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코파운더가 정말 필요한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창업가들이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 세션이다. 몇 년 전에 실험적으로 이 AMA 세션을 시작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꽤 좋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에게도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서 이젠 거의 공식적인 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진행했고 다른 파트너분들과 함께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분이 1인 창업에 대해 질문했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이 각자 본인의 의견과 답변을 공유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어떤 분이 인스타에 올렸다. 이걸 보고 몇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왔는데, 어떤 분은 동의하고 어떤 분은 반대하지만, 대부분 솔직한 생각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1인 창업, 즉 sole founder 팀을 싫어한다. 그런데 위의 인스타 릴스를 보면 내가 왜 1인 창업팀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기서 충분히 설명해 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개발능력이 없는 똑똑한 분들이 일인 창업하면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회사에 없고, 외주를 통해서 개발하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품질에 문제가 생겨서 개발이 가능한 코파운더가 필수였는데 이젠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꽤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는 AI만 잘 활용하면 ‘능력없는 창업가’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능력 좋은 분이 혼자서 창업하는 게 왜 나는 별로일까?

나는 일인 창업가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이라서 무조건 코파운더 또는 코파운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장 동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은 창업가에겐 매우 심각한 문제다. 모든 창업가가 나에게 하는 말은 창업이 너무 외롭다고 한다. 이 외로움이 쌓이다 보면, 여기에도 복리가 작용하고, 복리로 쌓이는 외로움은 결국엔 사람을 망친다. 외로움,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과 – 사업이 주로 잘 안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싸우다 보면 아무리 몸과 마음이 튼튼한 분이라도 몸과 마음이 매일 산산조각 난다. 나는 이런 걸 매일 본다.

사람마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격렬한 운동, 술, 음식, 명상, 독서 등이 내 주변의 창업가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일부이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과 싸우는 건, 마치 자기만의 전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창업가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어떤 창업가는 동네 싸움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크기를 떠나서 이를 직접 겪고 있는 분에게는 본인의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하지만 힘들고 외롭다.

이 조용한 싸움을 할 때, 옆에서 나와 함께 이 외로움을 분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코파운더다. 대부분의 코파운더는 사업이나 돈으로 서로 엮이기 전인 순순했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단순히 사업을 함께 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제품을 같이 만들고, 펀딩을 같이 하고, 채용을 같이 하고, 영업을 같이 하고, 고객을 같이 만나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더러운 똥 밭에서 구르면서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게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려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스타트업은 빨리 가면 지친다. 멀리 가야하고 멀리 가려면 동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sole founder에게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것이다. 똑똑한 분이 혼자 창업해서 AI 에이전트 100개를 만들어서 모든 걸 돌리면 결정도 더 빨리하고, 돈도 더 잘 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서 사업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AI가 모든 걸 만들고, 창작하고, 심지어 의사결정까지 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변한다. 시장도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회사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거절하는 VC를 대하는 방법

나는 올해로 11년째 국내 최고의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에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가 잘 끝났는데, 그다음 날 창업가분들을 대상으로 투자 관련 AMA 세션을 진행했다. 몇 년 전부터 데모데이 다음날 항상 진행하는 세션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첫 번째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 창업가의 입장에서 – 프라이머 투자는 이미 받았지만, 프라이머 배치에 선발되고 투자받는 것과 실제로 많은 VC에게 피칭하고 펀드레이징을 하는 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 막막하고, 궁금한 점도 많아서 이분들이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서 나도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변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자리다.

이날도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나도 다양한 조언을 드렸는데, 투자 유치 관련해서 내가 가장 강조했던 내용은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가장 많은 투자자를 만나는 전략, 하지만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수록 결국 거절당할 확률과 횟수가 압도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피칭 횟수가 증가할수록 거절의 횟수에는 가속도가 붙고, 거절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창업가의 자존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일단 거절을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절대로.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나에게 투자 못 하겠다고 하는 투자자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뭐, 내가 정말 이상한 짓을 했다면 개인적인 감정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창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VC라는 직업이 Yes라고 하는 것보다 No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므로 그냥 우리에게 No라고 하는 건 실제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VC가 나에게 No라고 할 때마다 기분 언짢아하고 자존감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는다면, 사업을 할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사업을 할 계획이라면, 투자자에게 거절당하는 건 앞으로 내가 경험할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VC에게 거절당하는 걸 못 참고 못 견뎌 한다면 창업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자, 그럼 투자자에게 거절당한 창업가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일단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건 그 투자자에게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사업이 부족한 것이고, 투자자가 봤을 때 우리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니, 괜히 확대해석하지 말자. 그냥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 사업을 더 잘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나면 된다. 즉, 우리와 궁합이 맞는 투자자를 만나야 하는데, 이런 투자자를 찾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투자받는 과정과 피칭 과정은 절대로 scalable 하지 않다. 이건 AI로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냥 창업가가 발품 팔면서 한 명씩 직접 만나야 한다.

거절당한 창업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이 몇가지 있다.

첫째. 이번에는 투자하지 못하겠다는 거절의 의사를 받으면, 얼굴을 붉히지마라. 위에서 말한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No이지만, 어쨌든 거절의사를 확실히 밝혀줘서 우리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라.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시간 내주고 대화해줘서 고맙다고 해라. 전화로 해도 되고, 이메일로 해도 되고, 문자로 해도 된다. 참고로 나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이런 행동이 같은 인간으로서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이 투자자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지는 게 좋다. 우리도 거절을 훨씬 더 많이 하는데 – 참고로 올해 우리는 거의 1,800개 이상의 회사를 검토했다 – 이렇게 했을 때 창업가가 감정적으로 나오거나 아예 대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고 다시 연락오면 아예 안 만날 확률이 높다.

둘째.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해라. 여러 번 만났던 투자자가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면, 분명히 거기에는 (나름)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를 거절한 건 상관없지만,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투자자한테 건설적인 피드백을 요청하는 게 좋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확장성이 문제라면, 다른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우려를 할 것이다. 또는 내가 대표이사로서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투자자한테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내가 부족했던 점들과 사업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라. 다음 투자자 미팅 전에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Yes의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냉혹하다. 냉혹하다기보단 내가 봤을 때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1/ 일단 명확한 거절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니고, 그냥 오랫동안 밍기적거리거나 아예 연락이 안 되면서 잠수 타는 VC들도 너무 많다. 솔직히 왜 그러는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VC에 대한 전반적인 평판과 이미지를 엄청나게 깎아 먹어서 좀 짜증나긴 한다.
2/ 거절의 의사를 전달한 투자자들 대부분 명확한 피드백을 안 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 , “우리의 투자 전략과 맞지 않다”와 같은 그 어떤 사업이나 창업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별로 도움 안 되는 피드백을 준다. 이게 피드백인지 개소리인진 잘 모르겠지만.

셋째.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봐라. 세상에 VC는 많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창업가의 네트워크로 이런 투자자들을 다 만나는 건 힘들다. 어떤 투자자가 거절했다면 이 분이 아는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봐라. 왜냐하면 창업가보단 VC가 다른 VC를 훨씬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 번에 한 명씩 다른 투자자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은 많이 다르다. 대부분 VC가 다른 투자자 소개를 해주진 않을 것이다. 실은, 이건 우리한테도 좀 애매한 부탁이긴 하다. 내가 투자하지 않는 창업가를 내가 아는 다른 투자자에게 소개해주면. “스트롱은 투자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에게 소개해주나요?”라고 반박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가가 정말 좋은데 특정 VC가 투자하기에 너무 초기거나,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충분히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소개받기 위해서는 창업가가 이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했고, 그렇게 하려면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넷째. 나를 거절한 투자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어봐라. 이번에 투자 안 했다고 평생 우리에게 투자 안 하는 건 아니다. 당시 그 VC의 상황, 펀드의 상황, 시장 분위기, 회사의 파트너나 대표이사의 기분 때문에 우리에게 투자 안 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과 분위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심지어 심사역은 우리를 무척 좋아했지만, 회사에서 승인을 못 받아서 투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심사역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우리를 다시 검토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투자가 성사된 경우를 나는 꽤 많이 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창업가가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우리를 거절했지만, 분기 또는 반기마다 연락해서 간략하게 회사 업데이트를 해주면 “이 분은 우리가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연락을 주시고 회사 상황을 업데이트해 주시는데, 우리가 투자하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소통하실까?”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를 좋게 볼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안 된다면?

낙심하지 말고, 자존감 낮아지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 마라. 원래 투자는 어렵고, 대부분 스타트업은 투자유치에 성공하지 못한다. 어차피 오랫동안 사업할 의지가 있다면 투자를 받든 안 받든, 그냥 자기 사업 열심히 하면 된다. 투자받으려고 사업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쥐어짜내기

우리가 7년 전에 첫 투자를 했고, 이후에 네 번을 더 투자해서 총 다섯번 투자한 회사의 창업가분들을 얼마전에 만났는데, 그날의 미팅에 대한 여운도 오래 갔고 여러가지 면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많아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일단 이 팀은 진짜 바퀴벌레팀이다.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이분들은 진작 회사 문을 닫고 사업을 접어야 했는데,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으로 지금까지 계속 잘 버티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을 접어도 그 누구도 이 분들을 비난할 수 없는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사업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 실은 운이 실력보다 더 중요하다 – 이 분들에겐 아쉽게도 운이 별로 안 따라준다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나는 이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기분좋게 놀란다. 이들이 잘 버티고 있다고 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히 버티고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어려운 환경에서 계속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매번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계속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어려운 사업을 하는 수많은 회사와 창업가를 본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분들은 볼때마다 매번 마지막 한 방울까지 스스로를 쥐어 짜내면서 방법을 찾는 게 정말 신기하다. 얼마전 미팅에서는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이 질문을 했다.
“와,,,나는 과연 나 스스로를 이렇게 쥐어 짜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게 못 한다. 그냥 생각만해도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일반 사람들보다 고통을 나름 잘 견디고, 힘든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방법을 찾는 노력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들과 같이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 짜내면서 방법을 찾는 걸 못 하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은 정말 독특하고 특별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고, 이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위에서 말한 회사는 최근 1년 동안 거의 매달 회사에 큰 위기가 왔다. 자금의 압박, 정책의 변경, 경쟁사의 방해, 내부 인력과의 갈등 등과 같은, 규모가 작고 돈이 없어서 체력이 약한 스타트업을 한 방에 훅 가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었고, 솔직히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날때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이 창업가들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죽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바퀴벌레 같은 분들이라서 매번 위기가 닥칠때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말도 반납하고 전체 팀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힘든 일이 닥칠때마다 어쩌면 이번엔 우리 회사가 망할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꼈지만, 또 방법을 찾아서 극복했고, 이렇게 극복한 후에 생각해보니 그 공포스러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계속 체력과 용기가 쌓이게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창업가들은 새로운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되고, 이는 또다시 한번 모든걸 쥐어 짜내면서 새로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반복될수록 복리가 작용하면서 웬만한 어려움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창업가가 된다.

나는 모든 어려움에 대한 해답은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대부분 답을 찾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좋은 창업가들은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 짜내면서 매번 이 해답을 찾는 걸 자주 경험하는데, 이럴때마다 우리가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이 힘든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오늘도 고통스럽고 힘든 하루가 되겠지만, 다시 한번 모든 걸 쥐어 짜내보자. 답은 어딘가에 있고,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긍정랜드

누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농담 반으로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는 금융업이 아니라 건설업(=노가다)이라고 한다. 워낙 초기에 투자하고 우리가 직접 투자사를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창업가가 회사 만드는 걸 옆에서 같이 도와주고 있고, 바닥부터 회사 만드는 걸 묘사할 때 “building”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게 마치 건물을 올리는 것(=building)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는 ‘소방관’인데 워낙 많은 회사에 투자하다 보니 매일매일 어디선가 크고 작은 불이 나고, 우리는 그 현장에 가서 불을 같이 꺼야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VC가 하는 일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폼 나는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멋진 옷 입고 – 나는 아닌데, 그래도 입어야 하는 자리면 재킷은 입는다 – 공개 장소에서 마치 우리가 특정 회사를 유니콘으로 키운 듯 이야기하니까 – 참고로 내가 투자한 회사는 많은데 내가 키운 회사는 단 하나도 없다 – VC가 엄청 화려하고 멋진 직업인 줄 안다. 실상은 완전히 반대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잘 될 수 있게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고, 잘 안되는 회사를 – 우리는 워낙 많이 투자하니까 대부분 회사가 잘 안 된다 – 어떻게든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대표들과 개노가다를 같이 하는 직업이 VC이다. 나는 자신을, 투자사를 응원하는 응원단장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불을 끄는 소방대장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도 정말 어려운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과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런웨이를 몇 달 더 연장할 수 있을지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힘차게 굴리면서 늦게까지 통화했고, 어제도 이제 사업을 그만둬야 할지 아니면 한 번만 더 푸쉬해야할지 고민하는 대표님에게 긍정의 힘을 주입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서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직접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는 아니지만, 이런 날이 계속되면 나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가라앉는다. 아무리 잘 자고, 잘 먹고, 잘 운동해도 나도 이제 늙은 아저씨인데 왜 이런 감정의 기복이 없겠는가. 단지 겉으로는 항상 스트롱하다고 연기할 뿐이지.

그래도 매일 최선을 다해서 온전히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스타트업 생태계는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긍정랜드이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에 있는 분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긍정의 마인드는 안 될 일도 되게 만드는 기적 같은 힘이 있다.

일반 회사나 대기업 다니는 분들과 캐주얼하게 이야기하거나 일 때문에 미팅하면 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자주 본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존 방법과 다른 방식을 누군가 제안하면 즉각적인 반응은 항상 부정적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거나 이미 해 봤는데 안 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 누구도 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하진 않더라. 그리고 이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매사에 이런 안 된다는 의견이 절대적이어서 그냥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부정적이다.

하지만 창업가나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안 되거나 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즉각적인 반응은 일단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그리고 되게 만들어보자. 이런 반응이 지배적이다. 물론 그건 안 되거나 내가 해 봤는데 절대로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분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의견이 소수이고 can do의 긍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부정적인 의견과 분위기가 밀린다.

힘들고 출구가 안 보일때도 많지만, 나는 이런 긍정의 힘을 믿는 분들과 같이 일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한국에는 에버랜드가 있고, 미국에는 디즈니랜드가 있고, 마이클 잭슨은 네버랜드를 만들었는데, 창업가들은 긍정랜드를 만들고 있다.

이런 긍정 마인드를 가진 분들과 교류하면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스타트업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요샌 스타트업은 감동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싸우자

전세계에서, 특히 미국과 중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스키선수 Eileen Gu의 인터뷰를 봤는데 이 선수는 운동도 엘리트급이지만 말도 엘리트급으로 잘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습과 실전에 임하는지, 그리고 이 두가지 할 때 마음가짐에 차이가 있는지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명언을 했다.

“I train like I’ve never won, and I compete like I’ve never lost.(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싸운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했고,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기사를 읽었고, 많은 팟캐스트를 들었지만, 작년만큼 머릿속에 남는 인상적인 말이 없었는데, 아일린 구 선수의 이 말은 근래에 들었던 말 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엘리트 스포츠리그에서 경쟁하는 업에 종사하진 않지만, 나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서 살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한다.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처럼 훈련한다는 말은 아마도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인데, 나같은 사람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특정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엘리트 선수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건 약간 다르다. 이 선수는 이미 올릭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본인이 경쟁하는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라는 게 증명됐고,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실은 우승을 이렇게 자주 하는 선수가 1년 365일 매일,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처럼 훈련하고 연습하는 건 굉장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에서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이세돌 선수가 바둑에서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연습하는 게 나는 상상이 안 가는데,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우승을 여러 번 한 대부분의 엘리트 선수는 이런 마인드로 평소에 훈련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어디서 우승해 본 경험도 없는데, 과연 나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선수가 이번엔 꼭 우승해야지하는 간절하고 절박하고 집착하는 자세로 매사에 임하는가? 반성하고 생각할 점이 많다.

한 번도 져보지 않은 것처럼 싸운다는 말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처럼 훈련한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실전에서 싸울 땐 매번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인데, 단순히 열심히 하는 걸 초월한 새로운 레벨의 투지로 경기에 임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평생 한 번도 지지 않고 매번 이기는 사람의 정신력과 자신감은 어쩔 땐 이기지만 어쩔 땐 지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에 내가 쓴 이 글에서 돈을 벌고 흑자를 내는 것도 해 본 사람이 잘하고,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이라고 했는데, 우승도 비슷한 것 같다. 우승을 해 본 사람만이 경험한 자신감과 우승을 해 본 사람만이 가지는 마음가짐이 있는데 한 번도 지지 않고 매번 우승한 사람의 마인드로 싸우면 이길 확률이 극적으로 올라갈 것 같다.

나는 솔직히 매번 우승은커녕, 매번 지는 상황을 더 많이 경험하는데, 과연 나는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매섭고 독하게 매사에 임하는가? 이 또한 반성하고 생각할 점이 많다.

이런 훈련 방식과 파이팅 정신을 내가 하는 일에 적용해보면 이럴 것 같다.
회사를 검토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배우고, 정말 투자하고 싶은 회사라면 단 한 번도 딜을 놓쳐본 적 없는 투자자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또는, 회사를 발굴할 때 아직 한 번도 성공한 회사에 투자하지 못한 것처럼 딜을 찾고, 투자한 이후에는 단 한 개의 투자도 실패한 적이 없는 것처럼 창업가를 믿고 밀어주는 것이다.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것처럼 훈련하고, 한 번도 패배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싸우자. 오늘도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