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도전. 그 짜릿함과 감동.

사진 2015. 11. 20. 오후 3 23 48지난 주에 대전에 내려가서 몇 몇 스타트업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연구개발이 많이 활성화 된 지역이라서 그런지 제조, 특허, 그리고 하드웨어에 focus된 회사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가 잘 알거나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비즈니스 설명을 들어도 100% 이해할 수는 없었고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한 회사가 있었다. 아니,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님이 내 눈길을 끌었다고 하는게 맞다.

1953년 생. 올해 나이 63세. 나보다 20년을 더 많이 사신,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무대에 올라와서 잔뜩 긴장하시면서 발표를 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인 ‘고온 압력 트랜스미터’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비즈니스였다. 회사나 대표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화학공학 박사이시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0년 넘게 연구원 생활을 하신 후 늦게 창업하신 분이다. 본인이 평생 공부하고 종사하던 분야에서 30년 동안 느끼신 점들이 있어서 창업을 결심했고 용감하게 그 ‘첫번째 발걸음‘ 을 내디딘 이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내내 뭔가 짠 했다.

솔직히 이 분의 자료나, 발표나, 자세는 내가 주로 만나는 젊고 세련된 청산유수 창업가들과는 많이 달랐다(여기서 내가 사용한 단어는 “달랐다” 이지, “떨어졌다”나 “모자랐다”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마치 켄터키후라이드치킨을 65세의 나이에 창업한 샌더스씨를 만났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고, 이 분 한테 물어봤다.

“사장님, 연구원 생활 30년 하셨으면 이제 큰 걱정없이 노후를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걸 시작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왜 조금 더 일찍 시작하시지 않았나요?”

“제가 30년 이상 연구하면서 이 부품을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더 좋고 저렴한 제품을 만들 수 있구요, 이건 반드시 누군가 한국에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저는 제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이걸 더 일찍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천성이 엔지니어다 보니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구에 푹 빠져서 살다가 이렇게 뒤늦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전에 내가 로켓을 만들어서 발사하는 중학생 정재협 학생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재협 학생과 이 나이드신 대표님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분들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다짐도 한번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도전’ 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오늘처럼 이 단어가 짜릿하고 감동적일때가 있었을까? 63세의 창업과 도전. 솔직히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지만 개인적으로라도 도와드리고 싶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꼭 그 꿈이 현실이 되길 응원합니다.

The new kid on the block

backtothefuture나랑 동시대를 사셨던 분들은 198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5인조 보이밴드 New Kids on the Block을 기억할거다. 지금은 워낙 걸그룹과 보이밴드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이 친구들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대중문화의 새로운 코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NKOTB은 그룹이름처럼 동네골목에 새로 등장한 애들이었는데, 익숙치 않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거부감과 변하지 않으려는 관성 때문에 미국의 가요산업은 이들을 곱게만 보지는 않았다. 정통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가요계 입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음악성이 부족하다 등 온갖 이유를 대면서 이들을 맹비난 했다. 하지만, 시장은 NKOTB의 편이었고 이들의 인기는 전세계 pop culture를 바꿔놓고 이후 수 많은 보이밴드들을 탄생시킨 ‘제대로 된’ 원조 보이밴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서태지와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거 같다. 처음 방송에 출현했을때 이들은 음악성은 물론, 패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난을 받았지만, 시장은 이들을 선택했고 엄청난 문화혁명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NKOTB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후,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이들을 비난하고 연예계에서 쫓아내기 위해 노력한 부류가 있었는가 하면,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 노력한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건 후자이다.

요즘 나는 쿠팡을 좀 자세히 보고 있는데, 쿠팡이야말로 소매와 물류 시장의 new kid on the block 이다. 우리나라 택배업계의 역사는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이 동안 택배업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이제 2년이 채 되지 않은 쿠팡의 로켓배송이 택배업계를 ‘아작’ 내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내 주변에서 로켓배송을 사용해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다. 물류업체도 아닌 쿠팡이 거의 30년 동안 택배를 업으로 하면서 노하우와 경험을 갈고닦은 닦았다고 생각하는 기존 업체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건 이들에게는 치명타이다.

그런데 택배업체들이 쿠팡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면 뉴키즈온더블럭이 등장했을때 이들을 비난하던 기존 플레이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의 입장과 의견은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비난하고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쿠팡 죽이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시간만 끌 뿐이지 결국엔 30년 동안 몸집을 불렸던 국내 택배업체들 중 절반 이상이 곧 망할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으면 쿠팡이 잘하는걸 철저히 벤치마킹해서 택배기사들의 외주비율을 줄이거나, 이들을 더 잘 교육하거나, 대우를 더 잘 해 준다거나, 뭐 이런 방향으로 개선책을 모색할텐데 그냥 자기 밥그릇을 안 빼앗기려고 바둥거리는걸 보면 좀 그렇다.

변화가 없던 조용한 골목에 갑자기 새로운 패션에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멋쟁이가 나타나면 동네 모든 여자들이 이 친구한테 몰릴 것이다. 갑자기 여자친구를 빼앗긴 남자들 중 이 new kid를 욕하면서 까대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이 친구를 잘 벤치마킹해서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더 세련된 kid로 탈바꿈하는 남자들도 있을 것이다.

밥그릇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자의(=new kid) 등장으로 기존 밥그릇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세상이 오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행동으로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건 택배업계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완전공시 – 우리는 쿠팡의 소액주주이다

<이미지출처 = http://giphy.com/gifs/back-to-the-future-guitar-amp-ahqXZjdmep0Zy>

억울하면 성공하자

요새 사기냐 아니냐 말이 많이 되고 있는 유니콘 테라노스와 아직은 아니지만 유니콘 가능성이 농후한 유빔(uBeam) 사태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가주를 대표하는 VC blogger이자 우리 펀드의 공식 어드바이저 Mark Suster 형님의 이 글을 보고 떠오르는게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테라노스 이야기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 모르는 분이 없을거다. 정맥에서 피를 뽑지 않고 손가락 끝을 찔러 나온 피 한 방울로 대부분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실리콘밸리의 명문 VC들이 돈을 쏟아 부었고, 회사의 가치가 거의 10조원이 되면서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어린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들었다. 하지만, 테라노스 기술의 진위여부가 최근 도마위에 오르면서 이 회사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하며 홈즈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LA가 본사인 uBeam 이라는 회사도 비슷한 곤경에 빠져있다. 테라노스와 비슷하게 Meredith Perry라는 젊은 여성 창업가가 시작한 이 스타트업도 화려한 VC와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큰 투자를 유치했다. 유빔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한걸 하려고 한다. 전기를 초음파로 바꿔서 핸드폰같은 전자기기에 붙일 수 있는 충전기로 쏴 준 후에 다시 전기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집과 같은 공간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다녀도 충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선도 필요없고, 벽의 콘센트에 폰을 꽂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절대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뭐가 과연 맞을까? 테라노스랑 유빔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일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극일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이 회사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 하고, 아직 그 어떤 것도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하기는 이를거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테라노스와 유빔의 기술이 모두 상용화되어 두 회사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맹비난받는 두 회사가 부정과 회의의 목소리에 맏서 대항하고 이들을 닥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기좋게 성공하는 것이다.

마크 서스터가 그의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했다.

“The best ‘FUCK-YOU’ in life is SUCCESS(나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들을 엿 먹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공하는거다)”

세상을 바꾸고, 수십년 동안 바뀌지 않은 산업과 관행을 바꾸겠다는 젊은 창업가들을 대부분의 세인들은 비웃고, 욕하고, 손가락질한다. 이들에게 하나씩 대꾸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정당화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억울하면 열심히 해서 성공하자.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엿 먹이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서 보란듯이 성공해라.

Let’s fight on.

머리 숙이고 계속 전진

marching on한국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그동안 스타트업들은 15개 이상 만났다. 대부분 초초기 또는 초기 스타트업들인데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벤처기업들과 창업자들의 수준이 무섭게 좋아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기울기가 완만하게 선형적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곧 J 커브를 탈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물론이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어떤 분들은 해마다 창업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 한국에는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과의 만남도 더 재미있어지고 나도 과거보다 준비를 많이 하고 미팅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항상 아쉬운 부분이 있긴 있는데 그건 바로 ‘제품’에 대한 집중과 중요성 인식이다. 초기 스타트업이면 이제 대부분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단계인데 많은 창업팀의 관심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사업이 성장하면 큰 투자도 받고, 마케팅도 하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초기 스타트업들은 ‘어른’들의 일에 당장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신경을 쓰면 안 된다. 이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오로지 제품과 고객에 집중해야 하므로 그 외의 모든 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짙음으로 다른 분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투자자들은 초창기 회사들은 비전과 전략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마케팅의 중요성도 모르고, 마케팅을 잘 못 한다고 한다.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주로 보는 early stage 회사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한테 중요한 건 오로지 제품과 고객이다.

얼마 전에 프라이머 워크숍에서 배치 8기 스타트업들 대상으로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내가 가장 강조한 건 숫자와 수치였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 처음 창업하는 first time entrepreneur이기 때문에 과거 성공 경험이 없다. 대부분 직장 경험이 없거나 짧음으로 이 또한 일반적인 투자자의 눈에는 마이너스 요소이다. 제대로 된 제품이 없음으로 뭔가 보여줄 것도 변변치 않다. 그리고 돈이 없는 스타트업들이라서 투자자들의 눈에는 절박해 보이는데, 이는 투자 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런 회사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숫자’로 승부하는거다. 하지만, 이 숫자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창업한 지 6개월 된 스타트업이 짧은 기간 동안 수억 원의 매출을 만들거나 수백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길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비스 launch 한 지 한 달 만에 신규 사용자를 3명 확보했는데 이 숫자가 6개월 후에는 열 배인 30명이 되었다면 절대적인 수치는 작지만, 그 성장 폭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물어보고 관심을 두는 건 왜 6개월 동안 사용자 수가 10배나 성장을 했는지, 더 성장할 수는 없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성장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 6개월 동안 사용자 수를 10배 성장시키면서 어떤 걸 배웠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창업팀이 그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경험하고, 배웠다면 이러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충분한 실험을 했다면 이러한 경험을 어느 정도 공식으로 정량화하는 게 가능할 텐데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예: “1,000만 원의 예산을 가지고 6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30명으로 만들었으니 5,000만 원의 예산이 있으면 3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500명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왜? 어떻게? 이미 이 팀은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경험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자들이 찾는 건 이러한 공식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수치를 만들려면 초기 창업팀이 해야 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Keep your head down, and keep marching on(머리 처박고, 계속 전진해라)”이다. 즉, 다른 거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제품개발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사업하다 보면 주위에 잡음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머리 처박고 전진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artsonline.monash.edu.au/news-events/monash-university-commemorates-the-great-war-centenary/>

깊게 파고 들어가기

요새는 땅 밑 깊게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해서 땅을 파고 들어갔을때 기름을 찾지 못할 확률을 최소화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과 도구가 존재하지 않던 과거에는 땅 밑에 기름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었다. 계속 파고 들어 가야 했다 –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바닥까지 파고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그 위치에는 석유가 없다고 표시하고 그 옆을 다시 파고, 기름을 찾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석유를 찾지는 못 했지만 매장을 찾아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석유를 찾을 때까지 깊게 파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오늘은 피보팅에(pivoting)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많은 창업팀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에 부딪힌다. 그러면서 초기에 세운 가설이 틀렸고, 아이디어와 방향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걸 깨달으면서 피보팅을 시도한다. 나는 이 피보팅을 과도하게 많이 한 몇 스타트업을 만났는데 이 팀들이 과연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솔직히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VC 들은 피보팅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현실성이 없는 아이디어를 미련하게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고, 유연성이 DNA의 일부인 벤처기업들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한 지 2년 된 스타트업이 피보팅을 벌써 6번 정도 했다면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피보팅 하기 전의 아이디어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실행을 해봤냐이다. 위에서 말한 기름의 예에 빗대어 이야기해보면 정말로 바닥까지 파고 들어갔는데 기름이 없어서 그 옆을 파는 건지 아니면 중도포기하고 그냥 다른 곳을 파는 건지. 이건 정말 피보팅을 하는 창업가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끝까지 해보지 않고 다른 쪽으로 피봇을 하면,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면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보팅을 하는 건 좋다. 하지만, 끝까지 해보고 피보팅 하길 권장한다. 그래야지만 정말로 안 되는거와 안 해본거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해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으면 정확하게 어떤 방향으로 피보팅을 해야 하는지 몸이 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하고 실행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그냥 방향을 바꾸면 배우는 게 없고 미래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