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좀 있는 미국 투자자들이 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굶주려서 문 닫는 회사보단, 소화불량으로 문 닫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More companies die due to indigestion than starvation)”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게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 텐데, 스타트업의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돈이(=런웨이) 없어서 문을 닫는 회사도 많지만, 이보다 돈이 너무 많아서 멍청한 짓을 해서(cross out) 문을 닫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내가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약 3년 차 VC였다. 그리고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다. 돈이 없어서 스타트업이 문을 닫지, 돈이 많은데 어떻게 회사가 망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더 많은 영업과 마케팅을 하고, 더 많은 제품을 만들면 당연히 매출도 늘어나고 더 잘 되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14년 차 VC인 내가 이 말을 들으면 그냥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리고, 그동안 투자를 너무 많이 받고 돈이 너무 많아져서, 소화불량으로 어려워진 우리 투자사들이 했던 멍청한 짓들이 비디오같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망했고, 일부 회사들은 아직 살아 있지만,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느라 아직도 허덕거리는 곳들이 상당히 많다.

과식해서 소화불량으로 – 즉, 투자를 너무 많이 받아서 – 죽거나 힘들어하는 회사들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이 회사들은 주로 시장에 유동성이 과하게 높았던 시기에 약간 말도 안 되게 높은 밸류에이션에 필요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 시작부터 이러니, 마치 본인들이 정말로 사업을 잘해서 이런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받은 거로 착각하는데, 사업을 못 했으면 투자를 못 받았을 테니, 사업을 잘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높은 밸류를 받을 정도의 대단한 사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필요 이상의 투자금을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돈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본인들이 평생 일을 해도 200억 원이라는 돈을 만져보지도 못할 텐데, 갑자기 회사 통장에 200억 원이 입금되면 이 돈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걸 나는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이들은 돈이 없었으면 절대로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일들을 벌리기 시작한다. 즉, 위에서 말한 대로, 아주 멍청한 짓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돈이 있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히 사람이 필요 없는데, 네이버, 카카오, 토스, 쿠팡 같은 곳으로부터 몸값이 엄청나게 비싼 임원들을 회사로 영입한다. 이런 분들이 필요하면 당연히 비싸게 돈을 주고 채용해야겠지만, 그냥 돈이 너무 많으니까, 사람들을 막 데려온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방향의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주변의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시작한다. 왜 이러냐고 물어보면, 답변은 항상 논리적이고 똑똑하다. 결국엔 그 방향으로 확장해야지만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는데, 하나씩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좋은 회사들을 ‘싸게’ 인수한다는 답변을 나는 꽤 자주 들었다. 그리고 이걸 가능케 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하고,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 더 크고 더 좋은 사무실로 이사 가거나, 어쩔 땐 사옥을 매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소화불량으로 회사가 죽는 걸 나는 꽤 많이 봤다. 왜 이 회사의 투자자인 스트롱은 이걸 그대로 두고 봤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나도 할 말은 없다. 당시엔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믿었고, 돈 다 쓰면 또 투자받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고, 굉장히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제 나는 회사의 퍼포먼스 대비 너무 높은 밸류에 너무 많은 투자를 받는 우리 투자사가 있으면 이 회사가 과식하고 소화불량으로 죽지 않게 각별히 주의한다.

돈이 다 떨어졌고, 도저히 펀드레이징이 안 되는 회사가 서서히 죽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런 회사는 배가 너무 고프지만, 뭘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계속 굶는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런 회사들이 오히려 물만 먹으면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경우를 봤다. 반면에 갑자기 너무 돈이 많이 생겨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계속 뭔가 먹다가 과식해서 소화불량으로 급체해서 죽는 회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모든 창업가는 기억하길 바란다.

너무 허기져도 안 되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된다. 항상 적당히 먹어서 잘 소화하고 건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