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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의식

작년 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2주 동안 완독한 ‘리추얼’이라는 책으로 올해의 독서를 시작했고, 50권 목표의 첫 테이프를 이 책으로 끊게 돼서 2025년 독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 책의 저자인 메이슨 커리는 일상과 창조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은 분이고, 항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 ,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특별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 “창조적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주도적이고, 더 훈련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기 위해서 그는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로 손꼽히는 소설가, 작곡가, 화가, 안무가, 시인, 철학자, 영화감독, 과학자들의 하루를 정리하는 Daily Routines 라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위대한 사람들의 하루 시간표와 작업 습관을 정리하면서, 이들을 일반인들과 확연하게 구분하는 수면, 작업, 연습, 휴식 패턴을 찾고, 혹시 일상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자들만의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파악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정리한 게 ‘리추얼’ 이라는 책이다.

리추얼은 위대함을 달성하기 위한 습관과 루틴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우리가 잘 아는 예술가나 과학자 중 아주 괴팍한 작업 습관을 가진 분들도 많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어떤 창조자들은 반복되는 패턴보단 순간의 느낌과 영감에 의해서 아주 짧고 굵은 삶을 살다 갔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훨씬 더 많은 창조자들이 순간의 느낌과 영감보단,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반복으로 인해 생긴 습관과 루틴에 따라서 지속성 있는 창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꾸준함에 대해서 읽다 보면, 이들이 위대한 창조자라기 보단 수십 년 동안 매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선수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고, 매일 같은 회사로 출근해서 수십 년 동안 같은 업무를 하는 직장인의 삶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리추얼에서 소개된 위인들의 삼 분의 이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남긴 창조물은 책, 음악, 그림, 영화 등으로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 영감을 줄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서 내가 이들과 직접 이야기할 순 없지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이들의 위대함은 타고난 유전자나 번뜩이는 영감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매우 지루한 습관, 동작, 그리고 루틴을 거의 평생 기계적으로 무한 반복했고, 이로 인한 내공이 쌓이고 그 내공의 포텐이 터지면서 위대함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항상 나만의 정교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이 책은 나에게도 많은 꿈과 희망을 줬다. 내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보단 그냥 내가 현재 하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습관과 루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이 책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습관에 대한 정의를 발견했다.

“습관은 제한된 자원, 예컨대 시간(가장 한정된 자원)은 물론이고 의지력과 자제력, 낙천적인 마음마저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정교하게 조정된 메커니즘이다. 좋은 습관은 정신적 에너지를 몸에 밴 반복 행위에 쏟고, 감상의 폭정이 끼어들 틈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을 잘하고 싶으면, 인생을 더 단순화해야 하고, 복잡한 인생을 단순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좋은 습관과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보람,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는 당연히 모두 다 좋아하지만, 투자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도 처음 투자했을 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고,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 초기와 같은 에너지 레벨로 사업하고 있는 분들을 나는 더욱더 좋아한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그동안 큰 성장을 해서 유니콘이 된 회사들보다, 고생하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오히려 성장을 많이 못 한 회사들이 나는 더 반갑고 정겹긴 하다. 왜냐하면, 그 오랜 기간 동안 회사가 큰 성장을 못 했음에도 아직 살아남아 있고, 제이 커브는 아니지만 계속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고, 큰 펀딩 없이 생존 하는 법을 터득한 것 자체가 많은 스타트업이 하지 못하는 큰 업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떻게 보면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갈 곳이 있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팀원들을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오랜 시간 동안 설득하고 동기 부여하면서 모두가 한 방향을 볼 수 있게 이끈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우리 투자사 대표를 오랜만에 만났다. 2016년도에 우리가 첫 투자를 한 회사이고, 그 이후에 몇 번 더 소액의 후속 투자를 했지만, 회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진 못하고 있고, 대규모 투자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제품을 만들고 있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우리의 8년 된 기투자사를 마치 처음 만나서 검토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회사 설명을 들어보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는 자리를 오랜만에 가져봤다.

회사 슬라이드에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있었다. 2016년도에 우리가 첫 투자 하고, 당시 팀원분들 5명과 내가 선릉역 골목 어느 식당에서 축하 저녁을 먹으면서 찍었던 오래된 사진인데, 그 사진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고, 짠하기도 했다. 일단 사진 속의 다른 사람보단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멍청하고, 조금 더 순진하고, 아직은 VC가 뭔지 잘 모르는, 그래서 더 용감해 보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이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에 사진 속의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들과 초기 멤버 5명의 얼굴을 하나씩 봤다. 사진으로만 봐도 모두 에너지가 넘치고, 조금은 더 앳되고, 이들에게 닥칠 미래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로 가득 찼고, 10년이 넘게 큰 성장 없이 같은 사업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표정이라서 그런지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저 때가 좋았죠”라는 말을 과거의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참 놀라웠던 건, 그 사진 속 멤버 5명 중 4명이 아직도 회사에서 현역으로 매일 최선을 다해서 같은 방향을 보고 정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처음 투자했던 8년 전과 똑같이 말이다. 우리가 투자한 진 8년이 지났지만, 이들이 같이 일 한진 10년인데, 10년째 같은 사업을 같은 에너지 레벨로 한결같이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짜릿하기까지 했다. 더 짜릿한 건, 이 사진 속의 이들은 당시 모두 미혼이었는데,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다니는 동안 모두 다 결혼도 했고, 이 중 엄마, 아빠가 된 분들도 있다.

투자한 회사가 유니콘이 되거나, 좋은 엑싯을 해서 우리도 돈을 많이 벌면 기분도 좋고 보람차기도 한데, 그렇지 않아도 투자자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이날이 그런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투자한 이 대단한 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보람차기도 했지만, 이런 분들에게 투자한 스트롱 또한 자랑스럽고 보람찼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큰 책임감과 사명감, 뭐 이와 비슷한 기분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2025년이 벌써 기대된다.

62권 – 2024년

이번 주에 올해 내가 6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는 자랑을 했다. 해마다 50권의 목표를 설정하고, 책 종류와 분야는 특별히 가리지 않는 잡식성 독서를 하는데, 올해도 좋은 책을 많이 읽었고, 현재까지 62권을 읽었으니, 아마도 64권으로 올해를 마무리할 것 같다.

실은 50권의 목표를 설정한 첫해에는 그냥 내가 그 해에 실제로 몇 권을 읽을 수 있을지 실험해 보려고 독서 관련 포스팅을 했는데, 이제 해마다 연말에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글을 쓰는 게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독서에 대한 글을 쓰면 책을 많이 읽으라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는데, 이건 나에겐 아주 좋은 스트레스다.

생각해 보면 작년도 정말 바빴는데, 올해는 2023년 보다 더 바빴다. 일도 더 많았고, 출장도 더 많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게 올해 나는 더 많은 독서를 했고, 운동도 더 많이 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두 더 건강해졌다. 그래서 나는 바빠서 책을 못 읽었고, 바빠서 운동을 못 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건 내 의지의 문제이고, 할 수 있다고 하면 할 수 있고, 독서하고 운동하겠다고 계획하면 둘 다 할 수 있다.

이전 포스팅이 현대의 창업가 정주영 씨 이야기였는데, “하면 된다.” 관련해서 이분이 했던 두 개의 명언을 여기서 소개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은 인간이 계획하는 데 달려 있다. 적자가 나게 계획하면 적자가 나고, 망하게 계획하면 망하는 법이다.”

내 독서 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일단 나는 더 이상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 종이책, 전자책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구매한 적이 없고, 빌려만 본다. 내 기본 대여 플랫폼은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이다. 여기에 없는 책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직접 빌려본다. 이 두 개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면서 중간마다 우리 사무실 구글캠퍼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도 책을 대여하면, 1년 365일 손에서 책이 떨어져 있는 날이 없다. 옛날 어른들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항상 몸에 책을 가까이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좋다. 나는 그냥 항상 부자가 된 느낌인데, 이 느낌은 그 어떤 행위도 대체해 줄 수 없다.

책을 읽은 후 서평은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올해 내가 플라이북에서 별 5개를 준 나의 베스트 책들을 가장 최근에 읽은 순서로 나열하자면,

정주영의 ‘이 땅에 태어나서’
아이라 바이오크의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장강명의 ‘열광금지, 에바로드’
임경선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
권민창의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이다’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김하나의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세이노의 ‘세이노의 가르침’
데이비드 재럿의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이렇게 14권이다. 62권 중 14권이면 올해 읽은 책의 22.5%에 별 5개 만점을 준건데, 너무 후하게 준 것 같다. 참고로 작년에는 읽은 책의 12%에 별 5개 만점을 줬었다. 책을 읽을수록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예: 장강명, 임경선, 김하나) 책을 무의식적으로 골라서 읽다 보니 별 5개가 많이 나오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계속 실험을 해봐야겠다.

올해 읽은 책들에 특정한 패턴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의 책을 꽤 많이 읽었고,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경영과 비즈니스 관련 서적은 최대한 안 읽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그냥 평범한 에세이나 소설 위주로 독서했다.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을 5시간에 걸쳐서 읽는다는 건, 그 책을 쓴 저자의 평생의 경험과 통찰력을 단 5시간 만에 배운다는 건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남는 장사는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없고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변명이다.

내년에도 50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평등한 자본금

올해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보통 일 년에 50권을 목표로 정하고, 지난 5년 동안 매해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60권을 돌파해서 기분이 참 좋다. 60권 이상 읽은 자랑은 다음 포스팅에서 해보려고 한다.

어제 올해 62번째 책을 완독했는데,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씨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였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는 작은 사내 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책 중 하나였고, 그동안 이 책이 진열된 건 여러 번 봤지만, 페이지 수가 조금 많기도 하고, 너무 익숙한 한국 기업 이야기라서 그런지, 선뜻 손이 안 갔다. 드디어, 11월 말,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대여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실은, 그냥 재미있는 게 아니라,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장하고 싶은 책이다.

현대라는 기업은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어디를 가도 현대가 만든 제품을 우린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단한 기업이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이 회사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주영 씨도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맨손으로 현대를 시작했다는 건 대부분 알지만, 이분이 어떤 철학과 원칙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했는지 아는 분들은 별로 없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몰랐으니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현대그룹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현대에 대한 건지, 아니면 정주영 씨에 대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스타트업 창업가와 그 회사를 동일시 하는 것과 같이, 나에겐 둘 다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 한국인들은 존경하거나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기업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한국보단 항상 외국인 CEO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내가 일하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들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알고 있고, 누구한테 얼마의 투자를 받아서 얼마나 단기간에 유니콘 기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소셜 미디어에 자주 포스팅을 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CEO나 한국의 창업가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보이는 것 같다. 한국에도 대단한 기업과 이 기업을 만든 창업가들이 많은데, 우린 너무 밖에서만 좋은 role model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반성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내 등잔 밑이 참 어두웠다는 것이다. 정주영 씨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이분의 인생 자체가 현대였기 때문에 이 책은 현대의 창업 이야기이고, 그 어떤 창업 이야기보다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이런 면에서는 나는 현대도 엄청난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세세한 서평을 쓰진 않겠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권장하고 싶다. 아마도 정주영 씨의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조각조각 많이 들었겠지만, 이 분이 어떻게 현대를 창업했고, 현대가 어떤 역경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국 최고의 회사가 됐는지, 이 자서전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하지만 가장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말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본금”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 평등한 자본금을 열심히 활용한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말을 하면서 이게 현대의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이 자본금을 그냥 잘 활용한 게 아니라, 정주영 씨는 정말 오지게 잘 활용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간이라는 평등한 자본금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부터 더 잘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링에 오르기. 그리고 버티기.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완전히 집중해서 정독했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서평은 웬만하면 안 하는데, 정말 좋은 책을 읽은 후에는,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끔 올리긴 한다. 이전에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어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간략하게 올리긴 했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세이도 나는 별 5개를 줬고, 이 책 대부분의 내용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은 하나도 안 읽었지만, 에세이는 많이 읽었다. 에세이들의 주제와 내용은 다르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이 뛰어난 작가의 인생철학과 원칙이 잘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지향하는 인생철학, 원칙과 비슷해서 더 재미있게 읽었고, 읽을수록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 명의 작가로서 좋아하게 됐지만, 결국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경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정의한 하루키의 인생철학과 원칙은 ‘꾸준함’과 ‘복리의 힘’이다. 그리고 내가 매번 강조하는 세상의 모든 큰일은 모두 작은 일을 계속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통 소설가라고 하면, 회사원보단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하루키가 말하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냥 일반 직장인이랑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소설이란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소수만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소설이라는 건 오히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프로레슬링 링은 매우 넓고, 로프의 틈새도 넓고 편리한 발판도 있어서 누구나 다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링에 올라가는 걸 저지하는 경비원도 없고 심판도 빡빡하게 굴지 않아서, 그냥 어느 정도 기본 실력이 있거나, 연습을 좀 하면 다 올라갈 수 있는데, 마치 소설이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상대적으로)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은데, 이게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쓰고, 소설로 먹고살고, 결국 소설가로서 살아남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쓴 시점 기준으로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신인 작가로 등단하는 것을 봤는데, 이 중 현역 소설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분은 거의 없다고 한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이걸 하기 위해선 재능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행인 점은 이 자격은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고생하면서 습득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한다. 그리고 나는 하루키가 강조하는 이 자격이라는 건 바로 꾸준함, 끈기, 그리고 복리의 힘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하는 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VC가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누구나 투자자가 될 수 있고,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좋은 회사를 찾아서 한두 개의 좋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링에는 누구나 다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계속 투자하면서, 투자로 먹고살고, 직업으로서의 투자자가 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즉, 링에서 버틸 수 있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하루키의 말을 그대로 빌려 쓰자면, 이건 단순히 좋은 투자자의 재능보단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데, 이 자격 또한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꾸준히 투자해야 하고, 작은 일을 계속 해서 아주 큰 일로 만들 수 있는 복리의 힘을 믿어야 한다.

스트롱도 이제 12년을 잘 살아남았고, 앞으로의 12년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투자자의 재능보단, 계속 이렇게 링 위에 올라가서 오래 버틸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다.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한 20년 뒤엔 이게 뭔지 알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 몇 년은 투자자로서 링에서 계속 버틸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기간으로 삼아야겠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 한 모든 것은 비단 소설가나 투자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창업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번 좋은 제품을 만들고, 한 번 좋은 투자를 받고, 한 번 좋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건, 다른 많은 창업가도 하지만, 이걸 계속 연속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하는 건 정말 어렵다.

결국엔 꾸준함과 그리고 그 꾸준함이 만들어내는 복리의 힘을 믿고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