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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의견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 이 글에서 말 한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 두 가지 중, 잡음을 잘 구분하고 남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에 집중하자는 내용은 내가 요새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정말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나 같이 남의 눈치 잘 안 보고, 남의 의견이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가끔은 내가 뭔가를 하거나 말할 때 “이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가는 곳마다 아주 두껍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의식적으로 남의 시선과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내 생각, 감, 의견에 100% 의존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남의 의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고, 정말로 경청해야 할 남의 의견과 조언만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솔직히 이런 의견은 소수의 몇 명만 제공할 수 있다. 이 소수의 몇 명은, 본인들이 나에게 주는 조언, 충고, 그리고 의견의 결과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고 본인들도 그 결과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 외의 다른 의견은 안 들으려고 노력하고, 꼭 들어야 한다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바로 흘리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뭘,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사냐고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살아야 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니까.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얼마 전에 본인이 직접 창업하지 않았거나, 현재 적을 두고 있지 않은 회사를 비정기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advisor’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요새 우리 주변에 ‘고문’ , ‘ advisor’라는 명함을 갖고 다니는 분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 이런 분들은 본인들의 조언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고, 여기에 크게 영향도 안 받는 분들이다. 왜 이런 분들에게 굳이 과한 비용을 지급하거나 돈보다 더 귀한 회사의 지분을 주면서 조언을 받는지 회사 대표들에게 물어봤다. 어차피 풀타임도 아니고, 파트타임 중에서도 슈퍼 파트타임 – 우리 회사를 포함해서 많은 회사의 어드바이저를 하고 있다 –  이고, 솔직히 우리가 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을 했더라도 그건 오래전 일이고, 같은 분야에 있는 회사라도 우리 회사랑 다른 회사랑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이전 경험을 재활용하는 건 힘들어 보인다. 내가 듣는 대답은, “이분들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요. 나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많고 네트워크가 좋아서,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분들의 조언이 값질 것 같아서요.”이다. 이런 대표들은 이게 정말 맞는 건지 잘 판단하길 바란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지 말지, 점심 식사는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부터, 100억 원 짜리 거래를 할지말지까지, 실은 우리 인생 자체가 연속적인 결정의 집합체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셀 수 없는 결정의 결과를 뒤돌아보면, 안타깝게도 옳은 결정보다 틀린 결정을 훨씬 더 많이 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어차피 틀린 결정을 훨씬 더 많이 할 텐데, 남의 의견을 참고해서 틀린 결정을 하기보단, 그냥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틀리는 게 훨씬 더 값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의 의견이나 조언을 절대로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판단해서 이 중 잡음을 구분하라는 의미인데, 잘 생각해 보면 남의 의견 중 대부분은 잡음이다. 중요한 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거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 결국엔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롯이 내 의견만이 중요하다.

더 좋은 브라우저를 찾아서

나는 1995년도에 Netscape라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메인스트림 인터넷에 입문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넷스케이프에 대해서 들어봤거나 읽어봤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진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공동창업자이자 파트너인 마크 앤드리슨이 대학생 때 만든 그 브라우저이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인터넷 통신만을 위한 전용 전화선이 있었는데 – 이걸 허락해 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천리안을 통해서 전화로 모뎀 접속을 하고, 넷스케이프를 통해서 방문했던 다양한 사이트들은 나에겐 정말 신세계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내가 넷스케이프로 가장 먼저 접속했던 사이트가 루브르 박물관이었고, 두 번째로 접속했던 사이트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였다. 한 페이지가 뜨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당시엔 정말 너무너무 신기했고, 앞으로 이 World Wide Web이 어떻게 발전할지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중요하고 촘촘한 거미줄(web)이 될 진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제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제품이 됐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나에겐 세상을 바꾼 가장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넷스케이프가 한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가져갔고, 구글이 크롬을 만들면서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현재 브라우저 시장은 구글의 크롬이 65%, 애플의 사파리가 18%,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Edge가 5%를 점유하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이 시장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대기업들이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 파이어폭스나 Brave 같은 브라우저도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투자사 미러도 현재 이 시장의 일부를 가져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빙글의 테크니컬 리드였고, 캐치패션의 CTO 였던 미러의 공동창업자 이상현 대표님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겠다고 우리랑 미팅했을 때,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아마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그런데 만약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러를 사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니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백만 가지였지만, 어쩌면 이 팀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우린 찾아서 투자했다.

미러는 사용자들의 정리를 도와주는 브라우저다. 셀프오거나이징(self-organizing)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용자의 웹 브라우징 활동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구조화해 준다. 작업용 브라우저를 보면 열기만 하고 절대로 닫지 않아서, 끝없이 늘어나는 탭 때문에 현대 사회의 지식 근로자들은 꽤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점을 미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보다 더 안전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준다.

미러가 과연 30년 동안 변화가 없던 브라우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잘 만들면 브라우저만큼 글로벌 임팩트가 큰 소프트웨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브라우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현재는 맥버전만 제공된다. 이 링크를 통해서 사용하면 첫 달은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다.

당신이 뭐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을 하는 대표면 당연히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어야 하고, 이 분야에 다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즉, 경쟁사는 누가 있고 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놀랄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생각과 전략, 그리고 우리 회사의 방향과 전략보다, 경쟁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고,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고객에 집중하기 보단 우리 경쟁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나랑 이야기 해 본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잘 알 텐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미팅을, 이 중요한 시간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솔직히 우리 사업과는 전혀거의 상관없는 다른 회사 이야기로 채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언젠가 갑자기 시장에 출현한, 그래서 더 주목받고, 펀딩도 더 잘 받은 어떤 경쟁사를 우리 투자사 대표가 너무나 의식해서, 지금 자기 사업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계속 경쟁사에만 집중하고, 경쟁사와의 따라잡기 게임만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이런 줏대 없는 창업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원하고 응원한 게 쪽팔려서, 이분에게 그냥 그 경쟁사로 가서 취직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분은 계속 남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회사 이야기를 삼십 분 넘게 했고, 이분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 낭비한 삼십 분이었고, 내 소중한 삼십 분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다.

경쟁에 대해선 나는 비교적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봤을 때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경쟁사가 하는 일에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 동향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사의 재무제표는 거의 줄줄 외우고, 이들이 지금까지 뭐 했고, 앞으로 뭘 할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하는 사업의 unit economics도 잘 모르고, 올해 지금까지의 매출과 비용도 정확하게 외우지 못해서, 그때그때 마다 노트북에서 숫자를 확인하면서 나랑 대화했다. 당연히 이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 세계 비즈니스의 역사를 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들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오히려 경쟁에만 너무 집중해서 본인들이 어떤 회사인지 망각하고, 본인들의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연예인으로 홍보하면 우린 더 유명한 연예인으로 광고하고,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면, 우리도 똑같은 기능을 만들고, 이런 경쟁사에만 집중하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 자체가 희석된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건 회사가 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미팅에서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우리 경쟁사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회사가 어떤 밸류에이션에 얼마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창업가와 다른 회사에 관심 있었다면, 나는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가끔 이사회나 주주간담회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경쟁사 이야기만 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주로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가 뭐 하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고, 다른 투자자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미 월간 리포트에 다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냐. 그 회사는 최근에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데, 우리도 다시 펀딩해야하는게 아니냐. 이런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주주명부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들이 그렇게 관심 두는 경쟁사에 투자하라고 해라.

창업가들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 다른 회사, 다른 경쟁사에 대해 신경 좀 끄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배고픔의 축복

최근 2년 동안 워낙 경기도 안 좋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진 않아서, 대부분의 VC들은 활발하게 투자하기보단, 계속 보수적으로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을 시작하는 날부터 마이너스가 발생하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필요한 투자를 못 받고, 이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서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와 좋은 사업에 투자했더라도, 어느 순간까진 투자금으로 버텨야 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시에 필요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못 받으면 폐업 말곤 별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 투자사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투자했더라도, 매크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초기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우리 투자사들도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나와서 펀딩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투자를 못 받거나, 받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이 아닌, 투자자들의 조건으로 투자를 받고 있다.

돈이 꼭 필요한데 투자유치에 실패한 회사의 미래는 암울하다. 펀딩을 포기한 순간부턴 이젠 생존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이자 옵션이 되는데, 생존을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다. 그냥 무조건 버티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유일한 가이드라인이다. 대부분 스타트업 비용의 절반 이상이 직원들 월급이라서 일단 무조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전에 내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을 쓴 적이 있는데, 실은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기보단, 그냥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2년 동안 매일매일 이런 위기 상황을 견디고 있는 우리 투자사들이 꽤 많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중간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또 놀라운 건 이 비용절감 모드로 나름 잘 버티고 있는 회사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버티면서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회사들은 이제 더 이상 대규모의 마이너스가 발생하지 않고, 어떤 회사들은 흑자까지 경험하고 있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만, 이 회사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2년 전에 투자를 받지 못했을 때, 그땐 너무 속상하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겐 축복이었다고 한다.

그때 투자를 못 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했고,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진짜 창업가의 마인드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모두 말한다. 그 과정 자체는 너무 힘들었고, 다시 반복하라고 하면 싫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투자를 받지 못해서 경험했던 배고픔이 회사에겐 오히려 더 단단하고 강하게 체질 개선을 할 수 있게 된 축복이라고 한다.

이 회사 중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엄청 뾰족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곳도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아서 헤매는 곳들도 많다. 이런 회사들이 유동성이 풍부할 때, 대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나는 요새 가끔 상상해 본다. 아마도 돈만 낭비하고, 사람만 쓸데없이 채용하고, 불필요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크게 망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샌, 오히려 투자를 못 받아서 아주 배고프게 사업을 하는 건, 어쩌면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이 배고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진 않았으면 한다.

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