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라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변명이지만, 아마도 학교나 직장에서 가장 자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일인데 바빠서 못 한다면 이건 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고, 아마도 바빠서 못 한다고 하는 분은 평생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나는 항상 바쁨에 대한 이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요샌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어차피 나는 워라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새벽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일을 하고, 일이 많으면 그냥 시간을 더 투입하고 더 오래 일하면 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웬만하면 해야 하는 일은 하는데, 최근에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일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바쁘다고 느끼면 정말 바쁜 거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두 개의 상반되는 감정이 내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바쁜 게 좋은 거야.”이고 다른 생각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이다. 안 바쁜 것보단 바쁜 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내 안에 아주 깊게 자리 잡은 신념이라서 이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바쁨이 14년째 매일 반복되면 가끔 지치긴 한다. 우리 회사도 머릿수가 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실력도 늘었는데, 왜 내 업무량은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트롱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곤 한다. 한국의 모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을 갖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존과 내가 기대했던 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고, 우리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LA 코리아타운의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매일 출근해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모니터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폰만 멀뚱멀뚱 보다가 퇴근했다. 그땐 정말 할 일도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우릴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첫 몇 달 동안 점심도 매일 둘이 먹으면서 누가 연락 좀 해줬으면, 점심이나 저녁 미팅이라도 할 수 있으면,,,뭐 이런 간절한 하소연과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무료했고, 답답했고, 매일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을 몇 달 동안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다시는 바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떠오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죽어도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실은 마찬가지다. 일은 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무료했던 그 시절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무리 바빠도. 그래서 이젠 이렇게 계속 바쁘게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땐 항상 일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할 일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던 그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 바쁨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결론은 바쁜 건 무조건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하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