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용기가 복리처럼 불어날 때

지난 2년은 대부분의 창업가에겐 20년 같이 느껴졌을 정도로 길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투자사 중에서도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곳도 있지만, 이런 회사들은 아웃라이어이고, 대부분 정말 배고프고, 춥고, 스트레스 가득 차고, 하루가 이틀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창업가라는 왕관의 무게를 버텼다. 이 중 이젠 사라진 스타트업도 꽤 있고, 잘 살아남아서 이제 다시 성장의 준비를 하는 곳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데미지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이제 바닥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창업가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여전히 전반적인 분위기와 기조는 긍정적이어서 나에게는 희망이 보인다. 원래 내가 아는 좋은 창업가들은 고비를 잘 참고, 포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초긍정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 같으면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고개를 들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매일매일 크고 작은 불을 태연하게 끌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본다. 최근에 이런 창업가들을 보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용기’라는 단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절망적인 순간에 이런 대단한 용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창업가 몇 분과 이야기를 해보고, 여러 가지 기사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나만의 개똥 답안이 완성되긴 했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중 기억나는 최악의 상황이 대부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이들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 봤던 또 다른 이면은, 바로 이 최악의 상황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라고 할 정도로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실제로 걱정했던 것처럼 정말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항상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어떻게 길을 찾고, 잘 극복해서 살아 남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최악이라고, 정말 망할 수 있겠다고, 정말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어찌어찌해서 살아 남으면, 여기서 말콤 글래드웰이 정의한 용기가 작용하는 것 같다. 글래드웰이 정의한 용기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만드는 용기는 선천적인 게 아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니 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때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용기이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위에서 말 한 최악의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오고, 고비가 올 때마다 실은 그 심각함과 나쁜 정도는 배가된다. 고비가 올 때마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걱정을 하지만, 어찌어찌 죽지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하고, 상황을 극복하고 뒤 돌아보면 또 그렇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생각이 몸에 학습되면서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용기에도 복리가 적용된다.

이렇게 용기에 복리가 적용되면 초인이 된다. 슈퍼맨 같은 초인이 아니라 어려움과 장애물에 초인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그런 강하고 용기있는 초인 말이다.

힘들다. 바쁘다. 피곤하다. 어쩔 땐 정말 죽을 것 같다. 나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는 오죽하랴. 하지만, 내일 하루 더 싸우기 위해서 오늘 죽지 말고 버티자. 버티면 죽지 않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용기가 복리로 쌓일 것이다.

참 어려운 상장 시장

우리는 쿠팡의 매우 작은 주주이다. 스트롱이 쿠팡에 직접 투자하진 않았지만, 스트로의 포트폴리오였던 Recomio라는 회사가 쿠팡에 주식교환으로 인수되면서 쿠팡의 주주가 됐고, 상장 주식을 대부분 팔았지만 아직 소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의 포트폴리오인데 이미 이 펀드의 나이는 14살이 되어 간다. 청산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의 LP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물어봤던 질문이 남은 쿠팡 주식 처분 시점이다.

이분들에게 나의 한결같은 답변은 “한국에 살면 직접 체감할 수 있는데, 쿠팡은 한국의 이커머스를 완전히 다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현재 쿠팡 주가는(당시 $30 ~ $35 정도)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르면 팔 건데 그게 최소 $50 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였다. 실은 매우 확신에 찬 자신 있는 답변이었다. 솔직히 겉으로는 $50라고 했지만, 내 마음속엔 쿠팡은 $100까지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만 해도 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쿠팡이 보여준 태도와 중요한 순간에 했던 결정들의 질이 상당히 실망스러웠고, 그 결과 때문에 현재 쿠팡 주식은 $20를 하회하고 있다. 역시 어떤 LP 분들은 나에게 과연 쿠팡 주식이 앞으로 $50 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사가 상장하면, 스트롱은 어떤 기준으로 상장 주식을 처리할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몇 주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내 결론은 상장 시장은 참 어려운 시장이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겐 – 특히나 우리 같이 극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 제3외국어와 같이 이해하고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 사업 자체의 펀더멘탈이 무너져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볼 순 없다. 쿠팡의 펀더멘탈은 실은 매우 강하다. 이 정도로 물류 인프라를 잘 운영하고, 이 정도로 세상 온갖 제품을 잘 판매하는 회사는 한국에 없고, 전 세계에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사업은 잘 한다. 물론, 그 물류와 이커머스 사업의 인프라를 비인간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업 자체만 봤을 땐 굉장히 탄탄한 회사다. 주가가 폭락하는 이유는 시장의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고, 흔히 이 바닥에서 말하는 FUDGE(Fear, Uncertainty, Doubt, Greed, Emotion)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에서 만난 어떤 투자자는 중국의 VC에 오래전에 투자했는데, 이 VC가 초기 투자했던 중국 회사가 상장하면서 당시의 시총에 의하면 거의 2,000배의 돈을 (서류상으로)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VC는 마치 내가 쿠팡에 대해서 확신했듯이, 그 회사의 펀더멘탈이 강하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몇 년 후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상장 주식을 안 팔고 계속 보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4년을 더 보유했는데, 그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 가격은 4년 전과 똑같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돈을 크게 잃진 않았지만, 이 VC에 투자한 LP들은 4년 동안 실제 배분받은 건 한 푼도 없었고,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실은 이 회사는 그동안 매출은 많이 증가했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와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상장 시장은 비상장 시장과 많이 다르다. 남들은 비상장 시장이 비이성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상장 시장이 더 비이성적인 것 같다. 논리보단 감정, 두려움과 욕심이 주가를 움직이는 시장인데, 솔직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비이성적이라서 이게 고스란히 상장 시장에 전체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쿠팡 사태로 내가 배운 점은 – 그리고 아직도 이 배움은 계속 되고 있다 –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파는 게 어쩌면 VC들에겐 더 맞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속 보유하면서 상장 시장을 공부하고 예측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상장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건 우리 같은 초기 VC들이 잘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올해는 여러 가지 거시적인 수치나 분위기를 봤을 때 작년보다는 벤처 시장이 좋아지지 않을지 나는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아직 호황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지금 창업하는 분들은 지난 3년 동안 창업했던 분들보단 덜 쪼들리면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워낙 포트폴리오가 많아서 항상 잘 되는 회사보단 힘든 회사가 더 많은데, 특히나 지난 3년 동안 어둡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회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며칠 전에 아주 오래된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과 정말 힘든 대화를 나눴던 미팅을 했다. 둘 다 바빠서 오후 6시에 우리 사무실 구글캠퍼스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배달시켜서, 먹으면서 working dinner를 했는데, 이날의 느낌이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서 – 마치 트라우마처럼 – 이 상처를 떨치기 위해 글로 한 번 적어본다.

아주 오랫동안 사업을 한 회사인데 그동안 성장은 없었고, 돈은 다 까먹었고,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많은 직원도 회사를 떠났다. 돈이 없다 보니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대출받아서 회사에 가수금을 너무 많이 집어넣었고, 지인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돈을 빌렸고, 부모님과 처가댁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그럼에도 회사는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이젠 세금과 4대 보험이 밀리는 상황까지 왔다. 협력업체에 지급할 비용도 밀렸고,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도 다 까먹었다. 나는 이 창업자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조금만 더하면 잘될 거다”라는 비현실적인 희망 고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년 동안 이 회사를 옆에서 봤던 터라 이날 나는 이분에게 여기서 그냥 접는 게 맞지 않냐고 강하게 말했다.

실은, 과거에 사업 그만하라는 내 조언을 반대하고 계속 사업을 해서 잘 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꽤 조심스럽긴 했지만, 우리 투자금 손실은 이미 확실한 이 시점에서 이 분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게 안타까웠다. 사업하면서 온갖 고생 다 했고, 온갖 정신병을 다 얻었는데, 그냥 이제 조금은 더 편안하게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앞에 있는 이 창업가는 아직도 조금만 더 하면 잘될 거라고 믿고 있어서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아서, 정신 좀 차리라고 조금 세게 말했다.

그러자 이 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실은 너무너무 불안하고, 너무너무 힘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울었다. 그 순간부터 나도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내가 밥을 다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8시가 돼서 미팅은 끝났고, 이 분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조금 전까지 우리가 이야기했던 미팅룸으로 다시 돌아와서 앉았다. 앉자마자 눈물이 찔끔 났다.

인생을 걸고 모든 것을 바친 창업가들에게 내가 뭔데 사업을 그만하라고 해서 이들을 울게 만드는 걸까? 이분들은 편안하게 인생을 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무엇이 이 창업가들을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였을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등,,,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 잘 안 운다. 그런데 이 추운 날 밤만큼은 모두 다 퇴근한 썰렁한 구글캠퍼스에서 울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모든 창업가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들을 가끔은 몰아붙여야 하는 나를 위해서.

휴먼지능 할루시네이션

VC가 수많은 창업가 중 성공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서 투자하고, 수많은 아이디어 중 성공할 만한 사업을 찾아내서 투자하는 과정을 흔히 pattern recognition이라고 한다. 본인이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했던 무수히 많은 옳은 결정과 틀린 결정을 참고해서 성공하는 사업과 창업가의 패턴을 찾아서 성공과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에 투자하고, 실패와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은 피하는 방법이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 포인트를 학습하고 체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패턴을 발견하고 연관 짓는 방법과 큰 개념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VC들에겐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 판단, 결정,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이들만의 거대언어모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도 VC로서의 14년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엄청나게 많은 data point가 머리와 가슴속에 나만의 거대 모델로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가나 비즈니스를 만나게 되면, 나만의 거대 모델에서 그 어떤 패턴을 찾으려고 휴먼지능을 열심히 돌려본다. 과거에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봤는데, 그 사업이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그냥 패스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고, 과거에 비슷한 성향의 창업가에게 투자했는데 크게 성공했다면, 내 휴먼지능은 투자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

실은, 모든 게 이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지만, 내 안의 데이터 포인트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여러 개 봤고, 몇 군데 이미 투자까지 했는데,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됐다면, 과연 여기서 내 휴먼지능은 무슨 패턴을 발견하고 어떤 조언을 나에게 해줄까?
좋은 학교 나오고 어떤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서 이 회사가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한 창업가에겐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분과 비슷한 경험을 한 창업가들을 무수히 만났는데, 대부분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런데 잘 안된 창업가가 그다음 사업을 했을 땐 대박 났다면,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사업은? 물론, 이런 사업에는 투자를 안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하지만, 내 거대 모델 안에는 규제받는 산업에서 틈새를 잘 찾고, 이 틈새를 크게 만들었던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아, 그런데 휴먼지능을 조금만 더 돌려보면, 전에 이런 논리로 크게 투자했는데 대박 망한 회사들이 여러 개 있다는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패턴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우린 매일 5개 정도의 회사를 만나는데, 대부분의 미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수많은 데이터포인트를 기반으로 패턴을 찾으려는 휴먼지능이 과부하 되면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참 혼란스러운 게, 인공지능이라면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이 쌓일수록 결과의 정확도가 더 높아져야 하는데, 휴먼지능의 경우 – 내 휴먼 지능 –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아질수록 할루시네이션의 확률 또한 높아져서 투자 결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이런 식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비슷한 사업이고, 비슷한 창업가이고, 비슷한 산업이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과거에 어떤 사업은 잘됐고 어떤 사업은 잘 안됐다면, 잠시 휴먼지능은 완전히 꺼버리고 그냥 내 직감에 의존한다. 내 직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최소한 환각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니까.

기세

창업가나 투자자라면 ‘피칭’이라는 말이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창업가라면 투자받기 위해서 VC들을 대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사업에 관해서 설명하는 피칭을 했을 것이다. 우리도 작년에 수백 개의 피칭을 듣고 봤다. 그런데 우리 같은 VC도 투자하기 위해서는 남의 투자를 받아야 해서 우리도 펀드레이징을 하고, 꽤 많은 피칭을 한다. 우리는 작년 9월에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통계를 내보니까 이 펀드를 만들기 위해서 180명이 넘는 투자자를(=LP) 대상으로 피칭했다. 어떤 분들은 그냥 줌으로 한 번 온라인 미팅만 했지만, 어떤 해외 투자자는 10번 이상 대면 미팅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들이 스트롱에게 모두 다 돈을 준 건 아니다. 이 중 일부만 우리에게 출자했고, 대부분의 미팅을 전쟁에 임하는 태도로 열심히, 에너지 넘치게, 그리고 기세 넘치게 진행했기 때문에, 특히나 우리에게 자금을 출자한 분들과의 미팅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중 기억에 남는 미팅이 하나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펀드를 마무리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몇 주 안 남았었고, 이 투자자의 돈은 꼭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실은, 이미 이 투자자에게 과거에 두 번 피칭했다 두 번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에, 세 번째 시도는(=삼수) 마지막 기회였다. 절박함에 대해서 우리는 자주 이야기하는데, 당시 내 심정은 절박함 그 자체였고, 정말로 비장한 각오로 줌 피칭 미팅을 시작했다.

피칭하기 바로 전날 밤으로 상황을 리와인드 해보자. 실은 발표해야 하는 내용은 내가 14년 동안 직접 해왔던 거라서 아주 익숙했지만, 그래도 나는 전날 밤에 10번 연달아서 리허설을 했다. 약 20분 정도의 발표이니 거의 세 시간을 같은 내용을 미친 사람처럼 달달 다시 연습했던 것이다. 줌으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화면 공유할 때 파워포인트의 포인터/펜 기능이 가끔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고, 강조해야 할 부분을 빨간펜으로 체크하면서 발표하다 보면 그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지 않는 알려진 문제점도 있다. 나는 발표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이런 문제점들을 사전에 모두 방지하기 위해서, 그 전날 10번 리허설을 상대편에는 아무도 없지만, 실제로 줌을 켜고 라이브로 연습했다. 그리고 연습하면서 파워포인트의 포인터 -> 펜 -> 줌의 화면 공유 상에서의 페이지 넘기기, 이 전환이 매끄럽게 될 수 있게 충분히 연습했다.

다시 실제 피칭하는 순간으로 패스트포워드 해보자. 전날 연습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이번에도 돈을 못 받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벼랑 끝에 선 각오로 엄청나게 기세 있게 발표했다. 온라인이고 작은 노트북 화면에서 발표하는 거지만, 반대편에 보이는 약 10명의 청중의 눈을 하나씩 맞추려고 노력했고, 엄청난 기세를 이들에게 100% 전달하겠다는 각오로 거의 샤우팅 하듯이 피칭했다. 그리고 이분들에게 우리는 돈을 받았다는 해피엔딩으로 이 피칭 이야기는 끝난다.

나중에, 이 LP들에게 들었다. 화면으로만 나를 보고 들었지만, 정말로 스트롱이 돈을 꼭 받아야겠다는 독기를 품었다는 각오가 강하게 느껴졌고, 정말 그 엄청난 기세가 줌 화면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온몸으로 전달됐다고.

“인생은 기세다.”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연예인들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나는 자주 들었다. 그런데 나도 좀 살아보고, 일도 좀 해보고, 투자도 좀 해보니 정말로 이 기세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창업도 기세, 펀드레이징도 기세, 글로벌 진출도 기세, 심지어 우리 같은 VC가 하는 벤처 투자도 기세다. 이 모든 게 안 될 이유가 백만 가지가 있는, 했다 하면 실패할 게 거의 뻔한 일들이다. 그 와중에 되게 만들어야 하고, 되게 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이건 자신감과 기세가 없으면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 주변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나는 이들이 짐승 같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본인들이 목표하는 걸 무조건 해야겠다는 의지와 이를 막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짐승같이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기세가 보이기 때문이다.

기세는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발동을 걸고, 누가 봐도 안 될 일을 계속 시도하게 만드는 희망과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기세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힘든 여정을 같이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류와 같이 흐르면서 안 될 일을 되게 만드는 방향으로 기운을 흐르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피칭할 때 내 기세가 분명히 발표를 듣는 분들에게도 전달됐고, 이들의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 이 기세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내 경험에 의하면 기세는 누구나 다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자 자산이다. 기세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결국엔 수년, 수십 년 동안 반복하는 좋은 습관과 연습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