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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예측과 밸류에이션

2012년 런던에서 창업한 핀테크 스타트업 Checkout.com의 $450M(약 5,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 소식을 얼마 전에 접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이 회사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우리도 비슷한 분야의 한국 회사 페이플에 투자해서 그런지,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이번 라운드로 체크아웃닷컴은 창업 8년 만에 $15B의 데카콘이 됐는데, 이 회사의 초기 성장은 매우 더뎠다. 회사 대표에 의하면 창업 후 회사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성장하면서 매출이 조금씩 발생할 때마다 무리하지 않고 한 명씩 추가로 채용을 했다고 한다. 한 명 채용할 수 있는 수익이 나면, 한 명만 채용했고, 두 명 채용할 수 있는 수익이 나면 두 명을 채용할 정도로, 돈을 버는 대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다 썼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하지만 예측 가능할 정도로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창업 7년 만인 2019년도에 처음으로 외부 기관 투자자에게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는데, 유럽 스타트업의 투자 규모로서는 역대 최고였던 $230M(약 2,500억 원)을 $2B 밸류에이션에 받았다. 이번 시리즈 C 투자로 체크아웃닷컴은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기업가치가 큰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워낙 조심스럽게 성장을 한 회사라서 그런지, 이미 회사는 돈을 벌고 있고, 이익이 발생하고 있어서, 연명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에 큰 투자를 받은 이유는, 좋은 사람을 더 많이 채용하고, 해외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규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금 쿠션을 확보하고, 그리고 Insight, DST, Coatue, Tiger Global Management 와 같은 최고의 투자사들이 참여하면서 더 큰 고객사들과 대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이렇게 대단한 투자사들이 돈이 굳이 필요 없는 회사에 계속 높은 밸류에이션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한 이유였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체크아웃닷컴의 비즈니스는 워낙 안정적인 B2B SaaS 모델이라서, 현재 영업하고 있는 잠재고객사 리스트를 기반으로 아주 정확한 미래의 매출을 예측할 수 있고, 이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해석해보면, 내년 비즈니스가 어떨지, 매출은 어떨지, 비용은 어떨지 등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인데, Pousaz 대표에 의하면 현재 체크아웃닷컴의 잠재 고객 수 만을 기반으로 이 회사가 2021년도에는 최소 80% 성장할 것이 매우 확실하다고 한다.

실은 스타트업이 이렇게 정확하게 실적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과거의 데이터가 많아야지만 이런 예측이 가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표들은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한다. 2020년 매출이 1억 원이었던 회사가 2021년도에는 100억 원 매출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어떻게 나오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열심히 하면 달성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이 회사는 투자 받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체크아웃닷컴과 같은 B2B 비즈니스는 매출 발동이 걸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계속 고객이 생길 것이고, 기업 고객의 경우 예측이 조금은 더 수월할 수가 있다. B2C 비즈니스는 한 번 발동 걸리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예측이 조금은 더 어렵긴 하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비즈니스를 공식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서 해야 하며, 데이터를 계속 보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예측력이 비즈니스에 내재화되고, 이게 가능해지면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투자 받는 게 더 수월해진다.

사업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밸류에이션 또한 꽤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1월

2018년 초 이후부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껐던 많은 분들이 새해부터 나한테 비트코인 가격과 전망에 관해서 물어보는걸 보면 이 시장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4만 달러를 잠깐 넘었다가 지금은 또 떨어지긴 했지만, 비트코인 3만 달러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진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17년도의 가격 폭등은 미디어와 투기가 만들었는데, 이번 불장에서는 이 둘의 영향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럼 도대체 가격이 왜 이렇게 많이 뛰었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전문가가 팔려는 사람은 적은 데, 사려는 사람은 많은, 전형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본다면, 대량으로 구매하고, 오랫동안 팔지 않고 그냥 보관하고 있는,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의 등장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투자에 대해 적용되는 FUD(Fear, Uncertainty, Doubt)의 영향이 이번에도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거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이렇게 올라가는 현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의 회사에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건 여러모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2013년 코빗 투자를 시작으로 그동안 한 번도 이 분야를 등한시한 적이 없고, 많진 않지만, 꾸준히 회사들을 검토하고 블록체인 관련 창업가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한국과 미국의 직접적인 블록체인/크립토 관련 스타트업과 간접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서비스는 대략 10개 안팎이다. 암호화폐의 gateway 역할을 하는 거래소 고팍스, 비트코인 <-> 상품권 거래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비트로와 암호화폐로 이자수익을 벌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은행 샌드뱅크가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다. 이 밖에 송금이나 정품인증 등에 블록체인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투자사도 있고, 하여튼 이 분야에서 계속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재미있는 팀들이 많다.

이런 작은 실험과 노력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새 이 기술과 시장이 주류로 들어오는데, 이게 올해가 될진 잘 모르겠지만, 미국통화감독청의(OCC –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스테이블코인 승인으로 시작한 2021년은 꽤 재미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관리가 필요 없는 회사

작년 한 해 동안 스트롱에서 꽤 많은 회사에 투자했다. 어떤 회사 투자소식은 미디어에 보도가 됐지만, 대부분의 투자 관련 소식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를 비롯해서, 어떤 VC가 몇 건의 투자를 했는지는 – 그리고, 투자를 많이 하냐, 적게 하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공식적으로 관리되고 있진 않지만, 아마도 2020년도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한 VC 중 하나가 우리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8년 넘게 지금까지 우린 16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다. 5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투자하고 관리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인데, 이게 실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도 펀드레이징할때 잠재 출자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그 많은 회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냐는 질문이고, 다른 동료 VC들도 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많이 투자하면 관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한다.

이 질문에 나는 주로 두 가지 답변을 드린다. 아마 전에도 내가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일단 나는 우리 투자사 중 힘든 회사와 창업가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미 잘 하는 회사는 내가 굳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아도 잘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관리가 필요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관리는 필요가 없다. 나보다 더 사업을 오래 한 창업가들이, 자기 비즈니스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는데, 내가 굳이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오히려 회사의 비즈니스에 방해가 되는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회사는, 내가 많이 도와주면, 어쩌면 잘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 또는, 그렇게 될 거라고 나는 믿기 때문에 – 이런 분들과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아무리 같이 고민하고 같이 옆에서 뛰어주어도 힘든 회사들이 잘 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많이 경험했다.

관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두 번째 답변은, 바로 우린 관리가 별로 필요 없는 회사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린 투자하기 전에 이 창업가는 어떤 분인지 파악하고 배우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 우리의 실사는 회사의 서류나 재무제표를 보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배움과 확신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확신이 생겨서 투자하면, 이분들은 주로 관리라는 게 별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창업가들은 스스로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은, 시장의 변화, 자본의 변화, 경쟁의 변화 등과 같은 요인은 투자자들이 아무리 관리해도 관리가 안 된다. 이런 변화가 발생했을때 – 그리고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이런 예상치 못한 변화는 매일 발생한다 –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대표와 경영진에 투자하는 게 우리가 보는 성공적인 투자이다. 그래서 나는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투자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이분들은 본인들이 관리를 잘하면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잘 될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믿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잘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드는 건, 투자자가 관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관리에 너무 집중하는 투자자일수록, 회사가 잘 되면, “그 회사 우리가 키웠다”라고 말하는 경향이 큰데, 이 역시 내가 술자리나 모임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회사가 잘 안 되서 망했을 때도 똑같이 “그 회사 우리 때문에 망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에겐 망하는 건 항상 창업가와 회사의 잘못이다. 잘되면 우리가 키웠고, 안되면 쟤네가 문제 있다는 식의 생각은 그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되도록 우린 관리가 필요 없거나,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당근마켓 기부

작년에 한국에서 가장 성장을 많이 했고, 가장 많이 사랑받은 앱 중 하나가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이다. 현재 MAU 1,200만 이상이고, 내 주변 많은 분이 오히려 쿠팡 같은 쇼핑앱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국민 앱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많은 서비스이다.

나는 당근마켓을 매일 사용하는 헤비유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물건을 정기적으로 올려서 판매만 하는 라이트 셀러이다. 작년에도, 오랫동안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지 않을 물건들을 판매한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돈이 들어오면 주로 그냥 맛있는 거 사 먹거나,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데 다 사용했는데, 올해는 와이프의 제안으로 이 돈을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기로 했다. 어차피 평생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나중에 버릴 물건들이었는데, 누군가는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돈은 그냥 보너스라고 생각하니, 이걸 흔쾌히 기부할 수 있었다.

사진 2020. 12. 30. 오후 6 34 30

작년 한 해 당근마켓 판매로 우리 가족이 번 돈이 208,000원이었는데, 여기에 다시 208,000원을 우리가 매칭해서, 총 416,000원을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에 기부했다. 매우 뿌듯했고, 앞으로도 계속 당근마켓 통해서 번 돈을 매칭해서 카라에 기부하기로 했다.

부자가 된 느낌이다.

배움의 한 해

2020년도와 팬데믹은 우리가 죽은 후에 역사책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이고, 후손들은 이 기록을 읽으면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코비드19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할 말이 많고, 나도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언급했는데, 어쨌든 작년은 바이러스의 한 해였음이 틀림없다.

투자자로서 작년 한 해는 나에게 배움과 겸손의 한 해였던 거 같다. 다른 VC는 모르겠지만, 나는 투자를 하면 할수록, 그리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생긴다기보단, 그냥 계속 겸손해지는 것 같다. 2019년도 그랬고, 2020년도 그랬는데, 이상하게 투자는 하면 할수록 내 예상과는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수학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점수가 오르고, 숫자의 오차가 줄어들고, 뭔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작년 한 해 동안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웠던 것 같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건 코비드19이다. 2019년 4분기부터 전문가들이 2020년의 트렌드, 뜨는 기술, 지는 기술에 대해 나름의 예측을 발표했고, 많은 분이 이걸 귀담아들으면서 사업계획을 세우고 수정했다. 그런데 작년에 이 계획대로 사업을 하신 분은 거의 없다. 우리도 나름 2020년 투자 계획을 세우고, 되도록 이 계획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뒤돌아보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비행을 하면서 비행기를 조립했던 것 같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 온다는 걸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시장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큰 배움이었다.

그리고, 2020년에도 엄청 잘 될 것 같았던 회사들이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망할 게 거의 확실하거나, 잘 안될 게 확실해서 전혀 기대 안 했던 회사들이 결국엔 승자로 한 해를 마무리한걸 보고 다시 한번 겸손해질 수 있었다.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안 흘러가고, 거의 반대로 굴러간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던 회사가 갑자기 살아나는 신박한 경험을 지금까지 몇 번 하긴 했지만, 실은 잘 안되는 회사는 계속 잘 안 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는 곳들이 조금씩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대표님들에게 “조금만 더 해보시죠…”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이 또한 내가 남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큰 배움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VC는 투자할수록 겸손해진다.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돈을 관리할수록, 더 많은 사람과 일 할수록, 내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걸 계속 깨닫기 때문이다. 많은 걸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기 때문에, 이 업이 좋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이 배웠고, 올해도 많은 넘어짐과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실수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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