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은 불어지만, 창업가를 뜻하는 공식 영어는 ‘entrepreneur’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반대말인 ‘fauxtrepreneur’라는 비공식 단어도 있다. ‘Faux’가 불어로 ‘가짜’라는 의미인데, 해석 그대로 가짜 창업가를 뜻한다.
가짜 창업가들의 시대가 다시 왔다. 요새 미국에서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면, 이 fauxtrepreneur라는 단어가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그만큼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가짜 창업가들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물론, 가짜 창업가들은 항상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것인데, 요샌 AI로 인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시작하고 제품을 만들면서 진짜 창업가와 가짜 창업가들이 시장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AI 기술과 제품으로 인해 이젠 누구나 모든 걸 만들 수 있다. 나 같이 코딩을 못 하는 사람도 바이브코딩 며칠만 하면 뚝딱하고 그럴싸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걸 보면, 누구나 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 그 어떤 제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이브코딩해서 만드는 제품은 시장에 진짜로 존재하는 문제를 깊게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은 없고,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껍데기 제품이다. 실제로 바이브코딩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제품이 그럴싸한 껍데기만 있는 깡통 제품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대충 만든 제품으로 투자받는 세상이 온 걸 보면 가끔은 나도 놀랄 때가 있다.
창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건 확실하다. 과거에는 창업하고 싶어도 개발을 못 하면 개발할 수 있는 코파운더를 찾거나 직접 배워야 했고, 이게 창업의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다 AI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서 나이, 경험, 학력과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만들고, 창업할 수 있다. 실은 이렇게 창업의 장벽이 낮아진 건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스트롱이 한국에 투자한 지 15년이 됐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야심차고, 자신감 있는 창업가들이 지금같이 많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투자할만한 창업가가 없는 문제는 없어진 지 오래됐고, 이젠 다 투자하고 싶은데 예산이 한정됐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좋기만 하진 않다. 실은, 부작용 투성이다. 넘쳐흐르는 창업가들과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 이들이 만든 제품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들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면 가짜 창업가가 상당히 많다. 제대로 된 사업을 만들고 싶어서 사업하는 창업가보단, 그냥 요새 AI 관련된 사업을 하면 투자받기 쉬운 환경이라서 창업하고 투자 좀 받은 후, 한 2~3년 후에 적당히 엑싯하거나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이력서에 “AI native 회사를 창업해서 스트롱벤처스로부터 투자유치” 경력을 추가하면 구인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창업가들은 실은 항상 존재했는데, 바이브코딩 전에는 꽤 높은 정확도로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게 가능했다. 이젠 모두 다 너무 그럴싸한 제품 껍데기를 만들고, 모든 것을 다 AI에 물어보고 준비해서인지 이들을 구분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졌다.
요새 내가 제일 힘든 건, 진짜 사업을 하기 위해 창업하고, 이 고통스러운 여정을 최소 10년 이상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진짜 창업가와 그냥 AI라는 테마로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받고, 몇 년 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것이다. 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또한 스스로 정화되고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AI라는 아주 화려한 재킷을 입고 다닌다. 문제는 모두 다 그 화려한 재킷이 얼마나 이쁘고 멋진지 칭찬하지만, 그 누구도 그 재킷 안에는 뭘 입었는데 안 물어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킷을 벗으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은 발가벗은 가짜 창업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린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