각 파트너분들이 프라이머 창업가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짧게 하는데 나는 매번 똑같은 걸 강조하곤 한다. 그건 항상 “복리(compounding)의 힘을 믿고, 복리의 힘을 잘 활용하세요.”이다. 실은 이 말은 프라이머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 주변 모든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일주일에 20시간을 일 한다고 치자. 아마도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하는 창업가들은 없겠지만. 그러면 월요일 하루만 20시간 일하고, 화 ~ 금 쉬는 것 보단, 월 ~ 금 매일 4시간을 정확하게 나눠서 일하는 게 훨씬 좋다. 이 루틴을 1주, 5주, 50주, 100주, 1,000주 반복한 후에 그 결과를 한 번에 몰아서 일했을 때의 결과와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날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똑같은 일을 꾸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복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20시간 일하면 일주일 동안의 생산성은 20시간이지만, 5일 동안 매일 4시간씩 일하면 20시간 이상의 생산성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 일이 습관이 되면서 자기만의 루틴이 만들어지는데, 루틴이 고도화되면 일반인을 전문가의 영역까지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이 현상을 모든 분야에서 관찰할 수 있고, 나는 루틴의 동물인 창업가와 그렇지 않은 분들을 꽤 많이 관찰하면서 성공하는 창업가들은 자기만의 루틴을 통해서 복리 효과를 잘 활용하는 분들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위의 예시에서는 하루 20시간을 일하면 일주일에 한 번의 루틴이 만들어지지만, 5일을 4시간씩 일하면 5번의 루틴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꾸준함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반복하지 못하고, 반복하지 못하면, 루틴을 만들 수 없고, 루틴화 되지 않으면 복리의 힘은 작용하지 않는다.

투자의 리듬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직전 라운드보다 낮은 기업가치에 투자받는 다운 라운드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너무 많은 회사들의 다운 라운드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그나마 다운 라운드라도 누군가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현상은 긍정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으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는 다운 라운드도 많고, 아예 투자를 못 받아서 망하는 회사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이런 좋지 않은 경기를 의식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돈이 있음에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내 주변에도 지갑은 두둑하지만, 좀처럼 열지 않고 있는 VC들이 많이 있다.

스트롱은 조금은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스트롱의 투자전략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우린 매우 일찍, 매우 꾸준히, 그리고 매우 자주 투자한다고 말한다. 즉, 불경기든 호경기든 우리가 시장에 돈을 투입하는 빈도와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도 지난 11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봤고,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 방법과 전략을 찾기 위해서 이 실험은 진행 중이다. 이 분야에서 영원한 건 없고, 정답도 없지만, 초기 투자를 하면서 배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면, 실력보단 운이 중요하고, 실력보단 타이밍이 중요한게 초기 투자이다. 운과 타이밍이 중요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번 이길 순 없기 때문에 실력에 의지하기보단 운과 타이밍 때문에 볼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제일 좋은 전략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찾은 답 중 타율이 가장 높은 건 그냥 꾸준히 좋은 창업가들을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민주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휴가철이든 아니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근무 시간이든 오프시간이든, 시장의 기회는 항상 존재하고, 시장의 비효율성도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누군가는 이런 기회를 포착해서 창업한다. 이 중 잘 안되는 회사도 많겠지만, 유니콘이 되는 회사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회사들에 초기 자본을 제공했을 것이다. 스트롱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VC들이 될 수도 있다.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때는 규모와는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대규모 자본을 많은 스타트업들에 투입했고, 이에 따라서 너무 많은 회사들이 너무 빨리 기업가치가 상승하면서 유니콘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돈지랄의 부작용은 유니콘이 되면 안 될 회사들이 유니콘이 됐다는 건데, 시장이 급랭하면서 이들의 기업가치가 폭락했고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역대급 손실을 봤다.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한 투자자들은 – 그리고 규모나 단계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 불경기가 오니까 대부분 지갑을 닫았고, 경기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모드로 전략을 바꿨다.

그런데, 시장이 나쁘다고 좋은 회사가 창업되지 않는 건 아니다. 좋은 창업가들은 좋은 회사를 꾸준한 리듬과 페이스로 계속 만들고 있다. 이 중 어떤 창업가들은 수십조 원의 기업을 만들 것인데 그 시점을 우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은 그냥 지속적이고 꾸준한 리듬과 템포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자기만의 철학과 색깔을 갖고, 리듬감 있게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분명히 성공하는 회사가 나올 것이다.

다운 라운드

요새 모두에게 참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가 최근에 첫 투자한 회사들은 아직 너무 작고,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 곳들이 너무 많다. 스트롱에게 초기 투자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제품의 product market fit을 찾고, 이렇게 찾은 fit을 확장하기 위해서 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계속 성장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이제 이런 계획들은 당분간은 실행할 수 없는 계획으로만 남게 됐다. 시장에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 작은 규모에 성장이 없는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를 아예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올해 우리 투자사 중 망하는 회사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수백억이 넘는 회사들은 위에서 말한 완전 초기 회사보단 제품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상당히 발전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많이 벌거나 흑자 전환을 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계속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이 회사들은 완벽한 product market fit을 아직 찾진 못했지만, 돈과 인력이 보강되면 꽤 확실한 성장이 보이기 때문에 완전 초기 회사들보단 투자받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하다. 이렇게 투자받을 때 요새 자주 보는 게 기존 밸류에이션보다 더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down round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라운드 대비 5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고, 심하면 7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다.

다운 라운드는 모두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밸류에이션 거품에 흠뻑 젖어서 비싸게 투자한 시리즈 B, C 투자자들은 몇 달 만에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반토막 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다른 임직원과 심사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소신 있게 주장해서 투자했다면, 회사 안에서의 입지도 약해졌을 것이다. 우리같이 일찍 들어가는 투자자에겐 다운 라운드가 진행돼도 돈을 잃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지분 가치가 20배가 아니고 3배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투자하기 때문에, 지분 가치가 20배 될게 3배가 되면, 우리 또한 많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다운 라운드의 충격과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은 바로 회사의 창업가, 대표이사, 경영진, 그리고 임직원들이다. 모두 다 개고생해서 0원짜리 구멍가게를 4,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었는데, 기업가치가 갑자기 400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운 라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회사를 계속 믿고 돈을 주겠다는 신호라서 아주 고맙게, 신속하게, 그리고 신나게 투자받아야 한다. 비상장 회사의 기업가치는 어차피 종이 가치라서, 계속 생존하면서 좋은 제품과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다 보면 다시 충분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들어갔던 많은 후속 투자자들이 다운 라운드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요새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본인들이 들어갔던 기업가치보다 낮은 다운 라운드는 무조건 막으면서, 극단적으로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하락할 바엔 그냥 회사를 폐업하라고 하는 투자자도 있다고 들었다. 뭐, 투자자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투자는 장기전이라서 좋은 팀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기업 가치는 다시 리바운드하기 마련이다.

강도, 지속기간, 빈도

지난주 출장 중에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벽의 이런 문구를 봤다.

“Fitness = Intensity x Duration x Frequency”

건강한 체력은 운동의 강도(=얼마나 빡세게 하냐), 운동의 지속기간(=얼마나 오래 하냐), 그리고 운동의 빈도(=얼마나 자주 하냐)의 함수라는 의미인데, 이 공식에서 중요한건 곱셈이라고 생각한다. 강도, 지속기간, 그리고 빈도를 다 더하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를 곱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몸과 체력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곱셈의 의미가 참 재미있다. 이 세 가지 변수의 범위가 1 ~ 10이라고 가정해보자. 즉, 제일 설렁설렁 운동하면 1 , 빡세게 하면 10 / 제일 짧게 운동하면 1, 오래 하면 10 / 띄엄띄엄하면 1, 매일 하면 10이라고 가정해보자. 제일 빡세게, 아주 오래, 매일 운동하면(=10 x 10 x 10) 1,000이라는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 반대로, 제일 설렁설렁하게, 짧게, 띄엄띄엄 운동하면(=1 x 1 x 1) 1이라는 가장 낮은 수치가 나온다. 그런데 아주 빡세게, 아주 오래 운동을 해도, 자주 하지 않고 띄엄띄엄하면 체력은 100밖에 안 되고, 아주 빡세게, 매일 운동을 해도 운동 시간이 너무 짧아도 체력은 100이 된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균형을 맞춰서 적당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5 x 5 x 5), 체력은 125가 되는데, 이 125라는 수치는 두 가지를 미친 듯이 했을 때의 결과인 100보다 좋다.

여러 가지 수치를 대입해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곱셈의 함수이기 때문에, 운동의 강도, 시간, 빈도 중 하나라도 다른 변수 대비 너무 낮으면 체력의 수치가 낮게 나온다.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강도, 시간, 빈도 모두 최상위로 유지하는 게 최고의 체력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매일 세 시간씩, 세 시간 내내 빡세게 운동할 순 없다. 직업 운동선수도 항상 이런 컨디션을 유지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좋은 체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일주일에 3번 정도 운동하고, 적당한 강도로 매번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위에서 말 한 125 정도의 체력 수치를 유지할 수 있다.

일하는 것도 똑같고, 실은 인생도 다르지 않다. 모든 걸 균형 있게 하되, 꾸준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하는 게 건강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인생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 Older Entries Newer Ent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