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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자자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풍부하면, 투자가 쉽게 느껴진다. 이 시기에는 그 어떤 곳에 투자해도 웬만하면 망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얼마 전에 말했던 The Greater Fool Theory에 의해서 투자 심리가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건 바보지만, 내가 지불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이걸 다시 구매할 더 큰 바보가 어딘가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러서, “현금이 가장 싼 자산이다.”라는 말이 안 되는 말을 너도나도 할 때는, 정말로 바보가 아니면 투자 대상과는 무관하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문제는 이 반대의 시장 상황에서 발생한다. 특히나, 전혀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시장이 흘러가거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위에서 말 한 “더 큰 바보” 이론이 작동하지 않고, “내가 가장 병신이었어” 이론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오면, 대중의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지갑을 굳게 닫고 더 이상의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이미 투자한 자산은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서 손절하는 것이다.

뭔가 익숙한 시나리오이다. 최근 4개월 동안의 시장 상황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까진 시장이 과열됐고 이때까진 정말 스타트업이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젠 VC가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다. 벤처 생태계에서는, 미국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투자를 동결하거나,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한국은 아직은 상황이 이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아마도 곧 이와 비슷해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어떤 VC는 아예 전 직원이 두 달 휴가를 갔는데, 그 기간에는 신규 투자는 아예 안 할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실은, 상황이 이렇다면, 대중을 따라가는 투자자들은 – 그리고, 전체 투자자의 90% 이상이 이런 성향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 다른 투자자들이 다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신규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본인들도 그냥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불경기 상황을 역발상적으로 잘 활용해서 좋은 회사에 아주 싸게 투자를 더욱더 많이 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워렌 버핏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남들이 욕심부릴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부려라.”인데, 요새 같은 시장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투자자의 태도와 자세를 이 말이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투자자들을 ‘역투자자(contrarian investor)’라고 부른다.

우리도 실은 2020년도 3월 ~ 9월 사이에 이런 역투자자의 전략을 매우 공격적으로 펼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VC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주춤했을 때가 있었다. 당시에 많은 투자자들이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기투자사들 관리에 집중했는데, 우린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신규 투자를 했다. 시장에 돈줄이 메말라지자,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밸류에이션을 상당히 많이 할인해서 투자유치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역발상적인 투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서서히 종식되면서, 큰 성과를 만들고 있다.

이번 불경기도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물론, 우리도 평소보단 시장을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는 시드 자금을 다 쓰면, 다음 펀딩을 더 큰 VC에게 해야 하는데, 이 자금이 현재 시장에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작은 투자금으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팀에 선별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밸류에이션이 작년과 올해 초 보단 현저하게 낮아졌고, 장기적인 비전과 방향이 좋은 회사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같은 시기에 투자를 잘하면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역발상적인 역투자를 나만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모든 투자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대부분 다 입으로는 “이럴 때 투자하면 나중에 대박인데”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그런 투자를 하는 분들은 항상 극소수이다. 즉, 이럴 때 좋은 회사에 싸게 투자를 잘하면, 정말로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최고의 창업기회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에서 가장 많이 강조된 내용은 창업의 3가지 필수조건인 사람, 돈, 그리고 아이디어다. 나열한 이 순서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디어가 가장 덜 중요하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할 때 웬만하면 단독 창업가보단 공동 창업가가 있는 팀을 선호하고, 나는 공동 창업가가 없으면 웬만하면 창업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한다. 그런데 이 힘든 여정을 오랫동안 같이 할 공동 창업가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창업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어디로 가면 좋은 사람이 많다는 정답을 줄 순 없지만, 경험상 이건 말해줄 수 있다. 어려울 때 깨지지 않고 오래 가고, 이렇게 버티다 보면 결국엔 성공하는 팀의 공통점을 보면, 학교 친구(주로 고등학교 이후의 친구들인데, 이 시점부터 미래와 커리어에 대해 고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는 직장 동료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투자한 230개가 넘는 회사 중 지금 잘하는 회사들만 봐도 이 코파운더 구조가 나름 잘 적용되는데,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간다.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얽혀있는 사회에서의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간적으로 오랫동안 친한 사람들이고, 서로를 나름 깊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창업이라는 힘든 여정을 같이 하면서 좋을 때보단 좋지 않을 때 관계가 깨지지 않고 오래 간다는 건 정성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학교 친구와 직장 동료의 관계를 조금 더 정량적으로 들어가서 분석해보면, 왜 이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학생일 때와 직장 다닐 때가 왜 창업을 위한 최고의 기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워렌 버핏 이야기를 해보자. 버핏의 투자 원칙은 가치 투자이다. 가치 투자는, 특정 기업의 가격이 본연의 내재 가치보다 낮을 때 투자하는 전략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버핏이 계산했을 때 나이키의 실제 가치를 반영한 주식 가격이 $100이라면, 시장에서의 가격이 $100 이상일 때는 투자하지 않지만, 이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대량으로 투자하는 방법이다. 즉, 제대로 실행한다면 가장 좋은 매물을 가장 적은 취득 비용에 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항상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이다.

학교는 창업을 위한 가장 값진 자원을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 한가지 자원이 아니라 지식, 책, 정보, 코파운더, 세계적인 석학 등의 다양한 자원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런 자원을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시간이 꽤 길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직장에 평균 3년 정도 일 한다고 가정해보면, 직장 밖에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다양한 자원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학교의 경우 거의 공짜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학비를 부담하면).

종합해보면, 학생일 때와 직장인일 때 미래의 그 어느 시점보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지적자산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창업을 위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사람인데, 좋은 코파운더와 팀원에 대한 접근성을 학교와 직장은 거의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면, 지금이 창업하기에 최고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로, 주로 고등학교, 대학교 또는 대학원 친구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아직은 본인들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전이고, 뭔가 심각하게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아,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스트롱의 코파운더인 존과 나는 초등학교 친구이다.

뚝심

나는 과거에 워렌 버핏에 대해서 꽤 많은 글을 썼다. 내가 아는 많은 투자자들이 오마하의 현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 특히, 유동성의 끝판왕이었던 팬데믹 기간 동안 – 버핏의 투자 철학은 공격의 대상이 됐었다. 기술주와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번 젊은 투자자와 Web3/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버핏의 보수적인 투자 원칙을 한없이 비웃었고, 오마하의 늙은이가 이제 한물갔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면서 과열된 불장에서 본인들의 회사가 버크셔해서웨이보다 수익률이 높았다고 경솔하게 자랑했다.

버핏의 투자철학은 장기전이다. 그것도 5년, 10년의 장기전이 아니라, 좋은 기업에 한 번 투자하면 그 지분을 평생 보유한다는 장기전 중의 장기전이다. 이런 관점에서 투자하면, 불경기와 호경기 동안 돈을 많이 벌거나, 잃거나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팔지 않기 때문에, 종이 상으로는 가치가 내려가더라도 실제도 손실을 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장기전을 좋아하고, 이런 철학을 갖고 투자하는 분들을 존경하지만, 이 믿음이 살짝 흔들릴 때도 있다. 대표적인 시기가 지난 2년이었던 것 같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시장이 하도 기이하게 움직였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손가락만 있으면 너도나도 키보드를 통해서 투자에 대한 개똥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 중 잡음을 모두 다 걸러서 나만의 원칙을 지키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투자 경험도 없는 초짜들이 단기간 안에 엄청난 돈을 벌고, 버핏의 장기철학과 완전히 반대의 방법으로 어마무시한 수익률을 자랑하면서, 그를 비난했을 때, 이제 버핏도 한물갔다는 의문을 했던 적이 실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고, 경기 사이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진정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있다. 요새 시장으로 보면 “썰물이 되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버핏의 말이 너무나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는 게 신기할 뿐이다. 단기적으로 코인이나 tech 주식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돈을 벌었던 투자자들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모두 다 크게 손실을 봤거나, 아예 이 판에서 사라졌는데, 버크셔해서웨이는 오히려 선방하고 있다. 2021년도 순수익이 100조 원 이상이고, 현재 160조 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버핏은 저평가된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남들이 욕심을 부릴 때 시장을 두려워했고, 이제 남들이 시장을 두려워할 때 욕심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다.

솔직히 스트롱은 아직까지 한 번도 불경기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우리가 2012년도 하반기부터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후 10년 동안 아직 글로벌 불경기가 온 적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특별하게 멍청한 투자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를 비롯한 다른 VC들의 성적은 대부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정말로 10년마다 한 번씩 온다는 불경기와 스태그플레이션이 함께 온다면, 우리가 투자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다운사이클을 경험하게 되는 건데, 이 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투자하는지, 또는 어떻게 버티는지 잘 모르겠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경험을 한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준비해야 하는데, 다운사이클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 내가 확실한 게 있다면, 결국엔 불경기도 언젠가는 끝나고, 다시 바닥을 치고 리바운드될 것이기 때문에, 버핏과 같은 장기전의 마인드는 필수다. 장기전을 하기 위해선, 기본 체력이 필요하고, 결국엔 나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꾸준히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 이런 걸 우린 종합적으로 ‘뚝심’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좀 미련할 정도로 본인의 철학을 굳세게 지키는 건데,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이건 미련한 게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리면 2키로미터도 못 가서 토하고 쓰러진다. 물론, 2키로 동안 전속력으로 뛸 땐, 엄청 빠르다고 온갖 칭송을 다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투기는 가능해도, 투자는 절대로 못 한다. 어느 때보다 뚝심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