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2(한인텔)

이 전 포스팅의 두 번째 이야기다. 테이크톡스를 운영하던 오현석씨와 김태호씨, 이 두 분 다 아주 맘에 들었다. 둘 다 좋은 엔지니어들이고, 성품도 너무 훌륭했다. 그리고 가진것도 없고, 경험도 없었지만 북미 시장에 도전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우리가 테이크톡스에 투자할까 검토를 했는데 이 와중에 비즈니스를 접고 둘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김태호 대표는 LA로 와서 레코미오를 창업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오현석 대표는 이전에 본인이 창업해서 이미 잘 운영되고 있던 한인텔로 돌아가서 여행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인텔에도 투자를 했다. 워낙 탄탄한 비즈니스라서 한인텔은 레코미오 만큼은 힘들진 않았지만 중간 중간에 당연히 여러번의 고비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 말에 옐로모바일의 여행부문 자회사 옐로트래블에 인수되었다. 현재 오현석 대표는 옐로트래블이 인수한 우리펜션, 한인텔, 플레이윙즈, 자리 4개사를 편입한 옐로트래블랩스의 대표이사로 한국 최고의 여행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외대 컴공과 선후배 사이인 오현석 대표의 한인텔과 김태호 대표의 레코미오에 스트롱이 모두 투자를 했고, 이 두 회사가 2014년 말에 나란히 일주일 간격으로 좋은 회사들에 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이며, 타이밍과 운의 공이 매우 컸다. 하지만, 역시 이 재미있는 시나리오의 핵심에는 우리가 항상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품도 중요하고, 계획도 중요하고, 회사도 중요하고,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게 ‘사람’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고 이들을 끝까지 믿었다.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도 많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위, 아래 왔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인 2년 이었지만 ‘사람한테 투자해라’는 정말로 절대불변의 진리라는걸 몸소 경험했다(이 두개의 exit 이후에 나는 한국외대 공대 출신 창업가들이라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만나려고 노력했다).

‘두 회사의 이야기’ part.1과 part.2는 실은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두 분은 어쩌면 수 년 후에 다시 창업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이서 뭘 하든 그냥 무조건 투자하겠다.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1(Recomio)

*이 포스팅은 얼마 전에 김태호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 ‘미국에서의 창업, 그 3년의 짧은 기록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올린다

2012년 비글로벌 – 당시에는 beLAUNCH 였다 – 최종 피칭 스타트업 20개 중 TakeTalks 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뉴욕에 본사를 두었지만, 창업자들은 한국인들이었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한국인들과 미국 원어민 선생들을 동영상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였다. 당시 발표는 이 회사의 엔지니어 김태호씨와 사장 오현석씨가 했다. 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선후배 사이였고, 오현석씨는 한인텔의 창업자/대표이기도 했는데, 잠시 한인텔을 떠나서 테이크톡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두 분 한테서 긍정적인 인상과 에너지를 받았고 계속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테익톡스는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나는데 실패했고 오현석 대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인텔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김태호씨가 free agent가 되었는데, 그의 개발 능력을 대략 알고 있었던 John과 나는 태호씨를 LA로 초청했다. 한 번 와서 LA 분위기도 보고, 가족들과 살기에 좋은 곳인지 확인해 보라는 차원에서, 당시 우리도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를 보내줬다(실은 American Airlines로 부터 협찬받은 마일리지를 활용했다).

태호씨가 봤을때도 따뜻한 천사의 도시 LA가 나쁘지 않았고, LA에서 다시 창업을 하라고 우리도 계속 설득을 했다. Strong이 많이는 투자하지 못 하지만 기본 시드머니를 제공하고 사무실도 제공할테니 일단 무조건 LA로 와서 뭐를 개발할지는 그때 정하자고 계속 설득을 했고, 몇 주 후에 태호씨와 와이프 지연씨, 그리고 두 애기들 이렇게 4 가족의 LA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게 2012년도 말이었을 것이다. 태호씨에게는 모든게 낯설었지만, 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는 회사 설립, 취업 비자, 아파트 계약, 중고차 구입 등 ‘개발’과 관련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당시 태호씨가 하고 싶었던 분야는 추천, 개인화, 빅데이터 였고 우리는 회사이름을 Recom.io라고 지었다. 김태호 대표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영어나 기획 그리고 비즈니스 스킬을 보강하기 위해서 내 어릴적 친구이자 뮤직쉐이크 동료였던 서철씨가 co-founder로 조인을 했다.

솔직히 그 이후 2년 간 레코미오의 스타트업 생활을 요약하자면 ‘투쟁’ 과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라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호 대표의 블로그를 참고하면 되지만 결론적으로 2년 동안 4개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데에는 모두 실패했다. 1년 조금 지나서 회사는 돈이 떨어졌지만, 추가 투자를 받기에는 수치가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 이후 김태호와 서철은 거의 1년을 무보수로 일했다. 서철씨는 미혼이라서 김태호씨보다는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았지만, 주말마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서철씨는 피아노 전공자이다). 하지만, 처자식이 있는 김태호씨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이 내용이 당시의 상황을 요약해 준다.

“LA 생활을 돌아보면 일을 떠나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딜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살던 집에서 짐을 빼 스토리지로 모두 옮겼는데 그 때 크지도 않은 집 구석구석에서 많은 수의 진통제 통들을 발견했다. 집사람이 집안에 소홀한 나 대신 타지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왔던 것이다. 나에게 티도 내지 않고.
하나는 좀 부끄럽긴 한데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2년 간 옷도 못사고 살았는데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옷 앞이 다 터져 나갔고 집사람은 뒤가 다 터져 나갔다. 당시 서로 이제 모든 팬티가 결국 찢어졌구나 하고 웃어넘겼지만 그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집사람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는건지 내 자신이 싸이코패스 처럼 느껴졌었다. 진통제통과 찢어진 팬티. 그 강렬한 이미지.”

뭐, 돈 없는 스타트업들의 창업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는 면에서 보면 레코미오 또한 다른 고생하는 스타트업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한국에서 교육받고 코딩 기술을 익힌 개발자 출신의 창업가가 미국에서 창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현실의 벽과 물가가 싸지 않은 캘리포니아에서 없는 살림으로 4 가족을 동시에 꾸려 나가야 하는 생활은 한국에서 창업해서 고생하는 회사들과는 확실하게 다르고,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나 또한 11개월 이상을 미국에서 무급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 2년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웃으면서 자세히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코미오는 결국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몰렸다. 옆에서 이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우리가 먼저 이들에게 회사 문 닫고 일단 다른 곳에 취직하라고 제안했다. 서철, 김태호 실력 정도면 모두 실리콘밸리나 LA의 왠만한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뇨, 조금만 더 해보죠. 우리야 그냥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되지만 그래도 투자자분들(스트롱이 유일한 투자자)에게 최소한 투자금은 돌려드려야죠.” –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와이프와 두 애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스트롱벤처스 사무실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고 있던 김태호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 때 나는 정말 이런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 너무 보람찼다. 그리고 반드시 이 상황을 역전 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연예인처럼 자기 PR을 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다면 하늘이 한 번은 도와 준다는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정확하게 3개월 후, 몇 몇 기업들이 레코미오 인수에 관심을 보였고 2014년 말에 레코미오는 아주 좋은 회사에 인수되었다. 스트롱벤처스한테는 첫번째 exit 이라는 훈장을 선물해준 너무나 고마운 인수였다. 이렇게 김태호, 서철은 LA의 생활을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갔다. 둘 다 너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새 보금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나랑은 아직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 큰 일을 할 친구들이다. 우리가 exit을 시킨것도 아니지만, 어쨋든 이런 좋은 팀을 초기에 알아보고, 투자하고, 같이 고생하면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즐거운 연말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모두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굴곡없는 성공 스토리 보다는 누군가 밑바닥에서 부터 성장하는 그런 growth story들을 더 좋아하고 공감을 한다. 이런 각도에서 봤을때 레코미오 이야기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스토리 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어떻게 아냐고? 2년 동안의 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바로 옆에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워낙 빠르게 변하는 동네라서)기억을 조금씩 더듬으면서 이 글을 쓰다가 혼자서 웃고 울곤 했다. 힘들어서 지금 포기하고 싶지만, 조금 더 버티고 있는 창업가들한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었으면…

부자의 대열에 끼기

이 전 포스팅에서 한국과 미국의 부자들, 그리고 부의 창출과 대물림에 관해서 이야기 했는데, 꽤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다. 많은 분이 재벌들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와 미래에 대해서 걱정했고,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스스로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를 표시했다.

그리고 많은 분이 스스로 질문을 했을 것이다 – 나 또한 그랬으니까. “어떻게 하면 나도 이 부자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 10대 부자 리스트에 끼고 싶으면 기본적으로 ‘조’ 단위의 재산을 보유해야 한다. “1조 원 밸류에이션” , “billion dollar company” , “유니콘” 등의 단어들을 우리는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듣기 때문에 때론 ‘1조 원 돈이 얼마인지 실감이 안 날 때가 많다. 나도 전혀 감이 안 온다. 1조 원이라는 돈을 만져 본 적이 없으므로. 대한민국 10대 부자 대열에 끼고 싶으면 기본적으로 1조 원이 있어야 하는데, 1조 원은 얼마나 어마무시한 금액일까? 1조 원으로는 다음 물건들을 살 수 있다(작은 -> 큰 순서):

1/ 맥도날드 빅맥 2억 개(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빅맥을 4개씩 먹을 수 있다)
2/ 아이폰 6 125만 개
3/ 포르쉐 911 2016년 모델 8,333개
4/ 강남의 50평짜리 아파트(평균가) 667개
what 1B can buy
1조 원의 위력은 엄청나다. 1조 원을 가진 부자는(=billionaire) 그냥 우리 주변의 알부자, 돈 많은 사람, 상가 몇 개 가지고 있는 친구 아버지랑은 차원이 다른 부자다. 즉, 갑부이다. 어떻게 1조 원을 벌어서 부자의 대열에 낄 수 있을까?
1억 연봉은 절대로 적은 게 아니다. 요샌 평균 연봉이 많이 올랐지만, 1억 원은 아직도 고액연봉이다. 그런데 1억 연봉을 받는다면, 그리고 한 푼도 안 쓰고 몽땅 다 저축을 해도 1만년을 일해야지 1조 원을 모을 수 있다.
100억 연봉을 받는다면, 그리고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해도 100년을 일해야지 1조 원을 모을 수 있다.
즉,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쟁이로는 1조 원을 벌 수 없고, 10대 부자 대열에 절대로 낄 수 없다. 더러운 꼴 참고, 가족들한테 소홀히 하고, 죽도록 일하고, 술 엄청 먹고, 그리고 운이 억수로 좋아서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의 사장이 되면 150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출처: 더팩트). 경영을 잘해서 삼성전자 사장을 10년 동안 한다고 가정해보자. 150억 연봉을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을 해도 1,500억 원이다. 1조 원의 7분의 1 이다.

1조 원을 벌고 싶다면, 그래서 부자의 대열에 끼고 싶다면,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현대나 삼성을 만들지 않았다면?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다. 창업을 통해서 기존에는 없던 가치를 만들고, 이로 인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해야지만 부자의 대열에 들어갈 수가 있다.

물론, 모든 걸 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단지 돈만을 보고 창업하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하지만, 나는 “돈을 억수로 벌기 위해서 창업했습니다” 라고 하는 창업가들도 좋다. 이들한테는 ‘돈’이라는 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를 이롭게 하려고 부를 창출하려면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의 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보통수저/흙수저/스테인리스 수저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물론, 모두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창업가라면 누구나 다 도전해 볼 수 있다. 누구나 다 1조 원을 꿈꾸고, 도전할 수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멋지지 아니한가.

부의 창출 vs. 부의 대물림

출처: Forbes Magazine

출처: Forbes Magazine

이 도표는 해마다 Forbes 잡지에서 발표하는 ‘세계의 부자들’ 작년 리스트를 참고로 만들어봤다. 왼쪽은 한국의 10대 부자들, 그리고 오른쪽은 미국의 10대 부자들이다. 편의를 위해서 존칭은 생략했고, 재산은 작년 11월 초 환율 기반이다.

뭐, 한 번 정도는 모두가 다 들어본 이름들과 회사들일 텐데 한국과 미국의 부자들 사이에는 매우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재산의 절대적인 규모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최대 갑부 이건희 씨의 15조 원과 미국의 최대 갑부 빌 게이츠의 86조 원은 거의 6배가 차이 난다(이건희 씨의 재산은 이보다 더 많을 거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차이는 표에서 회색으로 칠한 부분들이다. 미국은 부를 창출한 부자들이(7명)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은 부를 대물림받은 부자들이(7명)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과 미국의 50대 부자리스트를 보면 이 차이가 더 크다 – 미국의 50대 부자 중 자수성가해서 부를 창출한 사람들의 수는 34명이고, 한국은 11명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로부터 부를 대물림받은, 재벌가 사람들이다. 한국 10대 부자 중 부를 맨손으로 창출한 분들은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씨, 넥슨의 김정주 씨, 그리고 부영그룹의 이중근 씨 이렇게 3명이다. 반면 미국의 10대 부자들은 대부분 소프트웨어와 금융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창업가들이다. 자, 그렇다고 나는 부를 대물림 받는 게 잘 못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집안에서 운 좋게 태어나서 조상들의 부를 승계 받는 건데, 이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 부자들의 대부분이 부를 대물림받았기 때문에, 이게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 구조, 경제, 문화에 꽤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참고로,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수치를 기반으로 한 자세한 분석은 아니다.):

1/ 단일화된 industry – 주로 재벌기업들이 부를 대물림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는 이 기업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산업들 위주로 단일화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사회인이 이런 회사들에 취업을 하므로, 전반적인 산업과 비즈니스의 다양성이나 색깔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미국의 경우, 굉장히 다양한 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비교적 골고루 성장과 발전을 하고 있다.

2/ 서로 도와주는 생태계의 부재 – 창업가들은 대기업의 일원이 되길 거부하고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부와 가치를 생성하면서 도전, 땀, 그리고 노력이 국가와 경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창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고 하는 후배 창업가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후배들이 성공하면, 이들이 한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는 걸 본인들이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10대 부자 중 자수성가한 권혁빈 씨와 김정주 씨도 내가 알기로는 다양한 방면으로 후배 창업가들을 밀어주고 있다(부영그룹의 이중근 씨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를 승계받은 나머지 7명은 굳이 후배들을 도와줄 필요도, 창업을 장려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부는 또다시 후손들한테 대물림 될 것이니까. 이러다 보니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10대 부자들 사이에는 서로를 도와주고 끌어주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3/ 창조경제의 한계 – 이제 막 경제활동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산업 구조를 보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부자의 대열에 낄 수 없는 현실은 상당히 암울하다. 부의 창출과 대물림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지만 진정한 창조경제가 실현될 수 있을 거 같다.

4/ 성장의 한계 – 부가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오고,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까지 순환되지 않으면 – 아니, 순환 경로 자체가 막혀 있다면 – 위에서만 성장이 일어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다. 대대로 돈이 많은 기업만 더 커지고 더 부자가 되다면, 새로운 기업이 밑에서부터 위로 성장할 수 있는 문이 좁아질 수밖에 없고, 이러면 새로운 산업과 가치가 만들어 지는 게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 세대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고, 그 결과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이제 3만 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 세대가 배턴터치를 하고 더 잘 해야 하는데,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기려면 앞으로 더욱더 많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탄생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부를 창출하고, 위에서 말한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한국의 50대 부자 중 30명 이상이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창업가들도 이 리스트에 포함되면 좋겠다.

소개 이메일

매우 짧은 포스팅인데, 한국에서 누구를 이메일로 소개해주면 자주 겪는 일이라서 몇 자 적어본다.
내가 하는 일 중 1/3 이상이 아마도 누구를 소개하고 연결하는 일이다. 워낙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보니 “누구 아세요?” , “소개 좀 해주세요” 라는 부탁을 많이 받고 나랑 친하고 내가 믿는 사람들이면 기꺼이 소개해 준다. 특히 투자사 대표들이 다른 투자자 소개를 원한다거나 아니면 협업을 위해서 다른 회사 사람들 소개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투자자와 회사들도 있지만 미국 투자자와 회사들도 많다.

주로 이메일로 소개하는데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매우 짧게 소개 이메일을 쓸 것이다. 소개 이메일은 주로 다섯 줄 이하이다. A와(소개해달라고 하는 사람) B를(소개대상) 둘 다 포함하면서, “A님, B님, 서로 소개합니다. A님은 누구고 B님은 누구인데 서로 알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거예요. A님 – 직접 약속 잡고 만나보세요.”와 비슷한 이메일을 쓰고 둘이 알아서 진행하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런 소개 이메일을 보내고 몇 일 후에 A와 확인해 보면 – A가 B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A한테 직접 약속 잡으라고 한 경우 –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내 소개이메일이 너무 캐주얼하고 짧아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거나, 상대방 쪽에서 연락이 먼저 오길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무슨 소개를 그렇게 성의없이 하냐고 기분 나빠 하는 분들도 있다.

다 바쁜 사람들이고, 군더더기 없이 그냥 두 사람을 소개하는 목적에 충실한 소개 이메일은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런 소개를 받으면 알아서 직접 follow up 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