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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나도 몇 번 포스팅 한 적이 있고, 요새도 아주 가끔 읽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는 2008년 10월 31일 발행됐고, 비트코인 자체는 2009년에 이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0원이었다. 최초의 비트코인 랠리는 2010년 10월, 가격이 $0.10에서 $0.20으로 두 배 올라가면서 시작했고, 그 이후로 엄청난 up/down을 거쳤다.

<이미지 출처: Perplexity 검색 결과>

위의 차트는 비트코인 탄생 이후부터 지난주까지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데, 시간을 압축해서 15년을 하나의 차트로 보면 지속적인 우상향 그래프가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차트를 쪼개서 보면 그래프가 미친 듯이 위아래로 요동을 친다. 나는 2013년도부터 비트코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됐고, 이때 코빗에 우리가 투자하면서 개인적으로도 비트코인과 다른 디지털자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소량의 비트코인을 꾸준히 사고 있다.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가 워낙 시간, 복리, 그리고 인내심의 함수라서 그런지, 그리고 내 성향 자체가 뭔가를 그냥 꾸준히 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나는 주식 투자도 사는 전략만 구사하지, 파는 전략을 실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상장 회사 주식도 몇 종류가 안 되는데, 이 주식 중 정말 오래 보유하고 있는 건, 24년째 보유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주식은 중간에 한 번도 팔지 않고, 24년째 계속 사고만 있다.

비트코인도 나는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long and hold 전략을 구사할 것 같다. 내가 비트코인을 보유했던 지난 11년 동안 수천만 명 ~ 수억 명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은 망할 거라고 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때마다 팔았고, 다시 반등하면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샀다. 그럴 때마다 가격은 출렁거렸고, 정말 그때 순간순간을 생각해 보면 나도 인내심과 뚝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팔았을 것이다. 실은 당시엔 이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원칙이라고 하기엔 좀 개똥이지만, 내가 그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세운 두 가지 원칙 때문에 계속 보유했고,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좋은 자산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샀다.

첫 번째 원칙은, 비트코인 자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샀고, 그 이후엔 계속 가격이 올라가니까 욕심 때문에 추가 구매했다. 그 기간 나는 공부도 많이 했고, 관련 회사도 많이 만났고, 투자도 하면서 이 신기한 신기루 같은 코드로 만든 인터넷 돈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이 생겼다. 그래서 가격이 폭락하고 남들이 다 팔고, 이제 비트코인은 망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때 오히려 더 샀다. 워렌버핏의 “남이 욕심부릴 때 두려워하고, 남이 두려워할 때 욕심부려라.”라는 말을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일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내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여기엔 인내심, 시간, 복리, 꾸준함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현재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팔지 않았기 때문에, 이익도 없고 손실도 없는 상태이다.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고민, 욕심, 두려움, 인내심이 지난 11년 동안 소위 말하는 뚝심이 됐고, 이 뚝심은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내 인생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다.

Tech 시장만 봐도 매번 이런 열풍이 불 때마다 우린 과한 버블을 목격한다. 비트코인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이후에 왔던 ICO, NFT, 메타버스 등, 모두 다 the next big thing을 꿈꾸면서 여기저기 옮겨 가기에 바쁘다. 그리고 이렇게 옮길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은 “이건 좀 다르다. 이번엔 확실하다.”인데, 솔직히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그 분야에 2년 이상 있는 사람을 못 봤다. 유행이 지나고,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가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분위기가 다른 곳으로 가면, 다시 또 그 새로운 분야에서 얄팍한 지식을 쌓은 후에 마치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이게 next big thing이고, 이 분야에서 뼈를 묻을 것처럼 행동한다.

AI 시장에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요새 ‘AI’라는 단어가 안 들어간 자료를 본 적이 없다. 다들 AI First 전략을 구사하고, 마치 반복적인 일을 하는 직업은 모두 다 바로 사라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말들을 한다. 과거에 반짝했다가 크게 안 된 메타버스나 NFT와는 좀 다르다고.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그냥 대부분 “이게 새로운 미래입니다.”라는 영혼 없는 답변들을 한다. 하지만, 역시 대중은 잘 속고, 인류 자체가 건망증의 연속인 것 같다. 모든 관심도 돈은 AI에 몰리고 있다. 나도 AI가 대단하고 이렇게 빨리 바뀌는 기술이 과거에 있었겠느냐는 경외심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것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과 사업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유행 쫓기의 일인자들은 VC들이다. 뭔가 유행할 때마다, 이 분야의 전문가 행사를 하고, 이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우리다. 이러다 보니 창업가들도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창업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이 분야랑 엮으려고 한다. 여기에 또 속아 넘어가는 투자자들이 있고, 어쨌든 이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지금 AI를 종교같이 믿고 있는 많은 분들 중 5년, 10년 뒤에도 이 믿음을 가진 분들이 몇 명이나 될까? 과연 이 세상에 뚝심이라는 건 존재할까?

그래도 아직 존재하는 것 같다. 결국엔 이런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나는 이제 목격하고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모든 좋은 건 오래 걸린다. Things Take Time.

50살

얼마 전에 내 생일이었다. 이제 나는 반백 년을 살았으니까, 올해 50세가 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생일을 안 챙기기 시작해서 나이와 생일에 대한 감흥이 실은 별로 없고, 생일 당일에도 특별한 이벤트나 식사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카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도 생일 알림을 다 꺼서, 내 생일을 기억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외엔 특별한 생일 축하 메시지도 오지 않아서 굉장히 편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젊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전 세계가 노화 방지에 열광하고 있는데, 솔직히 나에게 다시 젊은 배기홍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NO’라고 할 것이다. 나의 10대, 20대, 30대, 40대 모두 행복하고 감사한 시절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후회가 없는 즐거운 시절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이 가장 좋다.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골프도 치고,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면, 다들 나이에 대해서 항상 한마디씩 하는데, 들어보면 긍정적인 내용은 없고 모두 부정적이다. 특히나, 한국은 미국 보단 늙어 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어서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말을 반농담처럼 하는데, 내가 언젠가 이 말을 어떤 미국인에게 웃자고 했는데, 이분이 엄청나게 언짢아하면서 다시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생각해 보면 50살을 살았다는 건 대단하고, 이제 인생 경험이 꽤 쌓인 것 같다. 이걸 부정적으로 보면 이제 내 전성기는 지나갔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오히려 내 30대와 40대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고, 활기차고, 인생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모두의 인생 자체는 속도만 다르지, 계속 발전하면서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일 매일을 긴 연장선상에서의 꾸준함의 연속이라고 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공유했는데, 내가 아침마다 읽고 있는 문구가 있다. 동화 작가 강미정 씨의 ‘아주 작은 일’이라는 시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주일을 계속하면 성실한 것입니다.
한 달을 계속 한다면 신의가 있는 것입니다.
일 년을 계속 한다면 생활이 변할 것입니다.
십 년을 계속 한다면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큰 일
아주 작은 일을 계속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언제까지 일진 모르겠지만, 이 시의 내용처럼 앞으로 10년마다 계속 내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오늘도 아주 작을 일을 계속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수

창업가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단점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넓게 보는 능력이다.

너무 멀리 본다는 건, 좋게 말하면 장기적인 비전이 있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계획성이 있다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작은 것도 못 하는데 너무 큰 것만 생각하는 공상가/망상가라는 의미다. 이제 막 시작한 창업가가 월 매출 10만 원도 못 하면서 월 매출 100억 원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때, 어떤 투자자들은 대단한 비저너리라고 좋아하지만, 어떤 투자자들은 꿈만 꾸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너무 넓게 본다는 건, 좋게 말하면 한 번에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서 큰 시장을 먹을 수 있다는 의미지만, 나쁘게 말하면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일만 벌이는 스타일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나의 기능도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데, 계속 슈퍼 앱을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나한테 지금까지 봤던 회사 중 잘 된 회사들의 공통점을 자주 물어본다. 회사마다 다르고, 창업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 하나의 공통점은 없지만, 오랫동안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분들에겐 작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복리의 힘으로 인해서 나중에 폭발적인 성장이 만들어진다는 걸 믿으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공하는 회사들의 공통점은 작은 것들의 힘과 복리의 힘을 믿는다는 점이다. 이걸 믿지 않으면 창업과 사업이라는 외로운 싸움을 오래 할 수가 없다.

그럼 작은 것엔 어떻게 집중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 지금 만들고 있는 기능, 지금 쓰고 있는 이메일, 이게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여기에 100% 집중하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매사에 이런 자세로 임하면, 결국엔 작은 것들이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이렇게 완벽하고 작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아주 크고 아주 완벽한 것으로 성장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테니스 선수였던 로저 페더러가 얼마 전에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런 명언을 했다. “테니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치고 있는 포인트다. 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이 포인트가 끝났다면, 이젠 잊어버리고 다음 포인트에 집중해야 한다…지금 이 시점에 모든 걸 집중해야 한다.”

창업가들도 이런 마인드로 사업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는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경기다. 이 경기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치고 있는 포인트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건 바로 다음 포인트고, 다음 경기다.

점수를 하나씩 이기다 보면, 게임에 이기고, 세트를 이기고, 시합에 이긴다. 이 순서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그 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사업을 막 시작한 어떤 창업가가 본인은 몇백억짜리 회사를 만들 계획이었으면 그냥 대기업에 취직했지, 창업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처음부터 본인은 유니콘이 목표라고 하면서. 참고로 이 분은 내가 보기엔 아직 30억짜리 회사도 못 만들었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나는 이런 창업가들이 싫다.

역투자자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풍부하면, 투자가 쉽게 느껴진다. 이 시기에는 그 어떤 곳에 투자해도 웬만하면 망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얼마 전에 말했던 The Greater Fool Theory에 의해서 투자 심리가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건 바보지만, 내가 지불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이걸 다시 구매할 더 큰 바보가 어딘가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러서, “현금이 가장 싼 자산이다.”라는 말이 안 되는 말을 너도나도 할 때는, 정말로 바보가 아니면 투자 대상과는 무관하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문제는 이 반대의 시장 상황에서 발생한다. 특히나, 전혀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시장이 흘러가거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위에서 말 한 “더 큰 바보” 이론이 작동하지 않고, “내가 가장 병신이었어” 이론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오면, 대중의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지갑을 굳게 닫고 더 이상의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이미 투자한 자산은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서 손절하는 것이다.

뭔가 익숙한 시나리오이다. 최근 4개월 동안의 시장 상황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까진 시장이 과열됐고 이때까진 정말 스타트업이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젠 VC가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다. 벤처 생태계에서는, 미국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투자를 동결하거나,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한국은 아직은 상황이 이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아마도 곧 이와 비슷해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어떤 VC는 아예 전 직원이 두 달 휴가를 갔는데, 그 기간에는 신규 투자는 아예 안 할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실은, 상황이 이렇다면, 대중을 따라가는 투자자들은 – 그리고, 전체 투자자의 90% 이상이 이런 성향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 다른 투자자들이 다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신규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본인들도 그냥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불경기 상황을 역발상적으로 잘 활용해서 좋은 회사에 아주 싸게 투자를 더욱더 많이 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워렌 버핏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남들이 욕심부릴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부려라.”인데, 요새 같은 시장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투자자의 태도와 자세를 이 말이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투자자들을 ‘역투자자(contrarian investor)’라고 부른다.

우리도 실은 2020년도 3월 ~ 9월 사이에 이런 역투자자의 전략을 매우 공격적으로 펼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VC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주춤했을 때가 있었다. 당시에 많은 투자자들이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기투자사들 관리에 집중했는데, 우린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신규 투자를 했다. 시장에 돈줄이 메말라지자,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밸류에이션을 상당히 많이 할인해서 투자유치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역발상적인 투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서서히 종식되면서, 큰 성과를 만들고 있다.

이번 불경기도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물론, 우리도 평소보단 시장을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는 시드 자금을 다 쓰면, 다음 펀딩을 더 큰 VC에게 해야 하는데, 이 자금이 현재 시장에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작은 투자금으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팀에 선별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밸류에이션이 작년과 올해 초 보단 현저하게 낮아졌고, 장기적인 비전과 방향이 좋은 회사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같은 시기에 투자를 잘하면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역발상적인 역투자를 나만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모든 투자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대부분 다 입으로는 “이럴 때 투자하면 나중에 대박인데”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그런 투자를 하는 분들은 항상 극소수이다. 즉, 이럴 때 좋은 회사에 싸게 투자를 잘하면, 정말로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최고의 창업기회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에서 가장 많이 강조된 내용은 창업의 3가지 필수조건인 사람, 돈, 그리고 아이디어다. 나열한 이 순서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디어가 가장 덜 중요하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할 때 웬만하면 단독 창업가보단 공동 창업가가 있는 팀을 선호하고, 나는 공동 창업가가 없으면 웬만하면 창업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한다. 그런데 이 힘든 여정을 오랫동안 같이 할 공동 창업가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창업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어디로 가면 좋은 사람이 많다는 정답을 줄 순 없지만, 경험상 이건 말해줄 수 있다. 어려울 때 깨지지 않고 오래 가고, 이렇게 버티다 보면 결국엔 성공하는 팀의 공통점을 보면, 학교 친구(주로 고등학교 이후의 친구들인데, 이 시점부터 미래와 커리어에 대해 고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는 직장 동료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투자한 230개가 넘는 회사 중 지금 잘하는 회사들만 봐도 이 코파운더 구조가 나름 잘 적용되는데,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간다.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얽혀있는 사회에서의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간적으로 오랫동안 친한 사람들이고, 서로를 나름 깊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창업이라는 힘든 여정을 같이 하면서 좋을 때보단 좋지 않을 때 관계가 깨지지 않고 오래 간다는 건 정성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학교 친구와 직장 동료의 관계를 조금 더 정량적으로 들어가서 분석해보면, 왜 이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학생일 때와 직장 다닐 때가 왜 창업을 위한 최고의 기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워렌 버핏 이야기를 해보자. 버핏의 투자 원칙은 가치 투자이다. 가치 투자는, 특정 기업의 가격이 본연의 내재 가치보다 낮을 때 투자하는 전략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버핏이 계산했을 때 나이키의 실제 가치를 반영한 주식 가격이 $100이라면, 시장에서의 가격이 $100 이상일 때는 투자하지 않지만, 이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대량으로 투자하는 방법이다. 즉, 제대로 실행한다면 가장 좋은 매물을 가장 적은 취득 비용에 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항상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이다.

학교는 창업을 위한 가장 값진 자원을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 한가지 자원이 아니라 지식, 책, 정보, 코파운더, 세계적인 석학 등의 다양한 자원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런 자원을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시간이 꽤 길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직장에 평균 3년 정도 일 한다고 가정해보면, 직장 밖에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다양한 자원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학교의 경우 거의 공짜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학비를 부담하면).

종합해보면, 학생일 때와 직장인일 때 미래의 그 어느 시점보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지적자산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창업을 위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사람인데, 좋은 코파운더와 팀원에 대한 접근성을 학교와 직장은 거의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면, 지금이 창업하기에 최고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로, 주로 고등학교, 대학교 또는 대학원 친구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아직은 본인들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전이고, 뭔가 심각하게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아,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스트롱의 코파운더인 존과 나는 초등학교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