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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이 일하기

Tech 쪽에 종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자주 확인하는 분이라면 얼마 전에 꽤 바이럴하게 퍼졌던 이 기사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본인의 결혼식 중, 다른 사람들이 다 재미있게 춤추고 있을 때, 노트북을 열어서 열심히 일하는 사진이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했고, 인터넷은 이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회사의 다른 동료가 어떤 코드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고, 그 접근 권한은 대표이사인 이 창업가만 줄 수 있어서, 결혼식장에서 이런 광경이 연출됐는데, 실제로 노트북을 열어서 작업한 시간은 1분도 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온갖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걸 그래도 좋게 본 사람들은 역시 회사의 주인들은 오너십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칭찬하고, 나쁘게 본 사람들은 워라밸(워크앤라이프 밸런스)이 아무리 없어도 어떻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노트북을 열어서 일을 하냐고 엄청나게 비난했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보면서 첫 반응은 좀 어이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래, 저렇게 안 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전에 내가 스타트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 강조한 적이 있고,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꽤 논란이 있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글 때문에 hate 이메일을 몇 개 받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고,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안타까운 내용이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는 워라밸을 중요시했고, 실은 지금도 육체나 건강을 위해서 이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한다면 그냥 무조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빡세게 일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공개적으로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없고,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젊은 직원들이 워라밸 때문에 스트레스 준다고 하고, 1대1 미팅하면 노무사보다 노동법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겁까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직원분들과 면담하고 달래주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나는 그냥 이런 분들 다 해고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초기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도 없고, 돈 받은 만큼 일도 안 하고, 더 중요한 건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서 이 미친 CEO같이 노트북을 켜서 일해야 하나?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작은 회사라면 정말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분 같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야 한다. 더욱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면 어쨌든 이렇게 일해야 한다. 나도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work mode인 것 같다. 주말까지도. 그렇다고 나는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일하기 싫다. 나도 놀고 싶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 하는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VC의 파트너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가 이렇게 회사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사들은 더욱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 나는 이 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 즉, 그냥 평타치기 위해선 –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성공하고 싶다면,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남보다 앞서지 못한다.

요샌 조금 아쉬운 건, 제일 열심히, 정말 미친개같이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이 실은 제일 일을 적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슬프다. 이런 분들이 워라밸 따지면서 노동청 웹사이트에 맨날 기웃기웃하는 거 보면 가끔은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 글 보고 엄청 많은 분들이 욕할 것이다. 증오와 혐오 이메일이 또 나한테 엄청나게 오겠지. 누군가는 나에게 너나 열심히 일하라고 할 텐데, 이 맥락에서는 나는 이런 글을 자신 있고 떳떳하게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VC 중 스트롱 분들같이 일 많이 하는 사람들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더욱더 개 같이 일한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가? 그럼 개 같이 일해라.

브랜드가 되기까지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테크 회사에도 많이 투자하지만, 겉으로 봤을 땐 테크가 핵심이 아닌 회사에도 많이 투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구매해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소비재 브랜드 회사들인데, 화장품, 음식, 의류 등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우린 이 카테고리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고, 지금도 계속 좋은 창업가가 있으면 투자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 투자하면 할수록 돈도 많이 들고, 안정적인 사업으로 성장하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걸 매일 느끼면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

뭔가를 제조해서 판매한다는 건, 소프트웨어 사업의 큰 장점 중 하나인 “zero 한계 비용”의 이점이 없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돈이 들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한 개를 판매하나 10,000개를 판매하나 생산비는 증가하지 않지만,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사업을 하면 1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과 10,000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건, 들어가는 비용에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이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 공장에 OEM 제조를 위탁하는데, 이런 제조 방식에는 회사에 여러 가지로 불리한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미래에 만들어질 매출에 대해서 오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제조 비용은 대부분 매출이 만들어지기 전에 100% 집행되어야 한다. 또한, 제조 수량이 많지 않으면 최소 주문 수량이라는 게 있어서 최소로 반드시 나가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제조 비용이 3,000원이고, 실제 판매가는 10,000원인 사료를 10,000개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에 오늘 즉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3,000만 원이다. 물론 이 3,000만 원으로 만드는 제품이 다 팔리면 우리에게 들어오는 매출은 1억 원이라서 두 개의 숫자만 비교해 보면 좋은 사업이지만, 1억 원이라는 매출이 앞으로 3개월에 걸쳐서 입금될지, 2년에 걸쳐서 입금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현금이 잠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계속 여러 가지 제품을 제조해야 하므로 나가는 돈은 항상 발생하는데, 이게 매출로 회수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항상 재정 상태는 좋지 않다. 여기에다가 시장의 인지도가 낮은 새로운 제품이기 때문에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렇게 따져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발생하고, 어느 정도 판매 물량이 항상 보장되기 전까지, 이런 사업은 절대로 돈을 벌 수가 없는 악성 사이클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업이 조금이라도 현금 걱정 없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회사 자체가 좋은 브랜드가 돼야 한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왜 좋고,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를 한없이 홍보해야 한다. 여기엔 그만큼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좋은 제품이 잘 팔리는 건 회사엔 축복이지만, 그 뒤의 현금 흐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제품이 계속 팔리면, 결국엔 이 제품을 계속 주문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다. 그리고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 또한 다 돈이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들은 가만히 있을까. 경쟁사들이 계속 출현해서 서로 더 좋은 제품이라고 마케팅하므로 마케팅 비용은 계속 오른다. 아마도 이런 사업을 하는 대표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현상이니까.

이 악성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이 좋다고 마케팅할 필요가 없는 뭔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제품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강력한 무형의 권력이다. 좋은 브랜드가 되어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그 브랜드가 각인되는 순간, 엄청난 해자가 만들어진다. 명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난 생각한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은 워낙 강력한 브랜드가 됐기 때문에,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소비자들이 웬만하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그냥 구매한다. 그냥 “저 브랜드가 만드는 제품은 당연히 좋지.”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뇌리에 박히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이어지면서 지갑을 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사 대표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가장 강력한 해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 생각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에요. 즉, 영어에서 말하는 household brand가 되는 것만큼 강력한 진입장벽은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아는 많은 명품처럼 수백 년을 기다릴 순 없다. 한정된 돈, 시간, 자원을 기반으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나만의 방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가장 좋은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은 소비자들에게 많이 노출돼야 하고, 많이 팔려야 한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노출돼도 잘 안 팔리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많이 노출되면 많이 팔린다. 이런 식으로 가면서 중간마다 계속 찾아오는 현금 흐름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망하지 않고 계속 링에서 버티다 보면 결국엔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Good luck.

당신이 뭐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을 하는 대표면 당연히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어야 하고, 이 분야에 다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즉, 경쟁사는 누가 있고 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놀랄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생각과 전략, 그리고 우리 회사의 방향과 전략보다, 경쟁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고,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고객에 집중하기 보단 우리 경쟁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나랑 이야기 해 본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잘 알 텐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미팅을, 이 중요한 시간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솔직히 우리 사업과는 전혀거의 상관없는 다른 회사 이야기로 채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언젠가 갑자기 시장에 출현한, 그래서 더 주목받고, 펀딩도 더 잘 받은 어떤 경쟁사를 우리 투자사 대표가 너무나 의식해서, 지금 자기 사업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계속 경쟁사에만 집중하고, 경쟁사와의 따라잡기 게임만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이런 줏대 없는 창업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원하고 응원한 게 쪽팔려서, 이분에게 그냥 그 경쟁사로 가서 취직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분은 계속 남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회사 이야기를 삼십 분 넘게 했고, 이분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 낭비한 삼십 분이었고, 내 소중한 삼십 분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다.

경쟁에 대해선 나는 비교적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봤을 때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경쟁사가 하는 일에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 동향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사의 재무제표는 거의 줄줄 외우고, 이들이 지금까지 뭐 했고, 앞으로 뭘 할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하는 사업의 unit economics도 잘 모르고, 올해 지금까지의 매출과 비용도 정확하게 외우지 못해서, 그때그때 마다 노트북에서 숫자를 확인하면서 나랑 대화했다. 당연히 이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 세계 비즈니스의 역사를 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들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오히려 경쟁에만 너무 집중해서 본인들이 어떤 회사인지 망각하고, 본인들의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연예인으로 홍보하면 우린 더 유명한 연예인으로 광고하고,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면, 우리도 똑같은 기능을 만들고, 이런 경쟁사에만 집중하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 자체가 희석된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건 회사가 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미팅에서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우리 경쟁사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회사가 어떤 밸류에이션에 얼마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창업가와 다른 회사에 관심 있었다면, 나는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가끔 이사회나 주주간담회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경쟁사 이야기만 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주로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가 뭐 하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고, 다른 투자자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미 월간 리포트에 다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냐. 그 회사는 최근에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데, 우리도 다시 펀딩해야하는게 아니냐. 이런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주주명부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들이 그렇게 관심 두는 경쟁사에 투자하라고 해라.

창업가들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 다른 회사, 다른 경쟁사에 대해 신경 좀 끄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방법을 찾기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가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을 자주 보진 않지만, 좋은 손님을 초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주말에 이전 방송들을 보다가 신순규라는 분이 출연했던 편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유퀴즈에 나오는 대부분 일반인들은 특별한데, 이분은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독특했다. 신순규 씨는 아홉 살에 시력을 잃었고,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유학 하러 가서 여러 가지 시련과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현재 월가 투자 회사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학교 졸업 후 JP모건에 최초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로 취직할 정도로 실력도 좋았지만, 실력만큼 강했던 건 이분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의지인 것 같다.

신순규 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후천적 시각 장애인으로의 삶 그 자체가 너무나 힘들 텐데, 눈이 보이는 사람도 힘든 증권 분석가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 그리고 이분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했던 인생이 내가 그냥 상상만 해도 너무나 힘들었을 것 같았다. 이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나름 인생을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열심히, 그리고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분의 인생 신조는 ‘일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보자.’인데, 나는 이런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시각 장애인으로 살면, 일반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들을 할 수 없을 텐데,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계가 명확한 삶을 사는 대신, 일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걸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태도는 인생의 결과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분의 인생이 그 증거라고 믿는다.

실은 이분의 신조는 우리가 투자하는 많은 창업가들의 신조이자, 이들의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업에 대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아본다. 그런데 이렇게 방법을 먼저 찾아보면, 그 방법이 잘 안 보인다. 대부분 하고 싶은 걸 진짜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 방법을 찾아보면, 그 방법이 잘 안 찾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은 대부분 방법을 찾아보고, 그 방법이 보이면 창업하는게 아니라, 일단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창업을 했고, 그리고 나서 방법을 찾아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진다.

바로 이전 글에서 경쟁에 임하는 태도에 관해서 썼는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걸 나는 자주 목격하고 있다. 창업가들은 대부분 일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방법을 무조건 찾아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경쟁에 임하는 자세

여전히 난 아침에 운동하면서 음악과 팟캐스트를 번갈아 듣고 있다. 얼마 전에 비즈니스 관련 흥미로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몇 가지 메모를 했었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포인트가 있어서,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기서 몇 자 또 적어본다.

미국의 한적한 휴양지 동네에 있는 작은 멕시칸 타코 식당을 운영하는 한 오너쉐프가 사업 하면서 지금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미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선배 창업가의 조언을 듣는 인터뷰인데, 이 자영업자/창업가가 요새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처음 들어봤지만, 쉐프들에게 주는 꽤 유명한 상을 받은 이 창업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동네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타코 가게를 몇 년째 운영 중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살사(소스)를 직접 가게에서 만들고, 또르띠야랑 칩스도 외주 주문하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하나씩 다 만드는, 말 그대로 수제 타코 가게인데, 이 말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멕시칸 프랜차이즈의 헤비웨이트인 치포틀레가 이 동네로 진출한다는 발표를 했고, 공교롭게도 치포틀레 매장이 이 창업가의 가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오픈한다는 공포스러운 소식 또한 발표됐다.

이 창업가의 질문은, 이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예상될 때, 다윗이 취할 자세와 구사할 전략에 관해서였다. 이에 대해 좋은 피드백이 많이 제공됐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과 상당히 비슷했다. 이미 대형 경쟁사와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선배 창업가들의 피드백과 평소 내 생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쉽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치열하게 싸워도 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성경에서는 운 좋게 다윗이 이겼지만,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대부분 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경쟁사의 우리 골목상권 진입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구역으로 진출하기로 했고,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 여기에 괜히 시간과 에너지는 쓰지 말자. 우리가 또 할 수 없는 건, 이들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치포틀레와 같은 대기업은 볼륨의 왕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원가는 항상 낮을 수밖에 없고, 이들이 원한다면 우리보다 항상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격을 낮추든 안 낮추든, 일단 우리 마진의 30%는 무조건 날아갈 것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가게도 충분히 강점이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다. 대기업이 잘하는 게 많지만, 작은 가게가 잘하는 것도 많다. 이 타코 가게의 경우 모든 음식을 즉석에서 요리해 주는데, 이렇게 하면 맛은 월등할 수밖에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제공할 수 없는 탁월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이 가게는 이미 동네 주민 커뮤니티의 일부가 됐고, 이런 소속감과 커뮤니티십을 잘 활용하면 단골 손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나온 예시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과 밴드를 매주 초대해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수제 타코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잘 못 하는 고객과의 접점을 더욱더 강화해서 서비스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종합하자면, 우리만의 차별점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고, 식당의 경우 이건 주로 맛과 서비스를 더욱더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이렇게 당연한 게 대부분 잘 안 지켜진다.

한국은 골목상권과 대기업 간의 싸움이 미국보다 더 언론화되고 큰 이슈 거리가 된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진입하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목상권과 자영업자의 편이 돼서 대기업을 맹공한다. 나도 대기업이 모든 걸 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력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다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일 아쉽고 짜증 나는 건, 위에서 말 한 타코 가게 창업가같이 이 어려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주장만 하는데, 막상 이들의 골목 빵집, 분식집, 슈퍼, 밥집에 가보면 거지 같은 서비스에 형편없는 제품을 팔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하는 자영업자들도 너무 많다.

이 치열한 세상에서 뭐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작은 경쟁이든, 큰 경쟁이든, 경쟁을 피할 순 없다. 이럴 때 우리가 경쟁에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하는지가 매우 많은 걸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