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을 1대1로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문화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고, 교육 내용과 환경이 다르므로 살아가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무조건 미국은 좋고, 한국은 나쁘다고 하는 건 정말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나는 요새 무조건 한국은 좋고, 미국은 나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물론, 이 또한 유연하지 못한 사고와 발언이다.
그래도 비즈니스 문화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거절하는 문화다.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내가 못 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하기 싫다면, 그냥 거절하면 되는데, 이게 꽤 많은 한국 분에겐 참 어려운가 보다.
내가 못 하는 거면, 그냥 솔직히 내 능력이 안 되거나, 시간이 안 되거나, 뭐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 상대방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 대면서 그냥 못 한다고 하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한국의 기업에서 일을 해 본 많은 분들이 실은 이것도 힘들어한다.
더 어려운 거절은 내가 할 수 있지만, 그냥 하기 싫을 때이다. 나도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엄청 바쁘거나,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거나, 아니면 그냥 굳이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싫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은 경우는, 그분이 미워서라기보단 그냥 잘 모르는 분이 불쑥 연락이 와서 뭔가를 해달라고 할 때다. 나한테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은데 굳이 내가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고, 그냥 여기에 시간을 쓸 바에야 집에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나는 거절을 꽤 잘 한다고 생각한다. 실은 과거엔 나도 남들이 부탁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줬다. 한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걸 좀 두려워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보단 어느 순간 남이 나에게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 이후론 의식적으로 모든 걸 거절하기 시작했다. 못 하는 건 그냥 못 하므로 못 한다고 하고, 하기 싫은 건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한다. 이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꽤 많은 분들이 내가 인성이 나쁘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다. 심지어 전엔 어떤 분이 뭔가를 부탁했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냥 못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분은 일정이 안 맞는 줄 알고, 다른 여러 날짜를 제시했는데, 그냥 전부 다 못 한다고 하면서, 시간은 가능한데 내가 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이분은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데, 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경험상, 오히려 이렇게 대차게 거절하는 게 상대방이나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관계 유지 방법이다. 거절하는 사람으로서도 처음엔 불편하고, 거절당하는 사람으로서도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 솔직히 나도 거절을 정말 많이 당하는데, 거절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이유는 전혀 없다 – 결국엔 서로 깔끔하게 교통정리가 되고, 각자의 인생을 살 수 있고, 각자 그냥 move on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거절하는 걸 너무 힘들게 생각해서, 아예 상대방의 연락을 피하고 잠수 타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잠수타기는 최악의 한 수이다. 이런 분들은 본인은 ‘원래’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고 하는데, 이건 개소리다. 그냥 본인들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 하거나, 거절하면 상대방이 본인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게 걱정되는 이런 분들의 또 다른 특성은 남이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도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난다.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데, 내 성격상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나는 계속 연락한다. 끝까지 잠수 타는 분들도 있지만 – 참고로, 나는 이런 사람들은 인간 취급 안 한다 – 대부분 몇 달 뒤에 다시 연락된다. 그리고 왜 갑자기 잠수 탔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바빴어요” , “원래 내가 싫은 소리 못 하잖아요” 또는 “내가요?” 정도이다.
하기 싫으면 그냥 하기 싫다고 해라. 못 하겠으면 그냥 못 한다고 해라. 그리고 만약 거절하는 게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라면, 아주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해라. 특히 나 같은 사람한텐 그냥 대차게 거절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희망을 갖고 계속 귀찮게 하고, 계속 연락할 것이다. 어쨌든 절대로 잠수는 타지 마라.
잠수 타면서 오랫동안 마음이 불안한 것보단, 그냥 거절하고 그때 한순간만 살짝 미안함을 느끼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도 훨씬 좋다.
세상일이 그렇게 맺고 끊고 분명하게 하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이 먹으면서 느낍니다.
당연히 잠수는 굉장히 무례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희망 갖게 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냥 하기 싫어서 안하다는 건 그 거절 당한 상대 뿐 아니라 그 사람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무례하게도 느껴지고 거리를 두게 할 테니까요. 물론 대표님은 신경 덜 쓰실 것 같긴 하지만, 거절도 상대방 배려하면서 하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거절이야말로 상대방을 배려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절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안 좋을수도 있지만, 아예 답도 없고 뭉게고 잠수타는 것 보단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도 썼지만, 잠수X, 뭉게기X 는 당연하고요, 거절을 하더라도 상대방 입장과 상황을 배려해서 거절하는게, 하기 싫어서 안한다는 답변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거절을 할 때 하기 싫어서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자신이 싫은 일을 할 필요 없습니다. 분명히 맺고 끊는 것이 어줍잖게 배려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하기 싫어서 못한다는 진실을 감추고 이런저런 가상의 사유를 창작하는 것이야말로 기만이며 무례가 아닐까요? 저는 딱히 끌리지 않는 부탁에 대해 항상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고 선금으로 반을 요구합니다. 이러면 대체로 나가 떨어지더군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악역인 조커가 한말이 있죠
“뭔가 잘 하는 게 있으면, 절대 공짜로 해 주지 마.”
If you’re good at something, never do it for free.
가끔 보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이후 보상이라던지 이런게 전혀 없는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인연 끊은게 많습니다.
그들이 저한테 원하는게 있지 제가 그들에게 원하는게 있는경우는 진짜 없어서요
네,,,이 글의 포인트랑은 약간 다르지만, 생각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Vc분들도 창업자에게 거절표시 명확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잠수가 90%라.
네, 이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Shame on those VC 예요 ㅠㅠ. 저희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러닉하게도 명확한 사유로 거절하신 투자자분들에게 오히려 더 신뢰를 갖게됩니다. 혹시나 혹여 스타텁이 잘될거 감안해서 묵묵부답 희망고문하시는 투자자분들은 그 스타트업이 잘되서 오셔도 거절한다에 1000% 확신합니다. ^
네, 저희는 항상 적시에 피드백과 답변을 잘 드리는 편인데요, 그래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