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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걸지 마라

올해는 시장이 반등할까? 아니면 더 안 좋을까? 이런 예측을 내가 할 때마다 매번 틀렸으니, 이번에도 내가 틀린 게 맞는다면, 올해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다. 나는 2024년은 2023년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을거라고 예측하고 있으니.

작년 한 해 동안 꽤 많은 스트롱 투자사가 폐업하거나 우리가 손실 처리를 했다. 이 중 어떤 창업가들은 본인들이 먼저 우리에게 너무 힘들어서 인제 그만 해야겠다고 했고, 어떤 분들은 우리가 먼저 사업을 그만하라고 해서 폐업하기도 했다.

내가 주로 경험한 패턴은 이렇다.

주말이나 평일 밤늦게 이런 문자가 온다. “대표님, 밤늦게/주말에 쉬시는데 죄송한데요, 사업 관련해서 상의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30분 정도만 통화 괜찮을까요?”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일단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본론으로 안 들어가고 핵심을 겉도는 이야기만 한참 한다. 핵심은 요새 사업이 너무 힘들고 본인은 지쳐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가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한 주니어 VC라면, 이 말을 듣고 “파이팅!” 하면서 힘내라고 할 텐데, 그동안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경험했고, 주로 창업가들이 이런 말을 굳이 평일 밤늦게 또는 주말에 한다는 건, 그만하고 싶은데 투자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걸 잘 안다.

이런 분들한테는 내가 먼저 그만하고 회사 문 닫으라고 제안한다. 우리가 대부분의 회사에 첫 번째 또는 두 번째의 기관 투자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창업가들과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회사의 up/down을 모두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창업가들이 그동안 열심히 사업했고, 없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그만하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게 초기 투자자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창업가들이 미안한 마음에 차마 본인들이 직접 폐업해야겠다는 말을 못 할 때 그냥 내가 먼저 그동안 최선을 다했는데 잘 안됐으니까 이제 그만 잘 마무리하자는 제안을 한다.

얼마 전 일요일에 어떤 대표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히려 내가 먼저 그만하라고 하니까 전화기 저 너머로 들려오는 이분의 목소리가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이렇게 안 하면 사업이 개인의 삶을 완전히 망친다. 우리 창업가 중 자살 시도를 한 분들도 있어서 나는 이걸 잘 알고 있다. 원래 사업은 어렵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사업할 필요는 없다. 이게 뭐라고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 것인가. 사업은 사업에서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바로 주변에 도움을 구해라. 그리고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먹고, 이 마음의 병을 고치면 된다. 물론, 운동도 병행하면 좋다.

인생을 걸고 사업한다는 말은, 진짜 인생을 거는 게 아니라 그만큼 죽을 각오로 사업을 한다는 의미이다. 스타트업에 진짜로 목숨을 거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인생은 정말로 소중하니까.

아주 긴 하루

2023년은 모두에게 너무나 힘든 한 해였다. 창업가에겐 당연히 힘들었고,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게도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후속 투자 받은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두 손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두 손과 두 발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리 투자사들이 후속 투자를 못 받았다. 이 중 자연스럽게 문을 닫은 회사도 많고, 우리가 능동적으로 손실 처리한 회사들도 많았다. 스트롱 뿐만 아니라 다른 VC, 그리고 이들의 포트폴리오도 우리랑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어려움과 힘듦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돈 없어서 춥고 배고픈 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 창업가는 그렇게 많진 않을 것이다.(따뜻하고 배부르게 사업하고 있는 분들에겐 정말로 스트롱한 존경심을 표시하고 싶다).

수년 동안 한 사람의 모든 것이었던 사업을 접어야 하거나, 가족과도 같이 정들었던 직원분들을 해고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내가 직접 폐업하거나 직원들을 해고하진 않았지만, 이런 일들을 너무나 많이, 너무나 자주, 너무나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그 어려움과 고통스러움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벤처 생태계에 있는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에겐 작년이 아주 터프하기도 했지만, 이 터프함이 끝나지 않았던, 너무나 긴 한 해였을 것이다. 나에게도 터프하고 긴 한 해였는데, 창업가들에겐 얼마나 당황스러운 한 해였을지 상상만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내가 밤잠까지 설쳤던, 어떤 우리 창업가분의 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분은 작년 한 해가 하루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자고, 다시 일어나서 자기 전에 했던 일을 계속하고, 또 자고, 또 일어나서 일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2023년 365일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아주 긴 하루 같다고 했다. 이러니 당연히 작년에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나에게도 터프한 한 해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작년에 언제 내가 뭘 했는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 미팅 후, 사무실의 작은 회의실에 들어가서 이분의 얼굴, 표정, 그리고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봤는데 감정이 복잡해졌다. 1년 365일을 매일 기억하면서 추억을 만들어도 인생은 짧은데, 이분의 이 긴 하루는 아직도 안 끝났고, 어쩌면 내년도 아주 긴 하루가 될지 모르는데, 나는 우리 창업가분들을 대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침대로 이어지면서 잠을 계속 설쳤다.

우리 모두의 하루가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길어서 정말 one very fucking never ending long day가 될지라도 올해에도 모두 살아남길 바란다.

정면 돌파

나이키를 대표하는 슬로건이 Just Do It인데, 언더아머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The Only Way is Through이다. 나는 두 회사 모두 너무 좋아하고, 두 회사의 작은 주주이기도 한데, 그래도 언더아머보단 항상 나이키의 팬이긴 했다. 작년까진. 올해는 언더아머의 The Only Way is Through라는 슬로건을 거의 매일 최소 한 번씩 스스로 중얼거리면서 이 말을 뇌에 박는 노력을 해서 그런지, 올해는 나이키 보단 언더아머의 팬으로 살았고, 운동용품도 언더아머 제품을 더 많이 구매했다.

‘정면 돌파’를 뜻하는 The Only Way is Through라는 슬로건이 2023년 내 삶을 대변할 정도로 올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정면 돌파라는 말 자체는 상당히 멋있고 박력 있지만, 실제 삶과 직장에서 정면돌파하는건 굉장히 불편하고, 껄끄럽고,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그런 자세다. 평화주의자가 순탄한 직장생활의 표본이 됐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너무나 만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들면서 정면돌파 하는 사람들은 점점 멸종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바닥에도 되도록 정면 돌파를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올해 쉬운 길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찾더라도 이 쉬운 길을 되도록 택하지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던 게 절반이고,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게 절반인데, 그래도 올해의 수많은 선택은 피해 가기보단 정면돌파를 해야겠다는 다짐의 산출물이었다.

정면 돌파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장점은, 일을 처리할 때 잔머리를 안 굴리기 때문에 머리가 덜 복잡하고, 정면 돌파 한다는 의미 자체가 올바른 일을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결정에 대해서 나중에 정신적으로나 양심적으로 갈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어떤 일을 하든, 정면을 돌파하는 게 맞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막상 이렇게 행동하려는 용기도 없고, 이렇게 했을 때 예상되는 순간적, 그리고 단기적인 큰 스트레스와 타격 때문에 항상 피해 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피해 가는 방법을 만들기 위한 잔머리에 투입되는 에너지와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정면돌파하면 이런 쓸데없는 낭비와 복잡함이 없다.
그리고 누구나 다 정면돌파하는게 맞는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즉, 머리와 몸이 따로 놀 때 큰 양심적 죄책감이 들면서 정신적으로 갈등하게 된다.(이게 반복되다 보면 그냥 피해 가는 게 디폴트가 되긴 하지만). 정면돌파하면 순간적으로는 괴롭고 일시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만, 결국 나중에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단점은, 정면 돌파는 어떤 어려움을 뚫고 직진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엄청난 공포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돌아서 가거나, 위로 가거나, 또는 아래로 피해 가면 그 누구의 심기도 안 건드리고, 그 누구와도 껄끄러워지지 않고, 그냥 좋은 게 좋은 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굳이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면서 정면돌파하고 싶지 않다. 결국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정면돌파하면 단기적으론 여기저기서 문제들이 터지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정면돌파하다보면 죽을 것 같은 스트레스가 생긴다. 하지만, 이 죽을 것 같은 괴로움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고, 결국엔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나는 장담한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상대적으로 편하지만 – 실은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나중에 올 더 큰 문제를 잘 알고 있기에 더 불편하다 – 나중에 훨씬 더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보단, 그냥 지금 몸과 마음이 불편해도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바로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관성 때문인지, 우린 대부분 항상 이와 반대의 결정을 하고 문제를 피해서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이럴 때일수록 정면 돌파를 나는 항상 권장한다. 위에서 이야기 한 대로 정면돌파하면 순간적으로는 괴롭고 일시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만, 결국 나중에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이런 경험을 했다.

The Only Way is Through. 유일한 길은 정면 돌파, 진짜로 이거 하나밖에 없다.

성장형 마인드

우리 투자사 몇몇 대표들을 포함해서, 꽤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다른 스타트업과 자신들의 회사를 비교한다. 우리보다 더 잘하는 회사와 그 회사의 창업가를 잘 분석하고 공부해서, 우리가 더 잘하고, 발전할 수 있는 비교를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데, 항상 아쉬운 점은, 이와는 반대의 비교를 한다는 점이다.

저 회사는 우리보다 매출도 작고, 손실도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보다 높은 기업가치에 투자받았다면, 그 회사에 투자한 VC들이 병신이고, 그 회사의 대표는 분명히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우리의 경쟁사보다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경쟁사보다 높은 기업가치에 투자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펀딩 할 때마다 매번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기존 투자자들을 답답하게 하는 분들이 많다. 이 회사에 이미 투자한 기존 투자자들도 현재 회사의 대표가 원하는 기업가치와 펀딩의 조건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만 계속 이 조건을 고집하고 있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항상 경쟁사의 이야기를 한다. 그 경쟁사는 우리보다 사업을 잘 못한다. 그 경쟁사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회사 내부 분위기가 개판이라고 하더라.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그 회사는 곧 망할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보다 두 배의 밸류에이션에 최근에 투자받았으니, 우린 훨씬 더 높은 가치에 투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 차리세요.”

이런 분들에게 내가 항상 하는 말이다.

일단 이분들이 알고 있는 다른 경쟁사의 현황은 대부분 잘 못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매출이 작고, 손실이 많이 발생하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낮다는 이야기는 거의 다 틀린 소문이거나,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단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회사에 대해서 잘 아는 분도 그 회사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확률이 높고, 그 회사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의 잘 아는 분도 실제로는 그 회사를 잘 모르는 분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설령 그 말이 맞는다고 치자.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는 두 회사가 있는데, 매출도 작고, 손실도 크고, 직원들의 수준도 낮은 회사가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큰 투자를 받았다면, 이건 대단한 것이다. 이 경쟁사를 욕하지 말고, 우린 뭐라도 배울 생각을 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더 못 한 회사가 왜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대표는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그 비결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고, 투자자들도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이다. 우리보다 객관적인 지표가 약한 회사를 더 높게 평가했다면, 뭐라도 우리보다 잘하는 게 많다는 뜻이고, 반대로 지표가 상대적으로 좋음에도 더 낮은 평가를 받는 우리 회사가 뭔가를 크게 잘 못 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라면, 경쟁사와 시장을 탓하지 말고, 왜 그런지 무조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을 이용해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 이런 성장형 마인드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 마인드가 없다면, 더 큰 회사를 만들 수가 없다. 남을 욕하면서 나의 약점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내려갈 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장이 왜 나의 가치를 못 알아볼까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서 성장할 생각을 해라. 시장이 나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게 그 어떤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성장형 마인드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B2B API 사업을 하는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 블로그의 ‘창업일지’ 시리즈를 추석 연휴 동안 재미있게 읽었다. 9편이지만, 짧기도 하고 그냥 쉽게 잘 읽혀서, 집중하면 한 25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다. 내가 페이지콜 최필준 대표님을 처음 만난 게 2017년이고, 프라이머 투자 이후 스트롱도 투자하면서 나름대로 서비스 창업 초기부터 봤기 때문에 이 팀과 회사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페이지콜에 투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7년만큼 긴 시간 동안, 이분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 개고생을 이미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은,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글로 적힌 기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뭔가 더 짠하기도 했다.

이 블로그의 내용은 최근에 내가 읽은 창업가들의 글 중 가장 스타트업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스타트업한다는 것이 드라마 ‘스타트업’과 조금은 유사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다. 물론, 이분들은 본인들이 직접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지 않은 분들인데, 인구의 대부분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스타트업 드라마의 시각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 해도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이 시각은 그냥 틀린 게 아니라, 너무나도 왜곡됐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OST도, 낭만도, 감동도,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냥 주구장창 개고생밖에 없고, 정말로 대단한 체력, 정신력과 각오가 없으면 일반 사람들은 2년을 버틸 수가 없다.

후반부에 스트롱과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등장하는데, 나를 만난 이후 페이지콜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만나기 전의 이 회사와 창업팀의 여정에 대해서 읽어보니, 스스로가 겸허해질 정도였다. 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지금도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제정신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최필준 대표님과 페이지콜 팀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 투자사 페이지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 다 힘든 자신만의 전쟁을 지금, 이 순간에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게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력과 체력이 약한 분들에겐 정말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모든 해피 엔딩은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재난과 같은 엔딩으로 참혹하게 끝난다. 단지,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스타트업도 지나온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해피’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스타트업은 인간의 최선을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최악을 보게 된다. 이게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린 창업가들의 최악과 최선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결국 이 모든 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오늘도 선과 악의 싸움에서 이기는 하루가 되길.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