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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트와 마무리

지난주에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이 끝났다. 테니스 대회의 중계권은 주로 JTBC Fox에서 구매하는데, 이번에는 CJ ENM이 가져와서 tvN과 XtvN에서 번갈아 가면서 중계했는데, 시간도 짧고, 재미없는 경기 위주로 방송을 해서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하는 2주 동안은 나도 거의 매일 TV를 통해서 경기를 보는데, 이번에는 준결승부터만 경기를 제대로 봤다.

대회의 꽃인 남자 결승에서는 노련한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와 무서운 20대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가 붙었다. 치치파스는 몇 년 전부터 눈여겨봤던 선수인데, 체격도 좋고, 나이도 어리고, 감각도 매우 좋아서, 챔피언 자질이 충분히 있는 선수지만, 그래도 여러 번 우승하고 경험 많은 조코비치가 우승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무관중 경기가 아니라서 관중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에 경험이 상대적으로 없는 치치파스가 이 압박을 못 견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세트가 끝나면서 이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치치파스가 스피드와 파워를 앞세워서 조코비치를 압도했고, 두 세트를 내리 이겼다. 5세트 중 3세트를 이겨야 하는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이렇게 첫 두 세트를 지면, 이후에 컴백해서 이긴 경우가 역사상 거의 없고, 특히 체력소모가 많은 테니스 같은 스포츠에서는 확률적으로만 봐도 첫 두 세트를 이긴 선수가 경기에서 이기는 경우가 95% 이상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세 번째 세트가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조코비치의 정확도와 집중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리고 정말 마술과도 같이 이후 3개의 세트를 조코비치가 내리 이겼고, 장장 4시간 11분 만에 세트 스코어 3-2로 치치파스를 역전승하면서, 프랑스오픈의 챔피언컵을 가져갔다. 솔직히 나도 두 번째 세트가 끝났을 때는, 이번에는 치치파스가 승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남자 테니스를 독주하던 빅 3인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가 아닌 신예 선수가 우승하면서 드디어 테니스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분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짜릿한 최고의 컴백 역전승이었다.

경기가 후 인터뷰 시간에 어떤 기자가 치치파스에게 “이번 롤랑가로스 결승에서 배운 점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는데,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You have to win three sets, not two. Two sets don’t mean anything(테니스 경기에서는 이기기 위해서는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세트를 이겨야 한다. 두 세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모든 것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시작이 아무리 좋고 요란해도, 마무리를 못 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시작이 순조롭고, 펀딩을 많이 받아서 유니콘이 돼도, 사업은 결국 돈을 벌고,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스스로 자생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두 세트만 이기고 마치 챔피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시작이 좋지 않고, 그 과정이 힘들어도, 좋은 마무리에 집중하면 결과는 좋을 것이다.

독립적 사고

대기업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가끔 나한테 연락이 온다.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같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잘 먹고 잘살아왔던 대기업이 그동안 축적된 통찰력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이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생각하거나, 이미 시작한 경우가 요새 자주 보인다. 이들은 투자팀을 만들어서 외부 스타트업에도 투자하지만, 본인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직원들로부터 좋은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창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전반적인 조직의 혁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나도 이런 프로그램 담당자와 몇 번 이야기했고, 사내 벤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또는 어드바이저로도 참여한 적도 있었다. 뭐, 대기업이 하는 대부분의 이런 프로젝트가 잘 안 되는데, 이런 사내 벤처 또는 아이디어 공모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잘 안 된다. 그래도 간혹 그 안되는 프로그램 중에서도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회사에서 하지 말라고 한 걸 직원이 몰래 실행을 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다. 이분들과 나중에 이야기해보면, 이런 프로그램을 계기로 아이디어가 나오긴 했는데, 상사와 모든 동료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멈췄으면 이런 아이디어가 실행되지 않았을 텐데, 이분들은 “이걸 하면 회사에서 짤리지 않을까?”라는 각오를 하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이게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남들이 봤을 때 말도 안 되고, 잘 안 될 것 같은 사업이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다 이런 성향을 가진 분들인 것 같다. 너무나 crazy하고 이상한 아이디어라서 과연 이런 걸 해도 될까, 또는 이렇게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창업을 할 정도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 심지어 본인 가족들로부터 –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을 믿고 밀어붙여서 스트롱한테 투자도 받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Consensus thinking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이런 사고 또는 의사결정 방법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변화를 가져오고 싶어 하는 창업가는 이렇게 생각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위에서 말 한대로, 회사원이라면 “이걸 회사에서 하면 나 짤리는거 아냐?”라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남들이 말리는 걸 해야지만 성공할 확률이 커지고, 창업가도 “이렇게 해도 될까? 나 미친놈으로 보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한 번 정도는 하게 하는 그런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야지 잘되면 크게 잘 될 수 있다. 즉, 모두가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방식이 아닌, 나만의 독립적 사고를 해야 한다.

오늘도 모두가 consensus thinking이 아닌, independent thinking을 많이 하는 하루가 되길.

스케일에 대해

Y Combinator를 만든 폴 그레이엄은 USV의 프레드 윌슨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2번~4번 정도 글을 써서 올린다. 프레드 윌슨은 굵직한 주제들에 대해서 비교적 짧게, 그리고 가볍게 글을 쓰는 반면, 폴 그레이엄은 꽤 길게, 그리고 무겁게 글을 쓰는데, 두 명 모두 전 세계 창업가, 투자자, 비즈니스맨들이 즐겨 읽는 통찰력 넘치는 글을 무료로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어서 나도 개인적으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폴의 글 중 2013년도에 쓴 ‘Do Things that Don’t Scale‘이라는 글이 있는데, 내가 즐겨 읽었던 글이다. 모두 다 고속성장과 스케일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던 시절, 이 글은 여기에 큰 일침을 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같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창업가들이 피, 땀, 영혼, 그리고 육체를 갈아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걸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이 글에 담겨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서 내용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사업 초반에는 확장성과는 먼, 노가다로 하나씩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창업가들이 뭔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고객들이 알아서 구매하고 사용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되는 경우를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본인이 보기엔 굉장히 좋은 걸 만들어서, 출시했는데, 이걸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제품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사업을 접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물론, 정말 필요 없는 제품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장성이 있는 제품이라도, 알아서 자동으로 스케일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초반에는 창업가들이 몸으로 스케일을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스타트업)가 날 수 있게, 활주로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어떤 투자자는 창업가가 이런 노가다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지만 스케일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할 텐데, 이 말 또한 틀린말은 아니다. 다만, 스타트업 초반에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폴 그레이엄은 “초반에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스스로 회사의 소프트웨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스케일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에 정말 많이 동의한다. 드롭박스의 창업가 드류 하우스턴은 창업 초반에는 직접 고객을 찾아가서 랩톱에 드롭박스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주고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고객을 만들었고, Stripe 또한 겉으로는 온라인으로 가맹점 등록하면 즉시 결제가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뒷단에서는 창업가들이 수작업으로 다른 PG사에 모두 회원가입을 대신해주면서 고객을 만들었다.

이렇게, 회사 초반에는 스케일과는 거리가 멀게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으로 스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스케일이 만들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창업하자마자 고객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1호 고객이 있어야지만, 10호 고객이 생길 수 있고, 10호 고객이 있어야지만 100호 고객이 생기고,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면, 복리의 마술이 작동하면서 생각보다 빨리 고객 수가 증가한다. 지금은 잘되고 있는 회사들의 누적 고객 수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보면, 첫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는데 12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렸다면, 그 이후 1만 명의 추가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는 3개월, 또 그 이후에 1만 명의 추가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는 1개월, 뭐, 이런 식으로 복리가 적용될 것이다. 이 회사들에게 첫 1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첫 10명의 고객 확보이고, 첫 10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고객 확보인데, 이건 무조건 발로 뛰어야 한다. 즉, 스케일이 안 되는 일을 먼저 해야지만, 스케일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객의 이야기만 했는데, 매출이나 MAU 등과 같은 다른 지표에 대해서도 이 내용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내실과 외실

우린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 있는 정말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아무리 같은 분야에 있는 회사라도,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완전히 다른 회사이고, 창업가마다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정말 모든 창업가와 회사는 one of a kind이다.

이렇게 다양한 창업가들을 다양한 방법과 각도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 성장과 관련해서 회사의 방향을 정하는 면에서 보면, 내실을 중요시하는 창업가와 외실을 중요시하는 창업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내실에 집중하는 파운더는 사업을 하면서 가장 우선시 하는 건, 매출이 발생하고, 손실이 나지 않는 것이다. 돈 버는 거에 집착한다고 느낄 만큼, 절대로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는 분들이다. 스타트업 분야에 팽배해있고, 실은 우리 같은 투자자는 너무 익숙한, 일단 손실을 보더라도,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을 획득하고, unit economics는 잘 안 맞지만, 좋은 경험을 제공해서 플랫폼에 고객을 락인하는 사업 방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이분들에게 사업은, 시작부터 돈을 벌어야 하고, 마이너스만은 절대로 나면 안 되고, CAC와 LTV는 그냥 말장난이다. 회사에 장기적인 성장과 수익을 가져다줄 LTV가 크다고 해서,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CAC를 부담하는 건, 사업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런 스타일의 대표님들을 나도 많이 알고 있다.

항상 그렇지 않지만, 이 스타일의 대표들은 과거에 사업을 했는데, 잘 안 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다. 잘 안 된 이유를 보면, 돈을 너무 막 썼고, 예산 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이 비즈니스를 했기 때문에, 다시 사업을 할 때는 돈 관리만은 철저히 하고, 아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분들이다.

외실에 집중하는 파운더는 이와는 반대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초반에는 돈을 써서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적 성장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성장과 규모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손실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LTV가 충분히 크다고 판단되면, 단기적으로 높은 CAC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돈을 까먹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데, 어떻게 계속 자금을 마련하는가? 이 단계에서는 투자금이다. 돈을 벌진 못 하고, 엄청난 마이너스가 나도, 성장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면, 이 비즈니스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시장에 충분히 있다. 성장을 최우선시하는 이런 스타트업의 성장은 자연적인 성장이라기보단, 투자자들의 스폰서를 받는 성장이다. 이렇게 돈을 써서 고객을 확보하고 락인시키고, 이들에게 계속 재방문하고 재구매할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결국엔 경쟁을 이기고 시장을 선점하는 꿈을 꾸면서 비즈니스를 한다.

이 글을 읽어보면, 내실을 중요시하는 비즈니스는 성공하고, 외실을 중요시하는 비즈니스는 망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 한국의 유니콘 회사들은 오히려 내실보단 외실을 강조하는 창업가들이 만들었고, 오랜 시간 동안 성장에 집착한 결과로 결국엔 엄청난 해자(垓字)를 만든 좋은 사례들이 많다.

재미있는 건, 이 스타일의 대표들 또한 과거에 사업을 했는데, 잘 안 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그리고 이들의 잘 안됐던 이유는 내실을 중요시한 대표의 망한 이유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돈을 너무 안 썼고, 외적 성장보단 내적 성장만을 과거에 너무 중요시했고, 그 결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못 만들었기 때문에 경쟁사에 완전히 시장을 내줬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다시 사업을 할 때는 돈 버는 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일단 돈을 많이 써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분들이다.

내실을 중요시하는 파운더를 약간 비하하면 장사꾼이고, 외실을 중요시하는 파운더를 약간 미화하면 사업가이다. 나는 두 부류의 파운더를 너무 많이, 자주 본다. 그런데 이 비즈니스 세계에는 공식과 법칙은 없어서, 어떤 파운더가 더 성공하는가는 그때마다 다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성장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성장만큼 중요한건 없지만, 그렇다고 다 쓰면 또 투자받으면 될 거라는 대책 없는 태도로 돈을 펑펑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외적 성장에 대한 갈망, 하지만, 그러면서 돈을 어느 정도 벌어야겠다는 내적 탄탄함의 의지가 잘 혼합돼야 한다.

노장들

1970년생, 올해 50살인 프로 골퍼 필 미켈슨이 얼마 전에 메이저 골프 대회 중 하나인 2021 PGA Championship을 우승했다. 나도 골프를 좋아해서, 볼 수 있는 중계는 웬만하면 생방송으로 많이 보는데, 타이거 우즈 부상 이후에는 골프 중계는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PGA 대회 3라운드와 마지막 라운드는 상당히 흥분된 마음으로 봤다.

필 미켈슨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골퍼 중 한 명이다. 타이거 우즈 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미켈슨은 가장 미국인다운 아메리칸 골퍼다. 백인이고, 왼손잡이이고, 골프보다 가족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골퍼이자,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이자, 그리고 좋은 아들이라서, 특히 미국 아저씨들이 정말 좋아하는 입담 또한 만점인 골퍼이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크게 부상 당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롱러너이다. 롱러너라고하면, 대부분 실력이 별로인데 그냥 열심히만 하는 사람을 생각하겠지만, 미켈슨은 그 반대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승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그동안 엄청나게 우승을 많이 했고, 지금도 꾸준히 우승하고 있고, 실력으로만 따지면, 가장 creative하고, 힘 좋고, 재능있는 골퍼이다. 이 아저씨가 50살에 최고령 PGA 챔피언이 됐으니, 전 세계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도 몇 년 있으면 50살이 된다. 요새 내가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장기전과 꾸준함인데, 미켈슨의 이런 우승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바디 코디네이션이 감소하는 건 운동선수에게는 정말 스트레스받는 일인데, 우리 같은 투자자에게도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는 장점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보다 더 젊은 인구가 지배하는 메인스트림 시장에 대한 감이 조금씩 떨어지고, 우리보다 더 젊고 똑똑한 심사역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시장을 리드하는 걸 보면,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와 오기도 생기지만, 또 한 편에서는 언젠가는 우리도 퇴물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한다. 뭐, 이게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현실이 이렇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진, 나는 더욱더 체력 관리를 잘하고, 더욱더 시장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래서 필 미켈슨의 우승 소식이 더 반가웠던 것 같다. 테니스의 노장 거물 로저 페더러에 대해서 전에 내가 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 투자사 타파스 미디어 김창원 대표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다. 미켈슨, 페더러, 김, 모두 다 노장들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아직 현업에 종사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에서 많이 보도 돼서 대부분 알고 있지만, 카카오가 타파스 미디어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금액도 6,000억 원이라는 큰 엑싯인데, 우리 투자사의 엑싯이라서 당연히 기쁘지만, 김창원 대표라서 실은 더 기쁘고 감회가 남달랐다. 나이와 체력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달리고, 그리고 훨훨 날 수 있었던 이분 정말 존경스럽다.

나이는 단지 숫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실은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이다. 나이 들면, 체력도 떨어지고, 시력도 떨어지고, 감도 떨어지고, 운동능력 등 모든 게 감소한다. 그리고 스포츠에는 체력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업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창업이나 투자나 결국엔 체력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현역 생활을 계속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계속 현역을 뛰다 보면, 언젠간 운과 실력이 만나고, 한 번 더 우승할 수 있으니까. 필 미켈슨, 로저 페더러, 김창원, 모두 뛰어난 노장들이지만, 계속 현역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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