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주 전체 투자팀이 모여서 현재 각자 보고 있는 회사, 같이 검토하고 있는 회사, 그리고 투자 결정을 해야 하는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큰 VC들과 같이 심각하고 딱딱한 투자위원회(IC: Investment Committee) 미팅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우리의 IC 미팅과 결정도 다 한다. 우리 투자팀은 나를 포함해서 6명이다. 이 분야에서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고, 나이도 30대 후반 ~ 50대 초반의 투자팀원이 3명이고, 젊고 상대적으로 투자 경험이 적은 20대 투자팀원이 3명이다. 경험의 차이, 나이의 차이, 자라온 환경의 차이, 남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 등, 이 모든 것을 감안해보면 같은 회사와 창업팀에 대해서 각 투자팀원이 보고 느끼는 건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미팅은 다이나믹하고, 컬러풀하고, 재미있다. 모두 성숙한 어른이라서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가지 않는 범위에서, 같은 사업과 창업가를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상대방을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하지만 동시에 나름 직설적이고 투명하게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팀 차원에서 공유하는 건 말 같이 쉽진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린 모두 다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투자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주간 미팅에서 하는 생각이나 발언을 보면, 내가 요새 선호하고 찾는 창업가는 뭔가 거창한 사업을 하겠다는 분들보단, 작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분들이다.
어떤 창업가는 처음부터 거창한 그림과 비전을 제공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엄청난 전략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데카콘을 목표로 창업했고, 세상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큰 포부가 있다. 이런 분들은 작은 사업엔 관심이 없다. 작은 사업을 목표로 했으면 굳이 이 힘든 여정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생각하는 모든 단위 자체가 너무 크다. 원하는 투자금도 크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지만, 원하는 밸류에이션도 너무 크다. 이런 분들과 미팅하면 재미있긴 한데, 현실성에 있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이런 분들이 본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면 데카콘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완전히 반대의 창업가들도 있다. 이들의 그림은 처음부터 매우 작다. 그림이 작기 때문에 비전이 작거나, 창업 당시에는 비전 자체가 없다. 그리고 뚜렷한 전략도 없다. 즉, 아주 작은 시장에서 아주 작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그럼 이 사업이 아주 잘 됐을 때의 최종 목표나 비전에 대해서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냥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계속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 과정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면, 뭔가 더 큰 비전이나 그림이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요샌 후자의 창업가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당장 존재하는 불편함과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금액으로 환산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TAM, SAM, SOM 등으로 나눠보면 아주 작다. 하지만, 거창한 비전을 세우고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기루에 갇혀서 꿈만 좇고 그 어떤 것도 실제로 만들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큰 시장과 큰 비전을 믿는 창업가들보단, 나는 작은 시장에서, 아주 작지만, 확실한 real problem을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을 요샌 선호한다.
이런 마인드로 사업을 하다 보면, 아주 작은 시장 같아 보였던 문제가 생각보다 더 큰 시장이 되는 걸 많이 경험했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쌓이다 보면 아주 큰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