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현장 중심주의

약 한 달 전에 유럽에 짧게 출장을 다녀왔다. 4일 동안 3개국을 방문했던 빡센 일정이었고, 왜 스트롱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기관이 나에게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은 미국 펀드인데 한국에 투자하고 있죠? 그럼, 대부분의 팀이 미국에 있나요 한국에 있나요?” 였다.

우린 미국 펀드이지만 한국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이 한국에 있다고 했고,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지 물어보니 최근에 이들이 만난 유럽의 VC 이야기를 해줬다. 이들의 전략은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건데, 의사결정 하는 파트너들은 서로 유럽 다른 나라에 뿔뿔이 거주하고 있어서 이 VC에 출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VC에겐 결국 창업가와 경영진이 제일 중요한데, 어떻게 피투자사 본사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는 설명도 해줬다.

아무리 미국에서의 네트워크가 좋아도 물리적으로 거기 없으면 시장과 창업가들과의 미세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생성되지 않아서, 위에서 말한 미국에 투자하지만, 핵심 투자팀이 유럽에 있는 VC의 경우 이들에게 미국의 “좋은” 딜이 넘어왔을 시점엔, 이미 미국 현지 수십 명의 VC가 그 딜을 봤고, 어쩌면 수십 명이 패스했을지도 모르는 “나쁜” 딜일 확률이 높은데, 이 딜이 나쁘다는 걸 그 유럽 VC만 모르고 투자할 위험이 크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하지만, 현장에 없으면 절대로 모르는 작은 지식과 통찰력을 간과하면 좋은 투자가 힘들다는 본인들의 믿음을 강조했다.

나는 이렇게 흑백논리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투자팀은 모두 한국에 있지만, 동남아나 미국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고, 팀은 모두 미국에 있지만, 아시아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하는 말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극초기 VC는 투자팀이 그들이 투자하는 시장에 물리적으로, 그리고 full-time으로 상주해야지만 성공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VC라는 업 자체는 껍데기만 보면 상당히 글로벌한 업 같지만,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면 글로벌한 업이 아니라 실제로는 로컬한 업이고, 본질을 현미경으로 보면 로컬 하다못해 하이퍼로컬한 업이다.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극초기 VC에겐 투자라는 업은 완전히 하이퍼로컬 한 사업이다.

한 지역의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 지역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그곳의 창업가/투자자/기업 커뮤니티와 깊숙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장을 잘 알 수 있다. 본인이 투자하는 그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숨 쉬고, 사귀고, 어울리고, 투자해야 한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유럽의 투자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현장 중심주의는 우리가 하는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두더지 잡기

우리도 이제 투자를 시작한 지 14년 차가 되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회사에 투자했고, 상상했던 것보다 어떤 회사는 너무 잘하고 있고, 또 반면에 어떤 회사는 너무 못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참 재미있는게 –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재미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업하는 사람은 피가 마르지만 –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같은 회사가 너무 잘하는 회사가 될 수도 있고, 너무 못하는 회사가 될 수도 있고, 사업을 오래 할수록 이 두 개의 up and down이 계속 반복된다.

얼마 전에 이제 사업한 지 10년 된 스타트업 대표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 회사의 화려한 업앤다운에 대해서 웃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특히 우리는 이 회사의 첫 번째 투자자였고, 회사의 부흥과 몰락을 모두 꽤 가까운 위치에서 봤기 때문에 더 개인적이고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솔직히 이 회사의 부침을 보면서 사업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배웠고, 특히 대표와 회사의 경영진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여러 번 망할 뻔한 고비를 어떻게 넘기는지 가까운 곳에서 보면서 간접적이지만 나 스스로의 내공을 많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장에서 전쟁을 치르는 보병과 이 모든 걸 멀찌감치 떨어진 사령부에서 편안하게 보고 받거나 모니터를 통해서 전쟁을 보는 행정병이 같은 전쟁이라도 보고 느끼는 게 많이 다르듯이, 실제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온몸으로 경험하는 회사의 업다운과 이를 옆에서 간접적으로 보는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경험하는 회사의 부침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사용했던 용어가 있는데 바로 ‘두더지 잡기’였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 회사의 실제 예시로 이야기해 보자. 회사가 가장 저점에 있었을 때, 그동안 벌여 놓은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해 보니,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 하나같이 개판이었다. 돈을 벌수록 마이너스가 커지는 말도 안 되는 수익모델이 너무 오랫동안 돌아가다 보니, 제품도 경쟁력이 떨어졌고, 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경쟁력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는 개판지수가 가장 높은 사업들을 나열한 후, 가장 심각한 사업부터 하나씩 분석하고, 해부하고, 해체하고, 수술하고, 그리고 다시 봉합하는 작업을 고통스럽게 했다. 사업이 망가지는 건 금방인데, 그 망가진 사업을 다시 심폐 소생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나는 이때 많이 배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똑똑한 팀이라서 결국 이 사업은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올렸고, 그다음으로 개판인 사업을 비슷하게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때 예상치 못했던 건, 이미 고쳐놨다고 생각했던 사업이 손을 떼자마자 바로 또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됐고,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즉, 한쪽을 고친 후, 다른 망가진 쪽을 보면, 고쳐 놓은 부분이 또 고장 나는, 마치 우리가 오락실에서 하는 두더지 잡기 게임과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두더지 잡기 게임을 안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이 해답을 찾지 못했다. 회사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모든 게 수시로 변하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면서 계속 탈이 날 것이다. 그때마다 고장 난 부분을 수시로 고쳐야 하는데, 아마도 하나를 고치면 또 하나가 고장 나고, 그걸 고치다 보면 원래 고쳤던 게 또 고장 나고,,,이 짜증 나는 주기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두더지 잡기 게임을 멈출 순 없으니까, 그 누구보다 이 게임을 잘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두더지 잡기 게임에서 이기려면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모든 걸 감시해야 하고, 두더지가 올라오는 그 순간 아주 빠르고 힘차게 망치로 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하고, 이걸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사업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건, 항상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열심히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두더지를, 더 빠르게 잡을 수 있길.

할 놈은 한다

한 달 전에 미국에서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고 있는 신생 VC 파트너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전에 꽤 큰 VC에서 심사역을 몇 년 하다가 독립해서 이제 본인의 펀드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요새 대부분의 VC와 비슷하게 “AI first, AI only”를 외치면서 열심히 AI 회사들만 검토하고 있었다.

스트롱은 왜 AI에만 올인하지 않고 큰돈 안 되는 다른 분야에도 투자하는지 물어봐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 철학, 그리고 전략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특정 분야를 선택한 후,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가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down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냥 좋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bottom-up 방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AI에만 투자하진 않는다는 점을 잘 설명했다. 그리고 AI가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더 빨리 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AI가 아닌 사업이 나쁜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해왔듯이 모든 분야를 보면서 좋은 창업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보낸다고 했다.

이 분이 이전 회사에서는 소비재와 B2C에도 활발하게 투자한 걸 알기 때문에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화장품, 먹는 것과 같은 소비재 스타트업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Kihong. 소비재 회사는 이제 끝났어. 과거에는 잘 됐고, 돈을 벌었는데 이제 이런 회사들에 투자하는 건 stupid 한 전략이야.” 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시장 자체가 너무 포화돼서 이 무한 경쟁에서 이기고 크게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몇 년 전과 같이 소비재 회사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설득력 제로인 의견이고, 이 분도 아마도 여기저기서 듣거나 읽은, 남의 의견을 나에게 앵무새같이 따라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논리는 AI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오히려 AI 시장이 더 포화된 것 같은데?”라고 내가 반박하니 AI가 미래이고, 완전히 다르다는, 역시 설득력 제로인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실은, 이 분이 이야기한 것 중 틀린 내용은 없다. 소비재 시장은 정말로 포화됐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 대부분 제품을 보면 차별점도 안 보이고, 뭘 구매해야 할지 선택 장애가 오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소비재이다.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 매일 먹는 음식, 매일 입는 옷과 신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10년 전만 해도 VC 자금이 넘쳐흐르던 소비재 분야에서 요새 투자금이 거의 메말랐다는 이 분의 말도 사실이다.

그럼 왜 스트롱은 병신같이 계속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 세련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답은 바로 아무리 시장이 작고, 아무리 시장이 포화되고, 아무리 시장에 돈이 없어도, 할 놈은 항상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렇게 브랜드가 많고, 매일 크고 작은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장이 정말 포화됐고, 껍데기만 다른 대부분의 제품은 차별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박 터지는 시장에서도 해마다 1,000억 원의 매출을 하는 여러 개의 새로운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먹을게 이렇게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서 아직도 대박 터트리는 좋은 회사들이 계속 새롭게 생기고 있다. 시장과는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는 계속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고, 이 중 극소수는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회사만 살아남고 성공하는 논리는 소비재나 B2C 분야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할 놈은 하기 때문이다. 이건 시장과도 상관없고, 돈과도 상관없다. 할 놈은 그냥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다. 이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고, 이 분야의 창업가를 계속 만나고,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성공하는 투자를 하고 있진 않지만.

할 놈은 항상 하고, 못 할 놈은 항상 못 하고, 안 할 놈은 항상 안 한다. 할 놈이 되자.

용기가 복리처럼 불어날 때

지난 2년은 대부분의 창업가에겐 20년 같이 느껴졌을 정도로 길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투자사 중에서도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곳도 있지만, 이런 회사들은 아웃라이어이고, 대부분 정말 배고프고, 춥고, 스트레스 가득 차고, 하루가 이틀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창업가라는 왕관의 무게를 버텼다. 이 중 이젠 사라진 스타트업도 꽤 있고, 잘 살아남아서 이제 다시 성장의 준비를 하는 곳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데미지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이제 바닥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창업가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여전히 전반적인 분위기와 기조는 긍정적이어서 나에게는 희망이 보인다. 원래 내가 아는 좋은 창업가들은 고비를 잘 참고, 포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초긍정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 같으면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고개를 들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매일매일 크고 작은 불을 태연하게 끌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본다. 최근에 이런 창업가들을 보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용기’라는 단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절망적인 순간에 이런 대단한 용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창업가 몇 분과 이야기를 해보고, 여러 가지 기사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나만의 개똥 답안이 완성되긴 했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중 기억나는 최악의 상황이 대부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이들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 봤던 또 다른 이면은, 바로 이 최악의 상황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라고 할 정도로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실제로 걱정했던 것처럼 정말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항상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어떻게 길을 찾고, 잘 극복해서 살아 남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최악이라고, 정말 망할 수 있겠다고, 정말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어찌어찌해서 살아 남으면, 여기서 말콤 글래드웰이 정의한 용기가 작용하는 것 같다. 글래드웰이 정의한 용기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만드는 용기는 선천적인 게 아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니 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때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용기이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위에서 말 한 최악의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오고, 고비가 올 때마다 실은 그 심각함과 나쁜 정도는 배가된다. 고비가 올 때마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걱정을 하지만, 어찌어찌 죽지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하고, 상황을 극복하고 뒤 돌아보면 또 그렇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생각이 몸에 학습되면서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용기에도 복리가 적용된다.

이렇게 용기에 복리가 적용되면 초인이 된다. 슈퍼맨 같은 초인이 아니라 어려움과 장애물에 초인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그런 강하고 용기있는 초인 말이다.

힘들다. 바쁘다. 피곤하다. 어쩔 땐 정말 죽을 것 같다. 나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는 오죽하랴. 하지만, 내일 하루 더 싸우기 위해서 오늘 죽지 말고 버티자. 버티면 죽지 않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용기가 복리로 쌓일 것이다.

참 어려운 상장 시장

우리는 쿠팡의 매우 작은 주주이다. 스트롱이 쿠팡에 직접 투자하진 않았지만, 스트로의 포트폴리오였던 Recomio라는 회사가 쿠팡에 주식교환으로 인수되면서 쿠팡의 주주가 됐고, 상장 주식을 대부분 팔았지만 아직 소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1호 펀드의 포트폴리오인데 이미 이 펀드의 나이는 14살이 되어 간다. 청산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의 LP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물어봤던 질문이 남은 쿠팡 주식 처분 시점이다.

이분들에게 나의 한결같은 답변은 “한국에 살면 직접 체감할 수 있는데, 쿠팡은 한국의 이커머스를 완전히 다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현재 쿠팡 주가는(당시 $30 ~ $35 정도)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르면 팔 건데 그게 최소 $50 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였다. 실은 매우 확신에 찬 자신 있는 답변이었다. 솔직히 겉으로는 $50라고 했지만, 내 마음속엔 쿠팡은 $100까지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때만 해도 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쿠팡이 보여준 태도와 중요한 순간에 했던 결정들의 질이 상당히 실망스러웠고, 그 결과 때문에 현재 쿠팡 주식은 $20를 하회하고 있다. 역시 어떤 LP 분들은 나에게 과연 쿠팡 주식이 앞으로 $50 가 될 수 있을지 물어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사가 상장하면, 스트롱은 어떤 기준으로 상장 주식을 처리할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몇 주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내 결론은 상장 시장은 참 어려운 시장이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겐 – 특히나 우리 같이 극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 제3외국어와 같이 이해하고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 사업 자체의 펀더멘탈이 무너져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볼 순 없다. 쿠팡의 펀더멘탈은 실은 매우 강하다. 이 정도로 물류 인프라를 잘 운영하고, 이 정도로 세상 온갖 제품을 잘 판매하는 회사는 한국에 없고, 전 세계에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사업은 잘 한다. 물론, 그 물류와 이커머스 사업의 인프라를 비인간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업 자체만 봤을 땐 굉장히 탄탄한 회사다. 주가가 폭락하는 이유는 시장의 정서와 감정의 문제이고, 흔히 이 바닥에서 말하는 FUDGE(Fear, Uncertainty, Doubt, Greed, Emotion)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에서 만난 어떤 투자자는 중국의 VC에 오래전에 투자했는데, 이 VC가 초기 투자했던 중국 회사가 상장하면서 당시의 시총에 의하면 거의 2,000배의 돈을 (서류상으로)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VC는 마치 내가 쿠팡에 대해서 확신했듯이, 그 회사의 펀더멘탈이 강하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몇 년 후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상장 주식을 안 팔고 계속 보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4년을 더 보유했는데, 그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 가격은 4년 전과 똑같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돈을 크게 잃진 않았지만, 이 VC에 투자한 LP들은 4년 동안 실제 배분받은 건 한 푼도 없었고,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실은 이 회사는 그동안 매출은 많이 증가했지만, 중국 정부의 규제와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상장 시장은 비상장 시장과 많이 다르다. 남들은 비상장 시장이 비이성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상장 시장이 더 비이성적인 것 같다. 논리보단 감정, 두려움과 욕심이 주가를 움직이는 시장인데, 솔직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비이성적이라서 이게 고스란히 상장 시장에 전체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다.

쿠팡 사태로 내가 배운 점은 – 그리고 아직도 이 배움은 계속 되고 있다 –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파는 게 어쩌면 VC들에겐 더 맞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속 보유하면서 상장 시장을 공부하고 예측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상장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건 우리 같은 초기 VC들이 잘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