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lure

월급쟁이 VC

얼마 전에 내가 이런 페이스북 포스팅을 했다.

사실의 100%를 내가 모르면, 이렇게 내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내용은 꼭 공유하고 싶었고, 나는 이 창업가를 지지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이 포스팅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공유해줬고, 당연히 여러 가지 내용과 의견이 있었다. 이 사태를 어반베이스의 입장에서 보는 분들에겐 신한캐피탈은 악마이지만, 또 그 반대로 신한캐피탈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는 분들에겐 어반베이스가 멍청한 것이고, 신한캐피탈은 그냥 계약서에 충실한 대기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위의 두 가지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나는 뭐라 하지 않겠다. 이 세상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악마가 천사가 되고, 천사가 악마가 되는 걸 우린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이 다양하고 컬러풀 한 의견 중 내가 내 생각을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투자 담당자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냥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서 회사가 이상한 거지 그 담당자를 욕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전 그냥 월급쟁이예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라는 말을 우린 너무 많이 듣고, 실은 너무 많이 하는데, 난 이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무슨 이야기만 하면 매번 이 월급쟁이 변명을 하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분들은 이 사회를 좀먹는 사람들이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은, 본인의 의지나 힘으로 그 어떠한 노력도 해보지 않고, 매번 이 월급쟁이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내 의지로 최선을 다해봐도 내 직책과 지위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경우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건 아니다.

물론, 난 어반베이스 대표의 주장만을 기반으로 이 상황을 내 시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전체 그림의 일부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내가 반박할 수 있는 건,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게 어떤 상황인지 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투자사의 대표이사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다 – 공동 투자사의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이분이 회사 또는 본인이 주장하는 일련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에 대해서 회사 내부에서는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월급쟁이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정말 정이 떨어졌다. 본인이 귀찮고, 틀렸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걸 조금이라도 고치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을 때, 한 배를 같이 탄 창업가의 인생이 망가지고, 개인 파산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족이 파탄 나고, 최악의 경우 한 생명이 사라지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무책임한 생각과 말을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사람은 VC로서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계약서대로 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완전 실패다.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당연히 중요하고, 우린 회사 대 회사가 계약으로 묶여 있고,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serious 한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이 거래의 본질엔 사람이 있다. 한 명의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믿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그런 업을 하고 있는데,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단순히 계약과 돈을 쫓는 매정한 VC이길 선택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고 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회사는 그 회사의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직원이 몇 년 후에 임원이 되고, 그 임원이 회사의 대표가 되는데, 담당자를 욕하지 말고 회사를 욕하라는 의견은 좀 그렇다. 이런 담당자들로 구성된 회사, 그리고 이런 행위를 허용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구성원들 그 자체가 회사라서 나는 더욱더 이런 사람들이 싫어진다. 내가 이런 투자자들과 같이 집합적으로, 그냥 싸잡아서 같은 VC로 분류된다는 게 창피하고 싫어지는 순간이다.

전문지식과 경험

흔히 성공적인 VC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pattern recognition’에 능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의 투자 경험을 기반으로 어떤 창업가와 어떤 사업이 잘됐는지, 반대로 어떤 창업가와 어떤 사업이 잘 안됐는지, 이 모든 과거의 경험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이 패턴을 잘 분석해서 미래의 투자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어느 정도 투자를 한 VC라면, 대부분 자신만의 이런 패턴 분석 능력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창업가와 사업을 볼 때 지속적으로 본인만의 패턴 DB를 참고해서 크고 작은 결정을 할 것이다.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때, 유명한 VC나 내가 잘 아는 선배 VC들이 이런 패턴을 잘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그 말에 많이 동의했고, 이후 몇 년 동안 나도 투자하면서 경험한 실패와 성공을 바탕으로 성공 확률이 높은 창업가에 대한 패턴을 매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샌 이 pattern recognition이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성공하는 창업가들은 모두 다 이런 패턴이 있었죠.”라고 끼워서 맞추는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이런 과거의 패턴을 기반으로 미래의 성공을 예측하는 건 과학적으로 접근해도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린 수학적으로는 절대로 예측할 수 없는, 즉, 특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는, 그리고 잠재 능력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창업가)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그 어떤 과거의 패턴도 여기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창업가의 전문 지식과 직장 경험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VC는 어려운 AI 사업을 하는 창업가라면 이분이 컴퓨터공학이나 다른 공학 분야의 석사나 박사 학위가 있으면 남들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과 학부를 졸업한 창업가와 미국 top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창업가가 둘 다 AI 관련 스타트업을 하면, 대부분의 VC는 후자의 창업가에게 투자할 확률이 더 높다. 이게 일반적인 VC들의 패턴 인식 프로세스이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창업한 두 스타트업이 있는데, 한 회사는 현대자동차에서 오랫동안 관련 사업을 했던 분이 창업했고, 다른 스타트업은 완전히 상관없는 직장에서 일했던 분이 창업하면, 역시나 현대자동차 출신 창업가에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정말 여러 창업가와 회사를 만나면서, 창업가의 학력과 학벌, 그리고 과거 직장 경험은 이 분이 새로 하려고 하는 사업의 성공 여부와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는 패턴을 발견했다. 오히려 특정 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백그라운드(=학력, 학벌)나 그 분야에서의 직장 경험이 없는 창업가들이 훨씬 더 신선한 시각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그 분야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걸 자주 봤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 너무 많은 공부를 하거나, 너무 많은 경험이 있는 분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그 누구도 생각 못 했던 파괴적이고 참신한 문제 해결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법은 실패하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엄청난 솔루션을 찾는 경우도 있고, 이러면 정말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건데,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험이 너무 많으면, “원래 그건 안 돼.” , “내가 오래전부터 해봤는데, 그건 안 되는 거야.” 등의 편견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완전히 백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창업가들은 “방법이 없을까?” , “가능할 것 같아. 방법을 찾아보자.” , “원래 안 되는 건 없어. 왜 꼭 저렇게 해야 할까?” 등의 생각으로 뭐든지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패턴 인식 레이다에 잘 안 걸린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치과대학을 졸업했고, 실제로 의사 생활까지 좀 했다. 금융업을 학교에서 공부한 적도 없고, 관련 업계에서 일 한 경험도 없다. 하지만, 이 분과의 대화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억, 그리고 이승건 대표를 잘 아는 다른 분들의 기억에 의하면, 토스를 창업했을 때 대한민국 그 어떤 금융 전문가보다 이 시장의 생리와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금융산업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시도를 했다.

얼마집이라는 모바일앱을 만드는 우리 투자사 한국프롭테크의 송지연 대표도 비슷하다. 이분은 원래 부동산이나 재건축/재개발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했고, 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부모님의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경험했고, 시장의 현실과 앞으로 시장이 가야 할 미래 사이에 너무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고 이걸 직접 해결해 보기로 결심해서 창업했다. 그런데 우리가 봤을 땐, 이 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한 직장인들이나 도시개발이나 부동산학과 교수들보다 훨씬 더 이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고, 이걸 기술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매우 구체적인 (아직 증명되지 않은)해답을 갖고 있다.

과연 특정 분야의 학업적 지식과 경험이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봤을 땐 별로 안 중요하다. 학업적 지식과 경험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시장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전문성인데, 이건 인터넷 검색과 발품을 팔면 누구나 다 획득 가능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얼마나 집요하게 이 문제를 붙잡고,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박하게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가의 문제이다. 결국, 결승전에서 이기는 건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 가장 간절하게 승리하고 싶어 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내 앞의 창업가

우린 지난 12년 동안 많은 회사에 투자했지만, 이 많은 포트폴리오와 같이 일하는 스트롱의 투자팀은 매우 작다. 나를 포함한 우리 투자팀의 규모는 딱 6명인데, 우리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작은 팀이 그렇게 많은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냐 이다(실은 우리 내부에서는 “관리”라는 말보단 “지원”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어쨌든 우린 아주 lean 하게 일한다. 작은 팀이 엄청 많은 회사를 만나고,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나는 욕심 같아서는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을 전부 다 한 번씩은 만나보고 싶다. 요새도 우린 모두 다양한 팀을 만나고 있는데, 작은 투자팀이 많은 창업가들을 만나야 해서, 주로 첫 번째 미팅은 모두 각개전투 하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도 많은 창업가와 팀을 만났는데 이 중 어떤 창업가들과의 만남은 기억에 남아서 여기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이 창업가가 하는 사업은 좀 뻔한 사업이었다. 아마도 웬만한 VC들은 “또 이 사업이야?”라면서 어쩌면 만나지도 않고 패스할 만한 그런 사업이었는데, 심지어 수치도 별로였다. 솔직히 나도 그냥 자료만 보고 안 만날까 하다가, 그래도 팀은 젊고 똑똑한 것 같아서 한 시간 정도는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역시 사업이라고 하기엔 제품도 없고, 수치는 전혀 없고, 전략도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창업가는 정말 모든 걸 다 갈아 넣으면서 나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최근에 이렇게 열심히 본인의 사업을 나에게 설명했던 창업가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미팅의 시작은 그냥 밋밋했지만, 이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더 집중하게 됐고, 점점 더 빠져들게 됐다. 이미 여러 VC들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있고, 이 사업 절대로 안 된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피칭이라는 생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료를 설명하고, 내가 중간에 이것저것 물어보면 혹시나 본인이 말실수할까 긴장하면서 말도 버벅거렸다. 중간마다 내가 이분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조금 재수 없거나, 불편한 질문을 던졌는데, 최대한 화를 안 내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과 흔적들 또한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내가 제품 데모를 보여달라고 하니, 이미 만들어 놓은 10개 이상의 데모 계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열심히 불완전한 제품의 데모를 보여줬다. 이때, 오래전 내가 뮤직쉐이크 하면서 VC들에게 피칭했던 그 모습이 이 창업가에게서 보였다. 그리고 마치 내가 이분에게 빙의?가 된 것처럼 몇 초 동안 2008년~2012년으로 돌아갔었다.

우린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남이 만든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작은 플랫폼/커뮤니티를 제공했는데, 음악 관련 사업이다 보니, VC들에게 반드시 고품질의 음악을 들려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투자자를 만날 때는 항상 노트북과 최신형 BOSE 휴대용 스피커를 갖고 다녔고, 방금 언급했던 창업가처럼 여러 개의 계정을 미리 파놓고, 각 계정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이미 심어놓은 후에 상황에 맞춰서 제품 데모를 했다. 그런데 정말 데모 귀신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중요한 VC와 결정적인 미팅에서 멋진 데모를 보여주고 싶을 땐 매번 노트북이 버벅거리고, 중요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나도 당황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땀을 뻘뻘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 했던 몇 미팅에서 만난 창업가들을 보면서 이런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때의 절박했던 상황과 생각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에 나는 꼭 투자받고 싶었던 VC가 몇 군데 있었는데, 결국 이들 그 누구에게도 투자를 못 받았다. 당시 나는 창업가의 위치에서 속으로는 “제발 이 투자자는 나 같은 보석을 알아보고, 우리 사업의 가능성을 알아봐 줬으면 너무너무 좋겠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미친놈처럼 피칭했었는데, 그걸 바로 내 앞의 창업가가 나한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앞의 창업가에게 우리가 투자할지 안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마음을 열어두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이분의 사업이 아무리 봐도 망할 것 같아도, 이 창업가의 한 시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듣고, 보고, 물어보고,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했다. 이 창업가의 눈에서 보이는 절박감과 초롱초롱함은 내가 오래전에 VC들에게 피칭할 때 수없이 어필하고 강조했지만, 그들이 무시하고 놓친 중요한 것들이니까.

바퀴벌레의 길

지난주 화, 수 이틀 동안 우리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조합원총회(AGM: Annual General Meeting)를 서울에서 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투자자분들이 많이 참석했고,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분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참 바쁘기도 했지만, 나도 재미있었고, 우리 모두 의미 있고 보람찬 48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행사에서 나는 해마다 스트롱벤처스가 그해에 했던 일들을 요약해서 투자자분들과 공유하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올해 좋았던 하이라이트와 별로 안 좋았던 로우라이트를 정리해서 발표해 봤다. 올해 내가 뽑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우리가 투자하는 우리의 창업가들이었다. 12년 동안 우리의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과 같이 일했는데, 이렇게 incredible하고 extraordinary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내가 깊게 존경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없으면 스트롱이 존재할 수 없다.

올해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잘 버티면서 사업을 운영하는 우리 창업가분들을 나는 다시 “바퀴벌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은,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바퀴벌레라는 단어가 혐오감을 준다고 싫어해서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우리 창업가들은 바퀴벌레 창업가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닌다. 물론, 엄청 좋은 의미에서.

바퀴벌레라고 하면 다들 싫어하지만, 이 곤충들은 대단한 특징을 몇 가지 가지고 있고, 신기하게도 우리 창업가들도 아주 비슷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강한 골격 – 바퀴벌레는 아주 견고하지만, 동시에 유연한 골격을 갖고 있다. 우리 창업가분들도 강한 정신력, 그리고 강한 체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충격을 완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함도 있다.

2/ 강한 면역력 – 시간이 지날수록 바퀴벌레는 웬만한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우리 창업가들도 웬만한 어려움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고난과 역경에 대한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

3/ 강한 적응력 – 바퀴벌레와 창업가 모두 완벽하게 일치하는 속성이다. 바퀴벌레는 외부 환경에 따라서 DNA를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실은 우리 창업가들도 외부 환경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목표와 비전은 명확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전략을 수정하고, 실행 방법을 계속 바꾸는 게, 마치 자신의 DNA를 외부 환경에 따라서 바꾸는 바퀴벌레랑 크게 다르지 않다.

4/ 강한 생존력 – 바퀴벌레는 오랜 기간 동안 음식이나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다. 우리 창업가들은 음식이나 물 없이 살 순 없지만, 아주 적은 자원으로 매우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어쨌든,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바퀴벌레들은 머리가 날아가도 최대 일주일 동안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뭐, 사람은 이렇게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우리 창업가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5/ 강한 기동력 – 이건 내가 강조할 필요도 없다. 바퀴벌레가 빠르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우리 창업가들도 엄청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가끔 이들보다 훨씬 더 돈과 인력이 많은 대기업도 이길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놀라운 특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퀴벌레 창업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이다. 이들은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고, 계속 다시 찾아오고, 계속 성장한다. 지난 12년 동안 매일 매일 이런 바퀴벌레 창업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과 존경심이 생긴다.

우리는 이런 바퀴벌레들을 지원해 주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이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뒤에서 계속 푸쉬한다. 어떤 날은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게 앞에서 끌어준다. 하지만, 주로 이들이 뒤로 처지지 않고, 번아웃 되지 않게, 옆에서 같이 걷거나 뛰면서 응원해 준다. 나는 어릴 적 바퀴벌레를 정말 싫어했는데, 투자하면 할수록 이들이 대단한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도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않고 허슬하는 한국의 모든 창업가들 파이팅하길. Never die!

남의 의견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 이 글에서 말 한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 두 가지 중, 잡음을 잘 구분하고 남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에 집중하자는 내용은 내가 요새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정말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나 같이 남의 눈치 잘 안 보고, 남의 의견이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가끔은 내가 뭔가를 하거나 말할 때 “이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가는 곳마다 아주 두껍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의식적으로 남의 시선과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내 생각, 감, 의견에 100% 의존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남의 의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고, 정말로 경청해야 할 남의 의견과 조언만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솔직히 이런 의견은 소수의 몇 명만 제공할 수 있다. 이 소수의 몇 명은, 본인들이 나에게 주는 조언, 충고, 그리고 의견의 결과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고 본인들도 그 결과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 외의 다른 의견은 안 들으려고 노력하고, 꼭 들어야 한다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바로 흘리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뭘,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사냐고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살아야 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니까.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얼마 전에 본인이 직접 창업하지 않았거나, 현재 적을 두고 있지 않은 회사를 비정기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advisor’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요새 우리 주변에 ‘고문’ , ‘ advisor’라는 명함을 갖고 다니는 분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 이런 분들은 본인들의 조언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고, 여기에 크게 영향도 안 받는 분들이다. 왜 이런 분들에게 굳이 과한 비용을 지급하거나 돈보다 더 귀한 회사의 지분을 주면서 조언을 받는지 회사 대표들에게 물어봤다. 어차피 풀타임도 아니고, 파트타임 중에서도 슈퍼 파트타임 – 우리 회사를 포함해서 많은 회사의 어드바이저를 하고 있다 –  이고, 솔직히 우리가 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을 했더라도 그건 오래전 일이고, 같은 분야에 있는 회사라도 우리 회사랑 다른 회사랑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이전 경험을 재활용하는 건 힘들어 보인다. 내가 듣는 대답은, “이분들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요. 나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많고 네트워크가 좋아서,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분들의 조언이 값질 것 같아서요.”이다. 이런 대표들은 이게 정말 맞는 건지 잘 판단하길 바란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지 말지, 점심 식사는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부터, 100억 원 짜리 거래를 할지말지까지, 실은 우리 인생 자체가 연속적인 결정의 집합체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셀 수 없는 결정의 결과를 뒤돌아보면, 안타깝게도 옳은 결정보다 틀린 결정을 훨씬 더 많이 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어차피 틀린 결정을 훨씬 더 많이 할 텐데, 남의 의견을 참고해서 틀린 결정을 하기보단, 그냥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틀리는 게 훨씬 더 값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의 의견이나 조언을 절대로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판단해서 이 중 잡음을 구분하라는 의미인데, 잘 생각해 보면 남의 의견 중 대부분은 잡음이다. 중요한 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거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 결국엔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롯이 내 의견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