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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지옥

오래된 영화라서 어린 분들은 모를 수도 있는데 윌 스미스 주연의 Enemy of the State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우주에서 본 지구가 나온다. 정말 블루마블같이 아름답다. 그리고 화면이 빠르게 줌 인 되면서, 세계, 미국, 그리고 더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볼티모어의 한 거리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촬영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모두 한 번 정도는 봤을 거다.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더 가까이 확대해서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나 동경의 시부야 횡단보도를 보면, 사람들이 개미같이 바글바글하다.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럽고, 한 마디로 개판 오 분 전이다.

회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더욱더 그렇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도 얼마 전에 2,0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는데, 요새 시장에 돈이 많고, 스타트업의 혁신 속도가 시장의 유동성을 능가하기 때문에, 엄청난 밸류에이션에 엄청난 투자를 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큰돈을 투자받은 유니콘 회사들은 기가 막힌 내부 시스템이 있고, 모든 일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겉으로 보면 이게 맞다. 돈도 많고, 이 돈으로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하고, 물론,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좋은 시스템도 있다. 그래서 이런 회사가 뭔가 큰일을 하면 우린 대부분, “역시 큰 회사가 하니까 다르네” , “역시 제대로 된 회사답게 일 처리를 하네” , 뭐,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현미경이 있어서, 이런 회사를 확대해서 본다면, 또는, 직접 회사로 찾아가서 회사에서 몇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관찰해보면, 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걸 알게 된다. 겉으로는 모든 게 너무 평화롭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회사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개판이다. 실은, 지옥도 이런 개판 지옥이 없다고 난 생각한다. 이런 스타트업은 주로 단 시간안에 빠른 성장을 했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하다보니 채용, 제품개발, 영업, 마케팅, 기획 등의 모든 일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이렇게 전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일들이 빨리 진행되면 정말로 정신없고, 비행기를 만들고 나는 게 아니라, 날면서 동시에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드는 일을 매일 매일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이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정말 혼돈 그 자체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판 지옥은 좋은 의미에서의 개판 지옥이다. 그만큼 기업이 빨리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내부 멤버들이 지속해서 그 성장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뭔가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거나,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자신을 변화하지 않는다면, 현미경으로 회사를 확대해서 봐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런 회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주로 망한다.

이제 창업해서 시드 투자를 받고, 하루하루가 새롭지만, 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표들이 우리에게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스트롱 회사 중 수백억 원대 가치인 회사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우리같이 노가다로, 무식하게 해결하진 않겠죠?”
“당근마켓과 같은 유니콘 회사는 어떤 시스템이 있길래 기름칠 잘 된 베어링같이 잘 돌아가나요?”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항상 똑같다.
“거기도 다 똑같아요. 완전 개판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없어요.”

고속 성장하고 있는 우리 투자사 사무실에 갔는데, 이런 큰 포스터가 보였다. “If everything’s under control, you’re moving too slow(모든 게 잘 통제되고 있다면, 우리가 너무 느리게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작은 스타트업이나, 큰 스타트업이나, 잘 되고 성장하는 회사라면 모두 다 똑같이 개판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현미경으로 보면 개판도 이런 지옥 같은 개판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발전이 있고, 그래서 고속 성장하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8월

8월은 디지털 자산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굉장히 심장 쫄깃한 한 달이었다. 레닌의 명언 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십 년이 있고, 수십 년이 일어나는 몇 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8월이 바로 이런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나야 할 일이 4주 동안 일어난 기간이 아닌가 싶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정책 중 하나인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이 얼마 전에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라는 법안은 지금 미국이 필요한 법안인 것 같다. 이 법안을 통해서 미국이 재원을 마련하고 – 여기서 말하는 재원은 미국인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는 의미다 – 이 돈으로 도로와 교량, 광대역 인터넷, 전력 그리드 등을 구축하고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바이든이 대통령 될 때부터 이미 모두 예상했던 방향이고, 부자들한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겠다는 것도 다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의 ‘Section 80603: Information reporting for brokers and digital assets.’라는 부분을 보면, 1조 달러 예산 중 280억 달러(=33조 원)는 그동안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을 사고 팔 때 징수되지 않은 세금을 통해서 조달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워낙 새로운 분야이고, 관련법도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지금도 디지털 자산 양도세를 많은 미국인들이 내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라서 그동안 걷지 못한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정책도 이해한다.

그런데 여기엔 작은 문제 하나와, 큰 문제 하나가 있다.
일단 작은 문제는, 어떤 계산을 통해서 280억 달러라는 숫자가 나왔는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어떻게, 누가, 얼만큼의 세금을 내야 하는지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다. 디지털 자산을 사고파는 곳은 코인베이스와 같은 거래소이기 때문에 거래소에는 거래 기록이 저장되고, 이들이 미국 국세청에 거래 기록을 보고하면, 국세청이 세금을 징수하면 된다. 이 법안을 보면, crypto broker는 국세청에 이런 거래기록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적혀있고,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이 crypto ‘broker’의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있다. 법안에서 정의하는 브로커에는 코인베이스와 같은 거래소도 포함되지만, 채굴업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까지 모두 포함된다. 거래소는 고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에 보고하는 게 가능하지만, 채굴업자와 개발자는 디지털 자산의 거래에 관여하곤 있지만, 거래를 하는 사용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국세청에 보고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세청에 협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데, 이 법안이 만약 통과되면 많은 채굴업자와 개발자들이 미국을 떠나지 않을까 싶다.

왜 브로커의 개념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됐을까? 법안을 만드는 공무원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자산이나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그냥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과 내용을 기반으로, 크립토 사용자들이 탈세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세금을 걷자는 취지로 시작했을 것이고, 그냥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몇 의원들이 재무부나 증권거래위원회의 입김을 받고 악의를 갖고 이 내용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실은 이 법안 자체는 2,702 페이지인데, 이 중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부분은 딱 4장이다. 제대로 보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서, 많은 사람은 이게 그냥 슬쩍 통과시키려고 하는 날치기 법안이 아니냐는 불만도 많다.

그런데, 정부도 예상치 못한 반발에 조금 놀란 것 같다. 이번 계기로 전 세계의 디지털 자산 시장이 똘똘 뭉치고 있고, 이들은 이 법안을 개정시키기 위해서 합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나 같은 일반인들도 해당 구역의 의원들에게 이 법안을 개정해달라고 하는 4만 개 이상의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고 하니 조금 놀랍긴 하다.

실은, 디지털 자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과거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는 걸 항상 경험했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대부분의 코인 가격은 오르고 있고, 이 분야에 집행되는 투자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게 정부에 대한 시장의 “엿이나 먹어라”라는 반항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크립토 시장에 믿음이 넘쳐흘러서인지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조금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이 법안을 개정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디지털 자산을 통해서 탈세하고 싶어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과 프레임을 만들어야지 혁신을 죽이지 않는 차원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나라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법안에 대해서 이런 생산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건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성숙도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페이스북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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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imagine39/크라우드픽>

많이 쓰는 사람이 있고, 적게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 주변에 페이스북을 안 쓰는 지인은 1%도 안 된다. 특히, 나는 페이스북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고, 이미 페이스북이 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됐다. 솔직히,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있지만, 페이스북 없인 살 수 없고, 그래서 페이스북이 웬만한 자동차 회사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높은가보다. 매일 바뀌지만, 페이스북의 시총은 1,000조 원이 넘는다.

나는 페이스북을 2006년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전에는 .edu 이메일이 있는 학생들만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수 있었는데, 아마도 2006년도부터 그냥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완전히 오픈했고, 이때 미국 친구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나도 회원 가입을 했다. 당시 페이스북이랑 지금의 페이스북은 완전히 다른 제품이고,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는데, 그동안의 이 눈부신 성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일사분기 페이스북의 MAU는 28.5억이다. 어마무시하다. 이는 한국 인구의 50배 이상이고, 14억 명 중국 인구의 두 배인 셈이다. 즉, 나라로 따지면, 페이스북 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인데, 큰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정말 잘 만들었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 전 세계 VC 투자금 중 40%가 결국엔 페이스북과 구글에서 광고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던데, 참 웃지 못할 일인 것 같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각각 절반씩 흘러간다고 가정하면, 전 세계 VC 투자금의 20% 정도가 페이스북의 지갑으로 간다. 과학적으로 분석한 건 아니지만, 대략 찾아보니, 페이스북의 2020년도 매출이 $86B 이었다. 페이스북의 상위 100개 고객의 매출 기여도가 20% 정도인 $17.2B라고 하니, 나머지 $70B 정도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2020년도 전 세계 VC 투자금 규모는 대략 $300B이고, 여기서 20%가 페이스북에 갔다고 하면, $60B이니, 얼추 맞지 않을까 싶다.

지금 페이스북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난받고, 소송당하고 있고, 항상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있지만, 17년 전에 하버드 대학교 기숙사에서 2학년이었던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나라? 치곤 나쁘지 않게 성장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 인터넷, 모바일, 소셜과 플랫폼이 합쳐지고, 여기에 멱법칙(power law)과 복리가 제대로 작용하면, 어떤 성장이 가능하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명 최고의 산출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팀이라는,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필수재료이다.

그냥, 오늘은 페이스북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몇 자 적어봤다.

답은 데이터에 있다

우리 투자사 중 지지틱스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게임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차민창 대표님이 2016년도에 창업한 회사인데, 게임을 만들거나 퍼블리싱하는 회사가 아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임 중 하나인 라이엇게임즈의 대표작 LoL(League of Legends)의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게이밍과 이스포츠라는 큰 시장의 스타트업인데, 회사의 정확한 비즈니스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다.

LoL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마치 야구나 농구처럼 팀원들과 하는 팀 게임이라서 혼자서만 게임을 잘한다고 상대팀에게 이기는 게 아니다. 팀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건 이 개인들의 팀 플레이, 그리고 팀의 우승에 대한 기여도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LoL에서 팀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드는 최적의 팀 전략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스포츠 영화의 걸작 머니볼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를 채용하고, 배치하면서 승률을 높였는데, 지지틱스는 LoL을 위한 머니볼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 게이밍 산업을 우린 이스포츠(e-sports)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스포츠인 야구나 농구와 같이 자본이 투입되면서, 상당히 큰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짧아서 이스포츠에 대해서 “이게 무슨 스포츠야? 애들 장난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 숫자를 보면, 이미 웬만한 운동경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즐기는 종목이 됐다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됐다). 전통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관객은 이제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이스포츠 관객은 이제 태어나는 사람들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어떤 게 더 큰 시장을 형성할진,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지지틱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회사의 엔지니어 조민규 님의 글을 참고하면 된다. 6월 기준으로 110만 MAU, 8만 DAU, 그리고 2,200만 PV를 달성하고 있는데, 게임도 아니고 게임 데이터 분석 플랫폼치곤 상당히 높다.

현재 지지틱스에서 좋은 개발자분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recruit@your.gg로 연락하거나 로켓펀치의 채용공고를 참고하면 된다. 게임을 좋아하면 더욱더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데이터로 세상을 바꿔보는 그 도전 자체를 즐기면 된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LoL도 답은 데이터에 있으니까.

레이저 집중

요새도 초등학교에서 이걸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해가 떠 있으면, 돋보기를 이용해서 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는 실험을 했다. 빛 에너지, 빛의 굴절, 빛의 집중 등과 관련된 과학의 원리를 이런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서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우주에 흩어져 있는 햇빛을 이렇게 한곳에 모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걸 배우고 어린 마음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새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집중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항상 예시로 드는 게 이 돋보기로 종이 태우기 이야기다.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떤 분들이 보면 “라떼는 말이야…” 하는 꼰대 같을 수도 있지만, 사업에서의 집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만큼 적절한 비유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 이야기를 한다.

한 가지에만 초집중하는 걸 미국인들은 laser focus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돈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도 모두 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손발로 실행은 항상 잘못 하는 게 이 laser focus이기도 하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왜 항상 창업가들은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할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자신을 너무 믿어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면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경우가 있고, 이와 반대로 자신감이 없어서, 어디서 매출이 나오고, 어떤 제품이 잘 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하는 경우가 있다.

B2C, B2B, B2G,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등…가끔 이 모든 걸 다 하는 인원 10명 이하의 스타트업을 만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이런 회사가 실은 꽤 많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잘 안되는 게 사업인데, 이렇게 많은 일을 굳이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겉으로 보면,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다 똑같기 때문에 그렇게 회사의 자원을 많이 활용하는 게 아니라는 답을 많이 한다. 또는, 다른 일이긴 하지만, 회사의 핵심은 이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그냥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핵심이 아닌 5가지 일에는 대표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할애한다는 내용과 비슷한 답변을 많이 듣는다.

어떤 사업이 잘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은 걸 하는 창업가의 딜레마는, 이렇게 사업을 하면 사업이 망할 때까지도 어떤 사업이 잘될지 전혀 감을 못 잡는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타이밍이나 트렌드에 따라서 이 중 한 가지가 잘 되는 시점이 오는데, 그러면 그 사업에 집중하고, 또 이게 잘 안되고 다른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으면, 또 그쪽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계속 근근이 먹고 사는 걸 반복하는 사이클에 빠진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분야에서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뾰족함을 절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되지 못해서, 계속 이것저것 벌리기만 하고, 절대로 회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손과 발로 실행을 잘 못 하는 게 레이저 집중이다. 스타트업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단, 덜 해야지만 성공의 확률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집중의 돋보기가 혼란의 렌즈가 되지 않도록 모두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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