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겸손해질 수 있는 영광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대기업 또는 이 업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매일 경험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다 나열하면 너무 많지만, 올해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때가 두 가지 경우다. 둘 다 창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느낀 점들이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 중 95%가 소위 말하는 고생하는 바퀴벌레형 창업가이다. 나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원래 사업은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버티면서 허슬링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나도 짧게 경험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전쟁도 아니고, 조폭과 사업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 하다가 정말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창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힘든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누가 봐도 곧 망할 것 같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한테 “대표님, 그냥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이거 대체 왜 하시는 건가요? 그동안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분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고, 그냥 매일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살아남으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만두면 이 힘든 여정이 끝나겠지만,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이럴 때는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겸손해진다. 저렇게 힘들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불평불만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또 항상 겸손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해서 역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걸 볼 때다. 이 분들이야말로, 좋은 엑싯을 해서 평생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나 같은 투자자한테 돈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창업가보다 열심히 일 한다.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자나 깨나 사업 생각만 하는걸 보면, 그냥 반자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겸손해진다. 전에 내가 개인 자산이 수천 억 원이 넘는 연쇄 창업가의 짐승피칭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이런 분들을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솔직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직 미완성 소프트웨어를 베타 제품이라고들 하는데, 인생도 미완성이고, 삶의 묘미는 이 미완성 인생을 계속 개선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항상 베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을 이미 했든, 실패를 여러 번 했든, 앞으로 성공을 하고 싶든, 창업가들이야말로, 상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베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밤새 쳐주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항상 겸손해질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영광이다.

배달의 민족

2019년 스타트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아마 배달의 민족 엑싯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에 본사를 둔,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Delivery Hero가 4.7조 원에 배달의 민족을 인수했는데, 국내, 그리고 해외에서도 깜짝 놀랐던 빅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달의 민족에 대해서 처음 들었던 건 아마도 2011년도였던 거 같다. 알토스의 한킴 선배님이 중국집 찌라시를 스캔해서, 이걸 모바일로 제공하는 앱이 있는데, 이름이 배달의 민족이라고 했을 때, 그냥 뭐 이름 정말 웃긴다고 하면서 막 웃었던 게 기억나는데, 이 회사가 10년 만에 엄청난 기업이 됐다. 참고로, 그땐 스트롱벤처스가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우린 투자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 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는 거 같다.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는 점, 이젠 한국의 배달 시장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는 원망, 배달의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 됐다는 말장난, 뭐, 이런 부분이 못 마땅 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 나는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배달의 민족은 한국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산업이 아니다. 철저하게 시장과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졌고, 운영되는 기업이다. 자본의 싸움이고, 시장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외국기업은 한국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과 아시아에 진출한 것이고, 좋은 회사를 확실하게 인수하기 위해서 시장 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이게 비싸니, 말도 안 되는 기업가치니, 하는 건 다 부질없는 논쟁이다. 돈을 내는 사람이 지불의사가 있는 가격이 시장 가격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 딜리버리히어로보다 더 간절하게 배달의 민족을 원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도 해외기업을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고,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마당에 독일 회사가 한국 스타트업을 조 단위 가격에 인수한 게 뭐가 그렇게 이상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미 말했듯이, 이건 자본의 싸움이고, 돈에는 국적이라는 게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배달의 민족의 초기 투자자인 본엔젤스와 알토스가 부럽다. 그리고 너무 축하한다. 실은, 알토스보단 우리랑 비슷한 단계에 투자하는 본엔젤스가 더 부럽고, 강석흔 대표님과 본엔젤스 팀원분들에게 respect를 표한다. 본엔젤스는 이번 엑싯으로 인해서 8년 전에 3억 원 투자한 게 1,000배가 됐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우리 같은 초기 VC한테는 정말 꿈같은 수익률이다. 이 정도면, 투자 인생에서 평생 한 번 정도 칠만한 그런 만루홈런이다.

올 한 해도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이런 좋은 소식이 많이 생겼으면 하고,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그리고 김봉진 대표님과 우아한 형제들 모두 축하한다. 아시아인 모두가 다 배달의 민족이 되길.

직원들의 스톡옵션

한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스타트업에 취직하면, 연봉과 조건 협의할 때, 대부분의 직원은 스톡옵션보다는 현금을 선호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스톡옵션에 대한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었고, 지금같이 성공한 스타트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능성이 매우 낮은 불확실한 휴짓조각 같은 스톡옵션을 받기보단, 고정된 가치지만 내 주머니 속으로 꼬박꼬박 들어올, 확실한 현금을 선호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연봉협상을 할 때, 오히려 현금 부분을 줄이고, 스톡옵션을 더 많이 받길 선호하는 내가 아는 미국 회사원들과는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현재도 현금을 선호하는 성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직 미혼이거나 가족이 없는 젊은 분 중 현금보다는 스톡옵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잘되고 있는 스타트업이 많아졌고, 특히 유니콘이 더 많아지면서, 주변 지인들이 실제로 돈을 많이 번 사례를 보면서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던 이커머스 회사, 또는 배달 앱을 만드는 회사에 친구들이 입사했을 때는 뭐 저런 회사에 취직했냐고 비웃었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기업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입사 초기에 받은 스톡옵션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서 큰돈을 버는 걸 직접 보게 되고,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스톡옵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실은, 창업자가 아니고 직원이라면, 스톡옵션은 이들에게는 스타트업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봉을 많이 받으면 당연히 좋지만, 솔직히 세금을 낸 후에 실수령하는 현금은 그렇게 차이 나진 않는다. 그리고 이 연봉의 차이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금액도 대부분 아니다. 그러면, 열심히 일해서 같이 회사의 가치를 키워나가고, 회사가 잘 되면 본인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스톡옵션은, 대기업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스타트업에서만 제공되는 굉장히 좋은 보상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하기 때문에, 스톡옵션은 대부분 휴짓조각이 된다는 점은 명심하자.

회사의 입장에서도 현금보단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주는 게 여러모로 좋다. 일단,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돈이 없다. 돈 없는 스타트업에서 현금은 워낙 소중하기 때문에 – 지분도 소중하지만, 현금은 회사를 돌아가게 만드는 피라서 – 가능하면 아껴야 한다. 스타트업 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연봉에 현금과 스톡옵션을 적절하게 섞으면 그만큼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오너십을 심어줄 수 있는 게 스톡옵션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지분을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상당히 자랑스럽고 모티베이션을 줄 수 있는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잘 되면 그 지분의 가치 또한 올라가니, 이보다 더 좋은 인센티브는 없을 것이다.

그럼 스타트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스톡옵션을 얼마큼 주는 게 적당할까? 1%가 맞을까 아니면 10%가 맞을까?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나한테 요새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은 정답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코파운더도 아니고, 임원급도 아니고, 그냥 일반 직원이지만 초기에 입사하는 분들한테는 최대 1~2%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좋다. 새 직원이 입사하는데, 이 분 정도면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이 5,000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미 말 한대로, 현금이 항상 부족한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현금과 스톡옵션을 적절히 혼합하는 게 가장 좋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현금이 3,500만 원이라면, 부족한 1,500만 원을 스톡옵션으로 주면 좋다. 부족한 1,500만 원은 그러면 몇 퍼센트인가? 조금 객관적으로 계산을 해보려면, 스타트업의 현재 기업가치를 따져보는 게 좋다. 만약에 얼마 전에 기업가치 50억 원에 투자를 받았다면, 이 회사의 소위 말하는 공평한 시장가치(=Fair Market Valuation)는 50억 원이다. 50억 원의 0.3%가 1,500만 원이다.

그러면, 이 직원분한테는 현금 3,500만 원에 회사의 스톡옵션 0.3%를 제안하고, 이걸 기반으로 협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이 ’0.3%’라는 엄청 작아 보이는 퍼센트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이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직원분은 명심해야 한다. 50억 원의 0.3%면 1,500만 원이지만, 본인이 정말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만약에 1,000억 원에 엑싯을 해서 현금화를 한다면, (희석을 무시한)0.3%는 3억 원이 된다. 또한, 일을 잘하면, 중간마다 보너스로 스톡옵션을 계속 받을 기회도 있다.

가끔, “우리 사장 진짜 짜다. 스톡옵션 고작 1%밖에 안 주더라.” 류의 말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나는 그 1%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 1%의 시장가치에 관심을 더 가지라는 조언을 한다.

언더독

box-1514845_640지난주에 록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록키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underdog’이라는 단어인데,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두고 언더독이라고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언더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동안 패권을 잡고 있던 챔피언을 이기는 건 통쾌하고 짜릿하다. 우린 힘 있고, 항상 이기는 강자에 대해서 환호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약자의 대반격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희열을 느낀다. 이건 아마도 인간의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하게 하고 갔으면 하는 게 있다. “언더독 = 약자”라고 많은 분이 생각하는데, 실은 언더독은 약자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지만, 큰 무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건 이들이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언더독들한테는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경쟁조차 하지 못 했을 뿐이다. 록키의 경우에도, 정신적/체력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였고, 정식 트레이닝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훈련을 못 했지만, 아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런 아마추어가 데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식 시합을 하기 위해 링 위에 올라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기회가 왔고, 그 이후에는 모두가 잘 알듯이 세계적인 챔피언이 됐다.

올 한 해만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3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는 대부분 록키와 같은 언더독이다. 모두 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웬만한 경쟁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창업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시작하고, 만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데, (아직은) 화려한 경력이나 대단한 빽이 없는 분들이라서 시작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분들이다. 대단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금이 이들에게는 뭔가를 시작해서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자를 했던 거 같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평등과 공평은 완전히 다른 말이고, 실은 이 세상이 평등하긴 한건가라는 의문까지 요샌 생기고 있다. 어떤 운 좋은 친구들은 100미터 인생을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0미터 지점인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운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더 안타깝고 화나는 건, 이건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거라서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능력이나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힘차고, 멀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달릴 수 있어야지 의미가 있는데, 이 언더독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 언더독들이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언더독이 링에 올라간다고 해서 모두 록키같이 예상을 뒤엎고 이기진 않는다. 실은, 대부분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난다. 왜냐하면, 상대는 실전 경험도 많고, 돈도 많고, 모든 자원이 월등하게 많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 또는 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게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열심히 살면, 한 번 정도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언더독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은 매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좋아하게 되고, 투자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록키라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그렇게 좋아하고, 생존하는 인간들한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 가상 인물한테 배우나 보다. 언더독들 파이팅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학벌이 중요한가?

1575447669560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에서도 투자했고, 스트롱이 후속 투자한 회사의 대표님과 이야기하다가 학교와 학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이분이 회사의 코파운더와 초기 직원분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프라이머나 스트롱은 팀원의 학벌을 따지지 않아서 너무 좋고, 만약에 우리가 학벌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본인들은 아마도 투자받기 힘들었을 것인데, 이렇게 학벌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자자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다는 고마운 말을 나한테 해주셨다.

그 미팅 이후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정말 대표이사와 공동 창업가들이 어떤 학교를 나왔고,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굳이 한 쪽을 택하자면 우리 투자사 대표가 말한 대로, 우린 창업가의 학벌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게 성공적인 회사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120개가 넘는 투자사 창업팀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내가 거의 모르고 있는데, 이건 내가 이분들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이분들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회사와 미팅을 할 때, 학교나 사회에서 코딩을 배웠냐는 질문은 자주 하는데, 어느 학교 출신인지는 요새는 아예 안 물어본다. 그만큼 중, 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입학시험을 잘 봐서, 이름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게 스타트업을 잘 운영하는거와는 –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냥 이 팀이 본인들이 하는 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회사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그 낮은 확률에 도전해 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뭐 이런 게 훨씬 더 중요한데, 이건 공부와 학교와는 완전히 상관이 없고, 어떻게 보면 다른 수준의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들이 학벌이 좋지 않은 건 아니다. 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스트롱 포트폴리오의 많은 창업가가 서울대 출신이고, 유학파도 상당히 많다. 실은, 이분들은 비즈니스 엄청나게 잘 한다. 가끔은, 이렇게 비즈니스를 잘하는 분들이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교에도 갔다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모든 걸 잘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좋은 학교 출신이 도움 되는 점이 있다면, 주변에 대기업이나 좋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문이 많기 때문에, 채용에 있어서 월등하게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VC가 좋은 학교 출신이고,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동문이 많아서, 투자를 받을 때도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창업가와 학벌에 대해서는 투자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리고 좋은 학생과 좋은 창업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논문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한테 누가 이 상관관계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나는 전혀 없다고 하면서 그냥 그때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할 텐데, 내 경험은 다음과 같다.

일단 학벌이 안 좋으면, 한국과 같은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두 배의 노력을 하는 걸 꽤 자주 경험했다.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는 열심히 해서 성공하려는 의지와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이들이 실패하면, “저럴 줄 알았어. 무엇을 해도 잘 못 해.”라는 비난을 받기 딱 좋은 사회가 대한민국인데, 이 말을 듣기 싫어서 엄청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다.
또한, 학벌이 좋은 창업가들도 악착같이 노력하는 걸 꽤 자주 경험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해석인데, 그냥 이들은 대학교까지는 항상 본인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면서도 계속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의지와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실패하면, “좋은 학교 나와서 쓸데없이 사업한다고 할 때부터 저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비난을 받기 딱 좋은 곳이 대한민국이라서, 이분들은 또 이런 말이 듣기 싫어서 엄청 열심히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VC는 특정 학교 출신이 아닌 창업가한테는 아예 투자하지 않고, 어떤 투자자는 미팅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학교 어디 나왔어요?”인데, 물론 이분들도 이렇게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름의 논리와 생각이 있고, 들어보면 맞는 말도 있다. 그래도 나는 창업가의 학벌에는 큰 관심이 없다. 우리가 하는 업은 로켓과학도 아니고, 박사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니고, 내 경험에 의하면 출신 학교와 비즈니스의 성공은 전혀 큰 상관관계가 없는데, 자꾸 여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더 큰 그림을 놓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투자할 때 학벌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더 좋은 창업가와 더 좋은 회사를 만날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는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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