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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을 만드는 AI

우린 인바운드로 오는 콜드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어보고 확인하는 몇 안 되는 VC 중 하나다. 충분히 많은 회사, 창업가와 만나고 있고, 우리가 아는 네트워크에서 – 이미 투자한 300개가 넘는 창업가들의 소개, 프라이머를 통한 소개, 다른 VC의 소개 등 – “따뜻한” 소개를 워낙 많이 받아서 굳이 모르는 창업가들이 보내는 사업계획서를 안 봐도 검토해야 할 사업이 넘쳐흐르긴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되도록 전부 다 읽고 검토하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이유는, 누가 어디서 언제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분들의 소개만을 통해서 창업가를 만나거나 사업을 검토해서는 절대로 언더독이나 우리 기준의 바퀴벌레 창업가를 충분히 만날 수 없다. 이 바퀴벌레들은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힐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메일을 읽고, 모든 사업계획서를 검토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pitch deck을 보내달라고 썼기 때문이다. 콜드이메일을 절대로 안 읽을 거면, 웹사이트에 이런 헛소리를 쓰면 안 된다. 우리에게 연락하면 우리가 자료를 검토하고,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우리의 얼굴인 웹사이트에 써 놨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언행일치이고, 시간을 들여서 우리에게 연락하는 창업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콜드 연락이 오는 이메일 10개 중 추가 질문이 있거나 미팅 관심이 있어서 내가 답변하는 건 2개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8개도 다 검토하지만, 패스하겠다는 답변은 굳이 안 한다.(이건 이분들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좀 많은 회사를 검토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매번 뭐라도 배우는 게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는다읽었다.

요샌 예전처럼 다양한 회사의 deck을 흥미롭게 못 읽고 있는데, 망할 놈의 AI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자료의 4분의 1 이상이 50% 이상 AI로 만든 사업계획서인데 정말 못 읽다 못 해서 못 봐줄 정도로 조잡하고 허접하다. 첫 페이지의 누가 봐도 AI로 만든 이미지와 두 번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은 이 자료를 더 읽고 싶은 욕구를 확 떨어뜨린다. 본문 내용은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이미지와 내용을 기계로 만들어서 그런지 일단 말 자체가 장황하고 요점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 이런 자료를 읽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나고, 당연히 이런 책임감 없는 자료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보낸 창업가와 안 만난다.

멋지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만드는 건 고도의 실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정말 못 만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든 슬라이드는 대부분 텍스트 위주다. 그나마 비주얼이 있는 ‘예쁜’ 내용은 우리 팀 동료분들이 만들어 준 거다. 이렇게 나같이 자료를 못 만드는 사람이 더 설득력 있고 눈이 시원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AI만큼 좋은 툴이 없다. 나는 아직은 자료를 만들 때 AI를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엄청난 자료를 나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말 그대로 AI의 ‘도움’을 받았다. 기본적인 내용, 골격, 흐름 등과 같이 좋은 자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는 모두 다 사람이 엄청나게 고민하고 생각한 후에 한 땀 한 땀 준비했고, AI는 이 재료로 만들어진 슬라이드를 더 시각적이고 돋보이게 거들어 줬을 뿐이다.

내가 요새 본 많은 자료는 저자의 창의성은 아예 안 보이고, 과연 이 분이 AI가 만든 내용을 검토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엉터리였다. 며칠 전에 본 어떤 자료는 내가 혼잣말로, “아 씨,,,AI 좀 적당히 사용해라”라고 할 정도였는데, 바로 지웠고 그 창업가에겐 답변도 안 했다.

AI가 정말로 우릴 생산적으로 만들까? AI가 정말로 우릴 똑똑하게 만들까?

가끔 나는 AI가 우릴 병신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고민하면 우리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 그리고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 이젠 이것마저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스스로 거부하고, 스스로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위에서 말한 사업계획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메일도 이젠 AI로 작성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근데 AI로 작성한 이메일은 첫 줄만 읽어도 티가 난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발신자가 직접 작성한 후 AI의 도움을 적당히 받은 게 아니라, 전부 다 기계가 쓴 걸 알게되자마자 더 이상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건 이메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낭비하는 AI 쓰레기(=슬롭)이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들이 보내는 월간 비즈니스 업데이트도 요샌 점점 더 많은 대표들이 AI로 만들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줄만 읽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AI로 만든 월간 업데이트는 수치는 정확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그 회사의 대표가 한 달 동안 뭘 했고,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배움이 있었고, 스트롱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내용을 글로 쓰려면 차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즉,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요샌 아무도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도 다 AI 슬롭이다.

소셜미디어와 블로그 포스팅도 마찬가지다. AI가 작성한 콘텐츠는 그냥 보면 안다. 일단 내용이 장황하고 포인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실제 생각과 영혼이 실린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슬롭이다. (참고로, 내가 쓰는 모든 블로그는 100% human thought, created and written이다.)

AI를 사용해서 더 똑똑해지자. 토큰 낭비하면서 더 병신이 되지 말고.

바쁜 건 항상 좋은 것

“바빠서”라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변명이지만, 아마도 학교나 직장에서 가장 자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일인데 바빠서 못 한다면 이건 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고, 아마도 바빠서 못 한다고 하는 분은 평생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나는 항상 바쁨에 대한 이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요샌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어차피 나는 워라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새벽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일을 하고, 일이 많으면 그냥 시간을 더 투입하고 더 오래 일하면 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웬만하면 해야 하는 일은 하는데, 최근에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일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바쁘다고 느끼면 정말 바쁜 거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두 개의 상반되는 감정이 내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바쁜 게 좋은 거야.”이고 다른 생각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이다. 안 바쁜 것보단 바쁜 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내 안에 아주 깊게 자리 잡은 신념이라서 이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바쁨이 14년째 매일 반복되면 가끔 지치긴 한다. 우리 회사도 머릿수가 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실력도 늘었는데, 왜 내 업무량은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트롱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곤 한다. 한국의 모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을 갖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존과 내가 기대했던 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고, 우리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LA 코리아타운의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매일 출근해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모니터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폰만 멀뚱멀뚱 보다가 퇴근했다. 그땐 정말 할 일도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우릴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첫 몇 달 동안 점심도 매일 둘이 먹으면서 누가 연락 좀 해줬으면, 점심이나 저녁 미팅이라도 할 수 있으면,,,뭐 이런 간절한 하소연과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무료했고, 답답했고, 매일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을 몇 달 동안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다시는 바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떠오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죽어도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실은 마찬가지다. 일은 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무료했던 그 시절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무리 바빠도. 그래서 이젠 이렇게 계속 바쁘게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땐 항상 일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할 일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던 그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 바쁨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결론은 바쁜 건 무조건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하지 말기.

반짝이는 눈

몇 주 전에 아주 행복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 느낌을 글로 남기고 싶었고, 당시 내 생각과 기분을 종이에 펜으로 기록했었다. 이 글은 그 메모를 다시 읽고 당시의 내 생각, 기분, 그리고 느낌을 전반적으로 복기하면서 쓰는, 일종의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과도 같다.

이틀 연속으로 두 분의 창업가를 만났다. 한 분은 우리가 거의 10년 전에 첫 투자를 하고 이후에 여러 번 더 투자한 분이고, 한 분은 우리가 투자하진 않았고못했고, 오히려 우리 펀드에 투자해주신 분이다. 우리가 왜 이 창업가에겐 투자하지 못했냐 하면, 스트롱이 만들어지기 몇 년 전에 창업하신 분이라서 우리의 펀드와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다. 두 분 모두 내가 나름 잘 아는 분들이고, 가끔 보는 분들인데 이들과의 연속 만남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고,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가 됐다.

일단 우리에게 투자한 분은 올해 18년째 본인의 사업을 하는 분이다. 18년 전이면 창업의 시대가 전혀 아니었고, 좋은 학교 졸업한 분이 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주위에서 정신 나간 놈(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시절이었다. 창업 관련 정보도 없고, 투자할 수 있는 돈도 시장에 별로 없고, 아이템도 당시엔 신박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 사업을 시작하면 안 됐는데, 역시 이 분은 내가 아는 모든 창업가와 같이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에 창업했다.

그동안 온갖 업과 다운을 경험하면서 사업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도 대단한데,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로블록스의 데이빗 바주키와 엔비디아의 젠슨 황처럼 창업 초기의 그 에너지와 열정을 18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도 마치 창업 첫날인 것처럼 업무에 몰입하는 건 존경스럽다 못해, 굳이 왜 저렇게 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창업가를 만났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분이 가짜 에너지와 열정을 분산하는지 아닌지는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의 눈을 보면 된다. 이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하면 이건 깊은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흥분, 에너지, 그리고 열정이다. 이 분과 점심을 먹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할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했다.

18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돈도 벌고 명성도 어느 정도 생겼는데 왜 계속 이 힘든 일을 할까? 이건 내가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단계를 이미 지났고, 그냥 이 분의 내면에 있는 자가발전기가 아직도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업을 즐기고, 자신 있고, 평생 하겠다는 굳은 의자와 각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내면의 전투력과 활활 타오르는 불이 두 개의 작은 눈을 통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분은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이다. 사업을 한진 거의 10년이 됐고, 첫 제품은 잘 안돼서 교과서적으론 회사는 망해야 했는데, 당시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피봇팅했고, 이 두 번째 제품은 나름 성공했다. 하지만, 두 번째 제품도 시간이 지나자 정체되면서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때 이 회사는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마음속으로 또다시 생각했다. 그 기간 이 창업가를 만나면 항상 피곤하고, 우울하고, down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은 이성적인 일반인이 아니라 본인이 만드는 틀에 세상을 맞추고 싶어 하는 창업가이고, 역시 다시 한번 피봇팅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는 노력을 최근에 시도하고 있다.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아서 나도 맘속으론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두 번째 피봇팅을 시도하는 이 시점에 만난 우리 창업가분은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몇 년 동안 번아웃이 됐던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초기화된 것 같았고, 위에서 말한 18년 사업하는 대표님과 비슷하게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오랫동안 정체됐던 구간을 지나면서 사업의 돌파구를 찾았을 때 오는 그 짜릿함과 흥분감이 활활 타오르는 내면의 불이 됐고, 이게 이 분의 두 개의 작은 눈을 통해서 빛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왠지 이 순간과 느낌이 데쟈뷰 같았는데, 그건 이 분이 약 7년 전에 첫 번째 피봇팅을 했을 때 내가 동일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반짝반짝하는 눈빛을 그때 내가 봤는데, 7년 후에 다시 보게 되다니,,,창업한 지 10년 된 분에게 이런 에너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신기했다.

이런 느낌을 내가 이틀 연속 받다 보니, 마치 내가 초사이어인이 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나도 내면의 전투력이 활활 불타오르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창업가들과 항상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하는, 우리 같은 VC만 느낄 수 있는 특권과도 같다.

Founders will be founders.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화려한,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졸x 힘든 이 VC라는 업을 내가 왜 사랑하는지, 그리고 왜 이걸 계속하는지,,,나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값진 이틀이었다.

100년 마인드셋

로블록스의 공동창업가이자 현대 대표이사인 David Baszuki는 이 회사를 2002년도에 창업해서 현재 24년째 운영하고 있다.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어느 정도의 궤도까지 올려놓은 후에 본인이 만든 회사를 떠나거나, 아니면 현업에서 손을 떼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데, 이 분은 오늘도 24년 전과 비슷한 에너지로 사업에 집착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리고 앞으로 로블록스를 몇 년 더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은퇴할 계획은 전혀 없고 가능하면 20년은 더 하고 싶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자주 하는데, 얼마 전에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고, 본인은 남은 인생을 로블록스에 바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엔비디아의 공동창업가이자 현재 대표이사인 젠슨황도 엔비디아를 33년 전에 창업했고,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 젠슨 역시 은퇴와는 너무나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거의 매일 15시간씩, 주말에도 계속 일하고 있다. 엔비디아 초기 멤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젠슨은 창업 초기보다 요새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젠슨은 로블록스의 데이빗 같이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엔비디아를 평생 운영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로블록스의 데이빗 사장이 “저는 로블록스에서 20년은 더 일할 거예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이 인터뷰를 들었을 때 온몸에 진한 전기가 찌릿하게 왔다. 그리고 바로 떠올랐던 생각은 “와,,,나도 이제 저런 사람들에게(만) 투자하고 싶다.” 였다.

한 5년 열심히 일해서 소소한 엑싯 하면 다른 사업을 하거나, 현재 사업으론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 또는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창업가들은 내 주변에 널렸다. 이들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기간만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날 뿐이지, 엑싯하면 그 돈으로 다른 더 재미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그리고 솔직히 스트롱이 투자한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 14년째 투자를 하고 있으니, 스트롱 포트폴리오 중 가장 오래된 회사는 14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 내가 로블록스 데이빗 사장의 말을 듣고 우리가 그동안 투자한 300개 회사의 창업가들을 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한 명씩 떠올리며, 어떤 분이 50년 사업할 마음가짐이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지금까진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이 중 어떤 분들은 50년 ~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땐 단기적인 마인드로 일했다. 솔직히 스트롱을 만들었던 2012년도에 누군가가 나에게 왜 VC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면, 전형적으로 멍청하고 1차원 적인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어요. 남의 돈으로 투자해서, 운 좋으면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는데요.” 그런데 고백하건대, 당시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한 3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인생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VC를 시작했던 이유의 절반이었다. 그리고 그땐 투자하면 3년, 아무리 길어도 5년이면 회사들이 수천억 원에 엑싯 할 줄 알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참 개념 없고 순진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동안 투자를 더 많이 하고, 더 좋은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VC라는 업을 바라보는 내 직업관과 내가 이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와 목적에도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5년 안에 큰 엑싯을 해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드는 창업가들보단,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싶다. 위에서 말한 로블록스의 데이빗 바주키와 엔비디아의 젠슨황 같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해서 돈도 벌고 싶지만, 이들과 함께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그 기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이런 창업가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뾰족하게 다듬어야 한다. 시장의 유행을 따르기보단, 우리만의 사람 중심적인 투자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갈고 닦아야 하는데, 우리도 이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어쩌면 스트롱도 100년 가는 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인가, 새로운 거품인가?

CB Insights의 State of Venture는 아마도 전 세계 VC와 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가장 필수적으로 읽는 보고서일 것이다. 나도 분기마다 이 보고서를 읽고 지난 분기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하고, 우리가 투자하는 한국 시장 관련 내용이 있으면 찾아서 읽어본다. 한 분기를 정리하는 보고서라서 내용이 다양하지만,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글로벌 벤처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어디로 투입되는지 잘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2026년 Q1 보고서의 수치를 보고 내가 느낀 건 기대감과 두려움 모두인데, 두려움에 조금 더 가까운 감정이다. Q1에 전 세계 시장에 투입된 벤처투자금은 자그마치 $285.5B이다. 바로 이전 분기인 2025년 Q4의 펀딩 $142.3B과 비교해보면 2배 높은 금액이고, 작년 전체 투입된 금액이 $470.2B인데, 앞으로 남은 분기도 Q1과 비슷하다고 가정해보면, 올해 전체 펀딩은 $1.1T로 마무리될 것이다. 작년 대비 2배 이상이며, 엄청난 숫자이다.

이렇게 겉만 보면 정말 화려한 성장이고 몇 년 동안 침체됐던 벤처투자 시장이 가파른 곡선으로 반등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숫자의 함정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다.

가장 먼저 내 눈길을 끈 숫자는 $122B인데, 전체 투자금 $285.5B 중 $122B가 OpenAI라는 한 기업에 투자됐다. 올해 Q1 전 세계 벤처 투자금 중 절반이 약간 못 되는 43%가 한 회사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놀랐던 두 번째 수치는, OpenAI, Anthropic, Waymo 그리고 xAI, 총 4개의 회사가 $175.5B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Q1 전체 투자금의 절반이 넘는 61%를 이 4개의 회사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는데, Q1 전체 투자건수가 6,598건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더 놀랍다. 투자받은 회사 중 단 0.06%가 돈의 61%를 가져간 것이다.

물론, 투자 시장에도 파레토의 법칙은 항상 존재해왔다. 소수의 빅 딜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현상은 그렇게 놀랍지 않지만, 이번 분기에 내가 더욱더 놀랐던 이유는 그 차이가 너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적 간극도 더 벌어지고 있다. 돈의 싸움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미국의 AI 회사들이 전 세계 그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다. Q1 투자금의 83%를 미국 회사들이 가져갔는데, 투자건수로 따져보면 미국 회사들은 투자받은 전체 회사의 40% 정도밖에 안 된다. 평균투자금을 봐도 미국이 한참 앞서가는데, 이건 이미 이야기한 거대 기업들의 거대 펀딩이 평균을 왜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평균 투자금은 $84M, 글로벌 평균은 $43M, 아시아 평균은 $12M, 그리고 한국 평균은 $5.3M인데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보면 16배의 차이가 난다. 마침,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GDP의 차이도 15배 정도다.

또 한 가지 놀랐던 수치는 유니콘 기업의 밸류에이션인데, 2025년 Q4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이 $2.2T이었다. SpaceX, OpenAI, 바이트댄스와 같은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 $2.2T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약간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그런데 3개월 후인 2026년 Q1 Top 10 유니콘 기업 밸류에이션의 총합은 $3.5T로 60%나 더 커졌다. 비상장 회사 10개의 기업가치 총합이 한국 GDP의 거의 두 배가 된 셈인데, 나는 솔직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기술이 중요하고, 이 회사들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기대되지만, 그게 아니라 이게 거품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

이렇게 소수의 AI 관련 회사들이 대부분의 돈을 가져가는 추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작을 뿐이다. 한국도 2026년 Q1 수치를 보면 20개의 회사가 거의 1조 원의 투자금을 흡수했는데, 이는 투자 받은 전체 회사의 6.6%가 전체 펀딩의 40%를 가져간 셈이다. 미국만큼 양극화되진 않았지만, 당분간 한국에서도 이런 미국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특히 한국 수치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작은 투자금이 많은 회사에 투자되는 추세가 지난 몇 년 동안 유지되다가 2026년 Q1부터 미국같이 큰 투자금이 소수의 회사에 집중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는 역시 AI와 관련된 방향 전환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도 큰 회사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한국 투자자들은 그냥 미국을 따라가고, 투자 전략은 없고 시장에 FOMO만 가득 찼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6월 중순에 SpaceX가 $1.5T ~ $2T에 IPO를 한다고 한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작년에 거의 8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기업의 가치가 한국의 GDP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아직 나의 작은 뇌는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에 OpenAI와 앤쓰로픽이 각각 $1T에 IPO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나의 작은 뇌가 프로세싱 못 하고 있다. 미국의 상장 시장이 아무리 커도 이 거대한 IPO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비슷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더 작은 시총으로 IPO 하는 회사들을 위한 시장의 관심과 식욕이 이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IPO들이 모두 성공해서 이 회사들의 가치가 증명된다면, 우리 앞에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 모두 한 단계 올라가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것인데, 이건 생각만 해도 기대되고 흥분된다. 하지만, 만약에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우리 모두의 앞에는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의 벤처 겨울이 따뜻했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이 벤처 생태계에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이 올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까, 아니면 재앙이 올까?

잘 모르겠지만, 찬란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길 바란다. 정말로. 간절히.

어쨌든 우린 그냥 우리만의 철학과 전략으로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