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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삽

사업이 잘 안될 때, 언제까지 해야지, 이제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하자는 결정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시점에 나한테 이 질문을 하는 우리 창업가분들이 요새 부쩍 많아졌고, 스타트업에서 정답이란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답이 없는 질문 중 하나라서 나도 답답하고, 미안하고, 항상 고민하는, 그런 질문이다.

이 질문은 내가 11년 동안 VC로서 활동하면서 꾸준하게 받았던 질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사업을 몇 년 동안 했는데, 만족할 만한 성과는 항상 안 나오지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느낌과 희망을 가진 창업가 – 실은 이건 모든 창업가에게 해당할 것이다 – 라면 누구나 다 이 질문을 한다. 이런 분들은 딱 3개월만 더 해보면, 그동안 찾지 못했던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서 우리 제품이 대박 날 것 같고, 딱 2달만 더 펀딩을 시도해 보면 우리 사업을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날 것 같고, 피봇팅을 한 번만 더 하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분들의 생각, 고민, 스트레스, 그리고 마음을 나는 아주 정확하게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스트롱 전에 몸담았던 뮤직쉐이크라는 스타트업에서 5년 동안 내가 이런 생각과 고민을 거의 매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엔 어느 순간 멈췄다. 5년 동안 열심히 삽으로 땅을 팠다. 열심히 파면 분명히 저 땅 밑 어딘가에는 금광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금광을 찾을 때까지 계속 땅을 파겠다는 의지가 초반에는 너무 강했다. 그런데 계속 깊게 파고 들어갔는데, 금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하고 그 옆을 파고 들어갔고, 또 그 옆을 팠고, 금광이 없으면 계속 다른 곳을 파고 들어갔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는데, 그래도 한 삽만 더 뜨면 분명히 금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엔 나는 삽질을 멈췄다. 삽질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내 속에서는 “야, 배기홍. 다 왔는데 여기서 멈추면 어떻게. 한 삽만 더 파면 네가 5년 동안 한순간도 못 잊었던 금광이 있다니까. 한 삽만 더 파봐.”라는 생각이 계속 멤돌았다. 하지만, 나는 지쳐있었다. 너무 지쳐서 한 삽만 더 파면 정말로 금광이 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고집과 집착에 몸과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금광이 있다는 환상을 믿었던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후자일 거라고 스스로를 힘들게 설득하고 멈췄다. 그리고 다시 내가 판 땅굴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맞는 결정을 한 것일까? 원래 금광이 없었는데, 혼자서 최면을 걸면서 개고생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딱 한 삽만 더 팠으면 노다지를 발견했을 텐데 그걸 못 견디고 포기한 걸까? 아마도 진실은 무엇인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실은 지금도 삽을 들고 다시 땅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최근에 어떤 대표이사를 만났다. 7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본인 돈 25억 원을 회사에 투입하면서 계속 사업을 연명하고 계신 분이다. 몇천만 원, 또는 많아도 5억 원 정도를 대표이사가 회사에 투입한 사례는 봤지만 본인 돈 25억 원은 내가 아는 액수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까, 딱 이 말을 했다. “한 삽만 더 파면 분명히 금광이 있을 거예요. 지금 포기하면 너무 아깝잖아요.”

다행히도 이분은 개인적으로 돈이 좀 있는 분이라서 나중에 개인 파산하는 상황까진 안 갈 것이지만, 과연 저 밑에 금이 있는데 더 깊게 안 들어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집착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이분에게 그만하라는 충고도 못 했고, 계속 열심히 삽질하라는 충고도 못 했다. 그냥 “열심히 하세요” 하고 헤어졌다. 뭘 열심히 하라고 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정말로 한 삽만 더 파니까 금이 있어서 대박 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고, 한 삽이 열 삽이 됐고, 열 삽이 백 삽이 됐지만 금은 못 찾아서 폐인이 된 창업가도 나는 몇 명 알기 때문이다. 내가 충고해 줄 영역은 아니라서 그냥 입 닥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삽의 진실. 이 질문은 나에겐 영원한 스타트업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

모르는 걸 모르는 것

코로나 기간 우린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로봇을 만들고 있는 Roboligent라는 한인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서비스 자동화 분야의 로봇을 만들고 있는 회사인데, 이 회사의 창업가인 김봉수 대표님은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100% 다 만들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투자하고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 전에 오스틴에 가서 로보리젠트 팀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이 회사의 첫 번째 로봇인 Optimo Regen을 – 재활 치료를 돕는 로봇 – 줌과 동영상으로만 봤는데, 내가 직접 휠체어에 앉아서 로봇의 도움으로 모의 재활 치료를 해보니까 이 팀이 얼마나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얼마나 대단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로봇 스타트업은 다른 회사의 로봇 팔을 구매해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이 팀은 모든 걸 직접 다 만들었다.

돈이 별로 없는 스타트업이라서, 창고형 사무실에서 직접 부품을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조립하는데,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직접 로봇을 만드는 작업실 같은 분위기가 나서 로봇 공장을 견학하는 어린이같이 들뜬 마음으로 미팅을 했다.

김봉수 대표님은 UT 오스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바로 이 회사를 창업했는데, 본인도 이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냥 계속 만들다 보니 아주 훌륭한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나같이 공학은 공부했지만, 직접 한 번도 뭔가를 만들어 보지도 않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봤을 땐, 너무나 대단한 창업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대규모 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꽤 많이 있는데, 이 회사들의 창업가들도 Roboligent의 김봉수 대표님과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많이 들었다.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진짜로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시작했더니 진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리고 이분들과 더 깊게 이야기를 해보고,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창업가들은 본인들이 잘 모른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걸 시도했고, 벽에 부딪혔을 때도 이게 벽인지 모르고,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다 보니 해결책을 찾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르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걸 주제 파악이라고 하고, 나도 이걸 엄청나게 강조하고 다닌다. 하지만, 가끔, 어떤 경우에는 모르는 걸 아예 모르는 게, 그 누구도 모르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요새 가끔 소규모의 기적들을 직접 목격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이 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오늘도 본인이 모른다는 것을 잘 모르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작은 기적들을 만들고 있는 창업가분들 파이팅이다.

다운 라운드

요새 모두에게 참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가 최근에 첫 투자한 회사들은 아직 너무 작고,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 곳들이 너무 많다. 스트롱에게 초기 투자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제품의 product market fit을 찾고, 이렇게 찾은 fit을 확장하기 위해서 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계속 성장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이제 이런 계획들은 당분간은 실행할 수 없는 계획으로만 남게 됐다. 시장에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 작은 규모에 성장이 없는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를 아예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올해 우리 투자사 중 망하는 회사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수백억이 넘는 회사들은 위에서 말한 완전 초기 회사보단 제품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상당히 발전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많이 벌거나 흑자 전환을 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계속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이 회사들은 완벽한 product market fit을 아직 찾진 못했지만, 돈과 인력이 보강되면 꽤 확실한 성장이 보이기 때문에 완전 초기 회사들보단 투자받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하다. 이렇게 투자받을 때 요새 자주 보는 게 기존 밸류에이션보다 더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down round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라운드 대비 5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고, 심하면 7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다.

다운 라운드는 모두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밸류에이션 거품에 흠뻑 젖어서 비싸게 투자한 시리즈 B, C 투자자들은 몇 달 만에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반토막 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다른 임직원과 심사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소신 있게 주장해서 투자했다면, 회사 안에서의 입지도 약해졌을 것이다. 우리같이 일찍 들어가는 투자자에겐 다운 라운드가 진행돼도 돈을 잃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지분 가치가 20배가 아니고 3배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투자하기 때문에, 지분 가치가 20배 될게 3배가 되면, 우리 또한 많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다운 라운드의 충격과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은 바로 회사의 창업가, 대표이사, 경영진, 그리고 임직원들이다. 모두 다 개고생해서 0원짜리 구멍가게를 4,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었는데, 기업가치가 갑자기 400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운 라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회사를 계속 믿고 돈을 주겠다는 신호라서 아주 고맙게, 신속하게, 그리고 신나게 투자받아야 한다. 비상장 회사의 기업가치는 어차피 종이 가치라서, 계속 생존하면서 좋은 제품과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다 보면 다시 충분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들어갔던 많은 후속 투자자들이 다운 라운드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요새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본인들이 들어갔던 기업가치보다 낮은 다운 라운드는 무조건 막으면서, 극단적으로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하락할 바엔 그냥 회사를 폐업하라고 하는 투자자도 있다고 들었다. 뭐, 투자자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투자는 장기전이라서 좋은 팀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기업 가치는 다시 리바운드하기 마련이다.

세계 최고의 드라마

나는 스타트업 행사에도 잘 안 가고,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도 스타트업 씬에서 10년 넘게 일해서 그런지, 아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이분들이 많이 모인 행사에 가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정신도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든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참석하는 정기 행사가 분기마다 두 개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주최하는 스트롱 행사이다. 하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돈을 주는 LP 분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고, 또 하나는 이 소중한 돈을 우리가 투입하는 스트롱 창업가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다. 두 행사 모두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서 진행하고, 두 행사 모두 비공개 행사이다.

스트롱 포트폴리오 모임에는 창업가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게스트 한 분을 항상 모시는데, 좋은 엑싯을 한 창업가, 유니콘을 만든 창업가, 크게 실패한 창업가 또는 우리보다 투자를 잘하는 좋은 VC들이 그동안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분기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원래 일정은 40분이지만, 대부분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어떤 유니콘 창업가분을 모셨을 땐,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고 영감을 주던지 거의 2시간 넘게 지속됐다. 행사는 항상 우리 투자사 플레이팅에서 케이터링한 저녁으로 마무리한다.

게스트 세션은 fireside chat 스타일로 나와 아주 편안하게 1대 1 대화를 하는 형식인데, 내가 이 세션을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공개적으로 인터뷰나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들은 초대하지 않는다. 큰 사업을 만들었지만, 공개 석상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분들을 주로 초대한다. 그래야지 이야기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사전 질문을 공유하지 않고, 대본을 미리 만들지 않는다. 그냥 당일 즉흥적으로 대화를 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게스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른 후배, 선배, 또는 동료 창업가들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되고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다. 대본 없는 대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무대에 오르진 않는다. 게스트분에 대해서는 나는 공부를 꽤 많이 하고,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분기마다 이 행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 창업가들의 인생과 사업 이야기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도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한 창업가가 수년, 또는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세상과 외롭게 싸운 이야기에는 희로애락과 기승전결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는 이걸 ‘창업기’라고 한다.

이런 창업기는 같은 걸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창업기를 나는 이미 수십번을 들었는데, 매 번 들을 때마다 새롭고, 그때마다 너무 재미있다. 어떤 창업기는 코미디이고, 어떤 건 빌어먹을 비극이다. 어떤 창업기는 한 편의 공포물과 같고, 심하면 블록버스터급의 재난영화이다. 어떤 창업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썩 좋지 않고, 좋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는 그냥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창업기는 각각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모두 다 사연이 있는 자기만의 전쟁을 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드라마를 계속 만들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오늘도 존경을 표시해 본다.

24시간 대기조

한국도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과거와 같이 8월에 전 국민이 휴가를 가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 기간에 휴가를 간다. 우린 작은 회사라서 특별히 휴가 기간이라는 게 없고, 그냥 쉬어야 할 때 쉬는 유연한 일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너무 바빠서 충분히 쉬진 못하지만, 되도록 쉬고 싶은 만큼 쉬라고 격려와 권장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 남들이 쉬는 바쁜 휴가철을 피해서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에 스트롱 동료분과 이야기하면서 쉼과 휴가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특히나 요새 다들 힘들어하니까 휴가를 가도 계속 이메일, 전화, 카톡, 슬랙을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휴가를 가면 완전히 스위치를 off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렇게 못 할 것이다. 대부분 스위치를 반 정도만 꺼놓고, 중간 중간에 계속 일을 하는 거로 알고 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휴가를 가도 항상 스위치를 켜 놓고 있다. 나는 주로 매일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급한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가서도 계속 일을 하고, 메신저는 항상 켜 놓는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아주 나쁜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남들은 나한테 병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루틴을 반복한다.

하지만, 투자하다 보면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Fred Wilson도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기업보단 사람에게 투자하고, 이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은 항상 스위치가 on 되어 있고, 24시간 숨을 쉬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도 24시간 같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만 스위치를 완전히 off 할 수가 없다.

특히 요샌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기 때문에 더욱더 긴장하고 우리가 투자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고, 우린 한국과 미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스위치를 완전히 끌 수가 없는, 멈출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119 소방대원같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건 아니지만 – 하지만, 가끔은 정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죽이기도 한다 – 요샌 점점 더 VC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건 24시간 대기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은 24시간 돌아간다.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에게 투자하고 지원하는 VC의 업 또한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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