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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생태계

날씨가 더워져서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을 청소하기로 했고, 얼마 전에 에어컨 청소 기사를 찾기 위해 내가 평소 사용하는 우리 투자사 숨고 앱을 열었다. 그동안 에어컨 청소를 몇 번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 에어컨을 오랫동안 고치고 청소했던 동네 업체를 사용했다. 워낙 이 아파트를 잘 아셔서 전화 한 통으로 예약했고, 동호수만 알려주니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하셨다. 이런 점은 편리했지만, 막상 작업을 해보니, 시간도 잘 안 지키고, 작업도 대충 하고, 마무리도 엉성하게 했고, 견적도 불투명한 게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아마도 이렇게 대충 해도, 사람의 관성 때문인지, 계속 이 아파트 일감은 끊기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이후엔 숨고를 통해서 에어컨 청소를 했고, 평점과 후기 위주로 일을 맡겼는데 만족도는 훨씬 높았다.

이번에는 숨고말고 우리 다른 투자사 당근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중고 거래로 시작한 당근이 이젠 full 지역/동네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고, 아직 당근을 통해선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내근처’ 탭으로 들어가 보니 마침 에어컨 청소가 가장 상단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 동네에서 평점과 리뷰가 가장 좋은 기사님에게 연락했다. 각 방에 있는 에어컨 사진을 찍고, 집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는 건 약간 귀찮긴 했지만, 당근 고유의 쉬운 UI/UX 때문에 금방 했고, 몇 시간 후에 견적을 받았다. 동네 업체나 숨고와 견적은 거의 비슷해서 바로 승인했고, 당근 챗을 통해서 날짜와 시간을 예약했다. 작업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대만족이었다. 아주 프로페셔널한 분이었고, 작업 예상 시간을 정확히 지켰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하고 가셨다.

끝날 때 기사님에게 당근 통해서 예약이 많이 들어오냐 물어봤는데, 꽤 놀랍게도 이분의 답변은 “당근 없으면 저 못 살아요.”였다. 원래 여러 플랫폼에도 입점했었고, 네이버를 통한 키워드 광고도 했었는데, 이젠 다른 건 다 안 하고 당근에서만 100% 예약받고 에어컨 청소/수리만 한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작업 요청이 너무 많아서 다 처리를 못 해서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강남 지역에서만 광고할 수 있고, 이 지역에서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이동할 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도 당근의 장점이라고 했다.

이 분과 이야기 하면서 당근의 지역 앱으로서의 확장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약간 뿌듯했던 건, 스트롱이 당근앱을 만든 건 아니지만, 당근이 만든 이 훌륭한 생태계가 형성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다는 점이다. 에어컨 기사님도 가족이 있을 것 같았는데,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지역 기반의 생태계를 우리가 초기 투자했던 당근이 조성하고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큰 팔로잉, 큰 책임

Humane이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Humane AI Pin이라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올해 CES에서 꽤 주목받은 제품이다. 애플에서 아이폰 작업에 참여했던 부부 엔지니어가 공동창업했고, 꽤 유명한 투자자들에게 약 3,30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은 미래가 기대되는 스타트업이다.이었다. 나도 이 회사의 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신기했고, 이들이 그리는 화면이 필요 없는 AI 시대가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우리 팀 슬랙에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정도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Humane AI Pin에 대한 사용 후기를 한 유튜버가 올렸다. 그냥 유튜버가 아니라 1,800만 팔로워가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자제품 리뷰어 MKBHD(Marques Brownlee)의 제품 후기였는데, 이 제품에 대한 한 줄 평은 “the worst product I’ve ever reviewed(지금까지 사용해 본 제품 중 최악)”였다.

1,800만 명이 팔로잉하는 유튜버가 이런 리뷰를 올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진 대략 짐작은 했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일단 MKBHD에게 이 제품을 리뷰해달라고 한 Humane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이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해고됐고, 3,3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25분짜리 영상 때문에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고, 어쩌면 정말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관련 내용이 트위터와 레딧을 도배하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한 그룹은 원래 제품 리뷰라는 건 이렇게 객관적으로 하는 게 맞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사용해 봤던 제품 중 가장 좋으면, 그렇게 후기를 올리는 게 맞고, 최악이면 최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반대 그룹은 아무리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팔로워가 많은 유튜버가 이렇게 좋지 않은 후기를 남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뻔히 알면서도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의견이다.

양쪽의 반응을 자세히 들어보고 읽어보면, 솔직히 둘 다 일리가 있다. 만약 나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본다면 나는 솔직한 리뷰는 항상 진리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이런 악평의 리뷰를 당하는 회사의 대표였다면 이 친구를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라는 점이다.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권위 있는 가전제품 매체도 아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욕하는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공학 박사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취미로 방송을 시작한 한 20대 유튜버의 25분짜리 영상 하나가 한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우리 과거 세대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세상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서는, 큰 팔로잉은 곧 권력이고 큰 팔로잉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팔로워들이나 이들이 팔로우하는 크리에이터나 모두 이 점을 명심하길.

롱테일 전에 왕테일

롱테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건 아마도 Wired 잡지의 편집장 Chris Anderson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모든 제품들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틈새 상품이 중요해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뜻하는데, 이걸 그래프로 표현하면 틈새 상품들이 마치 긴 꼬리와도 같아서 long tail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테크 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롱테일이라는 말을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

얼마 전에 우리 투자사 중 물리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이걸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기업의 창업가와 만나서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잘 버틸 것인지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 한때는 이커머스와 D2C 스타트업이 활활 타오를 정도로 핫 할 때가 있었지만, 요샌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가 거의 멸종했다 – 꼬리 이야기를 많이 했다. 롱테일, 숏테일, 팻(fat)테일, 씬(thin)테일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뭔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 롱테일 전략은 필수다. 소수의 제품만으론 큰 매출을 만들기 어렵고,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기업도 가끔 있었지만, 공급망과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다 비슷한 제품을 훨씬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이 저렴한 제품을 경쟁사보다 더 저렴하게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대의 매출을 만드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이젠 힘들어졌다.

롱테일 전략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단일 또는 소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면, 이 제품들에 문제가 발생해서 리콜하거나, 또는 유행이 갑자기 바뀌어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면, 회사를 일으켰던 이 의존도 자체가 회사를 다시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결국엔 다양한 제품과 SKU를 만들어서 롱테일 전략을 구사해야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성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둘이 신나게 했다.

그런데 이 대표님에 의하면 롱테일 전략이 장기적으로 먹히려면, 그 전에 짧지만 두꺼운 왕테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수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단일 제품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매출을 발생시키는 단일 제품, 즉, 이 회사를 대표하는 flagship 제품이 있어야지만,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조금 더 물어보니까, 이 의미 있는 왕테일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롱테일 전략을 구사하려면, 여러 가지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중 많은 제품이 실패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회사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기본 매출을 깔아주는 대표적인 단일 제품이 있으면, 삽질을 연속적으로 해도 현금을 어느 정도 확보해서 회사가 운영될 수 있다. 그러면서 게임 회사 이야기를 했는데, 넥슨이 이런 플레이를 잘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게임 업계에 있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텐데, 절대적인 숫자로 따지면, 넥슨이 출시한 크고 작은 게임 중 망한 게 너무나 많다고 했다. 아무리 작아도 게임 하나 출시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한데, 이런 게임들이 수없이 망해도 넥슨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파와 같은 대표적인 왕테일 게임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계속 이런 실험을 하면서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롱테일 전에 왕테일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나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 임직원들의 자신감과 연관되어 있다. 한 번이라도 베스트셀링 제품을 만들어 본 회사의 임직원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남들이 하지 못한, 업계를 대표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생긴 엄청난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중무장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감은 이후에 출시하는 다른 롱테일 제품들이 계속 실패해도 유지된다. 어쨌든 본인들은 남들이 다 구매하는 대표적인 제품을 만들었고, 몇 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인드로 계속 시도하다 보면, 결국엔 또 다른 히트 상품을 만들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엔 롱테일 전략이 중요하지만, 그 전에 더 중요한 건 왕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서 배웠다.

오래 가는 해자

얼마 전에 돈으로 해자(垓字)를 만드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본이 해자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사용자를 많이 모아야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플랫폼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포스팅이었다. 아마도 매크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돈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고, 이게 유행이 되면 무분별한 자본의 해자는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변해도 항상 경쟁사보다 한 발 또는 두 발 앞서는 기업들은 어떻게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자를 만들어서 차별화에 성공할까?

최근에 내가 정말 오랜만에 두 개의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 한 3년 만에 사용한 듯 – 이런 지속 가능한 해자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가 미국의 ‘당근마켓’인 개인 간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원조 Craigslist였다. 1995년에 창업했으니 이제 거의 30년 된 회사인데, 이 서비스 UI와 UX를 보면 아직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새도 이렇게 촌스럽고 낙후된 UI를 사용하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도 매우 놀라운데, 아직도 미국에서는 절대다수가 크레익스리스트를 통해서 중고 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쇼킹하다. 비상장 스타트업이고 투자도 안 받았기 때문에 수치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 사이트의 MAU는 2.5억으로 알려져 있다. 당근마켓의 13배 이상의 트래픽이다. 이런 후진 UI를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매우 좋아하고, 만족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오랜만에 이용해 본 두 번째 서비스는 eBay이다. 이베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아직도 이베이를 사용해?”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매달 1억 명 이상이 이베이를 애용하고 있다. 크레익스리스트와는 다른 면에서 너무 정신없는 UI와 UX의 대명사가 된 이베이지만, 아직도 매달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생각해 보면, 크레익스리스트와 이베이만큼 겉으로 보면 단순하고 시장이 큰 비즈니스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경쟁사들이 등장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비슷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새로운 회사가 돈을 아무리 써도 이 두 회사가 만든 견고한 해자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시장과 고객의 오래된 신뢰를 기반으로 해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수십 년 동안 수억 ~ 수십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신규 경쟁사들은 경험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슈를 개선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를 얻었고,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가 시장의 신뢰로 발전하면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신뢰를 기반을 만들어진 해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으로 만드는 해자는 상당히 무섭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시장의 신뢰와 고객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product iteration과 가설 검증을 해야 하고, 아주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 아주 작은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 이런 작은 접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누적되면 돈의 핵폭탄을 투척해도 무너지지 않은 해자가 완성된다.

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최근에 미국에 2주 넘게 출장을 갔었다. 한국은 이제 대부분의 직장이 재택근무를 끝냈거나,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미국은 아직도 많은/대부분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WFH(Work From Home)가 이젠 복지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문화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채용 공고를 보면 “3-2” , “4-1”과 같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3일 출근-2일 재택, 4일 출근-하루 재택, 뭐 대략 이런 의미이다.

스트롱도 팬데믹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했고, 이땐 어쩔 수 없이 WFH의 기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하고 출근을 기본으로 바꿨다. 이젠 기본적으로 모두 다 출근하고, 상황에 따라서 재택근무 하는 체제로 돌아왔는데, 생산성이나 집중력 면에서 훨씬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그 어떠한 데이터를 참고한 적도 없는, 100%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재택근무를 회사의 기본방침으로 바꾸면서 미국 회사들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엔 미국 전체의 생산성 문제로 확산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미국 출장에서 나는 6개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많은 회사를 만났고, 서부/중부/동부 직장인들의 업무 패턴을 살짝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는데, 지역, 나이, 직군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발견한 요소는 ‘사이드잡’이다.

모든 미국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이 월급을 받는 풀타임 직업 외에 사이드잡 한두 개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이건 고액연봉자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풀타임 직장에서 벌고, 평소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두 개씩 몰래 하고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재택근무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 꼭 해야 해서 사이드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태도는 많은 걸 말해주고, 이런 직원들이 있는 회사의 장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므로 언제든지 그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사이드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이 분야에서도 좋은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직장인들을 위한 사이드잡/긱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회사에 나오면 전반적인 분위기와 peer pressure가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집에서 혼자 일하면 마음대로 놀고, 쉴 수가 있다. 여기에 이번에 내가 또 목격했던 건, 빠르게 합법화되는 마리화나인데,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피는 걸 봤다. 중독성이 담배보단 약하다곤 하지만, 마리화나를 핀 후에, 이 정신으로 다시 바로 업무로 돌아가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직장인들의 농땡이, 사이드잡, 그리고 레크리에이셔널 마리화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인고, 내가 이야기했던 어떤 CEO들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옵션이 없으면 요새 젊은 친구들 채용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이제 재택근무는 옵션이 아니라 영구적인 고용 형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미국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이분들 중 일부는 오히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이 tech를 이끄는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완전히 없애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말이 anti-근로자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한국같이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없앤 국가들이 생산성의 경주에서 이번 기회에 미국을 뛰어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