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반짝 유행과 대세

얼마 전에 ‘요즘 애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가장 학력은 높고, 가장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인데, MZ 세대에 대한 책이고, 시중에 나온 수많은 비슷한 책과 같이 MZ 세대는 이렇다 저렇다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단, 작가는 왜 MZ 세대가 가장 공부는 많이 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지를 어느 정도까지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내용에 나는 대부분 공감할 수 없었는데, 어쨌든 요즘 애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본인들만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MZ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이 평균을 싫어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중시하고, 뭔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는 우리 세대한테 잘 어필되고 판매되던 상품과 브랜드가 더 이상 빛을 못 보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잘 마케팅하고 판매하기 위해서 기존 브랜드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잘 작동하던 전략을 버리고 있고, 신생 브랜드는 지금까지 없던 방식과 전략으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며칠 전에 운동하면서 잠깐 TV를 봤는데, 성수동 팝업 매장에서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와 콜라보를 계속하는 의류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주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는데, “브랜드 x 다른 브랜드” 식으로 신발부터 옷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소량으로 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였고, 젊은 친구들이 매장 밖에 긴 줄을 형성하면서 이 가게 안에 들어가서 즐겁고 비싼 쇼핑을 하는 뉴스 내용이었다.

기자가 매장 직원도 인터뷰하고, 젊은 커플 고객도 인터뷰했는데, 양쪽 다 하는 말이 비슷했다. MZ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목받고,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영업/마케팅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이 새로운 방식조차 지속적으로 변형하면서 이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다양한 사업,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창업가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어서 우리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들이 MZ 세대인데, 이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좋아하고,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는 모든 걸 다르게 보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이들의 취향에 모든 전략을 맞출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수십 년 동안 잘하던 사업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말을 조금 더 깊게 해석해 보면, 너무 유행을 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유행을 타는 고객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게 힘들다. 트렌드를 세팅하고 리딩하는 세대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업의 확장에는 도움이 안 되는 대규모 뜨내기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오프닝에서 썼듯이, MZ 세대는 전반적으로 돈이 별로 없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파급력이 강할진 몰라도, 막상 구매력이 그렇게 어마어마하진 않다.

어떤 분들은 2년 반짝 사업을 성장시키고 적당한 가격에 팔고 빠질 목적으로 창업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고 있고, 지속 가능한 사업은 최소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할 때, 반짝 유행하다가 없어질 것들과 지속적으로 유행해서 대세가 될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유행과 대세를 어떻게 구분할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장기적인 방향을 정하고, 이쪽으로 꾸준히 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트렌드와 새로운 유행이 생길 것인데, 그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대세가 될 수 있는 트렌드를 잘 선택하길 바란다.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수업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세미나와 강연 요청을 받는다. 바쁘기도 하고, 내가 전문적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대부분 다 사양하고 거절하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기꺼이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나 세미나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미래의 창업가들이고, 이들이 스트롱의 미래 고객이기 때문에, 잠재 고객을 만나서 이들에게 스트롱벤처스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업무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는데, 바로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큰 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내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내가 뭘 배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학생들 대부분 아직 경험이 없는데,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편견이 없고, 편견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상상과 질문들을 많이 한다. 바로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생각도 많이 하고 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냥 왠지 나도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얻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기홍님은 지금 생각해 봤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 일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수업은 어떤 거였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Public Speaking(말하기)’과 ‘Writing(쓰기)’ 수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땐 이런 수업이 존재하지 않아서, 나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요샌 한국에서도 이런 수업이 제공되는 거로 알고 있다.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들에게 이 두 수업을 되도록 졸업하기 전에, 시간 날 때마다 수강하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위한 글쓰기나 취미를 위한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고, 나름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 생각을 남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서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매일 쓰면 글쓰기 실력은 누구나 향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잘 쓰고 싶으면 쓰는 동시에 많이 읽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매년 50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글쓰기는 이렇게 평생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쓰기 수업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 번 들었다. 이 수업의 핵심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그리고 자주 써야 하고, 이만큼 많이, 그리고 자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기는 내가 항상 자신이 없었던 분야였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니까 나보다 실력도 없고 멍청한 학생들이 남들 앞에서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면서 내 밥그릇과 기회를 빼앗아 가는 걸 직접 경험하면서, 나도 말을 좀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학원에서 ‘Public Speaking’이라는 수업을 2학기나 들었다. 이 수업은 3학점짜리 수업이니까 총 6학점을 들은 것이다. 실은, 나와 1대 1로 연습/훈련을 했던 코치는 학부생이었는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탠포드 교수보다 나에겐 훨씬 더 뛰어나고 인상 깊었던 선생님이었다. 수업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각자 3~5분 동안 발표를 하고, 이걸 동영상으로 촬영한 후 코치와 함께 자세하게 분석해서 발표 실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첫 학기에 B-를 받았지만 – 참고로 B 이하는 매우 형편없는 점수이다 – 그 다음 학기는 B+를 받았다. 성적은 조금 향상했지만 내 발표 실력과 청중 앞에 섰을 때의 자신감은 10배 정도 상승했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상당히 자주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오래 한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을 남들에게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걸 보면, 초등학생 수준으로도 미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분들에겐 더욱더 강력하게 ‘말하기’와 ‘쓰기’ 수업을 추천한다. 직장인들이라면, 이분들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컴백

얼마 전에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이 끝났다. 2주 동안 밤늦게까지 거의 매일 테니스를 봐서 행복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했거나 늙어서 초반에 탈락했다. 이 중 우승 가능성이 아직도 높았던 조코비치 선수가 우승하길 바랬는데, 준준결승전에 부상으로 인해서 기권패 했다.

나는 이번에 조코비치 선수의 경기를 다 봤는데, 모든 경기마다 안타까움과 경외감의 두 가지 감정이 교체했다. 거의 완벽함을 자랑하던 선수가 나이 들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는 걸 볼 때마다 역시 아무리 체력이 좋고 몸 관리를 잘해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반대로, 이제 거의 40세가 된 이 선수가 20대 초반 선수들과 체력적으로 대등한 경기를 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경외심이 생겼다.

특히, 이번 프랑스 오픈 시합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노장의 컴백 능력이었다. 남자 테니스는 5세트 중 3세트를 먼저 이겨야 하는데, 5세트를 모두 플레이하면, 그리고 정말 치열한 경기를 펼치면 5시간 이상 걸린다. 사업도 그렇지만, 운동 경기도 분위기와 흐름이라는 게 있어서, 이 분위기와 흐름이 내 쪽으로 오지 않으면 상승모드를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다. 테니스의 경우 세트 스코어가 2대 1이면, 네 번째 세트에서 경기는 3대 1로 거의 종료된다. 즉, 2세트를 뒤지고 있으면, 그 이후에 다시 흐름을 뺏어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이런 통계에 포함되길 거부하는 선수다. 나는 그동안 이 선수가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완벽하게 컴백해서 결국엔 다섯 번째 세트까지 가서 3대 2로 이기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실은, 너무 많이 봐서 이 선수에겐 이게 당연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한 컴백을 조코비치는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이런 불가능한 컴백을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도 여러 번 보여줬다. 3 라운드와 4라운드 모두 세트스코어 2대 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결국엔 다섯 번째 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가서, 4시간 반이 넘는 시합을 하면서 두 번이나 3대 2로 역전승했다.

아무리 뛰어나고 위대한 선수들도 이런 컴백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떻게 조코비치는 반복적으로 이렇게 컴백 할 수 있을까? 결국엔 정신력, 체력, 자기관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들은 – 특히, 팀이 아닌 개인에게 퍼포먼스의 100%를 의지해야 하는 테니스와 같은 – 몸이 돈이기 때문에 정말 체력을 종교와도 같이 관리하는데 조코비치는 이런 운동선수 중에서도 심할 정도로 관리를 잘 한다. 몇 년 전에 메이저 대회 우승한 후에 초콜릿을 딱 한 입 먹은 후에 우승을 자축한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런 관리 스타일은 이 선수의 일상생활이다. 이런 자기 관리에서 오는 체력과 정신력은 다른 선수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창업가들은 하루하루가 이렇게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컴백해야 하는 전쟁이다. 다른 경쟁 스타트업과의 경기에서 항상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대기업과의 경기에서 이미 진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자신의 제품과의 경기에서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고객과의 경기에서도 항상 지기 때문에 컴백해야 한다. 회사에 사람이 많아지면, 직원들에게도 치이면서 지기 때문에 항상 컴백해야 한다. 도대체 이기는 경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컴백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 컴백하기 위해서는 조코비치같이 창업가들도 몸과 마음을 잘 단련하고, 절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운동도 매일 해야 하고, 음식도 절제해야 하고, 술도 절제해야 하고,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하고, 뒤지는 경기에서도 항상 컴백할 수 있게 항상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업을 만들 수가 없다.

*참고로, 조코비치가 이번에 준준결승에서 기권한 이유는 늙어서 체력이 약해서라기 보단, 경기가 주최 측의 잘못된 결정으로 너무 늦게 밤 11시에 시작해서 새벽 3시가 넘어서 끝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적된 피로로 그다음 다시 경기하는 말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권했다.

한 방은 없다

스타트업은 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실패해도 그냥 다음 새로운 시도로 넘어가면 된다. 대기업은 관료주의적이고 느리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기 위해서 내부 승인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새로운 건 이미 옛날 것이 되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가지지 못한 자본력과 유통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협업을 종종 본다. 물론, 서로 DNA가 다른 조직이라서 대부분의 협업은 실패하지만, 잘하는 사례도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대기업과의 협업에 너무나 큰 자원을 할당하고, 너무나 큰 기대와 의미를 부여한다. 큰 오프라인 리테일 유통망을 가진 대기업을 통해서 제품이 마케팅되고 유통되기 시작하면 매출이 10배 이상 증가할 거라는 시장 조사와 분석 자료를 너무나 굳게 믿으면, 이 협업을 되게 하기 위해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년 동안 자체적으로 매출을 이렇게 크게 만들지 못한 회사인데, 남과의 협업을 통해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너무 굳게 믿으면, 우리 사업의 핵심이 우리의 제품과 고객에서 다른 회사와의 협업으로 바뀐다.

모든 개발력은 우리에게 폭발적인 성장을 말로 보장하는 파트너사의 요구를 맞추는 데 다 투입되고, 우리 마케팅 담당자들은 우리 자체 마케팅이 아니라, 다른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그 회사의 기준에 맞춰서 홍보하기 위해서 바빠진다. 그리고 회사의 핵심인 대표이사 또한 이 협업이 한 방에 우리 회사의 운명을 180도 바꿔 놓고, 그 이후에 우리 회사는 제이 커브 성장을 그릴 수 있다고 굳게 믿어서, 실은 더 중요한 모든 일들은 이 협업 이후로 미룬다.

그런데 대기업과의 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나는 봤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 후에 잔뜩 기대하면서 시작한 파트너십은 대부분 잘 안된다. 실은, 대부분 재앙의 수준으로 마무리되고, 이 협업 때문에 그동안 날렸던 시간, 돈,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 대가는 작은 스타트업을 그대로 파산시킬 수 있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한국에선 스타트업의 성공이 “대박”과 “한 방”과 같은 단어로 포장되기 시작했고, 내가 만나는 일부 창업가들은 스타트업에 한 방이 없으면 절대로 제이 커브를 만들 수 없고, 제이 커브를 못 만들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실은, 방금 쓴 문장에 내가 싫어하는 스타트업 단어가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한 방”, “유니콘”, 그리고 “제이 커브”다. 아직도 이런 한 방 신화를 믿고 있는 창업가들은 이전 글의 AuditBoard와 같은 회사들의 성장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한 방으로 크게 성공하는 대박 성공은 절대로 없다. 특히, 요새 같이 경쟁이 심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한 방에 성공하는 사업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게 아직도 있다면 그건 사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들은 특정 기업과의 협업, 특정 기능, 특정 업데이트, 특정 인력이 그동안 회사에 없던 성공을 한 방에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되고, 여기에 올 인 하면 안 된다. 모든 일들엔 시간이 걸린다(TTT=Things Take Time).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게 되는 복리의 힘, 그리고 복리의 힘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나만의 견고한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이다.

절대로 대박은 없다. 이 대박에 올 인하지 마라.

작은 시장, 작은 사람들, 큰 결과

5월 말에 테크크런치에 한 M&A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Hg라는 투자사가 AuditBoard라는 스타트업을 한화로 4조 원($3B)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다는 내용인데, 업계 분들도 이 기사를 보고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인수자인 Hg도 낯선 이름이었고, 이 투자사가 인수한 AuditBoard라는 회사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 금액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딜이었다. 관련 기사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기사를 읽어보면 대부분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회사의 가장 큰 인수 소식”과 비슷한 부류의 내용이다.

AuditBoard는 LA 주변 오렌지카운티의 두 한인 중학교 친구인 Daniel Kim과 Jay Lee가 2014년도에 창업한 회계/감사/리스크 관리 관련 B2B SaaS 스타트업이다. 다니엘이 중견 기업의 CFO 였는데, 본인이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회계 관리 업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창업했고, 시작은 미국 회계/감사 관련 법인 Sarbanes-Oxley 법 준수를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그래서 창업할 때 회사 이름도 SOXHub이었는데, 회사는 점점 더 그 시장과 제품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 회사가 그동안 계속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공동창업자가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그런 전형적인 유니콘 창업자들이 아니다. 둘 다 회사를 창업했을 때 나이도 있었고, 그 전에 스타트업 경험이 전혀 없었고, 소프트웨어로 뭔가를 해본 사람들도 아니고, 어쨌든 투자자들이 만났을 때 “이 친구들한테 당장 투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팀은 아니었다. 또한, AuditBoard의 본사는 Cerritos라는 오렌지카운티의 도시였는데, 내가 알기론, 이 도시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특히나 유니콘 회사를 만들기엔 약간 뜬금없는 지역이긴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풀고자 했던 포천 1,000 기업의 회계/감사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고, 알아도 일반적으로 이 시장은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틈새시장 정도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투자자라면 창업가들에게 수십번도 말했을 전형적인 “너무 작은, 스케일이 불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되는 틈새에서 이들은 창업했는데, 이런 회사는 투자받는 게 정말 힘들다.

세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AuditBoard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첫해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고, 투자도 거의 안/못 받았기 때문에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고, 정말로 이런 회사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혔다. 또한, 너무 틈새시장으로 알려진 분야라서, 경쟁사도 거의 없었고, 이렇다 보니 이 분야는 더욱더 안 알려졌고, 이 회사 또한 더욱더 안 알려졌다.

창업 후 거의 10년 만에 인수되는 AuditBoard의 수치는 굉장히 놀랍다. 일단 연반복매출(ARR)이 한화로 거의 3,000억 원이다. 시장이 가장 좋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ARR의 20배 정도였는데,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데도 거의 15배 기업가치로 인수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까지 받은 총투자금이 한화로 600억 원밖에 안 된다. 600억 원의 투자를 받아서 3,000억 원의 연 매출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고 – 참고로, 창업 2년 차부터 흑자 전환했다 – 4조 원에 인수됐는데, 투자 금액 대비 매출 창출 능력이나 엑싯 비율이 이렇게 좋은 스타트업은 드물다. 말 그대로 진짜 유니콘이다.

마지막으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이 회사의 인수가, 올해 북미 시장에서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엑싯 중 가장 큰 메가 엑싯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몰랐던 회사의 엑싯이 올해 북미 시장에서 가장 큰 엑싯이라니,,,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Daniel과 Jay를 2014년도에 처음 만났고, 2015년도에 투자했다. Mucker라는 LA의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후, 스트롱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투자자였다. 실은,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도 그땐 세리토스라는 창업불모지에서,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너무 먼 두 명의 한인교포 창업가들이, 내가 아예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시장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야에서, 돈 벌기가 그렇게 어려운 B2B SaaS 사업을 하는 이 회사를 만났을 때 전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끈질기게 찾아와서 설득했고, 반은 설득당했지만, 반은 그냥 “이거 투자할 테니까, 더 이상 나를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제발 이거 먹고 떨어지세요)”라는 생각으로 투자했다.

그 누구도 – 나도, 스트롱도, 이 회사의 시리즈 B를 리드한 Battery Ventures도, 그리고 심지어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들도 – AuditBoard가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결과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2014년도의 Daniel과 Jay의 모습과 2024년도의 $3B 엑싯이 계속 머릿속에서 겹치는데, 뭔가 계속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을까. 왜 우린 남들같이 투자를 못 받을까. 왜 우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왜 우린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니치한 사업을 하고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오늘도 하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AuditBoard 이야기를 꼭 공유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느끼는 점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더 많은 고민거리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희망해본다.

내가 하는 일을 굳게 믿고,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결과로 폭발할 수 있는 복리를 믿고, 투자에 의존하지 말고 자생하는 법을 배워라. 이런 마인드로 최소 10년 정도 한 우물만 파면, 어쩌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위대한 것들은 TTT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TTT = Things Tak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