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콘택트렌즈 사업을 하는 옵틱라이프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는 본인들이 직접 콘택트렌즈를 제조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 또한 유통하고 있는데, 한국은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옵틱라이프에서 고객이 원하는 렌즈에 대한 결제를 하고, 실제 픽업은 전국 가맹점 중 하나에서 한다. 가맹 안경점은 특별한 회비나 수수료는 내지 않고, 옵틱라이프가 구매 건당 이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불법인 이유는 렌즈가 각막에 직접 접촉하는 의료기기로 분류되어서, 잘 못 사용 시 시력 저하나 감염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대면 판매를 통해 사용법 안내와 건강 상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규제의 취지는 잘 이해하지만, 국민 건강을 너무 과하게 강조하는 반면, 소비자의 편의성과 선택권은 너무 과하게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이 법은 국민들의 건강보단, 대한안경사협회라는 특정 단체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안경사협회 회원 5만여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법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더 좋고, 더 다양하고, 더 저렴한 콘택트렌즈를 중간상인 없이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은 위에서 설명했던, 가맹점에서 렌즈를 픽업하는 복잡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실은, 이 모델을 좋아하는 안경사들도 상당히 많다. 안 그래도 오프라인 안경사의 트래픽과 매출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픽업 서비스를 통해서 수수료 매출이 발생하기도 하고, 렌즈를 픽업하기 위해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안경이나 다른 제품들을 구매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추가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델은 서로에게 유익한, 상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안경사협회가 렌즈 픽업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몇 곳을 의료기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여기에다 안경사협회 회원사 중 픽업 네트워크에 가맹한 안경원에 내용증명도 보내고, 계속 이 네트워크에 가입해 있으면 안경사 면허정지까지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안경사협회는 국민 눈 건강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들은 국민 눈 건강 걱정은 별로 안 한다. 그런 사람들이 안경원을 방문할 때마다 더 저렴하고 좋은 제품도 있는데, 무조건 비싼 제품을 불투명한 가격에 판매할 리가 없다. 이들은 국민 눈 건강 때문이 아니라, 쿠팡이 이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무력화했듯이, 새파란 스타트업에 잠식돼 이들의 렌즈 보관함으로 전락하는 걸 훨씬 더 우려한다. 즉, 오랫동안 스스로 노력도 안 하고, 변화하지 않아도 아주 단단했던 철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옵틱라이프와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바로 콘택트렌즈가 필요한 국민들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선택하고, 안경원에서 픽업한 렌즈를 착용해서 각막이 손실되거나 눈 건강을 잃었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국민 눈 건강을 운운하면서 이런 서비스들을 다 막아버리면, 결국엔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안경원에서 한정된 종류의 제품을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건 안경사협회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이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에 타다에 대한 글을 내가 꽤 많이 썼는데, 그때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잘 모르겠다. 이 산업을 자세히 보면, 한국에서 온라인 안경/콘택트렌즈 유니콘이 아직 안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규제 때문인 것 같은데, 이들도 세월의 흐름을 평생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이나 규제는 다수의 국민과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고, 결국 법이 바뀌면, 기존 안경사들은 많이 망할 것이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회사나 단체의 해자가 규제라면, 그리고 규제가 그 유일한 진입장벽이라면, 이런 조직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규제가 없어지는 그 순간에 단숨에 쓰러진다. 내가 이들이었다면, 소송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겠다. 왜냐하면, 소송에 이기든 지든 결국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인구 감소와 시장의 크기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면, 한국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인구 감소,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력 감소가 가장 큰 걱정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는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말은 5,000만 인구가 사는 한국이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닌데, 인구가 하락하면 시장이 더 작아져서, 한국에만 투자하는 스트롱벤처스에 본인들이 투자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과연 앞으로 한국에서 몇 개가 더 나올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 분야에서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의미다.

며칠 전 대선후보 토론을 초반에만 잠깐 봤는데, 인구 감소가 아주 중요한 국가 아젠다였다. 각 후보들의 대책과 공략은 흥미로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 현실성은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도 않고, 인구 감소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학술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초기 벤처 투자를 하면서 다양한 나라와 시장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고, 운용 자금이 상당히 큰 외국 투자자들과 이 주제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논쟁하기도 했는데, 관련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여기서 두서없이 공유해보고 싶다.

일단 한국의 인구 감소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결혼을 안 하고 있거나, 그 시점이 늦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출산을 안 하거나 못 하므로, 우린 인구절벽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건 내가 봐도 명확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리고 출산 감소를 막기 위한 한국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은 이미 실패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깊게 들어가진 않겠지만, 자녀를 많이 출산하면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 건, 애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라는 일차원적인 사고에 근거한 정책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애 낳는 걸 포기하는 부부도 있지만, 저출산의 원인은 실제론 매우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출산율 감소는 전 세계 모든 선진국이 겪고 있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단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그 저조함이 더 심각할 뿐이다.

인구 감소를 해결할 방법의 하나는 남북통일인데, 이건 현재로선 쉽지 않다. 다른 방법은 – 그리고 이게 더 쉽고, 현실적이다 – 우리도 외국에서 사람을 수입하는 것이다. 지금도 지방이나 시골에 가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보단 외국인 지식근로자를 한국으로 많이 수입해야 한다. 이들은 고용 창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한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국인 체류 조건과 법이 상당히 까다롭고, 외국인 비자도 무려 50가지가 넘게 존재한다. 자국민의 고용 보호 때문에 생겨난 법들인 거로 알고 있는데, 이제 우리도 이런 법들을 빨리 없애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쉬운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한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인당 GDP 증가에 기여해야 한다. 실은, 우리 주변을 잘 보면 이미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편의점에도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일 하고 있고, 가끔 미용실에도 보면 외국인들이 보조 미용사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외국인들이 몇 명 있다. 이들은 Korean 교포가 아니라 완전히 외국인들인데, 미국과 유럽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직장 경력도 있는데, 창업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현재 한국에서 수년째 살면서 연 매출 수십억 원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한국에서 고용을 창출하면서 세금을 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린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아주) 장기적으론, 한국도 미국 같은 melting pot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구가 감소하면 한국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완벽하게 동의할 수가 없다. 노동력이 줄면 생산성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지만, 이제 한국은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우린 더 이상 물리적인 제품을 제조해서 생산하는 단순노동 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됐고, 충분히 로봇이나 AI와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인당 효율과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항상 더 강조하는 doing more with less 개념을 이젠 한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도입해야 하고, 이 전환을 우리가 잘하면 더 적은 인구로 훨씬 더 높은 출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머릿수가 5,0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줄면, 국내 내수 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럴수록 우린 해외로 나가야 하고 수출해야 한다. 이미 한국 기업들은 일본, 동남아, 미국, 유럽 등의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소수 기업은 진출에 성공하고 있다. 즉, 한국의 TAM은 이제 한국인 5,000만 명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이다.

약간 다른 각도로 보면, 우린 처음부터 작은 땅덩어리에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긴 하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약 530명/km² 인데, 전 세계 인구 밀도 12위이고,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나라 중 인구밀도는 3위다. 솔직히 너무 숨 막히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땅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선 인구가 좀 줄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더 쾌적한 나라에서 여유롭고 쾌적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면에서는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사람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줄어드는 인구지만, 이 줄어든 인구의 평균 교육 수준, 소득수준, 그리고 업무 몰입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야 한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결국엔 이들이 이제 한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니까. 내가 과거에 주야장천 주장했던 것처럼, 이럴수록 우린 정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투자, 그리고 바로 해고

2021년도에도 투자받고, 또 최근에 투자받은 대표들은 두 시점에서의 전반적인 업계 분위기와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021년도는 나의 짧은 VC 경력 중 가장 흥미로운? 한 해였고, 돈이 완전히 메마를 것 같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시장에 풀렸던 시기였다.

이때 투자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회사의 실적이나 수치 대비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훨씬 더 많은 투자금을 받았고, 당시 투자자들 분위기는 투자금을 최대한 빨리 소진해서 더 높은 밸류에 또 투자받자는 게 지배적이었다. 회사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로 건강한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최대한 많이 채용하고, 최대한 마케팅 많이 태우고, 최대한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 투자받은 돈을 최대한 빨리 쓰고, 내실보단 더 커진 외형으로 이전 가치보다 5배 이상의 밸류로 또 투자 받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당시에 신기했던 게, 좋은 창업가들이지만, 매출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창업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회사들이 기업 가치 200억 원 이상에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투자하는 VC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이 VC들에게 뭘 보고 이렇게 비싸게 투자했냐고 물어보면, “몇 달 뒤에 더 높은 가치에 투자받으면 되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만났던 이런 회사들은 대부분 지금은 문을 닫았거나,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시에 투자받았던 200억 원 이상의 밸류보다 훨씬 낮은 50억 원대 밸류로 다운 라운드를 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비즈니스 자체도 피봇팅을 하기도 했다.

요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VC들은 검토하는 회사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 그리고 기업가치가 합리적인지, 여러 가지를 매우 꼼꼼하게 챙긴다. 투자금의 용도가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유료 마케팅을 하는 거라면, 3년 전만 해도 이 전략에 손뼉 치던 투자자들은 이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 전략을 바라본다. 그래서 2021년 도에도 투자받고, 최근에 또 투자를 받았던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온탕에 있다가 갑자기 냉탕에 들어온 기분이고, 같은 투자자 지면 그동안 분위기와 투자 전략이 어쩜 이렇게 달라졌는지 상당히 놀란다.

우린 2021년도에도 열심히 투자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미친 밸류에이션에 투자는 가급적 자제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들이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밸류가 아니면 웬만하면 안 들어갔다. 실은, 이렇게 하고도 그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투자도 잘 받으면, 우리가 실수했는가 후회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한 것 같다.

요새 우리가 신규 투자를 하거나, 기투자사들에 후속 투자를 할 때,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투자하면서 대표들에게 이번 라운드의 목적은 이 투자금을 안 쓰는 것이라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키려면 당연히 돈을 써야 하지만, 그만큼 돈을 소중하게 쓰고,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면서, 가능하면 이번 투자금으로 흑자를 만들어 보라는 경고이자 부탁이다.

둘째는, 투자받아서 사람을 더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완전히 그 반대 전략을 구사하라고 한다. 즉, 이번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에 기여를 못 하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라고 한다. 투자를 받는 회사들은 나름 잘하는 회사지만,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고, 이걸 가능케 하는 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얼마 전에 채용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채용하지 말고, 100% 기여를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보내라고 한다. AI도 좋아져서, 사람이 하는 low level 작업은 충분히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가지 경고이자 부탁이자 조언은 물론,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가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투자를 크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해라.
투자를 적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대량 해고해라.
투자를 못 받았다면? 돈을 더 아끼고, 사람 절대 채용하지 말고, 있는 적은 인력도 더 줄여라.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로 온 것을 환영한다.

VC는 끝나지 않았다

요새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VC의 종말에 대한 포스팅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제 이 낙후된 VC의 투자 모델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AI의 시대에 아직도 사람에게 집중하는 VC 모델은 더 이상 옛날처럼 작동할 수 없다는 주장들을 강하게 한다.

실은 나도 몇 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VC가 끝났다는 말은 아니라, VC의 비즈니스 모델이 너무 오래돼서, 이제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돈을 버는 방식도 조금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런데, 2017년도에 쓴 글인데, VC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도 2/20 수수료 모델 그대로이긴 하다.

VC가 죽었다고 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가지 공통된 부분이 있고, 솔직히 이 내용들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서 나도 동의한다. 2021년 대비 시장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이 절반 이상이 줄었다는 점, 엑싯 또한 신통치 않아서 수익률이 예전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점, VC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들 또한 과거 대비 VC 펀드 출자를 상당히 줄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벤처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돈 버는 게 어려워졌다. 엑싯이 안 되면, 회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회수가 안 되면 VC에 자금을 제공하는 LP들에게 돈이 배분되지 않고, 이렇게 되면 시장에 돈이 안 돌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시기임은 맞다.

이런 거시적인 시장 상황 외에도 AI의 발달로 인해서 똑똑한 창업가들은 큰 투자 없이 큰 사업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이상 VC 투자가 이들에겐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 개나 소나 펀드를 만들어서 창업가 대비 VC의 비율이 점점 더 VC에게 불리해지는 상황, 그리고 이제 과거와 같은 큰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는 이론 등으로 인해서 VC라는 산업 자체가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특히, AI가 좋아지면서 조만간 사람이 하는 VC 투자를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의견과 시장 상황은 틀리지 않았다. 나 같은 VC도 매일매일 몸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VC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완전히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창업가들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VC 산업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고, 이들이 투자한 좋은 회사들이 큰 엑싯을 하면서 그들이 투자하는 지역의 경제를 가장 크게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그 어떤 산업에서나 볼 수 있는 보정 과정이다. 코로나 기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빨리 시장에 풀려서 VC라는 게임이 살짝 고장 나긴 했지만, 이 또한 고쳐지고 치유될 것이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고,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전략으로 투자했던 건강한 VC들만 살아남을 것이고, 살아남는 VC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 어떤 시장이라도 너무 커지고, 돈이 너무 많이 집중되면, 이상한 사람들과 회사가 항상 생길 수밖에 없는데, 건강한 시장이라면, 결국 이런건 스스로 정화된다.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2020년과 2021년, 전 세계에 너무 많은 신생 VC가 생겼고 – 한국도 심할 정도로 많이 생겼다 – 이미 투자하고 있던 VC들도 펀드 규모를 엄청나게 불렸고, 그 큰 펀드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더 큰, 더 말도 안 되는 투자를 상당히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우리가 모두 지금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건재하면서 잘하는 VC들도 많다. 이들은 시장이 어떻든 그냥 본인들이 잘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고, 본인들이 해야 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투자하는 방법, 규모, 전략 등은 변하고 보정되고 미세조정 될 수 있지만, VC라는 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VC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VC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분들의 프로필을 대략 보면, 한 번도 제대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과 VC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투자는 거의 안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분들의 말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