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열렸던 2025년도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드디어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했다. 맥길로이가 2009년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17번이나 마스터스에 참가했는데, 탑텐은 여러 번 했고 준우승도 한 번 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고, 그 누구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나에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승 인터뷰에서 맥길로이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내가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하기 시작했다.(I started to wonder if my time would ever come)”. 그가 울먹이면서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맥길로이가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 했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엄청난 거물 신인이었고, 그의 기세와 실력은 마스터스 대회를 한 10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노렸지만, 우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은, “첫 출전이니까 괜찮아. 나는 젊고 앞으로 기회는 너무 많아. 내년엔 우승해야지.”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괜찮아. 난 아직 10대야. 내년에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차도 우승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도 못 했고, 수년 동안 계속 우승에 실패했다. 어떤 해엔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반면에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 적도 많다. 그러면서 맥길로이도 20대가 됐고, 다시 30대가 됐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민첩성과 시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내년에 우승하면 돼.”라는 자신감보단,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길로이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가 지난 17년 동안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느꼈던 이 감정의 변화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도 스트롱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맥길로이가 거친 과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롱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도에 우린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5년도에 2호 펀드를 만들었다. VC를 처음 시작할 땐, TechCrunch나 WSJ에서 읽는 것처럼, 우리도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첫 2년이 지났을 땐 “이 회사들은 아직 시간이 걸려. 조금만 더 지나면 엑싯이 한두 개는 나올 거야.”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아직 충만했다. 그런데 3년, 그리고 4년이 지나면서 이 희망이 서서히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될 거로 생각했던 투자사들이 점점 더 싹수가 노래 보이면서, 과연 이 중 엑싯이 하나라도 나올지 스스로에게 의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조바심과 절망감으로 매우 빠르게 바뀌면서 “나는 과연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엑싯이라는게 생길까?”를 의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투자가 맞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계속 버텼고, 2017년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코빗이 좋은 엑싯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쌓인 의구심이 다시 자신감과 희망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린 계속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맥길로이가 겪었던 그 똑같은 희망 -> 의심 -> 절망,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대부분 5년 정도 사업하면 좋은 엑싯을 하거나, 회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첫 1년은 개고생인데, 이때만 해도 체력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서 “한 2년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다. 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펀딩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도 열심히 채용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은 안 생기고, 수많은 투자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도 돈은 안 주고, 아무도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희망과 자신감으로 몇 년을 더 버틴다. 딱 일 년만 더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회사는 안 망했지만, 창업 초기에 꿈꿨던 성장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고, 이 10년 동안 창업가의 희망은 의구심으로 바뀌면서 “과연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하게 된다. 이게 요새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상황이다.
맥길로이가 걸어온 길과 그 감정의 변화를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또, “꿈이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라. 계속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맥길로이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창업가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 저도 이 미친 짓 한지가 이제 8년째인데요, 제가 과연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내가 대답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나도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항상 “지금까지 안 망했으면 뭔가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이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면 우린 이 험난하고 미친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