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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좀 합시다

우린 고등학교 때까진 전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로 따지면 2등은 어떤 나라인진 모르겠지만, 그 양과 깊이로 따져보면 1등인 한국과 2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날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엔? 책과는 담을 쌓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공부의 양과 질도 점점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서, 아마도 한국은 100위 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든 안 하든, 공부량은 압도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패턴이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한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4권이 안 되고, 60%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이건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를 통틀어 전 세계 최하위이고,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모두 코인 투자 같은 얕은 잡기 습득 외엔 거의 공부를 안 한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이 스타트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들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더 extraordinary 하게 일을 하거나, 더 extraordinary 하게 성장하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창업가나 투자자나 모두 본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얕은 경험과 지식은 있지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거나 제대로 뭔가를 알려고 하는 분들은 갈수록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창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사업, 고객, 직원이지만, 경쟁사에 대한 현황 파악도 잘하고 있어야 하고,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매크로 시장은 어떻고, 어떤 글로벌 벤치마크가 존재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창업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특히나 해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전에는 정보의 접근성이 낮아서 외국에는 어떤 비슷한 제품이 존재하고, 이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회사의 성장 전략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게 어려웠지만, 요샌 그냥 검색하거나 AI에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다. 얕은 지식의 대명사인 나 같은 VC도 아는 유명한 미국의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서, 이 분야에서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유니콘을 만들고 싶다는 창업가가 본인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난다. 공부를 전혀 안 하기 때문이다.

사업은 종합 예술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아야 하지만, 내 주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내가 사업하는 영역에는 국내/국외에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책도 봐야 하고, 잡지도 봐야 하고, 한글과 영문 기사도 열심히 읽고, 팟캐스트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벤치마킹해야 할 제품이 있다면, 대충 겉으로만 보지 말고 되도록 이 제품의 모든 기능을 다 써봐야 한다. 그러면서 관련 기사, 책, 팟캐스트, 인터뷰 등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내가 속한 분야에 대한 큰 그림을 내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씩 재구성하다 보면, 사업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 고등학교 때 치열하게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서 다시 공부 좀 해보자. 하지만, 제발 이런 콘텐츠를 NotebookLM이나 ChatGPT에 때려 넣고 요약본으로 학습하려고 하지 마라.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스토커와 같이 집착해라

공식 라이선스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Fanatics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이라면 Fanatics 사이트 또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뭐라도 한 번은 사 봤을 것이다. 미국 모든 대학교의 공식 라이선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NBA, NFL, MLB 등 프로 스포츠 공식 라이선스 제품도 다 판매하는, 기업가치 약 40조 원의 거대한 이커머스 회사이다.

나도 여기서 돈을 꽤 많이 썼는데, 운동용품과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Fanatics.com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체류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사이트도 잘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루빈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다른 모든 창업가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분의 인터뷰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감명 깊게 들었던 건 이 창업가의 집착이었는데, 뭐를 하던지 고객과 제품에 대한 거의 스토킹 수준의 집착으로 남보다 더 빠른 학습 커브를 만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시장에 어떤 신발을 판매하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뭘 신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발만 보니 시장에 대한 감이 생기고, 어떤 발/다리 모양이 어떤 신발을 많이 착용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짓을 수개월 동안 해서 목디스크가 생겼다는 웃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일화는 내가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몇 달 전에 ‘고객에게 미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하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런 창업가들이 점점 희귀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한다. 요새 내가 만나는 창업가들은 과거 대비 학벌도 더 좋고, 영어도 더 잘하고, 개발도 더 잘하고, 펀딩도 더 잘해서 확실히 high quality 창업가들이긴 하지만, Fanatics 창업가와 같은 스토커 수준의 집착은 오히려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서운 상대방과 불공평한 경기를 해야 한다. 이 우승 확률이 낮은 경기에서 그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 제품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 사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운동장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현재의 일등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압축해서 해야 한다. 결론은 매사에 열심히 해야 하고, 매사에 집착해야 한다. Fanatics 대표가 하루 종일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사람들의 신발만 봤던 그 자세로 스토커같이 집착해야 한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생각하는가? 우리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집착하고 있나?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는 더 가팔라지는데,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우리 제품, 고객, 직원,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매번 지는 경기를 할 것이다.

개 같이 일하기

Tech 쪽에 종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자주 확인하는 분이라면 얼마 전에 꽤 바이럴하게 퍼졌던 이 기사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본인의 결혼식 중, 다른 사람들이 다 재미있게 춤추고 있을 때, 노트북을 열어서 열심히 일하는 사진이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했고, 인터넷은 이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회사의 다른 동료가 어떤 코드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고, 그 접근 권한은 대표이사인 이 창업가만 줄 수 있어서, 결혼식장에서 이런 광경이 연출됐는데, 실제로 노트북을 열어서 작업한 시간은 1분도 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온갖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걸 그래도 좋게 본 사람들은 역시 회사의 주인들은 오너십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칭찬하고, 나쁘게 본 사람들은 워라밸(워크앤라이프 밸런스)이 아무리 없어도 어떻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노트북을 열어서 일을 하냐고 엄청나게 비난했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보면서 첫 반응은 좀 어이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래, 저렇게 안 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전에 내가 스타트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 강조한 적이 있고,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꽤 논란이 있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글 때문에 hate 이메일을 몇 개 받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고,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안타까운 내용이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는 워라밸을 중요시했고, 실은 지금도 육체나 건강을 위해서 이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한다면 그냥 무조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빡세게 일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공개적으로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없고,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젊은 직원들이 워라밸 때문에 스트레스 준다고 하고, 1대1 미팅하면 노무사보다 노동법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겁까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직원분들과 면담하고 달래주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나는 그냥 이런 분들 다 해고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초기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도 없고, 돈 받은 만큼 일도 안 하고, 더 중요한 건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서 이 미친 CEO같이 노트북을 켜서 일해야 하나?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작은 회사라면 정말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분 같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야 한다. 더욱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면 어쨌든 이렇게 일해야 한다. 나도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work mode인 것 같다. 주말까지도. 그렇다고 나는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일하기 싫다. 나도 놀고 싶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 하는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VC의 파트너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가 이렇게 회사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사들은 더욱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 나는 이 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 즉, 그냥 평타치기 위해선 –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성공하고 싶다면,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남보다 앞서지 못한다.

요샌 조금 아쉬운 건, 제일 열심히, 정말 미친개같이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이 실은 제일 일을 적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슬프다. 이런 분들이 워라밸 따지면서 노동청 웹사이트에 맨날 기웃기웃하는 거 보면 가끔은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 글 보고 엄청 많은 분들이 욕할 것이다. 증오와 혐오 이메일이 또 나한테 엄청나게 오겠지. 누군가는 나에게 너나 열심히 일하라고 할 텐데, 이 맥락에서는 나는 이런 글을 자신 있고 떳떳하게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VC 중 스트롱 분들같이 일 많이 하는 사람들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더욱더 개 같이 일한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가? 그럼 개 같이 일해라.

브랜드가 되기까지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테크 회사에도 많이 투자하지만, 겉으로 봤을 땐 테크가 핵심이 아닌 회사에도 많이 투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구매해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소비재 브랜드 회사들인데, 화장품, 음식, 의류 등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우린 이 카테고리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고, 지금도 계속 좋은 창업가가 있으면 투자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 투자하면 할수록 돈도 많이 들고, 안정적인 사업으로 성장하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걸 매일 느끼면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

뭔가를 제조해서 판매한다는 건, 소프트웨어 사업의 큰 장점 중 하나인 “zero 한계 비용”의 이점이 없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돈이 들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한 개를 판매하나 10,000개를 판매하나 생산비는 증가하지 않지만,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사업을 하면 1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과 10,000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건, 들어가는 비용에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이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 공장에 OEM 제조를 위탁하는데, 이런 제조 방식에는 회사에 여러 가지로 불리한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미래에 만들어질 매출에 대해서 오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제조 비용은 대부분 매출이 만들어지기 전에 100% 집행되어야 한다. 또한, 제조 수량이 많지 않으면 최소 주문 수량이라는 게 있어서 최소로 반드시 나가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제조 비용이 3,000원이고, 실제 판매가는 10,000원인 사료를 10,000개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에 오늘 즉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3,000만 원이다. 물론 이 3,000만 원으로 만드는 제품이 다 팔리면 우리에게 들어오는 매출은 1억 원이라서 두 개의 숫자만 비교해 보면 좋은 사업이지만, 1억 원이라는 매출이 앞으로 3개월에 걸쳐서 입금될지, 2년에 걸쳐서 입금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현금이 잠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계속 여러 가지 제품을 제조해야 하므로 나가는 돈은 항상 발생하는데, 이게 매출로 회수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항상 재정 상태는 좋지 않다. 여기에다가 시장의 인지도가 낮은 새로운 제품이기 때문에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렇게 따져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발생하고, 어느 정도 판매 물량이 항상 보장되기 전까지, 이런 사업은 절대로 돈을 벌 수가 없는 악성 사이클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업이 조금이라도 현금 걱정 없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회사 자체가 좋은 브랜드가 돼야 한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왜 좋고,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를 한없이 홍보해야 한다. 여기엔 그만큼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좋은 제품이 잘 팔리는 건 회사엔 축복이지만, 그 뒤의 현금 흐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제품이 계속 팔리면, 결국엔 이 제품을 계속 주문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다. 그리고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 또한 다 돈이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들은 가만히 있을까. 경쟁사들이 계속 출현해서 서로 더 좋은 제품이라고 마케팅하므로 마케팅 비용은 계속 오른다. 아마도 이런 사업을 하는 대표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현상이니까.

이 악성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이 좋다고 마케팅할 필요가 없는 뭔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제품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강력한 무형의 권력이다. 좋은 브랜드가 되어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그 브랜드가 각인되는 순간, 엄청난 해자가 만들어진다. 명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난 생각한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은 워낙 강력한 브랜드가 됐기 때문에,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소비자들이 웬만하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그냥 구매한다. 그냥 “저 브랜드가 만드는 제품은 당연히 좋지.”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뇌리에 박히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이어지면서 지갑을 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사 대표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가장 강력한 해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 생각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에요. 즉, 영어에서 말하는 household brand가 되는 것만큼 강력한 진입장벽은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아는 많은 명품처럼 수백 년을 기다릴 순 없다. 한정된 돈, 시간, 자원을 기반으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나만의 방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가장 좋은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은 소비자들에게 많이 노출돼야 하고, 많이 팔려야 한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노출돼도 잘 안 팔리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많이 노출되면 많이 팔린다. 이런 식으로 가면서 중간마다 계속 찾아오는 현금 흐름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망하지 않고 계속 링에서 버티다 보면 결국엔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Good luck.

당신이 뭐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을 하는 대표면 당연히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어야 하고, 이 분야에 다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즉, 경쟁사는 누가 있고 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놀랄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생각과 전략, 그리고 우리 회사의 방향과 전략보다, 경쟁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고,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고객에 집중하기 보단 우리 경쟁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나랑 이야기 해 본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잘 알 텐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미팅을, 이 중요한 시간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솔직히 우리 사업과는 전혀거의 상관없는 다른 회사 이야기로 채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언젠가 갑자기 시장에 출현한, 그래서 더 주목받고, 펀딩도 더 잘 받은 어떤 경쟁사를 우리 투자사 대표가 너무나 의식해서, 지금 자기 사업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계속 경쟁사에만 집중하고, 경쟁사와의 따라잡기 게임만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이런 줏대 없는 창업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원하고 응원한 게 쪽팔려서, 이분에게 그냥 그 경쟁사로 가서 취직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분은 계속 남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회사 이야기를 삼십 분 넘게 했고, 이분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 낭비한 삼십 분이었고, 내 소중한 삼십 분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다.

경쟁에 대해선 나는 비교적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봤을 때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경쟁사가 하는 일에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 동향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사의 재무제표는 거의 줄줄 외우고, 이들이 지금까지 뭐 했고, 앞으로 뭘 할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하는 사업의 unit economics도 잘 모르고, 올해 지금까지의 매출과 비용도 정확하게 외우지 못해서, 그때그때 마다 노트북에서 숫자를 확인하면서 나랑 대화했다. 당연히 이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 세계 비즈니스의 역사를 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들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오히려 경쟁에만 너무 집중해서 본인들이 어떤 회사인지 망각하고, 본인들의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연예인으로 홍보하면 우린 더 유명한 연예인으로 광고하고,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면, 우리도 똑같은 기능을 만들고, 이런 경쟁사에만 집중하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 자체가 희석된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건 회사가 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미팅에서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우리 경쟁사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회사가 어떤 밸류에이션에 얼마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창업가와 다른 회사에 관심 있었다면, 나는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가끔 이사회나 주주간담회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경쟁사 이야기만 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주로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가 뭐 하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고, 다른 투자자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미 월간 리포트에 다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냐. 그 회사는 최근에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데, 우리도 다시 펀딩해야하는게 아니냐. 이런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주주명부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들이 그렇게 관심 두는 경쟁사에 투자하라고 해라.

창업가들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 다른 회사, 다른 경쟁사에 대해 신경 좀 끄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