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잘하고 못하고의 여부를 떠나서, 다시 창업하면 계속 투자하고 싶은 창업가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정직함과 투명함이다. 나도 이런 개인적인 리스트가 항상 마음속에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중 절반 이상이 우리가 투자했던 스타트업은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냥 폐업했거나, 또는 현재까지의 사업 성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면 크게 잘될 것 같지 않은 창업가들이다.
물론, 잘하는 창업가분들도 많다. 그리고 이들 중 재창업을 하면 또 투자하고 싶은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어떤 창업가들은 사업의 결과만을 따지고 보면 매우 잘하고 있고, 이런 추세대로 가면 투자자에게 큰 수익을 돌려줄 수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좋은 엑싯을 해서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이분들이 다시 창업하면, 나는 별로 투자하고 싶지 않은 분들도 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미래가 밝더라도. 왜냐하면, 사업의 결과 보단, 사업을 하는 동안의 과정과 경험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누가 봐도 실패했거나, 또는 실패할 창업가들이 있는데, 이분들 중 미래에 다시 창업하면, 크게 따지지 않고 또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 분들도 있다. 그 이유는 사업의 결과 보단, 사업을 하는 동안의 투자자 – 창업가의 관계와 경험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좋은 경험은 이미 언급한 정직함에서 나온다. 한치의 숨김이 없는 이런 솔직함을 나는 유리 투명함(=-glass transparency)이라고 하고 싶다.
이들은 사업이 잘되든 안 되든, 사실 그대로 모든 걸 투자자와 공유하고,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썼듯이 자기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갑자기 회사의 매출이 90% 감소했으면,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고, 정확한 이유도 공유한다. 그 이유가 불편하고, 숨기고 싶고, 창업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노출해도, 이들은 이럴수록 더욱더 정직하고 투명하게 이 사실을 회사의 주주와 공유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투자했고,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안 하거나 못 하는 창업가도 우리 주변에 많다. 매출이 폭등했다고 자랑하는데, 막상 그 내용을 자세히 까보면,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과이다. 이 성과에 대해서 계속 물어보면 답도 잘 안 하고, 답이 와도 항상 뭔가 투명하지 못 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서로 피곤해진다. 나는 정직하고 투명한 관계를 위해서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하고, 이런 나의 직설적인 잔소리를 자주 듣다 보면, 창업가들도 짜증 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이런 창업가 – 투자자 경험을 하면, 사업의 결과가 좋아도, 이분이 다시 창업하면 다시 투자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몇 가지 비즈니스 원칙이 있다. 정직함과 투명함이 그런 대표적인 원칙이다. 투명해진다는 건 엄청나게 어렵고, 가끔은 쪽 팔리고, 자주 괴롭겠지만, 이렇게 정직하고 투명한 게 모두를 위해서 최선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투명함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