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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배움의 기울기

board-1044088_640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그 KPI를 매주 5%씩 성장할 수 있다면, 매달 20% 성장할 수 있고, 1년 동안 9배 성장할 수 있고, 이걸 해마다 반복할 수 있다면 투자자들이 제발 투자하게 해달라고 애걸할 것이라고.

많은 유니콘 회사들이 이렇게 성장한다. 이렇게 창업 초기 3년~5년 안에 말도 안 되는 미친 성장을 하는 회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조금은 걱정되기도 한다. 너무 높이 날면, 언젠가는 내려올 수밖에 없고, 요새 이 동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위워크와 같은 유니콘들의 기업가치가 인정사정없이 깎이는걸 보면 –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 꼭 미친 성장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 자체는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이자, 투자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나도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우리 투자사 중 다른 회사들보다 비즈니스를 잘하는 대표들을 보면, 그 방법이나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기울기가 일정한 의도된 성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3개월 동안 300% 성장하기보단, 이걸 의도적으로 12개월 동안 300% 성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일단 무조건 성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걱정하자가 대부분 창업가가 가진 태도이고, 굳이 3개월에 300% 성장할 수 있는 걸, 왜 일부로 제한을 하느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일차원적으로 보면, 이게 맞다. 나도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할 때 성장을 의도적으로 컨트롤 하자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무조건 성장할 수 있을 때 성장하자는 전략이었다(그래도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걸 자주 경험했다. 일단 단기간 내에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창업자도 왜 회사가 그렇게 많이 성장했는지 원인 파악을 하기가 힘들다. 그럴 시간도 없고, 원인 파악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성장을 하니까,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위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행복한 고민이긴 한데, 나중에 성장이 멈춘 후에, 과거의 성장을 반복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성장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런 성장 사이클을 반복하지 못하는걸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적절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적절한 인력이 보강되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너무 빨리, 그리고 신중하지 못하게 사람을 뽑는데, 이게 항상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걸 봤다. 어떤 성장을 할 때,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지만, 미래에도 계속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데, 이걸 생각할 시간도 없고, 고민할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성장의 기울기와 배움의 기울기가 일치해야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회사 내부에 만들 수 있다. 성장의 기울기가 너무 가파르면, 배움이 그 기울기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배움의 기울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만큼만 성장의 기울기를 조정해보라고 권장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또 하나 나오는 게 성장의 공식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회사의 성장을 공식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성장을 제한하거나, 또는 더 가속할 수 있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또는 주위에 내가 아는 회사 중, 정말 비즈니스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은 모두 이런 성장의 공식을 어느 정도 내재화하고 있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보다 성장이 더디면, 이 중 몇 개의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촉진한다. 이와 반대로, 회사 내부 배움의 기울기보다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 싶으면, 또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늦춘다. 나는 이런 걸 실제로 봤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창업가에게 이런 성장의 공식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물론, 이런 성장과 배움의 기울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내가 아는 많은 VC는 초기에는 무조건 미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달 업다운이 심하더라도 일단은 성장할 수 있는 만큼 무조건 성장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니콘 회사는 없다고 한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투자자 돈으로 유니콘 되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지는 그 이후에 고민해보자는 식의 생각과 태도는 요새 참 위험천만하다고 매일 느끼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현실 직면하기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서는 세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문제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 그리고 문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 실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냥 어떻게 되거나, 누군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결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방치하는 동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이유는 그냥 전 세계 대부분 사람이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골치 아프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해야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 들어야 하고, 고장 난 걸 내 손으로 고치려고 시도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웬만한 사람은 그냥 이런 상황을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혼자 뭉개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다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아예 문제에서 등을 돌리고,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구나잠수 타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어쨌든 둘 다 사회나 집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소수지만,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커도, 절대로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go-getter형의 problem solver들도 가끔 만나는데, 이런 사람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실은, 그렇다고 이런 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들이 실수한 걸 인정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테 하기 싫은 소리도 많이 하고, 필요 이상으로 욕도 먹고, 정말로 몸과 마음이 불편한 행동과 말을 해야 하기도 하다.

나도 굳이 어떤 사람인지 분류를 하자면, 그래도 문제로부터 도망가기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진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말만큼 쉽진 않다. 가끔은, 별거 아니지만,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남한테 전화 한 통 거는 것조차 너무 하기 싫고, 전화가 오면 정말로 받기 싫고, 진짜로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내 과거 경험에 의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그냥 가만히 있거나 도망가는 것보단 좋은 결과를 만든다. 당장은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정신과 육체 건강에 훨씬 좋다.

며칠 전에 소프트뱅크가 실적 발표를 했는데, 1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을 냈다. 자그마치 7조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했는데,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위워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 폭락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적자가 발생한 거야 놀랍진 않지만, 나는 손정의 회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현실을 아주 객관적으로, 그리고 똑바로 직시하고, 아주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하는 자세에 감명받았다. “내 판단에 문제가 있었고, 이건 제가 정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 “변명 없이, 있는 그대로 실적을 설명하겠습니다” , “이만큼 적자를 낸 것은 창업 이래 처음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등과 같은, 어떻게 보면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 하지 않는, 그런 발언과 행동은 나한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나도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문제가 있으면 도망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고, 그냥 그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라고 자주 조언한다. 실은 스타트업 하는 분들은 대부분 problem solver지만, 간혹 현실로부터 도망가려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의 특징은, 회사의 실적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고, 변명이 많고, 이런저런 관련 없는 수치들을 대충 섞어서 얼버무리는 건데, 이러면 그 순간은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결국엔 이게 훨씬 더 큰 문제가 돼서 돌아오고, 그땐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수가 있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현실이 내 뒤통수를 친다. 그것도 아주 세게.

파트타임 코파운더

내가 투자를 가장 꺼리는 팀 중 하나가 바로 회사에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코파운더가 너무 많은 지분을 소유하는 경우이다. 전에도 비슷한 내용에 대해서 여러 번 글을 썼는데, 요새도 이런 팀들을 빈번하게 만나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고, 대표도 너무 좋은 거 같아서, 투자검토를 조금 진지하게 시작하다 보면 주주명부를 보게 된다. 그리고 대주주들이 누군지 한 명씩 물어보면, 현재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 않지만, 지분을 과도하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코파운더분들이 간혹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 않다”의 정의는, 풀타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회사에 일주일에 두 번 나오거나, 주말에만 일하거나, 원래 직장인인데 직장 업무 마치고 밤에 일하는 사람은 풀타임이 아니다. 풀타임은 말 그대로 이 스타트업에서 종일 일하고, 다른 업무에는 종사하지 않고, 이 일에 대해서만 종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렇게 회사에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내 안에서는 적색경보가 울린다. 실은 이건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합리화하는가에 따라서 보는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것 같은데, 필요에 의해서 풀타임과 파트타임 코파운더들이 같이 회사를 시작하고, 초반에 열심히 같이 일하다가, 원래 하는 일이 있는 코파운더는 지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간 거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투자자도 있다. 시작하는 게 어려웠고, 초반에 중요한 고객을 발굴하거나, 아니면 제품의 뼈대가 되는 기술을 만드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면, 충분히 그만큼의 코파운더 지분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VC도 있지만, 나는 스타트업은 창업 그 자체보다는 창업한 회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키는 게 더욱더 큰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회사의 지분을 많이 가지는 건 절대적으로 반대이다.

이런 코파운더의 종류는 다양한데, 내가 자주 보는 건 의사, 교수, 변호사, 회계사, 연예인과 같은 전문직이다. 아무래도 모두 각 분야에 대한, 남들이 갖기 힘든 특수한 경험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창업할 때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전문직의 특성상, 전문직 자격을 가지려고 그동안 투자한 시간, 돈과 노력이 너무 커서, 이걸 당장 그만두고, 돈 못 버는,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돈을 못 벌 확률이 높은 스타트업에 풀타임으로 이분들이 합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본인이 사업을 시작할 때 상당히 도움을 많이 줬기 때문에 코파운더이고, 그래서 지분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 풀타임으로 하는 일은 이미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라서, 시간을 많이 투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동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시간의 대부분을 스타트업 일하는데 쓸 거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 말을 절대로 안 믿는다. 예를 들어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이 회사는 이미 대표이사가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과 팀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본인은 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스타트업 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경우라도, 결국 이분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나오는 건 이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는 스타트업 보단 이 회사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분한테는 파트타임 코파운더인 스타트업은 그냥 조금 열심히 하는 취미생활이라는 의미이다.

이건 형평성과 절실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타트업의 지분에 대해서는, 이 사업을 하면서 만약에 사업이 망하면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파트타임 코파운더들은 – 모두 그렇지는 않다 – 스타트업이 망해도,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크게 타격받지 않는다. 모두 풀타임으로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있고, 여기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하는 스타트업이 망해도 이분은 그냥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수 있다. 즉, 생계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분을 많이 가질 필요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 회사를 창업할 때는 기여를 했고, 도움을 줬겠지만, 스타트업이 잘 되려면 그 이후에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고, 회사의 지분은 이분들한테 줘야 한다.

약간 다른 케이스는, 코파운더들 모두/일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작은 파트타임으로 했고, 펀딩을 받기 전에는 업무 후 밤이랑 주말에 스타트업 일을 하지만, 제대로 펀딩받은 후에는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전념하는 경우인데, 이런 건 나는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후에도 몇 명의 코파운더는 원래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만 스타트업 일을 하지만 지분은 그대로 갖고 있으면, 이건 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코파운더들끼리 제대로 된 주주 간 계약서를 체결해 놓으라고 권장한다.

그래서 나는 예비 창업가들한테 누구랑 회사를 창업할지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는 코파운더와 창업을 해야만 한다면, 지분 구조를 어떻게 가져가고, 주주 간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잘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런 파트타임 코파운더 이슈가 있는 스타트업에 이미 몸을 담고 있다면, 위에서 말한 지분 문제는 가능하면 빨리 해결해서 글로(=계약서) 남기는 게 좋다. 스타트업이 잘 돼서, 밸류에이션이 올라가고, 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의 가치가 수십억 원, 또는 수백억 원이 되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메일 쓰기

letters-2794672_1280바로 전 글에서 진한 감동이 전달되는 이메일에 대해서 썼는데, 내가 수많은 이메일 중 하나에 감동하였던 이유는 내용의 절실함이 나한테 전달됐기 때문이지만, 이런 절실함이 나한테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창업가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와이프가 농담처럼 나한테 하는 말 중, “당신 일 자체가 이메일이잖아”가 있는데, 그만큼 내가 대부분의 업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로 하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 중 하나가 이메일이다. 그리고 점점 더 바빠지고, 점점 더 커버해야 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이메일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글을 통해서 하다 보니까, 나도 이메일을 쓸 때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장 적게 글을 써서, 가장 많은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 상대방을 보지도 않고, 통화하지도 않으면서, 오롯이 글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이젠 누가 나한테 쓴 이메일만 읽어봐도 이 사람의 내공,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고방식,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철학 등이 어느 정도 보인다. 항상 맞진 않지만, 워낙 많은 이메일을 접하고,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도 보니까, 이메일을 통해서 내가 이해해서 대략 머릿속에 그린 창업가의 이미지와 태도는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가 가져야 할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잘 쓰고, 이메일을 잘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좋은 창업가 중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아무리 짧아도, 이들이 쓴 이메일을 보면 항상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알아야 할 모든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읽은 후에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게 만드는 이메일을 쓰는 창업가들도 많은데, 역시 이런 사람들은 만나보면 사업을 잘할만한 태도가 잘 안 보인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는 나한테 웬만하면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라고 한다. 실은 전화 통화하거나, 아니면 그냥 카톡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일부러 같은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글 쓰는 실력, 그리고 글을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실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콜드 이메일을 보내면, 메일의 첫 한 줄만 읽어 보면 내가 이메일 전체를 읽을지, 그리고 이분이 내가 만나고 싶어 할만한 분인지가 바로 결정된다. 글을 잘 쓰면, 계속 읽고, 만날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한 줄 읽고 바로 지워버린다. 실은, 이메일 쓰는 게 익숙지 않은 창업가도 많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일을 계속하려면, 효과적인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연습과 훈련하길 권장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

157196504812610월은 많이 바쁜 한 달이었다. 뭐, 우리 같은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다 바쁘지만, 이번 달은 스트롱 미팅, 프라이머 16기 선발 미팅, 그리고 두 번의 짧은 해외 출장이 있었다. 일본과 동남아에 도착하자마자 미팅만 몇 개 하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오니까, 시차는 거의 없지만, 역시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회사들과 미팅하니까, 집에 오면 온종일 노가다 한 사람같이 쓰러졌다.

그중 하루는 집에 오니까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기가 다 빠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메일 받은편지함을 비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메일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런 긴 하루를 보내면, 중간에 이메일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이 읽히길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이날은 보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냥 중요한 내용만 답변해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이메일은 읽기만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온 이메일은 그냥 대충 넘어가고 빨리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 이메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모르는 주소에서 온 이메일이라서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진정성 있는 내용과 창업가의 구구절절한 스토리에 잠이 확 달아났고, 나는 어느새 그 긴 이메일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읽고 있었다. 이메일의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매 줄에서 묻혀 나오는 절박함에서 이분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심정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으니, 이건 엄청나게 잘 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피곤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그런 하루였고, 빨리 자고 싶었고,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장황한 이메일에 사업계획서를 첨부해서 보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굳이 이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왠지 이분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가 생각났던 거 같다. 솔직히 그땐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지만, 내가 스타트업 경험이 없어서 아는 투자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스탠포드와 워튼 동문 주소록을 뒤지면서, 현재 직업이 VC인 동문들한테 하나씩 이메일을 했다. 이때 내 심정은 정말 절실했다. 2018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우리한테까지 돌아올 투자금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의 VC한테 이메일을 쓰기 위해서, 이분과 이 VC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공부하고 뒷조사를 한 후에야 이메일을 썼는데, 하나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내 마음이 0과 1의 바이너리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비치고 내 간절함이 전달되길 기원하는 (전자)편지를 썼다. 이 중 90%는 답장을 못 받았고, 아마도 읽히지도 않았겠지만, 10%는 어떤 형태로든 나한테 답장을 해줬다. 물론, 이 10%도 결국 “우린 관심 없다” 였지만, 이 중 몇 명의 투자자는 당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한테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지원과 위로의 답변을 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아,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 이런 심정이었지. 이분들은 정말 얼마나 절실하게 나한테 본인들의 사업과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꼭 답해주고, 가능하면 만나봐야겠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 이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손가락으로 치고, 이게 0과 1로 표시되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나한테 화면으로 전달됐지만, 나한테는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였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 이메일을 읽은 후에는 참 평온하게 잘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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